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민수기 3, 시편 37, 아가서 1, 히브리서 1
묵상구절
9:27 유다의 왕 아하시야가 이를 보고 정원의 정자 길로 도망하니 예후가 그 뒤를 쫓아가며 이르되 그도 병거 가운데서 죽이라 하매 이블르암 가까운 구르 비탈에서 치니 그가 므깃도까지 도망하여 거기서 죽은지라
9:28 그의 신복들이 그를 병거에 싣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다윗 성에서 그들의 조상들과 함께 그의 묘실에 장사하니라
9:29 아합의 아들 요람의 제십일년에 아하시야가 유다 왕이 되었었더라
매튜헨리/옥스퍼드
(2) 그는 유다 왕 아하시야를 추격하여 곧 멀지 않은 곳에서 살해하였다(27, 28절).
👉 27절, 아하시야=아합의 딸 아달랴의 아들.
본절은 북이스라엘 왕 요람의 죽음에 이어 남유다 왕 아하시야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 아하시야는 반란을 일으킨 예후에 의해 외삼촌 요람 왕이 살해되는 것을 목격하고 재빨리 도망치지만 그 역시 죽음을 면할 수 없었다.
북이스라엘 왕 요람에게 반역을 일으킨 예후가 남유다 왕인 아하시야까지 죽인 이유는 아하시야가 아합이 외손자로 아합 왕가의 피를 받은 인물이었기 때문이며, 만일 그를 살려둘 경우 외삼촌인 요람에 대한 복수를 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1]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가 비록 요람의 무리 가운데 있었다 할지라도, 그가 혈족으로나 죄악으로나 아합의 집과 결합되지만 않았더라면 살해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도 아합가의 일원이었다(그는 자기의 죄로 인하여 스스로 그렇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운명과 아하시야도 함께 해야 했던 것이다. 예후는 정당하게 자기의 임무가 그들에게까지 미치는 것으로 해석했다.
[2] 그러나 만일 그가 그들과 함께 발견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함께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악을 행하는 자들과 연합하는 일은 위험한 것이다. 우리도 죄와 그 죄로 인한 비참함에 함께 휩쓸릴 수 있는 법이다.
👉 28절, 그 신복들이 … 다윗성에서 장사하니라
본문은 므깃도에서 죽은 남유다 왕 아하시야의 시신을 신하들이 싣고 와서 예루살렘성에 있는 다윗 가문의 묘실에 안장하였음을 보도하는 부분. 열왕기서를 보면 각 왕들에게는 일정한 ‘왕의 즉위 공식’과 ‘왕의 사망 공식'의 문구가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본문은 ‘왕의 사망 공식' 문구에 해당하는 부분.
유다 왕의 사망 공식은 “~의 남은 행적은 유다 왕 역대지락에 기록되지 아니하였으냐”, “~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다윗성에 그 열조와 함께 장사되고 그 아들 ~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는 일정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본문은 아하시야의 죽음을 보도하면서, 이러한 사망 공식의 문구를 정확하게 따르지 않고 있다. 이처럼 아하시야에게는 일반적인 왕의 죽음의 공식 문구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 아하시야가 다른 왕들과 달리 타지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문은 아하시야가 아합 왕가의 피가 섞였고 왕으로 등극하자마자 북이스라엘의 요람 왕과 전쟁을 도모하여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다윗성에 있는 가족 묘실에 묻혔음을 정확하게 보도하고 있다.
관련 본문인 대하 22:9 에서는 이에 대한 이유를 ⇒ "저는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던 여호사밧의 아들(손자)"이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여호와에 대한 신앙을 기준으로 각 왕들의 처리를 평가하는 열왕기 저자에게 있어서 아합의 딸인 아달랴의 아들이며 아함의 집과 결탁하여 우상을 숭배하며 악을 행한 아하시야는 부정적으로 보여질 수밖에 없었다. 아하시야가 비록 1년의 짧은 기간 동안 위에 앉아 통치함으로 별다른 업적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의 신앙적인 문제로 인해 열왕기서 저자는 역대기 저자와 같은 적극적인 내용 서술에 대해 회피 내지는 침묵하고 있는 것이다.
29절,
8:25에서 이미 아하시야의 등극 시기를 언급 해놓고 본문에서 또 한 번 그의 등극 시기를 언급하는 정확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추정컨데 이같은 등극 시기의 반복적인 기록은 그의 비참한 죽음과 더불어 1년밖에 안된 짧은 통치 기간이 북이스라엘의 아합 가문과의 연관성 때문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