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5월 9일 화요일 왕하13:22-25 이스라엘과 아람의 전쟁

Jeehyun 2023. 5. 10. 16:59

묵상구절

22 여호아하스 왕의 시대에 아람 왕 하사엘이 항상 이스라엘을 학대하였으나

2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풀며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돌보사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시고 이 때까지 자기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셨더라

24 아람의 왕 하사엘이 죽고 그의 아들 벤하닷이 대신하여 왕이 되매

25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하사엘의 아들 벤하닷의 손에서 성읍을 다시 빼앗으니 이 성읍들은 자기 부친 여호아하스가 전쟁 중에 빼앗겼던 것이라 요아스가 벤하닷을 세 번 쳐서 무찌르고 이스라엘 성읍들을 회복하였더라

매튜헨리/옥스퍼드

💡 22-25절, 엘리사의 예언대로 요아스 왕이 아람에게 빼앗긴 영토를 부분적으로 회복한 사실. 부왕 여호아하스가 아람 왕 하사엘에게 빼앗긴 영토를 요아스가 회복하는 과정을 본단락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와 연관지어서 설명하고 있다.

Ⅱ.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의 칼에 주목해 보자. 우리는 그 칼이 아람을 무찌르는 데 성공적인 역할을 했음을 알게 된다.

1. 그의 성공의 이유는 하나님의 은총이었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긍휼히 여기시며 권고하셨다" 고 했다(23절).

여기에 표현된 몇 가지 동일한 의미는, 우리로 하여금 그와 같이 거역하는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데서 나타나신 하나님의 선하심의 승리를 보고 경탄케 한다. 그들이 진멸되지 않았던 것은 바로 여호와의 긍휼 때문이다. 곧 여호와께서 아직까지는 그들을 멸하시려 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들이 결국에는 스스로를 파멸시켜 버릴 것을 예견하셨으나, 아직까지는 그들에게 유예 기간을 주시어 회개의 여지를 남겨 두려고 하신 것이다.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지연되는 것은 그의 자비하심의 영광에 기인하는 것인지, 하나님의 정의가 모호하기 때문은 아니다.

 💡 북이스라엘이 아람 왕 하사엘의 계속되는 압제에도 불구하고 영토를 완전히 상실하지 않은 것은 ⇒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세운 언약을 기억하셨기 때문.
본서 저자가 지금까지 계속해서 '다윗과의 언약’ 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다가 갑자기 본절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의 언급’ 을 언급하고 있다.

사실상 족장들과의 언약은 신명기에는 자주 언급되지만, 그 이후에는 수 24:3에서만 언급되고 자취를 감추었다. 수 24:3에서 언급되었던 것은 족장들과의 언약의 핵심이 ‘땅’ 과 연관된 것으로, 가나안 땅 정복을 위해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언약을 상기시킬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열왕기서 저자가 오랜 동안의 침묵을 깨고 ‘땅'과 관련된 족장들과의 언약을 본문에서 언급하는 이유가 분명해진다. 그것은 지금까지 북이스라엘의 왕들이 끊임없이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의 노를 격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가나안 땅을 영원한 기업으로 주리라' (창 17:4-8)고 하신 당신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 언약을 성실히 이루신 걸과임을 밝히기 위해서이다. 즉 은혜 받을 자격이 없는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는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맺은 언약에 근거한 것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열왕기서 기자는 신명기 9:27의 모세외 기도를 반영하고 있다.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생각하사 이 백성의 강팍과 악과 죄를 보지 마옵소서." 진노 가운데서도 긍휼과 은혜를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드러내주는 이와 같은 말씀은 ⇒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을 잃고 이방의 포로로 끌려간 본서의 일차 독자인 포로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 하나님께서 그 땅을 반드시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로 전달되었을 것이다

‘쫒아내지(원형-솰라크) 않으셨다’

여호와께서 족장들과의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 백성들의 배도를 길이 참으셨으나 결국 그들이 돌이키지 않음으로 인해 그들을 징계하셨음을 나타낸다.

솰라크: 본문의 ‘솰라크’ 동사는 죽은 자의 시체가 엘리사의 묘실에 던져진 것을 묘사하는 21절과 관련해서 독자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전달한다. 본장의 ‘솰라크’ 동사는 죽은 자의 시체가 당한 일과 — 범죄한 이스라엘이 당할 패망의 운명을 서로 연결해준다.
21절에서 장사지내는 사람들이 모압 적당을 만나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던져버린 것’처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범죄함을 인하여 그들을 약속의 땅 밖으로 ‘던져버린 것’.
하지만 던져진 시체가 엘리사의 유골과 접촉함으로 살아났던 것처럼, 여호와로부터 일시적으로 버림받은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언약의 말씀을 가까이한다면 반드시 회복될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본서의 저자는 이 동사의 반복과 엘리사의 유골에 닿은 시체의 희생을 통해 하나님이 앞으로 북이스라엘에 행하실 일을 암묵적으로 전달해 주고 있다. 

2.그의 성공의 결과로 이스라엘에는 번영이 왔다.

요아스는 아람이 차지하고 있던, 이스라엘의 잃어버렸던 성읍을 벤하닷의 손에서 다시 회복시켰다(25절). 이 사건은 압제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된 그 성읍들 자체에도 커다란 자비였고, 그 성읍들이 회복됨으로써 그 세력이 훨씬 강화된 이스라엘 왕국 전체에 대하여도 커다란 자비였다. 화살을 가지고 땅을 세 번 쳤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아람을 꼭 세 번 쳤다. 그리고 나서는 그의 승리가 더 이상 진전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때 늦은 후에 자기들이 불신했던 것과 욕망이 옹졸했던 것을 후회한다.

 💡 본문에 소개된 ‘벤하닷’ = ‘벤하닷 3세’.

벤하닷 2세의 왕위를 찬탈한 하사엘(8:7-15)의 아들로서 부친 하사엘의 죽음으로 왕권을 물려받은 인물, 유다 왕 아마샤와 북이스라엘 왕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 및 앗수르 왕 아닷니라러 3세와 동시대 인물. 여호아하스 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정벌하기 위해 들어 사용하신 인물.
그 후에도 밴하닷 3 세는 북어스라엘을 계속해서 괴롭혀 왔는데, 마침내 아닷니라리 3세가 이끄는 앗수르 군대에 의해 벤하닷 3세가 이끄는 아람 군대는 괴멸되고 아람 왕국은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15-19절에서 엘리사의 예언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었음

본문에서는 요아스가 아람의 벤하닷으로부터 어떤 성읍을 회복하였는지 정확히 기록하고 있지 않다. 그것은 본문이 정확한 역사적 자료를 독자에게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19절의 엘리사의 예언이 그대로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전달하는 것에 강조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즉 ‘세 번 쳐서 파하고' 는 19절의 엘리사의 예언이 정확히 성취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요아스 왕의 뛰어난 전략 때문에 북이스라엘이 아람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하신 바에 따라 북이스라엘에 승리가 주어졌음을 나타낸다.

이상과 같이 본장은 엘리사의 마지막 사역과 죽음을 중심으로 북이스라엘의 여호아하스 왕과 요아스 왕의 행적을 기술했다.
본장에 나타난 두 왕의 공통점은 북이스라엘을 구원하는 데 있어서 그들 스스로는 철저히 무능력하다는 것.
아람의 학대를 모던하기 위한 여호아하스의 간구는 신앙적 일면을 드러내기는 하지만, 그로 인한 하나님의 구원 이후에도 그가 고의적이고 반복적으로 범죄한 사실은 도리어 그의 배은과 완악함을 더욱 강조할 뿐이다. 또한 엘리사의 예언을 통해 주어진 여호와의 구원 약속에 대한 요아스 왕의 미진하고 소극적인 태도 역시 무능력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본장은 이러한 절망적 상황만을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선지자 엘러사의 유골에 닿은 시신이 다시 살아난 이적과 족장들과의 언약을 상기시킴으로써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잠시 징계하실 것이지만 반드시 다시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동시에 전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