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10월 29일 토요일 삼상4:12-18 엘리가 죽다

Jeehyun 2022. 10. 31. 00:08

맥체인성경읽기

열왕기하10, 디모게후서1, 호세아2, 시편119:97-120

묵상구절

4:12 당일에 어떤 베냐민 사람이 진영에서 달려나와 자기의 옷을 찢고 자기의 머리에 티끌을 덮어쓰고 실로에 이르니라

4:13 그가 이를 때는 엘리가 길 옆 자기의 의자에 앉아 기다리며 그의 마음이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떨릴 즈음이라 그 사람이 성읍에 들어오며 알리매 온 성읍이 부르짖는지라

4:14 엘리가 그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이르되 이 떠드는 소리는 어찌 됨이냐 그 사람이 빨리 가서 엘리에게 말하니

4:15 그 때에 엘리의 나이가 구십팔 세라 그의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4:16 그 사람이 엘리에게 말하되 나는 진중에서 나온 자라 내가 오늘 진중에서 도망하여 왔나이다 엘리가 이르되 내 아들아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

4:17 소식을 전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였고 백성 중에는 큰 살륙이 있었고 당신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임을 당하였고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나이다

4:18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가 많고 비대한 까닭이라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사십 년이었더라

매튜헨리/옥스퍼드

●엘리의 죽음(사무엘 상 4:12-18)

블레셋 사람들에게 진 치명적인 패전의 소식이 실로까지 전달되었다. 나쁜 소식일수록 빨리 전달된다. 이 소식은 즉시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었다. 각기의 장막으로 도망친 자들은 분명히 본 바를 이웃 사람들에게 전해 주었다. 하지만 어느 곳보다도 이 슬픈 소식은 실로에 즉시 전달되어야만 했다. 그래서 급히 실로에 급사를 보냈다. 그 사람은 베냐민 사람이었다. 유다인들은 그 사람이 사울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패배의 참담한 소식을 엘리에게 전한 사람은 베냐민 지파에 속해 있던 어떤 사람이었다. 랍비들은 이 전령이 베냐민 지파에 속한 사울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저자는 베냐민 지파가 본문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다. 그러나 갑자기 베냐민 지파가 언급되고 있는 것은 우연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사울이 속해 있는 베냐민 지파의 어떤 사람이 엘라에게 죽옴의 소식을 전함으로써 실로의 제사장직이 사울의 왕직으로 넘어가는 것을 암시해 주는 저자의 복선이라고 해석할 수는 있다

"그는 옷을 찢고, 그 머리에 티끌을 무릅썼다."

그는 그가 달려가는 것을 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슬픈 소식임을 알려 주며, 또 그 자신도 매우 가슴이 아프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이런 표시를 하였을 것이다(12절). 그는 그 소식을 가지고 곧장 실로를 향해 달려갔다. 우리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기사들을 볼 수 있다.

Ⅰ. 그 성읍이 그 소식을 접하게 되었을 때의 형편을 볼 수 있다. "엘리는 성문 곁에 앉아 있었다" (13,18절).

👉 원문에는 한글개역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은 ‘그리고 보라!’ 라는 감탄사로 시작하고 있다.

전령은 비통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먼 길(에벤에셀(1절)에서 실로까지는 대략 35km의 먼 거리였음)을 당일에 달려오는 긴박함을 보이고 있지만, ↔ 대제사장 엘리는 무능력하게 의자에 앉아 있는 대조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의자’에 앉아 있을 때,

의자: 1:9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상징적으로 엘리가 담당하고 있는 제사장직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사무엘서 전체에서 특별한 역할을 한다.
 →인생을 역전시키시는 여호와를 한나가 찬양할 때 ‘영광의 위 (의자)'라는 말에서 등장(4:13), 엘리가 충격을 받아 ‘의자'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18절), 그리고 하나님이 다윗에게 ‘그 나라의 위(의자)' 를 영원히 견고케 할 것이라고 약속하는 장면(삼하 7:13)에서도 등장.
저자는 이 단어를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일꾼으로서 그 자리에 직접 앉을 사람이 누구인가를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움을 받았지만(3:20), 엘리가 비워 놓은 의자에 앉을 인물로 소명 받은 것이 아니고 그 의자에 앉을 사람이 누구인지 확실히 하기 위해서 부름을 받은 것이다.
또한 사무엘서 기자는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과 관련해서는 전혀 ‘의자'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는다. 이로써 그는 보좌가 없는 왕이었음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오직 다윗의 후손에게만 ‘그 나라의 위 (의자)'가 약속된다.
이렇게 한나가 기도하는 장면과 그녀의 노래와 연관되어서 나오는 ‘의자'에 대한 본서 기자의 언급은 엘리로 시작해서 사무엘, 사울을 거쳐 다윗에 이르는 하나님 뜻에 따른 정교한 구속사의 흐름을 암시하는 하나의 단서가 된다. 

그러나 급사는 그에게 먼저 소식을 전하기가 꺼려서, 그의 곁을 그대로 지나쳐 가서 온 성에 슬픈 소식을 고하였다. 그리하여 전에 예언되었던 바 그대로,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렸다" (3:11). 그들의 가슴은 무서움에 떨었고, 그들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

"온 성이 부르짖었다" (13절).

이것이 온 이스라엘에 대해서도 침통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들에게 있어서는 더욱 실로의 멸망과 쇠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궤가 그 후 얼마되지 않아서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도로 찾아오기는 하였지마는, 다시는 결코 실로에 돌아오지는 않았다. 그들은 그들의 "처음 사랑을 버렸기" 때문에 그들의 촛대가 그들에게서 옮겨졌으며, 그 성읍은 점차 쇠잔해져서 자취도 없이 사라지게 되었다.

👉 온 성에 있는 백성들이 하나같이 부르짖고 애통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기 때문. 언약궤가 이방 민족에게 빼앗긴 사건은 이스라엘로서는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초유의 사건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난 것을 의미했다. 언약궤에 대한 언급이 없었던 1차 전쟁에서는 이와 같은 부르짖음이 없었다. 모든 백성돌이 언약궤의 피탈 소식을 접하고 애통해하는 상황에서 정작 백성의 지도자인 엘리는 의자에 앉아서 마옴만 졸이고 있는 무능력한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제사장 엘리가 전쟁에 관한 소식을 다른 사람들보다 늦게 듣게 된다는 것(17절)은 그의 영적 무능함을 드러내는 동시에, 18절에서 언급되는 엘리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극적으로 전달하려는 저자의 의도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실로의 성막을 떠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그들에게서 떠나 가시게 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궤를 그들 속에 간직함으로 340년간 축복을 누려왔던 에브라임 지파는 그 영광을 상실하였다(시 78:60, 67). 그리고 그후에 그 영광은 유다 지파와" 그 사랑하시는 시온 산" 으로 옮겨졌다(68절).

이는 실로 사람들이 "그들의 은혜의 날" 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실로를 버렸던 일을 오랜 후에 예루살렘에 대한 경고로 이용된 일이 있다(렘 7:12). "너희는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둔 실로게 가서, 내가 어떻게 행하는가를 보라." 그러한 까닭에 실로 사람들은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다는 말을 듣고 부르짖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Ⅱ. 엘리에게 내려진 비참한 운명을 볼 수 있다.

  1. 그는 두려운 마음으로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비록 나이가 많고, 눈이 잘 보이지 않았고, 몸이 둔했어도 이스라엘의 영광이 백척간두의 위험한 지경에 놓인 것을 알고는 그대로 자기방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누구보다도 먼저 그 고식을 듣고자 하여 몸소 길가까자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만큼 엘리의 마음은" 여호와의 궤로 인하여 떨리고 있었다" (13절).
👉 그 마음이 여호와의 궤로 인하여 떨릴 즈음이라..

아마 대제사장이었던 엘리는 백성들과 장로들의 강권, 특허 자신의 두 아들들의 강권함 때문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어 언약궤를 내주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 같은 결정으로 인해서 상당히 고민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당시 엘리의 불안한 심리 상태를 반영하고 있는 본문은 그가 이미 앞으로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인가에 대한 예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엘리의 세심한 마음은 하나님의 궤가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게 되며, 승리의 소식이 가드에 알려지며, 아스글론 거리에 전파되면, 이는 하나님께 얼마나 욕을 돌리며, 이스라엘에게 다시 돌이킬 수 없는 불운을 가져다 주게 되는 것임을 알 수가 있었다.

엘리는 또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알고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잘못 (특히 엘리의 아들들의 잘못) 때문에 하나님의 궤를 빼앗기게 되었으며 블레셋 사람들은 그것을 노리고 있었다. 지금 그의 마음 속에는" 너는 내 처소의 환난을 볼 것" 이라(2:32)은 예언이 떠올라서 두려워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또 그의 마음은 그의 권위를 가지고 하나님의 궤를 전쟁하는 진영으로 끌고 가는 것을 막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그를 떨게 만들었다.

훌륭한 신자들은 모든 세속적인 일이나 자기 자신의 문제보다는 하나님의 교회의 문제에 대해 보다 깊은 관심을 두고 있으며, 하나님의 교회가 위험에 처했을 때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다. 만일 하나님의 궤가 안전치 못하다면 어떻게 안심할 수 있단 말인가?

2. 엘리에게 전해진 소식은 슬픈 소식이었다. 그는 비록 볼 수는 없었지만, 온 성이 "부르짖고" "훤화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그것이 애가요 슬픔의 노래요 탄식소리인 것을 알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조심스러운 지도자답게 "이 훤화하는 소리는 어쩜이뇨" 라고 물었다(14절).

👉 15절, 그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엘리는 옷이 찢어지고 머리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달려온 전령에게 전쟁의 결과에 대해서 질문하고 있다. 만약 그가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질문을 하지 않고도 전쟁의 결과에 대해서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상황을 제대로 볼 수 없고 다만 백성들이 지르는 혼란의 소리만을 들을 수밖에 없는 엘리의 처지는 하나님의 임재와 다스림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는 당시 이스라엘의 영적 헌설을 반영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엘러의 모습은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는 3:1 의 시대적 분위기틀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16절, ‘무슨 일이 있었느냐?’

무슨 일이 있었느냐?'라는 엘리의 질문은 앞절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엘리의 눈이 어두워서 볼 수 없었다는 저자의 진술을 뒷받침해 준다. 그 베냐민 사람은 전쟁의 참패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자신이 옷을 찢고 머리에 재를 뿌리고 왔지만 엘리는 그것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와 같이 물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질문을 통하여 저자는 엘리가 신체적으로 눈이 어두워졌을 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를 지각하는 판단력도 어두워져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진중에서 되어진 모든 일을 직접 보았기 때문에 자세히 말해 줄 수 있는 급사가 진중에서부터 왔노라는 대답을 엘리는 들었다(16,17절).

이스라엘 군대가 패배하고, 많은 군사들이 살륙을 당하였다는 소식은 사사인 그에게는 매우 슬픈 소식이었을 것이다. 또 아버지로서, 비록 그들을 제멋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기는 했어도 그의 두 아들이 회개하지 못한 채 비명에 죽었다는 소식은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들 때문에 그의 마음이 그처럼 떨렸던 것은 아니었다. 그의 심령은 그것들보다 더욱 큰 관심사에서 쏠려 있었다. 그 관심사는 다른 것들을 덜 생각하게 할 만한 것이었다. 그는 압살롬의 소식을 듣고 다윗이 취했던 것과 같이, 그의 아들들에 관한 슬픈 소식이 전해졌다고 해서 그 말을 멈추게 하지 않았다. 그는 말을 하지 않아도, 그 급사가 이스라엘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궤에 대한 소식을 틀림없이 말해 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에 그의 말을 끝까지 들으려고 하였던 것이다. 엘리는 그가 이렇게 말해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하나님의 궤는 안전합니다. 그것은 지금 도로 모셔 오는 중입니다." 그랬다면 그의 기쁨은 능히 다른 재난 때문에 오는 슬픔을 극복하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이며, 이로써 안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급사는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나이다" 라는 말로 그의 이야기의 끝을 맺었다. 그 말을 듣자 엘리의 마음은 큰 충격을 받았으며, 그의 심령은 낙담하였고, 그는 졸도하여 의자에서 넘어졌다. 그는 실신하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였기 때문에 갑자기 죽고 말 한 마디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의 심장이 먼저 터지고 다음에 그의 목이 부러졌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이요 사사인 그가 무참히 쓰러졌다. 이처럼 98년간 그의 목 위에 붙어 있던 그의 무거운 머리가 떨어져 나갔다. 이처럼 40년 동안 사사로서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한 그의 영광의 면류관이 그의 머리에서 떨어져 나갔다. 이처럼 그의 태양은 구름 속으로 가리워졌고, 그의 악한 아들들을 바로 잡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그 자신이 넘어지고 쓰러지게 되었다. 이처럼 하나님은 때로 그 자신을 바르게 처신하지 못한 의인들에게 하나님 자신의 불만의 표시를 나타내 보여 주시는데, 이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이를 보고 두려워하는 가운데 경고로 삼게 하고자 하시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비참한 죽음을 죽지마는 영원한 죽음이 아닌 죽음을 당하는 수가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불의한 죽음을 죽되 평안하게 죽는 수가 있다. 라이트푸트(Lightfoot) 박사는 "엘리의 죽음이 대속받지 못했기 때문에 목이 꺾인 나귀 새끼의 죽음과 같은 것" (출 3:13)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엘리에 대한 칭찬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는 그의 아들들이 죽임을 당했다고 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고 죽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 것과 같다.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궤와 함께 쓰러지게 하라. 하나님의 은혜가 떠났는데 경건한 이스라엘이 어디에서 위로를 찾을 것인가?" 하나님의 궤가 없는 이 세상에서는 살 필요조차 없다는 태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