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7월 9일 수요일 묵상구절 겔16:60-63 <영원한 언약>

Jeehyun 2025. 7. 9. 11:37

맥체인성경읽기

여호수아 11, 시편 144, 예레미야 5, 마태복음 19

묵상구절

16:60 <영원한 언약> 그러나 내가 너의 어렸을 때에 너와 세운 언약을 기억하고 너와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라

16:61 네가 네 형과 아우를 접대할 때에 네 행위를 기억하고 부끄러워할 것이라 내가 그들을 네게 딸로 주려니와 네 언약으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16:62 내가 네게 내 언약을 세워 내가 여호와인 줄 네가 알게 하리니

16:63 이는 내가 네 모든 행한 일을 용서한 후에 네가 기억하고 놀라고 부끄러워서 다시는 입을 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매튜헨리/옥스퍼드

💡16:60 <영원한 언약> 그러나 내가 너의 어렸을 때에 너와 세운 언약을 기억하고 너와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라

16:61 네가 네 형과 아우를 접대할 때에 네 행위를 기억하고 부끄러워할 것이라 내가 그들을 네게 딸로 주려니와 네 언약으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16:62 내가 네게 내 언약을 세워 내가 여호와인 줄 네가 알게 하리니

16:63 이는 내가 네 모든 행한 일을 용서한 후에 네가 기억하고 놀라고 부끄러워서 다시는 입을 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자비의 약속(에스겔 16:60-63)

죄에 대한 극히 수치스런 판결과 극히 두려운 심판의 선언이 있은 뒤 본장 말미에서는 나중 올 자들을 위해 자비가 기억되고 예비된다. 이것은 출애굽시와 같다. 출애굽 때 하나님은 진노하신 가운데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할 터이나 "너희중 어린 자들은 들어가리라" 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혹자는 이것을 소돔과 사마리아(53, 55절) 그리고 예루살렘의 귀환에 대한 약속으로 생각한다(그로티우수와 일부 유대학자들의 이해처럼). 이것을 한 때 소돔에 거주했던 롯의 후예인 모압인과 암몬인으로 이해한다면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다(렘 48:47; 49:6 참조). 그러나 이것이 귀중한 약속임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이 약속은 참회하고 개심한 유대인들이 바벨론에서 귀환했을 때 부분적으로 성취되었고 복음 시대에 완전히 성취되었다. 회개와 죄의 사유는 복음 시대에 성공리에 선포되었고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민족에게 퍼져나갔던 것이다. 여기서 다음 사실을 주목하자.

Ⅰ. 이 자비는 어디서 일어나는가?

자비는 하나님 자신에게서 나온다. 이것은 그들과 세우신 그의 언약의 기억에서 나온다(66절). 그들은 너무나 패역했고 하나님은 다시는 그들과 화해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될 만큼 노하셨다. 그러나 "내가 너의 어렸을 때에 너와 세운 내 언약을 기억하고 그 언약을 다시 살리리라. 너는 그 언약을 배반했을지라도(59절) 나는 그 언약을 기억할 것이며 그것은 다시 활용될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대로 우리에게 행하시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은 우리에게 여간 큰 위로와 이익이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주목하자. 이와 같이 언약의 자비는 영원하고 확실한 은혜가 된다(사 55:3). 그리고 이 뿌리가 땅에 굳건히 서 있는 한 비록 나무가 찍힐지라도 소망이 있어서 물기운에 뿌리가 움이 돋을 것이다(욥 14:7, 8). 우리는 그들이 하나님께 언약을 상기시킨 게 아니라 ex mero motu-즉 하나님이 자신의 선한 즐거움에서 그 언약을 기억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다(레 26:42, 그때 내라 내 언약을 생각하고 그들을 권고하리라). 우리에게 언약을 결코 잊지 않으실 것이다. 그는 그 언약 곧 천대에 명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하실 것이다(대상 16:15). 그가 명하시는 말씀은 견고히 서 있다(시 33:9).

Ⅱ. 그들은 이 자비에 대해 어떻게 준비되며 자격을 갖추는가?(61절)’

"너는 네 행위 즉 네 악한 행위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너로 하여금 네 악한 행위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너로 하여금 네 악한 행위를 상기시키고 네 행위를 네 앞에 나열하여 너로 부끄러워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선하신 활동을 개시하시며 그 활동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의지와 보조를 같이 한다는 데 주목하자. 하나님은 우리 죄를 기억하려고 하지 않으신다. 이는 우리를 해칠까봐서이다. 그는 반대로 우리를 위해 언약을 기억하신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 죄를 기억하게 하시고 우리 스스로 반대하게 하신다. 그리고 우리가 만일 우리 행위를 기억하게 되기만 한다면 우리 행위가 얼마나 패역하고 비뚤어진 것이었으며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과 배치된 행동을 했는지를 깨닫고 부끄러워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럴 때가 인침받은 사유와 확립되는 평화의 명예와 위로를 받아들일 준비가 가장 잘 된 때이다.

Ⅲ. 그들을 위해 하나님이 예비하고 계신 자비는 어떤 것인가?

1. 하나님은 그들과 언약을 세우실 것이다.

"내가 너와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라(60절). 내가 네게 내 언약을 어느 때보다 굳게 세울 것이며 재확립시킬 것이다(62절 참조)."

모든 진정한 회개자에게 말로 다 할 수 없이 위로가 되는 것은 은혜의 언약이 모든 일 가운데 너무나 잘 조정돼 있어서 어떤 언약의 위반도 우리를 그 언약 밖으로 축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언약은 불가침의 것이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은 이방인을 교회의 친교 속으로 불러들일 것이다(61절).

"네가 네 형과 아우 곧 네 주위에 있는 이방 나라들, 너보다 크거나 작은 나라들, 옛 나라와 현대 나라들을 접대하게 될 것이며 내가 그들을 네게 딸로 주리라."

그들은 복음 곧 여호와의 말씀으로 창시되고 양육되고 교육받게 될 것이며 그 복음은 시온과 예루살렘에서 발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교회가 거기서 존속하는 한 모든 이웃들은 예루살렘을 어미라 부를 것이며 위에서 온 예루살렘을 자유자와 우리 모두의 어미로 인정할 것이다(갈 4:26). "그들은 네 딸이 될 것이지만 네 언약으로 말미암음이 아니며 독특한 언약에 의함도 아니다. 또 유대교로 개종해서도 아니며 의식법의 굴레에 복종함으로써도 아니고 너와 함께 기독교로 전향함으로써이다." 또는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다. "네 언약으로 말미암지 않는다" 는 것은 "네가 피정복민이나 포로나 부속자에게 부과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조건에서가 아니다" 는 것이다.

세상적 유대인은 이방인에 대한 그런 지배를 희망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니다. 그들은 내 언약으로 말미암아 네 딸이 될 것이다. 그것은 내가 너와 그들과 공동으로 맺은 삼자 계약의 은혜이다. 나는 아버지가 될 것이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에게 공동의 아비가 될 것이어서 너는 그들과 서로 자매가 될 것이다. 그리고 네가 그들을 접대할 때는 네 행위를 부끄러워하게 될 것이다. 너는 이방인을 보면 네가 타락했을때에 그들보다 훨씬 악했다는 것을 기억하고 낯을 붉히게 될 것이다."

Ⅳ. 이 일의 결과와 효능은 무엇인가?

1. 하나님은 영화롭게 될 것이다(62절).

"너는 내가 여호와인 줄 알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권능의 신 여호와며 자기 언약에 충실한 하나님이라는 것이 알려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너는 마치 그것을 알거나 믿지도 않은 자처럼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 것이며 쓰라린 경험으로 알게 되라라" 는 말이 진노 가운데서 나타났지만 여기서는 자비의 말로 나오고 있다. "너는 내가 여호와인 줄 알게 될 것이며 즐거운 경험으로 알게 될 것이다." 극히 작은자에서 극히 큰 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그를 알게 되리라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맺으신 새 언약 중에서 가장 귀중한 약속 중 하나이다.

2. 그들은 이로써 보다 겸손하게 되고 죄 때문에 낮아지게 될 것이다.

"이는 네가 그릇되이 행한 모든 일을 기억하고 놀라며 자책하며 골백번도 더 자신을 무지하고 무도하고 배은망덕한 자라고 부르게 하려 함이다. 또 나는 너로 다시는 입을 열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을 반박하거나 비난하거나 불평 못하게 하고 네 수치 때문에 영영 침묵하며 순응하게 할 것이다." 자기 죄를 올바로 기억하는 자는 그것을 참으로 부끄러워한다는 데 주목하자. 그리고 자기 죄를 진정으로 부끄러워하는 자는 고난 가운데서 인내하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 벙어리처럼 입을 열지 않는 게 옳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내가 네 모든 행한 일을 용서한 후에" 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용서와 화해에 대한 증거가 분명하면 할수록 하나님께 득죄한 자들이 더욱 더 슬퍼하고 부끄러워한다는 것은 진정한 참회자의 은혜로운 솔직함이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신다. 그는 우리의 평강이며 우리가 용서받는 것은 그의 십자가에 의해서이다. 그리고 하나님 세상과 화해하시는 것은 그의 복음 안에서이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우리의 마음은 죄에 대한 경건한 근심을 강열하게 느끼게 된다. 이것은 천국이 가까웠기 때문에 하는 회개이다. 탕자는 아버지의 입맞춤으로 영접을 받고 아버지가 자기를 용사했다는 것을 확신한 뒤 부끄러움과 당혹감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나이다" 라고 고백했다. 자비의 사유하심을 인식함으로써 죄에 대한 우리의 수치심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하나님 안에서 얻는 우리의 위로는 더욱 더 늘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