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8월 14일 월요일 묵상구절 대상 19:1-19 <다윗이 암몬과 아람을 치다(삼하 10:1-19)>

미령미령 2023. 8. 14. 01:51

묵상구절

19:1 그 후에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가 죽고 그의 아들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

19:2 다윗이 이르되 하눈의 아버지 나하스가 전에 내게 호의를 베풀었으니 이제 내가 그의 아들 하눈에게 호의를 베풀리라 하고 사절들을 보내서 그의 아버지 죽음을 문상하게 하니라 다윗의 신하들이 암몬 자손의 땅에 이르러 하눈에게 나아가 문상하매

19:3 암몬 자손의 방백들이 하눈에게 말하되 왕은 다윗이 조문사절을 보낸 것이 왕의 부친을 존경함인 줄로 여기시나이까 그의 신하들이 왕에게 나아온 것이 이 땅을 엿보고 정탐하여 전복시키고자 함이 아니니이까 하는지라

19:4 하눈이 이에 다윗의 신하들을 잡아 그들의 수염을 깎고 그 의복을 볼기 중간까지 자르고 돌려보내매

19:5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가서 그 사람들이 당한 일을 말하니라 그 사람들이 심히 부끄러워하므로 다윗이 그들을 맞으러 보내 왕이 이르기를 너희는 수염이 자라기까지 여리고에 머물다가 돌아오라 하니라

19:6 암몬 자손이 자기가 다윗에게 밉게 한 줄 안지라 하눈과 암몬 자손은 더불어 은 천 달란트를 아람 나하라임과 아람마아가와 소바에 보내 병거와 마병을 삯 내되

19:7 곧 병거 삼만 이천 대와 마아가 왕과 그의 군대를 고용하였더니 그들이 와서 메드바 앞에 진 치매 암몬 자손이 그 모든 성읍으로부터 모여 와서 싸우려 한지라

19:8 다윗이 듣고 요압과 용사의 온 무리를 보냈더니

19:9 암몬 자손은 나가서 성문 앞에 진을 치고 도우러 온 여러 왕은 따로 들에 있더라

19:10 요압이 앞 뒤에 친 적진을 보고 이스라엘에서 뽑은 자 중에서 또 뽑아 아람 사람을 대하여 진을 치고

19:11 그 남은 무리는 그의 아우 아비새의 수하에 맡겨 암몬 자손을 대하여 진을 치게 하고

19:12 이르되 만일 아람 사람이 나보다 강하면 네가 나를 돕고 만일 암몬 자손이 너보다 강하면 내가 너를 도우리라

19:13 너는 힘을 내라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힘을 내자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19:14 요압과 그 추종자가 싸우려고 아람 사람 앞에 나아가니 그들이 그 앞에서 도망하고

19:15 암몬 자손은 아람 사람이 도망함을 보고 그들도 요압의 아우 아비새 앞에서 도망하여 성읍으로 들어간지라 이에 요압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니라

19:16 아람 사람이 자기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였음을 보고 사신을 보내 강 건너편에 있는 아람 사람을 불러내니 하닷에셀의 군대사령관 소박이 그들을 거느린지라

19:17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전하매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모으고 요단을 건너 아람 사람에게 이르러 그들을 향하여 진을 치니라 다윗이 아람 사람을 향하여 진을 치매 그들이 다윗과 맞서 싸우더니

19:18 아람 사람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한지라 다윗이 아람 병거 칠천 대의 군사와 보병 사만 명을 죽이고 또 군대 지휘관 소박을 죽이매

19:19 하닷에셀의 부하들이 자기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였음을 보고 다윗과 더불어 화친하여 섬기고 그 후로는 아람 사람이 암몬 자손 돕기를 원하지 아니하였더라

 

매튜헨리/옥스퍼드

💡
  • 18장(앞장)
  • 이스라엘 남서쪽에 있는 블레셋과 남동쪽에 있는 모압과 소바와 아람 등의 북방 세력 및 남방 에돔을 정복한 사실과(18:1-13) 국가의 고위 관료들을 임명하여 나라의 조직을 정비한 사실을(18:14-17) 소개한 바 있다.
  • 19장(본장)
    • 암몬의 왕 하눈이 다윗의 조문 사절단을 모욕한 사실과
    • 이로 인해 양국간에 전쟁이 발발한 사실,
    • 그리고 전쟁의 결과로서 다윗의 암몬•아람 연함군 격퇴 사실을 기록.
    즉 본장은 다윗의 정복 사업을 소개하는 18-20장의 후반부.
  • 이제 이에 이어지는 본장에서는
[병행구절과의 비교, 역대기서 저자의 의도]
  • 본장의 내용 전체는 앞장이 병행 문단인 삼하 8:1-18의 내용과 거의 유사하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병행 문단인 삼하 10:1-19과 거의 유사하다.
  • 이처럼 앞장과 본장이 사무엘서의 병행 문단들과 그 내용이 거의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삼하 9:1-13에 나오는 요나단과의 언약을 기억한 다윗이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선대한 사실은 완전히 생략되어 있다.
  • 역대기서 저자는 사무엘-열왕기서와 역사 기술 범위가 동일한 왕정 시대의 일들을 다루나 다윗 왕•솔로몬 왕• 남유다의 여러 왕들을 중심으로 하여 선민 역사의 영속성을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정통성을 상실한 사울 가문과 관계된 내용은 그것이 비록 다윗의 선행에 관계된 일이라 할지라도 과감하게 생략하여 버린 것이다.

좌절된 다윗의 친절(역대상 19:1-5)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1. 백성들끼리 서로 친절하게 지내고 특히 서로 감사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다윗은 하눈이 그의 이웃이므로 그에게 경의를 표하려 하였다. 믿음은 우리에게 모든 사람들을 정중하고 친절하게 대하며, 그들을 영예롭게 하고 우리와 함께 있는 자들에게 언제나 친절을 베풀 준비를 하라고 가르친다. 뿐만 아니라 믿음이 다르다는 것이 여기에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외에도 다윗은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보여준 친절을 기억하고 있었다. 친절을 입은 자들은 기회와 능력이 있을 때 그 친절을 되돌려 주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부모로부터 은덕을 받은 자들은 부모들이 죽었을 때는, 그것을 자손들에게 돌려 주어야 한다.

1-5절: 이스라엘과 암몬 간의 관계가 깨진 계기가 된 다윗의 조문 사절에 대한 하눈의 모욕 사건

💡 1-2절: 암몬의 왕 나하스가 죽자 다윗이 암몬과의 계속적인 화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조문 사절을 보내 문상하게 함.

19:1 그 후에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가 죽고 그의 아들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


[암몬 자손]
  • ‘암몬 자손'은 아브라함의 조카인 룻이 그의 둘째 딸과 근친 상간하여 태어난 ‘벤암미'의 후손(창 19:30-38).
  • 그들은 사해 복동쪽에 거주했는데 이러한 지리적 • 혈연적 유대 관계로 인하여 선민 이스라엘과는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 하나님께서도 이들을 이스라엘 의 형제와 같은 족속으로 인정하시고 출애굽 광야 여정 중 이스라엘에게 이들을 공격하는 것을 금 지하셨다(신 2:19.37).
  • 그러나 이들은 당시 발람을 통헤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시도하였고 실패하 자 ‘바알브올 사건'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유혹하여 죄에 빠지게 하였다.
  • 뿐만 아니라 이들은 사사 시대에도 자주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괴롭혔다(신 23:3.4; 삿 3:13; 삼상 11:1-3; 삼하 10:1- 4; 왕하 24:2; 느 4:3.7,8).
  • 그런데 다윗과 나하스의 시대에는 이스라엘과 암몬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던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는 나하스의 아들로서 나하스에 이어 암몬의 왕이 된 하눈의 어러석은 행동으로 인하여 깨어지고 말았다
[병행구절과 비교]
  • 사무엘서: 다윗과 갈등을 빚게 되는 하눈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가짐.
  • 역대기서: 다윗과 좋은 관계를 가졌던 나하스가 이 세상에 벗는 상황에서 갈등이 발생한 점에 더 큰 관심.
19:2 다윗이 이르되 하눈의 아버지 나하스가 전에 내게 호의를 베풀었으니 이제 내가 그의 아들 하눈에게 호의를 베풀리라 하고 사절들을 보내서 그의 아버지 죽음을 문상하게 하니라 다윗의 신하들이 암몬 자손의 땅에 이르러 하눈에게 나아가 문상하매
  • 다윗 왕은 과거 자신에게 은혜를 끼친 자들에 대해서 비록 그들이 이방인이라고 할지라도 그 행위를 잊지 않고 갚는 신의 있는 사람이었다.
 📎 삼하10:2 강해
이러한 호의는 나하스의 아들에게 베푸는 일방적 호의가 아니라, 원문은 명백하게 다윗의 행동이 언약의 동반 관계에서 기인한 것임을 알려주고 있음.
이러한 측면에서 본장의 시작은 제9장과 매우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즉 다윗은 대내적으로는 죽은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에게 언약의 의무를 수행함으로써 국민 통합을 되했으며, 대외적으로는 죽은 암몬 왕 나하스의 아들 하눈과 언약을 갱신함으로써 국제적인 유대 관계를 더욱 굳게 다지려 했던 것이다.

 

 💡 3-4절: 다윗의 조치에 대한 암몬 왕 하눈의 반응

19:3 암몬 자손의 방백들이 하눈에게 말하되 왕은 다윗이 조문사절을 보낸 것이 왕의 부친을 존경함인 줄로 여기시나이까 그의 신하들이 왕에게 나아온 것이 이 땅을 엿보고 정탐하여 전복시키고자 함이 아니니이까 하는지라
19:4 하눈이 이에 다윗의 신하들을 잡아 그들의 수염을 깎고 그 의복을 볼기 중간까지 자르고 돌려보내매


[하눈에 다윗 사절단을 모욕한 원인]
  • 하눈에 대한 암몬 방백들의 그릇된 충고 때문.
[사절단의 당한 수치의 의미]
  • 고대 근동에서 수염을 깎이는 일 최대의 수치였다(사 7:20; 렘 41:5).
  • 암몬의 하눈은 이러한 모욕에 의복의 중동 볼기까지 자르는 모욕을 더하였다. 이는 엉덩이를 외부로 보이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이 역시 근동 사람들에게 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모욕적 행위.
📎 삼하10:4 강해

1. 수염을 절반을 깎고,
  • 먼저 하눈은 다윗의 조문 사절들의 수염 절반을 깎았다. 사실 애도의 표시로서 수염을 깎는 것은 고대 근동의 전통적인 관습가운데 하나였다(사 15:2; 렘 41:5; 48:37). 그러나 당시 명에와 권위를 상징했던 수염을 강제로 깎는 것은 최고의 모욕과 수치를 안겨주는 행위였다(사 7:20).
  • 뿐만 아니라 하눈은 다윗의 조문 사절의 수염을 절반만 깎았다. 이는 수염 길이의 절반을 잘랐다는 의미가 아니라 보기 좋게 가꾼 수염의 한쪽 부분만을 잘라 우스꽝스러운 모양으로 만들었음을 나타낸다


    2.의복을 중동 볼기까지 자름
    • 의복의 절반 부분(중동)만 잘랐다는건 속옷을 입지 않는 유대인들의 엉덩이를 강제로 드러내어 수치를 안겨주었다는 것으로서 이는 전쟁 포로에게나 가하는 관행이었다(사20:4).
    • 외교 사절들을 그러한 모습으로 돌려보낸 것은 곧 그들을 보낸 왕과 그 나라를 모욕한 것으로 일종의 선전 포고와도 같은 것이었다.
    • 따라서 이런 행위에는 상대방에게 극한 수치감을 주고자 하는 하눈의 정치적 의도가 담겨있었다. 
 

 

2. 옛 속담에 "악은 악인에게서 난다" (삼상 24:13)고 하였다. 악한 자는 악한 말을 할 것이며, 비천한 도구는 악한 일을 하여 "바른 말을 하는 자들을 거짓말로 멸할 것이다" (사 32:6, 7). 야비한 자들과 악의를 품은 자들은 흔히 아무 이유 없이 다른 사람들을 의심하는 경향이 있다. 하눈의 방백들은 다윗같이 훌륭하고 힘센 자가 마치 천한 일을 할 필요가 있는 것처럼(만일 다윗이 암몬을 칠 의도가 있었다면 그는 염탐을 하는 부정한 수단을 쓰지 않고 직접 군사를 이끌고 갔을 것이다) 혹은 이렇게 덕 있고 영예로운 자가 마치 야비한 일을 행하려고 한다는 듯, 다윗의 심복들이 염탐하러 온 것이라는 정보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하만은 이 이야기를 곧이 듣고 다윗의 심복들을 극악하게 대우하였다. 결국 국가간의 율법을 어겼다.

3. 주인은 그의 종들을 보호하여야 하며 그들이 일을 행하는 도중 손상이나 해를 입었다면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돌봐 주어야 한다. 다윗은 그의 사신들에게 그렇게 행하였다(5절). 그리스도도 그의 종들을 위해 이같이 행하실 것이다. 이처럼 모든 주인들은 "그들의 종들에게 의롭고 공평한 대우를 해야" 할 것이다.

💡 5절,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가서 그 사람들이 당한 일을 말하니라 그 사람들이 심히 부끄러워하므로 다윗이 그들을 맞으러 보내 왕이 이르기를 너희는 수염이 자라기까지 여리고에 머물다가 돌아오라 하니라
  • 본절은 다윗이 신정 왕국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서 국가적으로 난감한 일을 당하여 이를 잘 수습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 삼하10:5 강해
원문은 그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고 있느냐 하는 개인적인 감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이 암몬 사람들에게 객관적으로 수치를 당했다는 사실 자체를 부각시키고 있다.
때문에 다윗은 그 사람들이 당한 수치를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을 의도로 그들에게 사람을 보내어 여리고에 머물게 한 것이다.
  • 특히 여리고에 머물게 한 것은
    → 여리고가 '암몬에서 가까운 지역에 위치해 있어 —' 사절들이 수치스런 모습으로 긴 거리를 이동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 그리고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가나안에 입성할 때 하나님의 도움으로 첫번째로 승전을 거둔 여리고에 머물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을 모독한 암몬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징벌을 가하겠다는 의지를 암시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암몬족의 패전(역대상 19:6-19)

  1. 남을 망하게 하고자 하는 죄인들은 결국 그들 자신이 멸망에 이르게 된다.

암몬 자손은 "그들이 다윗에게 밉게 한 줄을" 알았다. 그들이 다윗을 불쾌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의 왕" 이신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거슬려 악을 옹호하려 하였고 나라들간의 법을 더럽히려 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들은 서로간의 화평을 위해 그들 자신을 낮추고 그들이 다윗에게 해한 대가를 달게 받으려 했어야 지혜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렇게 하는 대신 싸움을 준비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을 멸하려는 의도를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다윗의 손 앞으로 스스로 나아왔다.

 💡 6-7절: 암몬 자손이 스스로 위기 의식을 느끼고 아람 용병을 고용하여 연합군을 만들어 이스라엘을 공격한 사실


19:6 암몬 자손이 자기가 다윗에게 밉게 한 줄 안지라 하눈과 암몬 자손은 더불어 은 천 달란트를 아람 나하라임과 아람마아가와 소바에 보내 병거와 마병을 삯 내되


[다윗의 덕스러움]

  • (병행구절 삼하10:6) 과 차이점
  • → 역대기 기자는 이스라엘에게 해를 가한 암몬 자손들을 미워한다는 의미를 배제시켜 다윗의 덕스러움을 강조하려 함.
  • 암몬 자손들은 자신들의 잘못에 대하여 스스로 발이 저려 과도한 군사 조치를 취했다. 이 전쟁의 책임은 전적으로 암몬 왕 하눈과 그 방백들에게 있지 다윗과 이스라엘과는 무관한 것.
  • 이러한 본문의 내용은 일면 전쟁의 책임 관계 뿐만 아니라 암몬 왕 하눈이 하나님 어 택하신 백성들을 대적하여 유발한 이 전쟁의 추이가 어찌될 것인지를 예견하게 됨.
[하눈이 은 일천 달란트를 들여 이웃 나라로부터 군사들과 전쟁에 필요한 장비들을 빌림]
  • 하눈의 그릇된 판단과 호전성 ↔ 반면, 다윗은 평화를 사랑하는 자임을 알 수 있음.
  • 암몬은 이런 막대한 돈을 들여 아람 용병까지 고용했지만 이스라엘의 군대에 패배하고 말았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13절) 아무리 강한 물리적 힘이라 할지라도 물리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실례이다. 
  • 즉 역대기 기자는 사무엘서에는 없는 본문의 표현을 삽입하여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당할 자가 없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19:7 곧 병거 삼만 이천 대와 마아가 왕과 그의 군대를 고용하였더니 그들이 와서 메드바 앞에 진 치매 암몬 자손이 그 모든 성읍으로부터 모여 와서 싸우려 한지라
19:8 다윗이 듣고 요압과 용사의 온 무리를 보냈더니
19:9 암몬 자손은 나가서 성문 앞에 진을 치고 도우러 온 여러 왕은 따로 들에 있더라


 📎 삼하10:7 강해
[역대기 기록과 차이점]
  • 본서 저자는 본문에서 대다수의 용병이 보병이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는 반면 역대기 저자는 당시로서는 최첨단 장비라 할 수 있는 병거와 신속한 기동력을 갖춘 마병까지 고용했음을 강조하는 표현 방법을 사용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본절은 암몬과 아람의 연합군이 결성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다윗의 신속한 대응을 보여준다. ‘다윗이 듣고’ 로 번역된 ‘와이쉬마으’ 는 와우 계속법으로서 앞의 사건의 진행을 바로 이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5절에서 이미 설명했듯이 다윗이 아람 사람들의 움직임을 들었던 것은 당시 다윗에게 국제 정세에 대한 정보를 신속하게 전달해줄 정보원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이스라엘이 치르는 전쟁은 암몬, 아람 연합군과의 전쟁.
다윗과 요압이 더불어 출전시킨 대상 ‘용사의 온 무리’ 는 숙련된 군인들을 지칭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고 or 이스라엘 상비군 전체가 동원되었을 수도 있다.

  • 암몬의 주력 부대가 이스라엘과 전면전을 펼치기 위하여 성문 앞에 진친 반면 아람의 용병들은 따로 들에 진쳤다. → 이는 이스라엘 군대가 성문 앞에 진친 암몬 군대를 공격할 때 후방에서 이스라엘을 협공하기 위한 작전을 구사하였음을 보여준다. 

2. 용감한 자들은 어려움을 당할 때 더욱 용기 있게 되고 활기를 얻게 된다. 요압은 자기 앞뒤에 적진이 쳐 있는 것을 보았을 때(10절), 그는 후퇴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의 결심을 더욱 확고히 하였다. 비록 그는 그의 군사를 두 배로 할 수 없었지만 그들을 둘로 나누어 그 자신이 포위된 것을 알고서도 용감한 자답게 담대히 말했을 뿐만 아니라 또 그렇게 행동하였다. 그는 그의 아우와 서로 이 싸움에서 도와 줄 것을 약속하였고(12절), 그 자신과 남은 무리들을 격려하여 그들 자신의 영광과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그들 나라의 유익함을 위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들의 영예로운 임무를 다해 담대히 싸워줄 것을 당부하였다.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

 💡 10-13절: 요압이 적들의 포위 공격에 대한 작전을 세우며 전의를 다짐

19:10 요압이 앞 뒤에 친 적진을 보고 이스라엘에서 뽑은 자 중에서 또 뽑아 아람 사람을 대하여 진을 치고
19:11 그 남은 무리는 그의 아우 아비새의 수하에 맡겨 암몬 자손을 대하여 진을 치게 하고


 📎 삼하10:9 강해
갑작스럽게 뒤에서도 나타난 대적들은 요압에게 큰 위협이 되었을 것이다. 이에 대하여 요압은 과감한 전락을 구사했는데, 이때 구사한 대응 전략은 부대를 두 개로 나누어 분산 공격하되 아람 사람을 선제 공격하는 것이다.
이처럼 아람 사람에 대하여 선제 공격을 할 뿐만 아니라 뺀 자 중에 또 뺀 자, 즉 가장 뛰어난 자들을 골라 싸우게 한 것은 이 전쟁이 실제로는 암몬과의 전쟁이었기 때문에 암몬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나오리라는 전제에서였다.
반면 상대적으로 아람 사람들은 돈을 받고 고용된 자들이었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싸우기보다는 전세가 불리할 때에는 쉽게 도망칠 수 있는 자들이었다.
따라서 요압은
  • 강한 전력을 가진 암몬 자손에 대하여는 공격을 저지하는 데 주력하는 한편
  • 약한 전력을 가진 아람 사람에 대하여는 적극적으로 공격하여 초견에 승리함으로써 적의 사기를 꺾고자 한 것이다.
→ 상대적으로 사명감이 적은 아람의 용병들을 먼저 공격하여 기선을 제압하려 한 것.
이로 볼 때 요압은 용장이었을 뿐 아니라 위기의 상황 가운데서도 냉철하게 사태를 파악하여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지장이었음을 알 수 있다. .



[’진치게 하고’ → 이스라엘 군사들의 자발적 순종]
  • 사무엘서
    • 요압의 강력한 지도력(요압이 주어)을 강조함.
    • 요압을 통한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부각시킴.
  • 역대기서
    • 이스라엘 군사들의 자발적 순종이 강조됨(군사’들’이 주어)
    • 각각의 사람들의 자발적 순종이 승리의 원동력임을 부각시킴.
    → 이는 본서의 일차 독자인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어려운 여건 가운데서도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자발적으로 순종한다먼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임을 교훈하기 위한 저자의 의도에 따른 것이다.



19:12 이르되 만일 아람 사람이 나보다 강하면 네가 나를 돕고 만일 암몬 자손이 너보다 강하면 내가 너를 도우리라


[요압의 신앙적 발언]
  • 요압은 적의 포위를 통한 혐공 작전에도 위축되지 않고 적절하게 대응하며 여호와의 도움을 구한다. → 이 전쟁이 요압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의 승리로 끝날 것이라는 강한 암시를 받을 수 있다.
‘돕고’ → 삼하, 역대기 단어의 차이
→ 요압이 아비새에게 약속한 ‘도움’에 대해
  • 사무엘서 (’리슈아’)
    • 전쟁의 문맥에서 ‘구출’(deliverance)을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
    • 단순히 외적이고 군사적인 구출의 이름을 나타내기 위함.
  • 역대기서 (’리트슈아’)
    • 하나님께서 인간의 물리적이고 군사적인 힘을 빌어 압제로부터 구출해 주시는 것.
    •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군사적 구출의 의미.
    • 요압과 아비새의 상호 도움을 주는 행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다는 뉘앙스가 포함되어 있는 것.


19:13 너는 힘을 내라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힘을 내자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 요압은 아비새에게 전쟁에 임하기 전에
  • 모든 일을 여호와께 맡기고
  •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성읍을 위하여 용감히 싸우자고 신앙적으로 독려함.
  • 요압이 여호와의 전쟁에 임하는 아비새를 독려하는 모습에 대해 역대기 기자가 사무엘서 기자에 비해 훨씬 더 적극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 이는 본서 저자가 바벨론 포로에서 부푼 꿈을 안고 귀환하여 스룹바벨 성전을 재건하였으며, 그로부터 70여년의 세월이 흘렀으나 하나님의 영광은 임하지 않고 오히려 대적들로부터 노략과 비웃음을 당하는 본서의 일차 독자들에게 
    과거 불리한 여건 가운데서도 투철한 신앙을 가지고 난관을 훌륭하게 극복한 요압의 면모를 보다 강조해 전달함으로써, 그들 역시 현실적 난관을 극복하는 용기를 갖도록 하기 위함이다.
📎 삼하10:12 강해

1.담대하라 (강하라, 단호하라, 견고하라)
→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감정적인 동요 없이 의지적인 결단을 굽히지 말라는 촉구.

2.담대하라 (우리가 힘을 쏟자, 힘을 내자, 용기를 가지자 등’

→ 즉 요압은 적의 전술에 말려들어 전쟁의 상황이 이스라엘에게 매우 불리하게 여겨질 수 있는 상황에서 단결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 말은 군사들의 감정적 동요를 최소화하기 위한 격려의 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결사 각오의 자세로 모든 힘을 다하여 싸우자는 지도자의 단호한 의지의 표명이다.
이러한 두 번에 걸친 요압의 촉구와 의지 표명의 근본 동기는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란 말에 잘 나타나 있다.
  • 먼저 ‘우리 백성’ 과 함께 쓰인 ‘하나님의 성읍들' 이란 표현에는 ⇒ 민족적인 차원을 넘어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신정 왕국이라는 이해가 전제되어 있다.
  • 여기서 요압이 ‘하나님의 땅’ 이란 표현을 쓰지 않고 ‘하나님의 성읍들’ 이란 표현을 쓴 것은 아마도 이스라엘의 정복 역사 가운데서 드러난 하나님의 승리의 역사가 땅 전체를 한꺼번에 취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성읍 하나하나가 무너지는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에 적군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가나안 정복 과정에서 드러난 빛나는 하나님의 승리의 역사를 더 상세하고 실제적으로 나타내려 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 또 한편으로 이러한 표현에는 지금 자신들이 수행하는 전쟁이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기업으로 주신 성읍을 보호하는 거룩한 전쟁이라는 자각을 가지고 전쟁에 임하여야 함을 촉구하는 의미도 포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글 개역 성경의 번역에 따르면 전쟁의 승패는 여호와께 달린 것이며 자신들은 승패와 관계없이 단지 그 결과를 하나님의 선한 뜻으로 알고 수용하겠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그러나 원문의 뉘앙스는 이와 완전히 다르다.
→ 원문에 따른 본문은 여호와께서 행하시기를 바라는 기원이 아니라 선하게 여기시는 대로 행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표현한 것이다.


선히 여기시는 대로
⇒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그의 눈에 좋은 것을’
  • 요압은 ‘하나님의 눈’ 이란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 금의 상황을 하나님이 지켜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확신했으며,
    • 그 상황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기준에서 선한 일,
      즉 거룩한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주실 것임을 확신하고 그 신앙을 입으로 고백한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여호와께서 주시는 승리를 확신하고 나아간 요압에게 대적들은 어이없이 무너져 내렸다.
💡 14-15절: 이스라엘 군대와 암몬, 아랍 연합군의 접전 및 이스라엘의 승리


19:14 요압과 그 추종자가 싸우려고 아람 사람 앞에 나아가니 그들이 그 앞에서 도망하고


아람 사람 ‘앞에' (리프네)
  • ‘앞에’ : 어떤 대상과 싸우기 위해 얼굴과 얼굴을 맞댈 정도로 가까이 다가간 모습.
    → 이러한 표현 역시 역대기 기자가 **본서의 일차 독자들로 하여금**
    • 그들이 처한 어려운 형편과 당면한 과제들에 대해, 그리고 주변의 대적들에 대해
    • 회피하지 말고 믿음을 가지고
    • 담대히 맞서 싸우도록 격려하기 위하여 과거의 상황을 강조적으로 묘사.
19:15 암몬 자손은 아람 사람이 도망함을 보고 그들도 요압의 아우 아비새 앞에서 도망하여 성읍으로 들어간지라 이에 요압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니라


 📎 삼하10:13,14 강해

요압과 그 군대가 하나님의 인도하에 하나가 되었다.

더욱이 지금까지의 상황 전개로 볼 때 치열하게 전쟁을 치를 것이 예상되었는데, 의외로 전쟁에 대한 묘사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단지 아람 사람들이 싸워 보지도 않고 도망친 사실만이 언급되어 나온다.

물론 이는 용장 요압이 이끌며 굳은 신앙으로 무장된 이스라엘의 최정예 부대의 공격으로 아람 군대가 전의를 상실하고 도망하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아람 군대는 돈을 받고 싸우는 용병이었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싸울 의욕이 없었다고 볼 수 있으며, 또한 성을 배후에 두고 진을 친 암몬과는 다르게 들판에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전열이 급속히 무너졌다고 볼 수도 있다.

이와 같이 전투에 대한 기록을 전적으로 생략한 기술을 통해서 저자는 이 전쟁이
  • 요압에 의하여 진행된 것이 아니라
  •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신 전쟁이란 사실을 매우 명료하게 암시했다고 볼 수 있다.
14절에는,
  • 13절의 아람 사람들의 폐퇴에 이어 암몬 자손들의 폐퇴와 이스라엘의 개선이 기록되어 있음.
  • 암몬 자손들은 그들이 큰 돈을 들여 고용한 아람 사람들이 너무나 무력하게 도망치자 더 이상 싸워 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랍바성으로 도망쳐 들어갔다.
    그들 자신의 힘만으로는 애초부터 이스라엘을 이길 수 없었기 때문에 아람의 용병을 고용한 것인데, 아람 용병이 도망간 상황에서 전혀 승리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자 굳건한 요새인 랍바성으로 도망한 것이다.
    그런데 이때 이스라엘이 람바성을 공략하지 않았던 것은 그 성이 너무나 견고했고 당시는 전쟁하기에 부적합한 우기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 암몬이 랍바성으로 도망해 들어감으로 인해 이스라엘은 아직 자신들이 당한 수치(4절)를 해결하지 못한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아람 역시 이스라엘에게 패배당한 수치를 어떤 식으로든 해결하려 할 것이 분명하였다. 그러므로 비록 본절에는 서로가 자기 진영으로 돌아갔다고 언급되어 있지만 독자들은 이를 통해 또다시 전쟁이 발발할 것이란 사실을 충분히 예감하게 된다. 

 

3. 정의와 공평을 대적하는 기교와 힘은 아무리 거대한 것이라 할지라도 헛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암몬 사람들은 그들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즉 그들은 가능한 한 모든 군사력을 싸움터에 동원시켰고 최대한의 전략을 기울였다. 그러나 그것은 그릇된 동기를 지니고 있었고, 악을 옹호하려는 행위였으므로, 그들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고 최악의 사태를 당하게 되었다. 결국 의가 모든 불의를 극복하고 승리하게 된다.

4. 그들이 다시 모여 세력을 강화한다 해도 하나님이 그들 편에 계시지 않으므로 소용없는 일이었다. 아람 사람들은 비록 이 일의 공로와는 전혀 관련되지 않고, 단지 돈으로 고용된 자들이었지만 그들이 패하였을 때 그들의 영예를 되찾으리라 생각하여 유브라데강 건너편에 있는 아람 사람들의 도움을 청했으나, 그것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들도 여전히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18절).

그들중 칠천 명이 죽임을 당하였는데, 이들은 700승의 병거에 타고 있던 자들이라 전해지고 있다(삼하 10:18). 왜냐하면 바다에서 싸우는 군사들에게는 열 사람당 한 개의 대포가 배당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육지에서 싸우는 자들에게도 열 사람당 한 개의 병거가 할당되기 때문이다.

💡 16-19절: 아람이 무너진 민족 자긍심을 회복하기 위하여 거국적으로 군사를 일으켜 진격하였으나 다윗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에 크게 패하고 속국이 되었음.

19:16 아람 사람이 자기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였음을 보고 사신을 보내 강 건너편에 있는 아람 사람을 불러내니 하닷에셀의 군대사령관 소박이 그들을 거느린지라

📎 삼하10:15-16 강해
‘다 모이매’ → 수동적으로 모였음.
  • 16절의 내용으로 볼 때 이러한 일은 하닷에셀이 주도하여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제 그들은 암몬을 돕는 일부의 용병의 수준이 아니라 아람 사람들 전체를 모아 전면전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17절에서 요압이 아닌 다윗이 전장에 참여한 것을 볼 때도 앞선 전쟁과는 다른 이 전쟁의 규모를 엿볼 수 있다.
삼하 8:3-8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미 다윗은 하닷에셀과 그의 세력을 물리쳤으며 그들을 속국으로 삼았다. 따라서 본절을 통해 그가 다윗과 맺은 종주권 조약을 깨고 반역을 일으켰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하닷에셀의 반역은 이미 그 지역이 이스라엘에 종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그 지역에 수비대를 두었던 것을 통해서도 충분히 예상되었던 사실이다(8:6).
유브라데강 이편에서 세력을 잃었던 하닷에셀은 곧 강 건너편에 있는 아람 사람들의 도움을 구하여 세력 회복을 시도했다.



19:17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전하매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모으고 요단을 건너 아람 사람에게 이르러 그들을 향하여 진을 치니라 다윗이 아람 사람을 향하여 진을 치매 그들이 다윗과 맞서 싸우더니
  • 다윗은 아람이 전군을 동원하여 전쟁을 준비한다는 정보를 듣자마자 신속하게 이스라엘 전군을 동원하고 과거 요압을 지휘관으로 내세운 것과는 달리 자신이 친히 지휘하여 요단강을 건너 적극적인 공세를 취했다.


19:18 아람 사람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한지라 다윗이 아람 병거 칠천 대의 군사와 보병 사만 명을 죽이고 또 군대 지휘관 소박을 죽이매

5. "자기들에게 속하지 아니하는 분쟁에 끼어 들어" 그들 자신이 상함을 입었다는 것을 아는 자들은 마침내 자기들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되고, 더 이상 그런 일에 간섭하려 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이 승리하였다는 것을 알게 된 아람 사람들은 암몬 사람들과의 동맹을 끊고 더 이상 그들을 도우려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윗으로 더불어 화친하여 섬겼다" (19절). 하나님을 대적하여 헛되이 "훼방하는 자" 들은 이처럼 "빨리 그와 화해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다. 그런 자들은 하나님의 종이 되게 하자. 왜냐하면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한은 모두 스스로 파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19:19 하닷에셀의 부하들이 자기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였음을 보고 다윗과 더불어 화친하여 섬기고 그 후로는 아람 사람이 암몬 자손 돕기를 원하지 아니하였더라


[아람 국가들이 다윗과 더불어 화친함]
  • 화친의 대상: ‘다윗과’ 더불어
  • → 본서 저자가 독자들의 관심을 하나님의 통치를 구현해야 할 선민 이스라엘의 이상적 통치의 모델이라 할 수 있는 다윗에게 보다 집중시키기 위해서.
[아람 족속들이 다시는 암몬을 돕기를 싫어함]
  • 이는 아람 족속들이 암몬을 다시 도울 경우 또 다윗으로부터 공 격당할까봐 두려워하여 암몬을 돕지 않았다는 의미.
  • 그러나 본문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전쟁의 승패를 떠나 돕는 것 자체를 싫어했다는, 즉 그들과의 관계가 아예 소원해졌다는 보다 강한 의미를 전달한다.

     📎 삼하10:19 강해
    본장을 끝내는 ‘이러므로 아람 사람들이 두려워하여 다시는 암몬 자손을 돕지 아니하니라’ 란 문장은
    • → 아람과 이스라엘 관계에 대한 결론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아람과 암몬의 관계에 대한 결론**이다.
    • 이는 본장이 암몬과의 사건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암몬에 대한 언급으로 끝맺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 이스라엘과 아람 사이에 맺은 언약의 주된 내용이 아람과 암몬의 연대를 끊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로 보건대 14절에서 암몬이 원상 복귀되었던 것처럼 보인 것은 결코 전쟁의 최종 결과이거나 진정한 의미에서의 원상 복귀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본장의 결론에서 알 수 있듯이 오히려 암몬은 국제 사회에서 군사적으로 고립되는 결과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곧이어 군사적으로 고립된 암몬과 이스라엘의 또 다른 접전이 있을 것을 암시하는 역할도 한다.
[결론]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본장 전체는 앞장과 마찬가지로 다윗의 정복 사업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즉 본서 저자는 18-20장에서 이스라엘 전체 역사에 었어서 최전성기를 구가하였던 다윗의 승리자로서의 면모를 집중 조명함으로써,
  • 주변 나라들의 집요한 방해로 선민 이스라엘 공동체의 영광을 회복하고 재건헤야 할
    시대적 사명을 망각하고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있던 본서의 일차 독자,
     포로기 후대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고자 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