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레위기 24, 시편 31, 전도서 7, 디모데후서 3
묵상구절
8:1 엘리사가 이전에 아들을 다시 살려 준 여인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서 네 가족과 함께 거주할 만한 곳으로 가서 거주하라 여호와께서 기근을 부르셨으니 그대로 이 땅에 칠 년 동안 임하리라 하니
8:2 여인이 일어나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행하여 그의 가족과 함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땅에 칠 년을 우거하다가
8:3 칠 년이 다하매 여인이 블레셋 사람들의 땅에서 돌아와 자기 집과 전토를 위하여 호소하려 하여 왕에게 나아갔더라
8:4 그 때에 왕이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 게하시와 서로 말하며 이르되 너는 엘리사가 행한 모든 큰 일을 내게 설명하라 하니
8:5 게하시가 곧 엘리사가 죽은 자를 다시 살린 일을 왕에게 이야기할 때에 그 다시 살린 아이의 어머니가 자기 집과 전토를 위하여 왕에게 호소하는지라 게하시가 이르되 내 주 왕이여 이는 그 여인이요 저는 그의 아들이니 곧 엘리사가 다시 살린 자니이다 하니라
8:6 왕이 그 여인에게 물으매 여인이 설명한지라 왕이 그를 위하여 한 관리를 임명하여 이르되 이 여인에게 속한 모든 것과 이 땅에서 떠날 때부터 이제까지 그의 밭의 소출을 다 돌려 주라 하였더라
매튜헨리/옥스퍼드
●수넴 여인의 소유권 회복(열왕기 하 8:1-6)
👉본장은 왕상 19:15-18과 21:17-29에 나타난 엘리사의 예언대로 복이스라엘의 아합 왕가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기까지의 역사를 중심으로 해서, 이미 확정된 심판의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음을 소개하는 일련 기사의 연속 부분.
앞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예언된 바대로 성취된다는 사실을 사마리아성의 구원 사건을 통해 보여주었다면, 본장에서는 계속되는 심판의 경고와 값없는 구원 행동의 연속을 통하여 회개를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패역한 범죄를 행하는 아합 왕가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가 이제 마침내 아람 왕 하사엘을 통해 서서히 집행되기 시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본장의 내용을 요약하면,
1-6절: 4장에 등장했던 수넴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말을 신뢰한 결과 7년 기근도 피할 수 있었고 또 그로 인혜 상실한 기업도 다시 찾을 수 있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7-15절: 엘리사가 예언한 대로 하사엘이 벤하닷을 죽이고 아람 왕이 된 사실. 이는 왕상 19:15 이하에 기록된 예언의 성취이자, 동시에 아합 왕가를 심판하시기 위한 하나님 섭리의 전 단계였다.
16-24절: 아합과 여호사밧의 결혼 동맹에 의해 아합의 사위가 된 남유다 5대 왕인 여호람의 통치 기사
25-29절: 남유다의 6대 왕인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 왕과 아합의 아들인 여호람 왕이 연합하여 아람 왕 하사엘과 전쟁하다가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크게 부상한 사실.
⇒ 따라서 본장 역시 앞장의 내용처럼 이 세상의 모든 역사를 여호와께서 주관하시며 오직 당신의 구속사적 계획에 따라 운행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잘 나타나 있다.
[1-6절]
사건의 배경(1.2절), 왕과 게하시와의 대화(4.5절), 왕과 여인과의 대화(6절 상반부), 그리고 왕의 판결(6절 하반부). 이러한 본단락은 계속된 엘리사의 이적 이야기 중 한 부분으로 지금까지의 내용과는 달리 엘리사가 없는 현장에서도 엘리사가 이룬 구원 사건의 회상을 통해 구원 역사가 이루어진다는 다소 특이한 내용을 담고 있다.
Ⅰ. 장기간의 기근-이것은 가장 괴로운 심판의 하나이다-으로 처벌을 받게 된 이스라엘의 악은 율법 가운데 종종 경고되었던 바이다.
비옥한 땅 "가나안이 황무하게 변한" 것은 "거기에 거하던 자들의 불의" 때문이었다. 사마리아에서의 기근은 포위망이 사라지자 곧 구조되었지만, 그 심판과 자비는 그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또 다른 기근을 명하셨다." 여호와께서 심판하실 때는 반드시 이기시기 때문이다. 만일 보다 작은 심판이 회개케 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은 보다 크고, 장기간의 심판을 내리신다. 심판은 항상 하나님 뒤에 계시므로, 그가 부르시면 곧 심판이 온다. 하나님은 사역자들을 통해서 개혁과 순종을 명하신다. 그리고 만일 그러한 요구들이 간과된다면, 하나님은 여러 가지 다른 재앙을 명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는 그러한 소리가 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기근은 엘리야 시대의 기근과 같이 7년이나 계속되었다. 만일 사람들이 하나님을 거스려 행한다면, 하나님은 그 시련의 도가니를 더욱 뜨겁게 할 것이다.
Ⅱ. 그 예언자를 선대한 선한 수넴 여인의 친절은 기근 때에 돌보심을 받음으로써 보상 되었다. 그러나 수넴 여인은 사렙다 과부에게 그랬던 것처럼 기적에 의해서 양식을 공급받지는 않았다.
1.그녀는 기근이 온다는 것을 미리 통고받았다. 그러므로 그녀는 준비를 할 수 있었고 또한 타국으로 이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스라엘 밖 어디든 양식이 충분한 곳으로 가도록 했다. 요셉시대에 애굽인들이 기근이 오기 전에 그것을 알았던 사실이 그들에게 큰 유익이 되었던 것같이, 수넴 여인에게도 그러했다. 다른 사람들도 역시 그 기근의 고통을 오래 겪은 후에는 마침내 이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그들은 자기들의 양식을 탕진한 후이며, 어디를 가도 수넴 여인이 이거한 때와 같은 좋은 조건으로 정착할 수 없었다. 그녀는 미리 이사를 갔으므로 자기의 재산을 보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재앙을 예상할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행복이며, 그것을 예상했을 때 우리 자신을 숨길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지혜이다.
👉 본문은 엘리사가 수넴 여인에게 많은 권리를 포기하게 하면서까지 ‘체류자'로 머무르라고 명령하는 것.
그런데 엘리사가 이러한 명령을 내린 까닭은 이스라엘에 임할 7년의 기근이 모든 사람의 생존을 위협할 만큼 극심할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예견했기 때문. 이처럼 엘리사가 과거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려주었을 뿐 아니라 이제 앞으로 임할 흑득한 기근을 피할 기회를 갖도록 특별히 통보한 것은 그 여인이 하나님의 선지자인 자신에 대하여 헌신하는 성숙한 믿음을 가진 것에(4:8-10) 대한 보상이라고 할 수 있다.
본문은 엘리사가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린 후 어느 시점에서 이루어진 사건인지에 대한 확실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러나 엘리사가 여인의 아들을 살린 후에도 그녀는 엘리사와 계속해서 교류했고, 엘리사는 이 여인의 가정을 계속해서 돌보고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2.섭리자 하나님은 "블레셋 땅에서" 그녀에게 평온한 정착을 주었다. 블레셋은 다윗의 정복을 당했으나,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스라엘에 인접했던 다른 나라들은 그 당시에도 풍부한 수확을 거두었고, 그 기근은 이스라엘 땅에만 있었던 것 같다. 이것은 기근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에 의한 것임을 보여 준다(이것은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민족을 구분했던 애굽에서의 역병의 경우와 같다). 그리고 이스라엘에 대한 이 심판이 직접 겨냥했던 이스라엘의 죄는 이방의 죄보다 하나님을 더욱 진노케 하였다. 이것은 그들이 고백한 하나님과의 관계 때문이었다. "내가 너희만을 알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보응하리라" (암 3:2).
다른 나라에는 비가 오는데 그들에게는 비가 오지 않았고, 그들의 곡식은 메뚜기와 황충이 먹는데, 이방은 메뚜기와 황충의 해를 받지 않았다. 이것은 요엘서 1장 3, 4절에서 말하고 있는 바로 그 기근이라고 생각하는 자들도 있다. 이웃 나라에는 풍부한 양식이 있는 때에도 이스라엘 땅으로 곡식을 수입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자들이 없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렇게 했더라면 그들이 이사를 가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우상 숭배로 인하여 바보처럼 되었듯이, 또한 자기들의 공익이 무엇인지도 모르게 된 것이다.
👉여호와께서 내리신 기근의 기간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특별한 의머를 나타내는 ‘7’ 이라는 숫자로 표현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7’ 이라는 수가 갖는 상징적 의미는 ‘완전함', ‘승리', ‘하나님의 수', ‘안식'등. 따라서 이스라엘 땅에 7년 동안 기근이 있으리라는 본문은 앞으로 있을 기근의 실제적인 기간에 관한 예언임과 동시에 이 재난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견디기 힘든 매우 극심한 기근임을 암시한다.
또한 이 기간은 엘리야 시대에 있었던 3년 반의 가뭄 기간(왕상 17장)의 두 배에 헤당한다. 이는 왕을 비롯한 이스라엘 백성의 패역함이 엘리야 시대에서 엘리사 시대로 넘어가면서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심화되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Ⅲ. 수넴 여인은 고향에 돌아오자 왕에게 간청을 드렸고, 그것은 그 시기적인 적합성 때문에 은혜를 입게 되었다.
1.기근이 지나자 수넴 여인은 블레셋 땅에서 돌아왔다. 그 곳은 필요 이상으로 이스라엘 사람이 더 오래 머물 곳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그 여인이 월삭과 안식일을 자기 나라에서, 즉 예언자의 학교에서 지켰던 것처럼(4:23) 그렇게 지킬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수넴 여인은 장기간의 기근을 피하기 위해 왜 하필이면 볼레셋 사람의 땅을 택했을까?
역사적으로 이스라엘과 블레셋과의 사이는 서로 원수지간이었음을 고려해 볼 때, 여인이 아무리 기근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할지라도 블레셋 땅으로 간 행위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이와 관련된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블레셋의 당시의 모습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사사 시대 후반부터 다윗 왕 시대 초반부까지 맹위를 떨치던 블레셋은 다윗에 의해 패망하고 말았다(대상 18:1). 그리하여 블레셋의 역사는 단합된 민족의 역사라기보다는 개별적인 성읍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가 되고 말았다. 그 후 이스라엘이 분열된 틈을 타 블레셋은 그 세력이 팽창하여, 여로보암이 통치하던 때에는 유다 땅을 침입하여 왕궁을 습격하고 재산을 약탈해 가기도 하였다(대하 21:16.17). 하지만 블레셋은 세력이 점차 약화되어 아라비아 민족과 아람의 하사 엘의 침입을 받기도 하였다(12:17). 본문의 시대적 배경이 아람 왕 하사엘이 즉위하기 직전임을 고려해 볼 때, 당시 블레셋은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쇠퇴기에 접어들었고 몇몇의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그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약화된 세력을 가진 블레셋은 수넴 여인이 일시적으로 체류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장소였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여인이 블레셋을 택한 이유는 블레셋이 유다의 남서쪽 해안에 있는 평야 지대에 위치하고 있었고 강수량도 적절하여 농사짓기에 좋은 환경이었기 때문이다(삿 15:5). 따라서 블레셋 땅은 기근이 닥쳐와도 유다나 사마리아보다는 덜 심했을 것으로 여겨지며, 여인은 이러한 판단에 의해 블레셋을 체류지로 정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2. 돌아온 수넴 여인은 자기 재산의 소유권이 박탈되었음을 알았다. 그것은 국고로 몰수되었거나, 임금이 빼앗았거나, 그녀가 없는 동안 이웃 사람이 횡령했을 것이다. 혹은 재산 관리를 맡은 자가 허위 입증을 하여 다시 양도하려 하지 않았거나, 그녀와 이익 계산을 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곤고한 때에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발견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잠 25:19; 미 7:5).
👉 3절, 이스라엘의 궁전에 왕과 게하시가 나란히 자리를 같이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당시 엘리사와 이스라엘 왕 사이에 교류가 있었고 그 역할을 게하시가 주로 감당했음을 보여준다.
본문에서 엘리사가 등장하지 않는 이유는 선지 생도들을 가르치기 위해 순회 중이었거나 은신처에서 사람과의 교류를 끊고 영적인 일에 전념하였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엘리사는 그 와중에서도 자신의 신복 게하시틀 왕궁에 파견함으로써, 이스라엘 왕실을 하나님의 뜻 앞에 세우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연결시키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한편 이러한 엘리사의 모습은 그의 스승 엘리야와 비교해 볼 때 분명한 차이가 있다. 즉 그의 스승 엘리야가 이스라엘 왕실과 매우 소원하고 적대적 관계를 유지했던 반면 엘리사의 경우는 비록 왕실의 정책에 동조하지는 않았지만 거기에서 이루어지 고 일어나는 일들에 관해 매우 적극적인 자세로 대처하고 있는 것이다.
4절, 왕이 ‘너는 .. 모든 큰 일을 내게 고하라’고 말함
이스라엘 왕이 한 선지자의 사환을 앞에 두고 선지자에 대한 이야기를 간곡히 청하는 이러한 장면은 성경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부분으로, 이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많은 일을 행하였던 엘리사에 대한 명성이 크게 높아져 있었음을 암시한다. 즉 여러 가지 이적을 행했다는 엘리사에 관한 소문이 왕의 귀에도 들려왔으며 그 소문의 내용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던 우상 숭배자임에 틀림없는 여호람 왕까지도 기이히 여길 만큼 대단한 것이었던 것.
이같은 여호람의 엘러사의 사적에 대한 관심의 표명은 북이스라엘 역사를 이끌어 가는 진정한 주인공이 누구인가를 다시 한번 부각시켜 주는 기능을 수행한다. 즉 본문은 북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큰 일로 칭해질 수 있는 사건의 중심에 왕이 아니라 엘리사가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이 일을 배후에서 이루시며 또한 지속적으로 당신의 선지자 엘리사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상기하게 한다. 어같은 언급을 통해 본서 저자는 하나님께서 우상 숭배와 온갖 죄악으로 점점 심판을 향해 나아가는 북이스라엘 가운데서도 지속적으로 당신의 능력을 선지자를 통해 드러내시고 이처럼 당신이 이루신 큰 일들을 통해 당신 스스로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끌어 가는 주체이심을 드러내고 계심을 나타내고 있다.
3.수넴 여인은 구제를 받고자 왕에게 직접 의뢰했다.
왕은 남이 접근하기 쉬웠고(이것은 잘한 일이다) 피해 입은 백성들의 억울함을 직접 파악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여인이 자기 백성들과 아주 안전히 거할 때는 "군대 장관에게, 혹은 왕에게 구할" 필요가 없었다(4:13). 그러나 이제 수넴 여인의 가까운 벗들은 신의(信義)를 저버리고 부정하고 불친절하게 증거하므로, 그녀는 그들에게 대하여 왕에게 고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피조물 가운데는 이러한 불확실성이 있다. 즉 우리가 지극히 의지하던 것이 우리를 실망시키고, 우리가 결코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던 그것이 우리를 도와주게도 되는 것이다.
4. 수넴 여인은 왕이 게하시와 함께 엘리사의 기적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발견했다(4절).
왕이 그 기적들에 관하여 그 때서야 알고자 했다는 것은 수치스런 일이다. 즉 엘리사의 사명에 대한 확신할 만한 증거를 보지 않으려고 왕이 자기의 눈을 감아 버리려고 하지만 않았더라면, 엘리사가 그 기적을 행했을 때 그 때에 그 기적에 대하여 왕도 잘 알게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계속 무시하지 않고 그 기적에 호감을 품고 그 사실을 잘 설명할 수 있는 한 문둥이와 얘기하길 원했다는 것은 이제 그의 마음이 바로 잡혔다는 것이요, 칭찬받을 만한 일이다. 율법은 문둥이와의 일체의 교제를 금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들과 함께 기거하는 것만을 금했다. 그 당시에는 이스라엘에 제사장이 없었고, 아마 왕이나 혹은 그의 지명을 받은 어떤 사람이 문둥이를 진단하여 그들에게 문둥병 여부를 판결했을 것이다. 아마 그것 때문에 왕이 게하시와 알게 되었을 것이다.
👉 게하시가 여러가지 엘리사의 사적 가운데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려낸 일화를 설명하는 중에 놀랍게도 이 사건의 주인공이었던 수넴 여인이 왕에게 나아와 자기의 잃어버린 집과 전토를 인하여 호소하게 된 것. 이같은 놀라운 극적 일치 상황을 원문은 ‘그리고 ~이 발생했다'라는 의미의 ‘와에히'를 사용하여 표현하고 있다.
본문의 흐름과 관련해 공동 번역은 본문을 다옴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마침 게하시는 엘리사가 죽은 아이를 다시 살린 일을 왕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엘리사가 아들을 살려준 그 여인이 왕에게 자기의 집과 땅을 돌려달라고 청을 올렸던 것이다."
본절은 이처럼 게하시가 여러 사건 중 죽은 아이를 살리는 일화를 언급하는 중에 엘리사에 의해 살아났던 아이의 어머니가 마치 게하시의 증인이라도 되듯이 등장하게 되고, 또한 그녀는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소원을 아뢸 수 있게 된 것으로 봐야 한다. 이같은 본문의 내용은 왕과 게하시가 나누었던 대화와 여인의 간청 가운데 모종의 하나님의 개입을 볼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이는 이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에 의해 은혜를 입고 있다는 것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보호와 은총을 입고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5.이 다행스런 일치가 게하시의 이야기와 수넴 여인의 탄원을 도와주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가 사건의 전말(前末)을 조정하고 있다는 것을 고백해야 한다. 왜냐하면 때때로는 여기에서처럼 본질상 미미한 것들도 위대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1) 이렇게 긴밀히 관계된 당사자들의 말이 일치하자, 왕으로 하여금 게하시의 이야기를 믿게 했다. "이는 그 여인이요, 저는 그 아들이니,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이야기하게 하소서" (5절). 결국 하나님은 게하시가 거짓말쟁이로 낙인 찍혔기 때문에(문둥병이 그 증거이다) 그의 말만으로 왕이 의심할 수도 있었던 것을 믿지 않을 수 없게 했다.
👉 5절, ‘그 다시 살린 아이의 어미가 … 호소하는지라’
‘호소하는지라’: 원어의 단어는 그 여인이 마처 고통에 겨워 울부짖듯이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큰 소리로 부르짖고 있음을 보여줌. 여인의 등장으로 인한 이둘의 놀라움은 여인의 절규하듯이 부르짖는 소리에 의해 더욱 증폭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 여인의 요구가 절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녀의 집과 전토가 그녀와 가족의 생존을 보장해 주는 생명과 직결된 재산이었기 때문이다.
‘내 주 왕이여 … 곧 엘리사가 다시 살린 자니이다’
게하시가 왕에게 죽은 아이를 살린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 그 아이의 어미인 수멤 여인이 등장한 것은 왕과 게하시 모두에게 놀라운 사건이었을 것. 이러한 놀라운 사건을 단지 우연의 일치라고 말한다면 이는 본문을 잘못 이해한 것. 본문은 하나님께서 수빔 여인이 왕에게 나아가는 때와 게하시가 그의 스승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점을 일처하도록 하심으로써, 왕으로 하여금 수넴 여인의 호소에 줍중하도록 배려하셨음을 나타낸다. 만일 수빔 여인이 다른 시점과 상황에서 이스라엘 왕에게 나왔다면, 왕은 그녀의 요구를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겼을지 모른다. 이처럼 수넴 여인이 왕에게 나아가는 그 시점까지 배후에서 조정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의 삶에 큰 관심을 가지시고 자비로써 인도하시는 분이심을 잘 보여준다(마 10:29).
왕이 수넴 여인에게 어떤 질문을 하였는지에 대해서는 나타나지 않지만, 문맥상 몇 가지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먼저 그는 그녀와 그녀의 아들이 게하시가 말한 이적의 주인공들인지를 물었을 것이다. 이는 당시 왕에게 있어서 주된 관심은 엘리사를 통해 이루어진 ‘큰 일'과 그것을 확인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어서 그는 그녀가 자신의 집과 전토에 대한 소유를 주장하게 된 까닭을 물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자세한 이야기를 들은 왕은 본사건의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이는 왕이 이례적으로 수넴 여인의 재산과 함께 ‘그 동안의 밭의 소출까지도 계산하여 주라' 는 명령을 내린 사실에서도 확인될 수 있다. 실제로 당시 7년 기근이 막 끝난 상황에서 수넴 여인 과 같이 다른 나라에서 우거하다가 자신의 소유틀 주장하는 사람들을 찾아보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왕이 이러한 사람들의 요구틀 묵살해도 되는 상황에서 전담 관리까지 동원하면서 수넴 여인의 재산을 회복시켜 준 데에는 수넴 여인을 보호하시며 그녀를 위해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자상한 손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2) 그것이 왕으로 하여금 수넴 여인의 요구를 승낙하게 했다.
어느 누구가 하늘이 은혜를 베푼 자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겠으며, 기적으로 다시 얻은 생명을 부양하지 않겠는가? 이 점을 고려하여, 왕은 그 여인의 땅과 그 여인이 없을 때 그 땅으로 인하여 생긴 모든 이득을 그 여인에게 돌아가게 하라고 명령했다. 전답과 이득은 몰수되어서 바로 왕에게로 돌아가 있었다면, 그러한 완전한 반환은 관대하고 친절한 일이라 하겠다(바로가 요셉의 시대에 했던 바와는 달리 이 왕은 자기 백성의 불행으로 자기 왕위를 부요하게 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만일 그녀의 재산이 침해된 것은 다른 사람에 의해서였다면, 그가 그 여인을 구제한 일은 왕으로서의 정당한 행위며 직위상의 의무인 셈이다(시 72:3, 4; 잠 31:9). 권세 잡은 자들은 본인들이 악을 행치 않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피해를 입은 자들의 권리를 지지해 줄 책임도 있기 때문이다.
👉게하시의 말과 여인의 말이 정확히 일치하자, 왕은 여인에게 소유지를 돌려줄 뿐 아니라 7년 동안 거둘 수 있는 앙의 소출까지 환급해서 돌려줄 것을 지시했다. 만약 여인이 엘리사의 권고를 무시하고 자신의 소유지에 머물렀더라면, 장기간의 기근으로 인하여 소출은커녕 목숨도 부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엘리사의 말에 전적으로 순종함으로써 그녀는 목숨을 부지했을 뿐만 아니라 기근이 끝난 지금 왕과 대면하여 땅과 더불어 7년 간의 소출을 되둘려 받는 예상조차 할 수 없었던 놀라운 일을 체험하게 되었다. 이러한 본문은 언제나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넘치는 축복이 임한다는 교훈을 전달하고 있다.
집과 전토를 다 버리고 다른 곳으로 떠나라는 엘리사 선지자의 말은 과부이자 평생을 수넴 지역에 살아온 그녀에게 결코 순종하기 쉬운 명령이 아니었을 것어다. 하지만 여인은 믿음으로 순종하였고 그 결과 7년 간의 대기근을 피할 수 있었다. 만약 우리에게 수넴 여인처럼 온전히 순종할 수 있는 자세가 마련되어 있기만 한다면 오직 하나님은 감당처 못할 시험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때에 또한 피할 길을 예비하셔서 능히 감당할 수 있게 해주실 것이다(고전 10:13).
뿐만 아니라 본문은 ‘큰 일' 즉 여호와께서 엘리사를 통해 나타내신 이적과 그틀 통한 구원 사건들을 기억하고 회상하였을 때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여졌고 그에 따른 왕의 자비의 선언이 선포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비록 선지자가 바로 앞에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큰 일을 기억하고 나누는 자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실례이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구원 사건,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역사적으로 오랜 시간이 지난 사건이지만 우리가 그 사건을 기억하고 나눈다면 수넴 여인이 경험하였던 은혜보다 더욱 큰 구원의 은혜가 임하는 것은 물론 성령께서 베푸시는 은사와 돌보심으로 인하여 모든 것에 풍성하고 충만한 축복된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