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창세기 43, 마가복음 13, 욥기 9, 로마서 13
묵상구절
3:1 솔로몬이 애굽의 왕 바로와 더불어 혼인 관계를 맺어 그의 딸을 맞이하고 다윗 성에 데려다가 두고 자기의 왕궁과 여호와의 성전과 예루살렘 주위의 성의 공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니라
3:2 그 때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아직 건축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며
3:3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행하였으나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
3:4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제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3:5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3:6 솔로몬이 이르되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그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그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항상 주사 오늘과 같이 그의 자리에 앉을 아들을 그에게 주셨나이다
3:7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3:8 왕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3: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3:10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3:11 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3:12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3:13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3:14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
3:15 솔로몬이 깨어 보니 꿈이더라 이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 서서 번제와 감사의 제물을 드리고 모든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하였더라
매튜헨리/옥스퍼드
●솔로몬의 결혼과 종교(열왕기 상 3:1-4)
💡 1-3절
3:1-15의 문단에서는 솔로몬 통치 초기의 배경과 기브온에서의 일천 번제 및 꿈에 대하여 다룬다. 본문의 기록에 의하면 솔로몬은 그의 통치 초기에 애굽 바로의 딸과 결혼하였는데(1절), 이처럼 솔로몬이 애굽 바로외 딸과 결혼한 것은 일종의 정략적인 것으로서 이는 솔로몬 왕국이 당시 근동의 최강자라고 할 수 있는 애굽과 동맹을 맺을 만큼 국제적으로 지위가 향상되었음을 시사해 준다.
또한 본문은 백성과 솔로몬이 그의 통치 초기에 산당에서 제사하였음을 보여주는데(2, 3절), 이것은 솔로몬과 백성들이 비록 산당에서이기는 하였지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일에 소홀하지 않았음을 보여줌으로써 솔로몬 왕국의 영화와 번영의 원인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정립에 있었음을 시사해 주는 동시에 우상에 대한 제사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제사를 위하여 성전의 건축이 필연적으로 요구되었다는 것을 시사해 줌으로써 제5장부터 나오는 성전 건축 기사의 도입적 역할을 하고 있다.
💡4-15절
한편 본문은 또한 기브온에서의 솔로몬의 일천 번제와 꿈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4-15절). 여기서 솔로몬의 일천 번제는 그가 정적을 제거하고 왕권을 강화한 어후 그의 공식적인 통치 행위로서는 맨 처음에 기록된 것이다. 본서의 저자가 이 사건을 이처럼 솔로몬의 행적 맨 처음에 기록한 것은 솔로몬이 통치 초기에는 하나님께 대한 순수한 열정과 신앙의 바탕 위에 신정 왕국 이스라엘을 세워나가려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그의 시대의 이스라엘의 번영의 근원이 그의 이러한 하나님 중심적인 통치 자세에 있었음을 시사하기 위함.
여기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기브온에서 일천 번제를 드리자 꿈에 솔로몬에게 나타나셨다. 그러고 솔로몬에게 소원을 물으시고 솔로몬이 자기의 개인의 부귀 영화를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구하자 그것을 기뻐하시며 그에게 지혜는 물론 그가 구하지 않은 부와 영화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이는 결국 솔로몬 왕국의 영화와 번성이 신정 왕국의 대표자인 솔로몬의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정립과 백성들에 대한 사랑의 결과물이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본 장에서 우리는 솔로몬에 관하여 상고해 본다.
Ⅰ. 의심할 필요도 없이, 솔로몬이 칭송받을 만하고 모범이 될 만한 좋은 점이 있다.
1.그는 "여호와를 사랑했다" (3절).
하나님이 그를 사랑했다는 점이 특별히 지적되었다(삼하 12:24). 그래서 솔로몬은 여디디아란 이름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 뜻은 "여호와의 사랑하는 자" 이다. 즉 이에 우리는 주의 사도 요한이 가장 사랑으로 충만했듯이, 솔로몬이 그 사랑을 보답하는 것을 보게 된다. 솔로몬은 현명한 사람이요, 부유하고, 위대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여호와를 사랑하였다" 고 하는 사실이 그에 대한 칭찬이었는데, 그것은 모든 성도들, 심지어는 가장 가난한 자들의 특성이다. "그는 여호와의 예배를 사랑했다" 고 갈대아 역에는 되어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든 자들은 그에게 예배드리기를 좋아하며,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즐기며, 하나님께 고하기를 기뻐하며, 그와 교제하기를 사랑한다.
2.그는 "그의 부친 다윗의 법도를 행하였다."
즉 다윗이 솔로몬에게 준 법도(임종시의 그의 부친의 부탁은 신성하여 그에게는 율법자 같았다. 2:2, 3; 대상 28:9, 10)이든가, 또한 그의 부친 다윗이 솔로몬 앞에서 행한 하나님의 법도이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규례에 가까이 하고, 주의 깊게 지키고, 열심히 참례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 하는 자는 "그의 법도 행하기" 를 마음에 다짐할 것이다.
3.그는 자기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일에는 매우 아낌없고 관대했다.
그가 제사를 드릴 때에는, 그는 많은 재산에 비례하여 왕답게 드렸으며, "일천번제를 드렸다" 고 했다(4절). 하나님의 씨를 풍성하게 뿌린 곳에서는 거둘 때도 그만큼 기대하시는 법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는 예배에 소용되는 비용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무슨 목적으로 이것을 소비하느냐?" 라고 말하고 싶은 유혹을 받게 될 것이다. 이러한 짐승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수는 없을까?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할 때 바쳐진 것을 낭비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실 한 번 제사드릴 때-7일 동안 계속되기는 하나-한 제단에서 그렇게도 많은 짐승들이 한꺼번에 불타 없어진다는 것은 이상하게 보인다. 그러나 제단의 불은 보통 불보다 더 빠르고 불길이 센 것으로 안다. 그것은 제물을 드리는 자는 피할 수 있으나 그 제물에 떨어지는 무섭고도 강력한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우리의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시다." 패트릭(Patrick) 주교는 유대인들의 전승에 의하면, 번제물의 연기는 곧은 기둥처럼 곧장 위로 올라가며 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연기가 번제물을 드릴 때 참여한 많은 사람들을 그을리게 했을 것이라고 한다.
Ⅱ. 여기서 과연 그것이 좋은 일이냐 아니냐 하는 의아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요소를 볼 수 있다.
1.솔로몬이 바로의 딸과 결혼을 했다(1절).
우리는 그녀가 개종한 여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 결혼은 합법적일 수가 없었을 것이다. 만약에 그렇다면 이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여호와를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 중 한 사람에게 애정을 가져야만 한다.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과의 배합은 유해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러나 혹자는 그가 친구의 말을 듣고, 그녀가 진정한 개종자라는 말을 듣고 그녀와 결혼한 것이라고 한다(솔로몬의 이방인의 아내들이 솔로몬에게 예배하게 한 이방신들 중에 애굽의 신은 들어있지 않으므로, 11:5, 6). 더욱이 솔로몬의 아가와 그의 시편 제45편은 이 때를 즈음하여 기록된 것으로 본다. 이 결혼은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신비로운 결혼, 특히 이방인 교회의 그리스도와의 결혼을 나타내는 하나의 전형이 되었다.
💡 1절, 정치적 측면에서 이스라엘의 강성함
애굽과의 정락 결혼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이스라엘 왕국이 국제적으로 지위가 향상되었음을 반영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고대 근동에서 오랫동안 대국으로 군림해 오던 애굽이 공주를 외국으로 시집보내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으나 솔로몬에게는 이러한 일이 예외적으로 이루어졌다. 뿐만 아니라 애굽의 왕 바로는 그의 딸과 함께 군사•경제적으로 중요한 전락 도시인 게셀까지도 혼인 선물로 주었다( 9:16) . 사실 애굽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같이 식사하는 것조차 부정한 것으로 여겼다(창 43:32) . 더욱이 과거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오랫동안 종살이를 했었던 것을(출 2:23) 감안하면 애굽인들로서는 자기 나라의 공주가 이스라엘 왕과 정략 결혼을 하는 것이 달가웠을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굽의 공주를 솔로몬과 정략 결혼시킨 것은 현실적으로 볼 때 당시 다윗과 솔로몬의 통치 하에 고대 근동의 맹주로 성장한 이스라엘의 도움을 필요로 했던 애굽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 결과 바로는 솔로몬과 동맹 관계를 맺음으로 팔레스틴으로 통하는 무역 통로를 얻게 되었으며, 솔로몬은 블레셋을 고립시키고 남방 국경 지대를 더욱 안전하게 다질 수 있었을 것이다. 이 결혼은 솔로몬의 능동적 의지와 판단에 따른 것으로, 당시 이스라엘의 강성함을 보여준다.
이방인과의 결혼이 합당한가?
-본서 11:12에서는 솔로몬의 이방인과의 결혼이 부정적으로 기술되고 있다. 솔로몬이 취한 이방 여인들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섬기기는 커녕 솔로몬 자신도 이방 여인들과의 혼인을 통하여 우상 숭배의 범죄까지 나아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장의 문맥에서는 바로의 딸과의 결혼이 그리 부정적으로 기술되고 있지는 않다. 본절이 속해 있는 1-15절 단락은 솔로몬이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부여 받게 되는 배경을 설명하고 있으며, 특히 3절에서는 솔로몬의 행실에 관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부친 다윗의 법도를 행하되'라고 표현하여 긍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장의 흐름상 본문을 일차적으로는 이스라엘의 강성을 드러내는 표현이면서 동시에 장래에 있을 솔로몬의 타락을 암시하는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실 인간의 눈으로 본다면 솔로몬의 정략 결혼은 대단히 지혜로운 것일 수도 있다. 애굽과의 불필요한 충돌을 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남방 국경 지대에 막대한 군사비를 절약하고 애굽과의 무역을 통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10:28-29). 그러나 그러한 정치 동맹이 반드시 결혼을 필수적으로 요청하는 것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결혼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신성한 것이며(마19:6) ,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측면에서 솔로몬의 이 결정은 결코 바람직한 것이라고 찰 수 없다.
2. 솔로몬이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고, 그것이 백성들에게 그런 일을 하도록 유인했다(2, 3절).
💡 2절,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교적 상황
-저자는 본문에서 산당 제사의 부정적 측면을 강조하기보다는 그렇게 할 수밖 에 없었던 불가피한 이유, 즉 아직 성전이 건축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의 단일 중앙 성소의 개념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시내산에서 만들었던 모세의 성막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러나 성막을 중심으로 집단 생활을 하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끝내고 가나안 정복 이후 가나안 각지에 흩어져 살게 됨으로써 중앙 성소의 개념은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여호수아가 실로에 성막을 안치하고 성소의 단일화를 꾀하였으며(수18:1,2 ) 엘리 제사장 시대까지 실로가 단일 중앙 성소로서의 역할을 하였으나 아멕 전투시 실로가 폐허가 되고 성막의 중심을 이루는 법궤조차 블레셋에 빼앗기자(삼상 4 장) 실로는 더 이상 종교적 구심점의 역할을 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막에 대한 대안으로 가나안 각 지역에 산재하여 있던 산당에서 하나님께 예배하였던 것이다.
-사실 위대한 선지자 사무엘도 산당에서 제사를 집행했고(삼상 9장), 사울이 기름부음 받은 뒤 만난 선지자의 무리들도 산당에서부터 내려왔다(삼상 10:5). 또한 본장에 나오는 바 하나님께서 기브온 산당에서 드려진 솔로몬의 제사를 받으시고 응답하신 사실을 통해(5절) 하나님께서 단일 중앙 성소로서 성전이 없던 당시 그 제사를 허용하신 것으로 이해할 수있었다.
-그러므로 본문은 일차적으로 당시 성전 건축이 이어지지 않았던 불가피한 상황에서 드려진 산당 예배를 하나님이 허용하셨다는 것을 보여주며 동시에 단일 중앙 성소로서 성전 건축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과업임을 암시해 준다 하겠다.
아브라함은 산에다 제단을 쌓고(창 12:8; 22:2), 숲 속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창 21:33). 이때로부터 이러한 관습이 내려왔고, 하나님의 율법이 한곳에서만 예배드리라고 명령하기 전까지는 인정이 되었었다(신 12:5, 6). 다윗은 언약궤를 고수하고 산당같은 것은 염두에도 두지 않았다. 그러나 솔로몬은 다른 문제에 있어서는 "자기 부친의 율법을 행하였으나" 언약궤를 고수하는 점에 있어서는 자기 부친에게 미치지는 못하였다. 이로써 그는 번제 드리는 데에 대한 대단한 열성을 보였으나, 오히려 복종이 더 좋은 제사가 되었을 것이다. 이것은 불규칙적인 것이었다. 아직도 집이 건축되지 않았으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해 쳐진 장막이 있었고, 언약궤가 그들의 통일성의 중심을 차지했어야 했던 것이다. 그것은 거룩한 제도(명령)에 의해서 되어진 일이요, 산당은 이와는 별개의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다른 모든 면에서는 법을 따라서 오직 하나님만을 예배하였으므로, 하나님은 그들의 결점을 어여삐 보시고 간과하시면서 그들의 예배를 받아 들였던 것이다. 그래서 솔로몬이 "산당에서 분향하였지만" "솔로몬은 하나님을 사랑했다" 고 인정해 주었다. 하나님 이상으로 사람이 가혹하지는 말자.
💡 3절, 솔로몬의 통치 초기 신앙 평가
-‘사랑하고’ : 신명기에서만 23번이나 등장하는 주제, 율법의 첫째 되는 계명. ‘사랑하고’의 ‘아하브’는 하나님을 대상으로 할 경우 감정 이상의 것, 즉 도덕적 의무와 언약에 대한 철저한 실행을 지칭한다.
-즉 이는 솔로몬이 하나님을 감정적으로만 사랑한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그에 대한 사랑의 증거를 구체적으로 나타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다윗의 유언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갔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첫번째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분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삶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지 키는 방식으로만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나타내 보일 수 있다.
두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삶은 삶의 태도 및 방향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본문의 ‘법도 가운데 걸어갔다'로 번역될 수 있는 표현은 삶에서 행한 어떤 노력과 그 열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솔로몬의 삶의 방향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이는 하나님을 사랑해서 물질과 시간을 드리는 것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의 방식과 목표가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해 있어야 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산당
-솔로몬은 성전이 완성된 후에도 산당 제사를 제거하지 못하여 결국 그의 뒤를 이은 열왕들 시대에까지도 산당 제사가 잔존하게 되었다. 성전 완공 이후에도 산당 제사에 익숙해 있던 백성들이 계속적으로 산당에서 제사 드리다가 점차 우상 숭배의 길로 빠져들고 말았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정복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산당을 훼파하라고 명하신 이유도 바로 이러한 사태를 우려해서였는데(민 33:52)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를 간과하다가 그만 올무에 걸리고 만 것이다.
일천번제를 드림
-‘번제'는 피를 단 사면에 뿌린 후, 가죽을 제외한(레 7 :8) 제물 전체를 불살라 드러는 제사(레1:5-9),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충성 및 헌신을 상징한다.
-솔로몬은 이처럼 헌신과 순종의 의미가 반영된 번제를 드림으로써, 자신을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신정 왕국 이스라엘의 통치자로 세워주신 데 대해 감사하고 앞으로의 통치 행위가 단순히 정치적•행정적 행위가 아닌 하나님께 대한 헌신의 과정으로 바치겠다는 다짐과 아울러, 이러한 자신의 통치 위에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실 것을 간구하고자 하였을 것이다.
●지혜를 구한 솔로몬(열왕기 상 3:5-15)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찾아 오신 은혜로운 방문의 기록을 본다. 그리고 그는 그 방문 중에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 사건은 그의 나라 안에 있는 모든 재물과 권력이 솔로몬에게 준 것보다 더 큰 영광을 솔로몬에게 주었다.
Ⅰ. 이 방문의 주위 사정을 보자(5절).
1.장소는 어디인가?
그것은 기브온이었다. 즉 그곳에 있는 대산당이었는데, 그 산당이 유일한 산당이라야 했었다. 거기에는 회막과 놋제단이 있었기 때문이다(대하 1:3). 거기서 솔로몬은 중대한 자기의 제사를 드렸다. 하나님은 다른 어떤 곳보다도 거기서 드린 그의 제사를 인정해 주셨다. 우리가 예배드릴 때 법칙에 더 가까이 가면 갈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의 표정을 더욱 크게 기대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이 자기의 이름을 기록하신 곳에서, 우리를 찾아오시고 축복하신다.
💡 기브온
기브온은 여리고와 아이성이 함락되었을 때, 두려워하여 여호수아를 속여 언약을 맺었던 기브온 족속이 거하였던 성읍이었으며(수9:3-17), 가나안 정복 후 베냐민 지파에 할당되었다가 다시 레위 사람들에게 주어진 곳. 기브온은 사울 당시 놈의 제사장들이 죽임을 당한 이후(삼상22:11-19) 성막이 옮겨진 곳(대상16:39; 21:29) 언약궤가 있었던 예루살렘(삼하 6:17)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공동 성소가 되었다. 이곳에는 훌의 손자 우리의 아들 브살렐이 만든 ‘놋단'도 있었으며 그 산당의 규모도 매우 컸다. 따라서 솔로몬은 ‘일천 번제'를 드리기에 이 기브은이 적절하다고 판단하였다(대하 1:2-6).
2. 시간을 보자.
때는 밤, 솔로몬이 풍성한 제사를 드린 후의 밤이었다(4절). 정적과 고독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도와 준다.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방문은 종종 밤에 나타났었다(시 12:3).
3. 그 방법을 보자.
솔로몬이 깊이 잠들어 의식이 닫힌 꿈에서였다. 꿈에서는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다가서기가 자유롭고 보다 직접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방법으로 하나님은 예언자들과 이야기하시곤 하였으며(민 12:6), 사람들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사람들 귀에 속삭이시곤 하신다(욥 33:15, 16). 이러한 신성한 꿈은 말할 것도 없이 여러 가지 헛된 것을 꾸는 꿈과는 분명히 다르다(전 5:7).
Ⅱ. 솔로몬이 선택하는 것은 무엇이든 주시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제의가 있다(5절).
그는 하나님의 영광이 자기에게 비추인 것을 보았고,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이는 하나님이 그가 드린 제사로 인해 부채를 쳤기 때문이 아니라, 이렇게 함으로써 그 제물을 받으셨다는 것을 입증해 주고 비록 솔로몬 자신이 부족함이 없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얼마나 큰 자비를 쌓아 두셨는가를 나타내고자 함이었다. 이런 방법으로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마음 자세를 시험해 보시고, 믿음의 기도에 영광을 부여하시고 싶었던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롭게 나타나셔서, 우리가 구하는 것은 얻을 수 있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심으로써, 이미 닦아져 있는 행복의 길로 우리를 인도해 주신다(요 16:23; 요일 5:14). 우리가 더 무엇을 구하리요?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다."
💡 본문을 직역하면 ‘내가 네게 줄 것을 무엇이든지 너는 구하라'
이는 솔로몬이 무엇을 구하든지 반드시 주시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에 따라 무엇이든지 구할 수 있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온전히 헌신하며 그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자들에게 변치 않는 확실한 보증으로 그들의 뜻을 이루어주시기를 기뻐하신다(마 7:7; 요 15:7; 16:24).
솔로몬에 대한 하나님의 이러한 약속은 솔로몬의 번제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 드려진 것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만약 솔로몬이 어떤 구체적인 목적을 전면에 내세우고 번제를 드렸다면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질문을 하실 필요가 없으셨을 것이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대한 헌신과 충성으로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지 어떠한 보상이나 목적을 이루는 수단으로 번제를 드린 것이 아니었다. 솔로몬의 이러한 제사 자세는 예배하는 자가 따라야 할 참된 모형이라 할 수 있다.
-예배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어야 하며 결코 축복이나 어떤 소원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없다. 하나님만을 위한 참된 예배를(요4:23)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본문과 같이 인간이 미처 기대하지도 않았던 넘치는 은혜들을 베풀어 주실 것이다.
Ⅲ. 솔로몬이 여기서 하나님께 구한 경건한 요구를 보자.
그는 이러한 제의를 즉각적으로 했다. 우리는 왜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사 7:12)라고 말한 아하스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제의를 무시하겠는가? 솔로몬은 자면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도와 주실 것을 기도했다. 그러나 실로 그것은 살아있는 기도였다. 우리가 가장 간절하게 염려하고 있는 것, 우리가 깨어 있을 때 우리에게 가장 큰 인상을 주는 것은, 우리가 잠들고 있을 때에도 우리에게 큰 영향을 주는 법이다. 그리고 때로는 꿈에 의하여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우리의 맥박이 어떻게 뛰는지를 알 수 있다. 플루타아츠(Plutarch)는 말하기를, 유덕한 꿈은 유덕하게 자라나고 있다는 표증이라고 했다. 그러나 솔로몬의 꿈은 더 높은 차원에 근원을 두고 있다. 솔로몬이 자라면서도 이와 같은 지혜로운 선택을 하였다고 하는 사실과 또 이성(理性)의 힘이 거의 작용하지 않았다고 하는 사실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나온 꿈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바로 솔로몬 속에서 이 은혜로운 욕망을 일으키고 있었다. 만일 "밤마다 심장이 교훈한다면," 솔로몬은 "자기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하였음" 에 틀림없다(시 16:7)
그러면 이제 그의 기도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1. 솔로몬은 하나님의 큰 은혜가 자기 부친 다윗에게 나타났던 일을 시인한다(6절).
💡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소원이든 들어주겠다는 약속을 받은 솔로몬은 자신의 소원을 아뢰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크나큰 은혜에 대해서 감사한다. 솔로몬의 이러한 감사는 부친 다윗의 시대까지 소급되어 다윗의 행적을 상기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는 다윗의 훌륭함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푸신 크신 은혜의 성격을 보다 명확하게 드러내고자 함이다.
본문의 고백들을 다윗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받을 만한 공로를 쌓았다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본문의 고백들은 다윗이 하나님께서 만약 다윗에게 어떠한 공로가 있었다면 하나님의 은혜는 은혜가 될 수 없고 당연한 상급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문의 표현은 다윗의 공로가 아닌 그가 하나님의 은혜에 부응하는 성실한 순종의 삶을 살았음을 밝히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는 "부친 다윗이 정직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행하였다" 고 하여, 자기 부친의 경건성을 높이 평가함으로써 자기의 허물에 베일을 치고 있다. 자기들의 경건한 부모를 예찬하는 사람들은 역시 부모를 본받게 되리라고 바랄 수 있다.
그러나 솔로몬은 자기 부친에게 나타났던 하나님의 자비를 더욱 영예롭게 말했다. 즉 하나님이 생존시의 다윗에게 보여 준 자비, 즉 그를 진실하고 경건하시고는 그의 진실성에 보상을 주셨던 자비, 그리고 다윗이 죽은 후에라도 그의 집안에 계속 은혜 베푸사, "그의 보좌에 앉을 아들을 그에게 주심" 으로써 보여 주신 커다란 인자하심을 높이 찬양했다.
자녀들은 하나님이 자기들의 부모에게 주신 자비-다윗의 순전한 자비-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자비를 우리보다 앞서 간 사람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물려받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자비는 더욱 더 은혜롭게 된다. 상속이 영속되도록 하게 하는 방법은 그 상속이 이와 같이 보존되게 되었음을 하나님께 찬양하는 것이다.
💡 신실하신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를 고백함
-하나님의 은혜에 부응하는 순종의 삶을 사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더 큰 은혜를 베푸신다. 본문은 바로 이러한 원리가 다윗에게 적용되어 다윗의 신앙적인 삶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이 풍성한 은혜로 임하였음을 밝히는 내용.
솔로몬은 삼하7장의 다윗언약을 다윗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현시키신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한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다윗에게 은혜를 베푸사 ‘다윗 언약' 을 맺을 뿐만 아니라 그 약속을 계속해서 신실히 이루어나가셨음을 다시 한번 상기하고 감사를 드리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신설한 언약의 성취는 보다 구체적으로 저의 위에 앉을 아들을 주시고 그로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시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문의 이러한 표현은 지금 이 고백을 하고 있는 솔로몬 자신이 하나님의 언약, 즉 다윗 언약에 따라서 왕위에 올랐음을 인정하는 그의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 언약을 통하여 다윗에게 그의 후손으로 영영토록 왕 노릇하리라고 약속하셨으며(삼하 7:4- 16), 하나님께서 사랑하심으로 여디디야라는 이름을 지어주신(삼하 12:25)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왕위에 앉게 하심으로 그 언약을 이루셨던 것이다. 따라서 솔로몬은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은혜로 언약을 베푸시고, 또한 그 언약을 지키신 하나님께 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2. 그는 자기가 소명받은 그 위대한 위탁을 수행할 능력이 없는 자기 자신의 무능함을 고백한다(7, 8절).
여기서 지혜의 간청을 더욱 뒷받침 해주는 두 가지 근거를 보자.
(1) 그는 다윗의 후계자이므로, 그의 지휘 자체가 지혜를 요구하고 있다
("나로 하여금 지혜롭고 의로운 다윗을 대신하여 왕을 삼으셨나이다. 주여, 나로 그가 행한 것을 지킬 수 있도록, 그리고 그가 시작한 것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시옵소서").
그리고 이제 또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주여, 나에게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저들은 수효가 많아서 상당한 주의를 하지 않고는 다스릴 수 없사오며, 저들은 주께서 택하신 백성이므로 주를 위하여 잘 다스려야 하겠나이다. 저들을 지혜롭게 다스리면, 그만큼 더 주께 영광이 되겠나이다."
(2) 그에게는 지혜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의 부족함을 통렬하게 의식하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이렇게 탄원한다. "여호와여 나는 작은 아이에 불과합니다[그의 부친은 그를 지혜로운 사람이라 하였으나(2:9), 그는 자기를 총명이 부족한 어린아이라고 불렀다]. 나는 언제가 나의 출입할 때인지를 알지 못하고, 나라 살림의 통상업무조차 할 줄 모를 뿐만 아니라, 위급한 일이 닥치면 어쩔 줄 모르는 어린아이옵니다" 라고 했다. 공무를 수행하는 자들은 자기 자신의 일의 중량과 중요성, 심지어는 자기들의 무능함을 깨달을 줄 알아야 그런 다음에야 하나님의 교훈을 받아들일 자격을 갖추게 된다는 점을 기억하자.
💡먼저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부친 다윗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으나 자신은 작은 아이에 불과함을 밝힌다.
‘작은’
‘작은'으로 번역된 ‘카론'은 나이가 '어리다’란 뜻 뿐 아니라 권위가 없어 중요한 자러에 었지 않음을 의미하는 ‘작다' (사 36:9)라는 뜻과 세력이 작음을 의미하는 ‘미약하다' (암 7:2 )라는 뜻도 갖고 있다.
‘아이’
‘아이’로 번역된 ‘나아르'는 ‘갓난아이'(출 2:6), ‘어린아이’(창21:14)라는 의미.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나가고 들어오는 것: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활동하는 모습을 가리키는 성경의 관용적 표현. ⇒ 나의 임무들을 어떻게 수행해야 할지 모른다
그런데 당시 솔로몬의 나이는 20세 전후로 추정된다. 따라서 본문의 ‘작은 아이'는 문자적으로 솔로몬이 나이가 적은 어린아이라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이는 예레미야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작고 초라한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위대한 사명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이 두려움으로 스스로를 아이로 청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렘1:6).
즉 솔로몬은 신정 왕국을 통치하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그 자신이 맡은 큰 책임에 비해 자신은 경험이 없어 미숙하고 연약함을 본문과 같은 표현으로 고백하며 겸손히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자기 자신의 부족을 깨닫고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를 사랑하시며 그에게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3:5, 6) .
‘주의 빼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솔로몬은 자기가 다스릴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택함 받은 하나님의 소유로 구별된 특별한 백성임을 밝힘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중요한 임무를 수행해야 할 무거운 책임의 자리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하나님의 줌으로 표현함으로써 자신의 뜻과 의지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 일을 감당할 것을 보여주고 있다.
‘당신'이란 표현이 강조됨
이는 하나님께서 열방 가운데서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사 언약 백성으로 삼아주신 것을 강조하여 나타내는 표현이다(출 19:5 ,6) . 솔로몬은 자기가 다스릴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택함 받은 하나님의 소유로 구별된 특별한 백성임을 밝힘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중요한 임무를 수행해야 할 무거운 책임의 자리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하나님의 종으로 표현함으로써 자신의 뜻과 의지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 일을 감당할 것을 보여주고 있다.
바울의 질문("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고후 2:16 후반)은 솔로몬이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까?" (9절) 하는 질문과 같다.
압살롬은 어리석으면서도 자기가 재판관이 되기를 바랐는데 반하여, 솔로몬은 지혜로우면서 자기가 이 일에 합당한가 여부를 놓고 두려워 떨며 자기를 의심하였다. 사람이 아는 것이 많아 신중해지면 해질수록 자기의 약점을 더 많이 알고, 자기 자신을 더욱 경계하게 된다.
💡재판은 통치의 주된 기능으로 여겨짐. 이스라엘을 잘 다스리고자 하나 그것을 수행하는 데 있어 자신의 부족함을 절감한 솔로몬.
3. 그는 하나님께 지혜를 주십사고 간청했다.
"지혜로운 마음을 주의 종에게 주시옵소서" (9절). 그는 자기를 "하나님의 종" 이라 칭하고, 하나님과의 그런 관계(시 116:16)를 기뻐하면서, 그 사실을 근거로 탄원했다. "나는 주를 위하여 헌신하고 주를 위하여 쓰여진 몸이오니, 주의 일을 수행함에 필요한 것을 주시옵소서."
💡 지혜로운
-지혜로운에 해당하는 단어의 원형 ’솨마으’는 ‘듣다, 이해하다, 순종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본문을 직역하면, ‘그리고 당신의 종에게 이해하는 마음을 주소서’
-그러나 ‘솨마으'가 ‘순종하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것에서 잘 드러나듯이 이는 백성의 재판과 선악의 분별을 가능하게 하는 이해의 마음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중심으로 그분의 뜻을 순종하려는 신앙적 지혜와 결단을 지칭하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시 111:10). 결국 솔로몬이 구한 지혜로운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그 진위를 이해하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여 선악을 판단할 수 있는 지혜를 뜻하는 것이다.
-우리도 솔로몬처럼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그 말씀에 귀기울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이 지혜를 구하여야 할 것이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시119:18).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결국 솔로몬이 하나님께 구하였던 능력은 재판장으로서 재판에 필요한 선악을 구분하는 판단력 뿐 아니라 백성을 다스리고 국정을 운영하는 왕의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필요한 지혜, 즉 진실과 거짓을 바로 깨달아 국정에 반영하는 총명함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그의 의로운 부친도 시편 119편 125절에서 이렇게 기도했다. 즉 "나는 주의 종이오니, 내게 총명을 주옵소서."
총명한 마음은 하나님의 은사이다(잠 2:6). 우리는 그것을 달라고 기도하여야 하며(약 1:5) 그 총명을 우리의 구체적인 직업 속에서 또 총명을 필요로 하는 많은 경우에 적용시킬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한다. 이와 같이 솔로몬도 자기 호기심을 기쁘게 하거나, 이웃 사람들을 신기하게 만드는 그러한 지혜가 아니라, "주의 백성을 재판할 총명을 주옵소서" 라고 기도했다.
우리가 우리의 의무를 수행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총명이 가장 큰 지식이다. 그러한 지식은 우리로 하여금 선함과 악함, 의로움과 불의, 죄악과 의무, 그리고 진리와 거짓을 분간케 하는 지식이므로, 타인의 행동과 나 자신의 행동을 심판하는 데 거짓된 색안경을 쓰지 않게 하는 것이다.
4. 그의 간청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응답을 보자.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기도였다. "그 말이 주의 마음을 기쁘게 했다" (마음에 맞았다)고 했다(10절).
하나님은 자기 백성 속에서 작용하고 있는 자기 자신의 역사, 곧 자기가 불붙인 욕망, 그의 성령이 드리는 기도를 기뻐하신다. 이것을 선택함으로써, 솔로몬은 자기가 위대하게 되는 것보다는 선하게 되기를, 자기의 출세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헌신하기를 원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인 셈이다. 육적인 것보다 영적인 축복을 더 바라고, 자기의 영예보다 자기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기를 기뻐하는 자를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 11절, ‘자기를 위하여 구하지 아니함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기도를 자기를 위하여 구하는 이기적인 기도가 아니라고 평가하셨다. 솔로몬의 간구가 보통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드리는 자기 자신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이루기 위한 기도였다.
-솔로몬은 자신의 왕직이 하나님의 종으로서 그분을 섬기는 직책이며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려야 하는 직책인 것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 직분을 잘 수행하기 위하여 지혜를 간구한 것이다. 솔로몬 성숙한 신앙이 깊이 배어 있는 이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였다.
-솔로몬이 자기의 사적 이익을 위해 간구하지 않고 자신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기도했던 것처럼 모든 그리스도인은 최우선적인 사명, 즉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다. 주님은 우리가 우리의 유익보다 주의 나라와 그의 의를 최우선적으로 구할 때 기뻐하시며 더 놀라운 은혜로써 우리의 필요까지 채워주신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수도.. 부도.. 자기의 원수의 생명 멸하기도 ⇒ 이 땅에서 모든 사람들이 열망하는 것.
수도
많은 날들 ⇒ 장수의 축복. 장수는 일평생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함으로(신5:33), 또는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시91:16), 하나님을 경외함으로(잠10:27) 얻을 수 있는 축복 중 하나.
부도
이는 물질이 많아져 부자가 되는 것을 의미할 뿐 아니라, 필요 적절한 시기에 알맞은 환경을 제공하는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는 것과 근심이 없는 평안한 상태에 이르는 것, 그리고 세간에 유명해짐으로 귀히 여김을 받는 것까지도 의미한다.
원수의 생명 멸하기도
‘원수'에 해당하는 개인적으로 원한을 갖게 된 대적 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원한을 갖고 있는 적국을 의미하기도 한다(수 24:11; 삿 16:2 3 ). 따라서 ‘원수의 생명을 멸하는 것'은 군사적 승리까지 포괄하는 의미이다.
장수, 부귀, 그리고 원수를 멸하는 일은 땅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열망하는 것이며, 이것에 대한 열망은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더욱이 솔로몬처럼 모든 사람 위에 군림하는 왕에게는 더욱 매력적인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솔로몬은 이처럼 매력적인 자신만의 영화와 즐거움을 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겨주신 택함 받은 백성들을 공정히 다스리고 재판할 수 있는 지혜, 즉 선악을 구별하고 깨달아 알 수 있는 지혜를 구하였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었다. 그의 기도는 이기는(응답받는) 기도였다. 또 그가 구한 것 이상의 응답을 받았다.
(1) 하나님은 그에게 지혜를 주셨다(12절).
하나님은 그를 부르신 그 위대한 일에 합당하도록 그를 채워 주셨고, 그가 재판할 때 의거해야 할 율법에 대한 바른 이해력(총명)과 그가 판정해야 할 소송 사건을 바로 보는 총명을 주셨다. 그래서 솔로몬은 명석한 두뇌, 굳은 판단력, 예민한 통찰력에서 따를 자가 없게 되었다. 일찍이 왕이 그러한 통찰력과 선견지명을 축복받은 자는 없었다.
💡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
지혜
본문에서는 어떠한 형편에서도 굴하지 않고 기지로써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지혜, 또한 이성적인 탁월함, 그리고 사물의 원리를 깨닫고 기억할 수 있는 뛰어난 지능 등을 의미함.
총명
백성들을 다스리는 데에 필요한 선과 악을 구분하는 능력과 선악의 진위를 깨달아 국정에 반영할 수 있는 능력.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어 구한 대로 이스라엘을 잘 다스리고 공정히 재판할 수 있는 선악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과 지적 깨달음, 그러고 더 나아가 인생의 위기를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지혜와 지능이 겸비된 탁월한 지적 능력을 선물로 주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신 지혜는 비교할 만한 전례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이후의 모든 세대에서도 비교 대상이 없는 탁월하고 특별한 것이었다. 실로 솔로몬의 지혜는 인간적 지혜를 능가하는 바로 하나님의 지혜라는 점에서도 독보성을 지닌다.
(2)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구하지 않은 것을 덤으로 주었다.
즉 부와 영광을 주셨다(13절). 그리고 지혜에서는 물론이요 이러한 모든 점에 있어서도 그의 선왕들이나 그의 후계자들, 또는 이웃 사람들보다 훨씬 능가하게 되리라는 것을 약속해 주셨다.
💡 합당한 기도를 올리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차고 넘치는 풍성한 은혜를 내려주심을 잘 보여준다(마 6:33).
-실제 솔로몬은 본문에서 제시된 하나님의 축복 그대로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가질 수 없었던 엄청난 부를 가졌을 뿐 아니라 그의 치세에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태평 성대를 누렸고 그의 지혜는 모든 사람의 찬탄의 대상이 되어 그 지혜를 배우기 위하여 멀리서부터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기까지 하였다.
-또한 솔로몬은 하나님의 성전을 지었을 뿐 아니라 잠언 • 전도서 • 아가서 등의 성경 말씀을 남기어 그의 영광을 세세토록 빛나게 하였다.
이처럼 솔로몬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어 너무나 정확하게, 그러고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풍성하게 이루어졌다
이러한 부귀와 영화도 모두 하나님의 은사이다. 이것들은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자들에게 약속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들에게 한해서 그것은 좋은 것이다(마 6:33). 젊은이들이여, 그대들은 어떤 선택의 경우이든 황금보다도 은혜를 택할 줄을 알라. 그 까닭은, "경건에는 현생의 약속이 있으나" (딤전 4:8 참조), "현생에는 경건의 약속" 이 없기 때문이다.
지혜와 재물을 동시에 누리는 솔로몬이야말로 얼마나 완벽한 축복을 받고 있는가! 지혜와 은혜없이 재물과 권력을 가지고 있는 자는 그것 때문에 해를 끼칠 위험이 있고, 재물과 권력이 없이 지혜와 은혜만 소유한 자는 그 양자를 모두 겸비하고 있는 자처럼 선한 일을 할 능력을 지니지 못하게 된다. 지혜는 좋은 것이다. 그러나 재물이 동반되면 그만큼 더 좋은 것이다(전 7:11). 그러나 만일 우리가 지혜와 은혜를 확신하면, 그것들이 외적인 번영을 함께 가져오든가 그 외적인 번영이 없음도 달게 받게 해 줄 것이다.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부와 영광은 절대적으로 약속하셨으나, 장수만은 조건부로 약속하였다. "네가 만일 다윗의 행함과 같이 내 길로 행하면, 내가 네 날을 길게 해 주리라" (14절).
💡 하나님께서는 매우 분명한 형태의 조건문을 사용하여 솔로몬이 생명 연장의 은혜률 누릴 수 있는 방법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하셨다.
한편,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요구하신 조건은 과거 다윗이 행한 것과 동일하게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이었다.
여기서 ‘내 길로 행하는 것’ 과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는 것'은 서로 다른 사항이 아니라 ‘내 길로 행하는 것'의 구체적 모습이 바로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는 것이다.
-신30:16,20
-본문에서 요구하는 하나님의 명령은 단순히 생명 연장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인간의 생사화복과 사람의 존재 가치와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형성에 있어 가장 핵심적 요소이다.
‘네가 행하며..’
-행하다: ‘가다’(신29:18), ‘준행하다(시78:10)’.
-이는 단순히 목적을 향해 걷는 것 뿐 아니라, 의지를 가지고 어떠한 일을 꾸준히 실천해 나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왕하23:3).
-본문은 솔로몬이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를 의지를 가지고 꾸준히 실천해야 함을 뜻한다. 또한 이러한 실천이 단 한번이 아니라 끊임없이 지속되어야 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그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자는 단순한 느낌과 순간적 흥분이 아닌 굳은 의지가 뒷받침된 끊임없는 노력과 인내로 주의 길을 부단히 달려가야 한다.
다윗을 모형으로 삼으신 이유
-실로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삶의 태도를 축복 받는 삶을 이루는 모형으로 제시하셨다. 이는 다윗이 때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범죄의 길로 들어서기도 하였지만 그의 삶의 근본 태도가 근본적으로 하나님 중심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다윗의 삶은 인본주의적 삶을 산 여로보암이 악한 왕의 표본이 되는 것과(16:7) 반대로 선한 왕의 표본이 된다(15:11).
그는 이러한 조건을 이행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비록 부와 명예는 소유하였으나, 그가 마땅히 누릴 천수를 다하지 못했다. 장수는 지혜의 우편에 있는 축복이요, 영생의 한 모형이다. 그러나 부귀가 있는 곳은 지혜의 좌편이다(잠 3:16).
💡솔로몬은 자신에게 주어진 지혜와 부와 영광에 현혹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며 그 길로 행하여 충성스런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솔로몬은 말년에 이르러 신본주의적 태도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던 통치 초기의 신앙적 삶의 태도를 버리고 우상 숭배틀 하는 등 타락의 길로 걸어가고 말았다 (11:9-13).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에게 장수의 축복을 허락하지 않으셨고 그 결과 솔로몬은 60세 정도에 죽고 말았다(11:42,43) .
여기서 알아볼 것이 있다.
[1] 영적 축복을 얻는 길은 솔로몬이 "꼭 필요한 것 하나" 로서 지혜를 구한 것처럼, 달라고 졸라대야 하며, 그것은 하나님과 씨름하는 것이다.
[2] 현제적인 복을 얻는 길은 거기에 냉담하면서 하나님께 맡겨두는 것이다. 솔로몬이 지혜를 얻은 것은 그가 그것을 진실로 구했기 때문이며, 부를 얻은 것은 그가 부를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5.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기쁨으로 찾아 주신 데 대해 솔로몬은 감사로 보답했다(15절).
💡솔로몬이 기브온 제사 후에 지체처 않고 예루살렘에 있는 언약궤 앞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는 사실은 솔로몬이 결코 신명기에서 중요하게 부각되는 중앙 성소 예배(신12:5,11,13,26 )를 경시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케 해준다
그는 꿈에서 깨어났다-아마 그는 기쁨에 도취되었으리라-깨어 보니, 예레미야 예언자의 말과 같이 "그의 잠이 그에게 달았다" (렘 31:26).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해졌으므로,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무엇을 하나님께 돌려 드려야 할 것인가" 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는 기브온에 있는 산당에서 기도해 왔으며, 하나님은 거기서 자비롭게 그에게 찾아와 주셨었다. 그런데 솔로몬은 "언약궤 앞에서" 감사드리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왔다. 말하자면 그는 자기가 하나님이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있는 예루살렘에서 기도하지 않았음을 자책하면서 또 하나님은 어디서든 자기를 만나신다는 사실을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허물을 간과해 주시며, 우리는 그것을 보고 그 허물을 고쳐야 한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1) 하나님께 큰 제사를 드렸다.
우리는 하나님이 약속으로 주신 은사에 대해서, 그것이 비록 아직 완전히 성취되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야 한다. 다윗은 언제나 하나님의 "역사"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찬양" 하곤 했다(시 55:10; 특히 삼하 7:8). 그래서 솔로몬도 이제 다윗의 발자취를 따랐던 것이다.
(2) 솔로몬은 제물을 놓고 큰 잔치를 베풀어, 자기 주위의 모든 사람들도 하나님의 은혜를 같이 기뻐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