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민수기 4, 시편 38, 아가서 2, 히브리서 2
묵상구절
33:50 여호와께서 여리고 건너편 요단가에 있는 모압 평지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33:51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일러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거든,
33:52 그 땅의 주민들을 너희 앞에서 모두 쫓아내고 그들이 깎아 만든 우상들을 모두 없애며, 그들이 부어 만든 우상들을 모두 없애라. 그들의 산당들도 다 허물어라.
33:53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하고 거기에 정착하여라. 내가 그 땅을 너희 소유로 주었으니,
33:54 너희가 가족별로 그 땅을 제비 뽑아 나누되, 사람이 많으면 유업을 많이 주고 사람이 적으면 유업을 적게 주어라. 제비가 뽑히는 대로 그의 것이 될 것이다. 너희가 너희 조상의 지파에 따라 나누어 가져라.
33:55 만일 너희가 너희 앞에서 그 땅의 주민들을 쫓아내지 않으면, 너희가 남겨 둔 자들이 너희 눈에 가시가 되고, 너희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가 정착할 그 땅에서 너희를 괴롭힐 것이다.
33:56 또 내가 그들에게 하려고 생각했던 것을 너희에게 그대로 할 것이다."
매튜헨리/옥스퍼드
👀 이스라엘의 40년 간의 광야 여정을 기록하고 었는 지난 단락(1-49절)에 어어 본문에서부터 36:13까지는 본서의 최종 결론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가나안 정복 명령과 기업 분배와 관련된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그 개시 부분으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반드시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던 이전에 그곳에 거하고 있던 가나안 원주민들을 완전히 쫓아내고 그들이 새긴 석상과 만든 우상을 부수고 산당을 훼파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증 한 가나안 족속의 문화와 관습에 물들어 타락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명령은 하나님의 백성이 가져야 할 거룩함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분리됨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에 속한 자들의 문화와 관습으로부터 분리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오히려 거룩한 하나님의 문화와 관습으로 세상을 정복하고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에 대해 취해야 할 태도임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본문은 오늘날 세상이라는 타락한 삶의 현장 가운데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가야만 하는 성도들이 세상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지에 관한 중요한 근거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가나안 거민에 대한 경계령(민수기 33:50-56)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에 있을 동안에는 그들이 다른 모든 백성에게서 완전히 분리되어 있던 덕분으로 우상 숭배로 이끌려들 유혹의 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이것이 그들을 오랫동안 광야에 감금해 둔 한 가지 의도였을 것이다. 즉 그렇게 함으로써 애굽의 우상을 잊을 수 있게 하려 했고. 그 백성이 그 우상에 감염되지 않고 깨끗해질 수 있도록 하여, 가나안에 들어온 세대는 결코 그 사탄의 깊은 일을 관계하지 않는 자들이 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이 요단을 지나게 되자 그들은 다시 그러한 시험에 빠졌다. 그러므로
- 그들에게는 여기에서 우상의 모든 잔재물을 완전히 멸하라는 엄격한 명령이 내려지고 있다.
👀 본문은 이스라엘의 진이 모압 평지에 이르고 나서 바로 곧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광야에서의 최후 진을 친 곳인 모압 평지에 이르자마자 말씀하셨다는 것은 본문 이하의 명령, 즉 우상 타파와(51, 52절) 땅 분배 방법(53, 54절) 등이 얼마나 중요한 명령이었는지를 알게 한다.
또한 이 명령이 가나안 입성을 눈앞에 둔 시점에 주어졌다는 사실은 이스라엘의 주의를 기울이게 한다.
→ 즉 하나님께서는 본문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가나안의 정복보다 하나님 자신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 더 우선되어야 하는 사실을 가르치셨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땅에 들어가서 해야 할 하나님의 명령을 듣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족속으로부터 가나안 땅을 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임을 보여 주신 것이다. 왜냐하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이스라엘의 최종적인 목적이 아니라 그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사는 것이 최종적인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땅에 있는 우상을 먼저 몰아내고 그 땅을 이스라엘 백성이 공정하게 분배하여야 했던 것이다.
👀 51절, ‘너희가' ... 건너, 들어가거든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책임, 즉각적 순종의 요구
- 직역하면 ‘너희가 건널 때' — ‘~할 때, 바로 그때'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 가자마자 바로 그때부터 하나님의 명령을 실행하여야 함을 강조한다.
- 뿐만 아니라 본문에는 ‘너희'를 가리키는 인칭 대명사를 독립적으로 사용하여 이 명령을 행할 자들이 바로 지금 모압 평지에서 모세의 말을 듣고 있는 출애굽 제 2세대임을 강조하고 있다. 실로 그들에게는 요단강을 건너가 가나안을 쳐서 정복할 축복이 주어짐과 동시에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으로서 그 명령을 성실히 수행하여야 할 책임도 주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그 땅 거민을 몰아내어" 그들이 그 나라를 점유할 수 있게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우상의 그림과 형상들을 모두 말살하고 "산당을 모두 훼파" 해야 했다(52절).
그들은 그 어느 하나도 남겨 두어서는 안 되었다. 아니, 호기심을 충족 시키기 위한 고대의 유물로서 또는 그들의 집의 장식물로서 또는 그들의 아이들이 갖고 놀 장난감으로도 남겨 놓아서는 안 되었다. 그들은 그들이 우상을 혐오하고 증오하는 표시로서, 그리고 석상과 그것이 상징하는 그 거짓 신을 섬기고 싶은 유혹을 받거나 그러한 상이나 상징물로써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숭배하고 싶은 유혹을 받는 것을 막 기 위해서, 모든 것들을 빠짐없이 제거해야 했다.
👀 가나안 거민 가운데는 어린 아이나 부녀자들도 있을 터인데 가나안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을 다 쫓아내라는 명령은 비인도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당신의 백성들에 대해 철저한 성별을 요구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는 지금의 현실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씀이다. 신앙인들은 세상과 분리되지 않고 세상 속에서 살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상과 구별되지 못하고 세상의 것들을 무분별하게 수용하거나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들을 받아들이며 살아서는 안된다. 주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것은 단 한 가지라도 배척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수용할 때 그 한 가지가 바로 우리를 무너뜨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주어진 명령, 요구된 순서는
- ‘그 땅의 거민을 몰아낸 뒤에’(53절에서도 ‘취하여'라고 반복됨)
- 이 땅의 ‘우상을 파멸하고’
- 파멸(’아바드') = 생물을 목적어로 취할 경우는 ‘죽이다' 라는 뜻을 가지며 무생물일 경우에는 ‘파멸시키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본문에서는 ‘파멸하다' 라는 뜻으로 번역되었으나, 이는 우상을 부수고 무너뜨리라는 뜻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생명체를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거짓된 신앙의 뿌리가 완전히 잘려져서 다시는 살아나지 못하도록 하라는 의미이다.
- 원어 성경에는 ‘석상을 파멸하라’ 라고 명한 뒤에 다시 ‘부어 만든 우상들'도 멸하라고 이중적으로 명령한 것으로 나와 있다. 이처럼 대상 하나하나에 대해 같은 뜻을 갖는 ‘아바드' 동사의 변형을 사용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거짓되게 하는 모든 것들을 완전히 멸하라는 명령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 한글 개역 성경이 ‘다' 라고 한번만 번역한 ‘콜’ 역시 ‘그 새긴 석상'과 ‘부어 만든 우상'에 두 번 반복하여 사용되었다. 이와 같은 중복된 표현은 이를테면 가나안 땅에 100개의 석상과 우상이 있다면 그 100개 전부를 다 파멸시킬 때에만 주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게 되는 것임을 보여 준다.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갖고 있는 우리 역시 거짓되고 헛된 우상들에 대해 절대 용납하지 않는 단호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 결국 주님이 바라시는 진실한 믿음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을 섬기는 것이다(출 20:3,4).
-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서 우상들을 없애되 석상만 파괴시켜도 안되고 우상만을 파괴시켜도 안되는 반드시 그 모든 것을 하나도 빠짐 없어 파멸시켜야 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은 가나안인들의 우상 숭배에 대해 어떤 배려나 용납도 허용해선 안된다고 하는 명령이다.
- ‘산당을 훼파하는' 일
- 산당 = 가나안 족속들의 ‘산당'은 우상숭배의 장소, 아세라와 다른 남성신들의 형상을 만들어 놓고 제사드렸던 곳. 즉 이곳에서는 가나안의 우상들에 대한 ‘분향', ‘희생제사', ‘제의적 성행위' 등이 행해졌다.
- 본문의 의미가 단지 산당이라는 건물을 허무는 일 뿐만 아니라 산당을 섬기는 자들까지도 완전히 파멸시켜 거짓 신앙이 또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 52절 본문에서는 ‘~를 다' 에 해당하는 단어가 4번이나 반복되어 사용되었다. 이는 이스라엘이 얼마나 철저하게 가나안 땅에서 불신앙적인 요소들을 몰아내야 하는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 이들은 3가지를 행한 후에 그리고 난 뒤에 비로소 ‘그 땅을 취하여' 기업을 삼을 수 있었던 것.
2. 그들은 만일 그들이 그렇게 한다면 하나님은 점차로 그들로 하여금 그 약속의 땅을 완전히 소유하게 해 주시리라는 단언을 받았다(53, 54절).
만일 그들이 스스로를 가나안의 우상으로부터 정결케 지킨다면,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나안의 재물을 풍성히 주실 것이었다. 그들의 길을 배우지 말라. 그리고 그들의 능력을 두려워 말라.
👀 33:53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하고 거기에 정착하여라. 내가 그 땅을 너희 소유로 주었으니,
-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취하여 거할 수 있는 것은 그 힘이 자신들에게 있기 때문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그 땅을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 그런데 이스라엘의 산업은 그들이 믿음으로 스스로 빼앗아야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 본문에 나온 ‘너희 소유(산업)’라는 말은 유산이나 유업으로 후손에게 물려준다는 뜻을 가지지 않는 다만 ‘현재의 소유'만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 앞서 52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땅을 취하여 거하기 위하여 먼저 행하여야 할 일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A. 차지하고
B. 50~56절의 초점은 ‘그 땅'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막연히 그 무엇을 주겠다고 하신 것이 아니라 정관사 ‘하’ 를 사용한 ‘하아레츠’ 란 표현을 짧은 문단 안에서 무려 6번이나 사용하여 이스라엘 에게 주어질 땅이 과거 족장들과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둘에게 거듭 약속하신 바로 그 땅, 즉 가나안 땅임을 명확히 구체적으로 밝히고 게신 것이다. 그렇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은 애매모호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느끼고 누릴 수 있는 구체적이고 명료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인생에게 주시는 가장 궁극적 축복인 천국도 우리의 영육에 현실로서 주어지는 구체적 축복이다.
C. 정착하여라
👀 제비뽑기
- ‘제비'의 재료가 무엇이었는지 또는 ‘제비뽑기' 가 어떻게 이뤄졌는지도 명확하지가 않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한 방법으로 고대 이스라엘 민족이 가장 많이 사용하였던 방법이 ‘제비뽑기' 였음은 분명하다. ‘제비뽑기'틀 통해 의사 결정을 한 중요한 경우 중에 하나가 바로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가나안 땅 분배였다. 실제로 요단 동편에 거할 것을 요청한 르우벤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를 제외한 나머지 지파들은 모두 제비뽑기를 통헤 요단 서편에 자기 지파가 거할 땅을 분배받았다(14:1-5).
왜 이같이 가나안 땅의 분배를 제비로 정할 것을 하나님이 명하셨는가?
- 서로 좋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분쟁이 일어나는 일을 막기 위해서였다.
한편 가나안 땅을 분배하는 방법으로서의 제비뽑기는 염병 후에 실시된 제 2차 군대 계수 때에 이미 제시되었었다(26:55, 56).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 이하에서 다시 제비를 뽑아 기업을 나누라고 명령하는 이유는 가나안 땅에 대한 지파별 분배 방식이 그만큼 중요한 사안이었기 때문이었다.
기업(’나할라')을(54절)
- 53절의 ‘너희 산업' (야라쉬)와 유사한 뜻을 가진 단어. 그러나 이 두 단어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 ‘야라쉬' = 소유한 재산의 현재성을 강조.
- 바로 앞절에서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으로부터 가나안 땅을 완전히 소유할 것이라고 할 때 사용된 동사는 후손에게 줄 유업이란 뜻을 포함하고 있는 ‘나할라'가 아니라 현재 상태의 소유권을 강조하는 ‘야라쉬' 였다. 곧 정복할 땅으로서 가나안 땅 전체를 가리킬 때는 ‘야라쉬'가 사용되었다. 이는 가나안 땅이 출애굽 2세대들에 의해 정복되어야 할 땅이란 사실을 강조적으로 보여 주어 그들의 책임감을 고취시키는 표현이다.
- ‘나할라' = 재산의 상속성에 중점.
- 반면 본절에서 ‘나할라'가 사용된 것은 이스라엘이 점렴한 가나안의 모든 땅들은 각각의 지파둘이 제비뽑기를 통해 분배받아 자손 대대로 물려주고 상속되어야 할 소유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다.
- 제비뽑기가 후에 이루어진 것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어느 땅이 자신의 분깃이 될지 알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가나안 정복 전쟁에 최선을 다하게 하였으며, 오직 제비뽑기라는 방법을 통해 얻은 땅만이 자손 대대로 물려줄 기업이라는 인식을 갖게 함으로써 어느 특정한 지역의 땅을 탐내어 소유하려는 욕심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게 하였던 것이다. 어처럼 원어를 통해 볼 때 성경 단어의 사용이 상당히 치밀하고 철저하게 그 상황에 지극히 적절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 ‘야라쉬' = 소유한 재산의 현재성을 강조.
- 그들은 만일 그들이 그 우상이나 우상 숭배자들을 남겨 둔다면, 그들의 채찍에 맞게 될 것이며, 남겨둔 죄는 반드시 처벌되리라 는 경고를 받았다.
👀 52절과의 차이점 : ‘만일'이란 조건이 붙어있음.
- 하나님께서는 순종의 경우인 52절과 불순종의 경우인 본문의 대구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선택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간접 명령문과 조건문의 차이를 통해 순종의 경우를 더 강조하셨다.
- ‘만일 ~ 하지 않는다면' :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일종의 맹세로서의 성격을 갖는 표현. 비록 ‘만약'의 경우이지만 순종하지 않을 경우 형벌을 내리시겠다는 하나님의 다짐이 이러한 표현 가운데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즉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는 지금까지 말씀하신 모든 것을 이루시겠지만, 만일 그렇지 않을 때는 징계하신다는 측복과 저주의 양면성을 포함하고 있는 엄중한 다짐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순종의 결단을 촉구하는 문장인 것이다.
(1) 그들은 자기의 가슴에 뱀을 품으려 했다(55절).
가나안 사람들의 남은 자들은 만일 그들이 그 남은 자들과 동맹하여 휴전이 성립된다하더라도. "그들의 눈에 가시와 그들의 옆구리에 찌르는 것" 이 될 것이었다.
👀 1. 눈에 가시
- 눈은 몸의 기관 중에서 고통에 대해 가장 예민한 부분이다. 따라서 본문의 가시는 비록 식물에 돋아 있는 작은 ‘가시(thorn)’이지만 그것이 눈 안에 들어간다면 굉장히 큰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 옆구리에 찌르는 것
- 불순종시에 받게 될 옆구리를 찌르느 고통이 매우 심각하다는 사실을 청각적 묘사로 인상 깊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에 가나안 족속을 완전히 멸하여 그들이 선민으로서의 거룩함을 유지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불순종할 때 가나안 족속둘이 그들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할 것인지를 ‘눈에 가시가 된다'는 시각적 어미지 (image)와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괴롭게 한다'는 발음상의 청각적 이미지 (image)를 사용하여 효과적으로 표현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비록 하나님의 말씀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생각하기에 사소한 문제는 곡 순종하지 않아도 되거나 어느 정도까지만 순종해도 하나님께서는 나의 마음을 보시니까 괜찮다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생각들은 본문의 교훈을 통해서 볼 때 하나님의 인도함을 무시하는 행위가 되며 작은 가시가 우리의 눈에 참을 수 없는 큰 괴로움을 주는 것처럼, 그 작은 불순종이 우리에게 큰 고통을 주는 원인이 된다는 사실과 더불어 하나님 말씀에는 완전한 순종만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실을 무시하고 가나안 백성들을 남겨 두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후일 본문에 나오는 예언대로 큰 고통을 당하게 된다.
즉 그 남은 자들은 그들을 모욕하고 그들을 노략하면서 그리고 온갖 힘을 다하여 그들 중에 악을 행하면서, 매사에 그들을 괴롭힐 것이었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우리가 죄악되게 탐닉하고 있는 것으로부터는 환난과 고통이 있을 것을 예상해야 한다. 우리가 기꺼이 하고자 하는 일이 우리를 유혹하게 되고, 마침내는 우리를 괴롭히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2) 의로우신 하나님은 가나안 사람들을 박멸하기로 되었던, 그 바퀴를 이스라엘 사람들 쪽으로 굴러가게 하려 하셨다.
"나는 그들에게 행하기로 생각한 것을 너희에게 행하리라" (56절).
그 바퀴는 가나안 사람들을 쫓아 내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과 어울리고 그들의 길을 배운다면, 저들이 오히려 쫓겨날 것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노는 가나안 사람들에 대한 것보다 그들에 대한 것이 당연히 더 컸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을 듣고 두려워 하자. 즉 우리가 죄를 몰아 내지 않는다면 죄가 우리를 몰아 낼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욕정을 죽이지 않는다면 우리의 욕정이 우리의 영혼을 죽일 것이다.
👀 하나님은 가나안에 대하여 내리실 징벌을 이미 가지고 계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불순종은 하나님이 이방인에 대해 계획하셨던 형벌을 그들 스스로가 취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때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이 받게 되는 징계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인나 가나안인이라는 혈통의 구별이 없이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신앙을 가지지 않은 모든 자들은 공의로운 하나님의 정벌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 준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52,53절) 어기고 가나안 백성들을 남겨둠으로 인해 결국 자신들도 우상을 섬기게 되고(왕하6:1-4)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행위를 반복하여(삿 6 :1; 10:6) 결국 이방인이 받아야 할 형벌을 받고 말았다. 즉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추방 당했고 앗수르와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이방 땅으로 끌려가고 말았던 것이다(대하36:16-21).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매일 아침마다 정리해주는 찬미자매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