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출애굽기 19, 누가복음 22, 욥기 37, 고린도후서 7
묵상구절
12:1 르호보암이 세겜으로 갔으니 이는 온 이스라엘이 그를 왕으로 삼고자 하여 세겜에 이르렀음이더라
12:2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전에 솔로몬 왕의 얼굴을 피하여 애굽으로 도망하여 있었더니 이제 그 소문을 듣고 여전히 애굽에 있는 중에
12:3 무리가 사람을 보내 그를 불렀더라 여로보암과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와서 르호보암에게 말하여 이르되
12:4 왕의 아버지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12:5 르호보암이 대답하되 갔다가 삼 일 후에 다시 내게로 오라 하매 백성이 가니라
12:6 르호보암 왕이 그의 아버지 솔로몬의 생전에 그 앞에 모셨던 노인들과 의논하여 이르되 너희는 어떻게 충고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냐
12:7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 만일 오늘 이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그들을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하나
12:8 왕이 노인들이 자문하는 것을 버리고 자기 앞에 모셔 있는 자기와 함께 자라난 어린 사람들과 의논하여
12:9 이르되 너희는 어떻게 자문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냐 백성이 내게 말하기를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메운 멍에를 가볍게 하라 하였느니라
12:10 함께 자라난 소년들이 왕께 아뢰어 이르되 이 백성들이 왕께 아뢰기를 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우리를 위하여 가볍게 하라 하였은즉 왕은 대답하기를 내 새끼 손가락이 내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으니
12:11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였으나 이제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리라 하소서
12:12 삼 일 만에 여로보암과 모든 백성이 르호보암에게 나아왔으니 이는 왕이 명령하여 이르기를 삼 일 만에 내게로 다시 오라 하였음이라
12:13 왕이 포학한 말로 백성에게 대답할새 노인의 자문을 버리고
12:14 어린 사람들의 자문을 따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는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니라
12:15 왕이 이같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 일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여호와께서 전에 실로 사람 아히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심이더라
12:16 온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말을 왕이 듣지 아니함을 보고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아보라 하고 이스라엘이 그 장막으로 돌아가니라
12:17 그러나 유다 성읍들에 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르호보암이 그들의 왕이 되었더라
12:18 르호보암 왕이 역꾼의 감독 아도람을 보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쳐죽인지라 르호보암 왕이 급히 수레에 올라 예루살렘으로 도망하였더라
12:19 이에 이스라엘이 다윗의 집을 배반하여 오늘까지 이르렀더라
12:20 온 이스라엘이 여로보암이 돌아왔다 함을 듣고 사람을 보내 그를 공회로 청하여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으니 유다 지파 외에는 다윗의 집을 따르는 자가 없으니라
매튜헨리/옥스퍼드
▶스페셜포인트
열왕기상은 크게 제 1-11장의 전반부와 제 12-22장의 후반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 전반부 : 제1-11장
- 통일 왕국 시대의 황금기를 이루었던 솔로몬의 통치와 그의 치적, 그리고 말기의 우상 숭배로 인한 타락에 관해 기록하고 있다.
- 후반부 : 12-22장
- 솔로몬의 아들로 왕이 된 르호보암의 강압 정책과 여로보암을 주축으로 한 북부 지파들의 반란으로 야기된 통일 왕국의 분열과, 왕국 분열 이후의 이스라엘의 역사 중 그 전반기 의 역사 곧 남유다의 제4대 왕인 여호사밧(B.C. 872-848년) 때까지와 북이스라엘 제8대 왕인 아하시야(B. C. 853-852년) 때까지의 역사를 다룬다.
- 이 가운데 먼저 제 12-14장까지 이어지는 일련 기사에서는 남북 왕국의 분열 과정과 그 분열의 직접적 당사자인 르호보암과 여로보암의 통치에 대하여 다룬다.
먼저 12:1-24의 두 문단에서는 이스라엘 왕국의 분열 과정에 대하여 보도한다. 본문에 의하면 이스라엘이 분열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 르호보암이 백성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강력한 강압 정책을 시행하기로 결정한 데 있었다.
주지하다시피 솔로몬은 이스라엘 역사상 이스라엘을 가장 번성하게 한 왕이었다. 그러나 그는 지나치게 화려한 생활과 대규모의 건축 사업 등을 위하여 백성들로부터 많은 세금을 거둔 것은 물론 수많은 건축 사업에 백성을 강제로 동원하여 노역을 시켰다. 그로 말미암아 백성들의 불만은 커져갔지만 백성들은 솔로몬 생전에는 감히 그에게 항거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솔로몬이 죽고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즉위하자 유다 지파에 비해 상 대적으로 더 많은 억압을 받았던 북부 열 지파는 르호보암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인정하기에 앞서 그에게 솔로몬 시대의 강제 노역 및 세금의 멍에를 완화시켜 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런데 이에 대하여 르호보암은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주라는 원로들의 충고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강력한 강압 정책을 실시하라는 젊은 신하들의 권고를 쫓기로 하였다(1-15절). 하지만 이는 이내 북부 열 지파의 반발을 불러왔다.북부 열 지파는 르호보암을 향해 즉각 독립을 선언하고 전날 솔로 몬 때에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여 애굽에서 망명하였다가 솔로몬 사후 귀환한 여로보암을 자신들의 왕으로 옹립하여 북이스라엘 왕국을 세운 것이다.이렇게 하여 이스라엘은 유다 지파를 중심으로 한 남유다와 북부 열 지파가 연합한 북이스라엘 왕국으로 분열되었다(16-20절).물론 르호보암은 북이스라엘의 독립을 저지하기 위하여 군사를 소집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의 분열이 하나님의 뜻임을 전한 스마야 선지자의 만류로 르호보암이 군사 행동을 중단함으로써 이스라엘의 분열은 기정 사실화되고 만다 (21-24절).
여기서 보듯이 이스라엘 분열의 직접적인 원인은
- 원로들의 의견을 버리고 젊은 신하들의 의견 을 쫓아 강압 정책 단행 결정을 내린 르호보암의 어려석은 태도에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분열되게 된 궁극적인 원인은
- 솔로몬의 타락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있었다.
- 하나님은 일찍이 솔로몬의 타락에 대하여 이스라엘을 솔로몬의 손에서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하 신 것은 물론(11:9-13) 아히야 선지자를 통해서는 여로보암에게 이스라엘의 열 지파를 주겠다 고 말씀하셨다 (11 :29-40). 하나님은 이 예고를 르호보암의 어리석은 처신을 통하여 이루신 것이다.
- 이는 스마야 선지자를 통해 르호보암에게 전달하신 메시지 (24절)를 통해서나 르호보암이 백성들의 요구를 거절한 것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저자의 해설 (15절)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르호보암의 어리석음(열왕기 상 12:1-15)
솔로몬은 천 명의 비빈을 거느렸는데도 우리는 그의 이름을 받드는 단 하나의 아들만 읽을 수 있으며 그나마도 그는 우매자였다. 호세아 선지는 "저희가 행음하여도 수효가 더하지 못한다" 고 말한다(호 4:10). 죄는 가정을 이룩하는 데 나쁜 방법이 된다. 르호보암은 극히 지혜로운 자의 아들이었는데도 자기 아버지의 지혜를 물려 받지 못하였다. 그러고 보니 자기 아버지의 왕좌를 물려 받았다고 해도 그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지혜나 은혜는 유전되지 않는다. 솔로몬은 매우 젊어서 등극하였다. 그러나 그때는 그가 매우 지혜로울 때였다. 르호보암이 왕위에 오른 것은 그의 나이 사십세 되던 때였다. 남자 나이 사십이라면 불혹의 나이로서 한창 지혜로울 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르호보암은 우매하였다. 지혜는 나이에 의거하지 않는다. 지혜에 이르도록 하는 것은 많은 세월도 아니며 유리한 교육도 아니다. 솔로몬의 궁정은 지혜의 시장이자 학식 있는 자의 회합처였고 르호보암은 그 궁정의 총아였다. 그런데 이 모든 것으로도 그를 지혜롭게 만들기에는 부족하였다.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유력자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전 9:11). 르호보암의 왕위 계승에는 이의가 없었다. 솔로몬이 붕어하자 르호보암은 곧 왕으로 선포되었다.
Ⅰ. 백성은 그와 세겜에서 약조하기를 원하였고 그는 그들을 만나러 그리로 내려갔다.
1.그들의 구실은 그를 왕으로 삼는다는 것이었으나 그 의도는 그를 폐위시키려는 데 있었다. 백성은 르호보암이 유다만의 왕으로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다윗성이 아닌 딴 지역에서 대관식을 거행하고자 했다. 그의 치하에 있는 열 지파가 자기들에게 속했으므로 그들은 그의 왕권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단 한 번만이라도 그를 자기들 가운데 모시기를 원했다.
2.장소가 불길하였다. 세겜은 아비멜렉이 자칭 왕이 된 곳이다(삿 9장). 그러나 세겜은 민족 회의가 열린 곳으로 유명하였다(수 24:1). 르호보암은 자기대에 나라가 찢긴다는 경고를 알았으리라고 우리는 상상할 수 있다. 그는 세겜으로 가서 열 지파와 협상하여 분열을 방지하려고 희망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더 할 수 없으리만치 졸렬한 처사로서 분열을 재촉하였다.
👉 르호보암의 세겜 방문 - 과거 선왕들의 왕권 수립과정과 대비
르호보암은 예루살렘에서 왕위에 오른 후 바로 세겜에 내려갔는데, 이는 본절 하반절에서 밝히는 바와 같이 북부 지파들에게 왕으로서 인증을 받기 위한 것이었다.
사실 세겜으로 모이는 것은 북부 지파의 강력한 의지와 힘을 과시하는 행동이며 중앙 정부에 대한 불신을 암시하는 행동이다. 르호보암이 즉위할 당시 북부 지파들은 이처럼 왕이 있는 곳으로 가거나 혹은 왕을 환송하여 맞이하지 않고 자신들의 정치적·종교적 중심지인 세겜에 모여 르호보암이 왕으로 인준 을 받으러 왔을 때 그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사실 솔로몬은 이러한 지파에 근거 한 정치적 영향력을 개편하고자 강력한 중앙 집권적인 행정 제도를 마련하여 시행하였지만(4:1-19) 그 동안의 지파주의적 전통에 근거한 정치적 영향력은 이스라엘에 중앙 집권적 왕정이 시행된 다고 말하는 것조차 무색게 할 정도로 계속 유지되었을 뿐 아니라 막강하였던 것이다. 사실 이미 예루살렘에서 공식적으로 즉위한 왕인 르호보 암이 다시 왕으로 인준을 받기 위해 북이스라엘 지파 장로들의 요구에 따라 하루나 이틀 정도 걸리는 북이스라엘의 중심지인 세갱에까지 내려가는 것은 불필요하면서도 비굴한 일이기도 하다.
이는 이스라엘 지파의 대표들이 유다 지파의 중심지언 헤브론으로 다윗을 찾아와서 다윗을 왕으로 등극시킨 것과(삼하 5:1-3), 솔로몬이 예루살램 근처의 기혼에서 즉위식을 가졌으나(1:38.39) 추가로 북이스라엘 지파의 승인이 없었다는 것, 그리고 이전의 사울(삼상 10:24)과 솔로몬이 왕의 즉위식에서 백성들 다수에게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는 사실과 크게 대조를 이룬다.
또한 앞선 11:43에서 이미 왕으로 즉위했음에도 불구하고 ‘왕으로 삼고자 하여’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는 이유는
북부 지파들에게 르호보암이 아직 왕으로 인정받지 못했으며 르호보암의 왕권 이 북부 지파들을 완전하게 장악할 만큼 강력하지 못했음을 잘 보여준다. 특히 본절에서 르호보암 에 대하여 왕이란 칭호가 사용되지 않은 것은 이스라엘이 르호보암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같은 표현은 북부 지파가 아직까지 르호보암을 왕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았음을 잘 반증해 주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북부 지파의 이러한 태도는 신앙적인 측면에서 합당치 못한 것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신정 왕국의 통치자는 인위적으로 뽑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세우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윗과 그의 후손들이 통치자로 위를 계승할 수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즉 하나님이 언약을 통하여 다윗과 그의 후손들을 이스라엘의 통치자로 삼으셨기 때문이다(삼하 7:16).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정 왕국 이스라엘의 왕을 세우는 일에 있어서 북부 지파가 인위적 영향력을 끼치고자 했던 이같은 태도는 이스라엘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처럼 왕으로서 사후 승인까지 받아야 하는 것은 역사적 유례가 없으며 모욕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르호보암이 세겜에까지 지체치 않고 내려간 것은 르호보암이 강한 중앙집권적 권력을 확립하지 못하였기에 북부 지파의 승인이 없이는 북이스라엘을 다스릴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르호보암은 부득이 북부 지파의 요구에 양보하여 세겜으로 내려 간 것이다.
이러한 왕권의 약화는 선왕 솔로몬에게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솔로몬이 여호와 신앙을 저버리고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악을 행함으로 인하여 신정 왕국의 결속력은 빠르게 약화되었으며 그 와중에서 그가 백성들에게 지웠던 과중한 세금과 부역 등의 멍에들로 인해 백성들의 불만은 점점 더 고조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같은 불만은 솔로몬의 사후 폭발 직전의 상황에 이른다. 본문에서 표현되는 르호보암 왕에 대한 북부 지파의 불손한 행동과 르호보암에 대한 백성들의 요구는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때 정확한 이해가 가능하다.
Ⅱ. 지파의 대표자들은 그들이 부담하고 있던 과중한 세금을 완화시켜 주도록 원하면서 말했다. 회담이 예정되자 그들은 애굽에 있던 여로보암을 부르러 보냈다. 와서 자기들의 대변인이 되어 달라는 것이다. 그들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여로보암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어디다 임명하실지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그들이 부르러 보내지 않아도 올 터였다. 약속된 왕관의 소유를 기대할 만한 때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 여로보암 : 여로보암은 이전에 솔로몬 시대에도 그랬던 것 처럼 현정권에 대해 반기를 들고 반란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성이 충분한 자. 이제 솔로몬이 죽고 그 소문이 여로보암에게 들려졌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애굽에서의 여로보암의 귀환이 가능함을 나타내주고 있다.
북부 지파 사람들은 과거 솔로몬 시대부터 능력을 인정받았고 (11 : 27, 28) 솔로몬에 대하여 대항함으로써(11:26)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았던 여로보암을 적임자로 여겨 르호 보암과 대연하기 전에 세갱으로 불러 올린 것이다. 사실 여로보암은 하나님으로부터 ‘견고한 집’ 에 대한 신탁도 받은 자이다(11’38). 북부 지파가 이러한 여로보암을 대변자로 내세운 것은 르호보암이 자신들의 요구를 따르지 않을 경우 새로운 왕을 세울 수도 있다는 매우 강력한 의지를 표현해 주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여로보암은 다윗 왕가의 출신 지파인 유다에 필적할 만한 왕성 한 세력을 지녔던 에브라임 지파 출신이었으므로 북부 지파 사람들에게는 왕과 대변하는 대표로서 적임자로 생각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르호보암에게 있어 여로보암을 상대로 하여 자신의 왕권을 인준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매우 불쾌한 일임에 틀림없었을 것이다. 특히 여로보암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르호보암의 아버지 솔 로몬에게 쫓겨서 애굽에 망명해 있던 자였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르호보암의 왕권 인준을 결정하는데 중심 인물이 된다는 것은 솔로몬의 통치 시기와 비교해서 르호보암이 왕으로 즉위할 당시 왕권이 얼마나 약화되어 있었는가를 가시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었다.
백성들의 진언은 다음과 같다.
1.그들은 지나간 정치에 대해 불평한다. "왕의 부친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나이다" (4절).
그들은 그의 아버지의 우상 숭배나 하나님께로부터의 반역을 불평하지 않는다. 온갖 일중 최대의 불평거리가 될 일이 그들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신앙의 일에는 그들이 이토록 무성의하고 무관심하였다. 하나님이나 몰록이 매 한 가지인양 행동하였다. 단지 편안히 살고 세금만 내지 않으면 된다는 식이었다. 또 그 불평은 무근하고 부당하였다. 이들보다 편안히 살고 이들보다 더 풍족한 가운데 지내는 백성은 없었다. 그들은 세금을 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들의 국력과 국위를 선양하기 위한 것이었다. 솔로몬의 건축 공사에 그들의 돈이 소요되었다고 해도 전쟁에서 보듯 그들의 피는 요구하지 않았다. 그 공사에는 노예들의 손이 많이 동원되었는가? 그러나 그 손들은 이스라엘인들의 손이 아니었다. 세금이 무거운 짐이었는가? 그러나 솔로몬이 들여온 금괴는 너무나 풍부하여 은이 돌처럼 흔하였다고 하지 않는가? 그에 비하면 세금은 얼마나 되겠는가? 따라서 그들은 솔로몬의 것을 솔로몬에게 되돌려 주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아니, 그들이 다소 가혹한 대우를 받았다고 하자. 그들은 이전에 왕의 제도가 이러하리라는 것을 듣고도 왕을 원하지 않았던가?(삼상 8:9 이하) 아무리 훌륭한 정부라도 비난과 혹평을 면할 수 없다. 솔로몬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파당심에는 불평할 게 끊이지 않는다. 나는 솔로몬의 정치에 백성의 멍에를 무겁게 하는 요소라고는 없었을 줄로 안다. 단 말년에 솔로몬의 총애를 받은 여인들이 백성의 학대를 묵과하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 북부 지파의 대표들은 르호 보암에게 대구적 표현을 통하여 자신들의 주장을 매우 분명하게 드러낼 뿐 아니라 의도적으로 솔로몬과 르호보암 모두를 왕으로 부르지 않고 그들 각각을 ‘당신의 아버지’, ‘당신’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부르고 있다.
이는 선왕 솔로몬이 왕의 직책을 잘 수행하지 못했음을 암시하는 표현인 동시에 아직 르호보암을 왕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이는 르호보암이 자신들의 주장에 따르지 않을 경우 기꺼이 르호보암에게로부터 돌아서겠다는 반역의 의도까지도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르호보암의 아버지인 솔로몬의 정책이 잘못되었음을 매우 직접적으로 지적한다는 점, 르호보암에게 그들의 주장을 피력하는 표현인 ‘가볍게 하소서’ 에 해당하는 ‘하켈’ 이 명령형으로 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지금부터는 반드시 자신들의 뜻에 따라주 어야 함을 밝히는 ‘이제’ 에 해당하는 ‘앗타’ 동의 표현들을 종합해 보면 그들의 요구가 르호보암의 섬기를 불편하게 할 뿐 아니라 그의 자존심까지 깎아내리는 매우 강경한 언사임을 잘 보여준다.
이들의 주장은 정당한가?
이들의 주장은 어느 정도 사실에 근거한 것이지만 지나친 과장이 포함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솔로몬의 치세 초기에는 유다와 이스라엘 전역에서 백성들 모두가 경제적으로 번영을 누렸으 며 (4:20, 25), 지금 이같이 지나치게 부정적이고 극단적인 내용으로 솔로몬의 통치를 악평하던 이 들 역시도 솔로몬 치세를 통해 여러 가지 수혜를 누렸던 자들임에 틀림없다. 더군다나 여기서 이들 모두가 혹독한 압제와 부역을 감당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솔로몬의 치세에 이루어진 성전 건축이나 궁전 건축에 차출된 노동력은 당시 이스라엘 인구를 감안할 때(3:8) 국민 절대 다수가 아닌 극소수에 불과하였다 (3:8; 5:13-16). 물론 솔로몬 치세 말기의 억압 정책이 백성들 모두에게 부담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솔로몬의 통치 전반의 모든 상황들을 종합해 볼 때 이같은 북부 지파 의 부정적인 표현들은 지나치게 과장된 것임에 분명하다.
고역과 멍에
솔로몬은 그의 행정 구역을 개편하면서 유다 지파 지역을 특구로 지정하여 왕실에 대한 세금의 면제 혜택을 주었다(4:7-19). 그리고 솔로몬의 이 중앙집권화를 위한 행정 구역 개편은 지파 전통을 무시하는 것으로 비쳐졌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유다 지파와 경쟁 관계에 있던 에브라임과 그들을 중심으로 하는 북부 지파들은 상대적인 박탈감과 아울러 자신들의 자치권에 위협을 느꼈을 것임에 분명하다. 따라서 이같은 표현은 솔로몬이 실제 그들을 노예처럼 부렸다기보다는 유다 지파에게만 주어졌던 특혜와 관련해 이들 안에 쌓인 그 동안의 해묵은 반감이 과장되어 표출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2.그들은 과중한 부담의 경감을 요구한다. 그들은 이것을 조건으로 다윗가에 충성을 계속 바치겠다는 것이다.
그들은 납세를 전적으로 면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아니라 부담을 좀 더 가볍게 해주기를 요구하였다. 돈을 절약하는 것, 이것이 그들의 모든 관심사였다. 신앙의 유지나 정치의 보호 따위는 어떻게 되든지 안중에 없었다. 전부가 자기의 소유에만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 북이스라엘의 잘못된 왕권 의식
이러한 북부 지파 사람들의 주장은 왕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인준이 필요하다는, 즉 왕의 권위는 근본적으로 자신들로부터 나온다는 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 영국의 권리 청원과 같은 북부 지파 사람들의 이러한 주장은 현대의 민주적 사고처럼 보일지 모르나 사실은 이기적 이해 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세속적 인간의 전형적인 행동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스라엘의 왕권의 근원은 어디서 시작되었는가? 북이스라엘의 합당한 반응은 무엇이었어야 했는가?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신정 왕국이며, 또한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후손에게 영원한 통치권을 주셨기 때문이다(삼하 7:16).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에 왕정 제도가 시작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명하여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엄중한 경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삼상 8:4-22) 이스라엘 백성들 자신들이 이를 요구한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같은 요구를 하는 자리에서 장차 왕정이 제도화됨으로 여러 가지 폐단이 발생할 것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분명하게 경고하신 바 있다. 왕정은 이런 모든 것에 대해서까지도 이스라엘이 기꺼이 수용하겠다는 동의하에서 비롯된 제도였다. 그러므로 왕정과 관련한 문제가 발생하였다면 이스라엘은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왕을 구한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물론 다른 면에서 보자면, 북부 지파 사람들의 이러한 주장은 솔로몬의 범죄를 징계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24절). 하지만 이런 것을 차치하고 그 동안의 모든 언사를 고려해 볼 때 그들이 요구하는 내용은 하나님이 들으시기에 거슬리는 것임에 틀림없는 것이라 하겠다.
Ⅲ. 르호보암은 자기가 내려야 할 대답에 대하여 주위 인물과 상의하였다.
이처럼 르호보암 이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삼일의 기한을 둔 이유는 백성의 요구에 대해 김이 숙고하고 신하들과 논의할 시간을 얻기 위함이었다. 예루살렘과 세캠의 거리는 60km 정도로 모사들을 부르러 보내 고 그들을 다시 데려오려면 적어도 3일 간이 필요하였다. 사실 북부 지파의 요구는 르호보암의 심기를 대단히 불편하게 할 만한 것이었으나 현실적으로 북부 지파들의 정치적 역량을 무시할 수 없었기에 르호보암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를 쉽게 결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자문을 받는다는 것은 슬기로운 일이었다. 자기의 지력이 그토록 보잘 것 없는 르호보암의 경우에는 특히 그랬다. 그러나 이를 맞아 그가 스스로 고려할 시간적 여유를 가졌다는 것은 몰지각한 행위였다. 이로써 그는 불평 분자에게 반역을 성숙시킬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주게 되었고 그가 그토록 간명한 문제를 심사숙고한다는 것은 백성의 안녕에 대해 그가 거의 관심을 갖고 있지 않는 증좌로 역이용될 것이었던 때문이다. 그들은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 차리고 그에 따라 대비하였다.
👉 7절: 아버지 솔로몬을 섬기던 늙은 신하들과의 대화
8-11절: 르호보암과 같이 자란 젊은 신하들과의 대화
신하들과 회의를 주재하는 르호보암이 ‘왕’으로 표현됨
⇒ 예루살렘에서 합법적으로 즉위한 왕임 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
⇒ 이는 르호보암을 의도적으로 왕이라고 부르지 않는 북부 지파 사람들 의 태도와 대조되며, 다윗 왕조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신명기적 역사관을 가진 본서 저자의 입장이 드러나고 있다. 즉 북부 지파에게는 예루살렘에서 즉위한 르호보암이 왕으로 인정되지 않았지만 본서 저자는 르호보암을 다윗 언약에 따른 합법적 왕위 계승자로 인정하고 있는 것. 듣
기에 거북하고 불쾌하였을 것이 분명한 북부 지파 사람들의 요구를 들었을 때 즉각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하지 않고 우선적으로 조언자들의 말을 들으려 했던 것은 긍정적인 측면에서 평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르호보암은 어리석게도 백성들의 마음을 꿰뚫는 깊은 연륜과 지혜를 가진 노인들의 조언을 채택하지 않고 자신과 함께 자란 소년들의 경솔한 판단을 채택함으로, 급기야 나라가 남북으로 나누어지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19절).
6-7절 노인들
본문에 동장하는 노인들은 과거 국가 행정을 담당하며 지혜의 왕 솔로몬의 생전에 솔로몬을 섬겼던 자들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강조하여 지적하는 이유는 이들이 솔로몬 통치기의 경험에 비추어 올바르게 간언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주기 위해서이다. 노인들의 조언은 신정 왕국의 통치자가 가져야 할 이상적인 군주관을 보여주고 있다. 즉 이스라엘의 왕은 백성들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닌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백성들에게 봉사하는 종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하나님에 의해 세움 받은 존재라는 것이다(신 17:15;삼하 23:3,4;잠 29:14).
또한 늙은 신하들은 르호보암 왕이 북부 지파 백성들의 요구대로 세금과 부역을 낮추어 주고 우호적인 태도로 그들을 대해야만 한다 고 간언하였다.
르보호암의 반응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으로서의 특권 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르호보암은 교만함으로 이런 겸손한 복종의 요구를 거절하고 만다. 그는 분명 귀로는 노인들의 교도를 듣고 있었을지 모르지만 마음으로는 이미 귀를 닫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세겜에서 북부 지파의 모욕에 가까운 말과 요구를 들었던 상황을 감안할 때 신앙적인 면이나 인격적인 면에서 전혀 준비가 안된 르호보암이 듣고자 했던 바는 이런 섬김의 요구가 아니었을 것이다. 이후의 그와 함께 자라난 젊은 신하들이 조언해 준 바 자신과 자기 부친을 모욕한 그들을 어떻게 굴복시켜야 할지에 대한 방법이 그가 기대하던 답변이었을 것이다.
이같은 르호보암의 자세는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과 대조된다(계 17:14).
예수님은 섬김을 받고자 하지 않으셨으며, 도리어 섬기고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하셨다 (마 20:28). 또한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본체이셨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자신을 낮춰 종의 형체 를 취하사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높이사 예수 이름 앞에 모든 무릎을 꿇게 하시고 그분만을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다(빌 2:6-11).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행하심은 참된 권위가 섬김에서부터 옴을 나타낸다. 이는 오늘날 교회나 사회의 지도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경고의 메시지이다. 즉, 지도적 위치에 있는 자들은 특권 의식에 사로잡혀 무리들 위에 군림하려 해서는 아니되며, 도리어 섬기고 헌신하는 자세로 맡은 바 직무에 충실해야 한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회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회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회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 20:26, 27).
1.그의 자문관중 근엄하고 경험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청원자들에게 친절한 답을 내리도록 그에게 건의하였다.
그들에게 좋은 말을 사용하며 그럴듯한 약속을 하고 "오늘날" 즉 이 위급한 날 그들을 섬긴다는 대답을 내리도록 충고하였다. 즉 그가 그들 백성의 종이며 그들의 불평거리를 해소시킬 의사가 있고 백성을 즐겁고 편안하게 하는 것을 본분으로 삼는다고 말하도록 권고하였던 것이다. "요번만 자신을 죽이고 그렇게 하소서. 그러시면 저희가 영영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현재의 열기와 흥분이 부드러운 대답으로 가라앉고 군중이 해산되면 그들은 냉정한 생각을 되찾게 될 것이고 따라서 솔로몬가와 화해하며 계속 고착될 것입니다." 통치하는 비결은 섬기고 선을 행하며, 그렇게 하기 위해 굽히며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어 주며, 그럼으로써 그들의 마음을 얻는 데 있다. 권력을 잡은 자는 이런 방법을 취하는 때에라야 실제로 가장 높이, 가장 편안히, 가장 안전히 앉아 있는 셈이다.
2.그의 자문관 중 젊은 사람들은 혈기가 넘치고 거만한 자들로서 백성의 요구에 대해 혹독하고 위협적인 대답으로 응수하라고 르호보암에게 권고하였다.
르호보암의 약점은 다음 두 가지 사실에서 예증되었다.
(1) 그는 연로한 자문관들의 말을 좋아하지 않고 자기와 함께 자라났으며 자기가 친숙하던 젊은 자들의 의견을 더 낫게 여겼다(8절).
👉 자기와 함께 자라난 소년들
이들이 상당한 지위에 있던 고관들의 자제들로서 왕의 아들인 르호보암과 함께 존귀히 여김을 받으며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났음. 따라서 이들은 르호보암과 같 은 성장 배경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사물과 인간에 대해 같은 관점, 같은 경향을 갖고 있었으며, 르호보암의 성향과 심사를 쉽게 이해하는 가장 가까운 신하들로 르호보암으로부터 신임을 두럽게 받고 있던 신진 세력들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르호보암은 의도적으로 북부 지파 사람들 의 요구를 문자 그대로 전달함으로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자신과 함께 자란 신하들도 똑같이 느끼도록 의도했다.
그것은 객관적 답변을 얻기를 원했다기보다 결국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신하들로부터 듣기 위함이었다. 르호보암과 함께 자랐던 젊은 신하들은 실제로 르호보암과 같은 감정을 느꼈을 것이며, 또한 왕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르호보암의 기대대로 그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었다.
연륜이 말해 주는 법이다. 젊은 때의 유희와 쾌락에 의기 투합하는 짝패였다고 해서 국사 처리에 적격인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여간 어리석은 일이 아니다. 큰 재주꾼이라고 하여 반드시 가장 지혜로운 자는 아니며 우리를 즐겁게 해줄 줄 아는 자라고 하여 우리의 최선의 친구로 의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첫 발을 내딛는 젊은이들에게는 그들이 누구와 사귀며 누구에게 순응하고 누구의 충고에 의지하는지가 아주 중요하다. 그들이 만일 자만심을 만족시켜 주며 허영심을 충족시키고 쾌락을 조장하는 자들을 아주 훌륭한 친구로 간주한다면 그들은 이미 파멸당할 운명에 처한 셈이다.
👉 ‘왕이…버리고’ ⇒ 르호보암의 내면의 잘못된 사고를 드러냄
‘버리고’
성경에서 이 단어는 짐승 혹은 물건을 놓여 있는 그대로 두는 행위를 가리킬 때(출 23:5;창 50:8), 다른 사람에 대한 애 정과 관심을 버릴 때(출 2:20), 또는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김을 나타낼 때(대하 32:31), 혹은 실제적으로 언약을 어기는 배신의 행위를 가리킬 때(단 11:30) 사용.
⇒ 여기서는 옳은 것인 줄 알면서도 자신이 원래 원하고 고집하던 것을 수행하기 위해 마음으로부터 강하게 거부함으로 의견을 무시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본문은 르호보암이 노인들의 깊은 충정에서 우러 나오는 진심 어린 교훈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내어버리고, 자신이 이미 정해 놓은 바 자기를 기쁘게 할 답을 듣기 위해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렸다. 이는 단순히 아둔함에서 비롯된 불찰이라기보다 원로들의 충언이 자신의 뜻과 맞지 않았기에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불순한 감정이 전제된 의도적 배제였다. 르호보암 안에는 자신의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고자 하는 오만한 욕구 가 잠재되어 있었고 그 고집에 호응하는 답변이 그들에게서 주어지기를 원했던 것이다.
(2) 르호보암은 온당한 조언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가혹하고 엄한 방책을 권한 자들을 기뻐하였다.
그들은 그럴 필요가 있든 없든 세금을 배로 올리고 또 그렇게 하리라는 것을 터놓고 말하라고 조언하였다(10, 11절). 이들 젊은 자문관들은 노인들이 멍청한 소리를 했다고 생각하였다(7절). 그들은 자기들의 조언이 재치있는 걸로 생각하고 그걸 뽐낸다. 노인들은 르호보암에게 어떤 말을 하라고 하지는 않았다. 다만 좋은 말을 하라고 권면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젊은 자들은 르호보암에게 별스럽고 깔끔한 표현 즉 신랄하고 주제넘은 비유를 가르쳐 준다. "나의 새끼손가락이 내 부친의 허리보다 굵으니……" (10절). 극히 달변이라고 하여 꼭 가장 좋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본문은 ‘나의 가장 연약한 부분도 내 부친의 가장 강력한 부분보다도 더 강하다’ 라는 말로서 르호보암이 솔로몬보다도 더욱 뛰어난 능력과 정치적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표현이다.
그러나 이는 전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신하들의 아첨에 불과한 것이었다. 실제로 솔로몬에게 쫓겨다녔던 여로보암이 당당하게 르호보암과 마주하였던 것과 르호보암이 북부 지파 사람들에게 왕의 인준을 받기 위해 예루살렘을 떠나 세겜으로 왔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신하들의 주장은 허세에 불과함이 금방 드러난다(1-3절).
아울러 젊은 신하들이 이같은 답변을 한 이유는
원로들의 의견이 르호보암에 의해 묵살되자 이 를 통해 왕의 심기를 재빨리 눈치채고 아첨을 통해 르호보암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이와 같은 아청은 르호보암으로 하여금 잘못된 그의 생각대로 행동하게 충동하여 결국 이스라엘 왕국을 둘로 분열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말았다. 이처럼 아첨은 듣기에는 달콤하나 결국에 가서는 멸망의 그물에 넘어지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하는 것이다(잠 29:5), 그래서 성경은 성공적인 삶을 사는 필수 요건으로서 아첨하는 자를 멀리할 것을 명하고 있는 것이다.
Ⅳ. 그는 젊은이들의 조언대로 백성에게 대답하였다(14, 15절).
그는 짐짓 거만을 부리고 오만불손하였으며 자기 앞에 있는 것은 죄다 강압적인 수단으로 제거할 듯한 허풍을 쳤다. 그는 그들에게 좋은 말로 대답하려고 참느니 차라리 백성을 잃는 모험도 불사하겠다는 태도였다. 자기 이익보다 기분을 중요시하다가 파멸당하는 자가 허다하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1.르호보암은 제 꾀에 도취했다. 그는 더 어리석고 지각없이 행동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1) 그는 자기 아버지의 정치에 대한 그들의 비난을 사실로 인정했다. "내 부친은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이 점에는 그는 자기 아버지를 부당히 기억하였다. 그는 자기 아비의 오명을 쉽사리 해명할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
(2) 그는 역량면에서 자기 부친보다 엄청나게 열등하다는 것을 생각지 않고 그보다 백성을 더 잘 다스리고 강압할 수 있다는 환상에 젖어 있었다. 솔로몬의 영화로운 통치 근처에도 가까이 갈 수 없던 그가 자기 부친이 통치하다 받은 상처를 부지할 줄로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
(3) 그는 세금으로 착취할 뿐만 아니라 잔인한 법과 그 법의 엄한 실시로 징치하겠다고 백성을 협박하였다.
그것은 채찍같을 뿐만 아니라 전갈같기도 하리라는 것이다. 톱니가 달린 채찍은 때릴 때마다 피를 내게 하며 자기의 통치는 그와 같을 것이란 말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르호보암은 백성을 짐승처럼 부리고 자기의 즐거움을 위해 그들에게 짐을 지우며 매를 때리겠다고 공언하였다. 백성이 자기를 사랑하든 말든 자기를 두려워하게 만들고자 하였다.
👉 본절에서는 실제로 살 아 있는 전갈이 아닌 보통 채찍보다 더한 고통을 주는 특수한 채찍을 가리킨다. 즉 이는 전갈의 칩과 같은 가시가 나 있는 바늘 후 갈고리가 많이 달려 있던 특수한 채찍으로, 타격을 당하는 자 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주었던 무시무시한 도구였다.
⇒ 따라서 이러한 채찍으로 백성을 다스리겠다는 말은 부친과 비교할수 없을만큼, 보다 더 잔혹하고 엄하게 백성을 다스리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내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 강압적 다스림.
‘징치하리라’
이는 일차적으로 가르침에 수반되는 행위로서 ‘견책하다’ (시 39: 11)란 의 미를 갖는다. 그래서 램 6:8에서는 이 단어가 수동형으로 사용되어 ‘훈계를 받다(take advice)’ 란 가벼운 의미로 번역되었다.
즉 이 단어는 제자를 지도하고 훈련시키는 스승의 일반적 행동을 의미할 때 사용된다. 그러나 본문처럽 이 단어가 강의형 (Piel)으로 사용되면 강압적인 다스림을 의미하는 ‘정치하다(chastise)’ 로 해석된다.
즉 상대의 인격과 환경을 무시하고 강한 형별로 자 신의 뜻에 따르게 하겠다는 의미이다. 올바르게 백성을 인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기적 욕구 충족을 위해 백성을 탄압하겠다는 표현인 것.
이러한 내용의 말은 르호보암이 백성의 종이 되어야 할 것을 충언한 원로들의 의견과 대비되며 (7절), 르호보암과 그를 모시고 나라를 이끌어 갈 신진 세력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이스라엘을 다스린다고 하는 신적 소명을 결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르호보암의 이같은 자세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한 정치를 베풀어야 할 신정 왕국의 왕으로서의 모습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방의 폭군에 가까운 모습이다. 이처럼 그는 자신의 사명을 망각하고 이방의 폭군들과 같이 잔혹한 방법 을 동원해 그것으로 백성들을 통제하고 압제하려 하였다. 그러나 자기가 내리치는 전갈을 피하고 싶다면 아무 조건 없이 무조건 굴복해야 한다는 이러한 르호보암의 요구는 솔로몬의 강압 정치에 대한 북부 열 지파의 불만을 폭발시키는 일종의 기폭제로 작용하였다.
(4) 그는 오랜 평안과 번영으로 부유하고 강하고 교만하게 된 백성을 이렇게 격동시켰다. 그들은 겁 많고 가난하고 풀죽은 백성과는 달리 짓밟히려고 하지 않았다. 그가 도발한 백성은 이제 반역하기로 작정한 백성이었으며 괴수될 자가 갖춰진 백성이었다.
실로 그만치 교만과 독재심에 눈먼 자도 없었다. 이보다 치명적인 일도 없는 것이다.
2.하나님의 계획은 이로써 이루어졌다.
"이 일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하나님은 르호보암을 그의 어리석음 중에 내버려 두셨다. 그리고는 나라가 그에게서 찢기도록 하시기 위하여 그의 평안에 관한 일을 그의 눈에서 숨기셨다(눅 19:42).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경솔과 불의를 통해 자신의 지혜로우시고 의로우신 의도를 이루시며 죄인을 그 자신이 만든 올무에 걸리게 하신다는 것을 잊지 말자. 르호보암이 자기 나라를 잃었듯이 천국을 상실하는 자는 자신의 고집과 어리석음 때문에 천국을 팽개치는 자이다.
👉르호보암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아니한 이 사건은 전혀 예측하지도 못한 돌발적 사건이었음과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로 말미 암은 것이었다.
다시 말해 르호보암이 원로들의 교도를 버리고 함께 자란 젊은 신복들의 의견을 쫓아 강압 정책 을 편 것, 이에 북부 지파들이 강력하게 반발한 것, 이 모두가 솔로몬의 범죄에 대한 징계 예언 (11: 9-13, 31-33)을 성취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섭리하신 결과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섭리하심이 르호보암으로 하여금 일부러 교만하게 하고 포악하게 하셨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 바로에게 하셨던 것처럼(출 14:4) 다만 르호보암의 완악하고 교만한 마음을 그대로 버려두사 이를 오히려 당신의 말씀을 이루시는 방편으로 사용하신 것이다(롬 1:24), 그러므로 본문의 표현이 르호보암과 그의 신하들의 어리석음에 대한 책음을 면케 해주는 것이 결코 아 니며, 또한 르호보암의 왕권을 인정하지 않는 북부 지파의 교만을 용납하는 것도 아니다.
인간 역사의 수레바퀴는 오묘한 신적 섭리와 인간적 인과 관계 양자가 그 어느 것도 결코 제약되지 않으면서 신비 안에 뒤얽힌 가운데 하나님의 광대한 구속의 역사의 틀 안에서 굴러가는 것이다.
아히야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은 (11 : 29-39) 외견상 성취되지 않는 잘못된 예언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11:40).
그러나 신실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본장의 앞서 기록된 모든 일련의 사건들을 통하여 성취하고 계셨다. 인간의 눈에는 아무런 의미와 목적 없이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는 일들이 실상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기 위한 과정인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짐 없이 모두 분명히 성취된다. “진실로 너회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 5:18).
●열 지파의 반란(열왕기 상 12:16-24)
열 지파의 나라가 다윗가(家)에서 이탈해 나갔다. 그렇게 된 것은
Ⅰ. 백성들은 대담하고 단호하게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들은 르호보암이 자기들의 기분을 상하게 한 사실에 대해 지극히 분개했고, 그의 협박에 분노했다. 그래서 이 정권이 이렇게 처음부터 교만하니 갈수록 가혹해져 가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므로 그들은 마침내 이 반란을 일으켰다. 모두가 하나같이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뇨?" 라고 소리쳤다(16절). 이제 그들은 다윗을 함부로 말했다. 그는 그들 민족의 대 은인인데도, 그들은 그를 자기 동료와 조금도 다름 없다는 식으로 "이세의 아들" 이라고 불렀다. 선한 사람들이 세금을 위해 수고한 선한 봉사도 얼마나 쉽게 잊혀지고 마는가를 보라. 저들의 성급한 결심은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시간을 두고 신중히 의논했더라면, 그들은 르호보암과 서로가 만족할 만한 원칙적 합의에 도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저들이, 누구가 르호보암에게 이같은 조언을 보낼 것이며, 그 주위에 있는 그 악한 자문관들을 쫓나낼 수 있을까 하고 궁리해 보았더라면, 이러한 불화만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자기들의 자유와 재산에 대한 그 열성이 그 자유로운 백성에게 복이 되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이 종이냐 씨종이냐? 어찌 포로가 되었느냐?" (렘 2:14)
그들은 기꺼이 지배를 받고자 한다. 그러나 시달림을 받기는 원치 않는다. 보호는 충성심을 자아낸다. 그러나 파괴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만일 다윗가(家)가 그들을 영달시켜 준 목표인 "선한 일을 위한 하나님의 일군들" 이 되는 것에서 이탈했다면, "이스라엘이 다윗가를 떠난다" 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19절). 그러나 하나님께서 친히 그를 불러서 나라를 주셨던(그 계승권을 그의 후손에게 주셨으며) 바로 그 다윗의 자손에 대해서 배신하고, 새로운 왕을 내세워 대적한다는 것은 중한 죄이다(대하 13:5-8 참조). 하나님은 그것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들이 왕들을 세우나 내게서 난 왕들은 아니니라" (호 8:4).
유다 족속에 대해 "그들이 다윗의 집을 좇았다" 고 한 것은 그들을 칭찬해 주기 위해 여기에 언급한 것이다(17, 20절). 그리고 아마 그들은 르호보암이 말보다는 더 훌륭한 자이며, 처음에 말한 그런 잔인한 협박으로 통치하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그들은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
Ⅱ. 르호보암은 이 일의 사후 처리에도 현명하지 못했고, 갈수록 이성을 잃게 되었다. 그는 제발로 위급한 상태에 빠져 들어가서, 벗어 나오려고 발버둥쳤지만 더욱 깊숙이 빠져들게 되었다.
1.그가 "공물(貢物) 감독" 인 아도람을 보내어 그들을 진압하려 했던 것은 큰 잘못이었다(18절). 공물은 물건이고, 아도람은 사람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지극히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들은 평소 어렵게 느끼던 이름의 주인공, 아도람을 보자마자 성을 내고 말았다. 그들은 그의 말을 인내심 있게 들어 줄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소동을 피우고 "그를 돌로 쳐 죽였다."
르호보암은 이전에는 자문원을 잘못 선택하더니 이번에는 자기의 사신을 선택함에서 불행을 저지르고 말았다.
2.르호보암이 그렇게 성급하게 자기의 터전을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것도 잘못이라고 보는 자들이 있다. 왜냐하면, 그 기회에 그는 친구를 잃었고, 원수들에게는 이점을 주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대적들은 실상 기분 나쁜 태도로 자기들의 장막으로 돌아갔다(6절). 그러나 르호보암이 돌아가기까지는 여로보암이 왕이 될 기회를 잡지 못했던 것이다(20절). 이 어리석은 임금이 한 극단에서 다른 한 극단으로 얼마나 가볍게 옮겨가는가를 주목하라. 그는 모든 것이 자기 손에 들어왔다고 생각했을 때에는 큰 소리를 치고 허세를 부렸으나, 자신이 위험에 처한 것을 알고는 꽁무니를 빼면서 아주 초라하게 행세했다. 잘될 때 건방진 자들이 잘 안 될 때는 가장 비굴하게 구는 것이 보통이다.
Ⅲ. 하나님은 그가 잃어버린 그 칼을 통해서 르호보암이 권력을 회복하려는 기도를 못하도록 막았다. 일단 되어진 일은 하나님께 속했다. 그는 그 일이 다시 전복되는 것을 용서치 않으신다(즉 르호보암이 더 좋은 위치를 차지하게 되고, 열 지파를 복원시킨다면, 하나님의 일이 다시금 전복되는 것이다). 또한 여로보암이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여 그 두 지파마저 정복했다면, 그것이야말로 다윗의 집으로서는 최악의 사태를 맞는 것이 되었으리라. 만사는 적당한 곳에서 끝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 싸움을 중지시킨 것이다.
1.르호보암이 무력으로 반란민들을 복원시키려 한 것은 용감한 계획이었다. 그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자 용기가 생겨났다(21절). 거기서 그는 자기가 친구들 숲에 있다고 생각했고, 그들은 모두가 그에게 친절하고 자기편이라고 생각되었다. 유다와 베냐민 지파(그들은 여호와와 왕을 두려워했고, 일어난 변화에 대해 쓸데없이 참견하지 않았다)는 당장 18만 명의 군사를 모집하여 열 지파에 대한 저들의 왕의 권리를 회복하려고 했고, 그 왕을 지지하기로 작정했다(말하자면 거기에 자기들의 목숨과 행운을 걸었다). 그리고 다른 지파들과 같이 그런 불평을 할 이유나 기질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2.그러나 하나님이 한 예언자를 보내어 그 군대를 해산하라고 했을 때, 그가 자기의 용감한 계획을 그만두고 만 것은 더욱 용기 있는 일이었다. 그는 비겁하게 앉아서 나라를 잃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되면 그에게는 주군으로서의 자격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해서까지 목적을 달성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그는 이스라엘인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하고 말기 때문이다.
그러한 전쟁을 벌인다는 것은 "형제들을 대항하여 싸우는" 것일 뿐만 아니라(24절)-그들은 그 형제들을 사랑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그들의 하나님과 대항해서 싸우는 것이나-그들은 그에게 복종해야할 의무가 있다. 그는 "이 일은 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고 말씀하고 계신다. 이 두 가지 사실을 고려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우리의 손해와 곤경, 그리고 우리의 형제들이 그 일에 도구 노릇을 한 그런 손해와 곤경 속에서도 우리 자신을 순응시킬 줄 알아야겠다. 그러므로 복수를 품지 말자.
르호보암과 그의 백성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군사를 해산하고, 평정을 지켰다. 인간적인 전망에서 보면, 비록 그들에게는 승리의 희망이 엿보였지만(그들의 군사의 수효가 많고 그들의 의지가 결연했으며, 여로보암 편은 약하고 정리되지 못한 채로 였기 때문이다), 또 그렇게 큰 힘의 손실을 보았으면서도 조금도 복구하려 하지 않으면, 꽃만 피워 놓고 아무런 결실이 없다고 하여 그들이 비난을 들을 수밖에 없게 되었지만,
(1)비록 초라한 예언자를 통해서 전달되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중시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았을 때에는, 그것이 우리 자신의 뜻과는 아무리 맞지 않더라도 기필코 시행해야 한다.
(2) 그들은 모든 사태가 자기들에게 유리하고, 또 정당한 권리도 가지고 있는 일이건만, 그것이 하나님을 거슬러 싸우는 싸움이라면 자기들에게 번영이 오지는 않으리라고 결론 짓고, 자기들 자신의 이익을 의논해 보았다. 올라갔다가 더 깊이 떨어질 바에야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이 더 좋다. 그 다음 왕대(往代)에 가서 하나님은 그들과 싸울 기회를 주셨다. 그리고 승리도 주셨다(대하 13:). 그러나 지금은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