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7월 27일 목요일 묵상구절 대상10:1-14 <사울 왕이 죽다(삼상 31:1-13)>

미령미령 2023. 7. 27. 07:56

맥체인성경읽기

사사기 10, 11:1~11, 사도행전 14, 예레미야 23, 마가복음 9

묵상구절

10:1 블레셋 사람들과 이스라엘이 싸우더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다가 길보아 산에서 죽임을 당하여 엎드러지니라

10:2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과 그 아들들을 추격하여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이고

10:3 사울을 맹렬히 치며 활 쏘는 자가 사울에게 따라 미치매 사울이 그 쏘는 자로 말미암아 심히 다급하여

10:4 사울이 자기의 무기를 가진 자에게 이르되 너는 칼을 빼어 그것으로 나를 찌르라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이 와서 나를 욕되게 할까 두려워하노라 그러나 그의 무기를 가진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행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매 사울이 자기 칼을 뽑아서 그 위에 엎드러지니

10:5 무기 가진 자가 사울이 죽는 것을 보고 자기도 칼에 엎드러져 죽으니라

10:6 이와 같이 사울과 그의 세 아들과 그 온 집안이 함께 죽으니라

10:7 골짜기에 있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그들의 도망한 것과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다 죽은 것을 보고 그 성읍들을 버리고 도망하매 블레셋 사람들이 와서 거기에 거주하니라

10:8 이튿날에 블레셋 사람들이 와서 죽임을 당한 자의 옷을 벗기다가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길보아 산에 엎드러졌음을 보고

10:9 곧 사울의 옷을 벗기고 그의 머리와 갑옷을 가져다가 사람을 블레셋 땅 사방에 보내 모든 이방 신전과 그 백성에게 소식을 전하고

10:10 사울의 갑옷을 그들의 신전에 두고 그의 머리를 다곤의 신전에 단지라

10:11 길르앗야베스 모든 사람이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에게 행한 모든 일을 듣고

10:12 용사들이 다 일어나서 사울의 시체와 그의 아들들의 시체를 거두어 야베스로 가져다가 그 곳 상수리나무 아래에 그 해골을 장사하고 칠 일간 금식하였더라

10:13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10:14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 주셨더라

병행구절 삼상31:1-13

매튜헨리/옥스퍼드

💡 역대기상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 전반부 1-9장

    인류의 조상 아담으로부터 시작하여 바벨론 포로 귀환자들에 이르는 주요 인물 및 가계별 단편 족보를 소개함.
    • 전체 아홉 장 407절을 할애하여 이처럼 길게 족보를 기술한 것은 이것이 본서의 집필 의도인 선민 이스라엘 역사의 영속성 및 정통성을 가장 직접적이면서도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
    • 즉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첫 인간 아담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직계 조상인 야곱의 12아들 및 그들로부터 비롯된 12지파의 계보와 포로 귀환 시대의 주요 인물들의 명단으로 이어지는 1-9장의 이스라엘의 단편 족보 모음집은 바벨론 포수 이후에도 선민의 역사가 면면히 이어지고 있음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2. 후반부 10-29장

    남왕국 유다가 B.C. 586년 바벨론에 의해 결정적으로 패망한 이후에도 그 민족은 보존되어 선민 역사가 단절되지 않고 계속 진행될 수 있는 근거가 된 다윗 언약의 당사자인 다윗의 일대기를 보도.

    그 가운데서 본장은 다윗의 선왕이자 이스라엘 초대 왕이었던 사울과 그 가문의 비참한 최후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사무엘서 저자는 사울의 일대기를 삼상 9:1-31:13에 이르기까지 길게 기술하고 있다. 이는 선민 이스라엘이 체계적으로 조직되지 못한 부족 집단의 형태였던 사사 시대로부터 체계적인 조직을 갖춘 왕정 체제로 전환하는 시기에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부름받아 40년을 통치한 사울의 시대는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시대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무엘서 저자는 무려 스물 세 장, 617절이나 되는 지면을 할애하여 사울의 일대기를 상세하게 기록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본서 저자는 사울에 대하여 단지 14절만을 할애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내용에 있어서도 사울의 전사와 관련된 내용을 다룬다.
    • 이는 신정 왕국의 정통성을 다윗에게서 찾는 본서 저자에게 있어 사울은 단지 사사 시대와 신정 왕국 다윗의 통처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한 인물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이는 본서 저자가 솔로몬 이후의 역사를 기록함에 있어서 정통성이 없는 북이스라엘의 열왕들은 무시한 채 남유다의 왕들만 소개하고 그 가운데서도 종교 개혁을 일으키고 성전 예배를 중시한 아사, 여호사밧, 요아스, 히스기야, 요시야 등의 사적을 집중 조명하는 것과도 관계된다.
     역대기 저자는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권과 선민 이스라엘의 존재 이유를 확고히 밝히기 위하여 신정 왕국 체제를 정착시켰을 뿐 아니라 선민 역사의 영속성의 근거가 되는 다윗 언약의 당사자인 다윗의 통치부터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것이며 사울의 기사는 다윗의 즉위 배경과 관련된 것만을 극히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역대기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역사, 특히 다윗 왕조의 역사는 사무엘서, 열왕기서의 내용과 46군데나 중복됨.
  • 역대기 저자는 여러 책들을 참고 자료로 하여 본서를 쓰되, 특별히 다윗 왕조를 부각시키기 위하여 기존 자료의 내용을 생략하거나, 기존 자료에 주석적 작업을 더하거나(대상10:13,14), 다른 신학적 관점에서 기록하거나, 고유의 자료를 사용.
  • 역대기에 기술되는 이스라엘의 역사는 위에서 언급한 특벌한 기록 목적에 부합되는 의미있는 반복이며 단순한 재진술(restatement)이 아니다.
  • 우리는 "같은 말을 쓰는 것은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빌 3:1)고 한 사도 바울의 말에서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 가운데는 불필요한 반복이 없으며 반복 역시 그 사실 자체의 강조를 위한 것이거나 다른 책과 구별되는 관점에서 특별히 강조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역대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 10장
  • [1-6절] 이스라엘의 블레셋과의 길보아산 전투 패매 및 사울과 그 세 아들의 죽음
  • [7-12절] 블레셋 사람들의 사울의 시체 능욕과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 의한 사울의 장사
  • [13-14절] 사울의 비참한 죽음의 원인과 결과
10장 당시 다윗은 뭘 하고 있었는가?
  • 본장의 사건이 일어날 당시 하나님을 대신하여 새로이 신정 왕국 이스라엘을 통치할 자로 선택되었던 다윗은 집요하게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사울의 추적을 피하여 블레셋에 망명하여 시글락에 머물고 있었다.
  • 물론 다윗도 이 길보아산 전투에 볼레셋의 장군으로 참전할 뻔하였으나 블레셋 방백들의 반대로 다행스럽게 동족과 싸우는 일을 면할 수 있었다. 이는 다윗을 이스라엘의 통치자로 준비시키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것이었다.
  • 반면 이때 사울은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고 엔돌의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는 등 비신앙적 행보를 계속함으로써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앞당기고 있었다

 

사울의 패전(역대상 10:1-7)

여기에 언급된 사울의 죽음은 우리가 사무엘상 31장 1절 이하에서 읽은 것과 같다. 그러므로 다시 이것을 해설할 필요는 없겠고, 다음 몇 가지만 살펴보기로 하자.

  1. 방백들이 죄 지었기 때문에 백성들이 그 고통을 당한다. 이 때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도망하다가 죽임을 당하고" (1절), 또한 그들이 성읍을 버리고 도망하자, "블레셋 사람이 와서 거기 거하게 된" (7절) 불길한 때였다. 우리는 그들이 그 전사사들의 시대와 같이, 그리고 그 후의 왕들의 시대와 같이 우상 숭배를 하는 죄를 범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사무엘이 그들을 회개시켰고 그들은 회개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이처럼 "약탈당하고 도적질 당했다." 그들이 이런 징벌을 받을 만한 이유가 있었음엔 틀림없다. 그러나 거룩한 징벌이 내려진 것은 주로 사울의 죄악에 대한 것이었다. 지도자들이나 훌륭한 자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입지 않도록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만일 불을 내게 되면, 그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자들이 타 죽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 1절에 나타나는 역대기 저자의 관점
  • 사울 왕국 몰락 자체에 관심을 두고, 다윗 왕조의 출현이 불가피함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자 함.
    •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워 이스라엘 사람이 도망했다 표현함. → 블레셋이 전쟁을 주도하고 있고, 사울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의 상황이 매우 열악했음을 암시함.
    • 병행구절, 삼상31:1에서 저쟁에 참가한 사람들의 패주를 개별적으로 묘사하나, 본문은 이스라엘 전체의 패주로 묘사함.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이스라엘의 패배를 더 부각시키는 것.

  • 길보아산이라는 지명을 언급하지만 강조하지 않음.
    → 사울 왕국 몰락 자체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
    병행구절은 길보아산을 강조함.


  • 본절은 사울이 속한 가문의 족보가 소개된 단락(9:35-44) 바로 직후에 위치해 있다. 따라서 본서에는 사울이 왕으로 즉위한 사실(삼상 10장)이나 그의 영웅적 활동담(삼상 11장) 등이 모두 생략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 또한 본문은 사울이 엄연히 이스라엘의 왕으로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이스라엘은 왕도 없는 나라처럼 무기력하게 이방 블레셋에게 대패했다는 뉘앙스를 전달한다.
  • 사울에 대한 이같은 저자의 부정적 시각은 본장에서 사울을 이스라엘의 공식적인 왕의 명칭이 아닌 사적인 이름으로만 계속 호청하고 있는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는 저자가 사울이라는 인물을 다윗 왕의 영광스러운 출현을 준비하기 위한 일종의 그림자 정도로 간주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1. 부모들이 죄를 지으면, 자손들이 고통을 당한다.(2절) 사울의 죄의 그릇이 다 찼을 때, 그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이것을 다윗은 미리 알았다. 삼상 26:10). 즉 그가 전장에 들어갔을 때, 그 자신이 멸망했을 뿐만 아니라 이스보셋을 제외한 모든 아들이 죽임을 당하였고, 이들 중 매우 자비롭고 너그러운 요나단마저 죽임을 당했다. 그것은 "그들이 모두 한 핏줄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아버지의 죄가 자손들에게 미쳤고, 그들은 저주받은 아버지의 한 부분으로서, 파멸하게 되었다. 자손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죄를 짓지 않음으로써, 자손들이 파멸당하지 않게 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뿐만 아니라 그 가족에게까지 화가 미치게 되거나, 그들이 죽은 뒤 그 가족들이 저주받게 된다.

💡 3절, 사울을 맹렬히 치며
  • 공동 번역은 이를 ‘전세가 이미 다 기울어진 판에' 라고 번역하여 전쟁의 승리가 이제 블레셋에게 완전히 기울어졌고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전달하고 있다.
  • 2절에 이은 본문의 이러한 표현은 블레셋 군대가 이스라엘 군대와 사울의 아들들을 차례로 물리친 후에 마지막으로 사울에게 집중적인 공격을 퍼부었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 한편 저자는 사울을 공격하는 주체를 블레셋 사람이 아닌 전쟁이라는 비인격체로 묘사함으로써, 사울이 블레셋 군대의 공격을 받고 있다는 객관적 사실을 넘어서 여호와의 징계를 받고 있음을 독자들에게 은연중에 암시하고 있다.
사울이 그 쏘는 자를 인하여 심히 군급하여
  • 군급하다: 군색하고 급하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여 위급하고 답답한 상태. → 원문으로 볼 때는 사울이 이미 화살에 맞아 고통을 당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 분명하다.
4절, 이르되 .. 저 할례 없는 자가 와서 나를 욕되게 할까 두려워하노라… 취하고 엎드러지니 (삼상31:4)
  • 적군의 모욕을 받으면서 죽는 것만은 피하기 위하여 병기 가진 자의 도움을 요청했으나 그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마는 사울의 비참한 최후.
5절, 병기 가진 자가 .. 죽으니라
  • 삼상31:5에서는 ‘그와(사울과) 함께’를 첨가하여 병기 든 자가 사울 왕과 ‘더불어' 죽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 반면 이를 생략한 본문은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임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외롭고 비참한 죽음을 당했다는 사실을 더 강하게 전달한다.

6절, 사울과 세 아들과 그 온 집이 함께 죽으니라
  • ‘온 집’ : 사울의 왕가가 완전 몰락했음.
    • 물론 이는 9:39-44의 족보에 언급된 사울의 모든 후손과 더불어 특별히 사울의 왕위를 계승하여 한동안 요단 건너편 마하나임에서 사울 왕국의 명맥을 유지하였던 ‘이스보셋(에스바알)’의 존재를 완전히 무시한 표현이다(삼하 2-4장).
    • 그러나 여호와의 택함을 받은 다윗 왕가를 중심으로 이스라엘 역사를 재해석하고 있는 본서 저자는 길보아산에서의 사울 및 그의 추증자들의 죽음을 사무엘서 저자처럼 단순히 사람들(아나쇠서우)의 죽음으로 보도하지 않고 다윗 왕가의 시작을 위한 사울 왕가 전체(콜 데토)의 완전한 종말로 해석함으로써 사울 왕조의 몰락을 강조하고 있다.
    • 본서 저자가 이스보셋을 구심점으로 한 사울 왕가의 복구 시도와 관련된 사실들 자체를 본서에서 완전히 생략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 그리고 이러한 표현을 통해 본서의 일차 독자라고 할 수있는 포로기 후대 이스라엘 공동체,즉죽 다윗 왕국을 모범으로 삼아 선민 신정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고 있는 바벨론으로부터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 이제부터 사울의 집과 관련된 역사가 종결되고 다윗의 집안이 이스라엘 역사를 새롭게 이끌어 가는 내용어 전개될 것이라는 사실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3. 죄인들은 곧 벌을 받지 않는다 하더라고 결국은 그 죄로 고통당하게 된다. 비록 즉시 처벌받지 않는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벌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사울에게도 역시 그러했다. 그가 이렇게 죽은 것은 여러 면으로 그의 죄에 대한 대가였다.

(1) 그는 다윗에게 한 번 이상 창을 던졌었으나 빗나가고 말았다. 그러나 이제 그는 활 쏘는 자로 인해 상처를 입게 되었다.

(2) 그는 도엑에게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죽일 것을 명했었다. 그러나 이제 절망에 빠진 그는 병기 가진 자에게 "칼을 빼어 자기를 찌르도록" 명하였다.

(3) 그는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여 아말렉 사람들을 죽이지 않았었다. 이제는 병기 가진 그의 부하가 그의 명을 거역하여 그를 죽이지 않았다.

(4) 제사장들을 죽인 살인자가 된 그는 마땅히 자신을 죽이는 살인자가 되어야 했다. 그리고 제사장들의 성읍을 없애려 한 그는 자신의 가족들의 죽음을 보아야 했다. 이것을 보아도 우리는 "하나님은 의로우시다" 라는 말을 할 수 있다.

사울의 죽음(역대상 10:8-14)

💡 7절, 골짜기에 있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 병행구절 삼상 31:7을 보면 사무엘서 저자는 사울의 길보아산 전투 패배로 인해 도망간 사람들을 갈릴리 지역의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 뿐만 아니라 요단 서편의 사람들까지 포함시키고 있다.
  • 역대기 저자 사울의 길보아산 전투 패배로 인해 도망한 사람들을 갈릴리 지역 사람들에만 국한시킴
  • 역대기 저자는 ‘모든’ 이란 표현을 통해 사울 왕과 그의 아들들의 죽음을 확인한 주체를 밝힘으로 사울 왕조의 패배를 더욱 부각시킴.

8절,… 그 아들들이 길보아산에 엎드러졌음을 보고

→ 본서 저자는 길보아산에서 죽은 사울의 아들들이 ‘세 사람’이라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명기하지 않았음.

  • 즉 본서 저자는 사울의 아들인 이스보셋(에스바알)이 아직 생존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사울의 아들들이 길보아산에서 모두 죽은 것처럼 묘사함으로써, 사울 왕가에 더 이상 왕위 계승자가 없음을 은연중에 드러내려고 하였던 것.
  • 사울 왕이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범죄로 말미암아 폐위를 거듭 선언받고(삼상 13:13.14; 15:26) 다윗이 이미 여호와로부터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으로 기름부음 받은 상황에서(삼상 16장), 사울이 이끄는 군대가 블레셋 군대에 완패하고 그와 그 세 아들 모두가 전사했다는 본문의 보도는 사울 왕가 전체의 멸망을 상징적으로 부각시키려는 본서 저자의 의도를 잘 반영해 준다.
9절, … 사울을 벗기고, 그 머리와 갑옷을 취하고 (삼상31:9)
  • 사울의 머리가 마치 ‘병기 든 소년’의 손에 들렸던 무기처럼(4,5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들리게 되었다는 표현을 통해 사울의 비참한 죽음을 조소하는 듯 강조함.
  • 삼상31:9과 달리 ‘그들의 우상들의 집’이란 표현을 생략한 것은, — 사울의 죽음과 관련하여 다른 부수적 사실들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지 않고 사울의 죽음과 그의 왕가의 멸망 자체에만 관심을 집중하는 것. 

 Ⅰ. 우리는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에게 승리한 이 일에서 다음과 같은 것들을 배울 수 있다.

  1. 큰 권세를 지닌 자들이 파멸한다는 것은, 더욱 커다란 굴욕이 된다. 사울은 왕이었기 때문에 그의 시체는 어떤 피살자보다도 더욱 수치스러운 것이었다.
  2. 만일 우리가 승리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는다면, 블레셋 사람들이라도 일어나 우리를 심판하고 우리를 징벌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사울에 대해 승리를 거두었을 때, 그들은 "모든 우상들에게 광포하였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몇 마일 안되는 곳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 또 그 소식을 전했을 때조차도 도무지 그것을 알지 못하는 초라한 우상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그들은 그렇게 한 것이다.

그들은 또한 사울의 갑옷을 "그들의 신의 집에" 두었다(10절). 다곤은 이처럼 그들의 승리 속에서 영광을 나누고 참되며 살아 계신 하나님은 우리들 속에서 잊혀져야 하겠는가?

💡 10절, 사울의 갑옷을 그 신의 묘에 두고.. (삼상31:10)
  • 삼상31:10와 달리 ‘아스다롯’이라는 이방 우상의 이름을 의도적으로 생략. 막연하게 ‘블레셋 사람들의 신’이란 의미만 전달함.
    • →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블레셋의 신을 문자적으로 대조하기 위함
    • 본서 저자는 사울의 갑옷이 블레셋의 신 앞에 놓였다는 상징적인 묘사를 통해서 사울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전달한다.
그 머리를 다곤의 묘에 단지라
  • 병행 구절인 삼상 31:10 — 사울외 머리가 베어진 후 최종적으로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다만 그의 시체(KJV, his body)가 벧산 성벽에 못박혔다고만 기록하고 었다.
  • 그러나 본문에서는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의 머리를 다곤의 신당에 두었다고 분명하게 언급한다.
‘다곤의 신당' 의 과거 역사적 배경
  • 과거 하나님외 언약궤 (The ark of the Lord) 가 블레셋 사람들에게 탈취되었을 때에 머물렀던 곳.
  • 그 때 하나님의 궤 앞에 다곤 신상은 머리와 두 손목이 함께 잘려 엎드러졌었다(삼상 5:1-4).
  • 또한 이 일과 그 후에 이어지는 몇 가지 재앙으로 인하여 블레셋 사람들은 언약궤를 일곱달 만에 벨세메스로 옮겼으며 그 언약궤는 다시 옮겨져 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답의 집에 20년 동안 안치되었었다(삼상 6:13,19; 7:1,2).
사울의 머리가 달려 있던 블레셋의 다곤 신당은 바로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장소였다.
  • 본서의 저자가 사무엘서에 언급되지 않은 내용, 즉 사울의 더리가 다곤의 신당에 매달려 있었다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도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하나님의 궤의 거룩함을 훼손한 죄로 머리가 잘려졌었던 다곤의 신당에 달린 사울의 머리! 이는 하나님에 의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움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울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해야 했던 이유를 분명하게 제시하기 위함이라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 사울이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인해 그분의 거룩함을 훼손하였기 때문이다(삼상 10:8; 13:9-14; 14:16-23;삼상 15장).
  • 즉 본서 저자는 ‘머리'라는 모티프(Motif)를 가지고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비참한 최후를 맞은 사울의 비참함을 거룩한 여호와의 궤 앞에서 ‘머리'가 잘렸던 우상 다곤의 신당과 관련지워 언급함으로써 효과적으로 강조한 것이다.

[뒤이어 ‘하나님의 궤’라는 모티프를 통해 다윗 가문을 대조시킴]
  • 위에서 ‘머리'라는 모티프가 다곤의 신당과 관련이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궤' 역시 다곤의 신당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  언약궤가 능력을 발휘하고 사라진 다곤의 신당에 사울의 머리가 놓이게 됨으로써 사울의 가문에서 여호와의 영광이 영원히 떠났다는 뉘앙스를 전달하는 것이다.
  • 그런데 다윗은 선왕 사울이 죽은 뒤에 예루살렘을 정복하고(15:13-17) 곧바로 기럇여아림에 머무르고 있던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왔다(13:6; 15:25).
    • 이는 사울에게서 떠났던 여호와의 영광이 다윗과 함께하고 있음을 상징하며 동시에
    •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가운데 다윗 왕조가 출범하였음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Ⅱ.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사울과 그 아들들의 시체를 구하는 데 성공하였다.

우리는 여기에서 죽은 자, 특히 죽은 왕족의 유가족들에 대한 경건한 조의를 배울 수 있다. 우리는 영원한 지위를 요구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오로지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불멸의 영혼이 육신과 결합되었듯이 언젠가 또 다시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기억하는 자답게 시체를 처분해야 한다.

💡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
  • 이들은 과거 암몬 족속에게 침략을 당하여 큰 곤경에 처한 적이 있었다. 이때 사울의 도움으로 구원을 받았으므로(삼상11:1-11) 그 은혜를 갚기 위하여 그들은 위험한 적진에 들어가 사울의 시신을 가져와 장사지내 주었던 것이다.
한편 본문에는 병행 구절인 삼상 31:11에는 없는 강조점이 있다.

→ ‘길르앗 야베스 “모든” 사람들이 듣고’
  • 역대기 저자는 사울이 블레셋과의 길보아산 전투에서 패배하고 그 목이 잘려 다곤의 신당에 었다는 소식의 전파 과정에 대해 사무엘서 저자보다 더 확대하여 보도함.
  • 특벌히 본문의 주어인 ‘길르앗 야베스 모든 사람'
    1.  7절에 언급된 골짜기에 있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콜 이쉬 어스라엘)'과 대조를 이룸.
      → 이는 비록 사울의 죽음에 대해서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모두 들었고 그들에 의해서 사울이 장사지낸 바 되었지만, 정작 사울의 백성인 ‘골짜기에 있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은 그의 죽음을 외면하고 도망갔다는 역설적 의미를 전달한다.
      따라서 본문의 표현은 사울의 죽음에 대한 저자의 애도를 내포하고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이스라엘의 왕이면서도 백성들의 신망과 존경을 전혀 얻지 못했다는 부정적 의미를 전달한다고 할 수 있다.
    2. ‘온 이스라엘’(11:1,4), ‘이스라엘 모든 장로’(11:3)’란 표현과 대조를 이룸.
      → 이는 곧 다윗이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과 장로들에 의해서 왕으로 추대되는 데 반해 사울 왕은 기껏해야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 의해 장사지내졌을 뿐임을 부각시킴으로써 그의 비참한 종말과 다윗의 통치의 시작을 확연하게 대조하는 것이다.

12절, 용사들이 다 일어나서 사울의 시체와 … 취하여
  • 사울의 시체: 생명이 완전히 끊어진 의미의 용어를 사용하여 사울 왕가가 종식되었음을 확연히 드러냄.
  • ‘용사들’
    • 본서의 저자는 사울의 죽음을 다룬 본장과 다윗의 즉위를 다룬 다음장에서 그 성격을 달리하는 ‘용사들'을 등장시킴으로써, 사울과 다윗의 상반된 운명을 효과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 다윗은 그를 돕는 용사들의 지지 기반 위에 생명을 보호받으며 왕국을 든든히 세워가고 있는 반면, 사울은 자신과 일족이 죽은 뒤 길르앗 야베스의 용사들에 의해서나 그 시신이 장사되게 되었음을 대조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
  • ↔ 11:10 이하에서 소개될 다윗의 ‘용사들’과 대조됨.
상수리나무 아래 그 해골을 장사하고 … 금식하였더라
  • 본절만 놓고 보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그만큼 사울 왕을 존경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전체 문맥상 본서의 저자는 다른 의도에서 이를 기록하고 았다. 즉 사울이 왕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애도를 받으며 이스라엘 본토에 장사된 것이 아니라, 단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 의해서 요단 동편 지역에 장사 되었다는 비하적 의미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 ‘상수리 나무 아래’ 라고 기록한 의도
    • 상수리나무 아래: 사울의 통치를 상징하는 장소(삼상22:6)
    • 따라서 사울어 에셀나무 아래 장사되었다는 것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 의해 사울이 하나님의 가호와 왕의 예후를 받으며 장사되었다는 긍정적 의미를 전달한다.
      그런데 본서의 저자는 에셀나무에 얽힌 이와 같은 궁정적 의미를 사울과 연관시키지 않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일반인들의 장례 장소인 ‘상수리나무 아래'로 기록한 것이다.

Ⅲ. 사울의 멸망 속에서 하나님의 의가 승리하는 것을 볼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배울 수 있다.

  1. 죄인들의 죄는 조만간에 분명히 밝혀지게 된다. "사울이 죽은 것은 그가 범죄하였음이더라."
💡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 여기에는 본서 저자가 사울의 죽음을 보는 관점 및 강조점이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즉 본서 저자는 사울의 죽옴에 대해 그 이유를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으로 밝힘으로써 그가 신정 왕국 이스라엘의 정통성을 상실한 왕임을 명확히 하여 그를 이어 왕위에 오른 다윗 왕조의 정통성을 강조하고자 하였던 것.
  • 직역하면, ‘그리고 그가 여호와를 거슬러 범죄한 그의 범죄로 인하여’

  • 사울의 범죄는 ‘하나님께 대한 범죄’였음
    • 그러나 사울은 처음부터 범죄한 자는 아니었다. 베냐민 지파의 ‘기스'라 하는 유력한 사람의 아들로 태어난(삼상 9:1; 10:21) 사울은 하나님께서 왕으로 세우실 때만 헤도 매우 겸손하였다(삼상 9:21; 10:22). 그러나 그는 왕이 된 후에 하나님의 구원을 약속한 선지자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조급한 마음에 자신이 직접 제사를 드리는 죄를 범했다(삼상 13:8-15). 또한 아말렉을 진멸하여 아무것도 남겨두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에도 불순종하였고 더욱이 그 사실을 은폐하기 위헤 거짓말까지 하였다(삼상 15:1-3,7-9,15-23).
    • 그런데 본문은 이러한 구체적인 사례들을 생략한다.
    • — 이는 오히려 사울의 전반적인 삶이 여호와께 범죄한 삶이었기에 그 징계로 죽임을 당했다는 단호한 뉘앙스를 전달하여 사울의 범죄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본장과 사무엘서 31장온 이제까지는 절벌로 대응되었다.

하지만 본장 13, 14절은 삼상 31장에 기록되지 않은 내용으로 본장 전체에 대한 본서 저자외 해설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 역대기 저자는 사무엘서 저자와 달리 사울의 최후를 객관적으로 보도하는 데 그처지 아니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 그의 죽옴의 원인과 결과를 신학적으로 다시 규명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비참한 종말을 맞은 사울과 그의 온 집, 즉 사울 왕조 쇠락의 이유를 명확히 규정하여 (6절) 새로이 시작되는 다윗 왕조의 정통성을 부각시키려는 저자의 의도를 반영한 것이다(14절).

2. 위대한 사람이라고 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다.

3. 불순종은 죽음을 낳을 수밖에 없다. 그는 아말렉 사람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바로 그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해서 자기가 죽었다.

4. 무당과 의논하는 것은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곧 죄악을 범하는 일이 된다. 사울은 "신접한" 자에게 가르침을 청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셨다" (13, 14절)

💡 13절,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 ‘또’ : ‘그리고 심지’란 뜻.
  • →사울이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않은 것도 큰 범죄인데 심지어 신접한 자를 의지하는 적극적인 범죄까지 저질렀다 사실.
  • 여호와의 명령을 어겨서 폐위를 선언받은 사울은 이에 대해 회개하기는 커녕 오히려 미신을 의지하여 자신의 멸망을 앞당기는 결과를 초래했다.
  • 사무엘서의 기록에 의하면, 사울은 엔돌의 접신녀를 찾아가 죽은 사무엘을 볼러을리라는 요청을 했으며 이러한 사울의 죄악에 대해서 여호와께서는 그와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손에 붙이시겠다고 선언하셨다(삼상 28장).
14절,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저자가 생각하는 바 사울이 죽게 된 최종적 원인
  • 사울은 신접한 여인에게는 가르침을 청하였지만, 여호와께는 묻지 않았다.
  • 앞절과 본절에서 반복된 부정 불번화사 ‘로'는 사울이 회복될 수 없는 불신앙의 상태에 있었음을 거듭 강조한다.


  • ‘여호와께 묻는다'
    • ⇒ 사람이 병이 들어서 그 회복 여부를 문의하거나(왕상 14:5), 전쟁에 임박해서 그 출전과 승패 여부를 문의하는 것(왕상 22:5)을 의미한다.
    • 이와 같은 행위는 개인의 생사 화복과 나라의 운명을 주관하시는 여호와를 전적으로 인정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러므로 사울이 여호와께 묻지 않았다는 것은 각 개인과 이 세상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의미가 된다.
    • 그러나 사실 사울이 여호와께 전혀 묻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 오히려 여러 번 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응답을 받지 못했다(삼상 14:37; 28:6). 따라서 저자는 본문에서 사울의 개별적 행동이 아니라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은 그의 전반적인 삶의 태도를 비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이와 같은 사울의 불신앙적 태도는 폐위를 처음 선언받았던 사건에서 이미 싹트기 시작한 것이었다(삼상 13장).
    • 이스라엘의 전쟁은 오직 여호와께 속해 있는 성전임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 선지자 사무엘을 기다려 여호와의 뜻을 구하지 않고
      • 왕이라는 권력을 남용하여 제사 제도를 모독하
      • 형식적인 제사 행위로 전쟁 출전을 스스로 결정했던 것이다.
      이때부터 사울의 마음 속에 자라기 시작한 영적 교만
       급기야 여호와를 외면하고
       접신녀를 의지하는 망령된 삶의 형태로 발전하게 된 것.
  • 만약 사울이 여호와의 침묵을 회개의 기회로 삼아 자숙하면서 계속 여호와께 물었다면, 그의 인생은 회개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로 말미암아 변화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14절, 여호와께서 저를 죽이시고
  • 직역하면, ‘그러므로 그가 그를 죽였다’
    • 모든 죽음의 근본 원인은 ⇒ 인간의 죄에서 기인한다.
    • 그리고 죄를 구분하는 기준은 ⇒ 하나님의 거룩성이다.
    •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훼손하는 것이 죄이고 → 그 죄의 결과는 죽음이다(롬 6:23).
  • 그래서 죽음이란
  •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궁극적으로 분리되는 것(ultimate separation from God)’ 이라고 정의될 수 있다.
  • 이런 의미에서 본문에서처럼 ‘무트’가 사역형(ffiphil)으로 사용되고 하나님을 주어로 할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죄에 대한 심판으로 처형한다'라는 의미를 갖는다(레 22:9; 삼상 4:11).
  • 13절에서도 살펴본 대로 사울은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그분의 거룩성을 훼손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처형하신 것이다.
    • 외형적으로 볼 때: 사울은 전쟁에서 볼레셋 군사에 의하여 죽음의 위기에 처하였고 결국에는 그 스스로 자살하였지만
    • 죽음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었음을 본문은 명시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

사울은 자살하였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죽이셨다" 고 적혀 있다.

사악한 손에 의해 행해지는 것도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예지에 의해서" 행해지는 것이다. 마귀에게 자기를 내던지는 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아 파멸에 이르게 될 것이다. 사울은 "여호와께 물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셨다" 고 사무엘상 28장 6절에 적혀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사울은 하나님께 묻지 아니하였다" 고 적혀 있다. 그것은 그가 극단적인 상황에 처해 이미 늦어지기 전에는 하나님께 묻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14절,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돌리셨더라

→ 본문은 본장 전체의 최종적 결론, 동시에 지금까지 사울의 과거 사적에 대하여 기술하였던 이유
  • 즉 사울의 범죄 결과 → '다윗이 사울을 대신하여 아스라엘의 왕이 되었던 것이다.
  • 그리고 본서 저자는 사울의 범죄 결과 다윗이 왕위에 오르게 되었음을 설명하기 위하여 본장 전체에서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이 죽옴에 이르는 과정을 추적했던 것.
돌리셨더라(’싸바브’)
  • ‘방향을 바꾸다’ →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사울에게 향하였던 나라의 방향을 다윗에게로 돌리셨던 것.
  • 용례
    1. 기본적으로, ‘철저한 조사와 고려 끝에 마음이나 태도를 돌리는 행위’(전7:25)
    2. 사법적, 율법적, 윤리적 문맥에 사용
      • 양도를 금하는 문맥(민36:7,9)
      • 본문에서처럼 여호와로 말미암아 왕권이나 국가가 어떤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가는’ 경우(왕상2:15).
    3. 종말론적으로, 메시야의 사역과 관련되어 사용.
      • 즉 예수 그리스도는 승천하신 것처럼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이고, 이처럼 재림하실 때에는 그의 모든 백성돌을 구속하실 것이며 그의 통치가 온 땅에 머칠 것을 나타내는 문맥에서도 사용되는 것이다(슥 14:10).

  • 정리하면, 본문의 문맥에서 이 단어는
    • 일차적으로는 하나님의 통치의 직접적인 회복이나 하나님이 당신의 택한 사람에게 통치권을 주는 간접적인 회복을 나타낸다.
    •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 ‘싸바브' 의 다양한 용례를 참고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돌리셨더라'는 표현을 통해 본서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궁극적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 하나님께서는 사울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를 죽이시고 그냥 여러 사람 가운데서 한 사람으로서 다윗을 선택하신 것이 아니다.
      • 이는 ‘하나님 나라(The Kingdom of God)의 회복'을 위한 하나의 단계였다.
      • 또한 메시야에 의해 종말론적으로 성취될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예표하는 사건이기도 하였다.
    • 즉 역대기 저자는 본서를 통해 포로기 후대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 ‘다윗 왕가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왕조이며 궁극적으로 께시야의 영원한 통치에까지 연결될 것이므로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해 주고자 하였던 것이다.
  • 또한 사무엘서에 병행 구절이 없고 역대기에만 있는 13절과 본절, 즉 기존의 자료에 역대기 저자가 첨가한 신학적 해설에 해당하는 이 부분
    •  사울 왕의 비참한 최후가 아니라 다윗 왕조의 출범 배경임을 보여준다.

    본서의 저자가 본장을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려는 것,따라서 저자는 사울의 죽음의 이유를 밝힌 이후에 → 본장의 마지막 부분인 본문을 통해 ‘다윗 왕조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조이다'라는 관점에서 다윗 왕조의 개시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 즉 본서의 저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다윗 언약을 수여받은 다윗 왕조의 출범을 하나님을 대리하여 세상을 다스릴 이상적인 신정 왕국의 출범으로 묘사하고자 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