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10월 17일 월요일 룻 3:1-18 룻이 보아스와 가까워지다

Jeehyun 2022. 10. 17. 13:46

맥체인성경읽기

열왕기상 20, 데살로니가전서 3, 다니엘 2, 시편 106

묵상구절

3:1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3:2 네가 함께 하던 하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보라 그가 오늘 밤에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3:3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 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 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3:4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가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네 할 일을 네게 알게 하리라 하니

3:5 룻이 시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니라

3:6 그가 타작 마당으로 내려가서 시어머니의 명령대로 다 하니라

3:7 보아스가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워 가서 곡식 단 더미의 끝에 눕는지라 룻이 가만히 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웠더라

3:8 밤중에 그가 놀라 몸을 돌이켜 본즉 한 여인이 자기 발치에 누워 있는지라

3:9 이르되 네가 누구냐 하니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하니

3:10 그가 이르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가난하건 부하건 젊은 자를 따르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3:11 그리고 이제 내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3:12 참으로 나는 기업을 무를 자이나 기업 무를 자로서 나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 있으니

3:13 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 아침에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려 하면 좋으니 그가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할 것이니라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리라 아침까지 누워 있을지니라 하는지라

3:14 룻이 새벽까지 그의 발치에 누웠다가 사람이 서로 알아보기 어려울 때에 일어났으니 보아스가 말하기를 여인이 타작 마당에 들어온 것을 사람이 알지 못하여야 할 것이라 하였음이라

3:15 보아스가 이르되 네 겉옷을 가져다가 그것을 펴서 잡으라 하매 그것을 펴서 잡으니 보리를 여섯 번 되어 룻에게 지워 주고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3:16 룻이 시어머니에게 가니 그가 이르되 내 딸아 어떻게 되었느냐 하니 룻이 그 사람이 자기에게 행한 것을 다 알리고

3:17 이르되 그가 내게 이 보리를 여섯 번 되어 주며 이르기를 빈 손으로 네 시어머니에게 가지 말라 하더이다 하니라

3:18 이에 시어머니가 이르되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될지 알기까지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매튜헨리/옥스퍼드

▶스페셜포인트3장의 구조
이제 룻기의 내용은 룻과 보아스와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면서 절정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1. 3:1-5절: 나오미가 룻을 보아스와 결혼시키기 위하여 계획을 세우는 내용.
  2. 3:6-15절: 룻이 기업 무르는 제도에 호소하여 보아스에게 청혼을 하자 보아스가 수락하는 내용.
  3. 3:16-18절: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에게로 돌아와 보아스의 청혼 수락 과정에 대해 상세히 보고하고 있는 내용.

특히 두번째 문단은 한밤의 타작 마당을 그 무대로 하고 있는데 남녀 관계의 로맨틱한 요소와 어우러져 소설 특유의 정취를 더해주고 있다. 이제 이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1. 3:1-5절

룻과 보아스와의 관계 발전은 룻을 위하여 안식할 곳을 마련해 주려는 나오미의 계획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사실 나오미는 남편도 자식도 모두 잃어버리고 며느리 룻과 더불어 살아가는 외로운 처지이다. 그런 나오미는 룻의 행복을 위해 룻을 결혼시키기 위하여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여기서 나오미가 룻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이미 나오미는 모압 땅에서 고향 베들레헴으로 귀향할 때 두 며느리들을 향해 그 땅에 남아 재혼하여 새 삶을 출발하라고 중용한 바도 있다. 이를 볼 때 나오미 역시 이 타작 사랑 (altruistic love) 을 실천하는 인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룻기는 물론 룻을 주인공으로 하는 책이지만 룻의 아름다운 신앙과 사랑은 이처럼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빛을 발하고 있다.

2. 3:6-15절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가 명한 것을 그대로 실행한다. 룻은 나오미의 명대로 목욕하고 단장한 후, 보아스의 타작 마당으로 숨어 들어가 보아스외 발치 아래에 눕는다. 내용의 전개상 이 부분은 룻기가 로맨틱한 요소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부분이지만, 한편으로 긴장과 위기의 순간이기도 하다. 여인이 밤에 몰래 타작 마당으로 숨어 들어간다는 것은 오해를 살 소지가 많으며, 더구나 보아스가 룻의 행동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룻은 대단히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룻은 이런 모든 위험과 오해의 가능성들을 무릅쓰고 나오미의 명을 따라 그대로 행한다.여기서 룻과 나오미가 얼마나 깊은 신뢰와 사랑의 관계로 묶여져 있는가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아스를 향한 룻의 청혼 방법은 다름아닌 고엘 제도에 근거한 것이었다.

  • 고엘 제도는 원래 친족들을 중심으로 한 혈연 공동체를 중심으로 사회 생활이 영위되던 때에 공동체 사희를 유지, 운영하기 위한 방범으로 제정된 제도이다. 즉 한 혈연 공동체 내에 속한 구성원들이 서로의 재산과 가문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상보 제도로서의 기능을 수행하였던 것이 바로 고엘 제도였다.
  • 고엘이란 ‘구속하다', 혹은 ‘친족으로서 행동하다'라고 하는 뜻에서 파생된 말이다. 곧 ־가까운 친족으로서 행동하는 자'로 친척의 억울한 살인을 복수해 주고(민 35:19), 그 친척이 자손 없이 죽으면 계대 결혼을 통하여 혈통을 잇게도 헤 주며(신 25:5-10), 나아가 친척이 궁핍하여 자신의 기업을 팔았을 경우 그 땅을 대신 사서 돌려주는(레25:25) 역할을 하는 자를 가리킨다. 이 고엘 제도는 이후 이스라엘이 중앙 집권 체제인 왕정 국가로 발전하면서 점차 사라져 버리게 되었다.

고엘 제도의 의의

이 제도 자체는 역사적으로 사라져 버렸지만 이것이 구속사의 한 진리를 계시하는 수단이 되었다는 점에서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곧 고엘 제도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감당하실 사역을 예표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몇 차례 강조한 바대로 룻기는 이중적 관점을 가지고 보아야 하는 바, 곧 룻기 자체의 내용과 그것이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서 어떠한 계시적 기능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동시에 보아야 한다. 따라서 룻기에서 나타나는 고엘 제도를 우리는 단지 당대의 한 풍습으로서만 아니라,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성격을 나타내 주는 하나의 계시 수단으로도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룻과 나오미의 기업 무를 자로 등장하는 보아스는 다름 아닌 성도들의 영원하고도 진정한 고엘이신 예수 그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이다.보아스의 고엘 의무 이행으로 나오미의 피폐한 삶이 회복되고 안식할 곳 없던 이방 여인 룻이 안식과 행복을 누리게 된 것처럼, 고엘이신 우리 주님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성도는 영원한 행복과 축복을 얻게 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자원하여 고엘의 역할을 이행하셨다. 곧 자신의 목숨을 버려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치르시고 죄에 팔려 죽게 된 우리의 생명을 구속하셨다. 또한 부요한 자로서 우러를 위해 스스로 가난하게 되심으로 궁핍한 상태에 처한 우리를 부요하게 하셨다(고후 8:9). 그리고 우리의 죄로 인해 상실해 버린 기업을 회복하여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영원한 하늘나라의 기업을 잇게 해 주셨다(벧전 1:4).

보아스의 고엘 의무 이행으로 나오미의 피폐한 삶이 회복되고 안식할 곳 없던 이방 여인 룻이 안식과 행복을 누리게 된 것처럼, 고엘이신 우리 주님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성도는 영원한 행복과 축복을 얻게 된 것이다.

▶나오미의 전략(룻기 3:1-5)

Ⅰ. 나오미는 룻을 안락하게 해주기 위해 세심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것은 퍽 칭찬할 만한 일이고, 모범된 일이기 때문에 기록되어 있다. 나오미 자신은 다시 결혼할 의사가 조금도 없었다(1:12). 이미 늙은 나오미는 계속 과부로 남을 결심이었지만, 그녀는 젊은 룻을 계속 그녀의 며느리로 구속할 생각은 결코 없었다. 나이든 사람들은 자기들로 청년의 표준을 삼아서는 안 된다. 이와는 달리 나오미는 어떻게 하여 룻을 잘 결혼시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다. 비록 룻은 그녀를 위하여 나오미가 애쓰는 것을 겸손한 마음으로 만류하고 있지만 나오미는 룻을 위해 지혜로운 계획을 만들었다(1절).

  1. 즉 죽은 자들의 씨앗을 키우고 그 혈통이 끊어지지 않게 함으로써 나오미는 죽은 자들에게 의로운 일을 행하였다.
  2. 나오미는 룻에게 매우 친절했고 또 감사한 마음으로 그녀를 대했으며, 룻은 존경심을 품고 나오미를 충실하게 모셨다.

"내 딸아(나오미는 말하면서 룻에게 경의의 시선을 던졌다.)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즉 결혼하여 안정을 해야 한다는 뜻의 말을 하였다. "나는 네게 좋은 남편을 구해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래야 네가 복되게 되리라." 다시 말하면 지금처럼 이렇게 보잘것 없고 우울한 상태에서 생활할게 아니라, "너는 이제 풍족하고 즐겁게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는 것이다. 다음 사실을 명심하자.

(1) 젊은이들에게 있어서는 결혼을 하여 가정을 갖는 것이 안식이며 또 그래야 한다. 그 때에야 사랑의 방황은 끝나고 마음이 안정된다. 즉 남편의 집에서 편안함을 얻어야 한다(1:9). 경솔한 자들은 안정된 결혼을 얻을 수 없다.

(2) 결혼하기를 원하여 이를 실행하려는 자는 잘 선택하여 그것을 복된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혼은 안식은 커녕 아주 불안스러운 것이 된다. 결혼할 자식을 둔 부모는 잘 살펴서 "그들이 복되게 하여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영혼에 가장 훌륭한 것이 우리에게 제일 좋은 것" 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3) 자식들에게 이러한 안식처를 마련해 주고 이것을 위해 알맞는 일을 적당한 때에 해 주는 것이 부모의 의무이다. 책임감 있고 정중한 부모일수록 이러한 일을 소홀히 여기지 않고 더 열심히 즐겨 행한다.

 💡 룻의 행복을 찾아주기 위한 나오미의 노력이 지속적이고 능동적이었다.

한편 본문 이후에 나오는 나오미의 행동들은 결혼 제도를 만드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인정하지 않고 인간의 노력만을 부각시키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의 지속적인 노력 뒤에 하나님은 항상 보이지 않는 손으로 일하시며, 그의 뜻에 합당한 대로 인간의 노력을 이끄심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는 남성 위주의 사회였으므로 남편과 아들이 없는 과부는 생계가 어려우며 신변의 안전에 대한 보장도 없었다. 그러므로 나오미는 룻을 과부의 비참한 생활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었다. 물론 룻을 친족과 결혼시켜서 엘리멜렉 가문의 대를 이을 자손을 얻고 싶은 마음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룻을 현실적인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시모로서의 사랑이 더욱 컸을 것이다**. 나오미는 이제 보다 구체적으로 룻에게 인애를 베풀 마음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Ⅱ. 나오미가 룻이 발탁되도록 한 과정은 상례적인 일이 아니며, 좋지 못한 일같이 보인다. 만일 여기에 잘못된 일이 있다고 한다면 룻보다 이스라엘의 풍습을 더 잘아는 아니 더 잘 알고 있어야 하는 나오미가 룻을 그렇게 행하도록 했으므로 나오미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1. 사망한 자들의 근족이며 나오미의 가장 가까운 사람 중의 하나인 보아스가 엘리멜렉의 맏아들로 자식 없이 죽어버린 말론(2절)의 아내였던 룻과 율법적으로 결혼할 의무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보아스는 우리의 근족이 아니냐? 그러니 우리의 일을 잘 보살펴야 하지 않겠느냐? 왜 우리가 그의 의무를 생각해 내지 못했던고?"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발 앞에 나아갈 수 있는 담력을 주니, 그리스도는 우리의 근족이다. 그는 우리와 같은 본성을 입으셨으니, 그는 "우리의 뼈중의 뼈 살중의 살이다."

2. 이제는 끝났지만, 추수기 동안 내내 보아스는 그의 곡식 베는 사람과 함께 있는 룻을 잘 알게 되었으므로, 이제 보아스에게 이것을 알려주는 것이 타당한 일이다. 보아스는 사소한 일에서도 룻을 돌보아 주었으므로, 그가 그들의 근족임을 알게 되더라도 그들에게 불친절해진다거나 불공평한 처사를 내리지는 알을 것이라는 생각이 나오미를 격려해 주었다.

나오미는 보아스가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 때(2절)를 기회로 삼는 것이 좋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때 거기에는 추수의 기쁨으로 충만되는 때이며, 그의 일꾼들은 친절한 주인의 대우를 받는 때이다. "그가 오늘 밤에 보리를 까불리라." 즉 오늘밤 연회를 베풀리라. 나발과 압살롬이 양의 털을 깎은 후 연회를 베풀었듯이, 보아스도 보리를 까불은 후 그랬다.

 3.나오미는 룻 자신이 그 일을 가장 잘 해내리라고 생각했다. 이런 경우엔 여자가 간청하는 것이 이 지방의 관습이었던 것 같다. 그것은 율법에 잘 암시되어 있다(신 25:7-9). 그리하여 나오미는 룻에게 몸을 깨끗이 하고 의복을 단정히 입으라고 말했다. 화려하게 꾸미라고 말하지 않았다(3절).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되, 이세벨처럼 화장을 하지는 말라. 의복을 입으되 창기들처럼 유별한 복장을 하지 말며, 연회가 끝난 후 그가 누울 때에 그의 발치에 누우라."

아마 그녀는 거기에서 베풀어지는 저녁 식사에 초대받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연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돌아가고, 보아스가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는 룻은 자기의 정체 즉 자기의 용무를 알려서는 안되었다. (실상 룻이란 인물 자체는 보아스의 일꾼들 사이에 이미 잘 알려져 있었다.) 또 이때에는 보아스가 그의 집에 들어 있을 때 보다는 훨씬 더 쉽고 은밀히 룻이 접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집과 충분히 떨어져 있었다.

 💡 나오미가 룻에게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업으라’ 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구절은 겔 16:8-13과 자주 비교 연구되었다. 겔 16:8-13은 여호와와 예루살렘을 신랑과 신부의 결혼식으로 비유한 내용으로서 이 본문과 흡사하다. 따라서 많은 주석가들은 나오미의 이 지시를 청혼을 위한 준비로 보았다. 보아스에게 청혼하기 위해 룻이 몸단장을 하는 장면으로 이해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두 본문은 비록 유사점을 갖고 있지만 이면에 많은 차이점도 갖고 있다. 에스겔서에는 ‘수놓은 옷을 입히고 죽신을 신기고’ 명주를 덧입히고' 란 표현이 나오지만 본문에는 단지 ‘의복을 입고’ 라는 표현만 나을 뿐이다. 게다가 앞에서 살펴본 대로 여기서의 의복은 예복이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 입는 평상복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룻이 신부 복장으로 보아스의 타작 마당에 들어섰다면 아마 모든 사람들의 눈에 금방 드러났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 지시는 보아스를 유혹하기 위한 몸단장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외경인 ‘요딧서’에 보면 남자를 유혹하는 복장도 본문의 의복보다는 훨씬 화려한 옷이었으므로 그렇게 보기 어렵다. 사실 본절과 가장 유사한 내용을 보여 주고 있는 구절은 삼하 12:20이다. 다윗은 밧세바가 낳은 아이가 죽자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었다. 이 본문과 비교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목욕을 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으라는 이 구절은 외출을 하기 위한 준비라는 일차적인 의미는 물론이고 더 나아가서 어제 죽은 남편 말론에 대한 애도 기간을 끝내고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라는 룻에 대한 나오미의 권고인 것을 알게 된다. 과부로서의 묵은 때를 벗어버리고 이제 다시 한번 평범한 삶 속으로 들어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라는 의미가 내포된 지시인 것이다.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라고 명한 까닭
본문에서 나오미는 룻에게 보아스의 타작 마당에 내려가서 자신이 왔음을 알리지 말고 보아스가 자리에 누울 때까지 숨어 기다리라고 한 것이다. 나오미가 이처럼 지시한 이유는 룻이 보아스의 타작 마당에 간 것을 보아스 주변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기 위함과 더불어 보아스가 먹고 마시는 식사 시간에 흥이 깨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4. 그러나 보아스가 잠자리에 들 때 룻이 가만히 나타나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눕는다는 일은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을는지 모르겠다.

많은 해설자들이 이것을 부조리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 중 저 유명한 푸울(Poole)씨가 특히 그렇다. 우리는 결과가 선할 수 있다하여 악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불티와 기름을 같이 놓는 것은 위험하다. 자그마한 불티가 얼마나 많은 것을 불태우는가? 이런 일은 전례가 없었다는 점에 모든 학자들이 일치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법률이나 사조는 당시와 다르다. 그러나 나는 기꺼이 이 사건을 선용하리라. 그들의 생각대로 보아스가 그들의 근족이라면, 룻은 그의 아내로 하나님 앞에 나설 수 있으며, 이들의 혼인을 이루게 하기 위해 예식도 별로 필요 없었다. 나오미가 룻을 보아스에게 접근하도록 한 것은 룻으로 하여금 그의 아내가 되도록 하기 위한 의도 밖에는 없었다.

나오미는 보아스가 나이든 남자일 뿐 아니라 (나오미는 룻이 혼자 보아스에게 접근하는 모험을 하라는데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중하고 엄숙한 사람이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로서 덕있고 믿음이 깊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나오미는 룻이 정숙한 여자로 "순진하고 집안 일을 잘하는" (딛 2:5) 여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한 때가 있었는데 (민 25:1) 여기 나오는 모압 여자 룻은 그러한 여자가 아니었다. 나오미는 올바르고 영예로운 일 이외에 다른 불미스러운 것은 아무 것도 뜻하지 않았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는" 그녀의 사랑은 보아스와 룻이 올바르고 영예로운 일 이외에는 어떠한 일도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만일 나오미가 룻에게 충고한 것이 현재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 나라의 관습에서도 음란하고 불미스러운 일이었다면 나오미는 분명 덕있는 여자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나모이가 덕이 높은 사람이라는 것을 의심해볼 여지가 없다.) 그리하여 나오미는 지혜롭지 못한 시어머니로서 룻을 희생시키고 더욱 나아가 이들의 결합을 방해하고 보아스와 룻의 사이를 이간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현재의 우리 관습에 비추어 보고서 그릇된 일이라고 판단해 버려서는 안 된다. 나오미는 룻을 보아스에게 보내면서 여러가지 지시를 했다. 룻이 보아스에게 간청했을 때 율법을 잘 알고 있는 보아스는 "그녀가 행해야 할 일을 얘기해" 주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의 구주 앞에 엎드려 우리의 행위에 대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 "주여 뉘시오니이까" (행 9:6).

5. 만일 나오미의 지시가 옳지 못한 것이었다면, 정숙하고 현명한 룻으로서도 분명 나오미의 말대로 행할 것을 약속하지 않았을 것이다(5절). "당신이 내게 하신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이와 같이 어른들의 권고가 엄숙하고 신중한 것으로서 올바른 일을 위한 것이라면, "젊은이들은 어른들에게 복종해야 한다." 그런 때에 거기에 반항하는 말을 할 필요가 없는 법이다.

💡 영적 교훈 서론

사실 룻이 시집을 가버리면 그렇지 않아도 의지할 곳이 없었던 나오미의 삶은 더욱 외롭고 힘겨워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오미는 딸처럼 사랑하는 며느리 룻의 행복을 위해서 기꺼이 그와 같은 고통을 감수하였던 것입니다. 또 나오미의 며느리 룻 역시 아무리 시어머니의 지시라지만 젊은 나이에 나이 많은 사람의 아내가 된다는 것은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한밤중에 여자의 몸으로 남자의 잠자리에 숨어들라는 나오미의 지시는 이스라엘의 풍습을 잘 몰랐던 뭇으로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지시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두말 없이 나오미의 지시를 따라 행동하였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본문을 통하여 룻기가 단순한 통속적 애정 소설이 아니라 고부간의 끈끈한 사랑과 고엘 제도를 통해 당신의 구속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보여 주는 책임을 분명히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보아스와 룻(룻기 3:6-13)

Ⅰ. 보아스는 자기의 일상적인 일을 잘 처리했음을 볼 수 있다. 일반적인 관습대로, 

  1. 그의 종들이 보리를 까불 때 보아스는 그들과 함께 있어 그들을 지켜 보았는데, 그것은 물론 그의 종들이 곡식을 훔치는 것을 감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고 (그는 이것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보리를 까불 때 종들이 부주의하여 곡식을 흘리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종들은 그들이 정직하다 할지라도 부주의한 때문에 많은 낭비를 하게 되기 때문에, 주인들은 부지런히 "자기 양떼들의 형편을" 살펴야 한다.

  2. 보아스는 특별히 할 일이 있을 때는 "그들에게 먹고 마실 것을" 후히 대접하여 그들을 격려해 주었다. 부유하고 훌륭한 사람은 그의 일꾼과 아랫사람들과 친하고 또 그들을 관대히 대해야 한다.

  3. 보아스는 그의 일꾼들과 함께 먹고 잠시 유쾌히 지낸 후 "적시에 잠자러" 갔다. 그는 매우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고로 자정이 되자 이미 한잠을 잤다(8절). 이렇게 그는 다음 날 아침의 일을 위해 알맞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곤 했다. 모든 훌륭한 남편들은 시간을 잘 이용하여, 자기 자신이나 가족들이 때맞지 않는 환락에 빠져들지 않도록 한다. 시리아역 해설자는 7절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쉽게 풀이하고 있다. "보아스는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워 (히브리 본문은 이와 같다.) 하나님의 이름을 찬미하였다. 하나님은 전에도 그의 기도를 들으시어 이스라엘 땅에서 기근을 몰아내어 주셨었다." 보아스는 이렇게 경건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기 때문에 그의 마음 상태는 온전하였고 폭음과 폭주로 그 자신을 잃지도 않았다. 더욱이 그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항상 기도했다. 보아스는 이제 음식을 베불리 잘 먹었고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 찬미했다. 또한 이제 쉼을 얻으려 하고 있으므로 하나님의 보호에 자신을 맡겼다. 그가 이렇게 한 것은 퍽 잘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비록 그는 모르고 있었을지라도 그의 앞에는 이상한 유혹이 놓여져 있기 때문이다.

  4. 그는 "노적가리 곁에서" 잠자리를 마련하였는 데 그것은 노적가리에 특별한 관심이 있어 그것을 도적으로부터 지키기 위하여 그런 것이 아니다. 단지 너무 늦어 성읍에 있는 집까지 가지 않고 내일 아침 다시 일하기에 편리하도록 거기서 자기로 한 것이었을 것이다. 이것으로 보아 그는 그의 집에서 까다롭고 유별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는 지위나 안락을 찾기보다는, 그의 조상야 곱처럼 소박한 사람으로서, 때로는 곡간에서 잠자리를 마련하기도 하며 때에 따라서는 짚단에서라도 만족스럽게 잘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7절, 추수로 인한 풍요로움과 한 해의 일을 마무리하는 기쁨으로 인해 생긴 즐거움이라고 봄이 좋을 듯하다.

보아스는 타작 마당에서 탈곡을 마처고 저녁 식사를 한 후 밤이 늦어 곡식을 쌓아 둔 곳의 가장자리에 가서 누워 갔던 것이다. 보아스가 베들레렘 성 안에 있는 집으로 가지 않고 곡식의 노적가리 가장자리에서 잠을 잔 이유는 술에 너무 취해서도 곡식을 누가 훔쳐같까 봐 지키기 위해서도 아니고 탈곡을 하고 식사를 하고 보니 시간이 너무 늦었기 때문이다.
 💡 8절, ‘밤중에’

‘밤중에' 라는 표현은 자정이 넘은 시간으로서 보아스가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시간을 의미한다. 그런데 밤중 이라는 시간은 구약 성경에서 종종 중요한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지는 배경으로 등장한다.

출 12:29에서는 하나님께서 밤중에 장자를 치셨고,
출 14:21에서는 하나님이 애굽 군대에 쫓기고 있는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밤새도록 큰 동풍으로 바닷물을 가르셨으며,
에 6:1에서는 아하수에로 왕이 밤중에 잠이 오지 않아 왕의 일기를 읽음으로써 모드르개가 뜻밖의 영화를 얻게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모든 만물이 가려지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시간에도 하나님은 어둠 속에서 계속 일하고 계신다. 보아스의 타작 마당에서 맞게 된 그 밤중도 연약한 여자 룻을 위해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준비하시고 있었던 역사적인 밤이었다.

Ⅱ. 룻은 자기의 일이 잘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룻은 어머니의 말에 순응하여 보아스에게로 가서 옆이 아니라 옷을 입은 채 발치 이불을 들고 누웠다. 거기서 자기의 용무를 보아스에게 말하기 위해 그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보아스가 밤중에 깨어 누군가가 그의 발치에 누가 있는 것을 알고 누구냐고 물었을 때, 룻은 자기의 이름을 말하고, 하나님의 율법이 보아스가 자기의 보호자라는 것을 알려 주었으므로 그의 보호를 받기 위해 왔다는 용건을 말했다(9절). "당신은 쇠퇴해 가는 한 가족의 재산을 구해 줄 권리가 있는 분이므로 우리의 파멸은 당신 손에 달렸나이다. 그러하오니 당신의 옷자락으로 나를 덮으시어 나를 기꺼이 아내로 맞아 주시옵소서."

💡
* 자신을 ‘당신의 시녀’로 칭한 룻


 룻이 이 단어를 선택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청혼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또한 ‘네가 누구냐’는 보아스의 질문은 상대방의 정체성을 묻는 말이었다. 룻은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자신을 ‘말론의 부인’ 또는 ‘모압 여인’ 또는 ‘나오미의 며느리’ 룻이라고 대답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대답을 하지 않고 보아스에게 ‘당신의 시녀’라고 밝힌 것은 그녀가 보아스에게 청혼할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

여자가 남자에게 옷자락으로 자기를 덮으라는 요구는 자기의 남편이 되어 달라는 청혼의 의미가 있다. 지금 룻은 보아스에게 청혼을 하고 있는 것이다.

* 당신은 우리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 고엘 제도에 대하여

 히브리인에게 있어서 고엘 제도는 친족들 사이에서 지켜야 할 권리인 동시에 의무였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고엘’은 1)친족의 재산을 회복하거나 유지하는 책임(레25:25; 27:9-33) 이 있고, 2)가난 때문에 몸이 팔린 친족을 속량하는 책임이 있으며(레25:47-55), 3)피의 보수자의 역할을 담당(민 35:9-28; 신 19:6-13)해야 했다.

또한 고엘 제도의 가장 중요한 사항 가운데 하나는 형제가 자식 없이 죽었을 경우 가까운 형제 순으로 그 과부 형수나 제수와 계대 결혼을 하여 죽은 자의 이름을 존속시키는 것이었다.

계대 결혼은: 혈족 중심의 이스라엘 사회 내에서 가문이 끊어지는 일 없이 그 대가 이어져야 한다는 목적과 더불어 죽은 자의 아내가 보호와 부양을 받아야 하며 그 가족의 재산이 그 가족 안에 계속 남아 있어야 했기 때문에 시행되었다. 이처럼 친족 구성원 중 한 사람이 위와 같은 여러 가지 이유로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곤경에 빠질 때 거기서 구해 내는 것이 바로 ‘고엘'된 자의 책임이었다.

* 본문에서 룻은 보아스에게 결혼해 줄 것과 더불어 기업 무를 책임을 져 달라고 요청하였다.

룻은 기업 무를 자와 결혼함으로써 죽은 남편의 이름을 남기고 남편의 기업이 계속 유지되도록 하려고 이런 부탁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큰 위험을 무릅쓴 모험이었다.
한밤중에 타작 마당에서 남자의 발치에 누워 있다가 만일 동네 사람들에게 발견이라도 된다면 온갖 수모를 겪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룻은 나오미와 그 남편에게 끝까지 충성하기 위해 이런 위험을 감수한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우리 자신을 구해 줄 근족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맡기고, 그가 우리를 모으셨으므로(마 23:37), 그의 날개 밑에 와서 그에게 "그의 옷자락으로 우리를 덮으시기를" 간청해야 한다. "주 예수여, 당신의 계약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돌봐 주시옵소서. 나는 지금 억압받고 있사오니 나를 위해 기도해 주옵소서."

Ⅲ. 룻은 보아스에게 잘 영접되었다.

룻이 행한 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며, 나오미가 자기의 친족에게 가졌던 생각은 조금도 잘못되지 않았다. 보아스는 룻의 간청이 타당하고 영예로운 것이라는 것을 알았으므로, 그녀의 말대로 행하였으며, 자기의 "누이를 창녀같이 대우하지 않았다" (창 34:31).

이유가 있다.

1. 비록 보아스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졌더라도, 보아스는 룻을 강제로 범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리아역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보아스는 "그의 욕정을 누르고 그녀에게 접근하지 않고 의인 요셉처럼 했다. 그는 애굽의 자기 여주인 곁에 가려 하지 않은 것 같다. 또 사울이 경건한 사람 발디에게 다윗의 아내인 미갈을 주었을 때(삼상 25:44) 그녀와 자기 사이에 칼을 놓아 그녀를 범하지 않도록 한 것처럼 행하였다." 보아스는 룻을 자기에게로 오게 하는 것이 조금도 사악한 욕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 자신과 그녀의 영예 둘 다 용감히 지켰다.

💡보아스는 한밤중에 젊은 여인으로부터 청혼을 받았으나, 당황하거나 경솔하게 행동하지 않고 남의 권리를 함부로 범하지 않는 침착함을 보인다. 한편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엘리멜렉의 기업 무를 친족이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오미는 왜 그 사람에게 뭇을 보내지 않고 보아스에게 보냈을까 하는 점이다. 나오미가 더 가까운 친족이 있음을 몰랐을리 없다. 나오미는 이삭 줍기를 하는 동안 며느리 룻이 보아스와 상당히 가까워졌다고 느꼈을 것이며, 더 가까운 친족보다 보아스가 인품이나 사회적 지위 등 모든 면에서 더 낫다고 판단한 까닭에 룻을 기업 무를 제 1순위의 친족에게 보내지 않고 보아스에게 보냈을 것으로 추정된다.

2. 그는 룻의 행실을 악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경솔한 여자라고 책망하지도 않았고, 또 영예로운 남자의 아내가 되기에는 부적당하다고도 생각지도 않았다. 룻이 그의 밭에서 일할 때 그녀의 정숙하고 고귀한 행실을 잘 알았으므로 보아스는 그녀의 성품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이 고통 중에 있는 과부에게 친족 남자로서의 도리를 못하고 그녀를 그 고통에서 구하지 못한 자기를 책망했으며, 유다가 그의 며느리에게 "그녀는 나보다 더욱 의롭도다" 라고 말했듯이, 그의 심정 또한 그러했다.

 💡 네가 연소한 자를 쫓지 아니하였으니…

아마도 추수 밭에서 함께 일하던 남자들 중에 룻에게 청혼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다. 본문의 원어상 정관사가 사용된 것은 이런 사실을 암시하며, 쫓다 라는 동사의 용례를 ‘그 젊은 남자들’이란 표현과 연결해 볼 때 룻은 그 젊은 남자들에게 청혼을 받았으나 그것을 거절한 것으로 보인다.

룻은 반드시 보아스와 결혼해서 죽은 자의 후손을 낳아야 하는 의무가 없었다. 그럼에도 나오미의 명을 따를 때 룻은 어떤 마음가짐이었을까?

만약 룻이 그런 의무를 갖고 있었고 그렇게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던면 룻이 연로한 보아스와 결혼한 것은 ‘헤쎄드' 즉 ‘인애'가 아니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룻은 남편으로부터 얽메임이 없는 자유인이었고는 원한다면 그 누구와도 걸혼해 자신만을 위한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1:9,13의 나오미의 말 참조). 그리고 젊은 여인으로서 할 수만 있다면 젊은 남자에게 시집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룻은 나오미와 그 죽은 남편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보아스에게 자신의 전부를 건 청혼을 한 것이며 그러므로 여기에 룻의 자기 희생과 나오미를 위한 인에가 있는 것이다. 

(1) 그리하여 보아스는 그녀를 칭찬하고 친절하게 그녀로 그의 "딸" 이라고 불렀으며, 뛰어난 덕을 지닌 여자로 높게 평가했다. 그리고 그는 그녀의 시어머니와 그녀의 가족들에게 전보다도 더 많은 친절을 베풀었다.

룻이 그녀의 나라를 버리고 나오미를 따라 이스라엘 땅에와 나오미와 함께 거하면서 생계를 계속 도왔다는 것은 퍽 훌륭한 일이었다. 이것 때문에 보아스는 룻을 칭찬하였다(2:12). 그러나 이제 그는 룻에게 "너의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10절) 하면서 칭찬을 하였다.

💡 룻이 베푼 인애(헤쎼드)

* 룻이 처음에 베푼 인애는, 1:8에서 룻이 나오미와 그의 죽은 남편에게 베푼 인애

* 나중에 베푼 인애는, 룻이 젊은 남자들을 따라 연애하거나 시집가지 않고 기업 무르는 제도에 기인해서 연로한 보아스 자신에게 청혼을 하러온 사실을 가리킨다.

보아스는 자기가 젊은 과부 룻에게 청혼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룻의 청혼은 보아스에게 었어 ‘인애(헤쎄드)׳ 가 되는 것이며, 이는 룻이 그의 시모와 죽은 남편에게 베풀었던 ‘헤쎄드’ 보다 더 큰 ‘헤쎄드’ 였던 것이다.

룻은 그녀 마음대로 결혼하지 않고 남편의 가족과 의논하였다. 룻은 "빈부를 물론하고 연소한 자" 의 구혼을 받아들이지 않고 (롯은 젊은 남자들을 구하지 않았다.) 기꺼이 신성한 율법의 지시대로 그 나이 많은 남자와 결혼하려 했는데, 그것은 그렇게 행하는 것이 그녀에게 온전한 친절을 베푼 보아스의 가문에 영예롭고 유익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젊은이들은 어떤 일을 행할 때 그들 자신의 눈을 즐겁게 하기보다는 하나님과 그들의 부모를 기쁘게 해 드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2) 보아스는 룻과 결혼할 것을 약속하였다(11절).

"내가 너를 버릴까 두려워 말라. 그렇게 하는 것이 근족된 나에게 율법이 요구하는 것이므로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그리고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노니(11절), 나는 이 일을 거절할 이유가 없노라."

💡 보아스의 이와 같은 확실한 의지 표명에 룻은 다소 안심이 되었을 것이다. 룻은 자신의 고향인 모압과 관련된 모든 것을 버리고 시어머니 나오미의 고향과 그의 신 하나님에게로 들어와 험난한 생애가 펼쳐질 것으로 예상했으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통해서 순탄한 길을 걷게 된 것이다.

베들레헴 성읍 사람들은 나오미를 통해서 그리고 추수 기간 동안 보아스의 밭에서 열심으로 일하던 룻의 성품과 인격 등을 통해서, 그녀가 현숙한 여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실은 베들레헴 성읍 사람들이 룻이 비록 이방 여인이긴 하지만 보아스와 재혼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고 허락할 것이라는 것과 룻이 베들레헴에서 그동안 큰 조롱과 야유 없이 비교적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생활해 왔음을 짐작하게 한다.

다음 사실을 명심하자.

[1] 훌륭한 미덕은 거기에 합당한 칭찬을 받아야 하며(빌 4:8), 그런 미덕은 남자나 여자를 가장 현명하고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룻은 가난하였으며, 때로 그녀의 궁핍이 그녀의 미덕의 광채를 가리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비천한 상태에서도 그녀의 덕행은 가리워지지 않고 다른 사람의 눈에 띄게 되었다. 더우기 그녀의 덕행으로 해서 빈곤한 사람들이 받는 멸시도 받지 않았다. 룻은 놀라우리 만큼 겸손하여, 결국 이 같은 영예를 얻게 된 것이다. 그녀가 자기의 선행을 감출수록 주위의 사람들도 더욱 그녀의 선행을 높이 평가했다.

[2] 배우자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는 그의 덕성은 특별히 고려해야 한다. 신앙으로 하여금 배우자를 선택케 하라. 그리하면 분명 그 선택은 영예와 즐거움을 가져다 줄 것이다. "지혜는 황금보다 귀하다." 그리하여 지혜가 "재산과 함께 있는 것이 좋다." 는 말은 지혜 없이 재산만 소유하는 일은 아무 가치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3) 보아스는 조건부의 약속을 했다. 달리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룻과 나오미를 위해 재산을 무를 권리를 가지고 있었던 자로서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었던 것 같다(12절). 보아스는 그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타국에 가 있었던 남편의 가계를 잘 모르는) 나오미는 그런 사실을 잘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오미는 룻을 보아스에게로 보내 그런 간청을 하도록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보아스를 룻에게 다른 친족의 남자에게 가라고 그녀를 학대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에게 다음과 같은 약속을 해 주었다.

[1] 다른 친족 남자에게 가서 그의 생각을 알아 보겠다고 하였다. 히브리 원어로는 과부란 말이 벙어리 된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보아스를 "벙어리를 위하여 자기의 입을 열 것이며" (잠 31:8), 자기의 뜻을 말하지 못하는 그녀를 대신하여 말 할 것이다.

[2] 보아스는 만일 그 다른 친족 남자가 그의 권리를 거절할 때 그가 그 일을 수행하여 룻과 결혼하고 토지를 찾아 주어서 그들의 가족을 돌보아 주겠다고 했다. 보아스는 엄숙한 맹세를 하였다. 그것은 결혼의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노라" (13절).

이러한 약속을 하고서 그는 룻에게 아침까지 있으라고 명했다. 홀(Hall) 주교는 오랜 연구 후에 이것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 놓았다. - "보아스는 바람둥이처럼 그녀를 범하지 않고, 오히려 아버지처럼 그녀를 축복해 주었고, 친구로서 격려를, 친족 남자로서의 약속을, 그리고 보호자로서의 보상을 했다. 또한 그녀가 이런 희망 속에서 집으로 돌아갈 때 푸짐한 곡식의 선물을 주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순결을 더럽히지 않았고 이곳에 올 때 보다 더욱 행복할 수 있었다. 웃사람으로서 그의 입과 마음 속에는 간사함이 없으니, 그의 성품은 얼마나 존경스러운가!"

 💡 영적 교훈 서론

본문은 뭇기 어야기의 절정에 해당하는 3장의 두번째 단락으로 룻이 나오미의 지시에 순종하여(1-5절) 보아스에게 나아가 청혼하는 장면.

여기에 보면 룻은 시모의 지시대로 보아스의 발치에 누웠다가 그녀를 발견한 보아스에게 그가 엘리멜렉의 기업 무를 자임을 이유로 자신의 청혼을 받아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러자 룻의 정숙한 행실과 자신이 엘리멜렉 가문의 기업 무를 자임을 익히 알고 있었던 보아스는 조건부로 룻의 요청을 쾌히 승낙하였습니다.

그 조건이란 엘리델렉에게 자신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음을 이유로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룻의 요청을 이행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즉 보아스는 인간적인 이해 관계에 얽매이기보다는 하나님의 율법을 성실하게 지키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멸시하기보다는 그것을 해결해 주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사실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거나 혹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가난하고 천한 사람을 선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아스가 룻의 간절한 요청을 한마디 불평도 없이 받아들였다는 것은 그가 사람과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신실한 자였는지를 여실히 증거해 준다 하겠습니다.

한편 본문에 나타난 룻의 모습은 특히 현대의 여성도들에게 주는 교훈이 크다 하겠습니다.

첫째,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사실. 지금까지 룻은 시모 나오미의 지시를 한 번도 어기지 않고 성실하게 이행하였습니다. 이러한 뭇의 모습은 오늘날 고부간의 문제로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는 여성도들에게 실로 큰 귀감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둘째, 현숙한 자세를 지녀야 한다는 사실. 룻은 온 성읍 백성들 사이에 소문이 자자할 정도로 그 행실이 현숙하였습니다. 만일 그 러하지 못하였다면 보아스가 룻에게 호의를 베풀었을 리 만무합니다. 참으로 현숙한 자세는 바로 여성도들이 감당해야 할 ‘빛과 소금’(마 5:13-16) 의 역할 중 하나입니다(딤전 2:9).

셋째, 하나님의 율례에 충실해야 한다는 사실. 룻은 자신의 소욕을 따라 젊은 남자에게 시집가고자 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여 나이 많은 보아스와 결혼함으로써 죽은 남편의 대를 이으려고 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성도들은 현숙한 아내가 되어 자신의 가정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를 힘쓰며,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의존해서 가정을 꾸려나가야 할 것입니다.

▶관대한 사람 보아스(룻기 3:14-18)

우리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Ⅰ. 어떻게 보아스가 룻을 보내었는가?

룻이 한밤중에 집으로 돌아가는 일은 퍽 위험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룻을(그의 몸이 아니고) "그의 발치에 아침까지 눕도록 했다." 그러나 룻은 동이 트자마자 "사람이 피차 알아보기 어려울 때에 일어나" 급히 집으로 돌아왔다. 만일 그녀가 다른 사람에게 들킨다 하더라도 이 일이 불미스러운 일로 전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는 밭에서 이삭 줍는 일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고 그녀의 궁핍을 수치스럽게 생각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발길의 여인으로 알려지기는 원치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의 현숙함은 그녀에게 있어서 가장 커다란 영예였고, 그녀 자신도 그 사실을 중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아스는 룻을 보낼 때,

1. 비밀을 지킬 것을 부탁했다(14절).

“여인이 타작 마당에 들어온 것을 사람이 알지 못하여야 할것이라." 또한 보아스와 밤새도록 함께 있었다는 것을 알려서도 안 된다. 그들 둘 다 결백한 한, 다른 사람이 무어라고 말하든 그들에겐 상관 없겠지만 불 가까이 있을 때 타지 않는 것이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일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의혹을 불어 일으키는 동시에 이 일을 모방하는 사람이 생길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선한 사람들이 고통당하고 사악한 사람들이 개가를 올리게 되므로 "이 일을 알리지 말도록 하자" 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주의하여 양심을 지켜야 할 뿐 아니라 우리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비록 악의 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다른 사람이 오해하기 쉬운 일은 하지 말아야 하며, 혹 부득이한 일로 오해받을 일을 했을 때는 "그것을 알지 않게 해야 한다." 우리는 죄악 뿐만 아니라 추문도 피해야 한다. 여기에서는 이 일을 감추는 데 대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만일 이 일의 소문이 나게 되면, 다른 친족 남자의 선택의 자유를 침범하게 되고, 룻과 보아스와 함께 있었다는 것을 이유로 룻을 거절할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2. 그는 룻이 집에 갈 때 곡식을 선물로 주어 보냈다.

그것은 집에 있는 가난한 나오미를 퍽 기쁘게 했을 것이다. 이것은 보아스가 룻을 싫지 않은 감정을 갖고 집으로 보냈다는 증거이기도 하며, 만일 그가 룻을 빈 손으로 돌려 보냈다면 나오미는 의혹에 잠겼을 것이다. 보아스는 룻에게 풍성한 곡식을 그녀의 베일이나 앞치마나 겉옷에 담아 주었을 것이다. 현명한 곡식 주인답게, 그는 자기가 나누어 준 곡식을 잘 계산해 두고 있었다. 그는 "여섯 번" 되어 주었다. 아마 6오멜이었을 것이며 10오멜이 1에바이다. 분량이 얼마이든, 보아스는 룻이 잘 갖고 갈 수 있는 많은 양의 곡식을 주었다(15절). 시리아역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그녀로 하여금 그것을 나를 수 있는 힘을 주셨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부인하였다. "예언의 영은 그녀에게서 그 시대의 가장 의로운 사람 6명" 곧 "다윗, 다니엘과 그의 세 동료들, 그리고 메시아 왕이 나오게 되리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는 것이다.

 💡 1:21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라는 탄식을 했다.

그런데 본문에서(3:17) 보아스는 룻에게 ‘네 시모에게 빈손으로 (텅 비어) 가지 말라’고 하며 보리를 주었다.

이것은 보아스가 두 과부의 텅빈 삶을 그대로 버려 두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시였다. 이 말 한마디로 나오미는 그녀의 힘든 삶이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와 보아스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갖게 된다. 즉 본문은 텅 빈 마음을 갖고 하나님에게 돌아온 나오미를 하나님은 보아스를 통해 채워 주실 것이며, 이후로의 나오미의 삶이 더 이상 팅 빈 삶이 아닌 풍족하게 채워진 삶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하는 것이다. 

Ⅱ. 그녀의 시어머니는 룻이 돌아왔을 때, 어떻게 그녀를 맞이해주었는가?

나오미는 룻에게 "이게 누구인고? 내 딸이 아닌가? 너는 신부가 되었느냐 못되었느냐? 내가 네게 기쁨을 주어도 될까?" 라고 물었다. 그리하여 룻이 나오미에게 그 일을 다 고했을 때(17절) 나오미는,

  1. 룻이 자기의 행한 일을 기쁘게 생각하도록 권고했다.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되는 것을 알기까지 가만히 앉아 있으라" (18절). "하늘에서 어떻게 선포되는가를 기다리자"

 💡 나오미의 이 말은 인간의 모든 일 뒤에 보이지 않게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표현이다.

이는 룻에게 집에 꼭 붙어 앉아 있어야 한다는 장소적 의미보다는, 잠잠히 지켜 보며 기다리라는 태도를 강조하는 표현이다. 인간의 모든 노력 뒤에 그 결과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다리라는 뜻인 것이다.

나오미와 룻은 이제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러므로 이제 일의 결과만 남아 었는 것인데 그 일의 결과는 그들의 손으로 결정지을 수 없다는 것을 나오미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진인사 대천명 이라는 말과 같이 나오미는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보아스의 손을 통한 하나님의 처분을 기다리는 하나님 절대 주권의 신앙을 가진 여인이었다.

- 시리아역은 그렇게 해석하였다. 결혼은 하늘에서 성사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룻은 이제 그녀가 해야 할 일을 마치고 결과를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하며 초조해 하여서는 안 되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하나님의 섭리에 맡기고, 소망을 지니고서,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든 그대로 순응하여 좇겠다는 마음가짐을 배우도록 하자. 때로는 우리가 한 일이 미약한 것일지라도 그 결과가 아주 훌륭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가만히 앉아 있으라. 그리하면 이 사건이 어떻게 되는지를 알게 되느니라. 그 일이 어떻게 되든 나는 그것에 대한 각오가 되어 있노라."

2. 나오미는 룻에게 이 일을 맡은 보아스는 진실되고 섬세한 친구로서의 임무를 행할 것이라고 확신에 찬 말을 들려 주었다.

"그 사람이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않으리라."

비록 보아스는 밭과 타작 마당에 할 일이 많이 쌓여 있었지만 친구의 일을 맡은 그는 그 일을 위해 열심히 좇아다녔을 것이다. 나오미는 보아스가 룻에게 호감을 갖고 있으므로 룻이 자기의 사람이 되는지 아닌지를 알게 될 때까지는 마음이 편치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나오미가 룻에게 조용히 앉아 있고 초조해하지 말라는 것은 이 일을 맡은 보아스가 그것을 잘 처리할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선한 그리스도인이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고 그들의 근심, 걱정을 하나님께 맡겨야 할 이유는 더욱 많은 법이다. 하나님이 "그들을 돌보아 주시기로"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아 주시는데 우리가 왜 근심하겠는가? "가만히 앉아 있으라. 그러면 사건이 어떻게 되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너에게 좋은 것으로 이루어 주시리라(시 37:4, 5; 138:8). "잠잠하여 힘을 얻으라" (사 30:15).

 💡 영적 교훈 서론

본문은 룻기 어야기의 절정에 해당하는 3장의 마지막 단락으로 자신의 청혼에 대해 보아스로부터 기업 무를 자의 의무를 이행하겠다는 답변을 들은 룻이 집으로 귀가하여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간밤에 있었던 일에 대해 보고하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룻의 보고를 다 들은 나오미의 반응입니다. 즉 나오미는 룻의 보고를 듣고 그녀에게 ״이 사건이 어떻게 되는 것을 알기까지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하였습니다.

→ 이 말에는 자신들은 할 일을 다했으므로 이제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위해 하시는 일을 가만히 바라보자는 신앙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는 나오미가 하나님께서 이 일을 이루어 주실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성도들도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다한 후에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 처분을 기다리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