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3월 30일 수요일 민21:4-9

하나지기 2022. 4. 4. 07:30

맥체인성경읽기

레위기 1, 요한복음 20, 잠언 17, 빌립보서 4

 

묵상구절

21:4 그들이 에돔 땅을 피하여 돌아가기 위해 호르 산을 떠나 홍해 길로 나아갔는데 백성이 길로 인하여 낙심하였다.

21:5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기를 "왜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게 하십니까? 음식도 없고 물도 없으니, 우리는 이 형편없는 음식이 매우 싫습니다." 하니,

21:6 여호와께서 백성 가운데 불뱀들을 보내어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의 많은 백성이 죽었다.

21:7 백성이 모세에게 가서 말하기를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원망하여서 죄를 지었습니다. 여호와께 기도하여 주께서 뱀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해 주십시오." 하니,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2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불뱀을 만들어 그것을 장대 위에 달아 놓아라. 물린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살 것이다." 하셨다.

21:9 모세가 놋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아 놓으니, 뱀에 물린 자마다 놋 뱀을 쳐다보면 살았다.

 

매튜 헨리/옥스퍼드

👀 본문의 사건은 에돔이 이스라엘의 영내 통과틀 거절한 것과 관련이 있는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이 점차 가까워오자 마음이 조급해졌고 또한 긴 여행으로 인해 지쳐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에돔이 이스라엘의 영내 통과를 거절하여 가나안으로 가는 편하고 빠른 길 대신에 척박하고 먼 홍해길로 돌아가게 되자 급기야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금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고 나섰습니다. 이에 하나님께 서는 불뱀을 보내어 그들을 정벌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의 중보 기도를 들으시고 놋뱀을 만들어 그것을 쳐다보는 자마다 구원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본문의 사건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하나님 앞에서 다 죽을 수밖에 없는 모든 인간의 불완전성과 사악한 본성을 보여 주는 일례가 되는데 하나님께서 불뱀으로부터 구원얻는 방편으로 주신 놋뱀은 우리가 죄와 사망에서 구원얻을 수 있는 방편이 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표한다고 하겠습니다.

 

● 놋뱀(민수기 21:4-9)

 

Ⅰ.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돔 땅을 통과하여 가까운 길로 가지 못하고, 그 땅을 둘러 먼 길로 전진하였기 때문에 심히 피로해졌다.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였다" (4절).

아마 그 길이 거칠고 평탄치 못했거나 아니면 더럽고 메마른 길이었는지 모른다. 또는 그들 이 에돔 사람들의 땅을 그대로 밀고 들어가서, 그 땅을 통과하지 못 하고 멀리 돌아가야 하는 것을 속상하게 생각하였는지 모른다. 마음이 초조하고, 불만을 품은 사람들은 언제나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 ‘홍해 길'은 사해 남부에서 ‘아라바 광야' (수11:2)로 거쳐 홀헤의 동쪽에 위처한 아카바 만의 항구 도시인 '에시온게벨' (왕상 9:26)에 이르는 길이었다. 그 대부분이 사막 지대인 아라바 광야를 거쳐야 하였기 때문에 매우 거칠고 여행하기에 힘든 길이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 1세대 역시 가나안 땅을 앞에 두고 가데스에서 다시 돌이켜 ‘홍해 길로 하여 광야로 들어' 갔었던 적이 있다(14:25). 그런데 이제 다시 그 길을 통하여 가나안에서 점차 덜어졌을 뿐 아니라 매우 험한 길을 가게 되었으므로 백성들의 마음은 크게 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병행 구절인 신2:8을 보면 당시 이스라엘은 아카바만에 있는 엘랏과 에시온게벨까지 거의 다 가서 다시 돌이켜 모압 광야 길로 북상했음을 알 수 있다.

마음이 상하였다

  • ‘상하였다’
  • : 이 단어는 본래 ‘(마음이) 참을 수 없다’(삿10:16), 이것은 **어떠한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 (출 6:9)**을 의미한다. 즉 ‘홍해 길' 이 거칠고 험했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견디지 못하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빨리 들어가기만을 재촉하며 조급해진 상태를 암시한다. 즉 ‘홍해 길'을 참아 내지 못한 것은 그들의 육체 때문이 아니라, 가나안을 주시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바라며 끝까지 인내하지 못하고 조급했던 그들의 마음 때문이었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소망이 더디 이루어질 때 그 마음이 상하는 경우가 많다(잠3:12). 그러나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이루며(약1:3), 그렇게 인내할 때 결국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게 된다(약5:11). 따라서 아무리 극심한 고난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우리의 중심을 늘 하나님께 향하게 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소망의 항구로 인도하실 것이다.

 

Ⅱ. 이런 경우를 당하자 그들의 불신앙은 불평부터 토로하였다(5절).

 

💡 5절, ‘(그 백성이) 하나님을 대항하여 그리고 모세를 대항하여 말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칠고 험한 ‘홍해 길'로 인하여 그러고 물도 없고 식물도 없음을 인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를 범하였던 것이다.

그들이 이와 같은 죄를 범하게 된 근원이 무엇이었을까?

  • 결국 장래에 대한 소망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지 못했던 그들은 결국 홍해 길을 견디지 못하게 되었고 그들의 심령은 마침내 하나님을 대적하고 원망하는 죄를 범하게 된 것이다. 

그들의 불만사항 2가지

  • 금방 가나안 사람들에 대해 영광스러운 승리를 거두고 계속해서 정복하고 들어가고 있는 그들이건마는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지금까지 베풀어주신 바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였으며, 앞으로 베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바에 대해서는 이를 믿지 못하겠다고 하여 그 불신을 토로하였다.
  • 그리고 그들은 애굽에서 이끌려 나온 것과 또 다른 사람들처럼 스스로의 손으로 지은 식물과 물을 먹고 마시지 못하고, 그들은 오로지 기적에 의해 생겨난 식물과 물을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해 원망하였다. 그들에게는 "먹고 남을 만큼의 떡" 이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떡이 없다" 고 불평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비록 천사들의 음식을 먹어도 그것에 대해 싫증을 느꼈던 것이다. 그들은 만나에 대해 싫증을 느꼈으며, 그것을 "박한 식물" 이라 하였고, 아 이들이나 먹을 것이지 어른들이나 군사들이 먹을 만한 것이 못된다고 하였다.
    • ‘싫어하다, 미워하다, 가증히 여기다’ 등으로 번역되는데, 이 동사는 단순히 싫어하는 정도를 넘어서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며 나아가서는 그 대상이 없어지고 끊어지기를 바라는 감정적 반응을 나타내는 말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난 40년 간의 광야 생활 동안 하늘에서 데일 내려 주시는 만나가 이제 싫증나고 싫어지게 되었다고 불평하고 있는 것이다. 어 만나는 출애굽 초기, 굶주림에 허덕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직접 내려 주신 것이었다(출 16:12). 처음엔 꿀처럼 달았던 만나를 그들은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먹었지만 약 40년이 지난 시점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만나'가 싫어지고 질리게 되었던 것이다. 급기야 이들은 어 음식에 대한 불평을 하게 되었고 나아가서 음식을 주신 하나님의 존재와 출애굽 자체마저 원망하게 되고 말았다. 이것은 곧 하나님에 대한 심각한 불신앙이었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는 교만한 행위였다(시100:4; 골1:12; 살전5:18; 살후2:13).

 

💡 ‘싫증이 났다’

만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어떤 것이면 만족할 수 있었을까? 싸움을 하고 싶은 자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 곳에 서로 잘못을 찾아낸다. 이처럼 너무 오랫동안 하나님의 은혜를 맛본 사람들은 하늘의 만나까지라도 싫증내기가 쉽고, 이를 박한 식물이라고 부르기가 쉽다.

그러나 그런 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가치를 손상시키는 경멸의 말을 하지 못하게 하자.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떡이며, 참 식물이며, 믿음으로 그것을 먹는 자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떡이다. 그 누가 감히 그런 떡을 "박한 식물" 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Ⅲ. 그들의 불평의 소리를 듣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의로운 심판을 내리셨다(6절).

하나님은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들을 물게 하고, 그중의 많은 사람들을 죽게 하셨다. 신명기 8장 15절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그들이 지금까지 지나온 광야는 불뱀들이 들끓었던 곳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놀랍게도 그의 백성들을 불뱀의 해로부터 지켜 주셨다. 그런데 이제 그들이 불평을 말하게 되자.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진영을 피하던 짐승으로 하여금 그곳에 몰려들게 하고, 이로써 하나님은 그들을 혼내 주시기로 하셨다. 하나님의 자비에 대해 감사할 줄 모르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진 것은 마땅한 일이다.

이 뱀을 불뱀이라고 일컬었다.

 

👀 이 뱀들은 당시 이스라엘이 여행하던 광야 지역(특히 아라바 지역)에 많이 서식하던 독사 가운데 한 종류로서 (신 8:15) 등에 ‘불타는 듯한 붉은 반점'이 있는 뱀을 일컫다. 이 뱀들은 독성이 강해서 한번 물리게 되면 그 독이 온몸에 퍼지며 높은 열이 올라 결국 죽음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따라서 ‘불뱀' 이란 이름은 뱀의 모양 뿐만 아니라 그 맹독성을 강조하여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였다.

‘보내어’

  • 하나님께서 보호의 손길을 거두시고 심판을 위해 적대적인 것을 풀어 놓는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렘9:16; 암4:10).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의 진입을 위한 남은 여정을 참아내지 못하고 식물과 물이 없음으로 하나님을 교만히 대적함으로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계하시되 그 아라바 광야에 서식하던 ‘불뱀'들을 보내셔서 그들을 물게 하셨던 것이다. 이것은 만물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당신이 만드신 피조물을 사용하셔서 초자연적인 역사를 이루시는 능력을 보여 준다(롬11:36).

그들은 "이 광야에서 죽어야 한다" 고 불신앙적으로 스스로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들의 말을 받아서, 그들의 불신앙이 곧 그대로 실행되게 하셨다. 그리하여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들은 뻔뻔스럽게도 하나님의 면전에서 날뛰었으며, "그들 의 입술 아래는 독사의 독이 있었다" (시 104:3).

그런데 이제 이 불뱀들이(이 뱀들은 나는 불뱀으로 보이는데-사 14:29) 그들의 면전에서 날뛰며, 그들에게 독기를 뿌렸다. 그들은 교만하여 하나님과 모세에 대해 오만하였는데, 하나님은 이 천한 짐승으로 하여금 그들에게 천벌을 주게 하여, 그들을 겸손하게 만들어 주셨다. 전에는 애굽 사람들을 막았던 그들의 무기가 이제는 그들을 공격하는 무기가 되었다. 메추라기 새들을 기르기 위해 그 새들을 가져오는 자는 그 새들을 물을 뱀도 함께 가져 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온 피조물이 하나님께 대항하기 위해 무장을 갖춘 자들과 싸우고 있다.

 

Ⅳ. 백성들은 이러한 심판을 받자 회개하고 하나님께 간청하였다(7절).

"우리가 범죄하였나이다" 고 백성들은 자기들의 잘못을 고백하였다. 그들은 특별히 이런 말로 고백하였다. "우리가 여호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였나이다." 아마 그들은 그 형벌이 가혹한 것이 아니었었다면 자기들의 죄를 시인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 본문은 원어의 의미로 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범하였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목표 곧 하나님의 뜻을 이기고 잘못된 방향으로 빗나갔다는 의미이다. 즉 가나안 땅을 주시러라는 하나님의 언약이 그들에게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잠시의 고난을 인내하지 못하였고, 여호와를 대적하여 교만히 행하였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행위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서 크게 빗나간 것으로서, 곧 하나님께 죄를 범한 것이다.

한편 본구절은 불뱀으로 인한 재난이 자신들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깨닫고 고백하는 장면이다. 이렇듯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 행타시는 징계는 회유와 권면의 채찍질로서 그들로 범죄의 길에서 회개하고 돌이키게 하기 위한 선하신 목적으로 이루어진다(잠3:12; 눅15:14; 히12:5-13).

 

그러나 그들은 채찍 앞에 거꾸러졌다. "하나님이 그들을 치시매 그때에서야 그들은 하나님을 찾았다".

그들은 자기들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지 못하는 것을 알며, 또 모세의 기도는 하늘에 크게 상달되는 것을 확신하고 모세에게 기도를 요청하였다. 그들의 어조가 어쩌면 그렇게 재빨리 변할 수 있을까? 조금 전까지 원수로 치부하고 싸우던 사람에게 그들의 가장 좋은 친구라고 아양을 떨며, 자기들을 위해 하나님께 말해 줄 대변자로 삼았다. 하나님의 사람들에 관한한 때로 고난은 그들의 마음을 변화 시켜줌으로, 전에는 그들이 비난하였던 기도의 가치를 깨닫게 하여 준다.

모세는 그들을 충심으로 용서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자기를 저주한 사람들을 위해서 축복하였으며. "멸시하는 자들을 위해 서 기도하였다." 우리는 모세에게서, 자기를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으며, 우리에게도 가서 이와 같이 행하여 "우리의 원수를 사랑하라" 고 일깨워 주시는 바를 찾아볼 수 있다.

 

 👀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 기도하매 : 심판하다, 중재하다.
  • 원어적 의미 뿐 아니라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중재자를 통해서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도 여기서의 모세의 기도는 백성들의 중재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것으로서 *중재하다* 라는 원어상의 또 다른 의머를 충분히 반영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 오늘날 우리에게는 온 인류의 온전한 중보자되신(롬8:34; 딤전2:5; 히1:3) 예수님이 계신다. 중보자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직접 간구할 수 있다는 것은 실로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요14:13, 16:23,24). 

Ⅴ. 하나님은 그들을 살리기 위해 놀라운 방법을 마련하셨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심판을 선언하게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백성들로부터 좋은 감정을 살 수 있도록 하게 하기 위하여 그로 하여금 구원의 방편이 되게 하셨다(8,9절).

하나님은 모세에게 불뱀의 모양을 만들어 높은 장대 위에 매달아, 진영 어디서든지 볼 수 있게 하여, 뱀에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 수 있도록 하게 하라고 명령하셨다. 모세는 놋으로 불뱀 모양을 만들었다.

 

👀 겉으로는 불뱀의 형상을 가졌지만 독이 없었고 또 전혀 해가 없을 뿐 아니라 이를 쳐다보는 자가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이 ‘놋뱀'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 것이다(요3:14,15; 갈3:13; 골2:15). 곧 하나님께서 특별히 ‘레카' 란 단어를 사용하신 것은 뱀의 형상을 만드는 것이 ‘너를 위하여(레카)' 아무 형상도 만들지 말라고 명하신 제 2계명(출 20:4)에 위반되는 것이 아님을 드러내시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여기서 ‘너'는 단순히 모세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며 나아가 오늘날의 모든 믿는 자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장대 위에 매달아야 함

  • 장대(네쓰)
    • ‘빛나다(슥9:16), ‘눈에 띄다’ 라는 뜻의 단어에서 유래한 말. 곧 많은 사람들의 눈에 확연히 띄도록 끝에 헝겊을 매단 ‘기'(렘50:2), ‘기호'(사11:2)를 뜻하는 말이다. 구약 성경에서 이 단어는 대개 어떤 공동의 행위를 위해서 또는 중요한 정보의 전달을 위해서 사람들에게 알리고 모이게 하는 ‘표식'을 의미하고 있다(사13:2; 18:3; 31:9; 렘4:21; 겔27:7).
    • 특별히 ‘네쓰'는 여호와를 부르는 명칭 가운데 ‘여호와는 나의 깃발(군기)’ 이라는 뜻이 있는, ‘여호와 ‘닛시'(출17:15)와 관련이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장대'로 번역된 ‘네쓰'는 단순한 장대를 의미한다고 생각하기보다는 특별히 표식을 통하여 중요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세운 기로 보아야 한다.
    • 그 표식은 바로 불뱀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놋뱀,
    • 그 정보는 ‘그것을 보면 살리라'는 것이다.
    • 그런 의미에서 장대 위에 단 놋뱀은 하나의 ‘공개적인 전시'요 ‘승리의 표지' 였다. 즉 치명적인 독을 가진 불뱀을 놋뱀의 형상으로 처형한 하나의 승리적인 전시였던 것이다. 이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사건을 예표한다. 즉 십자가의 사건은 한 귀퉁이에서 소수의 사람들만이 알 수 있게 행해진 것이 아닌, 사망의 권세를 이기사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고 구원자가 되셨다는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를 널리 선포하시기 위해 광명한 데서 행하여진 대승리의 사건이었던 것이다.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가게 하소서" 라고 기도하였다(7절).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방법을 사용하시지 않으셨다. 하지만 우리 인간의 방법은 아니지만 가장 효과적인 구원의 방법을 사용하셨다. 이처럼 사람들은 그들의 불평 때문에 죽지는 않았지마는 그것 때문에 괴로움을 당하게 하여 주셨으며, 그 때문에 더욱 철저하게 회개하고, 겸손하게 되도록 만들어 주셨다. 이것은 모세의 손을 거쳐 하나님의 치유를 받게 함으로, 다시는 하나님과 모세에 대해 원망을 토하지 못하도록 가르쳐 주시기 위한 방법이었다고 보인다.

이 치료법 역시 하나의 기적적인 방법이었다. 그리고 불뱀에 물린 자가 광택이 빛나는 놋을 보면 그 상처가 더 심해진다는 어느 박물학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더욱 놀라운 일이다. 유대인 자신들도 말하기를, 그들을 고친 것은 그 빛나는 놋뱀을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쳐다보는 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며, 바로 그것이 그들을 치료하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복음서에서 보면 이러한 방법을 택한 것은 그만한 까닭이 있었다. 우리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요 3:14, 15).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나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 이니라."

 

👀 그것을 ‘바라볼 때', ‘살리라’

  • ‘살리라' : ‘살다, 희생하다' ⇒
    • ‘**생명의 보존'**을 기본적 개념으로 지님녀서도
    • **‘생명의 회복'**이란 보다 적극적인 개념을 동시에 내포하는 단어가 쓰여 불뱀에 물려 고통하는 자들을 ‘치유하시는 하나님'(출15:26)의 은혜를 보여 주는 것.
    •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주실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함.
    • 그를 통한 하나님을 표현한 것.

이와 같은 하나님의 구원 방법에 담긴 의미는 무엇인가?

목숨이 경각에 달린 자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덧입어 살아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놋뱀에 달린 장대’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 이것은 ‘놋뱀' 자체에 어떤 신통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절대 순종하는 법을 가르치시기 위한 것으로서,

오직 순종하는 믿음으로만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받게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21:9 모세가 놋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아 놓으니, 뱀에 물린 자마다 놋 뱀을 쳐다보면 살았다.

  • 쳐다보다 = 바라보다, 살펴보다, 감찰하다, 앙망하다 등으로 번역되는 단어. ⇒ ‘여호와께만 눈을 고정시키고 유일한 도움이신 여호와의 뜻에 따라 살아가다’ (시34:5; 사51:1; 22:22)
  • 본문 역시 온전한 믿음과 신앙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 실제로 놋뱀을 달아 놓은 장대를 바라보면 살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말씀을 따라 그것을 바라보는 자는 불뱀에게 물린 상처와 모든 증상이 말끔히 낫게 되었다.

‘쳐다보는 행위' —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

  • ‘나바트'라는 단어의 의미대로 그들의 ‘쳐다보는' 행위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이었으며 이것을 통해 구원의 기쁨을 맛볼 수 있게 된 것이었다(요3: 16). 즉 본문은 불평불만에 가득왔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왔고 또한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였을 때에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진노를 거두시고 백성들과의 관계를 회복하셨음을 보여 주는 것으로
  • 이는 오늘날의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봄으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지속될 수 있음을 알게 헤 준다(골 2:14, 15). 

이제 우리는 그때 그 사람의 경우와 우리의 경우의 유사점을 찾아보자.

  1. 그들의 질병과 우리의 질병의 유사점을 찾아보자. 마귀는 옛 뱀이요 불뱀이다. 그러므로 "한 큰 붉은 용" 으로 나타난다(계 12:3). 죄란 불뱀에 물리는 것이다. 그것은 예리한 양심에게는 고통을 주고, 마비된 양심에게는 독기를 뿜어 준다. 사탄의 유혹을 화전이라고 하였다(엡 6:16). 욕망과 정욕이 우리의 몸에 작용할 때 우리의 영혼을 불태운다. 전능자에 대한 두려움도 마찬가지다.

마지막으로 "죄는 뱀과 같이 물며, 독사와 같이 쏜다." 그리고 죄에 한번 물리면, 독사에 물린 상처처럼 부풀어오른다.

  1. 그들의 치료와 우리의 치료와의 유사점을 알아보자.

(1) 하나님 자신이 불뱀에 물린데 대한 해독 방법을 고안하시고 설명하여 주셨다. 이처럼 그리스도를 통한 우리의 구원도 "무한하신 지혜자" 의 뜻에서 나온 것이다. 하나님 자신이 구속의 원리를 발견하셨다.

(2) 그것은 조금도 치료법으로는 가당치 않은 것이었다. 이처림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의한 우리의 구원도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헬라인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었다." 따라서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몽학 선생이다. 모세도 그리스도께 대하여 기록한 바가 있다(요 5:46). 그리스도는 모세의 후계자들인 유대인들의 관습에 의해 들려졌다.

(3) 그 치료법은 상처를 준 그 방법과 같은 모양을 하였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는 비록 그 자신은 죄와 아무런 상관이 없으신 분이시지마는,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냄을 받았다(롬 8:3). 이와 같이 "그는 죄인이란" 말들 들었다(요 9:24).

(4) 놋뱀이 들려졌으며.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도 들려졌다.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 들려졌다(요 12:33, 34). 그것은 온 세상이 볼 수 있게 하기 위한 때문이었다. 그는 복음서의 설교에 의해 들려졌다. 여기서 "장대" 라고 씌어진 말은 "기치" 또는 "기호" 를 의미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는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라" 고 하였다(사 11:10). 어떤 사람은 뱀을 든 것이 곧 옛 뱀인 사탄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서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승리하실 때(골 2:15), 그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셨던 것이다.

  1. 그들이 받은 치료의 효과와 우리가 받는 치료의 효과의 유사점을 알아보자. 그들은 그것을 바라보고 살았다. 그리고 우리도 믿기만 하면 멸망하지 않는다. 우리는 믿음의 주를 바라본다(히 12:2).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사 45:22). 우리는 우리의 상처와 또 그 상처에서 보는 위험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에 관해 전해 주신 기록을 믿고,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의 지시에 따라서 우리의 몸을 맡기면,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고침을 받고, 구원을 받는다는 약속을 믿어야 한다.

놋뱀을 아무리 달아 놓아도 그것을 쳐다보지 않으면 고침을 받지 못한다. 아무리 자신의 상처를 돌보았어도, 놋뱀을 쳐다보지 않은 자들은 필연 죽고 말았다. 이 치료의 방법을 우습게 여기고 약물을 의지한 자들은 멸망 받았다. 이와 같이 죄인들이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경멸하거나, 은혜에 대해 실망하면 그 상처로 말미암아 그들은 죽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이 치료의 표적을 바라본 자들은 비록 그 진영의 제일 외곽지대에서, 눈물에 젖어 약해진 눈으로 바라본 것이라도 이 때문에 그들은 확실히 고침을 받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믿음이 약해도 결코 멸망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는 연약한 형제들을 "위해서 죽으셨다."

아마 놋뱀의 장대가 설치된 후에도 얼마동안 이스라엘 진영은 불뱀 때문에 괴로움을 당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그들이 남은 여행길에도 항상 이 놋뱀을 앞세우고 행진하였으며, 그들이 진을 치는 곳에는 어디서든지 설치하였으며, 그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했을 때는 그 놋뱀을 그 땅의 한 모퉁이에 세워 놓았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왜냐하면 열왕기하 18장 4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때까지 놋뱀을 향해 분향을 했는데, 그 놋뱀에 분향하기 위해 그처럼 멀리 광야로 나갔을 것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죄의 삯인 영원한 죽음에서 구원받은 자라도, 그들이 이 땅에 사는 날 동안은 그 때문 에 오는 고통과 괴로움을 당할 줄로 여겨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면 우리는 놋뱀을 가지고 다닐 수 있으며, 예수의 죽으심을 항상 우리의 몸에 짊어지고, 모든 경우에 그것을 쳐다볼 수 있다.

 

-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매일 아침마다 정리해주는 찬미자매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