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6월 30일 목요일 묵상구절 신25:5-10 죽은 형제에 대한 의무 (계대 결혼 제도)

하나지기 2022. 6. 30. 11:35

맥체인 성경읽기

여호수아 1, 시편 120, 121, 122, 이사야 61, 마태복음 9

묵상구절

25:5 형제들이 함께 사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 가지 말 것이요 그의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25:6 그 여인이 낳은 첫 아들이 그 죽은 형제의 이름을 잇게 하여 그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25:7 그러나 그 사람이 만일 그 형제의 아내 맞이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면 그 형제의 아내는 그 성문으로 장로들에게로 나아가서 말하기를 내 남편의 형제가 그의 형제의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 잇기를 싫어하여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내게 행하지 아니하나이다 할 것이요
25:8 그 성읍 장로들은 그를 불러다가 말할 것이며 그가 이미 정한 뜻대로 말하기를 내가 그 여자를 맞이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노라 하면
25:9 그의 형제의 아내가 장로들 앞에서 그에게 나아가서 그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그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이르기를 그의 형제의 집을 세우기를 즐겨 아니하는 자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고
25:10 이스라엘 중에서 그의 이름을 신 벗김 받은 자의 집이라 부를 것이니라

매튜 헨리 / 옥스퍼드

● 형의 미망인과의 결혼(신명기 25:5-12)

💡 계대 결혼이란 자녀의 다수가 곧 하나님의 최대의 축복으로 여겨지던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만약 형제 중에 기업을 이을 후사가 없어 죽은 자가 있다면 그 형이나 동생이 죽은 형제의 아내를 취하여 죽은 형제의 가문과 기업을 이을 수 있게 해주기 위해 제정된 제도입니다. 그러나 계대 결혼은 이러한 목적 외에도 자녀도 없이 홀로 된 미망인을 보호하는 사회 보장적 차원의 목적을 지니고 있기도 합니다. 한편 이러한 계대 결혼은 구속사적으로 볼 때 인류의 구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신 혈통인 다윗 계열바로 이 보아스와 룻의 계대 결혼에 의해(룻 4:10; 마1:1-17) 생겨나게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습니다.

 

Ⅰ. 죽은 형제의 미망인과의 결혼에 관한 율법이 나와 있다.

이 율법은 유다의 가정의 이야기를 보면 독특한 가계의 유지를 위한 고대 관습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창 38:8). 여기에 제시된 경우는 한 남자가 후사 없이 죽는 경우이다. 이것은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 계대 결혼의 관습이 혈연 집단이 사회의 기본 구성 단위였으며 혈통을 중요하게 여겼던 당시 히브리 사회의 가족간의 유대 관계에서 나온 제도였다. 이런 시대에 한 남성이 그 직계 아들을 남기지 못하고 죽는다면 그 사람의 혈통은 공동체로부터 영원히 끊어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그 죽은 자의 남은 형제들은 죽은 자의 아내를 취하여 아들을 낳아 그 죽은 형제의 아들이 되게 하여 혈통을 이을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할 책임이 주어졌다.

형이나 남동생이 아들 없이 죽은 형제의 아내틀 취하여 자녀를 낳아 주는 이러한 관습은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헷 족속과 앗수르를 비롯한 고대 근동 사회는 물론 인도와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에서까지도 행해졌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택함 받은 선민이란 자부심을 가졌으며 대를 잇는 것을 큰 축복으로 여겼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는 대가 단절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시행되는 이러한 관습이 더욱 중요하게 여겨졌다.

본문 이하에서 계대 결혼의 제도 자체 뿐 아니라 그 규례를 어긴 자들에 대한 조처까지 세밀히 규정하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 사회에 있어서 계대 결혼의 중요성을 잘 보여 준 것이다. 한편 계대 걸혼 제도는 가문의 혈통이 끊어지지 않도록 해주는 이러한 일차적 목적 외에도 남편을 잃은 여인이 타인의 아내가 되지 않고서도 남편의 기업을 유지하여 의식주 생활에 어려움이 없도록 해 주는 하나의 사회 보장 제도로서의 의미도 지닌다.

 

이제 이 율법에서는

1. 죽은 자의 아내는 그 남편의 모든 친족이 그 여자와 결혼해야 했으니, 부분적으로는 그 여자에 대한 존경심에서였는데 그 여자는 자기 백성과 자기 아비의 집을 여의였으므로 시집 가족은 그 여자에게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떤 친절이라도 베풀어야 마땅한 여자였기 때문이다. 또 부분적으로는 죽은 남편을 위해서 그리해야 했으니 그는 비록 죽어 사라졌지만 그가 잊혀지지도 아니하고 자기 지파 왜냐하면, 남편의 형제나 가까운 친족이 그 죽은 자의 이름을 따르게 하여, 그 고인의 자식으로서 족보에 기입하였기 때문이다. (5, 6절).

2. 이 율법 아래서는 사람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죽음 저쪽의 세계에 대한 삶의 희망을 우리들 만큼 분명히 가지고 있지 못했다. 우리에게는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으로 그들은 자기의 자손을 통하여 자기가 영원히 살기를 원할 수 밖에 없었고, 이 순진한 욕구는 이 율법에 의해서 어느 정도 충족되었던 것이니, 이는 편리한 방편으로서, 비록 그 아내에게서 아이를 얻지 못한 자라도 "그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안출해 냈던 것이다. 즉 가계에서 삭제되든가 자식 없이 죽었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의 교리를 교란시킬 목적으로 우리의 구주 예수님께 이 율법에 관련된 한 사례를 제시하였었다(마 22:24 절 이하). 인간의 이름과 그 가문을 이 세상에 영속시키는 데에는 율법에 너무나 잘 규정되어 있는고로 영혼 불멸과 장차 올 나라에 대해 주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은근히 암시하였던 것 같다.

💡 히브리인 사회에서 가문의 후사를 잇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들이 있어야 했다.
6절은 계대 결혼의 주된 목적은 어떤 재산을 기업으로 이어 받을 후손을 낳는 데 있지 않고 죽은 자의 이름과 그 이름이 대표하고 있는 가계를 이어갈 후손을 낳는 데에 있었음을 분명히 알려 준 것이다.

 

3. 그러나 만약 죽은 자를 기억하여 행할 이 선한 직무를 그 죽은 자의 형제나 가까운 친족이 봉행하지 않으려고 거부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 재판이 열린다
7절에서 여인이 성문으로 가는 것은 그 당시 모든 재판이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자리인 성문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룻 4:1). 따라서 본문의 재판은 당사자들과 장로들만 참석한 조용한 법정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많은 공동체가 지켜 보는 가운데 이루어진 재판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1) 그 죽은 자의 형제는 그 후사를 잇는 행위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7절).

만약 그가 그 여인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 여인 취하기를 거절할 자유가 있었던 것이다. 혹자는 모세 율법중의 이 조항에서는 그런 자유가 용납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애정은 부부 관계의 행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전부이다. 이것은 강요로 얻어질 수 없는 것인고로, 애정없이 부부 관계만을 강요해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 아들을 낳지 못한 채 남편과 사별한 여인을 아내로 취하는 것은 그 남편의 형제들이 마땅히 행해야 할 의무였다. 따라서 만약 남편과 사별한 여인이 남편의 형제로부터 결혼을 거부당했을 경우 본문과 같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법적으로 그들을 고소할 수 있었다.

그 여인이 행할 일은 그 여인의 남편 되기를 싫어하는 그 남자의 신을 벗기고 그 얼굴에 침을 뱉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 남자가 스스로 신을 벗는 것이 아니라 여인이 그 남자의 신발을 벗긴다는 사실이다. 이는 그 남편의 형제 된 자가 후사를 낳아 주어야 할 권리를 스스로 포기한 것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땅히 권리를 행하여야 할 자가 그 권리에 따르는 의무를 소홀히 하였기에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권리를 박탈 당하게 하여 수치를 겪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침을 뱉는 것도 마찬가지로 수치를 상징한다. 또한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신발은 권리와 지위를 상징하는 것이므로 신발을 벗기는 것은 그 죽은 형제의 가장 가까운 혈족으로서 그의 아내에 대해 가질 수 있었던 우선적인 모든 권리와 지위를 완전히 빼앗기는 것을 상징하는 행위이다.

 

(2) 그러나 그가 그런 일을 않았다는 이유로 인하여 공적인 치욕을 당한다. 고인의 이름과 명예에 가장 관심이 깊은 장본인인 그 미망인은 그가 거부했다는 사실을 장로들께 고하게 된다. 그래도 만일 그가 그 미망인을 취하지 않으려고 계속 고집하면, 그녀는 "그의 신발을 벗기고 그의 얼굴에 침을 뱉으라" 고 했다(혹은 유대 학자들은 그 얼굴 앞에서 침은 뱉는 것이라고 온건하게 말하기도 하나). 이것은 그 후 그의 가문에 계속 남을 오명의 표시를 주려는 뜻에서였던 것이다(8-10절).

마땅히 타인들의 이름과 명예를 보존해야 할 자들이 그렇게 하지 아니할 때에는 도리어 저들은 자기의 명예가 손상을 입게 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을 깨닫자, 자기 형제의 집안을 세우기를 원치 않는 자들의 집에는 이런 오점이 찍혀야 마땅했다. 곧 "신 벗기운 자의 집" 이라고 칭함을 받을 것이다. 이것은 그가 맨발로 다녀야 마땅함을 표징하는 것이다. 우리는 룻의 경우에서 이 율법의 실행을 엿볼 수 있는데(룻 4:7), 가장 가까운 친족이 거절하자, 남편의 형제의 본분을 기꺼이 행할 딴 사람이 있었으므로 그 거부했던 자의 신을 벗긴자는 과부가 아니라 그 제 삼자였다. 곧 룻이 아니라 보아스였던 것이다.

💡 죽은 형제의 아내였던 여인을 자기 아내로 맞이하기를 싫어한 사람에 대하여 ‘신발이 벗겨진 자'라고 하지 않고 ‘신발이 벗겨진 자의 집'이라고 한 것은 그 수치가 당사자 자신에게만 머물지 않고 그 가계에 대대로 전해진다는 의미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