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1월 16일 월요일 삼하17:15-29 후새의 계략과 아히도벨의 죽음

Jeehyun 2023. 1. 18. 01:25

맥체인성경읽기

창세기 17, 마태복음 16, 느헤미야 6, 사도행전 16

묵상구절

17:15 이에 후새가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이르되 아히도벨이 압살롬과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이러이러하게 계략을 세웠고 나도 이러이러하게 계략을 세웠으니

17:16 이제 너희는 빨리 사람을 보내 다윗에게 전하기를 오늘밤에 광야 나루터에서 자지 말고 아무쪼록 건너가소서 하라 혹시 왕과 그를 따르는 모든 백성이 몰사할까 하노라 하니라

17:17 그 때에 요나단과 아히마아스가 사람이 볼까 두려워하여 감히 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에느로겔 가에 머물고 어떤 여종은 그들에게 나와서 말하고 그들은 가서 다윗 왕에게 알리더니

17:18 한 청년이 그들을 보고 압살롬에게 알린지라 그 두 사람이 빨리 달려서 바후림 어떤 사람의 집으로 들어가서 그의 뜰에 있는 우물 속으로 내려가니

17:19 그 집 여인이 덮을 것을 가져다가 우물 아귀를 덮고 찧은 곡식을 그 위에 널매 전혀 알지 못하더라

17:20 압살롬의 종들이 그 집에 와서 여인에게 묻되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이 어디 있느냐 하니 여인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들이 시내를 건너가더라 하니 그들이 찾아도 만나지 못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니라

17:21 그들이 간 후에 두 사람이 우물에서 올라와서 다윗 왕에게 가서 다윗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들은 일어나 빨리 물을 건너가소서 아히도벨이 당신들을 해하려고 이러이러하게 계략을 세웠나이다

17:22 다윗이 일어나 모든 백성과 함께 요단을 건널새 새벽까지 한 사람도 요단을 건너지 못한 자가 없었더라

17:23 아히도벨이 자기 계략이 시행되지 못함을 보고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일어나 고향으로 돌아가 자기 집에 이르러 집을 정리하고 스스로 목매어 죽으매 그의 조상의 묘에 장사되니라

17:24 이에 다윗은 마하나임에 이르고 압살롬은 모든 이스라엘 사람과 함께 요단을 건너니라

17:25 압살롬이 아마사로 요압을 대신하여 군지휘관으로 삼으니라 아마사는 이스라엘 사람 이드라라 하는 자의 아들이라 이드라가 나하스의 딸 아비갈과 동침하여 그를 낳았으며 아비갈은 요압의 어머니 스루야의 동생이더라

17:26 이에 이스라엘 무리와 압살롬이 길르앗 땅에 진 치니라

17:27 다윗이 마하나임에 이르렀을 때에 암몬 족속에게 속한 랍바 사람 나하스의 아들 소비와 로데발 사람 암미엘의 아들 마길과 로글림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17:28 침상과 대야와 질그릇과 밀과 보리와 밀가루와 볶은 곡식과 콩과 팥과 볶은 녹두와

17:29 꿀과 버터와 양과 치즈를 가져다가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에게 먹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 생각에 백성이 들에서 시장하고 곤하고 목마르겠다 함이더라

매튜헨리/옥스퍼드

●다윗에게 전해진 정보(사무엘 하 17:15-21)

💡 앞선 1-14절에는 다윗을 죽이기 위하여 아히도벨이 모략을 세웠으나 이를 파하기 위해 후세가 역모략을 제시하였고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압살롬이 후새의 모략을 채택하였음이 기록되었다.

그리고 이에 이어지는 본절부터 23절까지는 후세가 일촉즉발의 위기에 처한 다윗에게 안전한 곳으로 도망치도록 첩보틀 제공하는 내용과 자기 모략이 실행되지 못한 것으로 인해 아히도벨이 자살해 죽는 내용이 기록된다.

이러한 내용을 전달하는 본단락은 하나님이 택한 자는 위기 상황에서도 구원을 받지만,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악인은 오히려 안전한 자리에서 떠나 스스로 멸망에 처한다는 교훈을 준다.

여기서 다윗의 적도들이 후새의 모략을 따라 승리감에 기뻐하면서 약속된 장소에서 만나 그의 모략대로 수행하려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소집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여기서 압살롬의 계획을 시행하려는 것을 미리 다윗에게 알리려는 다윗의 친구들의 모략을 발견할 수 있다.

👉 15절,
-이러한 새로운 내용이 시작되는 본절은 후새가 전에 다윗으로부터 받았던 명령을 철저히 순종하고 있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전에 다윗은 그에게 궁중에서 일어나는 모든 얼을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에게 다 고하라고 명했었다(15:35). 후새는 그러한 다윗의 명령을 잊지 아니하고 아히도벨과 자신이 압살롬에게 베푼 모략에 대해 두 제사장에게 상세히 보고함으로써 다윗으로 하여금 속히 피신케 하였던 것이다.
-후새는 압살롬이 자신의 모략을 채택하자마자 두 제사장에게로 곧장 달려가 그들이 다윗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렸다. 위기에 처한 다윗을 보호해야 한다는 일념에 사로잡힌 후새로서는 일분 일초도 흘려보낼 수 없었던 것이다.

16절,
-후새는 혹시 일어날지도 모르는 사태에 대해 만반의 준비를 부탁했다. 압살롬이 채택한 모략은 후새의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모략을 실행에 옮겨 다윗을 추적하기까지는 적어도 며칠이 걸릴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다윗의 목숨이 경각간에 달린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새가 광야 나룻터에서 자지 말고 건너가라는 전략을 두 제사장에게 말한 것은 만에 하나 아히도벨의 모략이 실행될 수도 있다는 우려 및 자신의 모략이 채택된다 할지라도 다윗이 하루라도 급히 피해야 안전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 후새는 군사회의에서 결정된 것을 제사장들에게 알려 주었다(15절). 그러나 아직은 아히도벨의 모략이 시행될 것인지는 확실치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최선을 다해서 알리지 않으면 질투심이 많은 아히도벨이 다윗왕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을 죽일 것이기 때문이었다(16절). 후새가 모략 회의에 소환되었을 때 벌써 그들은 결론을 지어 놓았었다(5절). 그러나 후새는 그들의 마음을 바꾸어 놓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것은 악인들을 대적하시는 하나님의 선의였으며 파괴자들로부터 선한 이들을 지키시려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였다.

압살롬은 예루살렘 거리를 삼엄하게 지키게 했지만 다윗에게 필요한 정보는 전달되었다.

👉 반란자와 그를 따르는 자들은 악에 사로잡혀 있어서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물론이거니와 그를 따르는 모든 백성의 목을 예리한 칼로 집어삼키는 데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와 같은 사태를 후새라는 인물이 사전에 예방하고 있는 것이다. 다윗은 그런 충신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모반을 당해 목숨까지 위태로운 상황에 처했으면서도 다시 왕권을 차지할 수 있었다.

1. 정보를 제공하기로 되었던 젊은 제사장 아히마하스와 요나단은 "정보의 샘" 이라고 불리우는 에느로겔 성을 가까스로 벗어났다. 물론 이 두 신임받은 제사장들이 그 성을 떠났다는 것은 불길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요나단과 아히마아스는 다윗에게 최종 소식을 전하는 전령으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였음.

2. 정보는 한 젊은 여인에 의해서 다윗에게 전달되었다.

👉 본문은 에느로겔 가에 숨어 있는 요나단과 아히마아스가 어떤 한 계집 여종을 통해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로부터 연락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타내 주고 있다. 이 여종은 에느로겔 샘터에 물을 길러오면서 사람들의 의심을 사지 않고 자연스럽게 소식을 전달했을 것이다.

요나단과 아히마아스는 익명의 사람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소유지로 인도하여 은신시켜주어 몸을 숨길 수 있었다.

그녀는 우물 속에서 그들을 감추어 주었다(17절). 만일 그 여자가 입을 열어 이 비밀을 말했다면 잘못될 우려가 있었다. 자칫하면 큰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천진한 소녀를 들어 좋은 제보자가 되게 하여 명석한 두뇌를 가진 음모자들의 모략을 어리석게 만들었다.

3.그러나 압살롬의 야경 첩자들에 의해 그들은 발각되었다. 그래서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여차여차히 모략을 베풀었다는 정보가 도로 압살롬에게로 옮겨졌다. "한 소년이 저희를 보고 압살롬에게 고한지라" (18절).

4.그들은 이미 자기들이 발각되었음을 알아 차리고 바후림에 있는 친구집으로 피신을 했다. 그곳은 다윗이 망명시 잠깐 휴식을 취했던 곳이다(16:14 참조). 그들은 다행히 거기서 우물 속에 숨어있었다. 여름이지만 마침 그 우물은 건조해 있었다(13절). 그 여주인은 태연스럽게 우물 뚜껑을 덮고 그 위에 곡식을 널었다. 그래서 추격하던 이들이 그곳에 우물이 있는 것도 모르고 열어 보지도 않았다(19절).

👉요나단과 아히마아스가 숨었던 그 집 주인의 아내로 추정되는 이 여인은 시대에 편승해 불리한 입장에 놓여 있는 자를 당국에 보고하지 않고 오히려 마치 자기가 그 어려움을 당하는 것처럼 여겨 두 사람을 철저히 보호해 주었다.

이러한 모습은 애굽 왕 바로 치하에서 이스라엘의 사내아이를 모두 살린 히브리 산파들의 모습(출 1장)과 여리고 기생 라합이 이스라엘 정탐꾼들에게 베푼 도움(수 2장)을 연상케 한다.

당국이 죽이려고 찾는 자들을 숨겨주는 일은 자기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험 천만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들은 자기의 목숨이 희생된다 할지라도 불의한 자의 편에 서지 않았던 것이다.

이 여인은 우리 보기에 매우 잘한 것 같지만 거짓말로 그들을 숨겨 주었다고 해서 의롭게 인정할 수는 없다(20절). 우리는 종종 좋은 일을 위해서 악을 저지르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를 당하게 된다. 그렇지만 우리는 선을 위해 악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여인의 행동은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일단 그녀의 행동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왕인 다윗을 위한 거짓말이었고 의를 위하여 일하는 요나단과 아히마아스가 희생되는 것을 막기 위한 거짓말이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 있다. 즉 이 여인은 자신의 거짓말이 발각된다면 처형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의를 위하여 용기 있는 행동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여인의 거짓말이 선한 목적을 위한 것이었다고 해서 그 거짓말 자체에 정당성을 부여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던 하나님께서는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사용하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여인의 행동은 과거 여리고성 정탐꾼을 숨겨준 믿음의 여인 라합처럼 믿음을 가지고 선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는 동기적 측면에서는 칭찬받을 만하나(수 2:1-7; 히 11:31; 약 2:25)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거짓을 사용하였다는 방법적 측면에서는 책망을 면키 어렵다.

그러나 여기 이 여인은 그들을 보호했고 압살롬에게로 추격자들을 공수로 돌아가게 했다.

👉 20절, ‘저희가 찾아도 만나지 못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니라’
-찾아도.. : 이 단어는 샅샅이 수색하거나 어떤 대상을 열렬히 추구하는 것을 나타낸다(창37:15). 특히 이 단어는 애굽 왕 바로가 애굽인을 쳐죽인 모세를 죽이기 위해 샅샅이 수색하는 장면에서도 사용. 본문에서는 요나단과 아히마아스를 찾아내기 위해 혈안이 된 자들의 모습을 잘 묘사해 주고 있다.

한편, 본문을 영적 시각에서 재해석하면 요나단과 아히마아스를 찾는 저들의 모습은 오늘날 삼킬 자를 찾아 우는 사자처럼 두루 돌아다니는 마귀의 모습과 흡사하다(벧전 5:8). 마귀는 한 명의 성도라도 더 넘어뜨리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안전한 피난처 아래 있는 성도는 요나단과 아히마아스처럼 결코 마귀에게 사로잡히지 않는다.

압살롬은 사울이 다윗을 잡으려고 아히멜렉에게 친절하게 대한 것처럼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은 재난에서 모면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그를 억제시키셨다. 그렇게 보호하시기 때문에 그들은 다윗에게 좋은 정보를 제공할 수가 있었다(21절). 그의 친구들의 충언으로 그들이 머물고 있는 곳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요단을 속히 건넜다. 그가 42편 내지 43편의 시편을 기록한 것은 요단을 건널 때 예루살렘을 그리워하는 시였다고 어떤 이들은 말한다(시 42:6 참조).

●요단을 건너 도망감(사무엘 하 17:22-29)

Ⅰ. 다윗과 그의 군사들이 요단을 건너는 것은 예루살렘에 있는 그의 친구들의 정보 제공에 의한 것이었다(22절).

그와 함께 한 모든 사람과 다윗은 종종 왕래한 바 있던 나루터에서 밤에 몰래 건너갔다. 한 사람도 요단을 건너지 못한 자 없었다. 그의 재난은 대단히 어려운 것 중에 하나이지만 아파서 남거나 두려워서 지쳐서 뒤에 남은 자가 하나도 없었다. 환란날에 내가 소유한 모든 것을 하나라도 잃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 메시야와 같이 다윗이 그런 보호를 받았다.

👉이와 같이 해서 다윗과 그의 모든 군사와 권속들은 생명을 구하게 된다. 다윗이 위기를 모면하게 된 배경에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손길이 있었음은 물론이거니와 친구이자 모사인 후새와 두 제사장 사득과 아비아달, 제사장 집에 속한 계집중, 그러고 요나단과 아히마아스 및 그들을 숨겨준 바후림의 어떤 남자와 여자가 있었던 것이다.

난관에 처한 다윗은 결코 자기 혼자의 힘이 아닌 하나님과 사람들의 도움으로 구원을 얻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다윗은 더더욱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겸손해졌을 것이다.

그들이 요단을 무사히 건넜기 때문에 그는 암몬 사람들의 성읍 라바로부터 멀지 않은 마하나임을 향해 수마일을 행진했다. 마하나임은 가드 지파에 속한 레위 사람들의 성읍이었다. 이 성읍은 이스보셋이 행정도시로 삼았던 성읍이다(2:8 참조). 다윗은 이 성을 본부로 삼았다(24절). 그는 여기서 반역자들과 대치할 군사를 훈련하고 그들에게 친절한 환영회를 열었다.

Ⅱ. 아히도벨의 죽음(23절).

그는 자살을 했다. 자기 모략이 좌절된 것을 괴롭게 생각하고 자살했다.

👉 왜 자살을 택했을까?
압살롬은 후새의 모략을 따라 이스라엘 전역에 전령을 보내 수일에 걸쳐 많은 군사를 모접했을 것이며, 따라서 그날 밤으로 다윗을 추격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목도하면서 아히도벨은 자신의 모략이 채택되지 않은 데 대한 심한 불만을 가졌으며 당대 최고의 모략가로서 모멸감을 느꼈을 것이다. 뿐 만 아니라 압살롬이 후새의 모락을 채택함으로써 결국 압살롬의 반란이 실패할 것이란 예견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고 반란이 실패할 경우 반란에 적극 가담하였을 뿐 아니라 압살롬으로 하여금 다윗의 후궁을 범하게 한 장본인이었던 자신이 처형당할 것은 너무나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따라서 아히도벨은 유다 산지에 있는 고향 ‘길로’ 로 돌아가 자살해 죽은 것이다. 

1.그는 자기가 가장 훌륭한 정책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장 지혜롭다는 명성을 잃어버린 모욕을 참을 수 없었다. 그의 판단력은 언제나 회의 장소를 움직이곤 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의 의견보다 다른 이의 의견이 훨씬 좋고 현명한 의견이었다. 그의 교만한 마음은 이런 모욕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모욕감이 부풀면 부풀수록 분개함을 참을 수가 없었다. 모든 사람들은 그를 현명한 사람으로 인식했고 자기도 오직 자기만이 현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기의 지혜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것은 자기가 죽으면 함께 지혜가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에는 아히도벨 같은 지혜자는 존재할 아무런 가치가 없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원한을 그들에게 알리려고 했다.

가장 무서운 적은 자기가 가장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불행한 것 중에 가장 불행한 것은 모욕을 참지 못하는 것이다. 모욕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겸손한 사람의 잠을 깨우려는 것이 아니라 교만한 사람의 마음을 깨우치는 것이다.

👉 아히도벨은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킬 당시 자신을 고향 땅 길로에서 불러들일 당시만 해도(15:12) 자신의 인생에 이러한 비참한 말로가 기다리고 있을 줄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

오하려 자신의 모략에 따라 민심이 압살롬에게 기울게 되던서 이후에 보상으로 주어질 부귀영화를 꿈꾸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결정적인 상황에서 하나님이 그의 모략을 꺾으심으로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되어 버렸으며 그는 힘없이 고향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본문은 의를 저버리고 불의를 좋아간 악인의 최후가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아히도벨은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 자신을 청했을 때에 성공에 대한 야망을 품고 압살롬에게 자기 인생을 맡겼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육신적인 성공을 좋아갔던 그는 결국 그 야망을 이루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2.그는 스스로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생명을 끊었다. 그는 자기의 모략이 채택되지 않으면 압살롬이 분명코 실패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압살롬에게 그의 부친과 처첩과 동침하도록 조언한 큰 죄를 범한 장본인이 자기임이 드러날 것이 두려웠다. 수치감과 공포감을 막기 위해 자신을 지혜있는 사람이라는 평판대로 정당화하려 했다. 그러나 그의 이런 자살행위는 자기가 어리석은 자라는 것을 증거하고 말았다.

세상에는 자살자보다 더 어리석은 자는 없다. 생각해 보자. 어째서 그는 자신을 가해하려고 고의로 자기 성으로 돌아가 자기 집에서 생각할 시간과 여유를 가지고도 죽었는가 이상하다. 그는 우선 가정에 질서를 세우고 자신이 지혜있는 사람인 것을 이해해 주기를, 또한 추억해 주기를 바랐다.

그는 자기의 교만한 마음을 자르지 않고 자기 생명을 잘랐다.

👉 그는 현재 자신에게 닥친 난관을 극복하고자 노력하기보다 그 문제에 사로잡혀 완전히 주저앉아 버렸다.
↔ 이러한 모습은 위기와 시련의 용광로 가운데서도 의연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며 자기 길을 간 다윗의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1) 수치심은 지혜자에게 많이 있다.

정책가로 유명한 그는 어리석음이 누구보다도 풍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혜있는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치 말라. 미련한 자도 죽고 지혜있는 자도 죽는다.

(2) 하나님의 의를 실천하기를 기뻐하라.

악인이 함정을 팔 동안 자기가 판 함정에 스스로 빠지느니라(시 7:15, 16 참조).

(3) 구하는 자에게는 응답하시고 정직한 사람에게는 적군의 손을 통해서도 도와주신다.

다윗은 여기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여호와여 원컨대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15:31)라고 기도한 것이 응답된 것이다. 라이트푸드 박사는 시편 55편은 아히도벨이 자신을 대적하려는 음모를 가지고 있을 때 기록한 것이라고 추측했다. 아히도벨은 다윗에 대해 불만자였다(시 55:13 참조). "나의 동료, 나의 동무요, 나의 친우로다." 이렇게 만일 그가 기도했다면 즉시 응답을 받았을 것이다(시 55:15 참조). "사망이 홀연히 저에게 임하여 산채로 음부에 내려갈지어다." 그는 아히도벨이 죽기를 원했다. 세상에서 오래 사는 것만이 보람으로 생각하는 세상 사람들처럼 자기를 괴롭히는 아히도벨의 멸망을 원했다. 그는 압살롬의 수족이였고 다윗에게 치명적인 모략을 제공하는 자였다. 그래서 그는 그가 숨이 멎고 목이 끊어지기를 원했다. 언제나 자살한 시체는 불명예스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그것은 아히도벨이 영예스럽게 조상의 장지에 매장되었다. 물론 그는 당나귀 장례보다 나은 장례가 될 수 없는 천한 죽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치스러운 장례를 했다(전 8:10 참조).

Ⅲ. 압살롬은 자기 아버지 다윗을 추격했다. 그는 후새의 모략대로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을 모으고 자신이 그들 선두에 서서 요단을 건넜다(24절).

👉본절부터 29절까지는 요단을 건넌 다윗어 요단 동편 마하나임에 안전하게 진을 치고 뜻밖의 사람들로부터 잊을 수 없는 대접을 받는 장면과, 아마사를 군대 장관으로 내세운 압살룸이 요단을 건너 길르앗 땅에 진을 처는 장면어 묘사되고 있다.
이러한 장면은 지금까지 줄곧 무력하게 쫓기기만 하던 다윗아 어제 어느 정도 전열을 정비하여 압살롬과 맞설 수 있게 되었음을 암시한다. 이러한 본단락에 이어 계속되는 18장이 군대의 전열을 재정비하는 다윗의 모습으로 시작되고 있는 것을 볼 때에 이와 같은 사실이 더더욱 분명해진다.

다윗이 요단을 건너 이른 ‘마하나임’
-이곳은 일쩍이 사울 왕이 죽고 다윗이 유대의 왕으로 족위한 이후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한 곳으로(삼하 2:8.9) 군사적 요충지로서 중요한 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윗은 바로 어와 같은 역사가 서려 있는 땅으로 피난해 진을 쳤던 것이다. 그러나 그 땅은 그런 역사가 암시해 주는 바와 같이 초대 왕 사울의 출신 지파인 베냐민 지파의 영향력이 큰 땅이었다. 그렇다면 다윗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곳에 진을 친 것이 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압살롬은 친히 그의 군대를 이끌고 직접 요단을 건넜음
-그는 ‘친히 전장에 나가소서’ 라고 말한 후새의 모략(11절)을 그대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왕이 직접 총사령관이 되어 전장에 출전하는 것은 군사들의 사기를 복돋울 수 있는 요소가 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국가의 운영을 책임진 왕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위험 부담도 떠안게 된다. 그 때문에 후에 다윗을 따르는 무리들은 반란군과의 전쟁에 다윗이 참전하는 것을 만류했던 것이다(18:3). 

그는 다윗이 자기가 세운 나라에서 쫓겨난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를 세상에서 완전히 쫓아 버리려고 뒤를 쫓고 있었다. 다윗과 싸우기 위해 그는 "길르앗 땅에 진치니라" (26절).

압살롬은 아마사를 군장으로 삼았다(25절).

아마사는 이스마엘 사람 에델의 아들이다. 그의 종교적인 명칭은 이드라이지만 여기서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했다. 아마 그는 다윗집안 가까운 친척과 결혼하고 개종했기 때문일 것이다. 국가에 대한 그의 중립적인 태도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이라 호칭한 것 같다(대상 2:17 참조). 그의 부인 즉 아마사의 어머니는 아비가일이며 다윗의 누이이다. 그의 다른 누이 스루야는 요압의 어머니다(대상 2:16 참조). 요압과 다윗과의 관계는 아마샤와 다윗과 같은 친척이었다. 그가 아버지 다윗을 대적하기 위해 무장할 때 가문의 영예를 위해 압살롬은 아마샤를 그의 군대의 총지휘자로 삼았다. 이새를 여기서는 나하스라 부른 것은 많은 사람이 두 개의 이름을 가졌기 때문인지 혹은 그의 부인의 이름인지도 모른다.

👉 본절에서 압살룸에 의해 군장으로 세워진 아마사의 출신 배경을 이토록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는 다윗을 대적하기 위해서 압살롬에 의해 세워진 아마사가 다름아닌 다윗의 조카어며 동시에 요압의 사촌이라는 사실을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 때문이다. 즉 다윗을 대적하기 위해서 세워진 군장이 바로 다윗의 조카라는 것을 알리는 동시에, 그가 이후에 사촌인 요압에 의해서 죽임을 당할 것을 미러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사설은 다윗의 범죄에 대한 심관 예언인 ‘칼이 네 집에 영영허 떠나지 아니하리라’ 는 말씀이 계속해서 다윗 가문에 성취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Ⅳ. 다윗의 친구들이 먼 곳에서 서로 만났다. 암몬 족속에 속한 젊은 형제 소비도 그에게 친절했다(27절).

그의 형제 하눈이 다윗의 특사들에게 행한 경멸을 증오했던 것 같다. 그는 다윗의 총애를 받았으며 그의 보상을 지금 받는 것이었다. 자신들의 번영이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떤 때가 되면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고 만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자비를 베푼 자에게 자비함을 받게 되고 남을 기쁘게 한 자가 기쁨을 얻게 된다. 그래서 선한 사람은 이런 이유가 있기 때문에 기회만 있으면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하려고 하는 것이다.

아미엘의 아들 마길은 다윗이 망명을 마칠 때까지 므비보셋을 지켰다(9:4 참조). 마길은 은혜 입은 사람에게 은혜를 갚았다. 그는 다윗의 재난시 그를 돕는 후원자였던 것 같다. 바실레도 다윗과 그의 군대를 돕는 열성자로서 그들이 오랜 행군에 지쳤음을 보고 자기집 가구, 침상과 대야, 질그릇을 가져왔다(28, 29절).

다윗은 그들에게 기구를 제공하고 음식을 공급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다만 다윗왕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스스로 의무를 느껴 가져왔다. 그는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왕이 곤경에 처한 것을 애도하여 그의 가지고 있는 것 모두를 가져다가 최선으로 도왔다. 우리는 여기서 관대한 마음과 아끼지 않는 후한 마음을 배워야겠다. 우리의 최선을 다해 고난당하는 이와 슬픔 중에 있는 이를 도와야 하겠다. 하나님은 절망 중에 있는 사람을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곳으로 그의 백성을 인도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배워야 한다.

👉 다윗은 임시 기지로 삼았던 마하나임에서 눈물겨운 대접을 받게 된다.
19:32에 따르면, 다윗을 공궤한 아 사람들은 단 하루만이 아니라 다윗이 마하나임에 머물러 있는 모든 날 동안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볼 때 다윗은 참으로 인복이 많은 사람이었다.

하나님은 후새, 사독과 아비아달, 제사장 집에 속한 계집종, 요나단과 아히마아스, 바후림의 무명 남자와 여자를 비롯해서 길르앗의 세 인물 등 참으로 신실하고 헌신된 사람둘을 다윗에게 붙여주셔서 시련 기간 동안 좌절하지 않고 능히 고난을 극복하게 하셨던 것이다.

한편, ‘소비’ 는 ‘사로잡는 사람’ 이라는 의미를 지닌 인명으로서 암몬 사람이었다. 그는 암몬 랍바 성읍의 나하스의 아들로 소개되고 있는데, 이 나하스는 전에 다윗에게 은총을 베푼 적이 있는 암몬의 왕을 가리킨다(10:1.2). 따라서 나하스의 아들 중 한 명인 소비와 다윗이 이전에 안면이 있거나 친분이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둘째, 로데발 사람 암미엘의 아들 ‘마길’ 은 ‘장사꾼׳ 이라는 의미를 지닌 인명으로서 요나단의 절뚝발이 아들 므비보셋을 돌보던 자이다(9:3-5). 따라서 그는 사울 왕가의 충신이었을 가능성이 큰데, 그는 므비보셋을 후대한 다윗의 사랑에 감복하여 다윗이 위기에 처한 지금 그를 도왔던 것으로 보인다.

셋째, 로글림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 는 ’강철'이라는 의미를 지닌 인명으로서 당시 나이 팔십 세의 노인으로 길르앗 지방의 거부였다. 그는 다윗의 전성기에 다윗이 아람족들을 물리쳐주었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목축을 하여 거부가 되었 던 것으로 보인다(8:2-12). 따라서 바르실래는 이러한 은혜에 감사하여 로글럼 땅에서 마하나임까지 와서 다윗에게 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29절의 ‘들’ ⇒ 잔디와 풀이 돋아난 들판이 아니라 모래 바람이 날리고 돌과 바위투성이인 광야를 가리키는 단어.
-팔레스틴과 그 인근 광야는 대낮의 온도가 섭씨 40°를 웃돌기 때문에 조금만 여행을 하여도 지치게 되어 있다.
-다윗과 그의 군대는 마하나임에서 진을 처고서 여러 날을 지내야 했기 때문에 충분한 영양이 섭취되지 않으던 육체적으로 피곤하고 지쳐 전쟁하기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이러한 사정을 세심하게 고려한 세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긍휼의 마옴으로 그들을 극진히 도왔던 것이다.

한편, 본장을 마무리하는 장면에서 본서 저자는 세 명의 사람이 다윗과 그 백성들을 극진히 도왔다는 사실로만 끝내고 있다. 즉 길르앗에 진을 친 압살롬과 그의 군대에게 도움을 주러 온 사람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이는 압살롬이 그곳에서 전혀 외부 사람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설혹 도움을 받았다 할지라도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도운 것이 아닐 것이다. 압살롬은 궁전에서 많은 물품과 음식을 가져왔을 것이며, 현지에서 부족한 부분은 군사력을 동원하여 길르앗 주민들로부터 정발해 충당했을 것이다.
다윗과 압살롬간에 보이는 이와 같은 차이는 앞으로 어떤 사람이 유리한 고지에 서게 될지를 암시해 준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