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민수기 28, 시편 72, 이사야 19, 20, 베드로후서 1
묵상구절
5:23 "산이 불에 타며 캄캄한 가운데서 너희가 그 소리를 듣고서, 너희 지파의 모든 우두머리들과 장로들이 내게 나아와서
5:24 이렇게 말하였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광과 위엄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고, 우리가 불 가운데서 들려오는 그분의 음성을 들었으며 하나님께서 사람과 말씀하셨으나 그 사람이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을 우리가 오늘 보았습니다.
5:25 이 거대한 불이 우리를 삼키려 하고 있으니 우리가 지금 왜 죽어야 합니까? 우리가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음성을 다시 듣는다면 우리는 죽을 것입니다.
5:26 어떤 육체를 가진 자가 불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우리 처럼 살아 있는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5:27 당신께서 가까이 나아가서 여호와 우리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말씀을 듣고, 여호와 우리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하시는 모든 말씀을 우리에게 전달해 주십시오. 그리하면 우리가 듣고 그대로 하겠습니다.'
5:28 너희가 내게 말할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 백성이 네게 말하는 그 소리를 들었으니, 그들이 말하는 것이 모두 옳다.
5:29 그들이 항상 그러한 마음을 품고 나를 두려워하며 나의 모든 명령들을 지켜 그들과 그들의 자손이 영원히 잘되기를 바란다.
5:30 너는 가서 그들에게 그들의 장막으로 돌아가라고 말하고,
5:31 너는 여기 내 곁에 서 있어라. 그리고 내가 네게 전해 주는 모든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그들에게 가르쳐, 내가 그들에게 유업으로 차지하라고 준 그 땅에서 그들이 그것들을 지켜야 한다.'
5:32 그러므로 너희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지켜 행하고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 벗어나지 마라.
5:33 너희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모든 길을 따라가라. 그러면 너희가 살 것이고 너희가 잘될 것이며 너희가 얻은 그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 것이다."
매튜헨리/옥스퍼드
●이스라엘의 탄원과 하나님의 허락(신명기 5:23-33)
Ⅰ. 모세는 자기의 중개에 의하여 양편이 모두 이 계약에 동의를 표했음을 상기시켰다.
- 여기에는 율법이 주어질 때 일어난 극히 무서운 광경으로 말미암아 그 백성들이 당한 경악이 나타나 있다. 그들은 이상 더 견디어 낼 수 없다고 고백했다. 즉 "이 큰 불이 우리를 소멸하리라. 이 무서운 음성이 우리를 죽게 할 것이다. 우리가 그 소리를 다시 들으면 확실히 죽게 될 것이다" (25절).
그들은 자기들이 이미 그것으로 인하여 죽지 아니한 것을 이상히 여겼고, 그들이 소리를 들었을 뿐 아니라 그것을 듣고도 살아 남을 수 있었다는 것을 신적인 능력과 선하심에 대한 하나의 특별한 실례라고 생각했다. "우리같이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생존한 자가 누구이니까?"
💡 24절, ‘하나님이 사람과 말씀하시되 그 사람이 생존하는 것을,,
- 이러한 표현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전능하심이 인간의 죄성과 연약성과 대조를 이름을 보여 주는 것.
- 그 사람이 생존하는 것을 ⇒ (직역하면) ‘그리고 그가 살아났다’다음 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이 여호와의 옴성을 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죽을 것이라고 말한 사실을 통해 볼 때, 모세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말씀을 들었으나 계속 살아 있는 것에 대하여 백성들은 매우 큰 놀라움을 느꼈던 것이다.
- 이러한 표현에 담긴 뉘앙스는 ‘그 아담' 즉, ‘모세’가 죄를 지니고 있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면하여 직접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살아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오늘날 우리가 보았나이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을 수 있었고(출20:22), 모세가 하나님과 직접 이야기하는 광경까지 체험함으로 하나님을 새롭게 알게 되었음으로 고백하였던 것.
25절, ‘이제와 우리가 죽을 까닭이 무엇이니이까’
- 직접 말씀으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이 너무나 큰 두려움 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이러한 과거의 경험을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은 그들의 간절한 헌재의 심정을 나타냈다.
***‘이제 와서 (다시 그 목소리를 듣는다면 그 불이 우리를 삼키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왜 우리가 (다시 그 목소리를 듣고서) 죽어야 합니까?***
-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하나님과 대면하고서도 죽지 않는 모습을 목격하고서 그가 자신들과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24,26절). 그래서 자신들은 모세와 달리 하나님의 음성을 다시 들으면 죽을 사람이니 모세가 듣고 와서 자신들에게 전해 주면 모세의 말을 하나님 말씀으로 듣고 그대로 따르겠다고 말한 것.
아담의 타락 이후 줄곧 하나님의 나타나심은 언제나 사람에게는 두려운 것이 되었다. 그러나 죄를 소멸하신 그리스도는 은혜의 보좌로 담대히 나아오라고 우리를 초대하신다.
- 차후로 모세를 통하여 자기들에게 하나님이 말씀해 주시라는 그들의 간절한 요구와 모세가 말하는 것을 하나님이 친히 말씀으로 여기고 그대로 행하겠다는 약속을 했다(27절).
이것은 다음과 같이 생각된다.
(1)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그 이상의 계명들을 받기를 기대하였고, 좀 더 그의 말씀을 듣고 싶어했다.
(2) 그들은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의 표출을 견디어 낼 수 있으나 자기들은 죄 때문에 앞에 설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모세는 하늘의 가호를 받는 사람으로 믿었고 그들에게도 역시 신실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다른 때는 그에 대하여 불평하였고, 얼마 전만 해도 그에게 돌을 던지려고 했던 것이다(출 17:4). 어떻게 인간들의 뉘우침이 자기들의 감정을 바로 잡는지 보라.
(3) 지금은 그들이 들은 말씀의 강한 확신이 있어서 선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저들의 양심을 정화시키지 못하는 그 율법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양심을 놀라게 한다. 즉 율법은 그들의 양심에 아름다운 약속을 밀어 넣어 주지만, 그들의 양심 속에 선한 도의 원리를 심어 주지는 못했던 것이다.
💡 백성들의 두려움이 불신앙에서 비롯된 감정은 아닌가?
- 이스라엘 백성들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감정이 아니었다. 이는 본절에서 이스라엘의 대표자들이 ‘우리 하나님'이란 신앙적인 표현을 두 번이나 반복하여 사용하였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또한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항상 이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복 받기를 원하노라' (29절)***라고 말씀하심으로 그들의 두려움이 하나님을 향한 참된 경외였음을 확인해 주셨다.
- 본절 마지막에는 ‘우리가 듣고 행하겠나이다' 라는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순종을 다짐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백이 따라 나온다.
- 이와 같이 하나님에 대한 참된 경외심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서기률 두려워하게 한다.다행히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겐 영원한 중보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모세라는 중보자를 주셨던 것처럼 (24절; 출 25:2) 우리에게도 먼저 찾아오셔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으며 동시에 우리 자신의 죄인됨을 깨닫게 하셨다. 자기가 죄인이란 사실을 깨닫게 된 자는 필연적으로 중보자이신 그리스도를 붙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중보자 되신 그리스도를 붙들 때만이 우리는 참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요 12:45).
- 따라서 우리 성도는 유일한 중보자 되신 그러스도를 굳게 붙들어야 하며 오직 그분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달라고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
- 우리가 죄인인 자신의 모습을 인정한다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중보자가 필요하다**.
- 그들의 요구에 대한 하나님의 찬동.
(1) 하나님은 그들이 말한 것을 인정하셨다(28절).
실상은 그들이 모세에게 말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아셨다. 왜냐하면 우리 입에 들어 있는 모든 말을 하나님이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들이 말한 것이 옳다" 고 하셨다. 그들과 하나님 사이를 연결해 줄 중계자의 필요를 그들이 고백한 것은 잘 말한 것이었다.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그 이상의 지시를 받고 싶어 한 것과, 모세를 통하여 그들에게 주어지는 지시가 무엇이든지 준수하겠다고 하는 약속은 잘 한 것이다. 그러므로 선한 말을 들을 때에는 찬사를 돌리자.
💡 모세의 중보자적인 역할은 사람들의 요청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 가운데 이미 결정된 사실이었다(출 20:18-21).
본문에서 확인되는 또 하나의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모세라는 중보자 없이도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시는 하나님이란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모세라는 중보자를 세우시고 그를 통해 백성들과 의사 소통을 하신 것은 당신이 능력이 없으셔서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사랑의 배려였던 것(출19:23,24).
(2) 하나님은 그들이 늘 그러한 태도로써 성실하기를 원하셨다. "옳다! 그들이 항상 이같은 마음을 품기를 바라노라" (29절).
[1] 그들이 가졌던 그러한 마음,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
그분의 계명을 영원히 지키려는 마음이다.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을 불쌍한 죄인들이 평강과 구원을 받게되기를 진심으로, 또 간절히 갈망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당신이 그러한 분임을 나타내는 풍부한 증거를 보여 주셨다. 그는 우리에게 회개할 시간과 장소를 주시고, 당신의 자비로운 우리를 회개의 길로 초대하시며, 하나님의 총애를 받아들이기를 기다리신다. 그는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 아들을 보내셨고, 용서와 생명을 주시기로 공포하셨으며, 당신께 기도하는 자들에게는 성령을 주시기로 약속하셨으며, 그는 죄인의 멸망을 기뻐하시지 않는다고 말씀하셨고 또 맹세하셨다.
👀 이 같은 마음 =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가기를 두려워하여 중보자를 구하는 마음(24-27절), 즉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
[2] 그들이 지금 가졌거나, 그들이 가졌다고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그러한 마음이다.
그들이 죄의 확실한 판결 아래 있을 때나 혹은 목전에서 죽음을 보게 될 때에 때때로 가지는 그러한 심정이 그들 마음 속에 항상 있다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 오! 그들이 항상 이같은 마음을 품기를!
👀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
-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명령을 잘 지키면 그 결과는 본문의 내용과 같이 그와 그 자손이 복받게 된다.
- ‘복 받기를 원하노라' 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막연한 바람이 아니라, 바로 전능하시며 역사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의 바람이기 때문에 영원한 복주심의 약속을 확인해 주는 말이다.
- **여호와를 경외하여 직접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두려워하여 중보자를 구한 백성들은 이로 인해 여호와를 기쁘게 하였고, 하나님께서는 또한 자신을 경외하여 기쁘게 한 자들을 다시 기쁘게(잘되게 하여) 하겠다고 하셨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 사이에는 순종과 축복이라는 순환적 고리가 성립되게 되었다.** 이는 사사기에서 백성들이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이방 백성들을 사용하여 치시며 그들이 용서를 구할 때 사사를 등장시켜 그들을 용서하시는 불순종과 징벌이라는 순환적 고려와 대조된다(삿3:12-15; 4:1-5). 본문을 통해 볼 때 축복의 약속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의 명령을 지키는 자들에게만 보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막무가내로 우리가 원하는 것을 구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려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그러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
(3) 하나님은 모세를 지명하여 그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자가 되게 하시고 당신의 입에서 나오는 율법을 받아 그것을 그들에게 전하게 하신다(31절).
👀 30절, 장막으로 돌아가라
-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의 거처로 돌아가게 하라는 본문의 내용 자체가 하나님과 자신들 사이에 중보자를 세워 자신들이 직접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그 중보자를 통해 듣게 헤 달라는(25-27절)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가 하나님에 의하여 응답되었음을 알 수 있다.
- 원래는 대제사장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 및 이스라엘 장로 70인,이 모세와 함께 시내산 중턱에까지 올라갔었으나, 하나님의 이 명령을 듣고는 이제 모두 장막으로 돌아가고 모세만 중보자로서 그 종자 여호수아와 함께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갔다(출 24:1-14; 32:15,16).
31절, 너는 여기 내 곁에 섰으라
- 이 명령은 단순히 서 있으라는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계명을 듣고 그대로 백성들에게 다시 전하는 중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 백성들만 돌려보내고 그곳에 남으라는 의미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 명령을 통해서 모세를 당신의 중보자로 확고하게 정식으로 임명하신 것이다.
- ‘내 곁에’ : ‘임마디'라는 표현을 통하여 하나님과 모세의 관계가 마치 가까운 친구의 관계처럼 느껴진다(출 33:11).이와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가장 가까이서 먼저 알 수 있는 특권을 누리는 자로 모세를 세우셨다는 사실이 이 표현을 통하여 잘 나타나고 있다.
-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을 시키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기는 비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모세를 대하시지 않고 언약의 동반자이며 하나님의 대화의 상대로서 대하여 주셨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차후로 우리와 같은 일반 사람들을 통하여 즉 모세와 선지자들을 통하여 또 사도와 복음 전도자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셔야 한다고 하는 양편의 동의에 의하여 이 문제는 일단락 지어졌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이것들을 받지 아니하고 비록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말씀하시든지 하늘과 지옥에서부터 전달을 보낸다 할지라도, 그 문제는 이 양편의 찬동에 의하여 해결된다.
Ⅱ. 여기에서 모세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명령하신 모든 것을 이행하고 실행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추론해 냈다(32,33절).
하나님이 자신을 그들에게 그렇게 부드럽게 보여 주셨고 그들의 형식으로 기꺼이 생각하게 하시고 그들이 갈망하는 대로 그들을 만족시키는 것을 볼 때 그들 자신들이 지금 그들을 가르치고 있는 모세를 그들의 선생으로 삼기를 욕망한 것을 볼 때 -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나 엄숙하게 약속하고 그렇게나 많은 선한 원인들과 사려의 영향 아래서 약속한 것을 볼 때 그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그들에게 대단히 큰 유익이었음을 확실하여, "하나님이 그들에게 명하신 모든 길을 따라가도록" 그가 그들에게 부탁한 것을 그들은 듣고 행했을 것이다.
👀 이스라엘 백성들에겐 율법을 행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것을 행하는 자신의 모습을 살펴야 하는 책임이 주어져 있다.
또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
⇒ 여기에서 ‘좌,우'는 치우치지 않는 균형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된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치관과 반대되는 세상의 가치관이 지배하는 길을 상징하는 말이다. 이는 하나님의 율법을 버리고 다른 가치를 향하여 삶의 방향을 돌이키지 말라는 의미이다.
33절의 ‘너희에게 명하신 모든 도’
⇒ 여기에서 ‘모든 도'는 직역하면 ‘명령하신 모든 길 안에서 너는 걸어가라' ⇒ 이는 앞절에서 나온 ‘좌로나 우로 향해 있는 길(32절)’, 즉 세상의 길로 가는 행위와 정반대인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잠4:27).
이처럼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일을 사람이 길을 걸어가는 모습으로 비유한 것은
: 율법에 순종하는 참모습이 결코 그 개념을 추상적으로만 많이 깨달은 상태를 가리키지 않고 실제적인 삶에서 변화가 나타나는 경우를 가리킨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런데 한글 개역 성경은 이런 성경의 의도를 무시하고 도를 행한다는 추상적 개념으로 번역했다.
마7:13,14 예수님의 가르침은 본절의 의미를 잘 반영하고 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행복하게 되는 유일한 길은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의인들에게는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말하라."
👀 33절, ‘너희가 삶을 얻고 복을 얻어서’
- 본문을 번역하면 ‘너희가 살고 너희에게 일이 잘될 것이다.’
- 이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길을 걸어감으로써 얻어지는 생명과 그 생명 길에서 얻어지는 삶의 형통함을 말한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가 복을 얻는다는 본절의 교훈은 본장에서 계시된 십계명을 포괄하여 모든 율법의 결론이라고 볼 수 있다(28:1,2).
-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사실은 불순종한 자에게 주어지는 형벌이다(28:20 이하).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매일 아침마다 정리해주는 찬미자매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