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16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이르되 여호와 하나님이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에게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17 하나님이여 주께서 이것을 오히려 작게 여기시고 또 종의 집에 대하여 먼 장래까지 말씀하셨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이여 나를 존귀한 자들 같이 여기셨나이다
18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영예에 대하여 이 다윗이 다시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주께서는 주의 종을 아시나이다
19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종을 위하여 주의 뜻대로 이 모든 큰 일을 행하사 이 모든 큰 일을 알게 하셨나이다
20 여호와여 우리 귀로 들은 대로는 주와 같은 이가 없고 주 외에는 하나님이 없나이다
21 땅의 어느 한 나라가 주의 백성 이스라엘과 같으리이까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구속하시려고 나가사 크고 두려운 일로 말미암아 이름을 얻으시고 애굽에서 구속하신 자기 백성 앞에서 모든 민족을 쫓아내셨사오며
22 주께서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영원히 주의 백성으로 삼으셨사오니 여호와여 주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23 여호와여 이제 주의 종과 그의 집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영원히 견고하게 하시며 말씀하신 대로 행하사
24 견고하게 하시고 사람에게 영원히 주의 이름을 높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곧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시라 하게 하시며 주의 종 다윗의 왕조가 주 앞에서 견고히 서게 하옵소서
25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종을 위하여 왕조를 세우실 것을 이미 듣게 하셨으므로 주의 종이 주 앞에서 이 기도로 간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
26 여호와여 오직 주는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이 좋은 것으로 주의 종에게 허락하시고
27 이제 주께서 종의 왕조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두시기를 기뻐하시나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복을 주셨사오니 이 복을 영원히 누리리이다 하니라
매튜헨리/옥스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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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선 1-15절: 다윗이 성전 건측을 열망했으나 하나님이 이를 불허하시고 오히려 다윗에게 영원한 축복의 언약을 허락하시는 내용.
- 이어지는 16-27절: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전해진 여호와의 은혜로운 말씀과 언약에 대한 다윗의 응답,여호와께서 베푸신 은혜에 대한 감사의 기도.
- 16b~19절: 다윗 자신에게 베푸신 은혜에 대한 감사.
- 20-22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은혜에 대한 감사.
- 23-24절: 그 언약을 확실히 이루어 달라는 다윗의 담대한 기도
- 25-27절: 다윗 왕가의 영원한 왕권과 축복 약속에 대한 끝맺는 감사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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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감사 찬미(역대상 17:16-27)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로운 전갈을 받고서 여기서 엄숙히 답하였다. 그는 야곱의 아들들처럼 믿음으로 이 약속을 기쁘게 받아 들였으며, 그것들을 따르려 하였다(히 11:13).
그는 여기에서 그 자신을 겸손히 낮추고 그 자신의 보잘 것 없음을 고백했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그의 깊은 은혜와 사랑을 찬미하였다. 그는 열렬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미하였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서는 그가 얼마나 존귀했던가! 다윗은 이 약속에 대단히 굳은 확신을 가지고 아주 강한 믿음으로 그것을 따르려 하고 있다. 이것은 다윗이 얼마나 겸손하고, 믿음이 강하며 열렬하게 간구한 좋은 본보기를 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처럼 그에게 구하는 모든 것을 우리들에게 가능케 하신다.
이 일은 사무엘 하 7장에서도 크게 다루어져 있으므로 이제 여기에 나온 기도문의 몇 가지 표현만을 살펴 보기로 하겠으며, 이것이 사무엘하 7장의 기도문과 다른 점들을 찾아내어 몇 가지 설명을 보충하기로 하겠다.
16-19절: 자신에게 베푸신 은혜에 대한 감사.
Ⅰ. 사무엘 하에서는 "주 여호와여 인간의 규례대로 하셨나이다."하는 표현이,
여기에서는 "하나님은 나를 존귀한 자같이 여기셨나이다. 당신은 나를 위대한 자가 되게 하시고 그렇게 나를 대우하셨나이다" 로 되어 있다.
💡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대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 일개 목동 출신인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주시고 그 속한 집안이 보잘것없음에도 불구하고 왕가로 세워주신 여호와의 은혜에 감사함(설의법적으로).
- ‘이에’ : ‘여기까지’ 란 뜻
- 목동이었던 자신의 신분이나 미약한 집안 상황으로는 도저허 상상할 수 없는 위치인 왕의 자리에 도달한 것을 의미한다.
- 따라서 그 동안의 축복만으로도 바랄 것이 없을 정도로 충분하다는 고백이다.
삼하7:18 강해
👉 ‘집’
- 다윗이 현재 자기 위치에서 바라보는 ‘중심 주제는 자신의 모습과 자기 집의 모습이다.이렇듯 다윗이 자신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철저하게 자각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해 보여주신 미래의 이상에 대한 분명한 깨달음의 결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 이중에서도 ‘집'은 29절까지 이어지는 다윗의 기도의 중심 주제인데, 본문에서 다윗이 지칭하고 있는 ‘집'이란 앞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실 ‘집’과 현저한 대조를 보이는 자기의 과거 배경을 암시한다.
- 이처럼 다윗은 여호와께서 자기를 현재의 위치까지 이끌고 오신 것이 결코 자기 한 세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예비 작업이었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따라서 본문 뒤에 숨겨 있는 뉘앙스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무한한 감사와 찬양이다
- 그러하기에 더욱 자신의 모습과 자기의 자라온 배경이 비천하고 보잘 것 없다는 사실을 설의법을 사용하여 고백하며 자신에게 부어진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벅찬 감격을 나타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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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절, 하나님이여 주께서 이것을 오히려 작게 여기시고 또 종의 집에 대하여 먼 장래까지 말씀하셨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이여 나를 존귀한 자들 같이 여기셨나이다
- 직역하면 ‘오 하나님! 그런데 이것이 당신의 눈에는 작은 것이었군요' 이다.
- → 이는 목동 출신인 자신을 왕으로 세워주시고 미천한 집안을 왕가로 만들어주신 것만으로도 과분한 축복인데,
하나님께서는 이를 마처 별것이 아닌 양 간주하시고 미래에 더 큰 축복을 허락하셨음에 대한 다윗의 넘쳐나는 감격을 담고 있다.
‘또 먼 장래까지 말씀하셨사오니’
- 여호와께서 미천한 종 다윗을 위해서 다윗 자신 뿐 아니라 먼 미래의 후손에 이르기까지 그 언약을 확장시키셨음
‘나를 존귀한 자같이 여기셨나이다’
- 사무엘서 병행구절: ‘인간의 규례대로’ 란 구절의 의미,
- 풀이하면 ‘그리고 이것은 사람에게 주신 주의 선포된 결정입니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포된 결정'이란 궁극적으로 언약을 의미한다.
- → 선지자 나단을 통해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포는
-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등에게 주신 언약과 맥을 같이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 즉 다윗은 만민에게 축복의 통로가 되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 자신과 맺은 언약에 맞닿아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이를 하나님의 큰 은혜로 여기며 감사하고 있는 것이다.
- 본문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비롯한 믿옴의 조상들에게 베푸신 언약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존귀한 신분을 얻게 된 것과 같이,
- 다윗 또한 하나님의 언약으로 말미암아 그들과 같은 특별한 자리에 서게 되었음을 감격하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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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믿는 자들과의 계약 관계를 인정하시고, 비록 그들이 천하고 타락한 자들이라도 그들에게 귀한 권리를 주시며, 은총을 내리시고, 항상 그들을 위해 준비를 하고 계시며, 그들을 존귀한 자들 같이 여기신다.
또한 하나님은 그들을 구별하시어, 그가 그들에게 즐거이 부여한 그 자질대로 그들을 구별하여 다루신다.
어떤 학자들은 이것을 또다른 표현으로 읽는다. "당신은 나를 가장 존귀하신 자 곧 주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자로 여기셨나이다." 혹은 "당신은 나를 존귀하신 주 하나님의 형상대로 보도록 하셨나이다" 라고 본다. 그래서 이것은 메시야를 지적하고 있는 셈이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처럼 다윗도 믿음으로 메시야의 날을 보고 기뻐했기 때문이다.
즉 다윗은 그가 "말씀으로 된 육체를 입고 인간의 모습" 으로 오되 "하나님 아버지가 낳으신 유일한 자로서의 영광" 을 지닐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장차 그의 집에 일어날 큰 일을 말하신 것이었으며 이 예시는 그 어느 것보다도 그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비록 그가 그의 아들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성령으로 그리스도를 주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었던 것 (시 110:1)과 그를 잠깐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나 후에 "영광과 존귀로 관 씌우시리라는" 것(히 12:6, 7)을 다윗이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Ⅱ. 그 다음에 "다윗이 다시 주께 무슨 말씀을 하오리까?" 하는 구절이 여기에서는 "주의 종에게 베푼 존귀에 대하여" 라는 단어를 덧붙이고 있다(18절).
하나님은 그의 종들을 계약 속으로 받아들여 주시고, 그들과 교제를 하심으로써 그들을 매우 존귀하게 하셨다. 따라서 그들은 이보다 더 존귀하게 될 수도 없었고, 또 그렇게 되기를 바랄 필요도 없었다. 그들이 앉아서 자신의 존귀에 대해 스스로가 간구하였다면, 하나님이 말씀해 주신 것보다 더한 말은 드릴 수 없었을 것이다.
💡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존귀에 대하여’ → 삼하7:20과 병행구절이나, 본 어구는 병행구절에 없는 내용.
- 다시 번역하면, ‘당신의 종을 존귀케 하신 것에 대해’
- 존귀: (‘카보드’) — 다윗이 차지한 지위나 명성, 영예 등을 의미함.
- 어떤 인물이 가질 수 있는 당당함이나 지위로서의 영광스러운 위치에 있음을 나타내는 의미이다(삼상 4:21; 사 17:3).
- 이는 또한 인간 관계 속에서 갖게 되는 명성이나 영예(잠 11:16)나 고귀성(왕상 3:13)을 가리키거나, 각종 부나 재물(창 31:1)을 나타내기도 하는 단어.
→ 이는 앞선 본문(17절)에서 다윗 자신이 믿음의 조상들과 더불어 하나님의 언약을 수여받음으로 말미암아 탁월한 자러에 서게 된 것에 대해 감격해했던 내용과도 연관되는 것이기도 하다.
- 즉 본문에서 다윗이 수여받은 ‘카보드'는 다윗이 이미 받았고 이후에 그의 가문을 통해 이루어질 하나님의 언약과 긴밀한 연관을 가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당신의 종’ ↔ ‘존귀’란 단어와 서로 대조됨
- 다윗은 자신이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잘나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주장하기는커녕 자신을 존귀한 자로 높이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어 ‘종’ 으로 지칭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진정 존귀한 자인가?
— 하나님과 자신의 언약적 관계를 인식하고 →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자
- 사람들은 어려운 때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다가도 그 어려움이 해결되고 부와 명예를 누리게 되면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 이러한 다윗의 고백은
세상에서의 자신의 위치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의 위치 즉 하나님과 자신의 언약적 관계를 자각하고 이를 앞세우는 신앙적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 역대기 기자는 이와 같은 다윗의 모습을 통해 그 당시만 아니라 모든 세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진정한 의미에서 존귀한 자는 ⇒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자라는 사실을 암묵적으로 각인시키고 있는 것이다.
‘다윗이 다시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 주께서 자신에게 베푸신 은혜에 대하여 다윗 자신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의미이다.
- — 즉 본문은 여호와께서 자신에게 베푸신 은혜가 보답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것임을 표현한 것.
- 스스로를 ‘다윗’ 이라 표현한 이유는?
- 다윗은 감사 기도 가운데 자기 자신을 일인칭이 아닌 삼인칭 고유 명사 ‘다윗'으로 표현함.
- → 이는 자신을
왕의 신분으로 내세우지 않고 여호와 앞에서는 일 개 목동 출신의 다윗일 뿐이라는 겸손한 자세를 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주께서는 주의 종을 아시나이다’
- 앞의 본문과 연관해서 비록 다윗 자신은 자기에게 한량없는 은혜를 베푸신 여호와께 결코 보답할 수 없으나, 감사하는 마음만큼은 하나님께서 이미 알고 계실 것이라는 의미를 전달한다.
- ‘주께서는’
- 다른 모든 사람들은 다윗 자신을 몰라도 전지전능하 신 하나님 ‘바로 당신'만큼은 알고 계실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 ‘아시나이다’ (’야다으’ — 선택하다)
- → 삼하7:20 강해
- 👉 본문을 다시 번역하면,
- 자신을 영화롭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이보다 더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에 대한 다윗의 감사를 표현한 19절에 이어 본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이미 자신의 심정을 다 아시므로 더 이상 말하는 것이 무의미함을 고백함으로써 자신의 벅찬 감격을 효과적으로 나타내었다
- ‘야다’ : 알다, 외에 ‘선택하다’라는 뜻도 가지는 동사.
- 따라서 ‘선택하다'라는 의미를 감안한다면 —
- 자신은 비록 초라하고 미미하지만
-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모든 계획의 확실성은 자기의 현모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자기를 택하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에 있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 된다.
- 본문에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와 자기 집을 통하여 미래의 세대들을 향한 계획을 선포하신 것을 생각할 때,
- 반면 ‘야다으’ 를 일반적 의미인 ‘알다'로 이해한다면
- → 본문에서 다윗의 확실성은 하나님의 전지하심에 기초하고 있다고 고백하는 것이 된다, 여기서는 이 양자의 의미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 다윗은 이 고백에서 ‘다윗이’로 자신을 나타내어 —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는 결코 왕이 아닌 인간 ‘다윗’인 것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당신 바로 당신께서 당신의 종을 알고 계십니다. 주 여호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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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사무엘서에서는 "주의 말씀을 인하여" 라고 한 구절이 여기에서는 "주의 종을 위하여" (19절)로 표현되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 (레 19:13)임과 동시에 "하나님이 종" (사 42:1)이었다. 그리하여 약속이 세워짐과 동시에 모든 믿는 자들이 유익하게 된 것은 중재자의 역할을 맡은 바로 그리스도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예와 아멘" 이 되는 것(열납되는 것)은 그분 안에서이다.
그로 인해 이러한 모든 친절이 이루어질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이것이 알려질 수 있었다. 즉 그가 우리에게 모든 큰 일을 행하시었으며 이 모든 일을 알게 하셨다. 그것들은 바로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는 풍족함이었다.
만일 우리가 주 예수의 손 안에 있는 그것들을 살펴 본다면 우리는 그를 광대한 자, 오직 하나이시며 참된 광대한 자로서 찬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따라서 영광스럽게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 19절,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종을 위하여 주의 뜻대로 이 모든 큰 일을 행하사 이 모든 큰 일을 알게 하셨나이다
‘여호와여’, ‘주의 종을 위하여’
- ‘여호와여’란 호칭이 없음.
- 본절에는 ‘주의 종을 위하여’ → 사무엘서에는 ‘주의 말씀을 인하여’ 라고 표현되어 있음.
역대기 기자의 이러한 단어 선택은 의도적인 것으로 보인다.
- 사무엘서 기자: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은혜를 베푸신 사실에 대해(18절 강해 설명 참조) 하나님이 자신이 하신 말씀을 지키기 위하여 행하셨다는(삼상 16:12) 측면을 강조
- 역대기 기자는 하나님이 당신의 종으로 텍하신 다윗을 사랑하셔서 그를 위해서 행하셨다 는(삼상 22:3) 측면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이 모든 큰 일을 알게 하셨나이다’
- 큰 일
- = 앞서 언급된 다윗 가문의 영원한 왕권에 대한 여호와의 약속.
- 이 약속은
— 다윗 개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다윗 집안 전체와 이스라엘 지파 전체,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인류 전체의 운명과 연관된 광범위한 언약이므로 다윗은 ‘큰 일'이라고 표현한 것. 또한 목동 출신으로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에도 미천한 자신에게 다윗 가문의 영원한 왕권에 대한 언약이 주어진 것은 가슴 벅차도록 큰 일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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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절: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게 허락하신 은혜에 대한 감사
💡 20절, 여호와여 우리 귀로 들은 대로는 주와 같은 이가 없고 주 외에는 하나님이 없나이다
→ 여호와의 비교할 수 없는 능력과 유일신 되심을 고백
- 이와 같이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실제적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 다윗은 어떤 하나님을 경험했는가?
- 사람을 가난하게도 하고 부하게도 하며 낮추기도 하고 높이기도 하는 신, 가난한 자를 들어서 귀족과 함께 앉게 하고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는 신은 이 세상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외에는 아무도 없음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절실히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삼상 2:7.8).
- 다윗은 일개 목동 출신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어린 소년의 몸으로 블레셋의 거대한 장수 골리앗을 물리치는 경험 및 미래에 이루어질 다윗 언약의 내용 등을 통헤서 그 어느 신과도 비교할 수 없는 능력의 하나님, 그리고 유일하게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고백하게 된 것이다.
삼하7:22 강해
👉 이러므로 주는 광대하시니..
- 광대하시니
- 앞절에서 하나님의 큰 일이 다윗 자신에게 알려졌고 그 결과 하나님께서 광대하심을 확신할 수 있게 된 것.
- — 18b-21 에서 나오는 다윗 자신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와 22-24절에 나오는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
- → 즉 다윗은 자신에게 은혜를 베푸셨던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도 은혜를 베푸셨음을 감사하고 있는 것.
- 본문은 이전에는 하나님께서 광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도 광대하셨으나 그 광대하심이 비로소 하나님의 크신 일로 인해 알려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우리 귀로 들은대로는 주와 같은 이가 없고 주 외에는 참 신이 없음이니이다
- 귀로 들은대로는..
- 다윗이 눈으로 본 이야기를 하지 않고 들은 애기를 언급하고 있는 것은 모든 일어나는 큰 일들은 소문으로 퍼져나가기 때문이다.
- 여호와 하나님의 큰 일이 소문을 통해 이방인들에게 퍼져 나간 것은 라합의 예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수 2 :10). 따라서 들려오는 모든 이야기 속에서 이방신들이 하나님처럼 큰 일을 행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고 말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행사가 결코 이방 신들의 그것과 비교할 수조차 없는 것임을 의미한다.
- 이처럼 다윗은 하나님의 유일성을 실제적인 삶의 테두리 안에서 고백하고 있다.
- 참 신이 없음이니이다
- 이는 다윗이 이방신의 존재를 신적인 차원에서 다루지 않고 그저 목석에 불과한 우상들로 취급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 즉 다윗은 다신론을 철저히 배제하고 유일신 하나님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신앙으로 말미암아 다윗은 이스라엘을 신본주의적으로 다스리는 신실한 왕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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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절, 땅의 어느 한 나라가 주의 백성 이스라엘과 같으리이까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구속하시려고 나가사 크고 두려운 일로 말미암아 이름을 얻으시고 애굽에서 구속하신 자기 백성 앞에서 모든 민족을 쫓아내셨사오며
땅의 어느 한 나라가 주의 백성 이스라엘과 같으리이까
- 이 땅 어디에도 이스라엘과 같은 나라는 하나도 없음을 강조
이처럼 이스라엘이 다른 열방들과 비교 할 수 없을 정도의 차별성을 갖는 것은
- 그 민족에게 속한 자체 역량의 결과가 아니라, 그들이 다른 어떤 이방 신들과 비교할 수 없는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이기 때문이다(20절).
- 따라서 본문은 이스라엘의 우월성을 드러내기 위한 것어 아니라, 이스라엘의 가치를 배후에서 드높이시는 여호와를 간접적으로 찬양하는 것이다.
하나님(엘로힘)이 자기 백성을 구속하시려고 나가사..
- 과거 여호와께서 애굽의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접 찾아가셔서 이스라엘을 능동적으로 구속하셨다.
- ‘나가사' — 하나님의 단호한 행동.
- 구속하시려고 — ‘건져내다’, ‘해방시키다’
— 이는 과거의 출애굽 사건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이스라엘을 애굽의 압제로부터 구속해 낸 단호한 행동에 의한 결과임을 선명하게 부각시켜 준다.
- 이러한 하나님의 단호한 행동을 통해 이스라엘은 구속을 받았고 이것이 이스라엘이 열방 중에 특별한 위치를 점하게 된 이유가 된 것이다.
크고 두려운 일로 말미암아 이름을 얻으시고
- 크고 두려운 일
- 애굽을 여러가지 재앙으로 심판하시고 홍해를 가르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신 구속 사건,
- 약속의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허락하시기 위해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하신 사건
- ‘이름을’ 얻으시고 = ‘당신을 위하여 명성을 얻으셨다’ (신4:39; 수2:11)
- [신4:39] 그런즉 너는 오늘 위로 하늘에나 아래로 땅에 오직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다른 신이 없는 줄을 알아 명심하고
- [수2:11]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자기 백성 앞에서 모든 민족을 쫓아내셨사오며 →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속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거주할 땅을 위해서 이방 족속들을 몰아내셨음(신33:27)
- ‘백성 앞에서 쫓아내셨다(까라쉬)’
-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족속들과 전쟁하기 이전에 물리치셨다.
-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광경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까라쉬’ 동사
- ‘추방하다’
- ‘가나안 인들을 추방하신 것’
- ⇒ 가나안인들은 가나안땅을 하 나님의 백성에게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무력에 의해 추방되었다(수 24:12)
- 역대기 기자는,
- 그 일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으로부터 이방 족속들을 강제로 분리시키신 것 내지는 영구히 추방시키신 구체적인 역사였음을 분명하게 밝힌다.
당시 선민 이스라엘 공동체의 재건을 꿈꾸는 본서의 일차 독자들에게
- 과거 하나님의 행하신 사역을 더욱더 확연하고 구체적으로 나타냄으로
- 하나님께서 지금 그들이 당면하고 있는 구체적인 문제들과 이미 주어진 약속의 성취 과정에 함께하실 것이란 사실을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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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절, 주께서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영원히 주의 백성으로 삼으셨사오니 여호와여 주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일시적으로가 아니라 영원한 당신의 백성으로 선택하셨음
- 사무엘서 기자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맺어진 특벌한 관계의 ‘확고함' 그 자체를 강조하였다면,
- 본서의 저자는 이스라엘에게 영원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격’과 신분’을 허락하신 여호와의 주권적 행위에 보다 큰 강조점을 두었다.
- 본서 저자가 이러한 표현을 사용한 것은 다윗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자신들을 동일시할 본서의 일차 독자들에게 그들의 위치와 신분, 즉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하에 서 있는 영원한 하나님의 백성임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여호와여 주께서 저희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 ‘주께서’ = 문자적으로, ‘그리고 바로 당신이’
- 하나님 자신 즉 ‘바로 당신이' 이 백성들을 위해서 하나님되시기를 자처하셨음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백성들의 요구에 따라 만들어지거나 요청되는 이방의 신들과는 달리 ↔ 오히려 스스로 당신의 백성들을 선택하시고 그들의 하나님 되시기를 결정하시는 분임을 나타낸다.
- 저희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전적인 소유가 되었다
-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섬기는 거룩한 제사장 나라가 되었다(출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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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4절: 그 언약을 확실히 이루어 달라는 다윗의 담대한 기도
💡23절, 여호와여 이제 주의 종과 그의 집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영원히 견고하게 하시며 말씀하신 대로 행하사
‘여호와여 이제’
- 원문상 ‘웨앗타’ 라는 표현이 있음
- ⇒ 문자적으로 ‘그러니 지금’
- 지금부터 드려질 다윗 자신의 간절한 기도가 앞에서 언급되었던 감사의 내용 내지는 신앙 고백에 근거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 당시 다윗의 벅찬 감격과 하나님을 향한 간곡함을 생생하게 반영해 줌.
‘말씀하신 것을 영원히 견고하게 하시며’
- 견고케 하시며
- 역대기 본절
- (원형의 의미) 확고함, 확실성의 개념;
- (재귀 수동형으로 사용되면) ‘확립되다’(삼하7:16), ‘신뢰하다’(민12:7)란 의미를 가짐. → 이럴 경우 대개 하나님이나(신 7:9) 하나님과 맺은 언약(시 89:28)의 신실성을 강조
- 병행구절(삼하7:25)
- — ‘확실케 하옵시며’ (’하켐’) 이라 표현.
- 하켐: (원형) ‘언약을 세우다’, ‘확정하다’란 의미.
→ 인간이 한 약속의 불확실함과는 다른 하나님께서 하신 언약의 확실성을 강조. → 위에서 언급한 두 용어는 모두 동일하게 언약과 관련된 하나님의 신실함을 나타낸다
- ‘영원히’ (아드 올람) - 24절(1회), 27절(2회) 반복 사용됨.
- 다윗은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언약을 다윗 개 인어나 왕조에만 국한된 언약이 아닌 믿음의 후손들에게 모두 적용되는 광범위한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있음.
- 따라서 그의 기도 속에는 메시야의 통치를 통한 언약의 궁극적 성취가 암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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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사무엘서에서는 만군의 여호와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이라 말하고 있으나, 여기에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곧 이스라엘에게 하나님" 이라고(24절) 적혀져 있다.
-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것은 그의 이름이 "그들의 하나님" 이며, 그 스스로 그렇게 부르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 또한 그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라는 것은 그의 이름에 대한 대답으로서 그들과의 관계를 충만하게 이루시며, 그들이 기대하는 모든 일들을 행해 주신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이 나라 저 나라마다 신들이라고 불리워지는 것들이 많이 있었다. 앗수르와 애굽의 신들, 또는 하맛과 아르밧의 신들 따위, 열방의 신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신들이 이스라엘에게 대한 신들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런 신들은 이스라엘과 아무 관계도 없는 명목뿐이요 하나의 암호에 불과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 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 이 되신다. 그의 온갖 속성과 능력이 이스라엘의 유익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행복하리니, 여호와가 그의 하나님인 백성에게는 갑절의 복이 있기 때문이니라." 그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전능하신 하나님이 되실 것이다.
💡 24절, 견고하게 하시고 사람에게 영원히 주의 이름을 높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곧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시라 하게 하시며 주의 종 다윗의 왕조가 주 앞에서 견고히 서게 하옵소서
[다윗은 본문에서 자신의 가문이 ‘여호와 앞에서' 든든히 세워질 것을 강조]
- 다윗 왕조는 어떻게 유지되는가?
- 다윗의 왕조가 다윗이나 그 밖의 왕들의 인간적인 능력에 의해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도움과 보호 아래서 존속될 것.
- 다윗이 자신을 부르는 호칭 : ‘주의 종 다잇’
- 다윗이 자신을 ‘왕'으로 청하 지 않고, ‘주의 종 다윗'으로 청하여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 다윗은 자신이 일국의 왕임에도 불구하고
- 신정 왕국 이스라엘의 진정한 통치자는 하나님이시며
- 자신은 대리 통치의 사역만을 감당하는 하나님의 종임을 고백하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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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7절: 다윗 왕가의 영원한 왕권과 축복 약속에 대한 끝맺는 감사 기도
Ⅴ. 사무엘에서는 "주의 은혜로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 로 끝맺고 있는데, 그것은 거룩한 소망을 나타내는 언어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끝맺는 말이 가장 거룩한 믿음을 표하는 언어로 되어 있다. "여호와여 주께서 복을 주셨사오니 이 복을 영원히 누리리이다" (27절).
1. 하나님께서 그와 그의 집안을 축복되게 해주시겠다고 암시해 주셨으므로, 그는 용기를 얻어 복을 간구할 수 있었다. (25절)
"여호와여, 주여, 복을 주옵소서. 그러므로 모든 육체들이 주로 인해서 복을 받을 것이옵니다. 그리고 나 또한 당신이 약속된 축복을 얻었나이다."
약속은 기도할 것을 지시하고 격려해 주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 "내가 복주겠노라" 하고 말씀하셨는가? 우리는 모두 "주님 내게 복을 주소서" 하고 답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 25절,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종을 위하여 왕조를 세우실 것을 이미 듣게 하셨으므로 주의 종이 주 앞에서 이 기도로 간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 감사의 대상: ‘나의 하나님’
- (삼하7:27: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로 표현.
- ‘전쟁을 승리로 이끄시고 자신의 언약에 충실하시며 친히 당신의 백성으로 선택하신 이스라엘의 인도자가 되시는 하나님’ 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하나님의 사역과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
- (본문 : ‘나의 하나님’)
- 짧은 표현에 ‘다윗왕과 하나님과의 긴밀한 관계’ 를 부각.
‘주께서 종을 위하여 … 이미 듣게 하셨으므로’
- 하나님께서 당신의 언약과 장차 되어질 일까지도 다윗의 귀에 소상하게 말씀해주셨음을 나타낸다.
- 삼하7:27 강해: '주의 종에게 알게'
- 번역된 ‘깔리타 에트 오젠 아브데카’를 직역하면 ‘당신이 당신의 중의 귀를 벗겼나이다׳ 라고 할 수 있다.
- 이는 귀엣말을 하기 위해 귀 위에 덮인 머리카락을 들어올리는 상황을 연상케 하는 시각적 표현으로서, 비밀한 것을 소상하게 알려준다는 의미이다, 이로 보건대 다윗이 2인칭 주어를 강조하여 나타내려고 하는 바는 비밀한 것을 알게 해주신 분은 다름 아닌 바로 ‘하나님 당신' 이라는 사실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심오한 진리의 말씀을 깨달은 자는 ⇒ 하나님 앞에 감격의 심정을 토로할 수밖에 없다.
- 더구나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깨닫게 하신 비밀이 — 다윗 자신을 위하여 영원한 왕조를 세우겠다는 것이라는 점에서 다윗의 감격은 너무나 컸을 것이다.
즉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을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다윗을 위하여 먼저 집을 세워주실 것을 약속하셨던 것이다. 이러한 먼저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기 때문에 다윗은 하나님께 담대하게 기도를 드릴 수 있었던 것이다.
주의 종이… 이 기도로 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
- 다윗에게 기도할 수 있는 가능성과 용기가 열리게 된 까닭 ⇒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축복의 언약을 생생하게 알리셨기 때문에 (비밀을 듣게 하셨으므로)
- 하나님께로부터 언약을 수여받은 성도의 자세
- 자신이 언약을 받은 것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그 언약의 성취를 위하여 열심으로 간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 하나님의 언약은 그 언약을 믿고 간구하는 성도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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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절, 여호와여 오직 주는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이 좋은 것으로 주의 종에게 허락하시고
‘여호와여 오직 주는 하나님이시라’
- 다윗이 지금까지 그가 받은 놀라운 은혜와 이스라엘을 향해 베푸신 구원 행위와 인애하심을 확인하면서,
- 다시금 하나님의 하나님되심, 즉 여호와만이 신실하시고 능력을 가지신 참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더욱 명확하게 깨닫게 되었음을 나타내준다.
‘주께서 이 좋은 것으로 주의 종에게 허락하시고’
- ‘허락하시고’
- 본문처럼 여호와를 주어로 하여 강의형으로 사용되면 *‘언약하다’*란 의미를 나타.
- 이는 절대 신실하신 여호와 께서 한번 말씀하신 것은 영원 불변하는 언약으로서 반드시 성취된다는 의미.
- (병행구절 삼하7:28) — ***‘당신의 말씀이 참되시니이다’***를 첨가.
- (역대기 본절) — 반면 본서의 저자는 본문을 앞의 본문과 직접 연결시킴으로써, 참 하나님이신 여호와께서 미천한 종의 신분인 자신을 축복하셨다는 사실에 다윗이 감격하고 있음을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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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는 하나님의 축복은 진실되고 영원하다는 것을 굳게 믿고 있었으므로 진지하게 복을 간구하였다.
"주께서 복을 주셨사오니 이 복을 누리리이다." (27절)
인간은 복을 "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을 "명하는" 자가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 하나님은 뜻하신 것을 이루신다.
- 또한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신다.
- 하나님에게는 말과 행위가 다르지 않다.
- "이 복을 영원히 누리리이다." 그의 복은 취소되지 않을 것이며 훼방될 수 없을 것이다.
- 또한 그들이 받은 유익함은 언제까지나 남아있을 것이다.
💡 27 이제 주께서 종의 왕조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두시기를 기뻐하시나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복을 주셨사오니 이 복을 영원히 누리리이다 하니라
주 앞에 영원히 두시기를 기뻐하시나이다
- 다윗은 이미 복을 받았고(완료) 이에 대해 기쁨과 감사를 표현하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 역대기 기자는 — 일차 독자들에게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이 다윗을 통해 성취된 것처럼 그들 가운데서도 확실히 이루어질 것임을 확신하게 하고자 함으로 보인다.
여호와여 주께서 복을 주셨사오니
- 하나님이 언약과 관련하여 말씀하신 행위 자체가 = 복을 주시는 것.
- 믿음 = 말씀의 결과를 보지 않고도 이미 그 결과를 받은 것으 로 생각하고 그에 따른 행위
-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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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기도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과 같이(14절) "영원히" 라는 말로 끝맺음을 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한 것을 지향하고 있으니, 우리의 소망과 희망 또한 그래야 할 것이다.
💡 본장의 시작과 끝이 분명한 관련을 가지지만 서로 다른 방향에서 시작되고 정리된다.
- 시작: 여호와에 대한 다윗의 열심,
- 끝: 다윗에 대한 여호와의 열심.
- 다윗 언약 수여
처음에 다윗은 성전 건축을 열망했으나 여호와께서는 이를 거절하시고 오히려 다윗과 그 후손들을 위해 견고한 집을 마련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 다윗은 이 언약을 들음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다시금 깨달음
- 자신이 여호와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공급하는 존재가 아니라,
- 여전히 끊임없이 여호와로부터 공급받아야 할 연약한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다.
-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깨달은 후 다윗의 반응
- 이러한 깨달음을 통해서 여호와께 담대히 언약의 성취를 간구하는 신앙적 자세도 터득하게 되었다.
- 즉 성전 건축 계획은 하나님이 주신 언약을 통해 다윗 주도에서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쪽으로 방향 전환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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