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8월 10일 목요일 묵상구절 대상16:37-43 <기브온에서 번제를 드리다>

미령미령 2023. 8. 10. 06:22

묵상구절

37 다윗이 아삽과 그의 형제를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 있게 하며 항상 그 궤 앞에서 섬기게 하되 날마다 그 일대로 하게 하였고
38 오벧에돔과 그의 형제 육십팔 명과 여두둔의 아들 오벧에돔과 호사를 문지기로 삼았고
39 제사장 사독과 그의 형제 제사장들에게 기브온 산당에서 여호와의 성막 앞에 모시게 하여
40 항상 아침 저녁으로 번제단 위에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되 여호와의 율법에 기록하여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대로 다 준행하게 하였고
41 또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시므로 그들과 함께 헤만과 여두둔과 그리고 택함을 받아 지명된 나머지 사람을 세워 감사하게 하였고
42 또 그들과 함께 헤만과 여두둔을 세워 나팔과 제금들과 하나님을 찬송하는 악기로 소리를 크게 내게 하였고 또 여두둔의 아들에게 문을 지키게 하였더라
43 이에 뭇 백성은 각각 그 집으로 돌아가고 다윗도 자기 집을 위하여 축복하려고 돌아갔더라

매튜헨리/옥스퍼드

법궤를 만드는 일(역대상 16:37-43)

💡 개요
  • 앞단락
    • 1-6절: 본서 저자는 언약궤의 성공적인 예루살렘 안치와 다윗의 감사 제사 및 언약궤 앞에서 하나님을 섬길 레위인을 임명한 사실을 보도하였다.
    • 7-36절: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구원과 이적에 대한 감사 찬양의 내용을 길게 서술.
  • 본단락
    • 37-43절: 13:1에서부터 시작되었던 언약궤 운반 시도와 안치 이후 이를 관리하고 수직하도록 하기 위해 다윗이 성소 관리 담당자를 선정하여 배치한 사실을 기술.
    • 언약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과정을 기록하면서 산발적으로 소개되었던(15:1-24) 레위인들의 직무가 이 부분에서는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소개됨.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언제이건 승리를 베푸신 은혜로운 그 날에 엄숙하게 행해져야 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또한 날마다의 일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다윗은 여기서 법궤를 만드는 일을 고정해 놓았고, 이 존경받는 직책을 준수할 자들을 정해 놓았다. 모세의 성막이나 나중의 솔로몬의 성전에는 궤와 제단이 함께 있었다. 그러나 엘리 제사장 시대 이후로 그것은 분리 되었으며, (솔로몬의) 성전이 세워질 때까지는 그렇게 분리된 채로 놔두었다. 다윗의 시대에는 제단과 벱궤들을 분리해 놓았다. 그러나 그는 이 둘을 모두 소홀히 하지 않고 잘 보살폈다.

💡 기브온 산당: 언약궤가 안치된 다윗성 장막과 다른 곳
  • 기브온 산당/다윗성 산당 — 이원적 종교 체제
    • 다윗은 엘르아살 계열의 사독으로 하여금 기브온 산당의 성막을 관리하게 하고,
    • 이다말(Ithamar) 계열의(24:3) 아비아달(Abiathar) 로 하여금 다윗성의 언약궤가 안치된 장막을 관리하게 하였다(18:16).
  • 이러한 이원적 종교 체제 는 중앙 성소인 솔로몬의 성전이 건축되어 중앙 성소의 제도가 확립되기까지 지속되었을 것.
번제를 예루살렘에 있는 장막이 아닌 기브온에 있는 성막에서(39절) 드린 이유
  • 예루살렘에는 제사를 드리는 데에 필요한 제단이나 부속 기구들이 없었기 때문.

 

1. 궤가 있던 예루살렘에서는 아삽과 그 형제로 하여금 "항상 그 궤 앞에서 섬기게 하였으며", 찬미의 노래와 함께 "날마다 그 일대로 하게 하였다" (37절).

그곳(기브온)에는 제단이 없었으므로 제물을 바치거나 분향을 피우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었으며, 그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식사 같이 되게 하였다" (시 141:2). 그러므로 그는 일찍부터 의식적 예배를 대신하여 영적 예배를 드린 것이다.

 💡 37절, 찬양으로 여호와의 언약궤를 섬기는 자들

‘아삽과 그 형제'

  • 4절에서 레위 사람으로 이미 소개된 바 있다.
  • 그들의 임무(4절) :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일.
  • 이러한 4절의 내용을 참고할 때 그들은 여호와 언약궤 앞에 머물며 찬양과 감사로 섬기는 일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 ‘날마다 그 일대로’ : (as everyday’s work) 매일 반복되는 동일한 일을 하였음. 고정된 임무를 수행함.
38절, 문지기들

‘오벧에돔과 그 형제 육십팔인과 , 여두둔의 아들 오벧에돔과 호사로 문지기를 삼았고’
  • 먼저 나오는 오벧에돔 (Obededom) — 언약궤를 기럇여아림에서 예루살렘으로 운반하던 중에 웃사의 죽음으로 인해 3개월 간 언약궤를 보관하였던 집의 주인, 그핫의 후손(26:1, 4) 오벧에돔을 가리킴(13:13).
  • 뒤에 나오는 여두둔의 아들 오벧에돔 — 므라리의 후손, 본문 서두에 나오는 오벧에돔과는 다른 사람.
    • 여두둔: 노래하는 자였던 헤만과 아삽과 함께 놋제금을 처던 사람(15:19). 다윗의 3대 악사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에단'과 동일시 됨.
  • 호사 : 므라리 후손. 후에 호사와 그의 아들들과 친척은 살래겟 문 책임 맡은 자로 소개됨(26:10, 11, 16). 
 💡 옥스퍼드, 영적 교훈 부분

우리의 삶 속에는 날마다 드리는 예배가 있어야 한다.

37절을 보면 다윗이 아삽과 그 형제를 언약궤 앞에 항상 머물게 하고 날마다 섬기게 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찬양대 에게 제시한
  1. 첫번째 수칙은 언약궤 앞에서 머물며 그 궤 앞에서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2. 두번째 수칙은 ‘항상' 머물고 ‘날마다'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즉 레위인 찬양대 는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서 찬양 하는 일을 하여야 했던 것입니다.
물론 레위인 찬양대의 찬양 시간은 따로 정하여져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늘 하나님 찬양하는 일을 생각해야 했으며, 또 항상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한 연습을 해야 하였을 것 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그들은 ‘항상', ‘날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임무를 수행하였습 니다. 즉 레위인 찬양대는 그들의 삶 자체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 우리 성도들에게 중요한 영적 메시지를 던져줍니다. 그것은 곧 우리의 예배와 찬양은 일희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삶에서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할 마땅한 소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 우리의 예배는 우리의 삶이 다할 때까지 계속되어야 할 성도외 마땅한 사명입니다.
  • 그것은 일주일에 한두 번으로 끝나는 것도, 지역과 시간에 제한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 예배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모든 인간이 쉬지 않고 드려야 할 마땅한 의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일날 한 시간의 예배, 그리고 수요일 저녁 예배 정도를 예배라고 생각합니다. 그 한 두 시간의 예배를 마치면 다음 주일까지 예배에 대한 모든 부담을 떨쳐버립니다. 게다가 가끔은 그마저 드리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예배는
  • 모든 형식을 벗어나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는,
  • 전삶을 통한 예배여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하나님을 향한 예배에 대하여 ‘항상'이라는 말을 많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 제단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항상' 불을 피워야 하며,
  • 진설병을 ‘항상' 진설하며,
  • 향로를 ‘항상' 꺼지지 않게 하라는 명령을 통해
     우리의 모든 예배와 신앙적 행위가 어느 한 순간도 멈춰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신앙 공동체를 통해 드리는 공적인 예배도 중요합니다. 그것을 통하여 우리의 삶이 점검되고, 힘과 은혜를 공급받기 때문업니다.

그러나 목사님의 축도나 주기도문으로 일주일의 모든 예배가 끝이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이 예배가 더 큰 예배로 나아가는 또 다른 예배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정녕 성도 여러분은 삶 속에서 하나님께 대한 예배와 찬송을 쉬지 않는 거록한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의 불이 꺼지지 않고 말씀과 성령의 불이 꺼지지 않는 예배를 통해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경험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항상' 그리고 ‘날마다' 하나님께 나아가 그분을 예배함으로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놀라운 축복을 누리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시72:15] 그들이 생존하여 스바의 금을 그에게 드리며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항상 기도하고 종일 찬송하리로다
[사58:2] 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아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함이 마치 공의를 행하여 그의 하나님의 규례를 저버리지 아니하는 나라 같아서 의로운 판단을 내게 구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거워하는도다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그러나 이 예배 의식도 거룩한 일이므로 결코 빠져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기브온에 있는 제단에서는 제사장들이 시중을 들었는데, 재물을 바치고 분향을 하는 것은 그들의 직책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준행하여 항상 조석으로" 그 일을 행하였다(39, 40절).

비록 인간의 본성이 기도와 찬미를 드리는 도덕적인 봉사에 비해 열등하다 할지라도, 그들은 화목제인 그리스도의 한 유형으로서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는 큰 영광을 지니고 있었고, 그것들을 준행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 일이었으므로 그들은 이 일을 꼭 행해야만 했었다. 여기에서 사독은 제단의 임무를 주관하였다.

💡 40절, 항상 아침 저녁으로 번제단 위에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되 여호와의 율법에 기록하여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대로 다 준행하게 하였고
  • 항상: (11절과 동일), ‘날마다 계속하여’
  • 매일 ‘아침’과 ‘저녁’에 ‘번제’를 드린 이유
  • → 여호와의 율법이 그렇게 행할 것을 명령하고 있기 때문(출29:38, 39; 민28:3,4)
    • [출29:38] <매일 드릴 번제(민 28:1-8)> 네가 제단 위에 드릴 것은 이러하니라 매일 일 년 된 어린 양 두 마리니
    • [민28:3,4]
    • 28:3 또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여호와께 드릴 화제는 이러하니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을 매일 두 마리씩 상번제로 드리되 28:4 어린 양 한 마리는 아침에 드리고 어린 양 한 마리는 해 질 때에 드릴 것이요
    • 번제: 수소나 수양, 수염소 또는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를 제물로 하여(레1:3, 10, 14) 완전히 태워 그 향기를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레1:9)
  • ‘여호와의 율법에 기록하여 … 다 준행하게 하였고’
    • 다윗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온 상황에서도
    •  율법이 명하고 있는 바에 따라 기브온 제단에서 상번제 드리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 아침과 저녁에 번제를 드리는 일과 관련하여 다윗 왕이 ~~개인적인 생각이나 제사장들의 의견~~에 따라 행하지 않고, 이미 기록되어 전해진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했다.
    • 정형화된 예식서 → 아마도 레위기였을 것.
 💡 옥스퍼드 주석, 영적 교훈 부분

모든 예배는 사람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드려져야 합니다.

40절을 보면, '항상 조석으로 번제단 위에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되 여호와의 율법에 기록하여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 게 하였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제사장들이 조석으로 드린 번제는 소위 상번제로 불리는 제사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년 되고 흠 없는 숫양을 매일 둘썩 상번제로 드릴 것을 명령하셨습니다(민 28:3).

그런데 레위기 1 장에 기록된 번제의 규례를 보면 제사를 드리기 위해 제물을 준비하는 절차가 매우 까다로웠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규례를 지켜가며 번제를 매일 두 번씩 드린다는 것은 제사장들이나 그 제물을 준비하는 레위인들에게 있어 참으로 고달픈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 규례를 충실하게 지켜 하나님을 제사하도록 제사장과 레위인들에게 지시하였습니다.
이는 역으로 그 동안은 이 규례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아마도 이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번제를 드리기는 하였지만 율법의 규례가 아니라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드렸을 것입니 다. 그리고 상번제도 항상 드린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편의에 따라 드리기도 하고 드리지 않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이러한 제사는 하나님을 결코 기쁘시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레위언의 직제를 다시 개편하여 하나님의 율법에 규정된 대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도록 한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 우리의 예배도 인간 중심으로가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 중심으로 드려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의 예배를 다시 점검해 봅시다.
  • 이 예배가 과연 누구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지,
  • 내가 정말 하나님 중심의 예배를 드리고 있는지,
  •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마음으로 받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처럼 우리의 예배는 자기 중심, 내 형편에 맞춘, 내 이기적인 욕심에 맞는 예배가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을 외식하며, 하나님 중심으로 드려지는 예배로 변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당신에게 예배할 참된 예배자를 찾고 계십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가 참된 예배자가 되어 주님을 높이며, 주를 만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20: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사1:11,12] 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요4:23,24]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계19:10]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언을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언은 예언의 영이라 하더라

한편(아마도) 아비아달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궤를 받들며, 제사장의 판결의 흉패를 입고 궤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물었다. 그리하여 한 제사장은 제단에, 또 한 제사장은 궤가 있는 곳에 있어야 했었다. 때문에 다윗 시대에는 두 사람의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이 있어야 했다(삼하 8:17; 20:25).

3. 다윗은 제단이 있었던 기브온에 사람을 세워 "여호와께 감사하며 찬양하게" 하였고, "여호와의 자비하심이 영원함을 인하여" (41절)라는 구절을, 모든 노래의 후렴으로 부르게 했다.

💡 41절, 또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시므로 그들과 함께 헤만과 여두둔과 그리고 택함을 받아 지명된 나머지 사람을 세워 감사하게 하였고


[세워진 이들의 최우선적 목적(임무)]

‘감사하게’ 하였고

  • 감사하게
    1. 원형은 — 우선적으로 개인이나 국가의 죄를 시인하거나 고백한다(confess)는 의미를 내포함(시32:5)
      •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희생 염소의 머리에 손을 얹고 큰 소리로 이스라엘 전체의 죄를 고백하는 것을 나타낼 때도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레 16:21).
    2. 하나님의 속성과 그분이 행하신 사역에 대한 인간의 공식적인 선포나 선언을 나타 내기도 한다.
  • ‘그의 자비하심이 영원하다는 것을 여호와에게 고백하게 하기 위하여(or 선포하게 하기 위하여)’
[신약 시대의 성도들을 세우신 목적]
  • 신약 시대인 지금은 성도가 바로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사명을 위임받고 계승받았다(벧전 2:9).
  • 따라서 성도는 자신이 이 세상 가운데 제사장으로 세워진 가장 큰 목적 가운데 하나는 본문이 말하고 있는 바,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영원하다는 사실을 먼저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또한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하기 위해서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42절은 38절의 내용을 반복한 것.

 

영적 교훈 부분,
성도는 하나님의 자비가 영원하시기에 어떤 형편에서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직무를 레위인들에게 위임한 다윗은 하나님의 영원한 자비하심이 성도의 영원한 감사의 조건임을 입증하는 증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성경에서 말하는 다윗은 물론 이스라엘의 위대한 용사이자 왕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시인이라고도 일컬어집니다. 이는 시편 150편의 시들 중 가장 많은 내용이 다윗에 의해 쓰여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다윗의 시편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 중 하나가 바로 감사입니다.

그런데 대개외 감사의 시편들이 쓰여질 때는 다윗이 정말 감사하기 힘든 때였다고 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다윗의 인생 역정에는 무수한 고난과 환난이 있었습니다.

사울에게 추격당해 목숨이 경각 간에 달린 적도 있었고 목숨을 부지하고자 블레셋 왕 앞에서 미친 자처럼 행동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자기가 낳은 아들이 자기를 향하여 칼을 들이대고 자신이 그토록 믿었던 친구가 자기를 향하여 발꿈치를 드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자기만 생각하고 눈에 보이는 환경과 형편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현실 앞에서 온갖 불평과 원망, 복수와 질투의 노예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모든 악조건 속에서도 감사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현실의 상황을 초월하여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간에 당신의 은혜를 구하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바

  • 감사의 직무를 감당해야 하는 레위인들의 본분, 그리고
  • 어떤 형편에서든 하나님의 영원하신 자비하심을 믿으며 감사로 일관한 삶을 살았던 다윗의 신앙적 자세
    곧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이 취하여 할 삶의 합당한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삶 의 현장에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따른다고 해서 호락호락한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감사할 만한 상황, 마땅히 감사해야 할 삶의 순간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결코 감사할 수 없는 상황, 납득도 이해도 되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 좋은 일이 있을 경우 호락호락 받아들이면서도 어려운 일이나 내키지 않는 일이 자기에게 닥치면 이를 거부하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며 불평과 불만을 내뱉습니다.

→ 그러나 이는 그야말로 믿음 없는 세상 사람들이나 취하는 태도이지 하나님의 영원한 자비하심을 알고 있는 성도의 합당한 자세가 아닙니다.

우리는 마땅히 감사할 일에도 감사해야 하지만 감사할 수 없는 일처럼 보이는 일에도 감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신뢰하는 성도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욥1:21]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시118: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그들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악기로" 그 노래를 불렀는데, 그 악기들은 다른 일들이 아닌 오직 이 일에만 쓰여지도록 정해진, 합당한 것들이었다.

일반적인 쾌락과 ↔ 거룩한 기쁨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점이 있기 때문에 그것들 사이의 제한과 구분은 조심스럽게 준수되고 지켜져야만 한다.

모든 일들이 이렇게 결정되고 믿음을 위한 일들이 아름답게 이루어졌으므로

(1) 백성들은 만족히 여겨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 43절, 이에 뭇 백성은 각각 그 집으로 돌아가고
  • 원문상 삼하6:19 하반절과 완전 동일.
  • 역대기 기자가 본서의 일차 독자들인 포로기 후대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전하고자 했던 바는
    • 거룩한 일을 위해 하나님의 백성들 모두가 연합하고 매진하여 그 일을 완수하였다는 사실.
    일차 독자들, 그들에게 주어진 위대한 사명과 약속은
    • 공동체 전체가 하나님 앞에 사명감을 가지고 자신들에게 부여된 사명을 끝까지 성실하게 감당할 때 성취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 궁극적으로 이러한 내용을 자세히 서술함으로 그들 모두가 협력하여 현재 그들이 당면한 과제인 선민 신정 국가의 재건과 회복에 매진하도록 격려하고 있는 것이다. 

(2) 다윗도 계속 그의 가정 예배를 지킬 것을 다짐하면서, 자기의 집을 축복하려고 돌아갔다. 공적인 예배가 결코 가정 예배를 대치할 수는 없는 법이다.

💡  다윗도 자기 집을 위하여 축복하려고 돌아갔더라
  • 다윗은 언약궤를 예루살렘에 안치시키고 감사 제사를 드린 후에 곧바로 백성들에 대헤 축복 기도를 행한 것처럼(2절), 언약궤 운반과 관련된 모든 행사를 마친 후에 자신의 가정으로 돌아가 가족들을 축복하는 기도를 행하고자 했던 것이다. 다윗은 마땅히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자신의 가족들을 축복하려 하였을 것이다. 

💡 결론


이상과 같이 본장은
  • 여호와의 언약궤가 예루살렘에 안치된 것을 기념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마음으로 제사와 찬양을 드린 사실과,
  • 다윗이 성소 관리를 위해 레위인들의 직무를 체계화하여 분담시킨 사실에 대해서 자세하게 다루었다.
어쩌면 현대의 성도들에게는 시편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인용하여 소개한 본장의 찬양의 내용들이나 레위인들의 엄격한 직무 분담에 대한 기록들이 무의미하게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전과 제사 의식을 회복하여 신정 왕국의 전통을 이으며 여호와의 축복을을 다시 누리기를 강하게 소망하였던 본서의 일차 독자인 포로기 후대 공동체에게는 본장의 내용이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 그들은 과거 다윗과 그의 백성들의 자취를 통하여 현재 자신들이 최우선적으로 행하여야 할 일은 다름 아닌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회복이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을 것이다.
다윗의 하나님께 대한 열심은 언약궤 운반이라는 한 순간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았다.

예루살렘에서 언약궤 안치식을 마친 후에도 제사장들과 레위인을 세 워 지속적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게 하고, 또 찬양대를 세워 항상 하나님을 찬양하게 한 사실에서 나타나듯이,

다윗의 하나님께 대한 열심은 그의 생명이 유지되는 동안 식을 줄 몰랐다.

참으로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일향한 마음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을 얼마나 의식하고 사느냐,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자기를 복종시키려는 노력을 하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