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민수기36, 시편80, 이사야28, 요한2서1
묵상구절
10:1 "그때에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너는 처음 것과 같은 돌판 둘을 다듬어 그 산으로 내게 올라와라. 그리고 너를 위해 나무 궤도 만들어라.
10:2 네가 깨뜨린 처음 돌 판에 있었던 말을 내가 다시 그 판에 쓰겠으니, 너는 그것을 그 궤에 넣어라.'
10:3 그래서 내가 아카시아 나무로 궤를 만들고, 처음 것과 같이 두 돌판을 다듬어, 그것을 손에 들고 그 산으로 올라갔다.
10:4 총회로 모이는 날에 그 산 위 불 가운데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십계명을 처음 것과 같은 돌판에 쓰셔서 여호와께서 내게 주셨다.
10:5 내가 돌아서서 산에서 내려와 그 돌판을 내가 만든 궤 안에 넣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그 돌판이 거기에 있다.
10:6 (이스라엘 자손이 브에롯 브네야아간을 떠나 모세라에 이르렀다. 거기에서 아론이 죽어 그를 그곳에 장사하였고, 그의 아들 엘르아살이 그의 뒤를 이어서 제사장직을 수행하였다.
10:7 그들이 그곳을 떠나 굿고다에 이르렀고, 다시 굿고다를 떠나 여러 개울이 있는 땅인 욧바다에 이르렀다.
10:8 그때에 여호와께서 레위 지파를 구별하여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게 하시고, 여호와 앞에 서서 그분을 섬기며, 오늘날까지 그분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하셨다.
10:9 그러므로 레위 사람에게는 그들의 형제들과 더불어 나눌 몫이나 유업이 없다. 다만 여호와 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대로 여호와께서 친히 그들의 유업이시다.)
10:10 내가 처음과 같이 밤낮 사십 일 동안 산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때에도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들으시고 너를 멸하지 않고,
10:11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일어나 그 백성들 앞서 나아가거라. 내가 그들에게 주겠다고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한 그 땅을 그들이 들어가서 차지할 것이다.' 라고 하셨다.
10:12 이스라엘아, 지금 여호와 네 하나님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여호와 네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의 모든 길을 따르고 그분을 사랑하며 네 마음과 네 몸을 다하여 여호와 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냐?
10:13 또한 네가 행복하게 되도록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것이 아니냐?
10:14 하늘과 하늘 위의 하늘,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여호와 네 하나님의 것이지만
10:15 여호와께서는 오직 네 조상에게만 마음을 두고 그들을 사랑하셨으며, 모든 백성들 가운데 그들의 후손인 너희를 선택하셨으니 오늘과 같다.
10:16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받고 다시는 너희 목을 곧게 하지 마라.
10:17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서는 신들의 신이시며 주들의 주이시니, 그분은 크고 능력이 많고 두려운 하나님이시며,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거나 뇌물을 받는 분이 아니시고,
10:18 고아와 과부에게 공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셔서 그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는 분이시다.
10:19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여라.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나그네였기 때문이다.
10:20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을 섬기며 그분을 가까이하고 그분의 이름으로 맹세하여라.
10:21 그분은 너의 찬양이며 너의 하나님이시다. 네 눈으로 본 대로 그분은 너를 위해 이 크고 두려운 일들을 하신 하나님이시니,
10:22 너의 조상이 칠십 명으로 이집트에 내려갔으나 지금은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서 너를 하늘의 별과 같이 많게 하셨다."
매튜헨리/옥스퍼드
●끊임없는 하나님의 자비(신명기 10:1-11)
👀 본문은 모세의 고벌 설교 제 2부 전반부 (4:44-11:32) 가운데 가나안 땅에서의 하나님께 대한 선민의 기본 자세를 언급하고 있는 제 6-11장 가운데서도 부정적인 경고의 측면에서 언급하고 있는 8 :11-10:11의 종 결 부분.
이러한 본문에서는 출애굽 시대 광야에서 발생한 기타 범죄 사건들과 모세의 중보 기도를 회고하는 지난 단락 (9:22-29) 에 이어 모세의 중보 기도가 가져 온 결과에 대해 회고함.
- 즉 본문에서 모세는 두번째 십계명 돌판의 전수 및 이스라엘 종교 체제의 정비 등을 회고함으로써,
- ⇒ 이스라엘의 범죄로 인하여 폐기되었던 하 나님의 언약이 자신의 중보 기도로 말미암아 다시 회복되어 지금까지 이르렀음을 상기시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의 거듭된 반역과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총과 자비를 잊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계명에 기꺼이 순종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본문을 보면 시간적 순서가 무시된 채 과거의 사건이 희상되고 었습니다.
- 먼저 모세가 언약궤를 만들라는 지시를 받은 것은 첫번째 돌판을 받을 때이고 또 모세가 십계명 돌판을 언약궤에 넣은 것은 성막이 완성된 출애굽 제 2년 1월 1일 이후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이 사건이 모세가 두번째 십계명 돌판을 받을 때 동시에 이루어진 것 처럼 시간적 순서가 무시된 채 회고되고 있는 것입니다.
- ⇒ 이는 모세가 십계명 돌판을 언약궤 속에 보관하였다는 사실만을 강조하기 위해 전후 사정을 생략한 까닭입니다.
다음으로 엘르아살의 대제사장직 승계와 레위 지파의 구별도 시간적 순서가 무시된 채 회고되고 있습니다.
- 즉 엘르아살의 대제사장직 승계는 출애굽 제 40년 5월 1일에 있었던 사건이며 레위인의 구별은 출애굽 제 2년 1월에 있었던 사건이나 그 일이 시간차를 뛰어넘어 한 사건인 것처럼 회고되고 있는 것 입니다.
- ⇒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패역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선민으로서 살기에 적합한 체제를 주셨음을 상기시켜 언약을 변함없이 성취해 가시는 하나님의 신실함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증거하고 그로 인헤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화해하시고 그들을 참으로 위대하고 행복케 하시며, 당신을 더욱 뛰어나게 하시기 위해 오히려 그들의 악함을 이용하여 하나님의 선하심을 이루시는 네 가지 내용이 나타나 있다.
Ⅰ. 하나님은 그들에게 기록된 율법을 주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겠다는 확고한 서약이었다. 이스라엘이 계명을 파괴했고 또 하나님께서 공정히 그 언약을 폐기하셨기 때문에, 처음에 기록된 돌판은 깨어졌다. 그러나 그의 노여움이 끝나고 새로운 돌판이 주어졌다(1, 2절).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에 당신의 율법을 두시고 우리의 내부에 그 율법을 기록하심은 하나님과 우리의 화해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거요, 그분 안에 우리의 행복이 있다는 최선의 보증을 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 재차 십계명 돌판을 수여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계시가 바로 앞장 에 나오는 모세의 중보 기도(9:25-29)에 뒤이어 곧바로 주어졌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악에 대하여 반드시 진노하시지만(9:19-21)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모세외 간절한 중보 기도와 같은(9:25-29),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는 진정한 기도에는 속히 응답하시는 자비로우신 분이시다.
십계명의 내용은 변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기본 적인 율법이므로 다시 한번 주어진다고 하여도 더 추가되는 것이 아니라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속성처럼 언제나 동일하다.
돌판을 깎은 자는 모세라고 한다. 즉 율법을 위해서는 뉘우치는 마음과 하나님의 은총을 바라는 겸허한 마음을 준비해야 된다. 오직 그때에 그 안에 기록되는 은총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모세는 "싯딤나무로 궤" 를 만들었다(3절). 그것은 소박한 상자였고 내가 생각하기로는 그 후에 줄곧 그 돌판을 보존했던 바로 그 궤인 것 같다. 그러나 브사렐이 그 궤를 만들었다는 말이 있다(출 37:1). 왜냐하면 나중에 브사렐이 그 궤를 만들기를 끝냈고 그 위에 금박을 입혔기 때문이다. 혹은 모세가 만들었다는 말도 있다. 왜냐하면 그가 산으로 두 번째 올라 갔을 때 자기가 내려 올 것을 대비하여 브사렐에게 그것을 만들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명령 중의 첫 번째 명령은 궤를 만드는 일이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출 25:10). 이것은 그들이 두 번째로 돌판을 받을 때는 첫 번째와 같이 실패해서는 안 된다는 증거를 주었다.
하나님은 당신의 율법과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궤와 같은 마음이 준비된 자들에게 주실 것이다. 그리스도는 첫 번째 아담이 실패한 것과 같이 실패되지 않게 되기 위하여 우리의 구원을 안전하게 보존해 줄 상자이다.
다음의 사실을 관찰하자.
1. 하나님이 두 돌판에 쓰신 것은 십계명(4절) 혹은 열 마디의 말씀이었다.
이것은 그 작은 범위에 어떻게 그 내용이 모두 담겨졌는가를 말해 주고 있다. 그것들은 열 권의 책이 아니라, 열마디의 말이었다. 그것은 첫 번 기록과 같은 것이었고 산에서 그가 말씀하신 것과 같은 것이었다. 두 번째 판은 정정이나 수정이 필요 없었고, 그가 말씀하신 것과 그가 기록하신 것 사이에 다른 것이 없었다. 기록된 말씀은 그가 자기 종, 예언자들에게 말씀하신 말씀과 마찬가지로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2. 그것에 대하여 어떤 주의가 기울어졌는가?
이와 같이 새겨진 두 돌판은 신중하게 상자 안에 보관되었다. 그리고 모세는 아마 그것이 성소로 옮겨진 것을 가리키고 한 말이었겠지만 그는 말하기를 "그것들이 지금까지 있느니라" (5절)고 말했다. 모세는 자기에게 위탁된 이 복된 것을 그들에게 전수하였고, 그것이 그들의 손에서 순수히 보관되고 온전히 전해지게 했다. 이제 그들로 하여금 자기들의 목숨을 걸고 그것을 지키게 하였다. 우리는 이와같이 오는 세대에게 말할지 모른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과 안식일과 성례전 등등을 그의 임재하심과 은혜의 표로서 우리에게 맡기셨고, 지금 그것들이 여기 그대로 있으니, 우리는 우리에게 위탁된 이 아름다운 것을 지켜야 할 것이다" (딤후 1:13, 14).
Ⅱ. 그들의 마음이 애굽으로 향하고 있고, 하나님은 능히 그 미혹자들을 가려 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가나안으로 전진케 하셨다(6,7절).
그는 그들을 매마른 불모지 광야로부터 "물이 흐르는 강" 이 있는 땅으로 이끄셨다. 하나님은 때때로 일반적인 자연의 과정을 따라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셨다. 그러나 자연 과정이 그 일을 다하지 못할 때는 기적을 베풀어서 하셨다. 그러나 이런 일이 있은 후에도 그들은 자기들에게 조그마한 괴로움만 닥쳐도 하나님을 불신하고 불평했던 것을 본다(민 20:3, 4).
Ⅲ. 모세는 그들에게 거룩한 일을 계속하라고 지시했다. 모세가 두 번째로 산에 올라갔을 바로 그 때나 혹은 바로 그 후 레위족들은 금송아지 숭배자들에 대하여 열렬한 반대를 했기 때문에 그들은 구별하여 하나님 앞에 직접 섬기도록 명령을 했었다(8, 9절).
고핫 족속들은 제를 메었고 그들과 또 다른 레위족들은 성막의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여호와 앞에" 섰다. 그리고 레위족들 중 제사장들은 그 백성을 축복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거의 사십년 동안 계속했고 지금까지 계속되는 항구적 규례이다. 그래서 그 족속의 안정된 생계 유지를 통해 그 일을 영속화할 수 있도록 모든 물자가 조달되었고, 이러한 것이 레위족들의 직무 수행에 용기를 주었고 그 일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게 하였다.
"여호와가 그의 유업이다."
어떠한 확정된 직분이 있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위대한 축복이요, 하나님의 은혜의 구체적 표라는 것을 명심하자. 특정 제사장들의 죽음으로 인하여 그 직이 계속될 수 없게 되자, 하나님은 연속을 보존하기 위하여 그 백성에 대하여 당신의 배려를 나타내셨다. 그 사실을 모세가 여기서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6절). "아론이 죽었을 때," 그 제사장 제도도 그와 함께 죽은 것이 아니라, "그의 아들 엘르아살이 그 대신에 맡게 되었다." 그리고 돌판 즉 귀중한 돌이 안치되어 있고, 그것이 손상을 입지 않도록 간수할 상자를 돌보게 되었다. 그래서 그것이 아직까지 있고, 그가 그것을 돌보게 된 것이다.
율법 시대에는, 일정한 지파나 가문에게 그 직무를 상속해 줌으로 말미암아 그 제사직의 연속성이 보존되었다. 그러나 지금 복음의 시대에서는 성령의 임하심이 더욱 풍성해지고 힘있게 작용하여, 우리 마음에 역사하시어 그 일을 할 자격을 주시고 그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주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그 직책의 연속성이 보존된다. 그래서 언제나 이스라엘의 이름은 지워지지 않게끔 되는 것이다.
Ⅵ. 하나님은 모세를 그들의 대변자나 중재자로 받아들이셨다. 그러므로 그를 그들의 왕과 지도자로 세우신 것이다(10,11절).
👀 10절에서, 모세가 사십 일 간이나 산에 머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않았던 것은(출 34:28) 결코 경건을 함양하기 위한 자기 수도나 자기 의지의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자기 희생의 승고한 경배 행위였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섬기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흠향하시고 그의 바라는 바를 들어주셨다. 우리 성도 역시 하나님 앞에서의 유창한 기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믿음을 가지고(막 11:24) 말 뿐 아니라, 행동에 있어서도 전심전력을 다하는 전인격적인 기도 생활이 중요함을 깨달아야 한다(렘29:13)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멸하지 않기로 흔쾌히 동의해 주셨다. 싫은 일을 억지로 하신 것이 아니라 당신의 신실한 종이 드리는 사심없는 기도를 기쁘게 받으시고 선하게 응답하셨다.
"여호와께서 내 말을 들으사, 일어나서 백성 앞서 진행하라고 말씀하셨다."
자기를 임명해 준 그 분과 자기가 섬겨야 될 자들에게 그렇게나 충성스런 이러한 친구를 그들이 가졌다는 것은 하나의 자비였다. 하늘에 대한 그의 중재로 말미암아 파멸로부터 그들을 구원한 그가 그들의 지휘자와 명령자가 된다는 것은 합당한 일이다. 여기에서 그는 매양 우리를 위해 중보의 역할을 담당하시고 "하늘과 땅에서 모든 힘을 소유하신" 그리스도의 상징인 것이다.
- 스페셜포인트즉 이제 후반부에서 구체적 핵심 율법 조항들을 각 분야별로 망라 제시하기에 앞서 율법의 대강령인 십계명 및 율법에 대한 바른 자세를 먼저 제시하는 제 2부의 전반부인 4 :44-11:32절 부분의 마무리 부분.본문 등에서 거듭하여 우러 인생이 여호와와 그분의 율법에 순종해야만 할 당위론적 이유 내지 근거로 제시하는 내용은 결국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 첫째는 천상 천하에 유일한 신이시며 거룩하시고 자비로우신 초월적 유일신으로서의 그분의 존재와 절대 공의와 사랑이 넘치시는 그분의 품성 자체이다.
- 둘째는 여호와께서 태초부터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선택하시고 보존하시다가 특히 출애굽 구원 사건 등에서 보여지듯이, 이스라엘을 향하여 구체적이고도 현실적으로 특벌한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 오신 선민 이스라엘의 역사적 체험이다.
- 세번째는 여호와께 순종하는 것만이 민족 전체와 각 개인 모두의 차원에서 그분이 이미 풍성히 허락하신 축복을 현실화시키고 만끽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요 방법이라는 사실이다.
- 신명기의 별명은 “순종의 책 (the Book of Obedience)”. 이같은 별명은 이처럼 신명기가 곳곳에서 거듭하여 하나님께 대한 순종을 인생이 축복을 누릴 수 있는 절대 유일의 길이요 인생이 취할 수 있는 최상의 선택이요, 인간 본연의 마땅한 의무요 도리로 거듭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 실로 인생의 구원을 위한 예정과 선택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지만 그 하나님의 축복을 온전히 누리기 위한 순종과 불순종의 선택은 우러의 몫이요 책임이다.
- 이 네 단락은 공히 여호와 및 여호와의 율법에 대하여 순종해야만 할 당위론적 근거를 각각 여러 측면에서 다중적으로 반복 및 열거 제시함으로써 여호와 자신과 여호와께서 수여하신 율법에 대한 순종 촉구를 계속 반복, 강조하고 있다.
- 본 단락에서부터 시작하는 10:12-11:32절 사이의 네 문단은 제 1-30장 사이의 신명기 고별 설교 기사 중에서도 가장 긴 본론부인 4 :44-26:19절 사이의 제 2부 중 전반부 기사의 마무리 부분.
●복종에의 권고(신명기 10:12-22)
여기에는 복종을 위한 가장 열정적인 권고가 나타나 있다. 이 권고는 전제서 출발해 나간 추론의 형식으로, 그리고 매우 유력한 논증을 동반한 간청으로, 그리고 지극히 설득력 있는 수사법을 동원하고 있는 것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12절).
다윗이 "내가 무엇으로 보답할꼬?" (시 116:12)라고 했듯이,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자비를 받게 될 때, 우리는 우리가 무엇으로 거기에 보답해야 할까 하는 질문을 가져야 한다. 그가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숙고해 보라. 그러면 극히 당연하고 이치가 맞고, 너희에게 말할 수 없이 유익하고 이득이 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가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고 우리가 왜 그가 요구하시는 것을 행해야 하느냐 하는 충분한 이유가 무엇인가 살펴보기로 하자.
Ⅰ. 우리는 여기에서
- 하나님에 대한 의무와
- 이웃에 대한 의무, 그리고
- 우리 자신에 대한 우리 의무가 가장 명료하게 지적되어 있음을 본다.
- 여기서 우리는 우리 영혼의 성향과 애정에서, 그리고 우리의 삶의 원칙과 관례에서 오는 모든 행동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지킬 의무가 무엇인지를 가르치고 있다.
(1)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 안 된다(12,20절).
우리는 그의 엄위를 찬양하고 그의 권리를 인정하며 그의 능력에 경외함을 가지며 그의 진노를 두려워해야 한다. 이것이 복음이 명하는 의무이기도 하다(계 14:6, 7).
💡 12절, ‘경외함’ — 두려워 함.
-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참된 두려움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하나님을 올바로 알지 못하는 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잘못 가지기가 일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이 잘될 때에는 자기에게 영광을 돌리고, 일이 잘못될 때에는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일이 더 꼬이면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된다.
- 그러나 본문이 말하는 두려움은 이처럼
불행한 상황의 막판에 가서 가지게 되는 무서움이 아니라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그분이 사람이 아니라 절대자이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마땅히 지녀야 하는 참 두려움이라고 할 수 있다. - 사 8:12b,13은 이에 대해 잘 설명해 주고 있다.
- “그들의 두려워하는 것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로 너희의 두려워하며 놀랄 자를 삼으라".
(2) 우리는 그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그의 계심을 기뻐하고 그가 우리 편이 되시기를 바라며 그 분을 생각함으로 기뻐하고 그 분과 사귐으로 희열을 가지는 것이다. 그를 위대하신 하나님과 우리의 주님으로 경외하고 그를 선하신 하나님이요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보호자가 되시는 분으로서 사랑하라.
💡 사랑하다(12절, ‘아바흐’)
- 일차적으로 ‘사랑하다’는 의미를 지니나, ‘즐기다 기뻐하다 사모하다’로도 번역되는 단어다.
- 따라서 본문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열렬한 사랑의 감정을 가질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되는 모든 일들을 즐기고 기뻐하는 전인격적인 감정과 행동을 나타낼 것을 원하시고 계심을 보여 준다
(3) 우리는 그 분의 길, 즉 그가 우리에게 행해가라고 명하신 그 길로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의 모든 사회 생활이 그 분의 거룩한 뜻에 조화되어야 한다.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길이 무엇인지를 이미 율법을 통해서 가르쳐 주셨다. 하나님의 두번째 요구는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길, 즉 하나님의 율법을 벗어나지 않고 그 길 안에서 부지런히 걸어가라는 것이다.
(4) 우리는 그 분을 섬겨야 하고(20절) 그 분을 우리의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섬겨야 하며(12절), 우리 자신을 그에게 영광 돌리는 일에 바쳐야 하고, 우리 자신을 그 분의 통치 아래 두어야 하며, 우리 자신을 사람들 가운데 거하는 그의 나라의 모든 유익을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처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분을 섬기는 일에 마음이 뜨겁고 열심이 있어야 하며 우리의 내면적 인간을 그 분의 일에 종사시켜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위해 행하는 것은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5) 우리는 "그의 계명과 규례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13절).
우리가 그 분을 섬기는 일에 몸바치려고 하면 우리는 모든 일에서 그 분이 계시한 뜻을 우리의 규칙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고 그 분이 명하는 모든 것을 이행하고 그 분이 금하는 모든 것을 금하며 그 분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규례는 우리의 행복을 이룬다는 것을 확고히 믿지 않으면 안 된다.
복종이 우리의 말할 수 없는 이득이 될뿐 아니라, 참된 영예와 기쁨이라는 보상이 따라 온다. 온유하고 겸손한 것, 순결하고 진지한 것, 공의롭고 자비스러운 것, 인내심이 있고 만족할 줄 아는 성품을 갖는 것은 참으로 우리의 현재의 행복이다. 이러한 덕들은 우리를 평안하고 안전하게 하며, 기쁨이 넘치게 하고 참으로 위대하게 해준다.
(6) 우리는 "그의 이름" 으로 맹세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20절). 그리하여 그의 무소부재하심은 물론이요, 그의 전지하심과 주권과 정의에도 영광을 돌려야 한다.
"그의 이름으로 맹세하고" 다른 어떤 피조물으로나 거짓 신으로는 아무리 확실한 서약이 요구될 때라도 맹세하지 말라.
(7) 우리는 그 분에게 친근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20절).
우리가 그를 하나님으로 택했다면, 우리는 성실히 그리고 부단히 그와 함께 살고 그를 버려서는 안 된다. 우리가 사랑하고 기뻐하고 믿고 확신하는 분으로서, 그리고 우리가 큰 기대를 걸고 있는 분으로서 그에게 친근하라.
💡 ‘친근히 하고’ — 이 동사는 결혼한 남자와 여자 사이의 한 몸을 이루는 연합의 관계를 나타낼 때도 쓰였다(창2:24). 또한 욥19:20에서는 살이 뼈에 붙어 있는 것을 묘사할 때 쓰였다. 따라서 하나님을 친근히 한다는 것은 완전히 밀착되어 떨어질 수 있는 간으성을 이체 배제하며, 만약 떨어질 경우 그것은 곧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2. 우리는 여기서 우리 이웃에 대한 의무가 어떤 것인가를 배우게 된다(19절).
"나그네를 사랑하라." 나그네를 사랑해야 한다면, 형제들은 더욱 사랑해야 할 것이다. 만일 이러한 특수한 백성, 즉 모든 민족들과 분리되어 있는 이스라엘이 나그네들에게 친절해야 된다면, 하물며 이러한 한계로 구별되어있지 아니한 우리야 어떠하랴! 우리는 인간의 본성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따뜻한 관심을 가져야 하고, "기회있는 대로" (즉 그들의 필요성과 능력에 따라서)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의무를 강화하기 위해 여기 강조되어 있는 두 가지 논증이 있다.
(1) 하나는 하나님의 공통 섭리이다.
그것은 모든 민족에게 미치는 것이고 모든 인간은 "한 혈통으로 되어 있다." 하나님은 "나그네를 사랑하신다" (18절).
즉 하나님은 모든 인류에게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들을 주시며, 이스라엘 나라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이방인이 되고 "나그네" 된 자들에게까지도 주신다.
우리가 그들에게 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자들도 하나님은 완전히 아신다. 하나님은 당신께서 당신의 말씀과 규례를 보여 주지 아니한 사람들에게까지도 "음식과 의복" 을 주신다. 인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보편적인 선물은 우리로 하여금 모든 사람을 존경하게 한다. 혹은 본문의 표현은 고난 중에 있는 나그네를 하나님은 돌보신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에 대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시 146:9; "주는 객을 보호하시며"), 그를 닮고 그를 섬기며 그와 함께 하여 우리 자신들로 하여금 나그네를 도우시는 그의 친절한 손에 잡혀있는 도구가 되게 해야 한다.
(2) 다른 하나는 그들 자신이 애굽에서 나그네 되었을 때 고통스런 사정에 처했었다는 사실이다.
💡 이스라엘은 과거 나그네의 신분으로 애굽에 거했으며,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 아니었으면 헌재에도 이방 민족의 압박 가운데 설움을 당하며 그 상태 그대로 있을 수 밖에 없었던 자들이었다. 19절을 통해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이런 사실을 회상케 하며 지금 이스라엘 가운데 있는 나그네들에게 멸시와 설움 대신 사랑을 베풀 것을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 자신들이 고통 중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의 자비를 발견한 자들은 그와 같은 고통에 처한 자들을 또한 동정해야 하고, 그들에게 친절을 보여 줄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나그네에게 친절하라고 그들에게 반복해서 계명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 백성들은 이방인들에게 대한 뿌리 깊은 반감을 그대로 품고 있었고, 그들은 이방인들을 지독하게 멸시했다. 그리하여 이방인들로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러워하게 되었고, 그것이 유대 백성들 자신들에게는 치명적인 파멸을 초래했던 것이다.
3. 우리는 여기에서 우리 자신에 대한 의무에 대해서 배우게 된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의 할례를 행하라" (16절).
즉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부패한 정열과 성품을 내어 버려라. 그 정욕과 함께 육체를 죽이라. 너희는 너희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오는 자유로운 길을 방해하는 모든 불결한 것과 무익한 것을 내어버려라. 육체의 할례에 의지할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만 징표에 불과하다. 오직 마음에 할례를 행하라.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롬 2:29 참조).
💡 육체에 행하는 할례
- 하나님께서 열조를 당신의 백성으로 택하신 것과 그들과 언약을 세우신 것에 대한 표징으로서 주신 것이다(창17:9-12). 그러므로 본문에서 다시 요구되는 마음의 할례는 바로 그러한 하나님의 택하심과 언약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표징이었다.
육체의 할례가 아닌 마음의 할례를 행해야 한다는 것
- 특히 언약 안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인격적인 관계에 대한 표징을 가져야 함을 상징하는 것이다(렘 4:4).
- 렘4:4 유다 사람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여호와를 위해 할례를 행하고 너희 마음의 가죽을 제거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행한 악으로 말미암아 나의 분노가 불같이 일어나서 너희를 태울 것이니, 그것을 끌 자가 없을 것이다.
- 즉 육체의 할례는 행하였으나 할례가 의미하는 바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마음의 할례를 행하지 않으면 이는 외식하는 자의 전형인 손할례당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빌 3:2,3).
이로 보건대 하나님의 자녀된 이스라엘의 신분은 겉모습이라는 형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성심으로 섬기며 인격적인 관계 안에서 그분만을 신뢰하며 그 뜻을 순종하는 마음 중심에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스도의 명령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우리는 쉽게 빼먹을지도 모르는 마음의 할례 뿐만 아니라 우리를 죄짓게 하는 오른 손을 자르고 오른 눈까지도 뽑아야 한다. 보다 영적인 시대에는 우리 자신도 보다 영적인 존재가 되어야 하며 죄를 죽이는 일에도 더욱 적극적이어야 한다.
그들이 지금까지는 그러했지만 더 이상 목이 곧아서는 안 된다(9:24). "더 이상 하나님의 계명과 가르치심에 완고하게 고집부리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응하라." 마음의 할례는 하나님께 복종케 하고 그의 멍에를 메게 한다.
Ⅱ. 우리는 여기서 우리의 의무에 대하여 가장 절실하게 권고받고 있다. 이성이 우리를 다스리게 하라. 그리하면 신앙도 우리를 다스리게 될 것이다.
1.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영광을 숙고하라.
그러면 그를 두려워 하고 그 원칙에서 그를 섬기고 그에게 복종하게 될 것이다. 사람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으로 생각되는 것은 명예와 권세와 재물 외에 무엇이 있는가? 그렇다면, 여호와 하나님은 얼마나 위대한가 생각해 보라. 그는 두려운 만큼 위대하신 분이시다.
(1) 그는 큰 명예도 가지고 있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은 "신의 신이시며 주의 주시다" (17절).
당시에는 행정관들이나 천사들을 신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방인들은 그들 자신의 상상의 피조물인 "많은 신들" 과 "많은 주들" 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모든 유명무실한 신들보다 무한히 높이 계신다. 그들이 충성을 맹세한 하나님이 신의 신이시라면, 그들이 다른 신들을 예배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2) 그는 큰 권세를 가지고 계신다.
"그는 1)크고, 2)능하시며, 3)두려운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신다" (17절).
그는 정복자의 권세를 가지고 계시다. 그러므로 그에게 반항하고 반역하는 자들에게는 무서운 분이시다.
그는 심판자의 권세를 가지고 계시다. 그러므로 그에게 호소하고 그 앞에 나오는 모든 자들에게는 정의로우시다. 사람이나 뇌물에 구애됨이 없이 그의 공의대로 심판하는 심판의 위대함과 명예가 원수에게는 그만큼 더 무서운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이 양면을 가지고 계시다.
💡 하나님에 대한 참된 두려움은 하나님께서 나타내시는 영광으로 인해 생기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 어떤 물질도 필요로 하지 않는 절대자이실 뿐 아니라 불공평을 싫어하신다. 공의의 신이시며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절대 공의에 입각해 모든 것을 공평하게 판단하신다.
(3) 그는 큰 재물을 가지신 분이다. 하늘과 땅은 그의 것이고(14절), 모든 천체와 별들도 그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의 사업에 우리를 쓰실 수 있고, 우리가 그의 일을 하다가 당하는 손실을 메워주실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우리 자신이나 우리가 가진 소유물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도 필요로 하시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 분 없이는 불완전하지만, 그는 우리 없이도 행복하시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과 우리의 봉사를 받아 주시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은총의 하사이다. 하늘과 땅은 그의 소유다. 그러나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다" (신 32:9).
💡 하나님께서는 단순한 하늘이 아니라 하늘 중에 하늘이 하나님께 속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가장 미약한 이스라엘을 택하셨다.
2. 하나님의 선하심과 은총을 생각하라. 그러면 그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원칙에서 그를 섬기고 그에게 복종하게 될 것이다. 그의 위대하심은 물론이요 그의 자비하심도 그의 영광이시다.
(1) 그는 모든 사람에게 선(자비)하시다.
모든 불행한 자에게 자비하신 분으로 나타나실 것이다.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시며(18절) 의지할 데 없는 자들을 도우시고 구원이 가장 필요한 자들, 그리고 사람들이 해치기 쉽고 또는 적어도 멸시하기 쉬운 자들을 구원하시는 것이 그의 영광이다(시 68:4, 5; 146:7, 9 참조).
(2) 그러나 하나님은 참으로 이스라엘에게는 특별히 선하시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에 대하여 특별한 의무를 지고 있다. 그는 네 찬송이시요 네 하나님이시라(21절). 그러므로 그와 너희와의 그 관계로 인하여 그를 사랑하라. 그는 너희 하나님이시요 너희와 언약한 하나님이시며 그와 같이 너희 찬송이시다."
[1] "즉, 그는 너희에게 영예를 주신다. 그는 언제나 너희가 그를 알고 너희가 그에게 알려지는 것을 자랑으로 여길 수 있는 하나님이다. 만일 그가 너희의 하나님이라면 그는 너희의 영광이다."
[2] "그는 너희로 인하여 영광을 받기를 기대하신다. 그는 네 찬송이다. 즉 그는 너희가 찬송해야 할 하나님이다. 만일 그가 너희로부터 찬양을 받지 못한다면 어디에서 기대할 것인가?" "그는 이스라엘의 찬양을 받으신다." 이런 문제를 생각해 보자.
- 첫째, 그가 이스라엘을 택한 영광스러운 선택(15절).
- "그는 네 열조를 기뻐하여, → 그 후손을 택하셨다." 그들에게는 그의 은총에 보답할 만한 어떠한 공로라든가 그들을 칭송할 만한 공로는 없으며 오직 하나님 보시기에 그렇게 보일 뿐이었다. 그는 그들이 필요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친절하셨다.
- 둘째로, 그가 이스라엘을 위해 그 행하신 위대한 일들(21,22절).
- 💡 하나님의 택하심이 하나의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매우 실제적인 사실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하심으로 애굽에서 나와 40여 년 간의 광야 생활을 거쳐 지금 이 시간에 모압 광야에서 모세의 설교를 듣고 있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택의 결과라고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모세는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와 역사를 현실 가운데서 발견할 수 있는 신령한 안목을 가졌던 것이다.
- 이스라엘 공동체에 속한 각 개개인이 이를 목도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모든 일들이 인간이 상상조차 하지 못한 초자연적인 놀라운 일임과 동시에 적성을 갖고 있는 인간에게 하나님의 거룩함이 투영된 사건들이므로 너무나 두려운 일이었음을 잘 보여준다.
- 여기서 ‘행하셨다’ 는 단순히 같이 있다는 소극적 의미 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도움이 되어 주셨다는 적극적 의미를 가진다. 그러므로 본문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함께하시면서 그들의 곁에서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들을 행하여 주셨다’는 의미를 지녔다.
- 실로 성도가 이 험악한 세상에서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만군의 여호와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된 성도와 늘 같이 계시며 강하신 팔로써 도와 주시기 때문이다.
- 이스라엘이 목도한 바 크고 두려운 일들
- 그는 그들이 들은 것과 그들의 열조가 말한 것을 상기시킬 뿐만 아니라, 그들이 자기들의 눈으로 본 것과 그들이 그 자녀들에게 말해야 하는 것, 특히 불과 몇 세대만에 칠십명이 "그 수가 하늘의 별과 같이" 큰 민족으로 증가된 사실(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는 불과 70명 정도 뿐이었다.)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들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들로부터 기대되는 하나님의 찬양과 봉사도 더 커지는 법이다. 그러나 옛 세계(홍수 전)에서 흔히 보는 바와 같이 그들이 숫적으로 증가되기 시작했을 때 그들 자신들은 부패해지고 말았다.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매일 아침마다 정리해주는 찬미자매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