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출애굽기 15, 누가복음 18, 욥기 33, 고린도후서 3
묵상구절
[왕상11:1-13]
1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2 여호와께서 일찍이 이 여러 백성에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그들과 서로 통혼하지 말며 그들도 너희와 서로 통혼하게 하지 말라 그들이 반드시 너희의 마음을 돌려 그들의 신들을 따르게 하리라 하셨으나 솔로몬이 그들을 사랑하였더라
3 왕은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라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
4 솔로몬의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니
5 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따르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따름이라
6 솔로몬이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의 아버지 다윗이 여호와를 온전히 따름 같이 따르지 아니하고
7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고 또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하였으며
8 그가 또 그의 이방 여인들을 위하여 다 그와 같이 한지라 그들이 자기의 신들에게 분향하며 제사하였더라
9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두 번이나 그에게 나타나시고
10 이 일에 대하여 명령하사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 하셨으나 그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11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내 언약과 내가 네게 명령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
12 그러나 네 아버지 다윗을 위하여 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고 네 아들의 손에서 빼앗으려니와
13 오직 내가 이 나라를 다 빼앗지 아니하고 내 종 다윗과 내가 택한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 하셨더라
매튜헨리/옥스퍼드
▶스페셜포인트
1-8절
- 솔로몬이 무려 천 명이나 되는 아내를 맞이할 정도로 일찍이 이방인들과 통혼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금령을 거스르고 많은 이방 여인과 정략 결혼을 함으로써 말년에는 그들의 미혹을 받아 이방 우상을 섬기고 그 우상들을 위하여 산당을 세우는 등 타락의 길 을 걷기 시작하였음을 보도한다.
9-13절
- 하나님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이 하나님의 계명에서 떠나 우상을 숭배한 데 대하여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그의 나라를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주겠다고 심판을 선포하신 사실을 보도한다.
14-25절
- 에돔 사람 하닷과 소바 사람 르손의 솔로몬 대적에 대하여 보도한다. 본문은 이들의 대적이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이는 타락한 솔로몬을 향한 하나님의 징 계이자 앞에서 그에게 선포된 심판 예언이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정조였다.
26-43절
- 솔로몬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 선언대로 이스라엘이 둘로 분열되는 그 직접적인 발단이 되는 사건으로서 여로보암의 반란 및 반란 실패로 인한 애굽 망명과 솔로몬의 죽음과 장례에 대하여 보도한다.
- 본문의 반란 사건은 아히야 선지자가 여로보암을 향해 하나님께서 솔로 몬의 범죄로 말미암아 그를 심판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열 지파를 그에게 주실 것이라고 예고하자 여로보암이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아니하고 즉시 반란을 일으키면서 발생하였다. 그러므로 이 반란은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 그러나 이 사건은 하닷이나 르손의 솔로몬 대적보다 더 솔로몬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예고가 구체적으로 실현되어 가고 있음과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실현될 것이라는 암시를 준다는 의의를 지닌다.
우리는 이상의 본문을 대할 때 그토록 지혜롭고 또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렸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의 여망이었던 성전을 건축하는 등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열정이 특출하였던 솔로 몬이 이같은 심각한 타락의 구렁텅이에 빠져든 사실을 보면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라 는 성경의 대명제(롬 3:10)를 겸허하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며, 신앙을 한결같이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가히 짐작하게 된다. 성경이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 심하라”고 경고하는(고전 10:12)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아울러 그토록 신앙이 좋고 현명하던 솔로몬조차도 타락한 사실에서 우리는 사단의 가공할 위력을 새삼 확인하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늘 무장하지 않으면 안될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엡 6:11).
또한 하나님께서 여로보암에게 새 나라를 열게 하실 것임을 말씀하시면서 역시 전날 다윗과 솔로몬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당신께 대한 순종 여부에 따라 축복과 저주를 베푸실 것임을 말씀 하신 사실에서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 전세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축복의 시금석임을 깨닫게되며,
나아가 하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향후 여로보암이 하나님께 불순종하다가 그의 가문은 물론 마침내는 북이스라엘 마저 몰락한 사실을 통해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 만연한 이 세상이 종국적으로 얼마나 비참한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인지를 짐작하게 된다.
한편 하나님은 타락한 솔로몬을 향해 심판을 선포하시면서도 다윗 언약에 따라 다윗과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남겨두사 다윗에게 한 등불이 있게 하시겠다고 하셨는데 (36절) 이 말씀 을 통해 우리는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여기서 ‘한 등불’ 은 일차적으로는 다윗의 왕권을 계승할 다윗의 자손을 가리킨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셔서 죄악된 이 세상에 구원의 빛을 비추실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결국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향해 심판을 선포하시는 중에 주신 이 말씀은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택한 자들을 구원 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으로, 이는 그리스도의 초림과 십자가 대속 사역으로 일단 성취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전하게 성취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날마다 부르짖을 것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이다(계 22:20).
▶영적교훈
1.작은 틈이라도 마귀에게 내어준다면 그것처럼 위험 천만한 일도 없습니다.
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일찌기 이 여러국민에게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와 서로 통하지 말며 저희도 너희와 서로 통하게 말라 저희가 정녕코 너희의 마음을 돌이켜 저희의 신들을 좇게하리라 하셨으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일찌기 자기 백성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이방인과 통혼하지 말도록 금하시면서 그 이유 를 설명해 주신 것을 인용한 것입니다. 즉 사람의 길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자기백성이 이방인들과 통원함으로서 초래하게될 불행을 아셨으므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들과 통원하는 것을 미리 금하셨던 것입니다. (신7:3,4) 구약 시대에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은 죄의 세력을 상징하였습니다. 그리고 죄의 세력과 타협하고 그들과 서로 교류한다면 그것은 어두움의 세력이 활개를 치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었으며 하나님의 백성의 삶에 마귀 의 역사를 도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보듯이 솔로몬이 이 일에 깊숙히 빠져들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 그릇된 일을 행함으로 죄에게 기회를 내주지 말아야 할 것을 미리 경고하셨는데, 솔로몬은 이 경고의 말씀에 귀를 막아 버린 것입니다. 아무리 지혜롭고 강한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막으면 아처럼 판단과 행동을 하게 마련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마귀는 성도들을 넘어뜨리여고 부지런히 활동합니다. 성경은 이같은 마귀의 형태를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는 사자에 비유하였습니다.(벧전5:8) 또한 마귀는 성경에서 우리 심령과 삶의 축복을 빼앗는 강도에 비유되기도 합니다. (요10:10)우리가 작다고 생각하고 만만하다고 생각하는 그 죄를 통해 마귀는 우리의 삶 전체를 지옥의 불구덩이에 끌고 갈 수 있습니다. 신아의 중요한 것은 그 모든 죄에 대하여 기회도 틈도 제공하지 않는 것이입니다. 그것만이 교활하면서 잔혹한 죄의 세력을 대항해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2.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여기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이방 사람들과 통혼하거나 교제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씀하시면서 만일 이방인들과 통혼할 경우에 "저희가 정녕코 너희의 마음을 돌이켜 저희의 신들을 좇게 하리라"는 경고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이 경고를 가볍게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많은 이방 여인들을 처첩으로 취하였습니다. 3절은 솔로몬이 천명이나 되는 처첩을 취하였다고 하였는데, 그들 중의 상당수가 이방 여인들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3절을 보면 "왕비들이 왕의 마음을 돌이켰더라"고 하였습니다. 즉 이방 출신의 아내들이 솔로몬의 마음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서 자기들이 섬기던 우상들에게로 돌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솔로몬이 여호와 신앙을 완전히 포기한 것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이방 출신의 아내들로 인하여 그가 여호와도 섬기고 우상도 섬기는 혼합주의 신앙을 갖게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우리는 솔로몬이 그의 통치 말기에 타락하여 죄에 빠지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 할 수 있습니다. 그서은 바로 그가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소홀히 여겨 흘려 버린 데 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죄가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보여준다믐 점에서 중요합니다. 즉 죄의 출발은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듣고 그 말씀을 가볍게 여기는 데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시대와 상황은 다르지만 사람들이 죄를 범하는 이유는 동일합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경고를 소홀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라합니다. 개혁주의에서는 오직 주일 설교 말씀가지고 일주일 묵상하는 것을 권합니다. QT도 잘못된 것이라합니다. 그 이유는 말씀을 읽고 잘 알지 못하는 말씀을 이해 되지 않은 말씀을 묵상한다는 것은 인간의 상상력을 키우는 것이며 인간의 상상력은 인간 중심으로 말씀을 외곡 시켜 묵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철저히 주일 설교 말씀에 초점을 두고 묵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일 말씀을 소홀히 여긴다면 분명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3.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자는 대개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3절과 4절을 보면 왕비들이 솔로몬의 마음을 돌이켰고 그로 인해 솔로몬이 다른 신들을 좇게 되었다는 말씀을 반복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 나온 왕비들은 모두 솔로몬과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을 타락하게 만든것은 그의 가장 가까이에 있던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영적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당하는 시험이나 죄에 대한 유혹이 대개는 먼 데서 오기보다는 가까이에서 온다는 사실입니다. 함께하는 사람, 친분이 두터운 사람이라고 해서 자기에게 반드시 유익을 주는 것만은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대개의 경우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해를 당합니다. 에수님의 제자들도 3년간 에수님 옆에서 배우며 같이 지내면서 항상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막으려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팔아 넘긴 사람도 예수님의 제자인 가롯 유다였습니다. 유혹은 멀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때에라도 인정이나 인간적인 관계에 매이기보다 단호하게 하나님의 뜻을 택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사람의 일에 매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심으로 끝까지 당신의 길을 걸어가신 것처럼 우리 역시도 하나님의 뜻을 택할 때 끝까지 흔드림이나 변질됨 없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바 우리의 사명의 길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4.인생에서 가장 큰 불행은 회개의 기회를 놓치는 것입니다.
9절 말씀에 보면 "솔로몬이 마음을 돌이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저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찌기 두번이나 저에게 나타나시고"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심판을 선언하시기 이전에 두 번이나 나타나신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이 기브온에서 일천번제를 드릴 때와 성전 및 왕궁 건축이 완성된 후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신 것은 일차적으로는 그를 축복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가 나가야 할 바른 길을 제시하고 그가 주의해야 할 것들과 간과해서는 안될 것들을 지적해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보여주듯이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심판하기에 앞서 충분한 회개와 돌이킴, 각성의 기회를 주십니다. 그리하여 이 회개의 기회를 붙잡고 돌이키는 자는 하나님의 축복 속에 다시 세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듣지 않고간과하는 사람은 심판을 피할 수가 없게 됩니다. 오늘 말씀에서 솔로몬도 그 기회를 간과함으로써 자기를 돌아보거나 죄를 돌이키지 않고 이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에 처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언제나 기다리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자 하는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그 때가 올것입니다. 오래 참는 하나님사랑의 하나님, 긍휼의 하나님만을 보고 마음데로 한다면 분명 심판의 하나님, 진노의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이 여러분을 치실 것입니다. 지금이 때입니다. 지금 회개하십시오. 하나님의 때가 오늘이 될 수도 있습니다.
5.우리가 누리는 행복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통해서만 지속됩니다.
10절 말씀을 보면 "이 일에 대하여 명하사 다른 신을 좇지 말라 하셨으나 저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이 말씀에서 "이 일"이란 곧 "우상 숭배"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왕으로 세워진 솔로몬에게 두 번씩이나 반복해서 "다른 신을 좇지말라"고 명하신 이유는 그것이 이스라엘 왕과 백성들의 본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이 경고를 기억지 않았고 그로 인해 범죄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어떤 일에서든 기본적인 질서를 깨뜨리고 근본적인 진리를 왜곡할 때 가장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 법입니다. 마찬가지로 선민 이스라엘에게 있어 우상 숭배 행위는 하나님과 이스라엘간의 구속적 언약 관계(출19:5-6)를 송두리째 부인하는 가장 심각한 범죄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여러 차례 반복해서 이 일을 경고하셨고 금하셨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솔로몬의 범죄가 심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행복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바른 관계를 유지할 때 보장됩니다. 아담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을 거부하고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서려고 했기에 불행에 빠지게 되었고(창3:5), 솔로몬은 하나님과 함께하며 하나님만을 섬겨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을 섬기게 됨으로 징계와 심판을 받아야 했습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할 때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그 은혜로운 관계 속에서 풍성한 축복을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솔로몬의 변절과 타락(열왕기 상 11:1-8)
👉 본장은 한 나라의 찬란했던 역사가 한 지도자의 영적 해이함으로 인하여 어떻게 패망으로 치닫게 되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본장은 이러한 내용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 패망을 주도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반복적으로 드러내면서, 인간 개인의 역 사와 공동체의 역사를 궁극적으로 주관하시고 섭리해 가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본장은 좁게는 솔로몬의 타락에 대한 하나님의 즉각적 심판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넓게는 언약의 상대자인 이스라엘의 왕들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향한 구원의 역사를 변함없이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역사의 지속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본장은 다윗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영원하신 언약이 솔로몬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단절되지 않고 어떻게 갱신·유지되는지를 보여주면서, 열왕기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신학적 주제를 제시한다.
11장의 서두에 ‘그리고, 그러나, 이제’라는 뜻의 ‘와우법’이 등장.
‘그러나’ 로 번역하면 — 앞장 즉 10장까지의 솔로몬은 부친 다윗의 신앙을 본받아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하나님께 지혜를 덧입고 이스라엘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는 신정 국가의 이상적인 군주의 모습을 유지했으나, 본장 즉 11장에 들어서는 이와는 달리 죄악의 길로 급반 전하여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져 나감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당하여 비참한 말로를 걷게 될 것임 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이제’로 번역하면 — 앞장 즉 10장에서 이미 하나님의 말씀과 어긋나게 금을 다량 축적하고 말과 병거를 다량 수입함으로 타락의 전조를 보인 솔로몬(신 17:16,7) 이 이제 본장에서는 이방 여인들과 정략 결혼함으로(출 34:16 ; 신 7:3,4) 완전한 타락의 길로 빠 져들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이와 같은 입장을 취하면 솔로몬의 타락이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돌발적 실수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의 삶 가운데 서서히 일어난 불순종의 결과임을 나타내는것이 된다.
앞뒤 문맥을 비교해 볼 때 이러한 후자의 해석이 전체적 문맥에 더 근접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이 순조롭고 복되기만 했던 치세 초기에 국방력의 증가와 경제적 수입의 증가로 영적 긴장력이 풀어져 말씀에서 금하는 바 금과 말과 병거를 축적하였던 솔로몬이, 이제는 대담하게 말씀을 정면으로 거슬러 이방 여인들을 아내로 맞이하였고 우상 숭배를 용납하였으며 더 나아가 자신이 직접 우상 숭배에 참여하는 데까지 나아갔던 것이다.
솔로몬이 하나님을 완전히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이스라엘 땅에 가증한 우상을 용납하고 심지어 그같은 것들을 자기 손으로 세워나갔던 그의 행위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것이며 저주받아 마땅한 것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치세 말기 그의 이러한 혼합주의적 신앙 의식은 세대를 거듭할수록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저주의 뿌리가 되었고, 결국 예루살렘과 성전의 파괴,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바벨론 유수와 같은 역사적 비극의 궁극적인 원인이 되었다.
본장에 나타난 이러한 솔로몬의 생애를 통하여 인생의 타락과 멸망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홀히 여기는 데서부터 기인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창 2:17; 사 5:24). 신앙 생활에서는 출발이 좋다고 하여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낳는다는 보장이 없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부단한 자기 노력과 인내가 없다면 결코 좋은 열매를 거둘 수 없는 것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성경은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고(고전 10:12),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2)고 강력하게 교훈하고 있다.
이것은 솔로몬의 변절과 타락에 관한 슬픈 이야기이며 아주 놀라운 기록이다.
Ⅰ. 그 세부적 경위와 사실을 알아 보기로 하자.
이스라엘의 정화였고 자기 세대의 그토록 큰 축복이 되었던 솔로몬이 실족한단 말인가? 그렇다. 그것은 역시 사실이며 성서는 그 일을 이야기하고 되풀이해서 말하며 오래 뒤에도 지적하는 데 충실하다(느 13:26). "솔로몬은 비길 왕이 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는 자라. 그러나 이방 여인이 저로 범죄케 하였도다." 이것은 바로 그의 타락을 요약한 말씀이다. 그를 속이고 처음으로 범죄한 것도 여인이었다.
1.그는 이방 여인들 즉 이방의 많은 여인을 열애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그의 반역은 시작된다.
👉1-8절 단락에는 바로의 딸이 솔로몬을 현혹시키는 내용이 직접적 으로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저자는 본문에서 바로의 딸을 앞서 특별하게 소개함으로써 솔로몬과 이스라엘 왕국에 미친 애굽의 부정적 영향력을 암시하고 있다. 즉 이러한 강조적 기술을 통하여 솔로몬은 그동안 애굽과의 친밀한 관계를 기반으로 다량의 말들을 수입하여 하나님의 명령(신 17:16)을 고의적으로 어겼다는 사실(10:28, 29)과 애굽은 솔로몬의 대적들이 은신하여 반란을 꾀 한 정치적 망명지로서 (18, 40절) 결과적으로 솔로몬에게 도움을 준 것이 아니라 고통을 주었다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1) 그는 여자들에게 몰두하였다.
이것은 그의 어머니가 특히 경계한 일이었다(잠 31:3). "네 힘을 여자들에게 쓰지 말라" (아마 이 말씀은 자기 힘에 관한 비밀을 여인에게 알려 줌으로 말미암아 그 힘을 상실했던 삼손을 암시하는 것이리라). 왜냐하면 여색을 가까이하는 일은 딴 어느 일에 못지 않게 왕을 파멸시키는 화근이기 때문이다. 그의 아비 다윗의 몰락도 육신의 정욕과 더불어 시작되었는데 솔로몬은 이로써 경고를 받아야 했었다. 여인의 사랑은 많은 사람을 상하여 엎드러지게 하였고(잠 7:26) 자기 자신의 갈비뼈(rib: 아내 또는 여인을 지칭함)로 인하여 머리를 깨는 자가 허다하다(Hall 주교는 그렇게 말한다).
👉 솔로몬이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의 신들을 섬기게 된 직접적 원인 =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함
‘사랑하였으니’에 해당하는 ‘아하브’
‘사랑하다’ (신 10:12), ‘기뻐하다’ (호 4: 18), ‘연애하다’ (삼하 13: 15)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성경에서 이 단어는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그녀를 아내로 삼고 사랑함과 같이 남자가 여자에게, 여자가 남자에게 갖는 사랑과 성적 욕망을 표현할 때(창 24:67), 또한 암 논이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사모함과 같이 특정 대상과 성적 관계를 갖고자 하는 무절제한 욕구를 표현할 때(삼하 13:1), 그리고 아브라함의 독자 이삭을 향한 사랑과 같이 자녀에 대한 부모의 특별한 애착을 표현할 때(창 22:2) 사용되었다. 이처럼 이 단어는 어떤 대상에 대한 강한 애착이나 혹은 그 대상을 소유하여 함께하고자 하는 정신적·성적 욕망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문은 솔로몬 이 이방 여인들을 단순히 정략적 의도만을 가지고 취한 것이 아니라 감정적 애착과 성적 욕망에 포로가 되어 이들을 취하였음을 의미한다.
솔로몬의 과거와 현재
솔로몬은 본래 ‘여호와를 사랑하여’ 지혜를 얻음으로 부귀와 영화, 명성을 얻었는데, 이제 치세 말기에 나이가 들어서는 여호와 대신 ‘이방의 많은 여인들을 사랑하여’ 그들로 인해 영적 분별력을 상실하고 허탄한 정욕과 쾌락의 노예가 되어 수치와 부끄러움의 내리막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대조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 솔로몬의 이러한 모습에서 우리는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요일 2: 15)라는 말씀을 떠올리게 된다.
한편 모세의 율법에는 이스라엘의 왕된 자가 지켜야 할 규례 중 하나로 ‘아내를 많이 두어서 그 마음이 미혹되게 말 것이며’ (신 17: 17)라는 내용이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이 말씀을 어기고 많은 이방 여인들을 아내로 두어 그 결과 죄악에 빠지게 된 것은(4-8절), 결국 그가 부귀 영화로 교만해져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경홀히 여겼음을 증거한다.
즉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역사상 유례 없는 번영을 누리게 되자 도리어 하나님 없이 자기 혼자서도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양 착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참 지혜의 길에서 떠나고 만 것이다.
(2) 그는 많은 여인을 취하였다.
그가 취한 처첩의 수는 너무나 많아 드디어 처가 칠백 명, 첩이 삼백 명, 합쳐서 천 명에 달하게 되었으나 그 중에는 그가 참회의 설교에서 자인하듯이(전 7:28) 선한 여인 하나가 없었다. 이는 부덕이 뚜렷이 선 여자라면 그런 대열에 들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당연한 일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에 의해 특별히 왕들에게 군마나 비빈을 많이 두지 못하도록 금지시키셨다(신 18:16, 17). 솔로몬이 말들의 수를 많게 하고 더욱이 그 말들을 애굽에서 수입함으로써(이것은 명백히 금지된 행위였다) 어떻게 전자의 율법을 위반하였는지 봉독하였다(왕상 10:29). 여기에서는 그가 아내를 많게 함으로써 어떻게 후자의 율법을 범했는지를 듣게 된다(이것은 보다 치명적 결과로 나타났다).
보다 작은 죄일망정 대담하게 저지르다 보면 보다 큰 죄에 이르는 출입문이 된다는 점을 명심하자. 다윗은 아내를 너무나 많이 두었으므로 아마 솔로몬은 그것을 합법적인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경건한 신앙으로 정평이 난 자들이 어떤 일로든지 악한 본을 보이게 되면 그로 인해 자기들이 미칠 해가 얼마나 클지, 특히 자기 자녀들에게 끼치는 해로움이 얼마나 큰지 모른다. 선량한 자의 한 가지 악한 행위는 악한 자의 스무 가지 악행보다 더 해로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아마 솔로몬이 처음 자기 아내를 늘리기 시작했을 때는 자기 아버지 다윗이 거느린 비빈의 수를 초과할 의사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죄의 길은 내리막 길이어서 그 길에 들어선 자는 쉽사리 멈출 수가 없다.
하나님의 지혜는 한 남자에게 한 여자를 지정하였다. 처음에는 그러하였다. 그러나 하나로 족한 줄 모르는 자들은 둘 셋도 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재갈을 물리지 않은 욕망은 한계를 모를 것이며 고삐없는 숫사슴은 끝없이 방황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다가 아니었다.
👉솔로몬이 이와 같은 다양한 이방 여인들과 혼인한 것은 정략적 목적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이 속에는 동맹을 통한 국제 사회에서의 지위 강화와 국가 안보 도모라는 실리적 목적이 내포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이방 족속과의 결혼을 금하는 하나님의 계명을 직접적으로 어기는 중대한 범죄 행위로서(출 34:16 ; 신 7:3, 4), 솔로몬이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강대국과의 동맹이라는 정치적 술책에 의지했음을 명백히 증거하는 사건이다.
특별히 여기에 소개되는 솔로몬이 사랑한 여인들의 출신 국가 가운데 ‘모압’과 ‘암몬’은 하나님께서 영원히 이스라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라 규정하신 족속들이었으며(신 23:3-6), ‘햇’ 여인 역시 하나님께서 명백히 결혼을 금하신 가나안 족속 가운데 하나였다(신 7:1). 아울러 ‘에돔’과 ‘시돈’ 여인의 경우는 율법에서 특별히 교류를 금하고 있지는 않지만 에돔의 경우는 이 스라엘이 유일신 하나님만을 섬기는 데 반해 다신을 숭배하는 민족이었으며, 시돈의 경우는 구약 이스라엘 역사에 가장 극악한 해악을 끼쳤던 우상인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던 족속들이었다.
→ 따라서 이들과 솔로몬이 연합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도 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스라엘에 극악한 폐해를 초래할 것이 자명하였다. 그러나 솔로몬은 신정 왕국의 통치자로 세움을 받았으면서도 세속적이고 실리적인 목적과 자기의 정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일반 백성들조차도 엄격하게 지켜야 할 하나님의 율법을 가차없이 어기고 만 것이다.
👉 솔로몬이 정략 결혼하였던 이방 여인의 출신 국가들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거의 대부분 영 적으로 이스라엘에 위험한 영향을 끼치기에 충분하였지만 정치, 외교적인 면에서는 위협을 줄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진 국가들이 아니었다. 그리고 실상 이들 나라들은 다윗과 솔로몬 당시에는 이스라엘에 복속된 국가들이기도 했다.
따라서 본서 저자가 본절에서 솔로몬이 취한 천명이나 되는 무수한 빈장과 후비 가운데 이들 족속들을 대표적으로 열거하는 이유는 바로 이들로 인해 솔로몬이 얻을 이익이 도무지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이며, 여기에 더하여 앞서 강조했던 바 이방 여인들로 인해 하나님과 멀어진 솔로몬의 영적 상태를 반영해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3) 그들은 이방 여인 즉 하나님이 특별히 상호 통혼을 금지한 모압 족속이나 암몬 족속 등의 이방 여인이었다(2절).
혹자는 솔로몬이 이들 외국 여인과 결혼한 것은 그들을 통해 상대 국가의 정보를 얻으려는 정략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이스라엘 여인들은 솔로몬에게 너무 엄숙하고 정숙하였고 이에 반해 이방 여인들은 방정하지 못한 복장과 교태와 음탕한 말로 그를 즐겁게 해 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는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다. 그는 아마 이방 여인을 딴 재물처럼 여기고 자기 처첩궁을 멀리서 데려 온 여인들로 가득 채우는 것을 위엄있는 일로 간주했을 것이다. 딸 덕에 부원군 된다는 식으로 솔로몬과 같이 큰 왕의 비빈이 된다는 것은 아무리 뛰어난 백성이라도 큰 영광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실은 아무리 미천한 자일 망정 그것은 수치가 되었을 것이다.
(4) 솔로몬은 불행을 보다 완벽하게 하느라고 저희를 연애하였다(2절). 그는 이방 여인들을 거느렸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엄청나게 좋아하기까지 하였다.
그는 그들에게 마음을 주고 그들 사이에서 시간을 보냈으며 그들의 행동과 말이면 무엇이나 다 좋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정식 아내인 바로의 딸을 멸시하였다. 바로의 딸은 그에게 있어서 소중한 사람이었다. 또 그는 이스라엘의 모든 부인들을 이방 여인들과 비교하여 우습게 알았다.
솔로몬은 굉장히 많은 양의 지식에 통달하고 그것을 온축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자기 욕망을 잘 다스리지 못했을 때 그런 지식이 무슨 소용이 있었는가?
👉 하나님의 분명한 경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이 이방 여인들을 사랑하는 일 에 집 착했음을 나타낸다.
‘하였더라’ (따바크)
이에 해당하는 ‘따바크’ 는 ‘붙쫓다’ (룻 1:14), ‘쫓아가다’ (창 31:23)라는 뜻으로, 이는 강하게 집착함으로 어떤 대상에 종속되는 모습을 가리킨다. 따라서 본문은 ‘솔로몬이 사랑함으로 그들에게 집착하였다 (RSV,Solomon clung to these in love)' 로 번역할 수 있다.
이는 솔로몬이 욕정의 포로가 되어 1)지혜의 마음을 잃어버리고 2)그들에게 종속되었음 을 의미한다.
이처럼 죄의 유혹 특별히 본절에서 언급하는 성적 유혹은 겉으로 볼 때 매우 달콤 해 보이는 것이지만 거기에 한 번 빠져들면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에 멸망과 죽음을 가져오게 된다는 점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떠올리게 된다. “대저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나중은 쑥같이 쓰고 두 날가진 칼같이 날카로우며 그 발은 사지로 내려가며 그 걸음은 음부로 나아가나니 그는 생명의 평탄한 길을 찾지 못하여 자기 길을 든든치 못하여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느니라” (잠 5:3-6).
이방 여인들에 대한 솔로몬의 태도를 표현하는 동사 ‘따바크’ 는 사실상 여호와에 대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갖추어야 할 태도를 나타낸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 님 자신에게 ‘친근하게 하고’ (신 10:20), ‘부종할 것’ (신 11:22)을 권고하셨는데 이때 사용한 표현이 바로 이 ‘따바크’ 동사이다. 따라서 본문은 솔로몬이 단순히 여인들에게 마음을 빼앗겼다는 사실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본래 세움받은 목적과 나아가야 할 방향과는 전혀 다른 방향, 즉 하나님께 대한 배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해 주고 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일찌기 신정 왕국 이스라엘의 왕이 될 자에게 경고하신 세 가지
즉 왕된 자는 말을 많이 두지 말 것이요, 아내를 많이 두어서 미혹되게 말 것이며, 은금을 자신을 위 해 많이 쌓지 말라(신 17:16, 17)는 세 가지 명령을 모두 범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솔로몬이 이렇게 많은 처첩을 거느리고 엄청난 부귀 영화를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의 아들로 열왕기서에 소개되는 인물이 오직 ‘르호보암’ 한 사람밖에 없다는 것은 너무나 역설적인 사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2.그는 이스라엘이 모압의 여인들로 인하여 바알브올을 섬기게 되었듯이 이방 여인들에게 이끌려 이방 신들을 섬기게 되었다. 이 신들은 알지 못하는 낯선 신이었고 이 일은 그가 아내를 많이 둔 데서 온 나쁜 결과였다.
우리는 그가 이 일로 건강을 해치고 노쇠를 재촉하게 되었다고 생각할 만하다. 이 일은 그의 재정을 고갈시켰다. 그의 보고가 아무리 무진장하다고 하더라도 이 모든 여인의 자만심과 허영심을 충족시키기에는 모자란 것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아마 솔로몬은 말년에 자기 사업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을 것이고 이로 인해 해외에서 받던 공급품이 끊어졌을 것이다. 이렇게 되자 그는 자기 위세를 유지하기 위해 백성에게 불평할 정도의 세금을 부담시킬 수밖에 없었다(왕상 12:4). 그러나 이런 나쁜 결과 중 어느 것도 "왕비들이 그의 마음을 돌이켜 저희 다른 신들을 좇게 하였더라" (3, 4절)는 것보다 나쁘지는 않았다.
👉 솔로몬의 타락은 갑작스런 일이었는가?
본문에서 ‘노년’을 뜻하는 ‘지크나’로 표현된 솔로몬의 나이는 60세 전후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솔로몬은 일반적으로 육체의 허약함이 정신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노년의 시기에 이르렀을 때, 이방 여인들 의 지속적 유혹에 더 이상 저항하지 못하고 끝내는 그녀들의 요구에 굴복하고 말았다. 하지만 솔로몬의 타락이 노년의 시기에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그 타락의 책임을 모두 이방 여인들에게만 돌릴 수는 없다.
솔로몬의 타락 가능성은 이미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는 것과 같은 영적인 문제를 도외시하고 외적인 건축 사업에만 치중했던 9장에서 나타났고, 하나님 말씀에 반하여 말과 재물을 다량 축적했던 10장에서 나타났고, 이제 우상 숭배와 같은 구체적인 타락 행위가 노년에 드러나게 된 것이다.
이상의 내용에 더하여 솔로몬이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저질러 왔던 누적된 범죄 행위들은 본문에서 그것들이 표면화된 시기를 나타내는 ‘나이 늙을 때’ 라는 표현과 연결되어 그의 죄가 상당히 고질화되어 있다는 것을 또한 암시해 주고 있다.
(1) 그는 자신의 종교에는 냉담하고 무관심하게 되었으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기는 데는 태만해졌다.
"그의 마음은 자기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치 못하였고" (4절) 다윗처럼 그를 온전히 좇지도 않았다.(6절).
우리는 그가 하나님 예배를 완전히 일축해 버렸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더욱이 하나님 예배를 억제하거나 방해하였다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성전 예배는 여전히 계속된다). 그러나 그가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는 일과 그의 제단에 참예하는 일은 더욱 뜸해지고 더욱 진지성을 잃어갔다. 그는 자기 처음 사랑을 버리고 하나님께 대한 열성을 잃어 버렸으며 시작할 때처럼 끝까지 그것을 보존하지 못하였다. 그는 꾸준하지 못하였으므로 온전치 못했다고 표현하고 있다.
👉 ‘왕의 마음이 그 여호와 “앞에”’ ‘온전치 못하였다’
솔로몬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않았다는 것은 곧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지 않았다는 의미.
“앞에” : ‘함께, 근처에, 곁에’ 라는 뜻. 이는 친교와 교제를 의미하는데, 사회적 지위나 신분에 관계 없이 기쁨 혹은 고난이라도 함께 동참하는 친근한 관계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
따라서 본문을 직역하면 ‘그리고 그의 마음이 그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완전하지 못했다(KJV, his heart was not perfect with the Lord his God)’ 이다. 이는 솔로몬이 하나님과 관계되는 어떤 일들을 했을지 모르지만 그 삶이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되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진정한 동행의 삶과는 거리가 멀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솔로몬이 하나님과 아예 단절하고 살지는 않았을지 모르지만 하나님보다 이방 여인에 집착하는 작금의 상황과 관련해 그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바르지도 않고, 온전하지도 않으며, 온전할 수조차 없다는 것을 지적해주는 것이다.
NIV는 이를 반영하여 ‘그리고 그의마음이 그 하나님 주께로 온전히 헌신하지 못했다(NIV, and his heart was not fully devoted to the LORD his God)’로 번역하였다. 솔로몬의 잘못을 지적하는 이러한 본문을 통하여 우리는 성도가 세상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마 6:24)는 진리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진리를 망각하고 양측을 함께 섬기려고 생각하거나 하나님보다 다른 어떤 것을 더 사랑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는 무관한 것이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하는 것으로서 파멸을 자초하는 일이 될 뿐 이다.
6절,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함
‘여호와의 눈앞에서’에 해당하는 ‘빼에네 예흐와’는 두 가지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1) ‘여호와가 보시는 앞에서’와 2)‘여호와가 보시기에’ .
전자의 뉘앙스를 따르면 본문은 여호와가 감찰하시는 상황에서 솔로몬이 악을 저질렀기 때문에 그 악을 숨길 수 없다는 사실과 더불어 솔로몬은 어떤 변명으로 자신을 합리화하더라도 심판을 면할 수 없다는 사실을 통시에 전달한다.
후자의 뉘앙스를 따른다면 본문은 솔로몬의 행위가 사람들의 기준과 판단으로는 정당한 것이 될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기준과 판단에 의하면 명백한 악이라는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된다.
솔로몬이 저지른 ‘악’ 은 근본적으로 무엇인가?
본장에서는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의 우상을 따른 행위와 연관되어 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인정하지 않는 영적 교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솔로몬은 치세 초기와 달리 성전과 왕궁 건축 이후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은혜만을 갈망하는 겸손한 모습을 서서히 상실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정면으로 어기는 교만을 드러냈던 것이다. 이는 전에 나단 선지자가 맛세바와 간음하고 죄를 은폐하기 위해 맛세바의 남편인 우리아를 죽인 다 윗의 행동을 ‘악’으로 규정했던 이유가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인정하지 않고 왕권을 이용하여 하나 님의 율법을 정면으로 거스른 다윗의 교만에 있었다는 사실에서도 파악된다(삼하 12:9).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 분열 왕국 시대에 동장하는 왕들의 행위를 규정할 때, 반복해서 등장하는 ‘악’ 에 대한 언급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14:22;15:26;16:19;왕하 3:2;8:18; 13:2). 하나님께 대한 솔로몬의 섬김과 순종이 결함과 불완전함으로 가득하게 되었던 것은 4절과 5절에서 볼 수 있는 바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는 종교 혼합주의적 경향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그는 하나님을 좇는 일에서 돌이켰고 끝까지 계속해서 좇지 아니했으므로 하나님을 온전히 좇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도 많은 과오가 있었다. 그러나 다윗은 솔로몬처럼(그의 아내들은 그를 하나님 예배에서 돌이키려고 온갖 기교를 다 부렸다)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게을리 하거나 태만하지는 않았다. 거기에서 그의 배반은 시작되었다.
👉 솔로몬의 마음과 비교되고 있는 ‘다윗의 마음’은 열왕기에 나오는 모든 왕들을 평가하는 일종의 시금석에 해당한다(11:33.38; 15:3).
즉 북이스라엘 왕이든지 남유다의 왕이든지간에 한 왕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같았다는 것은 긍정적 평가이며,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않았다는 것은 부정적 평가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열왕기 저자가 말하는 다윗의 마음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윗이 왕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교만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여 그 언약을 성실히 지켜나갔던 마음가짐을 의미한다.
물론 다윗은 알다시피 재위 기간 중 유부녀인 밧세바와 간통 을 하고, 자신의 범죄를 은닉하기 위해 자신의 충성된 신하이자 맛세바의 남편인 우리아를 모살하는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질렀다(삼하 11장).
그런데도 하나님이 다윗을 인정하신 것은 그가 자신 이 저지른 이같은 죄악과 범죄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연약함을 하나님 앞에 자복하며 철저하게 회개하였기 때문이며, 이 일을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그가 평생 하나님 앞에서 겸비하고 진실한 자세를 견지하면서 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솔로몬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않았다는 본문은 단순히 솔로몬이 그 동안 죄를 범했다는 사실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가 자신의 마음속에 새겨야 할 하나님의 명령을 완전히 망각하고 우상 숭배와 같은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을 뿐 아니라 거기에 대해 거듭되는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도 죄악을 버리지 않은 그의 완악한 자세를 지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 그는 우상 숭배하는 자기 아내들을 용납하고 옹호했으며 거리낌없이 그들에게 가담하였다.
👉 5절, 솔로몬은 시돈 사람의 … ‘쫓고” .. “쫓음이라”
쫓다
본문의 언급을 통해서 우리는 솔로몬이 이방의 왕비들에게 우상 숭배를 허용한 정도가 아니라, 자신도 우상 숭배에 적극 관여했음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여신 아스다롯
바알신의 아내로 여겨지며, 두로와 베니게, 즉 시돈 사람들에 의해 번식과 풍요의 신, 그리고 사랑과 쾌락의 신으로 숭배되었다. 따라서 이 여신을 위한 제사에는 보통 음란한 행위가 의식의 한 순서로 행하여졌다 (삿 2:13; 10:6 ;삼상 7:4; 12:10).
밀곰
암몬의 주신으로 ‘몰렉(Molech, 왕하 23:10-13)’ 혹은 ‘말감(Malcam;렘 49:1;암 1:15)’으로도 불리웠다. 이는 팔레스틴 원 주민들의 종교로서 밀곰을 위한 제사에는 어린 아이, 특히 신생아를 제물로 바치는 의식을 치르게 된다(대하 28:3). 이같은 의식에 사용된 밀곰 신상은 청동으로 만들어졌으며 머리는 수소 형상이 고 팔을 벌린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당시 암몬 자손들은 이를 불로 달궈지게 한 후에 그 팔에 아 이를 안겨 태워 제사를 드렸다고 한다.
‘가증한’ 밀곰, 그모스, 몰록을 쫓음
이는 보기에도 매우 혐오스러운 행위임을 가리키는 강경한 어조의 단어로, 여기서는 밀곰 등 여러 우상을 숭배하는 행위가 지니는 극도의 사악성과 비윤리성을 고발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다시 말해 본문의 ‘쉰쿠츠’ 는 ‘밀곰’ 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가치관을 함유한 표현으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우상이 비록 매력적으로 보이고 대중적이라 할지라 도 그것들의 제사 행위를 통해 표면적으로도 부각되는 바 극도의 사악함과 잔인함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아닌 우상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허탄하고 가증한 것인지를 깨닫기를 원하고 계셨음을 나타낸다.
바로의 딸은(상상되는 대로) 유대교로 개종하였다. 그러나 솔로몬이 하나님 예배에 무성의해지기 시작하자 그는 딴 아내들을 개종시킬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방 아내들에게 순응하여 그는 저희 신들을 위한 예배당을 건축하고(7, 8절) 우상의 제사장들을 부양하였으며 때로는 그들의 제단에 직접 참가하기도 하였다. 심지어 "이 일에 무슨 해가 있느냐? 모든 종교는 다 비슷한 게 아니냐?" 라고 물으면서 희롱하기까지 하였다.
(Patrick 감독의 말대로) 지혜가 큰 자의 병이었다. 솔로몬이 이와 같이 한 여인에게만 비위를 맞추고 나머지 여인들에게 동등한 충족을 주지 않는다면 그들은 그 일을 오해할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 모든 처첩에게도 그와 같이 해 주었고 그러다 보니 결국 예루살렘 앞 산에 그모스를 위해 산당을 지을 정도로 불경건하게 되었다. 그 산은 감람산이었다. 그의 이런 행동은 마치 자신이 건축한 성전에 대항하기 위해 그모스 신당을 지은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이 산당들은 요시야 때까지도 완전히 파괴되지는 않았다(왕하 23:13). 이상은 솔로몬의 변절에 대한 설명이다.
👉 과거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지었던 솔로몬이 (5:3) 이제는 가증한 우상 들을 위하여 산당을 지었다. 그러나 솔로몬은 우상들을 위하여 산당을 지은 것이 아니라, 사실상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산당을 지은 것이었다. 즉 사랑하는 왕비들의 요구를 만족시키고 이방 국가들과 평화적 외교 관계를 유지하려는 자신의 실리적 목적을 이루고자 산당을 지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솔로몬의 가장 큰 우상은 = 하나님을 마땅히 계셔야 할 자리에서 밀쳐내고 대신 그 자리를 차지했던 자기 자신이라고 할 수 있다.
산당을 지은 장소
감람산: 네 개이 작은 봉우리를 가진 일련의 산들.
솔로몬이 이방의 우상들을 위한 산당을 예루살렘 앞에 있는 산에 지은 것은 여호와의 성 전이 있는 예루살렘성 안에는 지을 수 없었던 이유도 있었겠지만, 동시에 예루살햄에 거하는 왕비 들이 근거리에서 우상을 숭배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성전 건축이 완성되고 성전 예배가 정착된 상황에서 기존의 산당들까지도 훼파시켜야 할 사명 (민 33:52)이 있었던 솔로몬이 오히려 이방 우상들을 숭배하기 위해서 새롭게 산당을 지었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하 나님께 대한 심각한 반역 행위이며, 동시에 절대적이고 유일한 여호와 신앙을 우상 숭배와 더불어 상대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8절은 솔로몬이 이방 왕비 중 어느 특정 왕 비에게만 그의 신을 섬길 수 있는 혜택을 준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즉 모든 왕비들은 각각 자신들의 신을 위한 산당을 솔로몬으로부터 공급받았고, 이를 인하여 고국에서처럼 이스라엘 땅에서 자유롭게 자신들의 신을 섬길 수 있었던 것이다.
본장에서 언급되고 있는 아스다롯, 밀곰(몰 록), 그모스 등은 이방 왕비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에 유입된 우상들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솔로몬의 종교 혼합 정책의 결과 예루살렘 주변 산들의 높은 곳에는 거의 우상을 위한 산당들로 가득하게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솔로몬에게 산당을 공급받은 왕비들이 각자의 신들을 섬기는 데 열심을 다했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솔로몬이 여호와를 섬기는 데 있어 그만큼 열심을 내지 않았다는 것이 된 다. 이 당시의 솔로몬의 신앙 노선은 여호와 유일신 숭배가 아닌 주변 국가들의 종교와 문화를 인정하는 일종의 종교 혼합주의로 흘렀던 것이다.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에 민감하지 못할 때 발생하는 범죄의 심각성을 전달해 주고 있다.
즉 솔로몬은 처음에 하나님의 경고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인간적 욕망과 실리적 목적을 채우고 자 이방 여인들을 왕비로 맞이했으나, 결국 그것은 이스라엘 사회에 우상 숭배를 부채질하는 산당 예배를 대규모로 확산시키는 결과로 이어졌고 이같은 신앙적 변절로 인해 이스라엘은 솔로몬 이후 남북으로 분열되는 비극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분열 이후에도 우상 숭배와 죄악의 오염을 감당치 못해 무수한 어려움을 겪어야 했으며, 마침내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에 이르고 말았다.
Ⅱ. 우리는 여기서 잠시 숨을 멈추고 솔로몬의 타락을 애도하자. 우리는 그의 실족에 놀라움을 금치 못해야 마땅하다. 어찌 금이 빛을 잃고 정금이 어찌 변하였는고!(렘 4:1) 하늘아! 이 일을 인하여 놀랄지어다! 심히 두려워할지어다!(렘 2:12) 선지자는 같은 경우를 당하여 그렇게 감탄하고 있다.
1.다음 네 가지 사실은 얼마나 이상한가!
(1) 솔로몬은 노령에 들어서 육체적 욕망 즉 청년 특유의 욕정에 사로잡혔다.
우리는 자신의 결단력이 철석같다고 주제넘게 생각해서 안 되는 동시에 우리를 부패시키는 힘이 약하다고 추정해서도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안심하고 경계를 게을리하게 되는 것이다.
(2) 솔로몬처럼 지혜롭고 빠른 이해와 건전한 판단으로 소문이 난 분이 이들 우매한 여인으로 말미암아 어리석게 되도록 자신을 내버려 두었다는 것.
(3) 솔로몬은 여자에게 대한 사랑의 위험성을 타인들에게 너무나 자주 너무 분명히 경고해 주었다. 그런 그가 비참할 정도로 여자들에게 홀려 버린 것이다.
우리가 흉한 일을 보고 그걸 남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우리 스스로 그것을 피하는 것보다 더 쉽다.
(4) 그토록 선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데 그토록 열성적이었으며 하나님께 관한 일에 너무나 정통하였고 성전 봉헌시에 그토록 훌륭한 기도를 하였던 솔로몬이 이렇게 죄 많은 행동을 하였다는 사실. 이게 솔로몬인가? 그의 모든 지혜와 신앙은 결국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가? 호화선이 이토록 난파한 적은 없으며 면류관이 이렇게 모독받은 적은 없었다.
2.이 모든 일에 대해 우리는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가?
하나님께서 왜 이런 일을 허용하셨는지를 규명하는 것은 우리의 권한 안에 있지 않다. 주의 길은 바다에 있고 주의 첩경은 큰 물에 있기 때문이다(시 77:19).
하나님께서는 그 일로부터 자신의 영광을 유도할 줄 아셨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건축할 솔로몬에 대하여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삼하 7:14)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이미 이렇게 될 것을 예견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일을 어떻게 선용해야 할 지 알아 보는 것은 우리의 관심사가 된다.
(1)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잘 안다. 그러므로 시종일관 그 은혜에 의지하여 살자.
(2) 여의로운 상태조차 위험 속에 내재하며 시험을 극복하기가 얼마나 힘드는 일인지 주시하라.
솔로몬은 여수룬처럼 살이 찌개 되자 발로 차버렸다. 이들이 간구한 필요한 양식은 솔로몬이 넌더리를 낸 풍부한 양식보다 더 안전하고 훌륭하다(잠 30:8 참조).
(3) 큰 소리로 신앙을 고백하고 헌신에 진취적이고 열성적인 태도를 과시한 자들이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될 필요성이 매우 크다는 것을 명심하자.
악마는 그런 자들에게 맹렬한 공격을 가할 것이며 그런 자들이 실수하면 그 수치는 더 클 것이기 때문이다. 낮을 돌보이게 하는 것은 저녁이다. 그러므로 잘 달려 왔더라도 우리는 부족한 감을 주지 않도록 조심하자.
●솔로몬에 대한 하나님의 노여우심(열왕기 상 11:9-13)
👉이스라엘 왕국 분열은 한마디로 솔로몬의 신 앙적 변절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하심의 결과였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솔로몬에 대해서 진노하시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Ⅰ. 하나님은 솔로몬의 죄 때문에 그에게 진노하셨다.
👉 ‘진노하시니라’
주로 공의의 심판자로서 죄를 물으시는 엄중한 하나님의 모습을 묘사할 때 사용. 하나님의 이러한 분노는 마땅히 지켜져야 할 언약을 깨뜨린 범죄에 대해 발하시는 거룩한 분노로서, 자기 백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일관된 사랑에서 비롯된 것 솔로몬은 하나님으로부터 ‘여디디야’ 라는 이름을 선사받을 정도로 하나님의 사랑을 충만히 받았으며(삼하 12:25), 특별히 하나님께 충만한 은총과 언약을 얻었던 자였다(3:11-14). 따라서 이토록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던 솔로몬이 하나님 대신 우상을 섬긴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배신과 배은이었으며 하 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가증스러운 범죄 행위였다.
솔로몬이 행한 일은 하나님을 노엽게 하였다.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삼하 12:24) 그를 기뻐하시던 때도 있었다(왕상 10:9). 그러나 이제 여호와께서는 솔로몬에게 진노하셨으니 이는 그의 죄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1.극히 야비한 배은망덕.
그는 자기에게 두 번씩이나 나타나신 여호와께로부터 돌이켜 떠났다. 한 번은 그가 성전을 짓기 전에 나타나셨고(왕상 3:5) 또 한번은 그가 성전을 준공하여 봉헌한 뒤에 나타나셨다(9:2).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알든 모르든 간에 자기의 은혜로우신 방문을 셈하시고 계시며 우리에게 또 우리를 위하여 얼마나 빈번히 나타나셨는지를 알고 계시며 만일 우리가 돌이켜 그를 떠나면 우리에게 불리한 증거로서 그것을 기억하실 것이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나타나신 것은 누가 보아도 그의 믿음을 굳게 하기 위한 것임을 깨달을 수 있다. 그것은 다른 신에게 대한 경배를 영원히 방지시킬 수 있던 행위였다. 또한 그것은 그가 결코 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현저한 은총이었고 명예였다. 특히 하나님이 이 양차의 현현 가운데서 그에게 하신 말씀을 고려하면 그것을 잊지 않아야 마땅했다.
👉‘돌이켜’ (‘나타’) 의
기본 의미는 ‘(손을)펴다’ (출 7:19;겔 6:14), ‘내밀다’(출 14:16)이며, 이는 도움을 바라는 자세를 묘사할 때 사용. 또한 이 단어에는 마음을 ‘기울이다’ (삿 9:3), ‘피하다 (민 22:26)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본몬에서는 후자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본문이 의미하는 바는 솔로몬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다른 이방신들을 쫓아가 그것들을 의지하고 도움을 요청하며 자신을 숨겼다는 것이다.
‘구부리다’ 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어, 원래의 상태를 변경시켜 다른 생각을 하며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나타내기도 한다. 따라서 이 단어는 도덕적 측면에서 변절, 혹은 배신을 의미하며 ‘실족하다’ (시 73:2), ‘미혹되다’ (사 44:20), ‘억울하게 하다’ (암 5: 12), ‘불공평하다’ (사 10:2), ‘그릇되게 하다’ (욥 36:18) 등으로도 번역된다.
이로 보건대 본문은 일차적으로 솔로몬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그 마음이 이방의 우상들에게로 기울어졌음을 고발하는 것이지만, 이와 더불어 솔로몬이 과거의 성군으로서의 면모를 완전히 상실하고 온갖 그릇된 것을 향해 치우쳐 있음 을 묘사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2,4,9절 : ‘돌이커’ ⇒ 솔로몬의 내적, 외적 변화
2절과 4절에서는 동사의 주체가 이방 여왕들이었던 데 반하여 본절에서는 그 주체가 솔로몬 자신으로 표현되는데, 이는 솔로몬이 처음에는 이방 왕비들의 우상 숭배 유혹을 수동적으로 받는 입장이었으나 점차 능동적으로 그 자신이 여호와를 배신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본절은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분노하신 이유가 솔로몬이 실수에 의해서가 아니라 적극적이고 고의적으로 여호와를 떠났기 때문임을 보여주고 있다.
2. 극히 고의적인 불순종.
하나님께서 그에게 명하신 일은 바로 "다른 신을 좇기 말라" 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그런 명백한 훈계에 구애받지 않았다(10절). 사람을 다스리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다스리고 계신다는 사실을 망각하기 쉽다. 수하자들에게서는 복종을 요구하면서도 지고무상(至高無上)하신 그분께는 복종을 거부하기가 십상이다.
👉솔로몬은 신정 왕국의 통치자로서 하나님의 명령에 대하여 바로 이와 같은 적극적 순종의 태도를 가졌어야 했다. 여기서 적극적 태도란 자신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킬 뿐 아니라, 그의 백성들도 범죄 에 빠지지 않도록 돌봐야 하는 의무가 있었음을 함축한다.
그러나 솔로몬은 여호와께로부터 마음을 돌려 그 자신이 우상 숭배 범죄에 빠졌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앞장서서 이방 왕비들의 뜻에 따라 우상을 위한 산당을 지음으로써,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우상 숭배에 빠지는 빌미를 제공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책망하시고 그에게 징계를 내리신 것은 단순히 그가 율법 조항을 준수하 지 않았기 때문만이 아니라 보다 본질적으로 그가 신정 왕국 이스라엘의 대표로서 자기 직무와 책임에 대해 불성실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본문이 의미하는 바는 여호와 신앙에 대한 솔로몬의 완전한 배교가 아니다. 오히려 본문은 솔로몬이 계속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라면서도(9:25), 우상 숭배를 허용하는 종교 혼합주 의적 태도를 가졌던 사실을 지적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옳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해야 할 분이며(신 6:5), 결코 다른 것과 겸하여 섬길 수 있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마 6:24)은 성경이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가장 중요한 가르침 중 하나이다.
이같은 사실을 기억할 때, 솔로몬이 말년에 취한 이같은 종교 혼합주의적 태도는 심각한 배교 행 위와 결코 다른 것이 아니다.
Ⅱ. 이에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전언을 보내셨다(11절).
"여호와께서는 솔로몬에게 변절에 대해 톡톡한 갚음을 각오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아마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을 것 같다)."
1.판결은 공정하다. 즉 그가 하나님을 배반하였으므로 나라의 일부는 그의 가문을 배반하리라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피조물에게 바쳤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도 그의 왕권을 그의 신복에게 주시리란 것이다. "내가 나라를 네게서 즉 네 자손대에 빼앗아 네 신복에게 주리니 그는 네가 수고한 나라의 많은 부분을 다스리게 될 것이다." 솔로몬에게는 이것이 여간 큰 굴욕이 아니었다. 그가 자신의 부유한 나라를 상속자에게 영원히 물려 주리라는 기대로 즐거워했으리란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죄는 가정에 파멸을 불러오며 상속을 단절시키고 재산을 소외시키며 사람의 명예를 실추시킨다.
2.그러나 매우 인자하시게도 다윗을 위하여(12, 13절) 즉 다윗에게 하신 약속을 인하여 그 심판을 경감시키신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인간에게 베푸시는 모든 은총은 그리스도를 위해서이며 그와 맺은 언약을 위해서이다. 나라는 솔로몬가로부터 찢어져 나오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단서가 붙어있다.
(1) 즉각적인 것은 아님.
솔로몬 생전에는 이 일의 시행을 보지 않게 될 것이다. 나라는 그의 아들의 손에서 빼앗기게 될 것이다. 그 아들은 이방 아내 중 하나에게서 난 자였다. 그의 어미는 암몬 여인이었다(왕상 14:31). 이 여인은 아마 우상 숭배의 장려자였을 것이다. 사람이 축복을 남기지 않는다면 자녀와 재산을 남긴다고 해서 무슨 위안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심판이 오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사는 날에 임하지 않는다면(왕하 20:19 참조) 그것은 우리에게 은총이 된다.
(2) 전적은 아님.
하나의 지파 곧 가장 강성하고 인구가 많은 유다 지파는 다윗가에 남아 있게 될 것이다(13절). 이것은 다윗이 건축한 예루살렘과 솔로몬이 건축한, 그곳의 성전을 위해서였다. 이 양자는 남의 수장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솔로몬은 하나님께로부터 급속히 돌이키지 않았으며 완전히 돌이키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서 나라를 급히, 전부 다 빼앗으시지도 않았다. 솔로몬의 양심을 깨우치고 그를 회개시키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은혜로이 보내신 이 전언에 접하자, 그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였다고 생각할 만하다. 즉 솔로몬이 자기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며 자기 의무에로 복귀했다고 생각할 만한 이유가 있다. 그런 뒤 그는 전도서에다 자기의 회개를 피력하였을 것이다 그는 전도서에서 자신의 어리석음과 미침을 통렬히 비탄하고 있다(전 7:25, 26). 그리고 그는 장차 올 심판을 고려하여 그와 같은 악한 행로를 조심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지키라고 남들에게 경고한다. 올 심판은 벨릭스를 전율케 했던 것처럼 솔로몬을 떨게 했던 것 같다. 이 참회의 설교는 다소 성격이 다르긴 하나 다윗의 회개시에 못지 않게 죄로 심령이 상하여 죄로부터 돌이켰다는 것을 참되게 나타내는 설교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자기 백성 속에서 여러 가지로 역사하신다. 이와 같이 솔로몬은 비록 실족하긴 했으나 완전히 엎드러진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대해 그에게 하신 말씀은 성취되었다.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그를 징계하려니와 내 은총은 그에게서 빼앗지 아니하리라(삼하 7:14, 15)." 하나님이 비록 자기의 사랑하는 자를 죄에 빠지도록 허용하시더라도 그들을 계속 죄중에 있도록 놔두지는 않으신다. 솔로몬의 변절은 그의 치욕이 되고 개인적 명망에 큰 오점이 되긴 했으나 그의 치적에 대한 평판을 훼손하지는 않았다. 그의 통치는 후에 선정(善政)의 귀감이 되었다(대하 11:17). 역대기에서는 왕들이 다윗과 솔로몬의 길로 행하는 한 정치를 잘 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 모든 점을 미루어 보아 우리는 그가 회개하여 자비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그가 회복한 데 대해 기록하는 것을 적합치 않는 것으로 생각하시고 불분명한 상태로 그냥 두셨다. 이것은 회개를 전제로 죄짓는 일이 없도록 남에게 경고하기 위해서였다. 하나님이 저들을 회개케 해 주실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설령 회개하도록 해 주신다고 하더라도 그들 자신이나 남에게 그 증거를 보여 주시는지의 여부도 알 수 없다. 큰 죄인은 스스로 각성할 수도 있고 회개의 혜택을 입을 수도 있지만 평안과 명예는 얻지 못한다. 지은 죄는 없어지나 오명은 그대로 남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