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칼럼

그리스도의 영광 (2)

하나지기 2022. 1. 12. 15:22

그리스도의 영광 3.

장래의 영화에 대하여 왜 우리는 깊이 생각지 못하고 은혜를 얻지 못하는가?

장래의 상태에 관해 그들이 관념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 세상에서 장래의 일을 체험한 데에서 나온 생각이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 이 세상에서 장래의 일에 대한 것을 체험하지 않고서는 우리의 마음에 영원히 남아 있을 만한 것을 만들 수도 없고, 우리의 정서에 계속적인 감화를 끼칠 수도 없다.

 

그렇다. 장래의 영광에 대해 아무리 생각한다 할지라도, 이 세상에서 미리 맛보거나 지각되거나 체험되거나 어떤 증거를 가진 것이 아니라면 영혼이 혼란만 겪을 뿐 힘을 얻지는 못할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하늘에 있는 것을 이 세상에서 체험해 보지 않고서는 그것을 고대할 수가 없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누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무엇인가를 고대하고 있다.

자신이 만든 예배, 그림, 음악이 은혜를 가져다 줄 수 있는가?

그러하기에 믿음의 효력을 통해 자기 속에서 그 영광을 조금이라도 맛보지 못한 사람들은, 결국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여러 형상과 그림과 음악으로 가득 채워 자기들이 하늘에 대해 공상하는 것으로 그 영광에 대해 무엇인가 아는 체하기 마련이다.

 

그런 사람들은 참된 영광을 기대할 수도 없고, 그것을 가질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들 스스로가 참된 영광의 능력을 전혀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그들이 마음속에서 그 영광의 첫 열매를 통하여 그것이 얼마나 선한지를 전혀 맛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땅에 있을 때에는 오직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봄으로써 그것을 하늘에서 직접 보게 될 때 얼마나 복될지를 가늠할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마음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찬미하고 감탄하게 되며, 그 영광을 누리고자 간절히 소원하게 된다. 목회자들이 신자들을 세우는 목적이 무엇인가?

우리가 지금 신자들을 세우는 목적은 주로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게 하려는 것이다.

왜냐하면 믿음의 삶과 능력이 바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는 데 가장 탁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주로 그런 믿음의 행사에서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이 우러난다. 만일 우리가 힘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가져 우리 영혼에 진정한 만족과 평안을 얻고 싶다면, 부지런히 그리스도의 영광을 묵상하는 일에 온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다른 방식으로는 그런 믿음의 역사를 기대할 수 없다. 생각과 정서 속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부지런히 묵상하는 삶을 살 때, 그분의 영광에 비하면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해야만 이 세상에 속한 모든 것들을 십자가에 못 박고, 급기야 그런 것들이 내 속에서 죽고 형편없는 것들이 되어 어떤 방식으로든 애착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정도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