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3월 10일 금요일 왕상 12:25-30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만들다

Jeehyun 2023. 3. 10. 09:55

맥체인성경읽기

출애굽기 21, 누가복음 24, 욥기 39, 고린도후서 9

묵상구절

12:25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지에 세겜을 건축하고 거기서 살며 또 거기서 나가서 부느엘을 건축하고

12:26 그의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12:27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들의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12:28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12:29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12:30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경배함이더라

12:31 그가 또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12:32 여덟째 달 곧 그 달 열다섯째 날로 절기를 정하여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고 제단에 올라가되 벧엘에서 그와 같이 행하여 그가 만든 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그가 지은 산당의 제사장을 벧엘에서 세웠더라

12:33 그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 곧 여덟째 달 열다섯째 날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절기로 정하고 벧엘에 쌓은 제단에 올라가서 분향하였더라

매튜헨리/옥스퍼드

●여로보암의 우상 숭배(열왕기상 12:25-33)

여기에서는 여로보암의 통치가 시작되는 일을 보게 된다. 그는 먼저 세겜을, 그 다음에는 브누엘을 건립했다. 즉 그 성읍들을 단장하고 수비를 튼튼히 했으며, 아마 그 두 곳에 자기의 궁궐을 지었을 것이다(25절). 세겜은 에브라임의 땅이요, 브누엘은 요단 강 동편에 있는 갓 지파의 땅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왕국을 튼튼히 만들려는 또 하나의 계획을 꾸몄는데, 그 계획이 그 나라의 종교적 사업에 치명적인 운명을 초래하는 것이었다.

👉 세겜
여기서 ‘세겜’ 은 이미 존재하였던 오래된 성읍이므로 본문의 표현은 세갱을 새로 건설하였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곳을 왕국의 수도로 정하고 자신이 거주할 궁전을 짓고 요새화하였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실제로 여로보암의 재임 시기 정도에 성광 엄폐 시설이 보수되었음이 고고학적 발굴로 입증되었다(G.E. Wright).
체제 정비와 국정 운영을 위해서는 행정 수도가 필수적이었으므로 이러한 건축 공사는 즉각 시행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과거 르호보암에 대한 북부 지파의 요구가 바로 세금 감면과 부역 면제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자기들이 왕으로 삼은 여로보암이 즉각적으로 벌인 이같은 정책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중한 부역과 세금으로부터의 탈출을 부르짖으며, 다윗 왕조 뿐 아니라 하나님과 성전과 언약까지도 버렸던 그들에게 혁명 성공으로 돌아온 선물은 다시금 새로운 왕으로 인해 계속되는 무거운 건축 사업과 세금 뿐이었다.

부느엘
본문은 수도 세겜을 건설한 이후의 여로보암의 행적을 보여준다.
‘부느엘’ : ‘하나님의 얼굴’ → 이는 야곱이 이곳에서 하나님을 대변하여 본 것을 기념하여 붙여진 지명으로, 창세기에서는 ‘브니엘’로 음역되 었다(창 32:22.30; 30: 17), 이곳은 세갱에서 동으로 약 40km 떨어진 요단 동편에 위치하였으며, 압복강을 끼고 있는 군사적 요충지였다. 따라서 여로보암은 동쪽에서부터 수도 세겜에 이르는 침입자들의 통로를 봉쇄하기 위한 방어선을 구축하기 위해 부느엘을 더욱 튼튼한 성읍으로 개축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후에 여로보암은 수도를 세갱에서 디르사로 옮긴다(14:17; 15:21). 이는 여로보암이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고 자신의 소견대로 북이스라엘을 다스렸기에 이루어진 비일관적인 정책의 답변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울러 이처럼 수도를 옮기고 성읍을 개축하는 퉁의 건설 공사로 인해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엄청난 고통을 겪으면서 막대한 세금과 부역을 감당해야 했음이 틀림없다. 이는 중한 부역과 세금을 감면해 달라고 요구하면서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세워진 다윗 왕가를 거 부하고 여로보암을 선택했던 북부 지파들의 이전 행사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Ⅰ. 이제 스스로 저들의 왕으로 군림한 그는 어떤 유효 적절한 조처를 내려서 백성들이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으려 했다(26, 27절).

👉 26절,
본문은 북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른 여로보암의 불신앙적 생각을 보여준다. 여로보암은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 후 자신을 배반하고 다시 다윗 왕조의 계승자인 르호보암을 왕으로 섬길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런 그의 생각은 자신이 왕이 된 모든 과정을 철저히 인간적 관점에서만 이해한 것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지 않는 그의 불신 앙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만약 그가 하나님의 섭리로 자신이 북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음을 인정하였다면 결코 이러한 생각을 품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신실히 그 예언을 이루셨음을 기억하고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 했을 것이다. 앞서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이 당신 의 말씀에 순종한다면 그에게도 다윗과 같이 견고한 집을 세워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신 바 있다 (11:37-38).
그러나 여로보암은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을 소홀히 여기고 인간적 방법을 동원하여 북이스라엘을 다스리므로 결국 하나님의 섭리를 거부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의 세우심을 통해 왕이 되고도 하나님을 거부했던 여로보암의 집안은 결국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받고 만다. 즉 여로보암 가문은 그 아들대에 이르러 몰락하고 왕위는 다른 가문으로 옮겨지게 되는 것이다(14: 10-18).

27절,
본절은 여로보암의 생각으로, 앞절에서 북이스라엘이 다윗 왕조의 통치를 다시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 이유를 기술한다. 여러보암은 백성들의 행보에 대해 대단히 초조해 하고 있다. 본래 율법에 의하면 —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년 세 번, 즉 무교절, 맥추절, 장막절을 지켜 제사를 지내야 했는데(출 23:14-17), 오직 하나님께서 택하신 중앙 성소인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제사를 드려야 했다(신 12:11,13,14). 본문에서 여로보암은 이러한 율법의 규정을 염두에 두고 백성들의 행보에 신경을 몰두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여로보암은 이렇게 신명기의 말씀에 따라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 제사를 드리게 되면 결국 그들의 마음에 다윗 왕조로 기울어질 것이라고 염려하였던 것이다.

예배의 장소 예루살렘은 남왕국의 수도일 뿐만 아니라 이전까지 이스라엘의 정치 · 문화 · 종교의 중심지였다. 여로보암은 이러한 장소에 자신의 백성이 하나님을 예배하러 일년에 세 번씩 가다보면 분명 마음이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여로보암의 판단은 인간적인 생각에 불과한 것이었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11:38) 받은 자로서 그 약속을 신뢰함으로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예배는 그의 생각과 같이 백성들의 마음을 다윗의 집으로 돌이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그에게 약속 하신 왕조의 견고함을 보장하는 축복의 통로였다. 그런 의미에서 예루살렘 성전 예배에 대한 그의 태도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의 왕조에 대한 축복을 판가름하는 척도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여로보암은 예루살렘에서의 예배를 막는 잘못된 종교 정책을 수행하여 그의 불신앙을 드러냄으로 하나님의 축복과 멀어지게 되었고 그의 왕조 역시 제대로 세워지지도 못한 채 그 아들 대에서 피비린내 나는 반란의 소용돌이 속에 종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유다 왕 된 그 주 르호보암' ⇒ 여로보암의 르호보암에 대한 생각
‘그들의 주’ 라는 표현은 아직도 북이스라엘 백성의 통치자가 르호보암임을 전제로 하고 있 다. 이는 아직도 여로보암이 자신은 북이스라엘을 다스리도록 하나님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왕 이라는 생각을 결여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여로보암은 자신이 왕이 된 이 일이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고 북이스라엘 지파들이 본래 자신들의 주권자였던 르호보암에 대하여 반감을 가져 생겨난 결과라고 생각하였음을 반영한다. 이처럼 여로보암은 자신에게 주어진 여건과 상황을 오로지 인간적 측면에서만 이해하였기 때문에 자신이 왕권을 유지하는 것과 관련해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 이처럼 인간이 역사의 주관자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상황만을 바라볼 경우 늘 불안함에 떨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을 굳게 붙잡는 자는 흔들리는 불안한 현실 앞에서도 변함없이 견고하게 서 있을 수 있다(히11:1-38)

1.그는 백성들을 경계했고, 어느 시기가 오면 자기를 죽이고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는 것 같다. 소요로 인하여 출세한 자들은 흔히 또 하나의 소요에 의해서 묵살되고 만다. 여로보함은, 비록 백성들이 지금은 자기를 무척 좋아하는 것같이 보이지만,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릇된 방법이나 찬탈의 형식으로 얻은 것은 안심하고, 또 만족하여 즐길 수는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2.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신임할 수 없었다. 그가 자기의 의무에 충실하는 한,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워 주리라" (11:38)라는 약속을 자기에게 해당하는 것으로 삼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어떤 수단이든, 비록 죄악적인 방법일지라도 강구하고자 애를 썼다. 하나님의 전능성에 대한 실제적인 불신이 하나님을 떠나가는 모든 악질적인 배신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

👉 28-33절: 로호보암이 자신의 왕위를 지키기 위하여, 즉 민심의 이반을 막고 왕국의 분단을 고착화하기 위하여 악한 종교 정책을 시행함.

앞전에는 신하들과 회의하고 조언을 받았으나, 여기서는 조언을 하는 인물들이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음. 여로보암 자신이 왕권을 유지하기 위해 자기 스스로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이처럼 치밀한 계획의 과정에서 여로보암은 자신의 왕위를 지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전혀 상반되는 일을 도모하는데 이는 결국 여로보암이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우선시하고 이에 따라 행동하는 인본주의적 인물임을 보여준다.

Ⅱ. 그런 일을 위해서 그가 취한 길은 사람들을 예루살렘으로 예배보러 가지 못하게끔 막는 것이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장소이다 거기에는 솔로몬의 성전이 있었다. 그 성전은, 모든 이스라엘인이 보는 가운데서-많은 생존자들이 지금도 그 광경을 기억하고 있었다-구름으로써 하나님이 친히 차지하시겠다는 것을 보여 주었던 그 성전이다. 그곳에 있는 제단에 여호와의 제사장이 참례하며, 거기서 모든 이스라엘인들은 절기를 지켜야 했고, 그들은 제물을 그곳으로 가져가야 했다. 그런데

1.이제 여로보암은, 저들이 계속 그런 일을 하다 보면, 머지 않아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려 할 것이요, 다윗의 집의 궁전과 성전의 장엄함에 매혹되고 말 것이라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그들이 자기들의 옛 종교를 지속한다면, 그들의 옛 왕에게 돌아가려 할 것이다.

그가 만일 르호보암하고 협정을 맺어 지정된 절기 때에는 자기 자신이나 백성들이 자유로이 예루살렘을 왕래할 수 있게 했더라면, 그것이 그에게 그렇게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여로보암은 자기 백성들이 강제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갈까봐 걱정했던 것이다.

2.그래서 그는 그들의 편의를 도모한다는 구실 아래, 그들을 예루살렘으로 못가게 단념시켰다. "이제는 너희가 예배드리려고 먼 데까지 가지 않아도 되느니라(28절). 너희가 예루살렘까지 그렇게 멀리 간다(혹자는 그렇게 읽는다)는 것은 무거운 멍에이다. 이제 그 멍에를 벗어버려라. 너희들이 지금 사용하던 그 성전은 처음처럼 그렇게 화려하지도 그렇게 신성하지도 않다(보이는 영광은 점차 사람들에게 낮게 평가되는 법이다). 이제 너희들은 모든 짐에서 벗어나와, 이 일에서도 자유를 누리라. 우리는 왜 사무엘 시대 이상으로 이렇게 한 장소에만 매여 있어야 하겠는가?"

👉사실 예루살렘은 북이스라엘로부터 매우 멀었으며 또한 높은 산악 지대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율법에 정한 바 일년에 3차례씩 예루살렘으로 간다는 것(출 23:14-17)은 그들이 생각할 때에도 매우 고되고 힘겨운 일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여로보암의 제의는 예루살렘과 멀리 떨어진 곳에 거주하는 북부 지파 사람들에게 충분 한 공감을 얻을 만한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금하신 행위라는 데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택된 오직 한 장소 즉 중앙 성소에서만 제사를 드릴 것을 명하셨다(신 12:11.13,14),

3.그는 그들의 고향의 예배를 지원했다. 자기의 정치인들 중 어떤 자들과 상의하여, 그 문제를 이렇게 해결했다.

즉 하나님의 임재의 징표나 표적으로 금송아지를 두 마리를 세우고, 이제는 고향에 머물러 있어도 좋으며, 법궤 앞에서 예배드리려고 예루살렘에 가듯이, 이제는 이 두 마리의 금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이 좋을 거라고 설득시켰다.

 👉 원문은 청자의 특별한 관심을 유발하는 감탄사를 사용한다.
→ 여로보암은 자신이 준비한 우상 에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특별히 주목하기를 원했던 것. 이는 북왕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더 이 상 남왕국에 있는 예루살렘 성전에 관심을 두지 않게 하려는 의도에서였다.

어떤 사람들은 매우 관대하여, 그 두 마리의 금송아지는 속죄소와 법궤 위에 있는 그룹들을 상징해서 받들어 놓은 것이라고까지 생각했다. 그러나 아마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세운 것은 애굽인들의 우상 숭배를 차용한 것이라 보는 게 옳을 것이다. 그는 그 지방을 여러 번 여행했었고, 그들은 송아지의 모양을 만들어 놓고 자기들의 신 아피스(Apis)를 숭배하고 있었다.

(1) 그는 솔로몬처럼 금으로 성전을 짓는 비용을 지불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그가 지불할 수 있는 것이란 두 마리의 금송아지 값이었다.

(2) 그는 물론 그의 말과 마찬가지로, 이 송아지를 가지고 어떤 거짓 신, 몰록이나 그모스를 표징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한 신, 이스라엘의 참 하나님만을 표상하려고 했을 것이다(28절). 그러므로 그것은 제1계명이 아니라 제2계명을 범한 것이었다. 그리하여서 그는 백성들의 신앙심을 보증해 주는 길을 모색한 것이다. 그는 그들 중에는 형상에 대한 애착이 대단히 심하므로, 송아지를 만들어 두면 아무런 형상도 놓을 수 없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갈 생각은 않을 것이라고 미리 계산했기 때문이다.

(3) 그는 두 마리를 세움으로써, 신성의 통일성에 대한 신앙을 잃어버리게 했다. 두 마리의 송아지상은 이방인들의 사신론에로 이르는 길을 닦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는 단에 하나는 벧엘(한 곳은 그의 나라의 최북단에 있는 국경지대이다. 그리고 다른 한 곳은 최남단이다)에 세웠다. 그래서 마치 송아지상들이 그 나라의 수호자들인 양 꾸몄다. 벧엘은 유다에 가까웠다. 그는 하나는 거기다가 세워서, 르호보암의 백성을-그들에게도 형상 숭배를 원하는 자들이 있었다-또 유혹함으로써, 자기 백성들 중에 계속하여 예루살렘으로 가려는 자들을 대신하려는 속셈이었다. 다른 하나는 단에다 세웠는데, 그것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한편 미가의 우상이 거기에 세워졌었기 때문에 여러 세대 동안 큰 존경을 받아 왔던 지역이기 때문이었다(삿 18:30, 31).

"벧엘" 은 "하나님의 집" 이란 뜻이다. 그것은 미신적인 색채가 짙은 이름이었다. 그래서 예언자들은 그 곳을 "벧아벤" 을 "허무의 집" 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4.백성들은 이 점에 대해서는 그에게 순응했다. 새로운 것을 지극히 좋아했다. 그들은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숭배했다" (30절) 단에 세워진 것이 먼저였다. 먼저 세워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까지," 그렇게 멀리까지 갔던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예루살렘에 가서 예배드리는 일은 큰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자기들의 고안대로 예배보기 위해서는 그 두 배의 거리가 되는 단까지 가는 데에 아무런 애로를 느끼지 않았다. 또 그들은 단에 있는 한 송아지에게로 가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왜냐하면 유다 왕 아비야가 그 후 20년도 못 되었을 때 벧엘을 복원해 버렸기 때문이다(대하 13:19). 그래서 아마 아비야가 그 금송아지를 치워 버렸거나 사용을 금했기 때문에, 그들은 불가불 단까지 가야 했다. "이것이 죄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히 말해진 제2계명을 어기는 중한 죄였다.

하나님이 때로는 일정한 한 곳에서만 예배 드리라는 율법을 면제해 준 일도 있다. 그러나 형상을 만들어 예배하는 일은 한 번도 허용하신 적이 없다. 이리하여 그들은 호렙에서 자기 조상들이 송아지를 만들던 일을 변론했다. 그러나 그때 하나님은 그것 때문에 그 조상들에 대한 자기의 심한 분노를 보여 주시고 때가 되면 그들을 심판하시겠다고 경고하셨던 것이다(출 32:34). 그리하여 그 우상은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한 것이었듯이 또한 하나님의 진노를 크게 무시한 처사였다. 이리하여 저들은 죄에 죄를 더하였다.

패트릭(Patrick) 주교는 유대인들의 말을 인용하여, 여로보암 시대까지는 이스라엘인들이 오직 한 마리의 송아지에서 젖을 빨아 먹었으나, 그 후로부터는 두 마리의 송아지에게서 젖을 빨아 먹었다고 했다.

5.그는 신들을 세우고 나서, 그 신들을 위한 부설물을 준비했다. 이 점에서 그는 우리가 본문에서 볼 수 있는 하나님의 명령을 이탈했고, 이것은 그가 다른 일에 있어서도 유다에게 되어진 일(32절)을 가능한 한 본받으려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하나의 죄가 얼마나 많은 죄로 불어나는가를 주목하자.

(1) 그는 산당이나 제단의 집을 지었다 즉 단에다 하나, 벧엘에 하나, 성전을 지었을 것이다(31절). 그리고 아마 예루살렘 성전에는 제단이 하나밖에 없는 불만을 탓하면서 각 성전에다 여러 개의 제단을 만들었을 것이다. 제단을 많이 만든 사실이 어떤 자들에게는 신앙심의 발로로 보이겠지만, 하나님은 예언자를 통해서 그 점을 다르게 보셨다. "에브라임이 많은 제단을 만드는 죄를 범했도다" (호 8:11).

👉 산당들

하나님께서 한 성소 이외의 예배의 장소를 금하신 이유
예배를 위해 야외에 마련한 성소로서, 산 위에(11:7; 왕하 16:4) 뿐만 아니라 성읍들(13:32)과 골짜기에도(렘 7:31; 겔 6:3) 산재해 있었다. 이러한 산당은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중앙 성소의 원리를 훼손시킬 뿐 아니라(신 12:1-14), 종교 혼합주의의 위험이 높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를 금하셨다(신 12:2-4).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로보암이 이처럼 산당들을 세운 이유는
자신의 왕권이 위태로워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자신의 백성들로 하여금 제사를 드리러 굳이 남유다에 있는 예루 살렘까지 가지 않도록 하여 민심의 이반을 막고 왕국의 분단을 고착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여로보암은 이러한 자신의 행통이 지혜로운 것이며 자신의 왕조와 북이스라엘 왕국을 견고히 하는 것이라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같은 결정은 이스라엘의 진정한 주권자인 하나님의 격노를 불러 일으켰다. 그 결과 일차적으로 자신의 집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쓸어버림을 당하게 되었고 (14:10), 더 나아가서는 이 죄악이 뿌리가 되어 자신이 바르게 세워나가야 할 북이스라엘 왕국까지 멸망하게 되었다(14:15,16).

(2) 그는 백성들 중에서 제일 천한 자를 골라 제사장으로 삼았다.

물론 아무리 천한 사람들이라도 그의 송아지의 제사장이 되기에는 충분하며, 아니 너무나 위대한 것이다. 그는 "그 백성의 말단(한글 개혁-" 보통 사람")을" 제사장으로 삼았다. 즉 그 나라의 가장 촌구석에 사는 자들을 불러서 했다. 그는 그들을 그들의 이웃들과 더불어 살도록 명했는데, 그것은 자기의 명령대로 그 백성들을 가르치고 그들이 일반 사람들과 친해지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리하여 그 제사장들은 레위인들처럼 분산되어 살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대우의 자손이"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산당이나 제단의 제사장들에게는 예루살렘에 제사장들이 살 듯이, 벧엘에 거주하게 했다(32절). 그래서 공중예배에 참례하게 만들었다.

 👉 여로보암은 우상을 만들고 산당을 세웅으로써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중앙 성소의 원칙을 범하였을 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음으로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거룩한 제사장 제도까지 짓밟았다.

여로보암이 이처럼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제사장으로 받아준 이유는?
1.일차적으로 기존 제사장들이 여로보암의 종교 정책에 반대하여 대거 유다로 남하하였기 때문이다.
2.그리고 남아 있는 제사장들을 등용하면 그들을 통하여 여로보암의 잘못된 종교 정책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더욱 널리 알려질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즉 백성을 율법으로 가르치는 업무도 수행하였던 제사장이 이 일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면서 하나님의 율법을 제대로 가르치게 될 경우, 여로보암이 세운 종교 정책이 백성들 모두에게 잘못된 것으로 드러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었다. 그래서 여로보암은 정통성을 지니는 레위 지파 출신의 제사장들을 모두 그 직분에서 해 임하고(대하 11:13.14), 하나님의 율법에 무지하고 자기의 종교 정책에 동조하는 자들로 그 자리 를 채웠던 것이다. 이러한 여로보암의 종교 정책에 따라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종교적으로 더욱 우 민화되어 계속하여 잘못된 제사를 드리게 된 것이다.

(3) 초막절-하나님은 7월 15일을 지정하셨다-을 "자기가 생각한 달" (33절) 8월 15일로 정했다 이것은 그가 교회의 문제에 있어서 가지는 권한을 표시하는 것이었다. 그는 유월절과 오순절을 고유한 절기로 지켰다. 또는 모두 다 지키지는 않았고, 초막절에 비하면 별로 엄숙하지도 않게 지킨 것이다.

👉 율법에 명시되어 있는 바에 따르면 장막절은 그 정해진 날짜를 따라 7월 15일에 지켜야 했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이를 무시하고 그로부터 한달 후인 8월 15일로 정하였다.

여로보암이 다른 절기 에 비해 장막절의 날짜를 이처럼 연기했던 이유는?
종교적인 제의는 모방하면서 백성들의 현실적 편의를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7월 15일부터 시작되는 장막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추수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지 않아도 분주한 추수기가 끝나갈 무렵에 장막절이 시작됨으로 인해 이 절기에 대해 적잖은 부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여로보암에 의해 새롭게 제정된 장막절 기간은 종교적인 명분도 유지하면서 동시에 백성들의 편의를 고려한 합리적인 결정처럼 보였다. 즉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율법에 따른 전통적인 장막 절의 시기를 한달 늦춤으로써 남유다의 종교와 차별성을 보이면서 또한 동시에 백성들의 편의를 도모함으로써 전통적으로 지켜온 남유다의 종교 제도에 비해 부족할 것이 없고 아울러 백성들의 시각에는 더 나아 보일 만한 나름대로의 완벽한 종교 체제를 갖추려 한 것이다. 그러나 신앙적인 측면에서 이같은 여로보암의 결정은 절기가 인간의 편의를 위해 제정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제정되고 하나님이 명하신 것이라는 신적 기원과 거룩성을 무시하는 망령된 처사로 평가되는 것이었다.

본서 저자가 여로보암 재위 초기에 있었던 다른 어떤 사건보다 이 일을 비중 있게 소개하는 이유는
여로보암이 자신의 왕권 유지와 관련해 예루살렘 성전에서 거행되어야 할 이스라엘의 절기에 얼마나 김이 마음쓰고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가 얼마나 자신의 종교 정책을 북이스라엘에 정착시키기 위하여 전심 전력했는지 를 보여주기 위함.

(4) 그는 자기에게 제사장을 지명할 권한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자기 손으로 제사장들의 일을 했다고 해도 조금도 놀랄 것은 아니다. "그는 제단에 제사를 드렸다" 고 했다. 두 번이나 그런 말이 나오며, 그는 분향도 했다. 이것은 그의 여러 불법 중의 하나였으므로 그에게서는 거의 묵살되었다. 그러나 웃시야 왕이 그런 일을 했을 때는, 그가 문둥이가 되는 벌을 받았다.

👉성경은 그가 비록 왕이라 할지라도 제사장 이외에는 직접 제사를 올리는 행위를 금하고 있다(삼상 13 :12-13 ; 대하 26: 16-19).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로보암 자신이 직접 제사를 올리고자 하였던 이유는 새로운 종교 질서를 정착시키기 위한 그의 솔선수범으로 추정된다. 또한 이는 왕이 직접 제사를 집행하였던 애굽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애굽의 통치자 바로는 신 의 아들로 추앙을 받았고 최고 제사장의 자격으로 제사를 집전하였다. 애에서 한동안 생활하였던 여로보암은 이러한 애굽의 제도를 모방하여, 왕은 정치와 종교 모든 분야에서 최고라는 사실을 백성들에게 주지시키고자 하였을 것이다.

그가 손수 그런 일을 함으로써, 자기 백성들에게 자기를 위대하게 보이게 했고, 신앙 깊은 사람이란 존경을 사려했으며, 자기의 새로운 축제를 보다 엄숙하게 하고자 했다. 아마 그 축제를 그의 제단 봉헌식과 겸해서 한 것 같다.

그리하여

[1] 여로보암은 직접 죄를 졌다. 그러나 솔로몬이 다른 신을 섬겼던 것에 비하면, 세상에 대해서나 그의 양심에 대해서는 솔로몬처럼 악하지는 않았다는 식으로 변명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2] 그는 "이스라엘을 죄짓게 했다." 그들을 참 하나님 예배에서 떠나게 하고 우상 숭배를 그들의 자손에게 물려 주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그들은 "다윗 집의" 보좌를 버린 벌을 받았다.

학식이 많았던 휘스톤(Whiston)씨는, 그의 연대기에서, 유다와 이스라엘 두 나라의 연대표를 맞추기 위해서, 여로보암이 연한의 계산을 변경시켜 일년은 11개월로 정했고, 나아가 예후의 혁명이 있기까지는 이스라엘 왕들의 통치 기간을 그런 연한으로 계산했으며, 따라서 이 기간에는 유다의 1개월이 이스라엘 왕국의 12개월에 상당한다고 생각했다.

👉 32절, ‘행하여’
한글 개역 성경의 ‘행하여’ 에 해당하는 ‘아사’ 는 기본적으로 ‘행하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나 성경에서 대단히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동사. 28-33절에 나타나는 여로보암의 범죄 행위는 원문으로 볼 때 거의 이 동사로 표현되었다. 즉 우상인 송아지를 만드는 것 (28, 32절), 중앙 성소에서만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원칙을 어기는 것으로 산당 제사와 벨엘에 제단을 쌓는 것(31.33절), 자격 없는 자들을 제사장으로 삼는 것(31.32절), 율법의 규정과는 상관없이 임 의적인 절기를 만드는 것(32, 33절)을 표현할 때 모두 이 동사가 사용되었다. ‘아사’ 동사와 관련 한 이상의 기록 방식은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진 여로보암의 행위가 결국은 한 가지 의미를 가진다 는 사실, 즉 이 모든 여로보암의 행위는 통일한 동기에서 이루어진 죄였다는 것을 매우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33절, 저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
직역하면, “그의 마음으로부터 지어냈다” 이는 절기가 신적 계시에 근거를 두지 않고 여로보암의 ‘마음에서 지어낸’ (느 6:8) 거짓되고 인위적인 것이었음을 뜻한다. 이와 같은 결정은 진리와는 거리가 먼 사사로운 그의 생각의 산물로서, 하나님의 분노를 사 결국 멸망에 이르는 지름길이 되고 만다. 아울러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무시한 그의 인본주의적인 결정은 그 자신 뿐 아니라 그의 결정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 역시 심판의 대상이 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