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역대하 17, 요한계시록 6, 스가랴 2, 요한복음 5
묵상구절
2:8 사울의 군사령관 넬의 아들 아브넬이 이미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데리고 마하나임으로 건너가
2:9 길르앗과 아술과 이스르엘과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더라
2:10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이스라엘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사십 세이며 두 해 동안 왕위에 있으니라 유다 족속은 다윗을 따르니
2:11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 족속의 왕이 된 날 수는 칠 년 육 개월이더라
매튜헨리/옥스퍼드
●이스라엘의 내란(사무엘하 2:8-17)
👉 8-11절은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마하나임에서 정부를 수립하고 북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한 사실 및 다윗과 이스보셋의과도 남북 분할 통치 기간에 대하여 보도.
Ⅰ. 두 왕(하나님이 세운 다윗과 아브넬이 세운 이스보셋)간의 경쟁심.
사람들은 사울이 전사했을 때 그의 똑똑한 아들들도 출전했을 것이므로 다윗이 아무런 반대 세력 없이 왕위에 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 자신이 암시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지명하셨음을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일부 사람들의 모순된 생각으로 인해서 아버지(사울)와 함께 전쟁터에 나가기에도 부적합한 약하고 어리석은 이스보셋이 다윗을 무시하고 왕위를 계승하리라고 생각했다. 다윗의 왕국은 "열방이 분노하며 관원들이 꾀하며" (시 2:1, 2) 메시야의 왕국에 도전하는 전형적인 모형이다.
1.아브넬은 이스보셋을 다윗과 경쟁해서 왕으로 세운 사람이다.
아브넬은 사울의 직계 자손이 왕권을 계승해야 하리라고 열망했다(아브넬 일파들은 왕위가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 계승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브넬은 자기의 가족과 친족에 대한 사랑과 관심도 컸다(아브넬은 사울의 사촌임. 삼상 14:50). 그리고 이렇게 하지 않고는 자신의 명예로운 지위를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교만과 야망이 얼마나 큰 화를 일으켰음을 주시하자. 이스보셋은 아브넬의 도움이 없이는 왕위에 오를 수 없었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이스보셋을 도구로 쓰려했다.
👉 본문은 이스보셋을 복쪽 이스라엘의 왕으로 추대한 중심 언물어 아브넬임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본절의 주어 아브넬이 문장의 서두에 나와 있을 뿐 아니라 ‘사울의 아들넬의 아들’ 이란 문장의 수식을 받고 있다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본절에 나오는 동사는 물론 9절의 ‘왕을 삼았더라’ 에 해당하는 동사도 모두 아브넬을 주어로 취하고 있다. 즉 아브델은 이스보셋을 데리고 마하나임으로 건너가 왕으로 세운 주역이었던 것이다.
아브넬은 누구인가?
바로 이러한 인물 아브델은 ‘내 아비는 등불이다’ 혹은 ‘빛의 아버지’ 란 이름 뜻을 가진 자로서 사울과는 사촌 관계에 있었다(삼상 14:50). 그는 사울과 함께 여러 전쟁에 참여한 노련한 군인으로서 사울 군대의 군장이 되었고 사울이 죽고 난 후에는 이스라엘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이스보셋의 왕권
반면 사울의 넷째 아들로 왕위를 계승한 이스보셋은 표면상의 지도자에 불과했다. ‘이스보셋’ 은 ‘남자' 란 뜻의 ‘이쉬’ 와 ‘부끄럽다’ 라는 뜻의 ‘뽀쉬’ 가 합쳐진 말로서 ‘부끄러움의 사 람' 이란 뜻을 가진다. 그러나 대상 8:33에는 그의 이름이 ‘바알의 남자' 란 뜻이 있는 ’에스바알’로 나온다. 아마도 ‘에스바알이 원래 이름이었으나 후에 ‘바알’ 이란 말이 ‘주인’, ‘영주’란 뜻보다는 우상의 이름으로 더 보편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저자는 이방신의 이름이 들어간 이름을 피하고 앞으로 나타날 ‘이스보셋’ 의 소신 없는 행동을 비난하는 의미에서 ‘이스보셋’ 이란 별명을 제시하고 있는 듯하다.
다윗이 유다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상황에서 아브넬이 취한 행동은 매우 부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즉 다윗이 유다 사람들의 자발적인 추대로 왕으로 세워진 반면, 아브넬은 사울의 아들인 이습셋을 강제로 ‘취하여’ 왕으로 세우려고 하고 있음을 대조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 이 때 사용된 동사는 원어상 사울이 왕으로 세워지기 전에 선지자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왕정 제도의 위험성을 경고할 때 반복적으로 사용했던 단어로, 잘못된 길을 걷는 왕의 권력 행사 방식을 나타내었다(삼상 9:10-18).
본문에서 이러한 동사가 사용되고 있는 것은 사울이 사망한 후에 이스라엘의 설질적인 통치자는 바로 이 동사의 주체인 ’아브넬’이며, 데려감을 당하는 ‘이스보셋’은 단순히 명분상의 통치자임을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북이스라엘의 이런 상황이 시사하는 바는?
-이는 북부 이스라엘이 남부 유다와 비교해 볼 때 비정상적인 길을 걸어가고 있음을 나타낸다.
-아브넬과 이스보셋은 사울과 구별되는 독립된 정치 세력이 아니라 여전히 사울 왕가의 잔존 세력이었다. 본문은 ‘사울’이라는 명칭을 2회 반복하며 이를 드러낸다. 본문은 사울과 요나단이 사망하고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 신본적 정통성을 지닌 다윗이 유다의 왕으로 세워진 상황에서도 사울 왕가의 잔존 세력이 남아 인본주의적 입장에서 사울의 아들로서의 왕의 정통성을 주장하며 다윗 왕가와 갈등을 빚을 것과, 인본주의적 왕 사울의 맥을 이으며 세워질 북이스라엘의 왕가가 또다시 실패의 길을 걷게 될 것을 예시한다.
2.이스보셋이 왕위에 오른 마하나임은 요단강 동편에 있고 다윗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곳이고 다윗의 세력이 미치기에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들의 세력을 강하게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스보셋이 이곳에서 왕의 기치를 들자 지각없는 이스라엘 지파 사람들(이들에 대한 통칭)은 그에게 복종했고(9절), 오직 유다 족속만 다윗을 따랐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다윗의 믿음과 하나님께서 그의 약속을 실현하시기까지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계기가 되었다.
👉 ‘마하나임’
마하나임은 갈르엣과 압복강 사이에 위치한 성읍으로 과거 야곱이 여호와의 사자의 환상을 본(창32:2) 유서 깊은 곳이다. 아브넬이 본래의 수도인 기브아를 버리고 이곳을 새로운 왕도로 선택한 이유는 이 장소가 요단 동쪽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즉 요단 동쪽 땅은 길보아산 전투에서 승리한 블레셋이 강한 영향력을 미처고 있었던 반면 요단 서쪽에 위치한 마하나님은 블레셋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마하나임'은 사울에게 우호적이었던 길르앗 야베스와 가까워 그곳 사람들로부터 충성과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아브넬과 이스보셋이 마하나임으로 건너간 이러한 과정은 다윗이 여호와의 자문을 얻어 헤브론으로 올라갔던 상황(1-3절)과 대조를 이룬다.
아브델의 행위에는 여호와께 묻는 행위가 없었을 뿐 아니라 사울의 왕가를 존속시키려는 인간적 노력만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저자는 결국 여호와의 도움을 통해서 세워진 다윗 왕가와 친인척 관계 내지는 군사적 무력을 통해서 세워진 이스보셋 왕가의 대립적인 묘사를 통해서 신본주의적 다윗 왕가와 인본주의적 이스보셋 왕가의 본질적인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4절에서 다윗이 유다의 왕이 된 것과 대구를 이루는 9절, 이스보셋의 통치 범위가 매우 광범위 했음.
-이 지역들의 범위는 사실상 팔레스틴 남부의 유다를 제외한 이스라엘 전역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열거된 지역 중 많은 부분은 이스라엘의 패배와 사울 왕의 죽옴으로 언해 이미 블레셋의 통제하에 들어갔으며, 이러한 이유로 아브넬과 이스보셋이 요단 동편인 마하나임으로 피해 왔기 때문에 이스보셋이 본절에 열거된 전지역을 직접 다스렸다고 보기는 힘들다. 더욱이 본문에 나온 ‘온 이스라엘'에 해당하는 표현은 이미 다윗이 유다의 실질적인 왕이 된 이후의 상황에서 유다 지역과 구분하기 위해 사용된 차별화된 표헌일 뿐 실제 사실에 대한 객관적 묘사는 아니다.
-결국 본문의 표현은 당시의 정황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을 보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윗은 매우 현실적으로 왕권을 굳혀가고 있는 반면에 이스보셋은 명분만 내세운 허황된 왕국을 건설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저자의 의도가 내포된 표현이다.
이스보셋의 왕권은 여호와가 아닌 인간이 세운 것
-‘기름을 부었다’는 언급이 전혀 없음.
-본단락에는 ‘기름을 부었다׳ 는 언급어 전혀 없으므로 이스보셋이 왕이 된 것은 여호와 하나님과 무관한 것으로서 철저히 인간적인 방법을 통해서 이루어졌음을 반영한다. 이렇게 사울 왕가의 재건을 보도하는 본문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 여호와가 지시한 곳에서 백성들의 자발적인 지지를 받으며 왕이 되었던 다윗의 경우와 대조틀 이룬다, 따라서 이는 사울 왕가의 맥을 잇는 이스보셋의 마하나임 정부가 인간적인 방범을 통해서 잠시나마 존속되지만 하나님과 백성들이 인정하지 않은 체제이므로 오래가지 못할 것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이스보셋이 40세에 왕이 됨을 밝힘
-여기서 저자가 이스보셋의 나이를 명시하고 있는 것은 그가 4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아브넬에 의해서 반강압적으로 왕이 되었다는 사설을 알림으로써 사울 왕가의 불안전성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그러고 본절에는 이스보셋이 이 년 동안 위해 있었던 것으로 나오는데 이는 앞절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이스보셋이 B.C. 1005년 정도에 즉위하여 B.C.1003년 정도에 죽은 것을 나타낸다. 이스보셋은 아브넬의 위세에 눌려서 무기력하게 지냈을 뿐 아니라 그 재위 기간 또한 짧았던 것이다.
3.다윗이 직면한 어려움은 이스보셋과 경쟁하는 기간이 오래 지속되는 것이다.
다윗이 유다 족속만 다스린 것이 7년이었다(11절). 그런데 이스보셋은 2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이스보셋이 다스린 2년(10절) 이전이거나 그 이후, 또는 이 양 기간을 합한 것을 "사울의 집" (3:6)의 통치 기간으로 간주하고, 이 기간에 특이한 인물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이스보셋이 통치한 것이 오랫 동안 계속된 내란(12절) 이전이거나 남은 5년에 포함되었을 것이다(3:1).
👉 앞선 10절에서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마하나임에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두 해 동안만 다스린 사실을 밝힌 데 이어 본절에서는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 족속의 왕으로 다스린 기간이 일곱 해 여섯 달임을 밝히고 있다.
본서 저자가 굳이 이를 밝힌 것은
1.일차적으로는 사울 왕가의 연장선상에 있는 마하나임 정부는 단명한 반면 다윗 왕가는 창성하고 있음을 보여주가 위해서이다.
2.뿐만 아니라 이는 더 나아가서 다윗이 유다 왕으로 즉위한 지 일곱 헤 여섯 달이 지난 후에 다윗의 왕권과 관련하여 중요한 일이 발생할 것을 암시하는 역할도 한다. 그것은 바로 다윗이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것이다.
한편 사울의 후손인 이스보셋이 아브넬에 의해서 왕이 되는 과정을 중점적으로 다룬 본단락(8-11절)은 다윗이 유다의 왕이 되는 과정을 다룬 단락(1-4절)처럼 네 구절에 해당하는 짧은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과정상 유사한 흐름을 가지고 있는 두 사건은 여호와의 개입 여부와 백성들의 지지 여부에 따라 본질적인 차이점을 드러내고 있다. 즉 여호와께 인준을 받은 다윗 왕조와 여호와께 버림을 받은 사울 왕조가 함께 세워지고 있지만, 사울 왕조는 결국 망하게 될 것이 이미 두 사건의 대조적 기술을 통해 예시되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