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21:1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21:2 다윗이 요압과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가서 브엘세바에서부터 단까지 이스라엘을 계수하고 돌아와 내게 보고하여 그 수효를 알게 하라 하니
21:3 요압이 아뢰되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보다 백 배나 더하시기를 원하나이다 내 주 왕이여 이 백성이 다 내 주의 종이 아니니이까 내 주께서 어찌하여 이 일을 명령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하시나이까 하나
21:4 왕의 명령이 요압을 재촉한지라 드디어 요압이 떠나 이스라엘 땅에 두루 다닌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21:5 요압이 백성의 수효를 다윗에게 보고하니 이스라엘 중에 칼을 뺄 만한 자가 백십만 명이요 유다 중에 칼을 뺄 만한 자가 사십칠만 명이라
21:6 요압이 왕의 명령을 마땅치 않게 여겨 레위와 베냐민 사람은 계수하지 아니하였더라
21:7 하나님이 이 일을 악하게 여기사 이스라엘을 치시매
21:8 다윗이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21:9 여호와께서 다윗의 선견자 갓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1:10 가서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세 가지를 내어 놓으리니 그 중에서 하나를 네가 택하라 내가 그것을 네게 행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신지라
21:11 갓이 다윗에게 나아가 그에게 말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마음대로 택하라
21:12 혹 삼년 기근이든지 혹 네가 석 달을 적군에게 패하여 적군의 칼에 쫓길 일이든지 혹 여호와의 칼 곧 전염병이 사흘 동안 이 땅에 유행하며 여호와의 천사가 이스라엘 온 지경을 멸할 일이든지라고 하셨나니 내가 무슨 말로 나를 보내신 이에게 대답할지를 결정하소서 하니
21:13 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곤경에 빠졌도다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심히 크시니 내가 그의 손에 빠지고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하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21:14 이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염병을 내리시매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죽은 자가 칠만 명이었더라
21:15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멸하러 천사를 보내셨더니 천사가 멸하려 할 때에 여호와께서 보시고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사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그 때에 여호와의 천사가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 곁에 선지라
21:16 다윗이 눈을 들어 보매 여호와의 천사가 천지 사이에 섰고 칼을 빼어 손에 들고 예루살렘 하늘을 향하여 편지라 다윗이 장로들과 더불어 굵은 베를 입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21:17 하나님께 아뢰되 명령하여 백성을 계수하게 한 자가 내가 아니니이까 범죄하고 악을 행한 자는 곧 나이니이다 이 양 떼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시고 주의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지 마옵소서 하니라
21:18 여호와의 천사가 갓에게 명령하여 다윗에게 이르시기를 다윗은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21:19 이에 갓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른 말씀대로 다윗이 올라가니라
21:20 그 때에 오르난이 밀을 타작하다가 돌이켜 천사를 보고 오르난이 네 명의 아들과 함께 숨었더니
21:21 다윗이 오르난에게 나아가매 오르난이 내다보다가 다윗을 보고 타작 마당에서 나와 얼굴을 땅에 대고 다윗에게 절하매
21:22 다윗이 오르난에게 이르되 이 타작하는 곳을 내게 넘기라 너는 상당한 값으로 내게 넘기라 내가 여호와를 위하여 여기 한 제단을 쌓으리니 그리하면 전염병이 백성 중에서 그치리라 하니
21:23 오르난이 다윗에게 말하되 왕은 취하소서 내 주 왕께서 좋게 여기시는 대로 행하소서 보소서 내가 이것들을 드리나이다 소들은 번제물로, 곡식 떠는 기계는 화목으로, 밀은 소제물로 삼으시기 위하여 다 드리나이다 하는지라
21:24 다윗 왕이 오르난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반드시 상당한 값으로 사리라 내가 여호와께 드리려고 네 물건을 빼앗지 아니하겠고 값 없이는 번제를 드리지도 아니하리라 하니라
21:25 그리하여 다윗은 그 자리에서 금 육백 세겔을 달아 오르난에게 주고
21:26 다윗이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 여호와께 아뢰었더니 여호와께서 하늘에서부터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 응답하시고
21:27 여호와께서 천사를 명령하시매 그가 칼을 칼집에 꽂았더라
21:28 이 때에 다윗이 여호와께서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응답하심을 보고 거기서 제사를 드렸으니
21:29 옛적에 모세가 광야에서 지은 여호와의 성막과 번제단이 그 때에 기브온 산당에 있었으나
21:30 다윗이 여호와의 천사의 칼을 두려워하여 감히 그 앞에 가서 하나님께 묻지 못하더라
22:1 다윗이 이르되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이요 이는 이스라엘의 번제단이라 하였더라
매튜헨리/옥스퍼드
스페셜포인트
대기서는 포로 귀환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민 이스라엘 역사의 영속성 및 정통성을 확신시켜 줌으로써 위로와 소망을 주고 그둘로 하여금 선민의 영광을 재건하는 일에 박차를 가하도록 하기 위하여 주로 다윗 언약을 받은 당사자인 다윗 왕조가 다스리던 남유다 왕국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왕정 시대사를 기록한 책이다.
역대상 구성
- 1부 (1-9장)
- 역대기서의 기본 집필 의도인 선민 이스라엘 역사의 영속성 및 정통성을 가장 확연히 정리할 목적으로 인류의 시조인 아담에서부터 포로 귀환 세대에 이르는 선민사 개관용 편집 족보를 다룸.
- 2부(10-20장)
- 본격적으로 다윗 왕조 중심의 이스라엘 왕국 시대사로 들어가서 다윗 언약을 받은 당사자이자 다윗 왕조틀 연 다윗의 통치와 정복 사업에 대하여 다룬다.
- 3부(21-29장은)
- 다윗의 인구 조사 사건과 성전 건축 준비 및 종교•행정 조직의 정비, 그리고 다윗의 유훈과 솔로몬의 즉위 사실.
제3부 21-29장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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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1-22:1, 2)22:2-27:34, 3)28:1-29:30
본단락 개관 (전반부 21:1-22:1)
- 21:1-6 : 다윗의 인구 조사 명령과 요압의 결과 보고
- 병행구절(사무엘하 24:1-9) 과의 차이점
- 사무엘하는 다윗으로 인구 조사를 하도록한 주체를 ‘여호와'로 기록하고 있는 반면, 본서는 ‘사단'으로 기록
- → 여기서 사무엘서와 역대기서의 기자가 다윗으로 하여금 인구 조사를 실시하도록 한 주체를 서로 다르게 기록한 것은 두 기자의 기록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
- 사무엘 기자
- : 이 세상 모든 일의 주권자가 하나님이시라는 의식과 범죄한 이스라엘을 징계하기 위헤서 하나님께서 인구 조사를 실시하도록 다윗을 격동시키는 사단의 행위를 제지하지 않고 방치하셨다는 하나님의 섭리적 차원에서 그 주체를 사단이 아닌 하나님으로 기록한 것
- 역대기서 기자
- 역대기서 기자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헤 설제적으로 인구 조사를 실시케 한 장본인이 사단이라는 결과적인 차원에서 그 주체를 사단으로 기록한 것.
- 여호와 신앙에 근거하여 선민의 영광을 회복해야 할 과업을 앞두고 있는 포로 귀환 세대에게 하나님께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혹여라도 갖지 않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할 수 있다.
- 사무엘 기자
- → 여기서 사무엘서와 역대기서의 기자가 다윗으로 하여금 인구 조사를 실시하도록 한 주체를 서로 다르게 기록한 것은 두 기자의 기록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
- 사무엘하에 기록이 없는, 요압이 다윗의 인구 조사 지시에 불만을 품고 레위와 베냐민 지파는 계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본서가 추가함.
- 한편 역대기서 기자는 지금까지 포로 귀환 세대에게 다윗 왕국의 영광을 강조하려는 저작 의도상 다윗 개인이나 다윗 가문의 치부에 대헤서는 기록을 과감하게 생략하였다. 그런데도 본문에서는 다윗의 실수 가운데 하나인 인구 조사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 그러나 이 역시 다윗의 치부를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다.
- 역대기 기자가 이를 굳이 기록한 것은 → 이 사건이 성전이 건축될 터와 22:2 이후에 언급되는 다윗의 성전 건측 준비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
2. 21:7-17 : 다윗의 인구 조사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와 다윗의 회개
다윗은 인구 조사를 실시한 직후에 그것이 자신의 교만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하나님께 악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회개한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징계를 피할 수는 없었다.
하나님은 갓 선지자를 통하여 다윗에게 당신이 제시한 세 가지 정계 중 하나를 택하게 하셨고, 다윗은 3일 간의 온역 징계를 택하였는데, 그 결과 이스라엘 가운데 삼일 동안 온역으로 죽은 자가 무려 칠만 명에 이르렀다.
3. 21:18-22:1 : 다윗의 오르난의 타작 마당 제사와 하나님의 불 응답
하나님은 재앙으로 예루살렘을 멸하려 하셨으나 그 일을 후회하시고 심판을 수행하는 여호와의 사자에게 심판을 멈추게 하셨는데, 여호와의 사자가 재앙을 멈추고 선 곳은 오르난의 타작 마당이었다.
이곳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지닌 곳으로서 저 옛날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하였던 곳이자 훗날 성전의 터가 된 곳이다(대하3:1).
다윗은 갓 선지자를 통하여 전해진 여호와의 사자의 지시에 따라 이곳 오르난청 타작 마당에서 여호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 그러자 하나님은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 다윗의 회개와 간구를 받으셨음을 보이셨다. 즉 여호와의 재앙이 공식 중단된 것.
22:1은 다윗이 오르난의 타작 마당을 가리켜 ‘여호와의 전이요 이스라엘의 번제단’ 이라고 선언하였음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다윗이 오르난의 타작 마당을 하나님의 전 건축터로 삼기로 작정하였음을 독자들에게 시사해 주는 것으로서,
다윗의 인구 조사 사건을 → 22:2 이하에 기록된 다윗의 성전 건축 준비 및 종교 조직의 정비와 연결시키고, 나아가 다윗의 실수 가운데 하나인 인구 조사 사건을 언급하면서도 그것을 부정적으로만 묘사하지 않고 오히려 성전 건축 부지를 결정한 사건이라는 긍정적인 측면에서 묘사하고 있다.
그 동안의 내용 전개와 달러 다윗에게 있었던 부정적인 사건들 가운데 유일하게 이사건의 전모를 자세히 기술하는 이유는?
→ 본서의 일차 독자들이 처한 상황과 관련해 이해.
- 당시 다윗은 이스라엘의 군사적 능력을 가늠하고 이를 파악하고자 하려는 의도에서 인구 조사 명령을 내렸을 것이다. 이같은 다윗의 인구 조사 사건은
- 하나님보다 군사적 힘을 잠시라도 의지하고 자랑하려 했던 다윗의 교만을 반영해 주며
- 궁극적으로 이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은 전적으로 그를 승리케 하신 하나님의 은혜였지 그의 군사적 능력에 따른 결과가 아니었다.
그러나 다윗은 이러한 인구 조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만큼은 그 동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행하신 일들을 자신의 힘과 눙력을 통해서 이룩한 것인 양 생각하는 교만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이처럼 다윗이 교만에 사로잡혀 시행했던 조치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것이었고 이후 나타나는 사건 흐름을 통해서 볼 수 있듯이 이는 결국 하나님의 징계를 자초하게 된다.
인구조사 사건의 결말이 본서의 일차 독자들에게 전하는 교훈
- 70년 간의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와 주변의 이방 세력들에 의헤 압제와 핍박을 당하고 있는 본서의 일차 독자들의 형편에서 다윗에게 있었던 이같은 군사적 능력은 너무나 간절한 것이었다.
- 그러나 본서 저자는 본문을 통해
→ 군사적 힘의 유무가 그들이 꿈꾸는 재기와 회복의 관건이 아니라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 비록 다윗이 군사적 측면에서 여러 가지 업적을 이루었지만 그것은 그의 군사적 능력의 결과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였다.
-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신정 왕국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아무리 큰 현실적 어려움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만 있다면 그것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 반면, 아무리 그들에게 강한 군사력이 있다 해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결여되어 있다던 본장에 나타난 것처럼 그들은 제대로 힘 한번 쓰지 못한 채 하나님의 징계에 빠지게 될 것이 분명하였다.
- 그러므로, 그들이 구해야 할 것은
→ 군사적 강성함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믿음.
다윗 또한 죄인임을 교훈함
- 본문을 통해 이스라엘 사상 손꼽힐 만큼 뛰어난 신앙의 영웅이었던 다윗까지도 어쩔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목도하게 된다.
- 그리고 이러한 다윗의 선례를 통해서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는 바 세상에 어떤 사람도 하나님 앞에 의인일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롬 3:10).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
- 하나님 사자의 지시대로 다윗이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제단을 쌓고 회개의 제사를 드리자 하나님께서 그 형벌을 철회하시고 은총을 베푸신 사실.
- 우리는 연약하여 범죄할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피할 수 없으나,
회개하는 자에 대헤서는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긍휼로 인하여 망하지 아니하고, 궁극적으로는 영원한 구원에 이르게 될 것임을 확신하게 된다.
- 오르난의 타작 마당
마땅히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의 장소가 되어야 하였던 오르난의 타작 마당이 도리어 하나님의 은총을 상정하는 성전의 터가 된 사실을 통해,- 죄인이 선 자리는 진노와 형벌의 장소가 되는 것이 마땅하지만
-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를 의지해 회개하기만 하면 그곳은 오히려 하나님의 은총이 시작되는 곳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 실로 진흙탕 속에서 연꽃이 피어나듯 죄로 얼룩진 곳에서도 회개와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가 만나기만 하면 하나님의 은총의 꽃은 찬란하게 피어나게 되는 것이다.
●사탄의 격동(역대상 21:1-6)
우리는 백성들의 수를 헤아리는 것이 나쁜 일이라고 생각지 않을 것이다. 왜 목동이 양의 수를 몰라야 하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들이 보는 것과는 다르게 보고 계신다. 분명 다윗의 이 일은 그릇된 것이었으며,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가 마음에 교만을 품고 그 일을 행했기 때문이다. 교만한 것보다 하나님을 더욱 불쾌하게 하는 죄는 없다. 다윗의 죄는 바로 이것이었다. 그는 홀로 이에 대한 책망을 받아야만 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Ⅰ. 이 일에 있어서 유혹자의 역할은 매우 적극적인 것이었다(1절).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여" 그 일을 하게 했다.
사무엘하 24장 1절에는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다윗을 감동시키사" 그 일을 하게 하셨다고 적혀져 있다.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은 인간의 죄악과 불의함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또 거기서도 인정되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죄악의 창시자가 아니라는 것, 즉 그는 "어느 인간도 유혹하지 않는다" 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다윗을 감동하사 그 일을 하게 하셨다는 것은, 여기에 암시된 대로 지혜롭고 거룩한 목적을 위해 하나님이 마귀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허용하셨다는 뜻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 1절, 다윗이 인구 조사 범죄를 저지르게 된 원인에 대헤 사단이 이스라엘을 치려고 다윗을 부추겼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 본절의 ‘사탄’은 정관사가 없는 명사만 사용.
본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 삼하24:1 강해, 범죄한 이스라엘을 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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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악한 일이 어디에서 흘러들어 왔는가를 추적해 보기로 하자. 하나님과 모든 선함의 적인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였다" 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가 목표한 것은 힘을 약하게 하고, 수를 감소시키며 하나님의 이스라엘의 영광을 어둡게 하는 것이었으며,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그는 "사탄" 곧 철천지 "원수" 였다. 그러나 하나님을 열심히 따르던 다윗이 사탄의 영광을 받아 그릇된 일을 행하였다는 것은 잘 이해되지 않는 일인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다윗과 같은 자들은 사악한 자들이 건드릴 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훌륭한 성자들일지라도 하늘나라에 가기 전까지는 결코 사탄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이제 사탄이 이스라엘을 해하고자 했을 때, 어떤 방법을 택하였는가를 보자. 그는 "하나님을 격동하여(욥기 2장 3절에서와 같이) 그(다윗)를 치게 하지" 않았으나, 백성들의 가장 훌륭한 친구인 다윗을 격동시켜, 그들을 계수하게 함으로써,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여 그들을 대적하게 하였다.
다음을 명심하자.
- 마귀는 하나님 앞에 우리를 고발하기보다는,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대적하여 죄악을 짓도록 유혹함으로써 우리를 더 큰 불행에 빠뜨린다. 그는 아무도 멸하지 않으나 그들 자신의 손으로 스스로를 멸하도록 만든다.
- 사탄이 하나님의 교회에서 행할 수 있는 가장 큰 악은 교회의 우두머리 된 자들로 하여금 교만하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도 모든 사람 가운데 특히 교회를 다스리는 자들 가운데 이 죄가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리라고는 생각지 않기 때문이다.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라" (눅 22:26).
Ⅱ. 계수의 일을 맡은 자들은 그 일에서 매우 수동적이었다.
다윗이 이 일에 고용한 요압은 매우 적극적으로 공적인 일을 행한 자였으나, 이 일에 있어서는 완전히 강요당하였고 마지못해 행하였다.
📎 21:3 요압이 아뢰되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보다 백 배나 더하시기를 원하나이다 내 주 왕이여 이 백성이 다 내 주의 종이 아니니이까 내 주께서 어찌하여 이 일을 명령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하시나이까 하나
내 주께서 어찌하여 이 일을 명령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하시나이까 하나 [다윗의 인구 조사 명령이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 삼하24:2,3 강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백성을 백 배나 더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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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는 이 일을 행하기 전에 항의를 하였다.
왕의 영예나 나라의 번영을 위해서는 그보다 더 용감히 나설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이 문제에서만은 변명을 하려했다. 왜냐하면
(1) 그것은 소용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일을 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번성케 해주실 것을 약속하셨으므로, 그것이 과연 이행될 것인가는 의심할 필요조차 없었다. 또 백성들은 모두 다윗의 종이었고, 그에 대한 그들의 충성과 사랑을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또한 그들의 수효도 다윗이 바랄 수 있는 믿음직한 힘이 되고 있었다.
(2) 그것은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그 일을 함으로써, 이스라엘이 죄에 물들지도 모르며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 임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요압은 이것을 깨달았으나 다윗 자신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율법에 매우 밝은 자들이라고 해서, 언제나 그 율법들을 적용시키는 데 가장 빠른 통찰력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 21:4 왕의 명령이 요압을 재촉한지라 드디어 요압이 떠나 이스라엘 땅에 두루 다닌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재촉한지라’
‘드디어 요압이 떠나 두루 다닌 후에… 돌아와서’
[다윗이 인구 조사를 실시한 궁극적 목적을 단적으로 드러냄] ‘칼을 뺄 만한 자’
📎 삼하24:9절 설명, 이 수효는 역대기 기록과 다름. 이와 같은 인구 조사 보고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왜 본서에서는 역대기의 기록에 비해 유다인들의 숫자를 많게 그러고 이스라엘인의 숫자를 적게 기록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인구 수가 많은 것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축복과 관련된다는(창 16:10; 35:11; 신 1:10) 측면에서 본다면 본서 저자는 계수된 유다 지파의 수효 중 보다 많은 수효를 제시하여 다윗과 유다 지파가 보다 융성하였음을 강조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점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하여 상호 비교되는 이스라엘의 수효는 보다 적은 숫자로 제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2. 요압은 그 일을 다 마치기도 전에 싫증이 나버렸다. 왜냐하면 "요압이 왕의 명령을 밉게 여겼기" 때문이다(6절).
다윗왕이 무슨 일을 하든지 언제나 "모든 백성이 다 기뻐하였었다" (삼하 3:36). 그러나 이제 이 명령들은 일반적으로 기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요압도 이 일을 좋게 여기지 않음을 분명히 나타내었다.
그래서 백성들의 수효는 사실상 매우 컸지만, 그는 그 일을 완전히 해두려는 마음도 없었기 때문에 중요한 두 지파인 레위 지파와 베냐민 지파를 계수하지 않았다(5, 6절).
그리고 그는 그 일을 하는 것을 달갑게 생각지 않았기 때문에 아마 다른 지파를 계수하는 것도 정확히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계수한 것과 사무엘하 24장 9절에서 계수한 수효가 다른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21:6 요압이 왕의 명령을 마땅치 않게 여겨 레위와 베냐민 사람은 계수하지 아니하였더라 ‘밉게 여겨’ → 요압이 다윗의 명령을 신실하게 수행하지 않고 고의적으로 어긴 이유를 설명해줌.
‘레위와 베냐민 사람은 계수하지 아니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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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스퍼드 1-6절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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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조사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와 다윗의 회개(역대상 21:7-17)
다윗은 이제 백성들을 계수한 일 때문에 징벌받게 되었다. 그것은 그의 마음의 어리석음, 곧 교만의 어리석음을 바로 잡기 위한 징벌이었다. 그러면 이에 대해 간단히 살펴 보기로 하자.
Ⅰ. 어떻게 그가 징계를 받았는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들이 잘못을 행하였다면, 그들은 마땅히 그에 대한 벌을 받으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1. 그는 하나님께서 괘씸하게 생각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는데, 다윗 같은 선한 사람에게는 이처럼 괴로운 일이 또 없었다(7절).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죄를 범하는 것을 살피시고는 언짢게 생각하셨다. 인간의 교만보다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는 죄악은 없으며, 하나님의 불쾌하심을 보는 것보다 은혜로운 영혼을 초라하게 하고 슬프게 하며 괴롭게 하는 것은 없다.
💡 21:7 하나님이 이 일을 악하게 여기사 이스라엘을 치시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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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는 그가 싸움에 의해서 징계받을 것인지, 기근에 의해서 인지 혹은 온역에 의해서인지를 선택해야 했다. 즉 그는 이 세 가지 중 한 가지 방법으로 징계받지 않으면 안되었다.
다윗을 좀 더 겸손케 하기 위해서 이러한 커다란 곤경에 빠지게 하였으며, 이 세 가지 중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를 신중히 생각하는 동안, 이 심판들은 그의 마음을 매우 두렵게 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 21:9 여호와께서 다윗의 선견자 갓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1:10 가서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세 가지를 내어 놓으리니 그 중에서 하나를 네가 택하라 내가 그것을 네게 행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신지라
본문은 궁극적으로는 어떠한 결정을 할 것인지를 말하라는 의미이지만 사용된 동사의 뉘앙스를 감안하면, 이 세 가지 중에 어떤 것을 선텍할지를 잘 숙고하라는 충고의 의미가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선지자 갓의 이 말은 결정 자체가 아니라 결정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갓의 말을 구체적으로 소개하는 데에는 저자의 특별한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하나님께서 이 셋 중의 하나를 선택하도록 다윗에게 기회를 주신 것만으로도 하나님의 크신 은총과 자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에게 그 이상의 은총과 자비가 필요함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윗은 이 선택 사항 중 어느 하나도 감당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다윗에게 필요한 것은 선택의 기회가 아닌 하나님의 자비였다. 그러므로 다윗은 다음 절에서 이들 중 하나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대신 다소 엉뚱하게 들릴 수 있는 대답, 즉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라고 말하는 것이다. 사실 죄의 삯은 사망이고(롬 6:23) 모든 인간은 죄인이므로 인간은 죽음 외에 다른 방법으로는 죄 값을 치를 수 없다. → 이는 본장 마지막에 다윗이 대속을 위한 제단을 쌓은 것처럼 → 우리 모두를 위한 구속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스스로를 대속의 제물로 바치실 수밖에 없었던 십자가 구원 사건의 필연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 12절, 혹 삼년 기근이든지 혹 네가 석 달을 적군에게 패하여 적군의 칼에 쫓길 일이든지 혹 여호와의 칼 곧 전염병이 사흘 동안 이 땅에 유행하며 여호와의 천사가 이스라엘 온 지경을 멸할 일이든지라고 하셨나니 내가 무슨 말로 나를 보내신 이에게 대답할지를 결정하소서 하니 여호와의 칼 ↔ 대적의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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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는 삽시간에 그의 백성 7만명이 온역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14절).
그는 그의 백성들의 수효가 증가하였다는 것을 듣고 교만했었지만, 이제 하나님의 심판이 그들의 수효를 적게 만들었다. 우리들이 교만했을 때, 그 힘을 빼앗기고 약화되고 우리에게 재앙이 더하게 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윗은 백성들의 수효를 부득이 알고자 했다. "그 수효를 내게 고하여 알게 하라."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이와는 다른 방법 즉 "그들을 칼에 붙여" 계수하려 하셨다(사 65:12). 다윗은 백성들의 또 다른 수효, 즉 죽은 자의 수효를 알게 되었으며, 이 계수는 그를 만족시키기보다는 오히려 매우 난처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죽은 자를 계수한 암담한 명부였으며, 이제 이 수효는 그의 계수 명부에서 제하여져야 했다.
💡 이 죽음의 원인은 :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의 공의. 📎 삼하24:15 강해, 다윗이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그 나라의 모든 영역이 여호와의 재앙에 빠졌다. 이로써 하나님은 다윗의 교만을 일시에 꺾어버리셨던 것이다. 다윗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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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15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멸하러 천사를 보내셨더니 천사가 멸하려 할 때에 여호와께서 보시고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사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그 때에 여호와의 천사가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 곁에 선지라
— 13절, ‘여호와께서는 긍휼히 심히 크시니’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 곁에 선지라’
아리우나 타작 마당 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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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는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빼어 들고 예루살렘을 치려는 것을 보았다(16절).
그것은 하나님의 분노를 나타내며 다윗이 사랑하는 성읍을 멸해 버리겠다고 위협하는 표징이었으므로, 그는 매우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온역으로 인해서 백성들이 가장 많이 거하던 곳은 아주 황폐해 버렸다. 하나님의 사자는 비록 평온하게 그리고 고마운 임무를 가지고 왔다 하더라도, 그를 보는 힘센 자들까지도 두려워 떨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생명의 나무들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그룹들의 칼처럼 번쩍이는 칼날을 손에 든 사자를 본다는 것은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이었을까!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를 샀을 때, 우리가 다윗처럼 그 사자들을 볼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사자들이 무장을 하고 우리를 치려할 것이다.
💡 16-17절, 이스라엘 백성에게 임한 온역 재앙을 거두어 달라는 다윗의 간절한 기도 16절, 다윗이 눈을 들어 보매 여호와의 천사가 천지 사이에 섰고 칼을 빼어 손에 들고 예루살렘 하늘을 향하여 편지라 다윗이 장로들과 더불어 굵은 베를 입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여호와의 사자가 천지 사이에 섰고’,
‘다윗이 장로들과 더불어 굵은 베를 입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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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그는 이 징계를 어떻게 견디었는가.
1. 그는 그의 죄를 매우 회개하여 고백하였으며, 그것을 용서해 주시기를 열심히 간구했다(8절).
이제 그는 그 자신이 매우 큰 죄를 지었음을 그리고 매우 어리석은 일을 행하였음을 자백하였다. 그러나 그 자신이 그에 대한 징계를 받더라도 그 죄악을 거두어 주실 것을 간청하였다.
💡 21:8 다윗이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다윗의 회개의 자발성
다윗은 무엇을 회개하고 있는가?
‘미련하게 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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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는 그의 죄악에 대한 형벌을 받아들였다.
"당신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소서(17절). 나는 그 징계에 복종하겠나이다. 죄를 지은 자는 나이니 오직 내게만 고통을 주소서. 내가 바로 그 죄악을 저지른 우두머리니 내게 그 칼날을 돌리소서."
💡 17절, 하나님께 아뢰되 명령하여 백성을 계수하게 한 자가 내가 아니니이까 범죄하고 악을 행한 자는 곧 나이니이다 이 양 떼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시고 주의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지 마옵소서 하니라 다윗은 자신이 지은 지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음
→ 다윗은 어떤 하나님을 붙들고 간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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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는 그 자신을 하나님의 긍휼에 맡기었으며(비록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 진노하고 계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조금도 그에 대한 불평을 갖지 않았다.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심히 크시니" 어찌되든 간에 "그의 손에 빠지자" (13절).
선한 자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얼굴을 찌푸리시더라도 그를 좋게 생각한다.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믿겠노라."
💡 21:13 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곤경에 빠졌도다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심히 크시니 내가 그의 손에 빠지고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하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다윗의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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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는 그의 백성들에게 대한 매우 큰 염려를 나타내었다. 자기 죄로 인해서 그들이 온역을 당하는 것을 가슴 아프게 여겼다.
"이 양들이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 다윗은 인구 조사틀 명 한 장본인은 자신인데 여호와께서 이와 상관없는 무고한 백성들까지 심판하실 필요는 없지 않느냐 는 탄원의 기도를 올리고 있는 것. 💡 삼하24:17절 강해, 17절,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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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스퍼드 7-17절 결론 이러한 다윗의 기도는 죄를 범하였을 경우 마땅히 취해야 할 자세가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모델이라 할 수 있다. ▶︎ 다윗 같은 성군도 죄를 범하였듯 모든 인간은 연약하여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다. ▶︎ 그런데 죄를 범한 사실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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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난의 타작 마당(역대상 21:18-30)
우리는 여기에서 다윗이 회개함으로 하나님과의 화평을 얻게 되고 다툼이 끝나는 것을 보게 된다.
"비록 나로 더불어 쟁론하더라도 그 진노를 거두어 주옵소서."
💡 하나님의 명령이 다윗에게 내려지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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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징계가 멎게 되었다(15절). 다윗이 회개했을 때 하나님도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시어 멸하는 사자에게 "그의 손을 거두고 칼을 집에 꽂도록" 명하셨다(27절).
2.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제단을 세우라는 말씀이 다윗에게 내려졌다(18절).
그 사자는 선지자 갓으로 하여금 이 말씀을 다윗에게 전하도록 명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싸움을 행하려 했던 바로 그 사자가 이제 화해의 협정을 맺으려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자들은 재앙의 날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 사자가 직접 다윗에게 이 명을 전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선지자의 직책을 영예롭게 하기 위하여, 갓을 택해 그 일을 하도록 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가 사자를 통해 요한에게 전달되었으며, 요한이 이것을 교회에 전하였다.
다윗에게 제단을 쌓으라고 명한 것은, 화해를 뜻하는 축복된 표징이었다. 왜냐하면 만일 하나님이 그를 죽이기를 원하셨다면, 다윗의 손으로 바치는 제물을 용납치 않으실 것이므로, 그러한 명령도 하시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aside> 💡 ▶︎ 본문과 같은 지시를 받았다는 것이 전제하는 사실은?
- 다윗이 회개함으로(17절) 이미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벗어났다는 것을 전제한다.
- 즉
다윗이 제사를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것이 아니라, - 이미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여호와께 제사를 드릴 수 있게 된 것이다.
- 즉
▶︎ 제사 장소(오르난의 타작 마당)가 이스라엘 백성 전체 및 구속사의 전개와 연관하여 갖는 특별한 의미는?
- 즉 본문에서 다윗에게 제사 장소로 지시된 오르난의 타작 마당은 훗날 솔로몬이 여호와의 임재의 상징적 처소인 성전을 건축한 장소로서(대하 3:1),
-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여호와 앞에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 게 될 영광의 장소이다.
19절, 다윗이 이에 갓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른 말씀대로 올라가니라
<aside> 📎 ‘여호와의 명하신 바 갓의 말대로..’
선지자 갓의 말은
- 다윗의 겸손한 회개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인 동시에 자애로운 화해 선언이었다.
-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기도를 들으시고(17절), 그 기도대로 다윗과 그 가문을 치는 대신 다윗에게 제사를 요구하셨다.
- → 이는 이스라엘에 대한 온역 재앙을 멈추고자 하신 하나님의 작정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를 보여준다.
- 죄사함은 반드시 희생 제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피흘림이 없이는 사함도 없다는 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법이기 때문이다(레 17:11; 히 9:22).
▶︎ 하나님께서 그 화해의 장소로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을 지시하신 것은?
- 그곳에서 천사의 심판 활동이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곳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나타난 곳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곳을 화해의 장소로 지정하시고 성별케 하신 것이다.
- 후에 이곳에는 솔로몬의 성전이 세워져 택한 백성들을 위한 ‘시온소’ 가 된다 </aside>
</aside>
- 다윗은 즉시로 타작 마당을 매입하기 위해 오르난과 흥정하였다. 그것은 그가 백성들에게 부담을 주면서 하나님을 섬기려 하지 않은 때문이었다.
오르난은 관대하게 그것을 무상으로 제공하려 하였는데, 그것은 오르난이 왕에게 공손함을 나타내기 위한 것 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천사를 본" 때문이었다(20절).
그와 그의 아들들은 그 천사를 보고 그 찬란한 영광의 빛을 감히 쳐다볼 수 없었고, 또 그가 빼어든 칼을 매우 두려워하여 그들의 몸을 숨겼었다.
이러한 사실들을 깨닫고 그는 사죄를 위해 어떤 일이라도 기꺼이 할 마음이 생겼던 것이다.
주님에 대한 두려움을 충분히 깨달은 자들은, 믿음을 더하기 위해 그들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려 할 것이며, 하나님의 진노를 돌리기 위해 화해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강구할 것이다.
<aside> 💡
- 사무엘서: 당시의 상황을 오르난과 다윗 사이에 있었던 대화 내용을 중심으로 비교적 객관적이고 자세하게 보도.
- 역대기: 본사건의 핵심 사안만을 강조해서 언급.
- 따라서 본절 이후의 내용에서 볼 수 있듯 본서 저자는 다윗이 오르난을 만나자마자 자신이 온 목적을 즉각적으로 언급하는 것으로 기술한다. 이처럼 긴박한 호흡을 통해 본서 저자는 여호와의 명령에 즉각적이고 적극적으로 순종하는 다윗의 자세를 더욱 극적으로 부각시켜 주고 있는 것.
22절, 다윗이 오르난에게 이르되 이 타작하는 곳을 내게 넘기라 너는 상당한 값으로 내게 넘기라 내가 여호와를 위하여 여기 한 제단을 쌓으리니 그리하면 전염병이 백성 중에서 그치리라 하니
▶︎ 다윗이 상당한 값을 지불하겠다는 말의 의미
- 상당한 : ‘꽉 찬 충만한 상태’ → 다윗은 충분한 값을 주고 그 땅을 구입하고자 했음.
- 다윗이 교만한 마음으로 인구 조사를 행함으로써 여호와께 범죄한 일에 대한 ‘충분한 회개'라는 의미.
- 다윗은 자신이 지온 죄를 마음으로만 애통해한 것이 아니라 그에 상용하는 충분한 대가를 치르기를원하 였고 또 이를 행동으로 나타내 보이기를 원했던 것.
- 이는 결코 다윗이 자신의 죄를 물질을 통해 해결하려 했다는 식으로 풀이되어서는 안된다. 보다 근본적으로 그가 지불한 육백 세겔의 금 (25절)은
- 회개의 의미와 함께
- 하나님께 온전한 제사를 드리기를 소원하는 다윗의 정성이 반영된 물질적 헌신.
- 다윗 자신의 대에 이루지 못 한 성전 건축을 후일 아들 솔로몬이 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충분한 준비'의 의미.
[아브라함이 구입한 막벨라 굴]
- 본문의 표현은 아브라함이 햇 족속으로부터 자신의 아내를 장사할 굴을 살 때 지급한 은 사백 세겔을(창 23:15) 가리키는 데에도 사용된 표현.
- 아브라함이 막벨라굴을 그냥 주겠다는 햇 족속의 호의를 거절하고 굳이 은 사백 세겔이나 치르면서 동굴을 산 이유는?
- 이미 하나님께서 그에게 허락하신 바 그의 자손들과 그둘이 거할 약속의 땅이 바로 가나안 땅임을 믿고 확 신한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창 15:18-21).
- 아브라함의 이러한 행동의 의의
- 막벨라굴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의 소유가 되었고 이는 약속의 자손이 거할 땅을 최초로 구입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 이곳은 사라 뿐만 아니라(창 23:19) 아브라함 자신과(창 25:9), 이삭과 리브가(창 49:31), 야곱과 레아(창 49:31 ;50:12,13) 등이 묻힌 곳, 창세기 저자는 여러 번 막벨라굴을 돈으로 주고 샀다는 사실을 강조하였었다(49:30; 50:13).
- 조상들이 매장된 곳이며 하나님의 약속이 자신들에게 이미 부여되었기에 이스라엘 자손들은 후일 애굽 땅으로 가서 400년을 노에처럼 살지만,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을 수 있었던 것이다.
[다윗의 경우,]
- 다윗이 오르난으로부터 타작 마당을 구입할 당시에 후대 의 솔로몬 성전을 세우기 위한 부지를 구입하려는 의도를 실제로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헤서는 잘 알 수 없다.
- 하지만 ‘케쎄프말레' 라는 표현을 통해 볼 때 사무엘서 저자가 이미 기록한 이스라엘 역사를 다시 기록하는 역대기 저자는 적어도 사무엘서 저자의 관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 다윗으로 희개를 위한 층분한 값을 치르게 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 그뿐 만 아니라 그렇게 값을 치르고 번제률 을려드린 땅 위에 당신의 임재의 상징적 처소인 성전을 짓도록 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는 사실.
- 즉 하나님께서 다윗으로 하여금 오르난의 타작 마당을 금 육백 세겔에 구입하게 하신 데에는(18절)
[다윗과 아브라함을 통해 보는 하나님의 섭리의 지혜]
-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들이 장차 거할 땅을 약속해 주시고 그 땅 가운데 막벨라굴을 매입하게 하여 이스라엘의 미래를 준비하신 것처럼,
- 다윗으로 오르난의 타작 마당을 구입케 하신 것도 먼 미래까지 도 내다보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 역대기 저자는 ‘충분한 값(케쎄프 말 레)' 이란 표현을 통해 ‘충분한 회개'와 ‘충분한 준비'라는 하나님의 의도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본문은 다윗이 참으로 회개한 이후에 어떻게 처신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 그는 회개한 이후 하나님의 용서를 체험하게 되었지만, 거기에 멈추지 않았다.
- 더 나아가 그는
- 이후 하나님이 어떤 말씀을 주실 것인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였다.
- 이러한 자세를 견지함으로 인해
- 그는 그의 일생의 소망이었던 성전 건축의 터를 바라볼 수 있었으며
- 또한 자기 손으로 그 터를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다. </aside>
<aside> 💡 23절, 오르난의 반응
- 오르난은 자신의 타작 마당을 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는 다윗에게 소를 번제물로, 타작하는 기구와 소의 멍에를 번제를 위한 뗄감으로, 그리고 밀을 소제물로 바치기를 원 했음을 알 수 있다.
<aside> 📎 아라우나의 여호와를 경외함에서 나오는 헌신적 자세
- 다윗 왕이 자신의 타작 마당에 온 목적을 안 아라우나는 그 제사에 필요한 모든 것을 자신이 무상으로 제공하겠다는 헌신적 자세를 보인다.
- 여부스 사람이었으나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하나님께 바치고자 하였던 것이다.
-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실한 사람이었으므로,
- 그래서 그의 헌신적 자세는
- 그가 제안하는 바, 번제를 드리기 위한 장소로서 그의 타작 마당 뿐만 아니라,
- 다윗이 말하지 않은 번제물로서외 소와, 번제를 위해 사용되는 뗄감까지 자발적으로 제공하려는 모습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 아라우나는 이번 한 번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다윗이 드리는 제사와 더불어 다윗 그 자체를 기쁘게 받으시기를 원한다는 말을 한다. </aside>
</aside>
<aside> 💡 24절, “내가 결단코 상당한 값으로 사리라” — 다윗의 이어지는 의지
▶︎ 다윗이 이처럼 ‘상당한 값’을 치르고 구입하고자 했던 땅은 훗날 어떻게 사용되는가?
- 궁극적으로 다윗의 진실한 회개와 헌신, 그리고 온역 재앙으로 심각한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의 속죄를 위한 제사를 드리는 데 사용된다.
▶︎ 이러한 본문은 바벨론에서 귀환하여 예루살렘에 돌아온 본서 일차 득자들에게 주는 의미
- 그들이 다시금 세운 제2성전의 터가 바로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 드린 제사의 터임을 확인케 하여주었을 것.
- 본서 저자가 22절의 내용을 재차 강조하는 것은
- 본서의 일차 독자들에게 새롭게 세워진 성전에서도 다윗이 드린 회개와 헌신, 회복을 위한 제사가 반복되어야 함을 부각시키기 위해서일 것.
- 다시 말해 본문의 이같은 반복적 표현을 통한 강조에는 새롭게 선민 공동체를 재건해 나가야 할 본서 일차 독자들의 신앙적 각성과 다짐을 보다 견고하게 다지기 위한 저자의 의도가 내포되어 있는 것
▶︎ 다윗의 정직하고 공의로운 행동
‘내가 여호와께 드리려고 네 물건을 취하지 아니하겠고’
(병행구절에는 없음)
- 직역하면, ‘내가 결코 너에게 속한 것을 여호와께 드리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 하나님 앞에 드리는 회개의 제사를 값없이 드리지 않으려 했기 때문.
- 다른 이의 사유 재산을 불의하게 취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기도 함.
- 다윗의 이러한 행동은 값으로 살 수 없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수여받은 자로서, 그같은 은혜에 감사하며 보답하고자 하는 그의 정성을 잘 표현해 주고 었다 </aside>
- 하나님은 이 제단에서 드린 다윗의 제물을 받으셨다는 것을 입증해 주셨다. 즉 그는 "하늘로부터 불을 내려 응답하셨다" (26절).
하나님의 진노를 다윗에게서 거두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의당히 살랐어야 할 불이 제물 위에 내려 제물을 태웠다.
<aside> 💡 하나님의 불이 제물을 태운 사건의 의미
(병행 구절인 삼하 24:25에는 없는 내용)
- 하나님의 불이 사람이 드린 제물을 태우는 것은 그렇게 흔하지 않은 사건이다.
-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이 제사장의 위임식을 행한 이후에 그들이 드린 번제물과 제물을 태우셨고(레 9:24)
- 엘리야의 기도 이후에 그가 준비한 모든 제물들과 나무와 둘들과 흙까지 태우셨으며(왕상 18:24.37.38)
- 성전 봉헌식 때에 솔로몬이 기도를 마처자마자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셨다(대하7:1).
- 위 세 경우의 공통점
- 위임식 때에는 백성들이 제물이 불타는 광경을 보고 소리틀 지르며 엎드렸으며,
- 엘리야의 기도 후 제물이 탔을 때에는 모든 백성이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인정했으며,
- 성전 봉헌식 때에는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했었다.
▶︎ 본 단락의 제물을 모두 태운 사건이 갖는 3가지 의미
- 죄사함과 함께 온 이스라엘에 내려진 온역 재앙이 완전히 종식되었음을 보여줌.
- 하나님의 영광이 번제단이 세워진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임한 것으로서, 이곳이 성전이 세워질 부지로 하나님의 뜻에 의해 예정된 곳임을 암시함.
- 이처럼 오르난의 타작 마당이' 중앙 성소로서 성전의 부지가 되었으므로 앞으로 성전 건립 이후 이곳에서만 제사가 드려질 것임을 나타낸다.
→ 이처럼 본서 저자는 사무엘서 저자가 생략한 본문의 내용을 추가 기록함으로
포로에서 돌아와 신정 국가 건설을 담당해야 할 본서' 일차 득자들에게
-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졌던 이곳은 바로 하나님의 불이 내려진 곳이라는 역사적 사실과
- 더불어 하늘로부터 번제단 위에 불이 내려오는 것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 것인지를 암묵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aside>
그로 해서 멸망의 칼은 다시 그 칼집에 꽂히게 되었다.
<aside> 💡 ‘여호와께서’ 사자를 명하시매 그가 칼을 .
- 한글 성경은 ‘여호와’를 번역에서 제외함.
- 그러나 역대기 저자가 본문을 기록한 이유에 따라 원문을 올바로 번역해야 함.
- — 객관적으로 드러난 사건만을 주로 제시하는 사무엘서와 달러, 인간 역사 이면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을 드러내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 중심의 신앙을 회복시키려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
▶︎ 15,16절과 대응, 대조
- 15절,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멸하려 사자를 보내셨더니’
- ‘하나님의 보냄'을 받아 이스라엘에 온역 재앙을 일으킨 여호와의 사자의 사역은 여호와의 명을 받아 칼을 집에 꽂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 그리고 이렇게 대응되는 두 표현은 재앙이 하나님에 의해서 시작되고 마무리 되었다는 사실을 강조.
- 하나님께서 다윗의 인구 조사라는 교만한 범죄에 대해
- 처음에는 심판을 행하셨지만,
- 나중에는 그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실 뿐만 아니라,
- 그 기회를 통해 오히려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성전을 지을 부지틀 마련하게 하신 은혜까지 베푸셨음을..
- 아브라함의 모리아산이러한 연상이 가능한 이유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 했던 모리아산과 본문의 사건 즉 다윗이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한 장소가 동일한 곳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대하 3:1).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를 제지하시고 미리 예비한 제물로 이삭을 대신하여 제사하게 하셨다.
-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드릴 곳으로 지정한 장소이기도 하지만(창 22:1.2) 동시에
- 하나님께서 스스로 당신이 받으실 제사를 예비하신 곳이기도 하다(창 22:13.14).
- 결국 다윗은 이러한 모든 사실과 관련해 성령의 감동으로 이곳이 하나님의 전이며 이스라엘의 번제단이 라고 선포한다(22:1).
- 따라서 모리아산은
- 당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이삭을 제물로 바쳐야만 했다. 그는 실제 이삭을 결박하고 화목 위에 올려 번제로 드리려 했다.
- 본문의 배경어 되는 오르난의 타작 마당은 창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아브라함 이 이삭을 바치도록 지시받았던 모리아산에서 발생한 사건을 연상시켜 준다(창 22장).
</aside>
이와 같이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와 저주를 짊어지시고 기꺼이 고난을 당하셨으며,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형벌의 불이 되시지 않고 화해하는 아버지가 되어 주셨다.
- 그는 이 제단에 제물을 그 후에도 계속하여 드렸다. 모세가 만든 놋제단이 기브온에 있어(29절), 이스라엘의 모든 제물을 거기에 바쳐왔으나, 다윗은 사자의 칼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 갈 수가 없었다" (30절).
온역이 시작되었을 때, 이 일을 급히 서둘러야 했다. 아론도 염병이 시작되었을 때 빨리 가서, 아니 "뛰어가서" 속죄해야 했었다(민 16:46, 47). 그런데 다윗의 경우는 이 일이 너무도 긴급한 것이었으므로, 미처 기브온에 갈 시간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가 돌아오기도 전에 이 치명적인 타격이 가해질 것이 두려워 그는 예루살렘을 향해 칼을 빼어든 사자의 곁을 감히 떠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너그럽게도 현재의 이 재난을 참작하시어 한 제단만 고수하라는 그 자신의 율법을 제하여 주시었고, 새로운 제단에다 제물을 바치는 것을 허락하시었다. 단일성은 단일성 그 자체만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다. 그 현재의 재난이 끝났을 때에도(분명 그랬을 것이다) 다윗은 그가 살아있는 동안, 기브온에도 제단이 계속 보존되어 있긴 했지만, 그가 쌓은 제단에 제물을 드렸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여기에 바쳐진 제물을 받으심으로써 그것들을 용납하신다는 것을 입증해 주셨기 때문이다(28절).
하나님의 임재의 표징으로 그가 실재 우리의 일과 함께 하신다는 표징을 경험하였을 때는, 우리는 그 일을 계속하는 것이 좋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나를 은혜롭게 만나 주셨다. 그러므로 나는 계속 그와 만날 것을 기대한다."
<aside> 💡 28-30절 : 어떻게 예루살렘이, 오르난의 타락 마당이 이스라엘의 새로운 제의 중심지가 되었는지 부연 설명.
(병행 문단에는 없는 내용)
28절, 이 때에 다윗이 여호와께서 .. 응답하심을 보고 거기서 제사를 드렸으니
- 저자가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 후에(삼하 24:25) 다시 감 사의 제사를 드린 사실을 언급하는 것이나 제사를 드린 오르난의 타작 마당을 강조하는 이유는 이제 앞으로 계속헤서 이곳에서 제사가 드려질 것이기 때문.
▶︎ 제사의 장소의 원소유주는 여부르 사람 오르난(이방인)
성전 건축의 터가 본래 이방인에게 속하였다는 사실은
-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이방인도 하나님을 위해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과 더불어
- 혈통에 구애받지 않고 하나님의 공동체 안에 들어올 수 있 는 은총이 다윗 시대에도 동일하게 베풀어지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
29절, 옛적에 모세가 광야에서 지은 여호와의 장막과 번제단이 그 때에 기브온 산당에 있으나
‘옛적에 모세가 광야에서 지은 … ’
- ‘여호와의 장막'과 ‘번제단’은 본문이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모세가 직접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모세가 감독하고(출 35:10) 오흘리압과 브살렐 등이 성막의 다른 기구들과 함께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원하여 가져 온 예물들로 만들었다.—그가 성막 및 성막 기구를 만드는 일의 주축이 되었기 때문.
-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모세를 주체로 묘사하는 것은
- 본서 저자가 여기서 굳이 이를 상기시키는 것은
- 척박한 광야에서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성막과 그 부속 기구를 만들었던 모세의 신앙은
- ⇒ 포로에서 돌아와 파괴된 땅에 다시 신정 국가를 재건해야 할 본서의 일차 독자들에게 좋은 본이 되기 때문이다.
번제단이 그 때에 기브온 산당에 있으나
- ‘기브온 산당' = 여호와의 장막이 머물던 장소.
- 여호와의 장막의 이동 역사
-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정착하기 시작할 때에는 — 가나안 정복 전쟁을 위한 전초 기지로 삼았던 요단 동편 지경에 있는 길같에 머물렀다(수 4:19 ;5:10).
- 이스라엘 백성들어 나안 땅을 분배받기 시작했을 때에는 — 아직 땅을 분배받지 못한 지파들을 위한 제2차 기업 분배를 행한 곳인 실로(Shiloh)로 여호와의 장막이 다시 옮겨졌다.
- 엘리 제사장 시대에 블레셋 족속들에게 언약궤를 빼앗긴 이후에는 놉으로 피해 옮겨졌으며(삼상 21:1-6) 사울 시대에 제사장들이 사울에게 죽임을 당할 때에 본문에 언급된 기브온으로 옮겨져서(21:29) 다윗의 시대 에까지 이른 것.
- 후일 B.C. 959년에 솔로몬에 의해 중앙 성소인 예루살렘 성전이 지어짐으로 인해 장막에서 제사를 드리던 역사는 종결된다(대하 5:1).
</aside>
<aside> 💡 30절, 다윗이 여호와의 천사의 칼을 두려워하여 감히 그 앞에 가서 하나님께 묻지 못하더라
- 그 앞 = 기브온 산당.
- 다윗은 결코 기브온 산당에서 제의적 행위를 할 수 없었다.
- 이는 이제 오르난의 타작 마당이 위치한 예루살렘이 여호와의 섭리에 의해 이스라엘의 영원한 제의 중심지가 될 것임을 간접적으로 암시한다.
▶︎ 다윗은 무엇을 두려워 한 것일까?
- 본문 전체의 정황상 다윗이 느낀 두려움은 그 자신이 오르난의 타작 마당이 아닌 기브온에 가서 하나님께 물었을 때 여호와의 사자의 칼이 다시금 이스라엘을 향해 내려질 것을 두려워한 것이다.
- 표면적으로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다윗이 다시 임할지 모르는 여호와의 사자의 심판의 칼을 두려워한 나머지 기브온으로 가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 하나님께 대한 거룩한 두려움을 가진 결과, 즉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사죄의 은총을 베푸신 하나님을 다윗이 경외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 회개의 제사를 드린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대한 다윗의 선언
1절, 다윗이 이르되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이요 이는 이스라엘의 번제단이라 하였더라
-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
- → 창 28:17의 야곱이 꿈에서 하늘에 닿은 사닥다리를 보고 하나님의 옴성을 들은 후에 ‘이는 하나님의 전어요’ 라고 두려워하며 한 말인 ‘하나님의 전' 이란 단어에 ‘여호와'라는 단어가 들어간 점을 제외하고는 동일한 표현.
- 본문에 나타난 다윗의 고백은
- 야곱의 고백처럼 하나님(또는 하나님의 사자)을 직접 대면한 이후에 토로되어 나온 두려움과 감격에 찬 고백이라 할 수 있으며,
- 오르난의 타작 마당을 영구한 하나님의 전을 세울 곳으로 지정하는 중대한 선언 </aside>
- 다윗 개인의 신앙과 관련하여서는
<aside> 💡 옥스퍼드 21:18-22:1 결론
본장 전반과 이어지는 22:1의 내용은 다윗의 인구 조사 범죄로 시작하여 예루살렘이 새로운 종교적 중심지가 된 배경을 제시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고 있다.
- 사무엘서 저자는
- 이러한 내용을 사무엘서 전체의 맨 마지막에 위치시켜서 다윗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그와 그의 나라를 용납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부각시킨 반면,
- 본서의 저자는
- 여호와의 주도적인 행위를 통해서 다윗의 범죄가 오히려 예루살렘이 제의 중심지가 된 배경으로 작용하였음을 기술하여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부각시킨 것.
또한 최종적으로 다윗은 오르난의 타작 마당을 가리켜 ***‘여호와 하나님의 전'이며 ‘이스라엘의 번제단'***이라고 선언하는데
- 이로써 이곳에 당위적으로 성전이 세워져야 함을 나타내주고 있다. 따라서 이후의 내용은 자연스럽게 성전 건축을 위한 준비의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asi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