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열왕기하 21, 히브리서 3, 호세아 14, 시편 139
묵상구절
11:1 암몬 사람 나하스가 올라와서 길르앗 야베스에 맞서 진 치매 야베스 모든 사람들이 나하스에게 이르되 우리와 언약하자 그리하면 우리가 너를 섬기리라 하니
11:2 암몬 사람 나하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 오른 눈을 다 빼야 너희와 언약하리라 내가 온 이스라엘을 이같이 모욕하리라
11:3 야베스 장로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에게 이레 동안 말미를 주어 우리가 이스라엘 온 지역에 전령들을 보내게 하라 만일 우리를 구원할 자가 없으면 네게 나아가리라 하니라
11:4 이에 전령들이 사울이 사는 기브아에 이르러 이 말을 백성에게 전하매 모든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울더니
11:5 마침 사울이 밭에서 소를 몰고 오다가 이르되 백성이 무슨 일로 우느냐 하니 그들이 야베스 사람의 말을 전하니라
11:6 사울이 이 말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매 그의 노가 크게 일어나
11:7 한 겨리의 소를 잡아 각을 뜨고 전령들의 손으로 그것을 이스라엘 모든 지역에 두루 보내어 이르되 누구든지 나와서 사울과 사무엘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의 소들도 이와 같이 하리라 하였더니 여호와의 두려움이 백성에게 임하매 그들이 한 사람 같이 나온지라
11:8 사울이 베섹에서 그들의 수를 세어 보니 이스라엘 자손이 삼십만 명이요 유다 사람이 삼만 명이더라
11:9 무리가 모든 전령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길르앗 야베스 사람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내일 해가 더울 때에 너희가 구원을 받으리라 하라 전령들이 돌아가서 야베스 사람들에게 전하매 그들이 기뻐하니라
11:10 야베스 사람들이 이에 이르되 우리가 내일 너희에게 나아가리니 너희 생각에 좋을 대로 우리에게 다 행하라 하니라
11:11 이튿날 사울이 백성을 삼 대로 나누고 새벽에 적진 한가운데로 들어가서 날이 더울 때까지 암몬 사람들을 치매 남은 자가 다 흩어져서 둘도 함께 한 자가 없었더라
매튜헨리/옥스퍼드
▶스페셜포인트
사무엘상은 사사 시대 말기에 등장하여 그 자신어 이스라엘의 최후의 사사였던 사무엘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텍하신 자에게 기름을 붓고 왕으로 세움으로써 사사 시대가 마감되고 왕정이 개시되는 과도기의 역사률 다루고 었다. 그러나 본서는 단순허 이스라엘의 사회•정치 체제가 지파 동맹(Confederacy) 또는 부족 연할 체제에서 왕정 체제로 이양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즉 본서는 사무엘을 끝으로 모세, 여호수아 시대는 물론 사사 시대까지 계속 유지되어 온 신정 체제가 외형적으로는 왕정 체제로 바뀌지만 그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인 사무엘을 통해 주권적으로 이스라엘의 왕을 텍하시고 또 그를 당신의 뜻에 대한 순종을 기준으로 페하거나 세우심으로써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신정과 그로 말미암은 이스라엘의 선민으로서의 정통성은 계승 유지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본서는 제1부 1-10장, 제2부 11:1-19:17, 제3부 19:18-31:13 등 전3부로 구성.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엄밀한 것은 아니며 다만 본서의 핵심 인물인 사무엘, 사울, 다윗 세 사람이 내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따라 구분한 것이다.
- 이러한 맥락하의 제1부인 제1-10장은 이스라엘 신정 왕국 탄생의 산파 역할을 수행했던 사무엘의 등장과 사역 및 이스라엘 정치 체제의 왕정 체제로의 이양에 대하여 보도하고 있다.
- 그리고 그에 이어지는 제2부 11:1-19:17은 백성들의 요구에 의해 하나님이 세우신 사사를 중심으로 한 지파 동맹 체제가 마감되고 왕정 체제가 이스라엘에 도입되었으나 하나님의 통치를 대행할 신정적 왕으로서의 측면은 깊게 인식하지 아니하고 그저 자기들 민족의 세속적 욕구를 채워줄 왕을 요구한 이스라엘 민족의 첫 왕으로 세움 받은 사울이 자신은 물론 전민족과 더불어 처옴에는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흥하였으나 나중에는 불순종함으로 실패한 사실 및 하나님께서 사울을 대신하여 당신의 마음에 합한 다윗을 신정 왕국 이스라엘의 새 왕으로 예비하신 것과 관련하여 보도하고 있다.
그리고 본서 제2부는 다시 크게 사울의 초기 통치와 실수에 대하여 다루는 전반부 11:1-15:35과 하나님이 예비하신 세 왕 다윗의 등장에 대하여 다루는 후반부 16:1-19:7로 구분된다. 그리고 전반부 11:1-15:35은 다시 11:1-12:25과 13:1-15:35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이중 11:1-12:25은 미스바 총회에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출된 사울이 온 이스라엘 백성으로부터 왕으로 신임 받고 왕으로 공식 즉위하게 된 사건인 암몬족 격퇴 사건과 사울의 즉위 및 왕정 개시에 즈음한 사무엘의 설교를 보도한다.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피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11:1-15의 세 문단은 사울이 이스라엘 왕으로 백성들로부터 인정받게 된 결정적 사건인 길르앗 야베스를 포위한 암몬 족속을 격퇴한 사건과 사울의 공식 즉위에 대하여 다룬다. 주지하다시피 이스라엘은 사울을 왕으로 선출하고 사무엘이 나라의 제도도 정함으로써 민족적 숙원이었던 왕정 체제의 틀을 세웠다. 하지만 오랫동안 사사 시대의 체제에 길들여져 있었을 뿐만 아니라 사무엘의 지도력을 따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골 청년으로서 혜성같이 등장하여 왕으로 선출된 사울을 왕으로 따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심지어 백성들 중에는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하겠느냐'라고 하며 사울을 멸시하는 자들도 있었다(10:27). 말하자면 민심이 사울을 따라주지 못한 것이다. 그리하여 사울 역시 왕으로의 즉위식도 갖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평소와 같이 농사를 짓고 있었다(4,5절).
그런데 사울이 자신의 지도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고대 국가에서는 왕의 지도력이 주로 전쟁을 통해 평가되었는데 마침 암몬과의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암몬 족속(Ammonites) 은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과 그의 둘째 딸 사이에서 난 아들의 자손들로 호전적이고 잔인해서 늘 이스라엘을 괴롭혀 왔다(삿 3:13). 이러한 암몬 족속이 요단 동편에 정착한 므낫세 지파에 속한 길르앗 야베스를 침공한 것이다(1-3절).
이 소식을 들은 사울은 하나님의 신에 크게 감동되었다. 그리고 온 이스라엘 땅에 사자를 보내어 순식간에 33만의 군사를 소집하고 그들을 이끌고 나아가 암몬 족속을 격퇴함으로써 그의 카리스마와 군사적 통솔력을 유감 없이 발휘하였다(6-11절). 이렇게 하여 사울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의 지도력을 인정받고 길갈에서 왕으로 공식 즉위하게 되었으며(12-15절), 이것은 마침내 사사 서대가 막을 내리고 왕정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다음의 두 가지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1. 먼저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 대한 사랑은 그들의 범과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영적, 도덕적 타락은 간과한 채 자신들의 시련의 원인을 외적 정치 체제에서만 찾아 그들의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인간 왕을 구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을 배반한 것으로 명백한 범죄 행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러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여 주신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 대한 사랑은 그들의 행위와 상관없이 지속되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범죄하면 징계하기는 하신다. 이스라엘도 하나님께 범죄할 때 하나님의 정계를 받곤 하였다. 심한 경우에는 나라를 잃고 이방 땅에서 포로 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정계는 하실지언정 그들을 완전히 버리지는 아니하시며 그들이 진실로 회개하기만 하면 다시 구원하여 주신다. 바로 여기에 성도가 소망이 사라진 것과 같은 상황에 처할지라도 구원의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근거가 있으며 하나님을 찬미할 이유가 있다.
2. 다음으로 주목할 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일이 성령의 충만이라는 것이다.
본문을 보면 길르앗 야베스의 소식을 들을 때 사울은 하나님의 신에 크게 감동되었다. 이것은 달러 표현하면 성령으로 충만케 되었다는 말에 사울이 이렇게 성령으로 충만케 되자 그에게는 엄청난 번화가 일어났다. 성령으로 충만케 된 사울에게서 왕으로 선출되었으면서도 비류들의 멸시에 잠잠할 수밖에 없었던,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가 농삿일이나 해야 했던 나약한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강한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로 변신하였다. 그리고 그 카리스마로 군사들을 소집하여 나하스의 암몬 군대를 단숨에 격파하였다.
이처럼 성령 충만으로 인한 변화의 모습은 주의 제자들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다. 주의 제자들은 성령으로 충만하기 전까지는 주를 부인하며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도망치기에 급급하였다(마 26:56.69-75). 그러나 그들이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말미암아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 되었다. 그들은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행 4:19.20).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복음으로 세계를 정복하였다. 이처럼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성령의 충만이 필수적인 요건인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무엇보다도 성령의 충만을 구해야 한다.
한편 사울이 암몬을 격퇴함으로 그의 지도력이 드러나자 무리들 중에는 사울에게 아부하는 자들도 생겨났다. 그들은 사울이 왕으로 선출되었을 당시 그를 멸시했던 자들을 색출하여 응징하겠다고 하였다(12절). 그러나 사울은 그들을 응징하는 대신 관용을 베풀었다. 이는 자신의 승리가 하나님의 은총인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13절).
이처럼 사울은 즉위 당시만 해도 겸손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그가 만일 이 자세를 그대로만 유지하였다면 그는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왕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즉위한 지 불과 2년밖에 지나지 않은 때부터 즉위 당시의 초심을 버리고 하나님보다 자기를 앞세우는 인본주의적 자세를 갖게 된다. 이로써 그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왕으로 기억되게 된 것이다. 오늘날 많은 영적 지도자들이나 정처 지도자들이 처음 시작할 때의 초심을 버리고 점차 교만해져 실패하는 자로 남는 것은 사울의 전철을 밟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난국에 처한 길르앗 야베스(사무엘상 11:1-4)
👉앞장에서는 사울이 선지자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고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미스바’ 에서 공식적으로 선출되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사울은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된 유력한 자들에게는 지지틀 받았지만, 비류들에게는 멸시를 받았다. 즉 이스라엘 전체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는 못하였던 것이다(10:26, 27). 이러한 상황에서 본장은 사울이 길르앗 야베스를 침공하려는 암몬 족속을 물리치면서 어스라엘 모든 백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이스라엘의 명실상부한 초대 왕으로 등극하게 되는 과정을 다룬다.
사울은 이 과정에서 하나님의 신에 감동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돌을 명령하고 적진에 뛰어들어 용맹을 떨처는 왕으로서의 카리스마를 드러냄은 물론 더 나아가서 자신을 비난했던 사람들을 용서함으로써 왕으로서의 후덕함까지 겸비한 인물로 소개되고 있다. 따라서 본장은 앞장 마지막에서 어떤 비류가 제기했던 질문, 즉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 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주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즉 사울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고 다스릴 수 있는 왕으로서의 자격이 있음이 암몬 족속과의 전쟁을 통해서 입증된 것이다. 그리고 사울은 이러한 업중 과정을 거친 뒤 ‘길갈’ 에서 공식적인 이스라엘의 왕으로서의 즉위식을 갖게 된다.
한편 본장에 등장하는 암몬 족속은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과 그의 막내 딸이 근친상간으로 나은 ‘벤암미' (창 19:38)의 후손. 따라서 이들은 이스라엘과는 깊은 혈연 관계를 지니고 있다. 암몬 족속은 요단 동편(Transjordan)에 거주하였다. 즉 그들은 삼삼숨밈족을 멸하고 아르논강에서 압복강 사이인 북동 지역을 점령했고(신 2:20,21) 수도를 랍바 암몬으로 정했다(삼하 12:26). 그 듈은 밭람에게 뇌물을 주고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했을(신 23:3-6) 뿐 아니라 가나안 정복 이후사사 시대에 접어들면서 같은 지역에 정착하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과 잦은 영토 분쟁을 빚어왔다. 그런데 이제 ‘뱀' 이라는 뜻을 가진 암몬 족속의 통치자 나하스가 요단 동편에 있는 길르앗 야베스에 쳐들어 왔다. 나하스는 사울과 다윗 시대에 걸쳐 암몬 을 다스리던 왕으로 그의 이름만큼 교활한 사람이었다. 사울 시대에 이스라엘을 쳐들어왔던 나하스는 후에 다윗과 우호 관계를 맺지만(삼하 10:2), 그의 아들 하눈이 다윗을 대적하여 이스라엘과의 관계는 다시 악화된다(삼하 10:3-14).
이들이 다스리던 암몬 족속은 이스라엘과는 달리 일찍부터 왕정 제도를 채택했기 때문에,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이스라엘보다 더 집약되고 강력한 힘을 발휘하였다.
본장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사해 사본에 첨가된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암몬 족속의 나하스 왕은 갓사람들과 르우벤 사람들을 가혹하게 억압했다. 두 지파 사람들의 오른쪽 눈을 다 도려내고 어느 누구도 이스라엘을 구해 내지 못하게 했다. 요단 동편에 사는 사람 중에 암몬 족속의 나하스 왕에게 오른쪽 눈을 뽑히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암몬 족속에게서 탈출한 사람 7,000명이 있었는데 그둘이 길르앗 야베스로 들어갔다. 약 한달 뒤에 암몬 사람 나아스가 올라와서…”
사해 사본에는 이상의 내용이 본문 앞에 첨가되어 있다. 사해 사본에 첨가된 내용의 신빙성과는 별개로 이는 암몬이 길르앗 야베스에 대하여 진을 친 배경과 오른쪽 눈을 빼겠다는 무서운 경고의 배경을 이헤하는 데 도움을 준다.
암몬 사람들은 룻의 자손들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을 정중히 대해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언제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나쁜 이웃이었다(신 2:19 참조). 입다의 시대에 그들의 오기를 꺾어 놓은 일이 있는데, 이제 와서 이스라엘이 죄를 범하게 되자, 그들은 다시금 머리를 쳐들고, 복수를 하고자 나서게 되었다. 전에 기브아를 칠 때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나오지 않음으로 이스라엘의 정의의 칼이 그들을 쳤던 일이 있다(삿 21:10). 그런데 이제는 그 때 이스라엘의 칼날을 피했던 사람들의 후손이 많아지고, 그들이 다시금 암몬 사람들의 침략을 당할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그 고장은 불운이 따르고 있는 것 같다. 암몬 왕 나하스(대상 19:1)가 길르앗 야베스를 포위 하였다.
👉 길르앗 야베스:
‘길르앗 야베스' 는 ‘야베스' 의 의미가 ‘건조한 땅'임에도 불구하고역설적으로 유목에 적합한 좋은 목초가 많이 자라는 넓은 평원 지역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르우벤과 갓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가 일찍이 이 지역을 기업으로 요구하였고 가나안 정복 후 약속대로 이들이 이 지역을 차지하였다(신 3:12,13; 수 17:6). 유목 문화권에서 목초지는 생명과 같은 것이었으므로 길르앗 야베스에서 많은 분쟁이 있었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암몬 족속은 사사 시대 때부터 이곳을 탐내서 침공하였으나 사사 입다에 의해 패하고 말았다(삿 11:13). 본절에서 암몬 족속은 이러한 과거의 패배를 설욕함과 동시에 이제 왕정 제도를 도입하려는 역사적 전환기에 있는 이스라엘의 세력 성장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쳐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Ⅰ. 포위당한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적군에게 담판을 제의하였다(1절).
"우리와 언약하자. 그리하면 우리가 항복하고 너를 섬기리라" 라고 말했다.
👉 고대 근동의 ‘종주권 조약’
이것은 일중의 불평등 계약으로 약소국은 속국으로서 강대국을 섬기되 일정한 조공과 강대국에 수행하는 전쟁에 참여하는 부담을 져야 했다. 본문은 당시 암몬 족속이 상대적으로 강이었음을 시사한다. 이머 암몬을 포함한 이방 국가들은 강려한 왕권이 형성되어 부국 강병을 이룬 상태였다(8:5). 따라서 이제 왕조를 갓 태동시킨 이스라엘로서는 암몬 족속에게 이러한 종주권적 평화 조약 체결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의 위상이(출 19:6) 너무도 초라하게 추락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싸워보기도 전에 전의를 상실한 나약한 태도가 아닐 수 없으며, 이는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전반적 모습이었던 것 같다.
그들은 이스라엘인으로서의 덕을 잃어버렸다. 아니라면 그들은 그처럼 용기를 잃어버리고 그들과 싸우는 대신에 암몬 사람들을 순순히 섬기겠노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저버리지 않고, 그를 섬기기기를 중단하지 않았다면, 그처럼 이방 백성들과의 언약을 생각할 필요가 없었으며 그들을 섬기겠노라고 스스로 제안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Ⅱ. 포위군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비열하고도 잔인한 대우를 하겠다고 큰 소리쳤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오른 눈을 빼고 서야" 목숨을 살려 주고, 자기들의 노예로 삼겠다고 말했다(2절).
길르앗 사람들은 생명을 건지는 댓가로 자유와 재산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암몬 사람들이 만일 그들의 말대로 그들을 휩쓸었다면 사건은 신속히 전개되었기 때문에, 길르앗 사람들이 구원을 요청하는 말을 사방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말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길르앗 사람들이 굴욕적으로 나오자, 암몬 사람들은 더 오만한 요구를 하게 되었으며, 단지 그들을 노예로 삼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고 하게 되었다.
👉 2절 본문은 길르앗 야베스 거민 전체의 ‘오른쪽눈’ 을 칼로 도려내어 불구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말...
역사가 요세푸스 (Josephus) 는 왼쪽 눈은 방패로 가러워지기 때문에, 오른쪽 눈을 빼는 것은 병사에게 있어서 전투력을 상실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는데, 본문에서 암몬 사람 나하스가 발언한 내용도 야베스 사람들의 전루력 상실과 더불어 완전한 종속을 장담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눈을 빼서 불구를 만드는 모티브는 본문 외에도 삼손의 기사(삿 16:21)와 시 드기야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상황에서도 등장한다(왕하 25:7). 이러한 나하스의 발언은 한 개인이나 지파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에 모욕이 되는 국가적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하스가 이렇게 장담하고 있는 것은 암몬 족속의 군사적 절대 우위를 반영하고 있다.
여기에는 이스라엘과 평화를 유지할 생각은 전혀 없으며 길르앗 야베스 거민을 무력화시키고 종속시켜 사사 입다에게 당하였던 것에 대해 앙갚음하겠다는 의지가 서려 있음을 알 수 있다.
- 그리하여 그들에게 가혹한 고통을 주기 위해 그들의 눈 하나를 빼겠다고 하였다.
- 그것은 길르앗 사람들로 하여금 싸움은 못하게 하되, 일은 시킬 수 있게 하고자 하는 것이었다(만일 일마저 못시키면 큰 손해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 사람들은 왼 손에 방패를 잡고 싸웠으므로, 왼눈은 방패로 말미암아 가리워지기 때문에 오른눈을 뺀다는 것은 눈 둘을 다 빼는 것과 같았다.
- 암몬 사람들은 이같이 하며 "온 이스라엘을" 겁쟁이라고 하며 "모욕하여야" 만 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한 중요한 도성이 이처럼 학대를 받는데도 그들을 구출하지 못한다는 것을 들어 모욕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Ⅲ. 포위당한 길르앗 사람들은 그들의 제의를 두고 생각할 시간의 여유를 가지기 위해 이레 동안의 유예를 구하였다(3절).
만일 나하스가 이때 그들에게 이러한 유예를 주지 않았다면, 길르앗 사람들은 암몬 사람들을 쳐서 이기기는 커녕 그들의 손에 들린 칼로 무참히 살륙 당하였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나하스는 그들의 구출작전이 그처럼 신속히 진행될 줄 짐작하지 못하고, 그들을 침공하는 자신들의 세력이 큰 것만 믿고, 유예를 주면 그만큼 길르앗에 대해 큰소리를 칠 수 있고, 그 승리도 그 만큼 혁혁할 것이라는 허세 속에서 그들에게 이레 동안의 유예를 주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 그의 안심이 그의 방심이 되었고, 그의 멸망이 되었다.
👉본절에서 암몬 사람 나하스가 이러한 야베스 장로들의 요구를 들어주었는지의 여부는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계속되는 사건 속에서 그 요구를 수용했음이 밝혀진다.
여기에는 왜 나하스가 야베스 사람들을 즉각적으로 공격하지 않았는가에 관해서는 제시되어 있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야베스 사람들의 이러한 요청이 받아들여져 그들은 이스라엘 온 지경에 사자를 파견하여 구원자 사울을 찾게 된다.
암몬 사람 나하스가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은 궁국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에 의한 것이다. 하지만 표면적으로는 암몬 족속의 군사적 우월성을 자신한 나하스의 교만의 결과였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악한 자의 교만을 역으로 이용하사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분이다.
한편 당시 야베스를 대표하는 자로 장로들이 등장하는 것은 사울이 비록 공식적인 제비뽑기에 의해 왕으로 선출되기는 하였지만 아직 왕정 체제가 확립되지는 못했음을 보여준다. 당시 이스라엘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지역 유지둘인 장로둘의 지도에 의하여 움직여지고 있었다. 따라서 사울은 왕으로 선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를 몰며 농사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5절). 그러나 이 암몬과의 전쟁의 결과로 사울의 왕권이 급속도로 강화되어 이스라엘도 체계적인 왕정 정치의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Ⅳ. 기브아에도 이 소식이 전해졌다. 길르앗 사람들은 "이스라엘은 지경에" 사자를 보내리라고 하였다(3절).
👉야베스의 장로들은 위기 상황을 맞이하여 벨엘과 길같과 미스바(7:16) 등과 같은 당시 정처적 중심 도시에만 사자를 보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모든 땅, 심지어 변방까지 길르앗 야베스를 구원할 자를 찾으러 보냈다.
이것이 나하스로 하여금 더욱 안심하게 만들었는데, 왜냐하면 나하스는 이것이 매우 시간이 걸리는 일이며, 그들에게두령이 없으면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마 그 때까지 나하스는 새로 선출된 왕에 대해 들은 바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사자들은 그들의 생각인지 혹은 주인들의 생각을 따라서 했는지 모르지만, 곧장 기브아로 가서, 사울을 만나지는 않고, 그 소식을 백성들에게 전했으며, 그들은 이 소식을 듣자 소리 높여 울었다(4절). 그들은 형제들의 재난과 위험의 소식을 듣자, 그들을 도와 줄 생각대신에 탄식만 하고 있었으며, 그들을 위해 피를 흘리는 대신에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그들은 길르앗 사람들을 구할 길이 막연하게 되자 울고 있었으며, 변방의 도읍을 점령한 적군들이 나라의 심장부까지 쳐들어 올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모든 기브아 사람들이 마치 자신이 당한 괴로움인 양 소리를 높아며 울었던 것은 베냐민 족속인 기브아 사람들과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의 특별한 관계 때문이었다.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삿 21장에 처음 나타난다. 베냐민 지파와 이스라엘 연함군과의 전투에서 야베스 거민들이 이스라엘 동행에 불참하였다는 이유로 이스라엘 연합군은 길르앗 야베스 거민을 응정하였다. 그리고 이때 살아남은 400명의 처녀들은 전쟁으로 여인들이 거의 멸절된 베냐민 지파의 남자둘과 결혼을 하였다. 베냐민 지파를 상대로 한 이스라엘의 동맹 전쟁에 불참한 것 때문에 치른 야베스 사람듈의 희생은 너무도 큰 것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으로 인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과 기브아 사람들은 한 친족이나 다름없이 친밀했다. 때문에 길르앗 야베스에 암몬 사람들이 쳐돌들온 사건을 접했을 때 기브아 사람돌은 마치 자신들에게 닥친 일처럼 소리치며 울었던 것이다.
●사울이 길르앗 야베스를 구함(사무엘상 11:5-11)
여기서 전개된 사건은 사울의 명예를 높여 주었으며, 열매를 맺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사실들을 볼 수 있다.
Ⅰ. 사울의 겸손을 볼 수 있다.
그는 왕으로 기름부음를 받고, 백성들로부터 왕으로 인정되었어도, 자기의 짐승떼를 돌보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지 않고, 몸소 짐승떼를 돌보기 위해 들로 나갔으며, 저녁에 사환들과 함께, "밭에서 부터 소떼를 몰고" 들어오고 있었다(5절).
가난한 사람들이 출세하면 보통 대단히 우쭐대는데, 사울은 그의 출세에도 불구하고 우쭐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섭리가 아직 그에게 왕으로서 할 일을 주지 않고 있었다. 그는 모든 것을 아직 사무엘에게 맡기고 있었다. 그러나 결코 게을러서가 아니고, 자기 집을 위해 농사 일을 돌보고 있었다.
그것 때문에 더욱 비류들은 사울을 경멸하였으리라고 짐작되지만, 스스로 일을 하였다는 것은 매우 현명한 일이며 조금도 나쁘게 생각할 것이 못된다고 본다. 사울은 자기의 지위를 유지할 만한 다른 수입원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짐을 백성들에게 지우고자 하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바울처럼 자기 손으로 일을 했다. 그가 만일 집안 일을 등한히 하였다면 어떻게 그는 자기 자신이나 집안 사람들을 위한 살림을 꾸려나갈 수 있었을까? 솔로몬은 사람들이 자기의 소떼를 계속해서 돌봐야 한다는 이유로서 "면류관이 대대에 계속되지 못한다" 는 점을 말한 바가 있다(잠 27:23, 24). 사울의 왕관도 오래 가지 못했다. 그러므로 사울도 보다 확실한 것을 마련해야만 했다.
👉본문은 사울이 왕으로 선출된 후에도 집에 둘아와(10:26) 여전히 농사를 짓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에 대해서 흑자는 사울이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고도 우유부단하여 자신의 통치권을 행사하지 아니하였다고 비관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사 시대에서 왕정 시대로 전환하는 과도기 상태에서 사울이 왕의 역할을 단지 백성을 적의 침략에서 구원하는 사사의 역할 정도로만 인식했기 때문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아직 공식적인 즉위식을 갖지 않은 상황에서(15절) 사울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며 자신의 일상 생활에 층실하고 있었다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결국 본문은 사울이 암몬과의 전쟁에 대해서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도움으로 승리하여 이스라엘의 왕으로 공식 즉위하게 된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사전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Ⅱ. 이웃에 대한 그의 관심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이 울고 있는 것을 보자 그는 이렇게 물었다. "백성이 무슨 일로 우느냐? 물리칠 수 있는 비운이면 그들을 도와주겠고, 그럴 수 없는 것이면 나도 함께 울리라." 훌륭한 통치자는 백성들이 눈물 흘릴 때 자기도 가슴을 아파한다.
Ⅲ. 이스라엘의 안전과 명예를 위한 사울의 열정을 볼 수 있다.
그가 암몬 사람들의 침략과 이스라엘의 어머니 성읍이 재난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하나님의 신에게 감동을 받아", 그의 마음속에 위대한 생각이 떠올랐으며, "그의 노가 크게 일어났다" (6절).
👉사울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신에 감동되었다는 언급이 여러 번 반복되어 등장한다(10:6,10). 사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자만이 할 수 있다. 본장에서 사울도 ‘하나님의 신'이 임함으로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번하여 이전에 발견할 수 없었던 용맹스러운 영웅의 모습으로 등장하게 된다. 본장에 펼쳐지는 사울의 용감한 행동은 왕으로 선출되던 미스바에서의 모습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이다(10:22). 그리고 하나님의 신에 감동되어 암몬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사울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공식적으로 즉위하게 된다.
그러나 이후 사울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으므로 그 ‘여호와의 신'은 사울을 떠나 다윗에게 임하게 되고(16:13), 사울에게는 ‘여호와의 부러신 악신’ 이 임하게 된다(16:14). 이러한 사실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꾼은 어느 한때 하나님의 신에 감동되는 것에 만족하여서는 안되며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울은 암몬 사람들이 침략에 대해 진노하였으며,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굽실거리는 태도에 대해 진노하였으며, 암몬 사람들이 공격해 오자마자 즉시 자기에게 보고하지 않은 길르앗 사람들을 향해 진노하였다. 그는 또 그 소식을 듣자마자 싸울 준비는 아니하고 울고만 있던 이웃 사람들에 대해서도 진노하였다. 이제 사울의 가슴속에는 강렬한 불꽃이 타올랐다.
👉우리는 여기서 사울의 분노를 모세와 비느하스의 경우와 같이
하나님을 향한 열심에서 기인된 의분
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출 32:19; 민 25:11). 사사 삼손 역시 하나님의 신에 감동되었을 때 크게 노하여 블레셋의 아스글론 사람 30명을 죽인 일어 있었다(삿 14:19).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신에 의해 감동을 받고 자신의 소명을 자각했으므로 하나님의 백성을 모독하는 악한 자의 도발에 대하여 크게 분노하였으며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떨쳐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Ⅳ. 사울이 중요한 시기에 그의 권위와 권력을 나타낸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곧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자기가 자기 개인의 일을 위해 집안에 머물러 있기는 하지마는, 나라의 일을 염려하고 있었으며, 들에서 소떼들을 잘 몰 수 있는 것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싸움터로 몰고 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였다(5,7절). 그는 그의 세력의 한계가 자기의 한 지파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온 지파에 미친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이스라엘 모든 지경에 출동명령을 보내어, 모든 용사들로 하여금 베섹에 있는 집합장소로 각각 무장을 하고 나오라고 명령하였다.
👉 ‘그 소들도 이와 같이 하리라’
본문에서 사울의 경고는 명령에 불복한 사람이 아니라 그돌이 가지고 있는 소들을 죽이겠다는 것이지만 그 역시 심각한 경고가 아닐 수 없었다. 왜냐하면 당시 유목 문화권에서 소는 재산 가치가 매우 높은 가축이었기 때문에 한 개인에게서 그의 소유한 소를 모두 죽인다는 것은 곧 그 사람의 파산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사실들을 관찰하자.
1.그는 자기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면서도 사무엘을 따르는 겸손함을 표시하였다.
"누구든지 나와서 사울과 사무엘을 쫓지 아니하면" 이라고 사울은 말했다. 그는 왕으로서의 자기 직무를 수행하면서도 선지자의 직분을 무시하지 않았다.
2.그는 자기의 명령을 복종하지 않은 사람에게 징벌을 내리겠다고 위협하면서도 자기의 유순함을 나타내었다.
그는 소의 각을 떠서 그것을 이스라엘의 여러 고을로 보내면서 그가 명령하는 공적인 요구를 묵살하지 말라는 경고를 내리면서, 그는 "그들도 이와 같이 하리라" 라고 말하지 않고 "그 소들도 이와 같이 하리라" 라고 말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실을 크신 심판이라고 하여 백성들을 경고하신 일이 있다(신 28:31). "네 소를 네 목전에서 잡았으나 네가 먹지 못할 것이다." 그러한 명령을 강력히 시행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벌칙이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그가 내리겠다고 하는 책벌은 전체 총회의 이름으로 내린 그것과 비슷한 명령에 따르는 책벌처럼 그렇게 가혹한 것은 아니었다(삿 21:5). 사울은 자기의 정부는 이스라엘 백성이 전에 통치받던 그런 정권보다 유한 정권임을 보여 주고 싶었다.
그의 출동 명령의 결과 온 나라의 의용군들이 모두 한 사람같이 나왔다. 그런데 그 이유를 "여호와의 두려움이 백성에게 임하였기 때문" 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울은 자기를 두렵게 만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사울을 그들의 왕으로 삼아주시고 자기들을 서로 지체가 되게하여 주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가운데서, 사울의 명령을 쫓도록 감동을 받았다. 신앙과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은 모든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 나라의 국가적인 이익에 관심을 가지는 훌륭한 국민, 훌륭한 군인, 훌륭한 친구로 만들어 준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모든 인간에 대한 책임, 특히 그들의 규칙을 잘 준행하는 인간이 된다.
Ⅴ. 사울이 그의 큰 일을 진행시키면서 신중하게 처사한 것을 볼 수 있다(8절).
그는 자기에게 나온 사람들을 계수하였다. 그것은 자기들의 힘을 알아서 자기들의 힘이 허락하는 가장 훌륭한 적의 퇴치 방법을 알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그의 군사의 수를 아는 것은 왕들의 명예이다. 그러나 "그 군대의 수를 계수할 수 없는 것이" 왕중의 왕이신 분의 영예이다(욥 25:3). 이 소집령에서 보면, 물론 자기들이 센 수효이기는 하나 유다 지파가 그렇게 출중하지는 못하다. 왜냐하면, 12지파 중의 하나이지만, 집결지가 유다 지파의 땅인 베섹이었는데도 그들의 수는 전체 11분의 1인 3만 3백3십 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유다 지파가 숫적으로 부족했거나, 용기가 없었거나, 아니면 그 유명하던 열심이 식어서 였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홀(왕권)이 유다 지파인 다윗의 손에 돌려지기 바로 직전의 유다는 이렇게 초라했었다.
👉본문은 정확한 숫자까지 제시하면서 담시 많은 사람들이 모였음을 보여주는 데, 이처럼 사울의 명령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모였음을 강조하는 것은 사울의 위대한 지도력을 부각시려는 저자의 의도.
Ⅵ. 이 일을 수행하는데 있어서의 사울이 믿음과 확신, 그리고 (거기에 기초한) 그의 용기와 결심을 볼 수 있다.
사울은 길르앗 아베스로부터 소식을 가져온 그 사자들을 이스라엘 온 지경에 보내어 의용군을 모집했으며, 이번에는 다시 그들을 낙심 중에 있는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 보내어 용기를 주며 확신을 주게 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충실하게 그들의 임무를 다한 사람들이었다(사울은 이런 말로 그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준 것 같다).
"내일 해가 더울 때, 즉 원수들이 이레 동안의 유예가 다 끝났다고 말하기 전에, 너희가 구원을 얻으리라(9절). 너희는 너희가 할 일을 다하라. 우리는 우리의 할 일을 실수 없이 하겠다. 우리가 포위군을 공격할 때, 너희는 그들을 역습하라."
사울은 자기에게 정당한 이유가 있으며 분명한 소명이 있으며, 그리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분명히 성공할 것을 알고 있었다.
이것은 포위당한 길르앗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이 기쁜 소식이었다. 그들의 눈은 슬픔에 젖어 있었으며, 구원의 가망이 없어지자 다음에 뒤따라 일어날 재난을 위해 가슴 아파하며, 마지막 날이 임박됐다고 슬퍼하던 자들이었다. 위험이 초급하면 할수록, 그 구원은 더 기쁜 것이다. 그들은 구원의 이 소식을 듣자 크게 기뻐했으며, 이를 확신하였다. 그리고 야베스 사람들은 암몬 사람들에게 내일 그들을 만나기 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10절). 이 말을 암몬 사람들은 야베스 사람들이 구원 받을 길이 없다고 절망하여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다는 것을 통보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만일 암몬 사람들이 정탐을 보내는 일 같은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실수를 저질렀으며 놀라운 일을 당했어도, 그것은 자업자득이었다. 포위당하고 있는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그들이 확실한 구출의 소망을 일부러 그들에게 알려 줄 리는 없었던 것이다.
Ⅶ. 이 일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의 사울의 뜨거운 근면을 볼 수 있다.
그가 만일 젊어서부터 전쟁을 많이 해 보았으며, 소떼나 양떼를 몰았듯이 자주 많은 군사들을 지도해 온 경험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 일을 그처럼 빈틈없이 재빠르게 이끌어 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시면 경험이 없는 사람도 훌륭하게 일 처리를 할 수 있다(특히 오늘날의 형펀과 비교해 볼 때). 사울은 많은 군사들을 거느리고 행진하였다. 그 길이는 약 60마일이요, 요단 강까지 미칠 수 있는 길이였다. 그의 군대에는 마병대조차 없었으며, 모두가 보병들이었다. 사울은 이들을 삼대로 나누었다(11절). 다음의 사실에 주목하자.
1.그는 얼마나 놀랍도록 신속히 적진까지 쳐들어 갔는가!
하루 밤 하루 낮 사이에 그는 작전 지역까지 군사들을 이끌고 갔는데 이로 말미암아 그와 그리고 이스라엘의 행운이 결정되었다. 그는 약속을 어기지 않겠다고 장담하였다. 아니 그는 약속한 것 이상으로 이를 잘 지켰다. 그는 "내일 해가 더울 때에 "그들을 돕겠다고 약속하였다(9절). 그러나 그는 그들을 돕기 위해 "새벽에" 적진에 뛰어들었다(11절).
2.그는 얼마나 용감하게 적진 중에 뛰어들었는가!
새벽 일찍 알맞은 때, 온 사람들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살륙할 승리의 꿈을 꾸고 있을 때, 사울은 그들이 미처 깨닫지도 못할 사이에 그들 중에 쳐들어 갔으며, 그의 군사들도 삼대로 나뉘어, 사방에서 그들을 에워싼 채 공격해 들어갔다. 그리하여 적군은 감히 대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사울의 명예를 확고하게 하여 주기 위해 이 일을 완전히 성공할 수 있도록 하여 주셨다.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구원을 받았고, 암몬 사람들은 완전히 패주하였다. 그날 그의 승리는 그가 "암몬 사람들을 치매 많은 자가 다 흩어져서" 서로 격려하며 돕기 위해 "두 사람도 함께 한 사람이 없을 정도" 였다(11절). 우리는 사울이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이 사건에 적극성을 띠고 참여하였다고 짐작할 수 있다.
3.베냐민 지파와 길르앗 야베스 사이에는 어떤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길르앗 야베스는 기브아를 공격할 때, 나머지 이스라엘 여러 지파들과 합 세하지 않은 일이 있었다. 그 죄 때문에 길르앗 야베스는 책벌을 받았다. 그러므로 기브아 사람 사울이 그 때의 그들의 친절을 기억하고 그들을 돕기 위해 열심이었다고 볼 수 있다 .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때 남은 베냐민 사람의 3분의 2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의 딸들을 아내로 취한 일이 있다(삿 21:14). 그러므로 대부분의 베냐민 사람들의 어머니는 길르앗 야베스에 대해 더욱 친절을 베풀었다. 나중에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그 의 친절을 갚아 주었다(31:11, 12).
4.암몬 사람들의 침공 때문에 백성들이 왕을 요구하였던 것이기 때문이다( 이점에 대해서는 사울 자신도 말한 바가 있다 -12:12). 그러므로 만일 사울 이 이 구출 작전에서 자기의 임무를 다하지 않으면 백성들의 기대에 실망을 주고, 영원히 그들의 신망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