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 성경읽기
신명기 23, 시편 112, 113, 이사야 50, 요한계시록 20
묵상구절
21: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차지하게 하신 땅에서 피살된 시체가 들에 엎드러진 것을 발견하고 그 쳐죽인 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거든
21:2 너희의 장로들과 재판장들은 나가서 그 피살된 곳의 사방에 있는 성읍의 원근을 잴 것이요
21:3 그 피살된 곳에서 제일 가까운 성읍의 장로들이 그 성읍에서 아직 부리지 아니하고 멍에를 메지 아니한 암송아지를 취하여
21:4 그 성읍의 장로들이 물이 항상 흐르고 갈지도 않고 씨를 뿌린 일도 없는 골짜기로 그 송아지를 끌고 가서 그 골짜기에서 그 송아지의 목을 꺾을 것이요
21:5 레위 자손 제사장들도 그리로 갈지니 그들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사 자기를 섬기게 하시며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하신 자라 모든 소송과 모든 투쟁이 그들의 말대로 판결될 것이니라
21:6 그 피살된 곳에서 제일 가까운 성읍의 모든 장로들은 그 골짜기에서 목을 꺾은 암송아지 위에 손을 씻으며
21:7 말하기를 우리의 손이 이 피를 흘리지 아니하였고 우리의 눈이 이것을 보지도 못하였나이다
21:8 여호와여 주께서 속량하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사하시고 무죄한 피를 주의 백성 이스라엘 중에 머물러 두지 마옵소서 하면 그 피 흘린 죄가 사함을 받으리니
21:9 너는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여 무죄한 자의 피 흘린 죄를 너희 중에서 제할지니라
매튜 헨리 / 옥스퍼드
본 단락에서부터 시작하는 21:1-26:15 사이의 총 11문단은 이같은 일상 생활과 관련된 삼대분야별로 기본 율법 조항을 제시하고 있는 제 12-26장 사이의 각 분야별 기본 율법 조항 중 마지막 세번째 분야로서 일반 사회 생활과 관련된 핵심 율법 조항들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는 각 개인 및 선민 사회 전체의 일상적, 일반적 사회 생활 전반과 관련된 하나님의 은혜와 공의와 질서의 원리를 극명하게 반영하는 상호 독립된 규정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이들은 제각각 중대한 의의를 가진 율법 조항들이 특별한 순서나 상호 관계없이 병렬식으로 제시되고 있다. 또한 여기 제시된 율법 조항들만이 선민 이스라엘의 일반 사회 생활에 있어서 중요하다기 보다는 그 기본 사례로서 제시된 것이다.
● 숨겨진 죄악도 버리라(신명기 21:1-9)
극악한 살인자를 엄격하고 효과적으로 처벌하는 법이 앞에서(19:11 이하) 언급 되었다. 그러한 극악한 죄를 지은 자들은 잡아 죽임으로써 이 땅에서 피의 죄책을 제거하라는 것이었다. 만일 살인한 자가 발견되지 않아 이렇게 처벌할 수 없을 때에는 살인자의 처벌이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아니했으므로, 그 땅은 아무런 오염도 당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럴 때에는 중대한 의식을 베풀어 그 죄에 대한 두려움과 증오를 나타냄으로써, 그 죄에 대한 죄책을 제거해야 한다.
Ⅰ. 여기에는 "피살된 시체를 발견하고 그 쳐 죽인 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언급되어 있다(1절).
하나님의 섭리는 때로 놀랍게도 흑암 속에 숨겨진 일들을 밝혀 내셨으며 죄는 이상하게 그 정체를 드러내고야 말았다. 그리하여 "살인자는 반드시 밝혀지고야 만다" 는 속담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때로 마귀는 이들의 죄를 감춰가며 이 세상에서 처벌받지 않으리라는 약속을 그럴듯하게 이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잠시 동안일 뿐이다. 살인자의 비밀이 드디어 밝혀지리니, "땅이 그 위에 잦았던 피를 드러내리라" (사 26,21). 그리하여 정의가 보상되리라. 그리고 이 세상에서 처벌받지 아니한 자는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 아래 영원히 서게 될 그날이 오고 있다. 수많은 살인자와 사악한 자들이 이 세상에서 처벌되지 않더라도 이들에게는 "이미 지나간 것은 다시 찾게 되는" (전 3:15) 심판의 날이 올 것이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고의적 살인에 의해 부당한 피가 홀려지는 일은 땅이 더럽혀지는 일로 여겨졌고 이러한 피에 대한 책임은 어느 한개인이 아니고 공동체가 함께 져야 했다. 즉 범인이 밝혀지지 않는 살인 사건에 대하여는 공동체가 책임을 지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백성된 이스라엘 가운데 경건과 거룩이 절대 필요하였음을 보여 주고 있다.
Ⅱ. 이럴 때에 할 일에 관한 지시를 살펴 보자.
1. 살인자를 찾기 위해서 목격자의 말을 들어보고 그 일의 전후를 엄밀히 조사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하여 죄지은 자를 찾아 내기도 한다. 그러나 만일 어떠한 실마리도 잡을 수 없고 또한 누구를 문책할 수도 없을 때는,
(1) "가까운 성읍의 장로들이" 이 일에 관여하게 되어 있었다(성읍에는 23개의 법정이 있었다.) 만일 어느 성읍이 제일 가까운 성읍인지 의심스러울 경우엔 산헤드린 공의회가 사람들을 보내어 정확하게 원근을 재도록 했다(2,3절).
장로들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지대한 권위를 가지고 주도적인 역할을 한 자들이었던 반면 재판장은 장로들을 도와 재판의 실무나 기능적인 면을 감당한 자들이었다고 보여진다. 즉 재판장들도 장로들과 함께 재판에 있어서 재판권을 행사했지만, 함께 동일한 사건을 맡아서 일을 행할 때는 오히려 장로들을 돕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본절에서 피살자가 발견된 장소에서 가장 가까운 성읍의 거리를 파악하기 위해서 사건 현장에서 각 성읍 간의 거리를 재는 일을 할 때에는 재판장이 장로와 함께 등장하지만 그 일이 끝난 후인 제 3절에서는 장로들만이 등장하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재판장은 실질적인 조사에만 참여했으며, 그 후속 조치를 주도하는 자들은 장로들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백성을 대표하는 자는 백성의 이익을 추구하여야만 한다. 그리하여 성읍에서 권력과 명예를 지닌 자는 불평을 제거하도록 전념해야 하며 지방과 나라에서 잘못되어지고 있는 것들을 시정해야 한다. 그러기에 가장 가까운 성읍에 있는 사람들은, 선을 위해 일하는 하나님의 종과 마찬가지로 그 성읍의 복지에 아주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2)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도 이 엄숙한 일을 돕고 또 주재하여야 한다(5절).
레위 자손 제사장들이 나온 이유는 미결 살인 사건의 해결 역시 매우 중요할 뿐만 아니라 어려웠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편 레위 자손 제사장들은 지방 성읍의 장로들이 행하는 미결 살인 사건의 대속 의식을 대신 집행하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니라 그들이 행하는 의식에 종교적인 특성을 부여하며,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참관하기 위해 나온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공동체가 무고히 죽은 자의 죄의 부정함에서 벗어난 것을 최종적으로 선포하려는 목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이들은 율법에 따라 모든 일을 주관하며 백성들을 대신하여 무죄한 피를 주의 백성 안에 머물러 두지 마옵소서 하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8절).
이스라엘의 왕이신 하나님은 이들을 재판장으로 삼으사 모든 소송과 투쟁을 그들의 말대로 판결하도록 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러한 안내자와 감독자 그리고 통치자를 두어 모든 경우에 특히 앞에서 언급된 성스러운 일들에 대해 그들의 의무를 다할 수 있었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한 특전이었다.
(3) 이들은 암송아지를 험하고 경작하지 않는 골짜기로 끌고가서 죽였다(3, 4절).
이것은 제물이 아니었다(왜냐하면 그것은 제단에 바쳐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것은, 만일 그들이 살인자를 잡았을 때는 이렇게 하겠다는 엄숙한 선언이다. 그 암송아지는 멍에를 멘 일이 없는 송아지라야 했다. 어떤 자들은 이것은 그 살인자가 벨리알의 자손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 이 때 특별히 암송아지가 아니더라도 새끼를 낳지 않은 암소이면 모두 미결 살인 사건의 대속제물이 될 수 있다.
제물을 선발하는 기준은: 정결케 하는 물을 만들 때에도 이렇게 사람에 의해 강요되어 본 적이 없는 정결한 암송아지가 사용되었는데(민19:2) 이는 매우 의미있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공동체가 이러한 소를 드리는 것은 피살자는 사람의 강제적인 힘에 의해 죽임을 당한 반면 이 송아지는 강제되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의 의지와 무관한 것으로서, 그 피살자에게 행해진 강제력과 자기들이 무관하다는 상징적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역설적으로 사람에 의해 부려진 적이 없는 소가 살인자를 대신하여 죽임을 당했던 것이다.
여기서 죽임을 당한 소는 자신의 살인을 숨기고 있는 악한 살인자를 대신하여 죽음으로써 살인자로 인해 무죄하게 피살된 자의 피값을 담당하게 될 이스라엘 공동체 내에 그 피 흘린 죄가 머물러 있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후에 무죄하신 그리스도께서 죄인인 인간들을 위해서 죽으신 희생의 그림자가 되었다.
그리고 암송아지를 험한 계곡으로 끌고 왔다는 것은 그 사람의 흉악성을 의미하며 이 땅에 피를 흘리는 불경으로 해서 그 땅이 볼모로 화해버린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만일 이 후에도 살인자가 발견되지 않았다면 암송아지가 죽은 이 골짜기에는 씨를 뿌릴 수도 없었고 경작할 수도 없었다고 말한다.
‘물이 항상 흐르다’
=> 무죄한 희생을 상징하는 암소의 피를 영영히 흘려 보낸다는 의미를 강조.
‘갈거나 심지도 못하는 땅' 골짜기에서 암소를 잡은 이유
=> 살인자를 대신하여 죽임을 당하는 암소의 피가 사람들에게 노출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즉 다른 사람에 의해 부정한 피와 접촉이 일어날 가능성이 전혀 없도록 하려는 목적에서 사람의 출입이 없는 한적한 곳에서 대속의 의식이 행하여진 것이다. 이런 예식을 통해서 죽은 암소의 피가 물에 영영 떠내려 감으로써 피 흘린 자의 죄가 이스라엘 공동체에 머물러 있지 않게 된 것이다.
목을 꺾을 것이요
=> 출13:13과 34:20을 보면 나귀의 첫새끼의 목을 꺾으라는 명령이 나온다. 이는 나귀의 첫 새끼를 양으로 대처하지 아니할 경우에는 부정한 동물로 여겨진(레11:2,3,26) 나귀의 첫 새끼 자체를 여호와께 드릴 수 없으므로 대신 나귀의 목만을 꺾었다. 따라서 본문에서 그 암송아지의 목을 꺾는 것은 그것을 하나님께 예물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살인자를 대신하여 죽는 것임을 보여 주기 위해서이다. 즉 미결 살인 사건에 대한 대속의 목적을 위하여 죽는 소는 공동체로 하여금 무고히 죽은 자의 피와 무관하게 하는 역할만을 할 뿐(8절), 이는 하나님께 바치는 희생 예물이 될 수는 없었다는 사실을 목을 꺾어 죽이는 방법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것이다.
(4) 장로들은 죽은 암송아지 위에서 "물로 손을 씻으며", 그들이 이 무죄한 피를 흘리지 아니했을 뿐만 아니라 누가 범죄했는지도 알 수 없다는 고백을 했다(6, 7절).
👀 성경의 다른 곳에서 속죄를 행하는 의식과 관련되어 예물을 죽일 때에는 먼저 제물의 머리 위에 제사장이 손을 ‘대고' 안수하는 것을 볼 수 있다(출 29:10; 레1:4).
본문의 의식은 일반적인 속죄 의식과는 달리 백성을 대표하는 장로들이 살인자의 죄를 짊어지고 있는 예물 위에서 물로 손을 씻는 것이다. 이는 그 예물 위에 전가된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게 한 그 죄가 이스라엘 공동체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공동체의 무죄를 증명해 보이고 또한 하나님 앞에 서약하는 행위가 되었다(시 26:6; 73:13).
뿐만 아니라 살인자를 알고도 감추어 주어 도망할 수 있도록 도와 주거나 권고한 일이 없다고 고백하였다. 이러한 관례로 다윗은 "내가 무죄하므로 손을 씻으리이다" 고 말하고 있다(시 26:6). 그러나 만일 빌라도가 그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면(마 27:24), 그는 이 의식을 악용하여 무죄한 줄 알면서도 그리스도를 비방하면서도 이 무죄한 피에 대해 자신은 아무런 죄가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Protestatio non contra factum 사실과 맞지 않는 항의는 무용한 것이다.
(5) 제사장은 그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했다. 즉 하나님께 그들에게 자비하셔서 숨겨진 살인자가 받아야 할 심판을 그들에게 내리시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 살인자는 그 성읍의 사람이거나 혹은 그 성읍 속에 지금 숨어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제사장들은 그가 사람들 중에 섞여 더 이상 잘못된 일을 저지르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민 16:22).
"주여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사하소서" (8절).
👀 이 기도는 이스라엘이 저지른 죄를 사해 달라는 의미로 이해하기보다는 오히려 이스라엘 안에 머물러 있는 그 죄를 씻어 멀리 떠나게 하셔서 자기들이 그 죄와 상관없음을 드러내 달라고 기도하는 것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여기에서, ‘사하소서' - 받아야 할 죄 값이 단지 덮어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스라엘 땅에서 완전히 씻어내어진다는 의미다.
우리가 사악한 자의 악한 행실을 들었을 때는, 그들의 악행으로 떨며 신음하는 우리 국토를 위해 하나님의 자비를 진심으로 간구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죄악으로 자기들의 피의 그릇을 채우고 있더라도 우리는 용서의 기도를 드림으로써 죄의 그릇을 비워야 한다.
1. 하나님은 다음과와 같은 의식을 행하도록 명하셨다.
(1) 의식을 행함은 백성들에게 살인자에 관한 말을 들려 줄 수도 있는 기회가 되어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그를 찾아내는 데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2) 사람들은 그가 피를 흘리게 하는 불경한 일을 했을 뿐만 아니라(우리 모두가 다윗처럼 "피의 죄책에서 나를 구원하소서" 라고 기도해야 한다). 땅이 물들인 끔찍스런 피에 대한 죄의식에 사로잡히게 되었을 것이다. 피로 물든 땅은 울면서 재판장에게 올바른 조치를 요구할 것이며, 그렇게 되지 않을 때 하늘에게 땅을 심판해 달라고 다시 요구한다. 살인자가 드러나지 않았을 때 그 나라를 죄에서 구해내기 위해 철저한 주의가 필요하다면, 살인자가 밝혀졌으나 처벌하지 않고 있는 경우에는 나라를 죄악에서부터 구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식이 행해짐으로써 사람들은 알게 되고, 주의하게 되고, 그리고 살인자를 찾아내어 처벌하게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선원들까지도 피흘리는 죄는 두려워하였었다(욘 1:14),
(3) 우리는 남의 죄에 동참하지 말고 - ex post facto - 사후에 죄인들을 격려함으로써 공범자가 되지 말며, 사실에 대해 거짓 증거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이들을 책하지도 않고 항의하지도 않는다면 우리는 "어두움의 열매없는 일에 함께 하게" 된다. 하나님이 명하신 의식이 의미하듯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 어떤 한 사람이 죄를 범했을 때 고린도 교회는 회개하였다. 그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조심스러워지고 그들 자신을 깨끗이 하려 했으며 거룩한 의분과 두려움과 복수심을 가지게 되었다(고후 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