맥체인성경읽기
여호수아 3, 시편 126, 127, 128, 이사야 63, 마태복음 11
묵상구절
14:1 <여호와께서 우상 숭배를 심판하시다> 이스라엘 장로 두어 사람이 나아와 내 앞에 앉으니
14:2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4:3 인자야 이 사람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걸림돌을 자기 앞에 두었으니 그들이 내게 묻기를 내가 조금인들 용납하랴
14:4 그런즉 너는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 중에 그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걸림돌을 자기 앞에 두고 선지자에게로 가는 모든 자에게 나 여호와가 그 우상의 수효대로 보응하리니
14:5 이는 이스라엘 족속이 다 그 우상으로 말미암아 나를 배반하였으므로 내가 그들이 마음먹은 대로 그들을 잡으려 함이라
14:6 그런즉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마음을 돌이켜 우상을 떠나고 얼굴을 돌려 모든 가증한 것을 떠나라
14:7 이스라엘 족속과 이스라엘 가운데에 거류하는 외국인 중에 누구든지 나를 떠나고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걸림돌을 자기 앞에 두고 자기를 위하여 내게 묻고자 하여 선지자에게 가는 모든 자에게는 나 여호와가 친히 응답하여
14:8 그 사람을 대적하여 그들을 놀라움과 표징과 속담 거리가 되게 하여 내 백성 가운데에서 끊으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14:9 만일 선지자가 유혹을 받고 말을 하면 나 여호와가 그 선지자를 유혹을 받게 하였음이거니와 내가 손을 펴서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그를 멸할 것이라
14:10 선지자의 죄악과 그에게 묻는 자의 죄악이 같은즉 각각 자기의 죄악을 담당하리니
14:11 이는 이스라엘 족속이 다시는 미혹되어 나를 떠나지 아니하게 하며 다시는 모든 죄로 스스로 더럽히지 아니하게 하여 그들을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려 함이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매튜헨리/옥스퍼드
●책망받는 장로들(에스겔 14:1-11)
Ⅰ. 여기에는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선지자에게 한 말이 나온다. 그들은 선지자를 통해 여호와께 신탁을 물으러 왔다. 그들은 나아와 그 앞에 앉았다(1절).
그들은 에스겔의 동료 포로가 아니어서 그의 사역을 늘 지켜보지 못 했을 것 같다(8장 1절에 나오는 자들처럼). 그들은 이따금씩 들으러 오는 자들이거나 업무차 바벨론에 온 예루살렘의 귀족들 이었을 것이다. 아마 왕의 심부름이나 공무로 바벨론에 왔다가 귀로에 선지자를 방문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선지자의 소문을 많이 들었고 따라서 선지자가 하나님께로부터 어떤 메시지라도 받았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만약 받았다면 그것은 그들의 협상에서 다소 길잡이라도 될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여기서 그들에게 준엄한 대답이 내려지는 것으로 보아 그들이 선지자를 함정에 빠뜨리거나 아니면 시험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온 것으로 의심할 만하다. 그들은 에스겔의 말 가운데서 예레미야의 예언과 상반되는 듯한 꼬투리를 잡으려고 나아왔다. 그래서 그들은 이를 인하여 그와 그의 예언을 다 비난할 수 있기를 기대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정직한 사람을 가장하고 선지자에게 찬사를 돌리며 하나님의 백성이 하는 대로 점잖게 앉았다. 악인이 외면적 종교 행위에 열중하고 있는 것을 본다는 것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님을 주목하자.
Ⅱ. 하나님께서는 비밀리에 선지자에게 그들에 대한 설명을 하신다.
그들은 선지자에게 낯선 자들이었다. 그는 그들이 이스라엘의 장로라는 것밖에 몰랐다. 그것은 그들이 지닌 특성이었다. 선지자는 그들을 이스라엘의 장로로서 존경하며 맞았다. 그는 기꺼이 그들을 고상한 인품의 소유자로 보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진정한 모습을 그에게 보여 주신다. 그들은 우상 숭배자였다. 그들은 자기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어떤 신의 신탁도 받아들이려고 하는 자들이었다. 여기서 에스겔에게 묻는 것도 그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선지자에게 그들이 비호나 권면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의 여부를 직접 물으신다. "그들이 내게 묻기를 내가 조금인들 용납하랴? 내가 그들의 문의를 내게 대한 영예로 생각하여 받아들이거나 그들을 흡족하게 하기 위해 대답하겠는가? 아니다, 그들은 그런 것을 기대할 만한 이유가 없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그들은 자기 우상을 그 마음에 들였다(세웠다=원의).
그들은 우상을 둘 뿐만 아니라 우상을 사랑한다. 그들은 우상과의 사랑에 혹하며 우상과 결합한다. 그들은 우상과 헤어질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중심에는 우상이 들어있고 또 너무나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 집에 우상을 세워 두고 있었다. 지금은 비록 자기 우상의 방에서 멀리 떠나 있지만 그 마음에는 우상들을 들여 놓고 있다. 그들은 이따금씩 공상과 상상으로 우상들을 섬기고 있다. 그들은 우상들로 하여금 그 마음 위로 올라가게 만들었다(직역하면 그렇다). 그들은 그 마음을 우상에게 복종시켰고 우상은 거기서 왕노릇하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선지자에게 물으러 왔을 때 우상을 제거한 것처럼 행세했지만 그것은 위장에 불과했다. 그들은 우상을 위해 은밀한 자리를 마련해두고 있었다. 그들을 자기들의 마음속에 우상을 계속 보존하고 있었다. 설령 그들이 잠깐 우상을 떠난다고 해도 그것은 cum animo revertendi- 즉 최후의 고별이 아니라 다시 그들에게 돌아오려는 의도를 가진 행위였다. 또는 그것은 영적 우상 숭배로 이해할 수 있다. 세상 부귀와 감각의 즐거움에 애착심을 두고 돈을 신으로 삼으며 자기 배로 하나님을 삼는 자들은 자기 우상을 그 마음에 들이는 자들이다. 성소에는 우상을 두지 않았으나 그 마음에는 우상을 들이는 자들이 많다. 이것은 하나님의 보좌를 찬탈하는 것이며 그 이름을 모독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 (요일 5:21).
2. 그들은 죄악의 거치는 것을 자기 앞에 둔다.
그들의 은과 금을 죄악의 거침돌로 표현되고 있다. 그것은 은금의 우상이었다. 그 아름다움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우상에게 유혹되었다. 그래서 우상은 그들을 거치게 하고 그 죄에 빠지게 한 거침돌이었다. 또한 그들의 죄악은 그들을 곤두박질시키고 따라서 파멸속으로 넘어지게 한다. 죄인은 스스로를 시험하는 자이며(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라, 약 1:14) 따라서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자이다. "만일 네가 거만하면 너 혼자 그것을 당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그들은 죄악의 거치는 것을 자기 앞에 두고 눈으로 보면서도 그 위에 거친다. 이것은 그들이 그 결과야 어떻든 죄 가운데서 진행하겠다고 결심하는 것을 암시한다. "내가 낯선 자를 사랑하며 그를 따라 행하리라" 는 것이 그들의 마음의 언어였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런 파렴치한들에게 물음을 받으시겠는가? 그들은 그리스도를 희롱하여 무릎을 끓던 자들처럼 그에게 존귀를 돌리기는 커녕 오히려 이로써 모욕을 끼치지 않았는가? 이와 같이 하나님께 적대 행위를 계속하는 자들이 하나님께로부터 화평의 대답을 기대할 수 있는가? "에스겔아 ! 너는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Ⅲ. 하나님께서는 정당하신 노여움으로 에스겔에게 명령을 내리시는데 그것은 그들에게 응답을 주라는 것이다(4절).
그들은 하나님의 응답 거절이 인간 차멸이나 무시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족속 모두에게 대한 규칙으로 제시됐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누구든지간에 우상에 대한 사랑과 연합을 계속하면서 하나님께 물으러 나온다면 하나님을 자기에게 대한 모욕으로 여겨 분개하실 것이며 그 사람의 가장된 경건대로가 아니라 그의 실제 죄악대로 응답하실 것이다. 그들은 선지자에게 나아오면서 선지자가 자기를 정중히 응대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뻔뻔스러움을 벌하심으로써 그에게 응답하실 것이다. "말하기만 하면 시행되는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아오는 자에게 그 우상의 많은 대로 응답하리라." 그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세우며) 그 마음을 우상에 두는 자들은 흔히 다수의 우상을 가진다는 데 주목하자. 겸손한 예배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그 자비의 많은 대로 응답하시지만 대담한 침입자에게는 그 우상의 많은 대로 응답하신다. 즉
1. 그 우상들의 소원대로 응답하실 것이다.
그는 그들을 그 마음의 정욕대로 내버려 두실 것이며 그들이 마음에 원하는 만큼 나쁘게 되도록 내버려 두실 것이어서 마침내 그들은 자기 죄악의 양을 채우게 될 것이다. 인간의 부패와 타락은 그 마음에 있는 우상이며 그것은 그들 스스로가 들어다 세운 것이다. 인간의 유혹과 시험은 자기 죄악의 거침돌이며 그것 역시 그들 자신이 갖다 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대로 그들에게 응답하실 것이다. 그들로 자기 진로를 취하게 하라.
2. 그 우상들의 공과대로 응답하실 것이다.
그들은 우상 숭배자가 받아 마땅한 대로 응답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보통 우상 숭배자들을 처벌하실 때와 마찬가지로 그들을 벌하실 것이다. 즉 그들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하나님께서는 자기들이 택한 신들에게로 그들을 보내실 것이다(삿 10:13, 14). 하나님은 인간의 외양과 겉보기 신앙을 따라서 그를 판단하지 않으시고 그 실제대로 즉 그 마음을 따라 판단하실 것이다. 이 점을 유의하자. 그리고 이 일의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위협적 응답은 어디까지 도달할 것인가?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5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족속을 그들의 마음에 먹은 대로 잡으며 그들을 세상에 노출시켜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아니, 그들을 저주에 노출시켜 파멸을 당케 하려 함이라." 죄인의 죄와 수치 그리고 고통과 파멸은 전부가 그들 자신에게서 나오며 그들의 마음은 그들 자신을 잡는 올무라는 데 주목하자. 죄인의 마음은 그들을 유혹하며 배반한다. 그들의 양심은 그들을 쳐서 증거하며 정죄하며 그들 자신에게 두려움이 된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들을 잡으시며 발견하시며 유죄 선고를 하시며 묶어서 심판에 넘기신다면 그것은 전부가 그들 자신의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이스라엘아 네가 네 스스로 명망케 했느니라. 이스라엘 족속이 다 그 우상으로 인하여 나를 배반하였으므로 그들은 그들 자신의 손으로 인해 파멸을 당한다."
다음 사실을 주목하자.
(1) 죄인의 파멸은 하나님께로부터의 배반에 기인한다.
(2)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께로부터 소외되는(배반하게 되는)것는 이런 저런 우상를 통해서이다. 피조물이 마음속에서 하나님이 차지하셔야 마땅할 자리와 지배를 얻었다는 것은 얼마나 가증한가 !
Ⅳ.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응답의 정도(7, 8절).
그 응답은 이스라엘 족속 전부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 같은 말씀이 반복되는데 이것은 위선자에게 대한 하나님의 지당하신 노여움을 암시한다. 그들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그와 전쟁 상태에 있으면서도 겉치레 신앙과 경건한 모양으로써 하나님을 조롱하는 자들이다.
다음을 살피자.
1. 이 선언은 누구에게 속하는가?
그것은 모든 이스라엘 족속과 관계 있을 뿐 아니라(3, 4절) 이스라엘 가운데 우거하는 외인과도 직결된 일이다. 이방인은 자기가 이스라엘에 체류하는 나그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으로 우상 숭배의 구실을 삼으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자기 부조가 섬겼고 자기도 그 우상 예배 속에서 양육되었다고 해도 그 신들을 섬겨서는 안 되었다. 그들은 만일 우상 숭배를 완전히 부인하지 않는다면 이스라엘의 신탁이나 선지자로 부터 어떤 혜택도 기대해서는 안 된다. 개종자라도 진실하지 않으면 옹호받지 못한다는 데 주의하자. 위장된 회심은 회심이 아니다.
2. 위선자들은 어떻게 묘사되는가?
그들은 우상과의 교제로 하나님을 떠난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스스로 단절시키며 그에게 대한 이해 관계도 끊어버린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면식과 교통을 중단하고 그에게서 멀리 떠난다. 우상과 결합하는자는 하나님을 떠나는 자이며 하나님께로부터 스스로 분리하는 자이다. 하나님의 시야와 성취로부터 영원히 분리되는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 대한 봉사로부터 스스로 분리하여 그에게 대한 충성에서 고의로 물러나는 자들은 예외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로부터 스스로 분리하면서도 하나님께 대해 물어보려고 선지자에게 나아오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겉으로는 선지자의 직분에 대해 존경을 품는 체 하지만 헛된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시끄러운 양심의 입을 막기 위해 나아오는 것이다. 또는 그들은 사람들 중에서 명성을 얻거나 보존하기 위해 선지자에게 나아오지만 하나님과 친숙해 지려거나 그의 지배를 받으려는 염원은 전혀 품고 있지 않다.
3. 이처럼 하나님을 시시하게 보고 속이려고 생각하는 자들의 운명이 언급된다.
"나 여호와가 친히 그에게 응답하리라. 나 혼자 그를 취급하게 하라. 내가 그에게 대답할 것이니 그 대답은 그를 혼란의 와중에 쓸어넣을 것이며 자기의 대담한 불경건을 후회하게 하리라." 그는 선지자의 말로 대답을 얻지 않고 하나님의 심판으로 응답을 얻게 될 것이다. "내가 그를 대적하리라." 이것은 그에게 대한 하나님의 노여움이 크다는 것과 그를 파멸시키겠다는 확고한 결의를 나타낸다.
하나님은 극히 참회치 않는 죄인도 능히 대적하실 수 있다. 외식자는 자기 명성을 건지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칭찬을 받으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징조와 속담이 되게 하실" 것이며 그에게 심판을 내려, 주위 모든 사람의 눈에 형편없이 보이게 하고 주목을 끌게 할 것이다. 마치 죄인 중 극악한 자를 외식하는 자가 받는 율에 처한다고 하듯(마 24:51) 그의 불행은 최대의 불행을 표현하는 데 인용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표본으로 만드실 것이다. 그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심판은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희롱치 않도록 조심하라는 경고가 될 것이다.
하나님을 배반하면서도 하나님께 묻는 척하는 자들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다. 위선자는 자기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간주 받아 그들 틈에 끼어 천국으로 가리라 생각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자기 백성 가운데서 끊으실 것이며 그를 발견해 내실 것이며 아무리 비좁은 무리 중에 끼여 있더라도 집어내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이로써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고 말씀하신다. 위선자의 색출로 하나님은 전지하시다는 것이 나타난다. 사역자들은 교인들이 말씀을 들을 때 감화를 받는지 못받는지 알지 못하나 하나님은 다 감찰하신다. 위선자의 형벌로써 하나님은 질투하는 분이시며 기만당할 수도, 당하려고 하지도 않으신다는 것이 드러난다.
Ⅴ. 경건을 가장하는 자들을 옹호하는 거짓 예언자들의 운명이 나온다(9, 10절).
에스겔은 이들 위선적 문의자들에게 위로의 대답을 하려 하지 않지만 그래도 그들은 좋은 말만 해 줄 다른 선지자들을 만나려고 한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그들은 하나님이 형벌의 일부로 거짓 선지자로 하여금 속이도록 허락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만일 아첨하는 선지자가 유혹을 받고 사실 무근한 희망을 그들에게 심어 준다면 이는 나 여호와가 그 선지자로 유혹을 받게 하였기 때문이다. 내가 유혹을 그 앞에 두도록 허락했고 그로 그 유혹에 넘어가게 했으며 악행을 계속하기로 결심한 자들을 그 악한 행로 속에서 더욱 완악해지도록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죄를 지으신 분이 아님을 확인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만유의 주시오, 죄인들의 재판관이시며 왕왕 한 악인을 이용하여 다른 악인을 멸망케 하시며 한 악인을 이용하여 다른 악인을 미혹케 하신다는 것을 믿는다.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는 두 가지가 다 죄다. 따라서 그것들은 하나님께로서 오는 게 아니다. 이런 일을 당하는 자에게는 그 두 가지가 다 벌이다. 따라서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다. 이에 대한 완전한 본보기는 아합의 선지자들의 기사에서 읽을 수 있다(왕상 22:23). 아합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이 저희 입에 두신 거짓말하는 영에게 미혹을 당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다른 영을 보내사 그들로 그 거짓말을 믿도록 버려 두셨다.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살후 2:10, 11). 그러나 거짓말 하는 선지자의 두려운 운명을 읽어보자. "내가 손을 펴서 그를 멸할 것이라." 하나님께서 그 거짓말하는 선지자를 통해 자신의 의로우신 목적을 이루시고 나면 그 선지자는 자신의 불의한 목적에 대해 셈을 치르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죄 많은 백성을 황폐시키시기 위해 갈대아인들을 사용하셨지만 갈대아인의 본노에 대해서도 벌하셨다. 그것은 공정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죄많은 백성을 미혹시키기 위해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그리스도인들을 이용하셨지만 그들 자신에게는 허위성을 들어 벌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점에서(이 부분에 대한 칼빈의 주석이 상기시켜 주듯) 하나님의 판단이 큰 바다와 일반이며 (시 36:6),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판단하기에는 무능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비난자들을 만족시키고 침묵시킬 수 있을 정도로 하나님 처사의 공평성을 설명하진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온 세상 앞에서 의로우시다고 인정되실 날이 오고 있다. 특히 이 사례에서 그럴 것이다. 즉 그 때에는 악한길에 있는 외식자에게 아첨하는 선지자의 형벌이 부드러운 것만 구하고 말하는(사 30:10) 외식자의 형벌과 같을 것이다. 눈먼 인도자나 추종자가 다 같은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
Ⅵ. 이 두려운 운명을 방지하기 위해 그들에게는 선한 권면이 제공된다(6절).
"그런즉 너희가 다 돌이켜 우상을 떠나라. 우상이 너희와 하나님을 분리시켰듯 너희는 우상과 분리되리라. 우상이 하나님의 얼굴을 너희에게서 돌리게 했으므로 너희는 너희 얼굴을 우상에게서 돌이키라." 이것은 우상의 타기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혐오감과 증오감을 버리라는 것도 의미한다. "너희가 역겨워하는 가증한 것에서 얼굴을 돌이키듯 우상에게서 돌이키고 떠나라. 그러면 너희는 여호와께 물으러 와도 환영을 받을 것이다. 자 오라 ! 우리가 함께 변론하자."
Ⅶ. 이스라엘 족속에 대한 이 모든 일의 결과는 좋게 나타난다.
가장한 선지자와 거짓 성도들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함께 멸망할 것이다. 이는 일부를 본보기로 삼아 백성의 대부분을 개혁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는 이스라엘 족속으로 다시는 미혹하여 나를 떠나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 (11절).
형벌은 죄의 방지를 목적으로 하며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듣고 두려워하며 경고를 받게 하기 위한 것임을 주목하자. 하나님께로부터 이탈하여 방황하는 자들이 어떻게 되는지를 보게 될 때 우리는 그로써 하나님께 꼭 달라 붙게 된다. 그리고 만일 이스라엘 족속이 미혹하지 않으면 그들이 다시는 더럽혀지지 않을 것이다.
죄는 더럽히는 것임을 유의하자. 죄는 죄인을 하나님의 순수하시고 거룩하신 눈에 역겨운 존재로 비치게 하며 양심이 깨어나는 때에는 죄인 자신의 눈에도 그렇게 비치게 만든다. 따라서 그들은 더 이상 더럽혀지지 않을 것이다. 이는 "그들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려 함이라" 하나님이 언약을 맺으시는 자들은 먼저 죄의 더럽힘에서 깨끗이 하심을 받아야 한다는 데 유념하자. 그렇게 깨끗케 함을 받은 자들은 파멸에서 구원을 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모든 특권을 누릴 수도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