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출애굽기 26, 요한복음 5, 잠언 2, 갈라디아서 1
묵상구절
14:19 여로보암의 그 남은 행적 곧 그가 어떻게 싸웠는지와 어떻게 다스렸는지는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니라
14:20 여로보암이 왕이 된 지 이십이 년이라 그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아들 나답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매튜헨리/옥스퍼드
- 여로보암 자신도 그 뒤에 곧 죽었다(20절).
역대기에는 여호와께서 모종의 고질병으로 그를 치셨다고 되어 있다(대하 13:20). 그는 재위 22년만에 비참하게 죽었고 왕위는 그의 아들에게 계승되었으나 그 아들은 2년 후 왕좌와 생명까지 내놓게 되었고 그 일족도 모조리 주살되었던 것이다.
그에게 대한 더 이상의 설명은 그 자신의 서기들이 그의 치적에 관해 기록한 연대기나 런던탑의 사고 안에 든 실록처럼 이스라엘왕 역대지략이라고 하는 공적인 기록을 참조하라고 하고 있다. 당시에는 이런 기록을 신뢰할 수 있었을지 모르나 신적 영감에 의해 기록된 것이 아니므로 이런 책들은 오래 전에 유실되고 말았던 것이다.
👉 그의 남은 행적
저자는 여로보암이 세속적 관점에서 이룩한 여러가지 업적들에 대해 별다른 의미를 부 여하지 않았으며,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태도 즉 신앙적 측면을 기준으로 그 왕에 대한 평가를 엄정하게 내리고 있는 것이다. 본서의 저자가 이같은 입장을 취하는 이유는 → 북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세우시고 간섭하시고 다스리시는 신정 왕국이며, 이러한 신정 왕국의 홍망 성쇠는 이 왕국 백성의 신앙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왕의 신앙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20절 여로보암의 죽음
여로보암이 왕으로 추대된 해(12:16-20)가 B.C. 930년으로 추정되므로 22년을 통치하고, 죽은 연도는 B.C. 909년 혹은 908년일 것. 본절의 기록만 보고 여로보암이 마치 아히야가 선포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과 전혀 상관없이 펀안한 죽음을 맞이하였던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병행 구절인 역대기의 기록을 보면 유다 왕 아비야와의 전쟁에서 하나님을 의지한 유다 왕에게 비 참하게 패하여 벤엘마저 빼앗기는 패전의 수모를 겪은 후, 여호와의 치심으로 결국 고통 가운데 죽은 것으로 나온다(대하 13:13-20).
‘나답’이 후대왕이 됨
‘나답’은‘자원하다’(출 35:21)라는 뜻을 가진 동사 ‘나답’ 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그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졸지에 죽은 여로보암의 뒤를 이어 북이스라엘의 2대 왕(B C. 910-909년)으로 등극하게 되었지만, 그 역시도 아버지 여로보암의 우상 숭배 정책을 그대로 유지하고 회개하지 않았다(15:26). 결국 나답이 왕위에 오른 지 2년이 되었을 때에 바아사가 반란을 일으킴으로 그와 그의 가문 모두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로써 14절에 나오는 선지자 아히야의 예언은 완전하게 성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