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5월 20일 토요일 왕하16:1-20 유다 왕 아하스(대하 28:1-27)

Jeehyun 2023. 5. 20.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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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29, 시편 73, 이사야 21, 베드로후서 2

묵상구절

1 르말랴의 아들 베가 제십칠년에 유다의 왕 요담의 아들 아하스가 왕이 되니

2 아하스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육 년간 다스렸으나 그의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지 아니하고

3 이스라엘의 여러 왕의 길로 행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라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4 또 산당들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5 이 때에 아람의 왕 르신과 이스라엘의 왕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싸우려 하여 아하스를 에워쌌으나 능히 이기지 못하니라

6 당시에 아람의 왕 르신이 엘랏을 회복하여 아람에 돌리고 유다 사람을 엘랏에서 쫓아내었고 아람 사람이 엘랏에 이르러 거기에 거주하여 오늘까지 이르렀더라

7 아하스가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사자를 보내 이르되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이제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나를 치니 청하건대 올라와 그 손에서 나를 구원하소서 하고

8 아하스가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을 내어다가 앗수르 왕에게 예물로 보냈더니

9 앗수르 왕이 그 청을 듣고 곧 올라와서 다메섹을 쳐서 점령하여 그 백성을 사로잡아 기르로 옮기고 또 르신을 죽였더라

10 아하스 왕이 앗수르의 왕 디글랏 빌레셀을 만나러 다메섹에 갔다가 거기 있는 제단을 보고 아하스 왕이 그 제단의 모든 구조와 제도의 양식을 그려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냈더니

11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오기 전에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보낸 대로 모두 행하여 제사장 우리야가 제단을 만든지라

12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와 제단을 보고 제단 앞에 나아가 그 위에 제사를 드리되

13 자기의 번제물과 소제물을 불사르고 또 전제물을 붓고 수은제 짐승의 피를 제단에 뿌리고

14 또 여호와의 앞 곧 성전 앞에 있던 놋 제단을 새 제단과 여호와의 성전 사이에서 옮겨다가 그 제단 북쪽에 그것을 두니라

15 아하스 왕이 제사장 우리야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아침 번제물과 저녁 소제물과 왕의 번제물과 그 소제물과 모든 국민의 번제물과 그 소제물과 전제물을 다 이 큰 제단 위에 불사르고 또 번제물의 피와 다른 제물의 피를 다 그 위에 뿌리라 오직 놋 제단은 내가 주께 여쭐 일에만 쓰게 하라 하매

16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 왕의 모든 명령대로 행하였더라

17 아하스 왕이 물두멍 받침의 옆판을 떼내고 물두멍을 그 자리에서 옮기고 또 놋바다를 놋소 위에서 내려다가 돌판 위에 그것을 두며

18 또 안식일에 쓰기 위하여 성전에 건축한 낭실과 왕이 밖에서 들어가는 낭실을 앗수르 왕을 두려워하여 여호와의 성전에 옮겨 세웠더라

19 아하스가 행한 그 남은 사적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0 아하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다윗 성에 그 열조와 함께 장사되고 그의 아들 히스기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대하2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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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 <유다 왕 아하스(왕하 16:1-5)> 아하스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육 년 동안 다스렸으나 그의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지 아니하고

28:2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바알들의 우상을 부어 만들고

28:3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분향하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그의 자녀들을 불사르고

28:4 또 산당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니라

28:5 그러므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아람 왕의 손에 넘기시매 그들이 쳐서 심히 많은 무리를 사로잡아 다메섹으로 갔으며 또 이스라엘 왕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쳐서 크게 살륙하였으니

28:6 이는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라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유다에서 하루 동안에 용사 십이만 명을 죽였으며

28:7 에브라임의 용사 시그리는 왕의 아들 마아세야와 궁내대신 아스리감과 총리대신 엘가나를 죽였더라

28:8 <선지자 오뎃>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형제 중에서 그들의 아내와 자녀를 합하여 이십만 명을 사로잡고 그들의 재물을 많이 노략하여 사마리아로 가져가니

28:9 그 곳에 여호와의 선지자가 있는데 이름은 오뎃이라 그가 사마리아로 돌아오는 군대를 영접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유다에게 진노하셨으므로 너희 손에 넘기셨거늘 너희의 노기가 충천하여 살륙하고

28:10 이제 너희가 또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을 압제하여 노예로 삼고자 생각하는도다 그러나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함이 없느냐

28:11 그런즉 너희는 내 말을 듣고 너희의 형제들 중에서 사로잡아 온 포로를 놓아 돌아가게 하라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임박하였느니라 한지라

28:12 에브라임 자손의 우두머리 몇 사람 곧 요하난의 아들 아사랴와 무실레못의 아들 베레갸와 살룸의 아들 여히스기야와 하들래의 아들 아마사가 일어나서 전장에서 돌아오는 자들을 막으며

28:13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이 포로를 이리로 끌어들이지 못하리라 너희가 행하는 일이 우리를 여호와께 허물이 있게 함이니 우리의 죄와 허물을 더하게 함이로다 우리의 허물이 이미 커서 진노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임박하였느니라 하매

28:14 이에 무기를 가진 사람들이 포로와 노략한 물건을 방백들과 온 회중 앞에 둔지라

28:15 이 위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이 일어나서 포로를 맞고 노략하여 온 것 중에서 옷을 가져다가 벗은 자들에게 입히며 신을 신기며 먹이고 마시게 하며 기름을 바르고 그 약한 자들은 모두 나귀에 태워 데리고 종려나무 성 여리고에 이르러 그의 형제에게 돌려준 후에 사마리아로 돌아갔더라

28:16 <아하스가 앗수르에 도움을 구하다(왕하 16:7-9)> 그 때에 아하스 왕이 앗수르 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도와 주기를 구하였으니

28:17 이는 에돔 사람들이 다시 와서 유다를 치고 그의 백성을 사로잡았음이며

28:18 블레셋 사람들도 유다의 평지와 남방 성읍들을 침노하여 벧세메스와 아얄론과 그데롯과 소고 및 그 주변 마을들과 딤나 및 그 주변 마을들과 김소 및 그 주변 마을들을 점령하고 거기에 살았으니

28:19 이는 이스라엘 왕 아하스가 유다에서 망령되이 행하여 여호와께 크게 범죄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유다를 낮추심이라

28:20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이 그에게 이르렀으나 돕지 아니하고 도리어 그를 공격하였더라

28:21 아하스가 여호와의 전과 왕궁과 방백들의 집에서 재물을 가져다가 앗수르 왕에게 주었으나 그에게 유익이 없었더라

28:22 <아하스의 범죄> 이 아하스 왕이 곤고할 때에 더욱 여호와께 범죄하여

28:23 자기를 친 다메섹 신들에게 제사하여 이르되 아람 왕들의 신들이 그들을 도왔으니 나도 그 신에게 제사하여 나를 돕게 하리라 하였으나 그 신이 아하스와 온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였더라

28:24 아하스가 하나님의 전의 기구들을 모아 하나님의 전의 기구들을 부수고 또 여호와의 전 문들을 닫고 예루살렘 구석마다 제단을 쌓고

28:25 유다 각 성읍에 산당을 세워 다른 신에게 분향하여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진노하게 하였더라

28:26 아하스의 남은 시종 사적과 모든 행위는 유다와 이스라엘 열왕기에 기록되니라

28:27 아하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이스라엘 왕들의 묘실에 들이지 아니하고 예루살렘 성에 장사하였더라 그의 아들 히스기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이사야 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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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그 때에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 스알야숩은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 길에 나가서 아하스를 만나

7:4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삼가며 조용하라 르신과 아람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이들은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

7:5 아람과 에브라임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악한 꾀로 너를 대적하여 이르기를

7:6 우리가 올라가 유다를 쳐서 그것을 쓰러뜨리고 우리를 위하여 그것을 무너뜨리고 다브엘의 아들을 그 중에 세워 왕으로 삼자 하였으나

7:7 주 여호와의 말씀이 그 일은 서지 못하며 이루어지지 못하리라

7:8 대저 아람의 머리는 다메섹이요 다메섹의 머리는 르신이며 육십오년 내에 에브라임이 패망하여 다시는 나라를 이루지 못할 것이며

7:9 에브라임의 머리는 사마리아요 사마리아의 머리는 르말리야의 아들이니라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이사야 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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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앗수르 왕의 침략> 여호와께서 다시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8:6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하느니라

8:7 그러므로 주 내가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으로 그들을 뒤덮을 것이라 그 모든 골짜기에 차고 모든 언덕에 넘쳐

8:8 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가득하여 목에까지 미치리라 임마누엘이여 그가 펴는 날개가 네 땅에 가득하리라 하셨느니라

매튜헨리/옥스퍼드

💡 앞선 15장을 통하여 볼 때 남왕국은 68년 정도의 기간에 2왕이 통치하였으나 복왕국은 21년 정도의 기간에 5왕이나 통치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복왕국이 초대 왕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계속적으로 우상 숭배에 몰두함으로 살헤와 전사와 자살 등 피의 역사가 이어져 왕들이 비교적 단명하였던 반면, 그래도 남왕국은 간혹 선한 왕이 등장하여 하나님의 뜻을 쫓음으로 인하여 비교적 안정된 역사가 이어짐을 보여준다.

그러나 본장에 이르러서는 남유다의 이러한 전통이 급격히 무너지게 된다.
즉 본장에 등장하는 남유다의 제12대 왕 아하스는 지금까지 지속하였던 남왕국의 그 어떤 왕보다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악한 왕이다. 열왕기 저자는 이와 같은 아하스의 부정적 측면을 드러내기 위하여 본장 전체를 그의 통치를 소개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아하스의 통치(1)(열왕기 하 16:1-4) — 아하스의 통치 개요, 우상숭배 소개

우리는 여기에서 아하스 통치의 일반적 성격을 보게 된다. 그의 연한은 짧았고 악했다. 즉 그는 36세에 죽었기 때문에 그 날이 짧았다.

💡 아하스

선왕 요담과 공동 통치를 하다가(B.C.735-731년) 731년경부터 단독 통치를 시작, 16년을 통치함.
‘아하스’는 약칭, 본래 이름은 앗수르 비명에 기록된 이름 ‘여호아하스’
이름의 뜻: ‘여호와께서 붙드셨다’
그럼에도 그는 통치 기간 동안 여호와를 의지하기보다는 주변의 강대국을 의지하였으며 우상 숭배를 행하는 등 하나님 앞에서 악하게 행하였다.
유다 왕들 가운데는 요시야의 아들 남왕국 제17대 왕인 여호아하스와 동명(23:30). 따라서 어떤 학자들은 이 둘을 구별하기 위해 본문의 아하스는 ‘여호아하스 1세’로*,* 그리고 요시야의 아들은 ‘여호아하스 2세'로 부르기도 한다. 

또 그의 날들이 악했음에 대해서 여기에서 보게 된다.

1. "그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치 아니 하였다" 는 사실이다(2절).

다윗은 하나님 경외와 공식대로 드린 예배 때문에 칭송을 받았으나, 아하스는 그런 일에 애착과 관심을 전혀 갖지 않았다. 그는 성전을 사랑하지 않았다. 또 하나님께 대한 의무감도 없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율법을 중히 여기지도 않았다. 이 점에서 그는 다윗과 같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다윗의 혈통과 집에 속했다는 것은 하나의 영예였다. 그가 왕좌에 앉은 것은, 하나님이 예전에 다윗과 맺었던 계약 때문이다. 이 왕좌는 오히려 그의 죄를 더욱 중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는 그 명예로운 이름과 가문에 치욕거리였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 그에게도 치욕이었다(Degeneranti genus opprobriump-훌륭한 혈통은 거기에서 타락해 나간 자에게는 불명예이다). 그리고 그가 비록 다윗의 신앙의 은덕을 입었다 할지라도 다윗의 신앙의 길로 가지는 않았다.

 💡 이스라엘 왕들의 평가 기준은: 그 왕의 세속적 업적이나 정책에 따른 것이 아닌 여호와와의 관계에 국한됨.
본문은 열왕기 기자가 남유다외 왕을 평가하는 기준이 ‘다윗'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는 북이스라엘 왕들을 평가하는 기준이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갔는지의 여부에 있었다면 남유다 왕들을 평가하는 기준은 ‘다윗의 믿음과 행위'를 따랐는지의 여부에 있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이는 물론 남왕국은 다윗의 혈통을 따라 왕이 되고 북왕국은 초대 왕 여로보암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 이는 곧 남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를 포함하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왜나하면 다윗 언약과 무관한 북왕조의 왕들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는 ‘부정적 기준'이 제시된 반면 남유다 왕들을 평가함에 있어서는 ‘긍정적 기준'이 머리 제시되기 때문이다.

→ 이는 북이스라엘 왕들보다 남유다 왕들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가 컸음을 암시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아하스 이전의 남유다 왕들 가운데 이 기준에 부합되는 평가를 받은 왕은 제3대 왕 아사 뿐이다(왕상 15:11). 이는 유다 왕조 역시 반복적으로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렸음을 지적해 주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남유다 왕들 중 히스기야(18:3) 와 요시야(22:2) 가 아사와 더불어 하나님이 제시하신 이러한 긍정적 기준에 부합되는 왕으로 평가된다.
반면 본절의 아하스와 같이 이 기준과 무관한 악한 왕들로는 아합의 집의 영향을 받은 요람과 아하시야, 유다를 멸망으로 몰아넣은 므낫세 (23: 26)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그 가운데 아하스의 경우 그가 행한 악행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그의 부정적인 모습들이 이전 유다 왕들과는 너무나 확연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아하스 이전의 요아스부터 요담까지 가까운 왕들의 기사를 보면 이들 모두는 비록 산당과 관련된 부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모두 ‘여호와 앞에서 정직히 행하였다' (12:2; 14:3; 15:3, 34)라는 평가를 받은 반면 아하스는 이와 상반되는 평가를 받고 있음을 볼 수 있다.

⇒ 이는 아하스가 어린 시절 좋지 못한 본을 습득함으로 어쩔 수 없이 배도의 길을 간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악을 추종하여 그릇된 길을 걸었음을 나타낸다.

2.그는 송아지 우상을 섬겼던 "이스라엘 열왕의 모든 길로 갔다" (3절).

여로보암과 아하시야가 아합의 집과 결연했을 때와 같이, 그는 그들과 인척관계는 없었으나, ex mero motu-아무런 교사(敎唆)가 없이도 그들의 길로 갔다. 이스라엘의 열왕은 정책적으로 우상 숭배를 해 나갔고 거기에 대한 구실이 있었으나, 아하스에게는 그러한 구실이 전혀 없었다. 즉 아하스에게 있어서는 있을 수도 없는 가장 부당하고 불경한 것이 우상 숭배였다. 이스라엘의 왕들은 그의 적이었다. 그리고 우상 숭배 때문에 그들은 또한 그들 자신에게도 원수였다는 것이 입증되고 말았다. 그런데도 여전히 아하스는 그들의 길로 갔다.

 💡여기서 아하스가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하였다는 보도는 매우 심각한 평가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남유다 왕의 경우

‘다윗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였으나 산당을 제거하지 않았다'(왕상 15:11),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였으나 다윗과 같지 않았다'(14:3) 등의 조건적 평가가 주어지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12:2,3; 15:3.34; 왕상22:43).

그리고 부정적 평가를 받는 경우에도 ‘다윗의 마음과 같이 아니하였다' (왕상 15:3),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다' (21:20; 23:32,37; 24:9, 10)는 평가만 주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하스에게는 ‘그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허 행처 아니하고'에 이어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하며'라는 예외적 평가가 덧붙여져 었는 것이다. 이는 남왕국 유다의 대표적인 악한 왕이라 할 수 있는 요람과 아하시야 그러고 므낫세가 ‘아합의 집같이' (8:18.27), 아합의 소위를 본받아 (21:3)라는 평가를 받은 것과 유사한 평가이다. 이는 아하스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과 아합과 같이 도덕적으로 악행을 범하였을 뿐만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우상 숭배를 함으로써 여호와 앞에 가증한 행위를 하였음을 가리킨다. 병행 구절인 대하 8:2에 그에 대해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하여 바알들의 우상을 부어 만들고' 라고 기록되어 있음을 볼 때, 본문의 ‘이스라엘 열왕의 길’도 우상 숭배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 열왕의 길
길: 성경에서는 ‘사람의 행위나 활동에 대한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노선’ 을 가리키는 은유적 용법으로 보다 많이 사용됨. 예)시1:6 ‘의인의 길’ ‘악인의 길’ 본문에서 아하스가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했다는 표현도 그가 북 이스라엘 왕들처럼 윤리적이고 종교적으로 악한 길을 걸었음을 보여주는 것 

3.그의 쓰레기더미 같은 신들을 위하여, "자기 아들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였다." 그는 자기 아들을 태워 죽였다.

그것은 역대하 28장 3절에 명백히 나타나 있다. 그는 어떤 아들은 불에 태우고, 어떤 아들은 두 불 사이를 통과하게 했거나 우상에 대한 헌납의 표시로써 불꽃을 통과케 했다(히스기야도 그보다 악한 왕은 아니었지만, 그런 일을 했다).

4.그는 "여호와께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행했다. 그가 자기 눈으로 직접 멸망의 구덩이로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도 그들에 의하여 종교적 지도를 받으려 한다는 것, 그리고 그들을 따랐다는 것은 그의 커다란 어리석음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가증히 여기노라고 선포했던 바로 그런 관습들을 그가 따르려 했고, 하나님이 쫓아내었던 자들의 본을 따르려고 애썼으며, 그리하여 결국 직접적으로 하나님과 반대되는 길로 간 것은 그의 커다란 불경이다.

💡 우상숭배의 죄 1

또…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한글 개역 성경이 단순히 ‘또’ 번역한 ‘웨감’ 은 문자적으로 ‘그리고 심지어'라는 뜻으로, 본문에 묘사된 아하스의 행동이 매우 충격적인 것임을 나타낸다. 그 충격적인 행동은 바로 ‘이방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본받은 것으로서, 자기 아들을 불로 태워 몰렉에게 바치는 ‘인신 제사'를 가리킨다. 이러한 사악한 종교 제의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점령하기 이전부터 이미 존재하였었다(레 18:21; 신 12:31; 18:9, 10). 뿐만 아니라 가나안 점령 당시에도 암몬 사람들은 국가 신인 ‘밀곰' 또는 ‘말감'으로 알려건 우상에게 인신 제사를 드렸다. 몰렉이라고도 불리워지는 이 우상은 베니게, 즉 페니키아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신으로 볼과 번개, 그리고 전쟁을 주관하는 신으로 주로 묘사된다. 몰렉의 숭배자들은 전쟁이나 재난이 이 신의 노여움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으로 믿었다. 그리고 그 파괴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자신의 자녀들을 불에 태워 제물로 바치는 행위까지 서슴지 않았다. 본서 3:27을 보면 모압 왕이 북이스라엘과의 전쟁시 자신의 맏아들을 성 위에서 번제로 바친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몰렉 숭배 제의의 대표적인 실례라 할 수 있다.

아하스가 이러한 가증한 행위를 저지른 시점은:

아마도 5절, 아람 왕 르신과 북이스라엘 왕 베가가 침공한 시점으로 추정된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당시 아람과 북이스라엘 연합군의 침공으로 인해 심각한 위기감을 느낀 아하스가(사 7:2b) 이런 위기를 해결하고자 자기 자녀를 몰렉에게 제물로 바쳤던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면 본문에서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가 뜻하는 바는 무엇인가?

먼저 이 행위는 제사를 드리기에 앞서 제물이 될 자식을 불로 정화하기 위한 의식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그 후에 제단에서 살륙이 행해졌을 것이다. 이렇게 진행되는 몰렉 제사는 이교 종교 제의 가운데서도 가장 사악한 종교 제의였다. 아하스 왕 때에 남유다 내에서 이런 몰렉 제사가 수 행되었다는 사실은 당시 유다의 종교적 타락이 극에 달하였옴을 반영해 준다. 그리고 결국 이러한 타락으로 인해 남유다 역시 북이스라엘처럼 패망의 길을 걷게 된다.

5.그가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다" 는 사실이다(4절).

만일 그의 아버지가 산당을 제거할 만한 열정을 가졌더라면, 그 자식들의 타락은 방지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죄를 묵과하는 자들은, 자기들이 자기들의 뒤에 오는 자들에게 얼마나 위험한 덫을 놓는지를 알지 못한다. 그는 하나님의 집을 버렸다. 그의 아버지 시대에 여호와 앞에 종종 참예했으나 이제는 그 곳에 싫증이 났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보다 좋게 여기던 산당이나, 그가 보다 더 즐거운 그늘을 즐길 수 있었던 푸른 나무 아래서 제사를 드렸다. 그것은 무가치한 종교이며 신앙이 아니라 공상에 이끌리는 종교이다.

💡 우상숭배의 죄2

앞선 3절에서 저자는 아하스의 우상 숭배의 죄를 지적한 데 이어 본절에서도 계속하여 그의 우상 숭배의 죄를 지적함. 즉 그는 남유다의 고질적 병폐 가운데 하나인 산당 제사와 관련된 범죄도 저질렀던 것.

그런데 다른 남유다 왕의 경우는 단순히 산당을 제거하지 않은 과오에 대해서만 지적되었던 반면, 아하스는 그가 직접 산당과 작은 산 위와 푸른 나무 아래서 제사틀 드리며 분향하였다고 지적되고 있다. 즉 본절에서 열왕기 저자는 단순히 ‘산당' 만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산 위' 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 란 표현까지 사용하여 이 교 풍습에 따라 우상 숭배에 몰입하는 그의 죄를 부각, ⇒ 아하스 자신이 주도하여 제사를 드렸음이 확실히 드러남(원어 어법상).
이런 표현은 신12:2, 왕상4:23, 렘2:20에서도 발견됨. 고대 근동의 우상 숭배자들은 조금이나마 그둘이 섬기는 신에게 가까이 다가가 있다는 느낌을 전달받기 위해, 그러고 의식의 신비감과 엄숙함을 위해 이러한 장소에서 제사를 드렸다. 아하스는 이처럼 산당 및 여러 장소에서 우상에게 제사드리는 행위를 허용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왕들과 달리 더욱 적극적으로 그 행위를 장려하였다. 심지어 그는 이를 위하여 통치 말기에 이르러 예루살렘 성전을 폐쇄하는 악행까지 자행하였다(대하 28:24) 이는 백성들의 주도 하에 산당 제사가 드려졌던 선왕들의 경우와 비교하면 더욱 심각한 죄악이 아닐 수 없다.

산당 (’높은 곳(HIgh place)’이란 뜻)

구약 성경에서는 보통 언덕어나 산에 위처해 었는 가나안 사람 및 이스라엘 사람들의 예배 처소를 가리킴..

이방의 산당
이렇게 예배 처소를 높은 곳에 세운 데에는 다분히 심리적인 요소가 작용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즉 지리적으로 높은 곳은 예배자로 하여금 자기가 관계하고 있는 속세로부터 떨어져 있다는 느낌과 함께 예배의 대상이 거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하늘에 보다 가까이 접하여 었다는 느낌을 가지게 하였던 것. 산이 없었던 메소포타미아 평지에서는 층층대식의 높다란 신전언 ‘지구라트(Ziggurat)’를 세워 제사하는 장소로 사용하였는데 이는 이러한 인간의 보편적 심리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산당은 ‘제단’ 의 역할을 하였는데 가나안에서의 산당은 다듬지 않은 돌로 만든 단순한 형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서 희생 동물을 잠았으며 또한 번제를 드러기도 했다. 가나안의 산당에는 보통 아세라와 바알과 같은 우상들이 나무 기등으로 만들어져 었거나 신상들어 안치되어 있었다.

하나님은 가나안 정복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사람들의 우상들과 그 산당들을 다 훼파하여 멸절시키라고 명령하셨었다(민 33:52).
신 12:2-14을 보면 “너희가 쫓아낼 민족들이 그 신들을 섬기는 곳은 높은 산이든지 작은 산이든지 푸른 나무 아래든지 무론하고 그 모든 곳을 너희가 마땅히 파멸하며, 오직 너희의 한 지파 중에 여호와의 택하실 그곳에서 너는 번제를 드리고 또 내가 네게 명하는 모든 것을 거기서 행할지니라"란 하나님의 준엄한 명령이 나온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에 앞서 가나안 민족들의 우상 숭배 장소인 산당을 훼파하고 오직 하나님이 정하신 한 처소에서만 제사드릴 것을 엄격히 강조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명령이 지켜지지 않을 때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것을 경고하셨으며 그 산당 자체도 심판의 대상이 될 것임을 분명히 하셨다.

겔 6:6의 “내가 너희 거하는 모든 성읍으로 사막이 되며 산당으로 황무하게 되리니"와
호 10:8의 “이스라엘의 죄된 아웬의 산당은 파괴되어 가시와 찔레가 그 단 위에 날 것이니•••", 그리고
암 7:9의 “이삭의 산당들이 황폐되어 이스라엘의 성소들이 훼파될 것어라 내가 일어나 여로보암의 집을 치리라”는 말씀에 드러난 바와 같이 산당은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 가운데 자주 언급되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산당에서 어떤 일이 행해졌기에 이처럼 산당이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가?

앞서 밝힌 바대로 산당에서는 우상에 대한 제사가 이루어졌다(레 26:30-33; 민 33:52; 신 12:2-14; 왕상 14:22; 대하20:33). 심지어는 이곳에서 자식을 우상에게 제물로 드리는 인신 제사가 행해지기도 하였다. 렘 7:31의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도벳 사당을 건측하고 그 자녀를 불에 살랐나니 내가 명하지 아니하였고”와, “••또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산당을 건측하고 자기 아들들을 바알에게 번제로 불살라 드렸나니•••" 라는 보도는 당시 산당에서 이방인의 우상 숭배 관습이 그대로 행해졌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겔 16:16에 의하면 산당에서 행음까지 행해겼다. 

●아하스의 통치(2)(열왕기 하 16:5-9) — 아람과 북이스라엘 연합군의 남유다 침입

💡 당시 국제 정세

아람과 북이스라엘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급속히 성장하는 앗수르에 대항하는 반앗수르 동맹을 맺고 있었으며 남유다의 아하스는 친앗수르 정책을 펼치고 있었다.

— 따라서 남유다는 북이스라엘 및 아람과 긴장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으며 마침내는 아람과 북이스라엘 연함군의 침입을 받게 되었다.

이에 남유다의 아하스는 국가 존망의 위기에서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원군을 요청하였고 아하스의 요청에 따라 앗수르의 군대가 출병하여 결국 아람과 북이스라엘 연합군이 패하게 된다.

1. 여기에서 아하스의 동맹국 아람과 이스라엘 왕들이 아하스를 공략한 사실을 볼 수 있다.

💡 아람왕 르신과 북이스라엘 왕 베가는 예루살렘을 포위 공격함. → 두 나라의 상호 군사 동맹(사7:1-8:8)

이사야서의 보도
사 7:1, 선지자 이사야가 남유다의 아하스에게 하나님의 도움을 약속하며 연합군의 침입이 실패할 것을 예언한 장면 등장한다. 이사야 본문에 의하면 아람과 북이스라엘 왕이 유다를 침입한 이유는 : 유다를 점령하고 아하스를 폐위하는 대신 군대 장관 다브엘의 아들을 왕위에 앉히기 위함이었다.

그러면 왜 아람과 북이스라엘 왕은 남유다를 쳐들어와 아하스를 폐위하려 하였을까?
아람•북이스라엘 연합군이 아하스를 폐위하고 다브엘의 아들을 왕위에 세우려고 한 것은 아하스의 친앗수르 정책 때문이었다. 즉 당시 아람과 북이스라엘은 반앗수르 정책을 내세우고 서로 연합하였음에 반해 아하스는 반대로 친앗수르 성향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남유다는 북이스라엘의 오므리 왕조가 통치한 이래로 약 1세기 반에 이르는 시기 동안 이스라엘의 속국과 같은 위치에 처해 있었는데, 본문에 기록된 아하스 시대에 이르러서는 북이스라엘의 정책에 반기를 들고 친앗수르 정책을 취하며 독자 노선을 걷기 시작하였던 것이다(사 7-12장). 이에 아람과 북이스라엘은 서로 동맹을 맺고 남유다를 침공하기에 이른 것.

대하 28:5-15
보다 상세한 정보를 제공. 본서 저자는 연합군이 예루살렘을 함락시키지 못한 사실까지만을 기록하였으나 역대기 기자에 의하면 아람과 북이스라엘 왕은 아하스에게 큰 패배를 입혔고 많은 사람들과 노략물들을 취해 갔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이때 북이스라엘은 선지자 오벳의 지시에 따라 남유다의 포로에게 음식과 옷을 제공한 후 그들의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혹자는 아람과 북이스라엘 연합군이 남유다를 여러 번 침공한 것으로 보고 대하 28:5-15의 전쟁과 본문에 기록된 전쟁은 다른 전쟁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나 정황상 같은 전쟁으로 보인다. 다만 역대기 기자는 열왕기 기자가 생략한 내용을 더 상세하게 기록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 5절, … 아하스를 에워쌋으나 이기지 못하니라

본문은 동맹군이 아하스와 싸워서 이길 수 없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동맹군이 아하스를 포위했지만 아하스가 싸움에 응하지 않으므로 싸워보지도 못했다는 의미를 전달. 즉 아람•북이스라엘 동맹군은 아하스를 싸움터로 끌어내지 못한 것이다.

한편 본서 저자가 마치 동맹군이 아하스 한 사람만을 공격하기 위해서 대치하고 있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는 것은 앞으로의 사 건이 아하스를 중심으로 전개될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풀이된다.그들은 자기들이 예루살렘의 주인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그곳에다 자기들의 궁정을 두려고 했다(사 7:6). 이 기도는 실패했다. 그러나 아람의 왕은 엘랏을 회복하였는데, 엘랏은 홍해에 위치한 중요한 항구이며 아마샤 왕이 아람에서 빼앗은 도시이다(14:22).
 💡 아람 왕 르신이 엘탓을 회복하였다는 본문의 보도는 북이스라엘과 아람이 남유다를 침공하기 위해 서로 다른 길을 이용했음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아람 군대가 요단강 동편의 길을 따라 진군하여 그곳의 유다 사람들을 치고서 엘랏으로 들어가 그곳을 점령한 후 다시 회군하여 예루살렘으로 향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이때 북이스라엘은 사마리아에서 유다로 직접 침입하였을 것이다. 당시 아람이 이와 같은 행로를 정한 것은 예루살렘을 침공하기 전에 요단 동편에 있는 유다의 영향력을 제거함은 물론 유다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던 엘랏이라는 배후를 무력화시키거 위해서라고 풀이된다.

한편 본절은 유다가 엘랏에 대한 영향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본서 기록 당시까지 엘랏이 계속 아람에 속해 있었음을 보도한다. 이는 이 전쟁 후에도 유다가 계속 대외적 영향력을 크게 신장시키지 못하였음을 보여준다.

자기들의 신앙을 상실한 자들이 무엇인들 보존할 수 있을까? 신앙을 잃은 자들은 자기들의 길이 계속 손해보는 데로 달려갈 것을 각오해야 한다.

2. 아하스는 그들과의 대결을 회피하려고 했다.

그가 하나님을 떠나자, 적들을 대항할 용기도 힘도 그에게는 없었고, 그는 담대하게 하나님의 도움을 구할 수도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앗수르 왕의 비위를 맞추어서, 자기를 구원하러 오게 하였다.

💡 7, 8절은 위기에 처한 남유다가 당시 최강국이었던 앗수르 왕에게 원군을 요청하며 많은 예물을 보내었음을 기술함.

아하스가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하여 사자를 보내어 원군을 요청한 본단락의 사건은 북이스라엘의 제16대 왕 므나헴 시대에 일어났던 15:19의 사건보다 뒤에 발생한 사건으로 본사건을 통해 아람은 멸망을 맞이하게 된다.

앗수르 왕 디글탓 빌레셀은 전략적 요충지이자 교통의 요지였던 팔레스틴 지역을 차지하기 위헤 항상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따라서 본문에 나타난 유다 왕 아하스의 구원 요청은 디글랏 빌레셀에게는 더없이 좋온 전쟁의 명분이었으며 그는 이 명분을 구실로 삼아 쉽게 아람의 다메섹을 공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본서 저자는 이러한 객관적 이유를 모두 생략하고, 앗수르 왕이 남유다 왕인 아하스의 아첨과 예물 진상으로 남유다를 돕게 된 것만을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다(7-9절).

이는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고 인간적 지략을 이용해서 이방 왕의 군사력을 더 의지한 아하스의 불신앙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그가 앗수르에 도움을 청하러 보낸 것은 이스라엘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기 때문인가? 그가 이렇게 부러진 갈대에 의지해야 했다는 것은 영원한 반석이 사라진 때문인가? 죄 자체가 벌이 된다. 왜냐하면[앗수르 왕이 아하스의 말을 듣고, 그의 요구대로 다메섹으로 내려와서, 아람 왕에게 강력한 견제공격(牽制攻擊)을 가하여(9절) 아람 왕으로 하여금 아하스에 대한 공격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그리고 아모스가(암 1:5) 분명히 예언했던 것처럼 아람 거민들을 길로 사로잡아 갔다는 점에서] 아하스가 자기의 목적을 달성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것을 고려해 볼 때, 그는 손해보는 흥정을 한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는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1) 자기 자신이 노예가 되었다(7절). 즉 "나는 왕의 신복(臣僕)이요 왕의 아들이다." 다시 말하면 "당신이 나에게 친절히 하면, 내가 상전이나 아버지에게 대하듯 당신에게 충성하고 순복하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그가 하나님께 자기를 굴복시키고 하나님의 은총을 간구하였더라면, 그는 보다 용이한 조건으로 받았을 것이다. 즉 돈은 필요 없었을 것이고 단지 자신이 죄에서 떠나기만 하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탕자가 아버지의 집을 버리면, 곧 보다 악한 주인의 종이 되는 법이다(눅 15:15)

 💡 ‘나는 왕의 신복이요’ ⇒ 주종관계를 수용함을 공포함.

외형적으로 볼 때 이는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하여 내린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볼 수도 있고 시의적절한 대응책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사 7:4을 보면 이미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아하스에게 이둘 연합군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을 전해 주셨다.
선지자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아하스가 앗수르 왕을 의지하고 그에게 사신을 보낸 일과 단순한 원군 요청에 머물지 않고 비굴하게 앗수르 왕의 증이 될 것을 선언하는 아하스의 언사는 ⇒ 단순한 외교적 수사를 넘어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고 인간을 의지하는 아하스의 패역함과 불신앙적인 면모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왕의 아들이라'

아하스가 자신과 앗수르 왕의 친밀함을 강조하면서 혈육, 즉 아버지처럼 앗수르 왕을 의지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말이다.

한편 본문의 내용은 본래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가장 구체적으로 나타내주는 표현이다.
즉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길 뿐 아니라 언약을 통헤 하나님의 자녀된 신분을 가진 공동체이다. 따라서 본문은 남유다 왕과 백성들이 본래 그들이 가진 신분을 망각하고 하나님을 떠나 있옴을 역설적으로 지적헤 주는 표현이기도 하다.

‘청컨대 올라와서 나를… 구원하소서’

한글 개역 성경에서는 본문에 ‘청컨대'라는 말을 삽입함으로써 간곡한 요청의 의미를 담아 번역하였지만 원문을 보던 ‘청컨 대'에 해당하는 단어는 발견되지 않는다. 따라서 본문을 직역하면 ‘당신은 오십시오! 그리고 나를 대항해서 일어난 아람 왕의 손에서, 그리고 이스라엘 왕 손에서 구해 주십시오!'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이러한 요청은 하나님의 뜻을 명백하게 위반하는 것이었다.

사 7:3-17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유다 왕 아하스에게 선지자 이사야를 보내 앗수르 왕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의 폐해를 명백히 지적하셨기 때문이다. → 그 메시지는 바로 아하스 왕에게 있어서 진짜 적은 지금 상대하는 아람이나 북이스라엘이 아니라 강대국 앗수르임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본절에서 드러나듯이 아하스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선언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대신 당대의 강대국이었던 앗수르에게 의지함으로써 당시 남유다가 직면한 어려움을 모면하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결국 유다는 이 사건을 계기로 앗수르에 종속되었고 이사야를 통한 하나님의 메시지는 앗수르가 근동 지역 전체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몰아넣음으로써 사실로 확인되었다.

(2) 그는 가난하게 되었다. 그가 성전 곳간과 나라의 곳간에 쌓인 금은을 가져다가, 앗수르 왕에게 주었기 때문이다(8절).

교회와 국가는 모두 자기들의 새로운 후원자요 보호자인 앗수르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하여 재산을 털어야 했고 바닥이 나게 되었음에 틀림없다. 나는 도대체 그가 공공재산을 그런 식으로 처분할 무슨 권리라도 가졌는지 알지 못하겠다. 그러나 죄로 인하여 곤궁에 빠진 자들이 또 하나의 죄를 통해서 구원을 받으려고 한다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하나님과 멀어진 자들은 아무런 어려움 없이 자기의 권리를 쉽게 포기할 것이다.

💡 여호와의 전에 었는 은금은 사실상 하나님께 바쳐졌던 헌물과 백성들어 낸 세금들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여호와 전의 은금은 오직 하나님의 일들을 위해서만 사용되어야 하였다. 그러나 아하스는 군사 지원을 얻어내기 위해 그것들을 앗수르 왕에게 에물로 바쳤다.

(한글 개역 성경 번역) 예물 → ‘뇌물, 선물’로 번역함이 올바름

고대 근동의 이방 나라들에는 뇌물 수수에 대한 금지 법률이 마련되지 않았던 데 비해, 이스라엘에서는 율법에 의헤 뇌물 수수가 금지되고 있었다(출 23:8; 신 16:9). 그리고 구약 성경에는 뇌물 수수와 관련된 구체적인 사례가 3회 언급되어 나온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사례는 삼상 8:3의 엘리의 아들들의 범죄에서 등장하며, 두번째와 세번째는 본서 15:19과 본절에 등장. 뒤의 두 경우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왕이 각각 앗수르 왕에게 바친 것, 하나님이 아닌 군사 강대국에 의지하려는 인본주의적이고 불신앙적인 남복 왕들의 모습을 잘 반영해 보여준다.
아하스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앗수르 왕에게 뇌물을 바쳐 그의 군사적 도움을 받으려 한 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행위이자 불신앙적 행위로 하나님의 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앞선 15:19의 므나헴의 경우보다 본절의 아하스가 더욱 악한 것은 ⇒ 그가 하나님께 바쳐진 여호와 전의 은금까지 취하여 앗수르 왕에게 뇌물로 바쳤다는 점이다.
💡 9절, 앗수르 왕이 그 청을 듣고 곧 올라와서..

본절은 7,8절에 나오는 앗수르 왕을 향한 아하스의 간곡한 원군 요청과 예물 진상의 결과로서 앗수르 왕이 군사를 일으켜 유다를 도와 아람의 수도 다메섹을 점령하였옴은 물론 아람 왕 르신까지 처형하였음을 보도. 이처럼 본절에서는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유다의 구원 요청을 받아들여 아람의 수도 다메섹을 친 것처럼 묘사되어 있 다. 하지만 앗수르는 단순히 유다를 돕기 위해 다메섹을 점령한 것이 아니다. ⇒ 실제적으로는 팔레스틴 진출이라는 실리를 획득하고자 종주권 계약에 의한 유다 지원이라는 명분하에 아람을 점령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후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은 아람만이 아니라 유다까지 포위하고 공격하였다(대하 28:20). 이러한 사실에서 잘 드러나듯어 앗수르 왕이 아하스의 요구에 응한 것은 유다를 돕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실제로는 아람과 괄레스턴 지역을 정복하기 위해서 군사 원정을 행한 것. 그런 면에서 유다 왕 아하스는 잠시 앗수르의 도움으로 아람과 북이스라엘 연합군의 침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지만 이러한 그의 판단은 실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이 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오판으로 인해 이후 그는 자신이 감당조차 할 수 없으며 아람이나 북이스라엘과는 비견할 수 없는 앗수르의 포위와 압제하에 놓이게 되었던 것어다. 한마디로 그가 내세운 술책은 여우를 내쫓기 위해 범을 불러들인 형국이나 마찬가지였다.

앗수르 왕은 아람의 수도 다메섹을 먼저 침공하고 .. 르신을 죽임

아람이 팔레스틴 지역에서는 가장 강국이었고, 지리적으로도 앗수르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었기 때문. 또 경제적으로도 부유했고 군사적으로 요충지였기 때문. “쳐서 취하여” — ‘타파스’(손으로 다루다, 압도하다, 장악하다) 본문에서 ‘타파스'가 사용된 것으로 볼 때 앗수르 군대가 다메섹을 완전히 정복했옴을 알 수 있다. 결국 아람은 앗수르 군대의 첨공으로 인해 주권을 상실하고 말았다(B.C. 732년). 한편 아모스 선지자는 아람의 멸망을 에언하며 그들의 회개를 촉구한 바 었다(암 1:3-5).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열국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에 의해 경고를 받은 그들은 마땅히 회개하며 자신들의 잘못을 돌이켜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같은 선지자의 외침에도 끝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멸망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본문에는 앗수르 왕의 아람 침공 사실만 언급되어 있지만 실제로 앗수르 군대는 이후 북이스라엘까지 침공하여 많은 지역을 점령하고 포로들을 잡아갔다.

●아하스의 통치(3)(열왕기 하 16:10-16) — 보다 본격적인 아하스의 배교 행위

💡 아하스는 앗수르의 다메섹 공격에 대해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 다데섹으로 디글랏 빌레셀을 찾아갔다. 그리고 여기서 본 우상 숭배의 제반 종교 제의와 기구들을 북이스라엘에 가 모방하였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남유다가 하나님에 대한 예배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러한 우상 제의를 도입한 것은 명백하게 종교 혼합주의의 범죄이다.

즉 이는 자신이 섬겨왔던 여호와 신앙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으면서도 이를 다른 이방신에 대한 신앙과 절충하여 자신의 종교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인간의 완악함과 죄악된 본성이 빚어낸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아하스가 스스로 산당에서, 언덕에서,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4절) 희생 제사를 드렸다 할지라도, 여전히 하나님의 제단도 그 때까지 계속 사용되고 있었다. 그리고 "왕의 번제와 소제" (15절)는 하나님의 제단에 시중드는 제사장에 의하여 하나님의 제단 위에 드려졌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제단은 아하스에 의해서 제거되고 그대신 다른 제단 즉 우상의 제단이 들어서게 되었다. 그리하여 열왕들 중에서도 지금까지의 가장 대담한 공격이 종교에 가하여졌다. 이제 그것을 살펴보자.

Ⅰ. 왕이 직접 다메섹에 있는 한 제단에서 새로운 제단의 모형을 가져왔다(10절).

아하스는 앗수르 왕이 다메섹을 탈취하자 그의 성공을 축하하기 위하여 거기까지 갔다. 그가 원정으로서 자기에게 베푼 친절에 대하여 감사를 드리기 위하여 갔으며, 그의 신복이요, 아들로서, 명령을 받으러 갔다. 만일 아하스가 하나님을 신뢰했더라면 외세(外勢)에 그렇게 비참하게 굴종하지는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 새로운 내용의 단락은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아람의 수도 다메섹을 함락하였다는 소식을 접한 아하스 왕이 그를 접견하러 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물론 이는 아람의 수도 다메섹을 공격함으로써 남유다를 위기에서 구하여 준 디글탓 빌레셀에 대하여 감사를 표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그 이면에는 다른 목적도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 이미 다메섹의 함락과 함께 아람 제국의 멸망의 소식을 들은 아하스는 그대로 있을 수 없었던 것.

먼저 그는 앗수르의 군사 원정 계획 가운데 유다가 속해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졌을 것이고 지난번 서신을 통해 맹세한 주종 관계를 보다 확실히 하여 앗수르의 공격 대상에서 벗어나고자 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앗수르 왕이 있는 다메섹을 향해 급히 길을 떠난 것이다.

다메섹에서 진귀한 물건들을 보는 동안, 혹은 그들의 제사에 참여하는 동안(그가 거기 있을 때는, 그들이 하는 대로 하는 것이 결코 해되지 않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 곳의 제단을 보았는데, 그것이 그에게는 너무나도 좋아 보였다. 그것은 그가 지금까지 예루살렘에서 참예했던 그런 평범하고 낡은 모양의 것이 아니고 교묘하게 각인(刻印)된 것이었다. 아마 거기에는 우상의 모양을 딴 공예품으로 장식되어 있었을 것이다.

또한 그 제단 주위에는 많은 예쁜 것들이 있었는데, 그것들이 그에게는 의미가 있고, 놀랍고, 매우 매력적이고, 신앙심을 북돋을 수 있게끔 계획된 것으로 보였다. 그의 생각에는, 이 제단을 만든 독창적인 예술가와 비교될 때, 솔로몬은 우둔한 생각을 가진 자에 불과했다. 그래서 그는 이와 꼭같은 제단을 하나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즉시 그 모형을 본떴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돌아갈 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서, 그 모형을 먼저 급히 보내면서 제사장 우리야에게 이 모형에 의해서 정확하게 제단을 만들어, 자기가 돌아올 때 쯤에는 준비해 두라는 명령을 했다. 하나님이 산에서 모세에게 혹은 성령으로 다윗에게 보여주었던 모형은 다메섹에 있던 모형과는 비교될 수 없었다. 우상 숭배자들의 마음은 자기들의 안목을 쫓아 걷게 되는데, 그들의 안목은 결국 "저들의 우상을 섬긴다" 라고 했다. 그러나 참된 예배자들은 신앙으로 참 하나님을 예배한다.

💡 본문을 보면 아하스가 디글 fkt 빌레셀을 만나러 출발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이어지는 문장에 언급된 바 그가 다메색에서 본 것은 ‘단’ 뿐이었다.

본문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실제로 아하스는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을 만나서 주종 관계의 맹세를 거듭하며 유다에 대한 안위를 보장 받으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본서 저자는 그에 대한 언급은 생략하고 ‘아하스가 단을 보았다'는 사실만을 보도하고 있다.

⇒ 이는 본서가 정치적이나 경제적으로 중요한 사실보다는 하나님의 선민이 여호와 보시기에 함당하게 행동하고 있는지의 여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아하스가 다메섹에서 목격한 ‘제단’이 이후 유다의 종교적 타락에 큰 영향을 더처기 때문에(대하 28:22,23), 저자는 아하스가 앗수르 제단을 목격한 사실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 것이다.

‘단’

여기서 ‘단’ 은 앗수르언듈어 섬기던 신의 제단을 가리킨다. 앗수르 왕은 원정을 갈 때에도 제단을 운반해 가지고 다녔으므로 당시 디글랏 빌레셀이 머물렀던 다메섹의 진영 안에는 앗수르의 우상에게 제사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제단이 있었을 것이다. 고대 근동에 있어서 국가간의 전쟁은 곧 각 나라가 섬기던 신둘간의 전쟁으로 간주되었음. 전쟁의 결과 승리한 나라의 신은 패전한 국가의 신보다 더 우월한 신으로 여겨졌다. 그러므로 아하스가 전쟁에서 패한 다메섹의 신전의 제단에 매력을 느꼈다고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아하스는 당대에 적수가 없을 정도로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던 앗수르의 제단이 놓여 있는 것을 보았을 때 큰 관심을 나타냈을 것이다.

그러면 아하스는 왜 앗수르의 제단을 본떠서 남유다에도 설치하려고 하였을까?
그것은 앞선 문장에서 밝혔듯이 그것이 강대국의 신전에 놓여 있던 제단이란 사실에 큰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여호와에게서 멀리 떠나 있었던 불신앙의 인물 아하스에게 강대국 앗수르의 제단은 남유다의 예루살렘에 있는 제단보다도 휠씬 우월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하스는 앗수르와의 동질성을 과시함과 동시에 전적인 복종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 제단의 모양을 모방해 만들려고 했을 것이다.

우리야(제사장)의 잘못
이름의 뜻: ‘여호와는 빛이시다’
그는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때에 제사장의 자리에 있었다. 성경에서는 단순히 제사장으로만 묘사되어 있으나 왕의 지시를 직접 받는 위치에 있었다는 점에서 대제사장이었음을 알 수 있다.
본래 역할 : 그는 마땅히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과 백성 사이를 중보하며 백성들의 신앙을 지도할 뿐 아니라 왕이라 해도 잘못된 일을 범할 경우에는 단호하게 여호와의 이름으로 단죄하고 회개하도록 이끌어 가는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잘못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도리어 더욱 적극적으로 아하스의 죄악에 동조하며 악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16절, 이러한 본문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타인을 말씀으로 지도하는 영적 지도자라도 매일의 삶 가운데 말씀에 의한 갱신의 노력이 없다면 큰 죄악에 빠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Ⅱ. 제사장 우리야가 제단을 만들었다(11절).

이 우리야는 아마도 대제사장이었을 것이며, 이 때에 성전의 일에 집무하고 있었을 것이다(아하스가 우리야에게 내린 명령의 내용을 분명히 알 수는 없기 때문에). 아하스는 우리야에게 자기가 고안한 모조품을 보내어 그 모형대로 제단을 만들려고 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어떤 논박이나 반대도 하지 않고 우리야는 곧 그것을 손에 넣었다. 아마 우리야도 왕처럼 그 모형을 좋아했을 것이며, 최소한 왕의 비위를 맞추어 그의 총애를 얻고자 몹시 애썼을 것이다. 아마 여기에서 그가 왕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한 일에는 이러한 구실을 붙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즉 이런 방법을 쓰면, 왕은 예루살렘 성전에 머물게 할 수 있으므로 산당들과 숲을 위하여서 성전을 완전히 황폐케 하는 것만은 막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우리야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렇게 하여 그에게 호의를 베풀자. 그러면 그는 그의 모든 희생제물은 우리에게로 가져올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전략 덕분에 생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어떠한 구실은 붙이든지, 이런 이유로 제사장이며 대제사장인 그가 우상 숭배하는 군주의 명령에 따라 우상의 제단을 만든 것은 지극히 비속하고 악한 일이었다.

💡 본문의 우리야와 비견되는 인물로서 요아스 왕 때의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와 웃시야 왕 때의 제사장 아사랴를 들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왕이 신앙적 범죄를 자행하자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왕의 범죄를 꾸짖으며 이를 제지하려 하였다(대하 24:20; 26:17). 우리야가 이들과 같이 단호하게 행동하지 못한 것은 ⇒ 하나님보다 세속 권력자언 왕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1.그는 인간들의 정욕의 종이 됨으로써 자기의 권위를 악용하였고, 자기의 제사장직의 명예를 더럽혔다. 이와 같이 악한 요구에 추종하는 것은 가장 큰 불명예가 된다.

2.그는 신뢰를 저버렸다. 제사장으로서 그는 하나님의 제도들을 유지하고 수호하며, 일체의 새로운 고안을 반대하고 거부할 의무가 있다. 그가 하나님의 명령이 지정해 놓은 제단과 대립되는 제단을 세우는 일로 왕을 도와 주었다는 사실은, 그를 모든 후손들에게 악명 높은 자로 몰아세워도 좋을 만큼 배신적이요 불신앙적 행위였다. 그가 그런 일을 묵과하기만 했더라면-또는 협박에 못 이겨 그렇게 했더라면-그가 왕을 설득시켜서 그 일을 못하도록 노력했다든가 혹은 왕이 돌아올 때까지 그렇게 할 것을 연기하였더라면(왕이 돌아오면 제일 먼저 그와 이야기 했을 것이다), 그것이 그렇게까지 나쁜 일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마치 그가 왕을 만족시킬 기회를 기뻐 찾았다는 듯 그렇게 즐겨 그의 명령을 좇는 것은, 그가 섬겼던 하나님께 대하여는 전혀 변명될 수 없는 모욕이었다.

Ⅲ. 그 제단이 봉헌되었다.

우리야는 왕이 그 제단에 관심이 많은 것을 알고서, 그가 돌아 오기 전에 완성해 두려고 애썼다. 그리고 그 제단은 성전의 놋제단 가까이에 두었으나, 성전의 문에서는 다소 멀리 그리고 다소 더 낮은 곳에 두었다. 왕은 그것을 보고 심히 기뻐했다. 최대의 경의를 표하며 다가가서, 그 위에다 자기의 번제를 드렸다(12, 13절 이하). 그의 희생 제물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아니라 다메섹의 신에게 드려졌다(대하 28:23 참조). 아람의 제단을 빌어 올 때, 그들의 신도 빌어왔다는 것은 이상할 게 없다. 아람 사람 나아만은 제단을 만들기 위하여 이스라엘 땅에서 흙을 취할 때,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 본문은 아하스 왕은 귀환한 후 다른 많은 일들을 했을텐데 본문에서는 유독 ‘제단'과 관련하여 왕이 한 일만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이는 새로 만들어진 ‘제단'을 중심으로 기존의 성전 예배 의식을 무너뜨리고 있는 너무나 안타까운 현실을 보여줌.

아하스는 제사장의 고유 업무까지 침해하여 제사를 드리기 위해 제단 위로 올라갔다. 13절, 자기 자신을 위하여 직접 번제와 소제를 드렸다. 아하스는 이방 우상 숭배에 사용되는 제단의 식양으로 제단을 다시 만들어 기존에 있던 성전의 제단과 교체함으로써

유일무이하신 하나님을 여타의 신 가운데 하나처럼 비하시키는 잘못을 범하였을 뿐 아니라 제사장의 제사 직분까지 침해하는 과오를 범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아하스가 각양의 제사를 드린 이유는 그가 다메섹에서 평안히 귀환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Keil & Delitzsch). 아마 그는 앗수르 왕으로부터 자기와 유다의 보호를 약속 받고 돌아왔을 것이다. 하나님의 보호를 포기하고 이방의 힘을 빌어 위기를 겨우 모면하고 이제 그로부터 구걸하다시피 해서 안전을 보장받은 아하스가 자기를 위해 드린 이같은 제사의 모습은 신앙적인 면에서 전혀 긍정적인 평가를 얻을 수 없고 도리어 아하스의 불신앙과 완악함을 더욱 분명히 부각시키는 개탄의 의미를 강하게 전달해 주는 것이다. 

Ⅳ. 그 제단을 둘 자리를 만들기 위하여 하나님의 제단을 제거했다.

우리야는 대단히 조심성이 있어서, 그 제단을 성전 뜰의 비교적 낮은 구석에다 두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제단은 제자리에 두었다. 곧 "새 단과 여호와이 전 사이" 에 두었다(14절).

그러나 그것은 아하스 왕을 만족하게 해 주지 못했다. 그는 하나님의 제단을 성전 뜰 북쪽의 어두컴컴한 구석으로 몰아내고 자기의 제단을 그 자리 곧 지성소 앞에다 두었다. 그는 자기의 새 단이 훨씬 더 장엄하고 훨씬 더 보기에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제단은 업신여기며 모독했다. 그러므로 "기분 좋은 것이라곤 아무 것도 들어 있지 않는 그릇 같은 하나님의 제단을 치워버리라" 고 한 것이다.

💡 아하스의 명령에 의해 만들어진 새 단은 성소의 정면 중앙에 위치시키고 옛 솔로몬이 만든 늦단은 구석진 곳으로 치워버린 이러한 조치는 하나님께서 제사와 제사에 필요한 모든 기물들의 식양 그리고 그것의 위치까지도 지정해 주신 사실을 무시한 불신앙적 행위였다.

아하스의 이 행위는 강대국에서 빌어온 형식이 여호와 종교의 본래의 전통보다 더 우월하다는 인간적인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풀이된다.

그의 미신적인 창안품이 처음에는 하나님의 거룩한 제도와 다투더니 결국에는 아주 밀어내어 버렸다. 하나님을 자기의 전부로 삼지 않으려는 자는 조만간 하나님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게 마련임을 명심하자.

아하스는(백성들을 두려워하므로) 감히 놋제단을 산산이 부수어버리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모든 희생 제물은 이 새 제단에 드리라고 명령하는 반면에(15절), "놋 제단은 나의 물을 일에 쓰게 하라" 고 말한다. 제단을 본래의 목적대로 사용-이것은 그 위에 바쳐진 제물들을 거룩하게 한다-하지 않으면서, 그는 자기가 그 제도를 더욱 발전시킨 것처럼 착각한다. 그런 일은 미신을 숭배하는 자들에게 흔히 있는 일이다. 제단을 결코 신탁을 위하여 고안된 것이 아닌 데도, 아하스는 여전히 그런 목적으로 사용하고자 한다. 카톨릭 교회는 외견상 그리스도의 만찬을 찬미하지만, 실상은 엄청나게 타락시킨다.

그러나 혹자는 아하스의 의도에는 또다른 의미가 있다고 본다. 즉 "놋단에 관해서는, 내가 그것을 어떻게 처치할까를 생각해 보고 나서 명령을 주겠다" 는 뜻으로 본다. 이후에 그는 "아하스의 일영표" (20:11)라고 하는 그 유명한 일영표를 그 제단의 놋으로 만들었다고 유대인들은 말한다. 불건전한 정신의 소유자인 왕의 외람된 찬탈에 천하게 맹종하는 겁많은 제사장이 다시 한번 언급된다(16절).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 왕의 모든 명(命) 대로 행하였더라." 요직에 있는 자들의 죄에 대하여 꾸짖어야 할 자들이 오히려 그들의 죄를 조장하고 도와 준다면, 그것은 요직에 있는 자들에게도 불행이다.

 💡 15절은 앞서 성전의 놋단을 구석으로 옮긴 아하스의 범죄가 단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앗수르의 제단을 모방해 만든 제단 위에서만 제사를 드리도록 함으로써 더욱 큰 죄로 나아간 사실을 보도함.

⇒ 아하스는 본절 하반절에서 제한하는 단 하나의 제사, 즉 왕이 자기를 위해 그 무엇을 물을 때 드러는 제사를 제외하고 이와 같은 모든 제사를 ‘이 큰 단 위에' 드러도록 지시하고 제도화한 것이다.

아하스는 ‘새 단’을 ‘큰 단’으로 명칭했는데, 이는 새로 만든 단이 솔로몬의 단에 비해 규모가 컸기 때문에 불려전 것이었다. 이는 곧 솔로몬에 의해 마련된 놋단이 이방 제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았음을 드러낸다. 아하스는 강대국의 이방 신전의 제단에 대한 동경으로 이를 본떠 솔로몬 성전의 기존 제단보다 크고 화려한 ‘큰 단'을 마련하였던 것이다.

이 부분에서 아하스의 범죄는 무엇인가?

아하스가 제사장 우러야에게 명한 각종 제사는 그 자체로는 율법적으로 어긋남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아하스가 제정한 제사 규례는 하나님께서 스스로 당신의 임재의 처소로 약속하신 성전을 거부하고 자기가 본 대로 만들도록 지시한 이방신의 단 위에서 제사 행위를 거행할 것을 제도화한 것으로 심각한 범죄 행위가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떠나서 자기 스스로 종교의 규례를 제정하고 이를 백성들에게까지 지키도록 명하는 이같은 아 하스의 악행은 북이스라엘을 멸망으로 몰아갔던 여로보암의 범죄에 비견될 만큼 심각한 죄악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아하스의 악행은 여로보암과 마찬가지로 하나님 말씀을 거부하고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고 앞세우는 인본주의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아하스는 전통적인 성전 기물을 대체하여 여호와께 그룻 제사 하는 잘못을 범하였을 뿐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유일성을 부정하고 노골적으로 이방 우상까지 숭배하는 그릇된 혼합주의적 신관을 가졌음. 

●아하스 왕의 최후(열왕기 하 16:17-20)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이 있다.

Ⅰ. 아하사는 성전을 남용했다. 즉 건물 자체가 아니라 성전의 비품 일부를 남용했다.

1.그는 놋대야가 놓였던 받침들을 파손시켰다(왕상 7:28, 29). 그리고 놋 바다를 내려 놓았다(17절).

이것들은 제사장들이 손을 씻기 위하여 사용하던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것들에 대하여 특별한 적의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여호와의 종인 제사장들을 정결케 하는 일을 방해하는 것이 종교에 대한 최대의 침해 중의 하나이다.

💡본절과 18절은 아하스 왕이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제단을 임의로 교체하였을 뿐만 아니라 다른 성전 기물도 임의로 개조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아하스가 물두멍을 훼손하고 재배치한 이러한 조치는 큰 제사를 드릴 수 잇도록 예루살렘 성전의 공간을 재배치한 것이었다.

‘물두멍'은 제사장들의 손발과 희생 제물을 씻는 데 사용되었다. 출 30:19~21을 보면 모든 제사장둘은 여호와의 제단에 나아가 그들의 공식 임무를 수행하기 전에 반드시 이곳에서 손발을 씻을 것을 명하고 있다.

그러면 아하스는 왜 ‘물두멍 받침의 옆판'을 떼어내었을까? 아하스 왕이 이 받침을 떼어낸 것은 물두멍을 보다 손쉽게 옮기기 위한 목적과 정교하게 조각된 옆판을 다른 곳의 장식으로 사용하려는 목적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2.그는 "안식일에 쓰기 위해 성전에 건축한 낭실" 을 제거했다.

이것은 안식일을 기념하기 위하여, 혹은 안식일날 제사장들의 편의를 위하여, 세워졌던 것이다. 안식일에는 제사장들이 평일보다 더 많은 제식(祭式)을 진행해야 되었기 때문이다.

💡 아하스 왕은 왕이 성전에 출입할 때 쓰는 출입구와 출입 전용 통로를 없앤 것.

본문에는 어떤 의도로 이런 조처가 행해졌는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 다만 앗수르 왕을 인하여 라는 표현만이 나올 뿐이다.

어떤 번역의 입장을 취하더라도 당시 아하스가 앗수르 왕의 호의를 얻기 위하여 앗수르 왕의 입장에서 이교적으로 보여질 수 있는 성전 제의 참석을 자제하였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즉 본절에 기록된 아하스의 조치는 앗수르 왕의 마음을 사로잠기 위한 의도에 따른 조치였던 것이다. 따라서 본문은 아하스가 앗수르 왕을 얼마나 의존하였으며 한편으로 얼마나 두려워하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을 제거한 것은 그가 안식일을 경멸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모든 불경건한 태도가 들어올 수 있는 넓은 입구를 개방해 놓은 셈이다.

3.왕이 드나드는 왕실은 왕가의 편의를 위한 것인데, 여호와의 전에 연결되어 있었다(아마 그것은 솔로몬이 만들었을 것이며, 시바 여왕도 칭송했던-것일 것이다. 왕상 10:5). 그러나 그는 이 입구를 다른 데로 돌렸는데, 이것은 그가 더 이상 여호와의 집에 드나들지 않겠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이것은 앗수르 왕을 위하여 한 행위이다. 아하스는 그를 고맙게 여겼고, 그는 답례로 아하스를 예방하고는, 이 입구가 그의 궁전의 치욕이 되고 불편하다고 흠잡았을 것이다. 여호와의 전에 이르는 통로를 이미 가지고 있던 자들이, 이웃 친구들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다른 길로 그 길을 돌린다면 그들은 급히 멸망으로 향하는 언덕을 내려가고 있는 셈이다.

Ⅱ. 아하스는 한창 나이 곧 36세 때에 그의 삶을 중단했다. 그리고 그의 왕국은 보다 훌륭한 사람, 곧 그의 아들 히스기야에게 남겨졌다.

히스기야는, 아하스가 성전에 대하여 원수였던 것만큼, 성전에 대한 친구가 되어 주었던 자이다. 아마 아하스는 바로 이 아들도 불 가운데를 지나게 하여 몰록에게 바쳤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은총으로 불길 가운데서 타다 남은 그루터기와 같이 그를 구해내셨던 것이다.

💡 본절과 병행 구절인 대하 28:27에 의하면 아하스는 비록 다윗성에 묻히기는 했으나 그 열조들이 묻힌 왕실의 묘에는 묻히지 못했음을 보도하고 있다. 이는 그가 열왕들의 묘에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악한 왕으로 평가되었기 때문이다.

28:27 아하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이스라엘 왕들의 묘실에 들이지 아니하고 예루살렘 성에 장사하였더라 그의 아들 히스기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히스기야'
남유다의 제13대 왕으로 대략 B.C. 715-687년까지 29년 간 통치하였다. 그는 부친 아하스와 달리 선한 정치를 함으로써 백성들의 신망을 얻었으며 획기적인 종교 개혁을 단행함으로써 여러 우상들과 산당들을 제거하였다. 또한 그는 중병이 들어 죽음의 위협에 처해 있었으나 하나님께 진실된 마음으로 간구하여 15년이나 생명이 연장되는 놀라운 축복을 받기도 하였다(2 0:1-11). 그러나 통치 후반기에는 바밸론 사자들에게 유다의 보물을 공개하여 자랑하는 실수를 저질렀으며 이로 인하여 바벨론의 침입의 계기틀 만둘기도 하였다(20:12-20).

본장의 전반부는: 아람 왕 르신과 북이스라엘 왕 베가 연함군의 남유다 침공과 이를 막기 위하여 아하스가 앗수르의 원군을 요청하는 일을 기록한다.

후반부는: 아하스가 앗수르의 제단을 모방하여 새 제단을 만들며 성전 기물을 임의로 개조하고 제사 규례를 임의로 바꾼 일을 기록하고 있다.

남유다 제12대 왕 아하스의 어와 같은 악행은 과거 남유다의 그 어떠한 왕들에게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심각한 죄악이었다. 본장에 이러한 아하스의 악행이 길게 기술되어 었는 것은 남왕국 역시 북왕국 이스라엘과 다르지 않게 패역의 길을 걷고 있음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다.

즉 북왕국이 하나님 택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우상 숭배를 한 여로보암의 죄를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는 것처럼, 이제는 남왕국조차도 하나님 임재의 상정언 성견을 부정한 이방적 요소로 채움으로써 파멸을 향하여 질주하고 었음을 보여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