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8월 17일 목요일 묵상구절 대상21:1-22:1 <다윗의 인구 조사(삼하 24:1-25)>

미령미령 2023. 8. 17. 12:04

묵상구절

21:1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21:2 다윗이 요압과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가서 브엘세바에서부터 단까지 이스라엘을 계수하고 돌아와 내게 보고하여 그 수효를 알게 하라 하니

21:3 요압이 아뢰되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보다 백 배나 더하시기를 원하나이다 내 주 왕이여 이 백성이 다 내 주의 종이 아니니이까 내 주께서 어찌하여 이 일을 명령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하시나이까 하나

21:4 왕의 명령이 요압을 재촉한지라 드디어 요압이 떠나 이스라엘 땅에 두루 다닌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21:5 요압이 백성의 수효를 다윗에게 보고하니 이스라엘 중에 칼을 뺄 만한 자가 백십만 명이요 유다 중에 칼을 뺄 만한 자가 사십칠만 명이라

21:6 요압이 왕의 명령을 마땅치 않게 여겨 레위와 베냐민 사람은 계수하지 아니하였더라

21:7 하나님이 이 일을 악하게 여기사 이스라엘을 치시매

21:8 다윗이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21:9 여호와께서 다윗의 선견자 갓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1:10 가서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세 가지를 내어 놓으리니 그 중에서 하나를 네가 택하라 내가 그것을 네게 행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신지라

21:11 갓이 다윗에게 나아가 그에게 말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마음대로 택하라

21:12 혹 삼년 기근이든지 혹 네가 석 달을 적군에게 패하여 적군의 칼에 쫓길 일이든지 혹 여호와의 칼 곧 전염병이 사흘 동안 이 땅에 유행하며 여호와의 천사가 이스라엘 온 지경을 멸할 일이든지라고 하셨나니 내가 무슨 말로 나를 보내신 이에게 대답할지를 결정하소서 하니

21:13 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곤경에 빠졌도다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심히 크시니 내가 그의 손에 빠지고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하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21:14 이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염병을 내리시매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죽은 자가 칠만 명이었더라

21:15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멸하러 천사를 보내셨더니 천사가 멸하려 할 때에 여호와께서 보시고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사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그 때에 여호와의 천사가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 곁에 선지라

21:16 다윗이 눈을 들어 보매 여호와의 천사가 천지 사이에 섰고 칼을 빼어 손에 들고 예루살렘 하늘을 향하여 편지라 다윗이 장로들과 더불어 굵은 베를 입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21:17 하나님께 아뢰되 명령하여 백성을 계수하게 한 자가 내가 아니니이까 범죄하고 악을 행한 자는 곧 나이니이다 이 양 떼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시고 주의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지 마옵소서 하니라

21:18 여호와의 천사가 갓에게 명령하여 다윗에게 이르시기를 다윗은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21:19 이에 갓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른 말씀대로 다윗이 올라가니라

21:20 그 때에 오르난이 밀을 타작하다가 돌이켜 천사를 보고 오르난이 네 명의 아들과 함께 숨었더니

21:21 다윗이 오르난에게 나아가매 오르난이 내다보다가 다윗을 보고 타작 마당에서 나와 얼굴을 땅에 대고 다윗에게 절하매

21:22 다윗이 오르난에게 이르되 이 타작하는 곳을 내게 넘기라 너는 상당한 값으로 내게 넘기라 내가 여호와를 위하여 여기 한 제단을 쌓으리니 그리하면 전염병이 백성 중에서 그치리라 하니

21:23 오르난이 다윗에게 말하되 왕은 취하소서 내 주 왕께서 좋게 여기시는 대로 행하소서 보소서 내가 이것들을 드리나이다 소들은 번제물로, 곡식 떠는 기계는 화목으로, 밀은 소제물로 삼으시기 위하여 다 드리나이다 하는지라

21:24 다윗 왕이 오르난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반드시 상당한 값으로 사리라 내가 여호와께 드리려고 네 물건을 빼앗지 아니하겠고 값 없이는 번제를 드리지도 아니하리라 하니라

21:25 그리하여 다윗은 그 자리에서 금 육백 세겔을 달아 오르난에게 주고

21:26 다윗이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 여호와께 아뢰었더니 여호와께서 하늘에서부터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 응답하시고

21:27 여호와께서 천사를 명령하시매 그가 칼을 칼집에 꽂았더라

21:28 이 때에 다윗이 여호와께서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응답하심을 보고 거기서 제사를 드렸으니

21:29 옛적에 모세가 광야에서 지은 여호와의 성막과 번제단이 그 때에 기브온 산당에 있었으나

21:30 다윗이 여호와의 천사의 칼을 두려워하여 감히 그 앞에 가서 하나님께 묻지 못하더라

22:1 다윗이 이르되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이요 이는 이스라엘의 번제단이라 하였더라

 

매튜헨리/옥스퍼드

스페셜포인트

대기서는 포로 귀환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민 이스라엘 역사의 영속성 및 정통성을 확신시켜 줌으로써 위로와 소망을 주고 그둘로 하여금 선민의 영광을 재건하는 일에 박차를 가하도록 하기 위하여 주로 다윗 언약을 받은 당사자인 다윗 왕조가 다스리던 남유다 왕국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왕정 시대사를 기록한 책이다.

역대상 구성

  • 1부 (1-9장)
  • 역대기서의 기본 집필 의도인 선민 이스라엘 역사의 영속성 및 정통성을 가장 확연히 정리할 목적으로 인류의 시조인 아담에서부터 포로 귀환 세대에 이르는 선민사 개관용 편집 족보를 다룸.
  • 2부(10-20장)
  • 본격적으로 다윗 왕조 중심의 이스라엘 왕국 시대사로 들어가서 다윗 언약을 받은 당사자이자 다윗 왕조틀 연 다윗의 통치와 정복 사업에 대하여 다룬다.
  • 3부(21-29장은)
  • 다윗의 인구 조사 사건과 성전 건축 준비 및 종교•행정 조직의 정비, 그리고 다윗의 유훈과 솔로몬의 즉위 사실.

제3부 21-29장 구조

    1. 21:1-22:1, 2)22:2-27:34, 3)28:1-29:30

본단락 개관 (전반부 21:1-22:1)

  1. 21:1-6 : 다윗의 인구 조사 명령과 요압의 결과 보고
    1. 병행구절(사무엘하 24:1-9) 과의 차이점
    • 사무엘하는 다윗으로 인구 조사를 하도록한 주체를 ‘여호와'로 기록하고 있는 반면, 본서는 ‘사단'으로 기록
      • → 여기서 사무엘서와 역대기서의 기자가 다윗으로 하여금 인구 조사를 실시하도록 한 주체를 서로 다르게 기록한 것은 두 기자의 기록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
        • 사무엘 기자
          • : 이 세상 모든 일의 주권자가 하나님이시라는 의식과 범죄한 이스라엘을 징계하기 위헤서 하나님께서 인구 조사를 실시하도록 다윗을 격동시키는 사단의 행위를 제지하지 않고 방치하셨다는 하나님의 섭리적 차원에서 그 주체를 사단이 아닌 하나님으로 기록한 것
        • 역대기서 기자
          1. 역대기서 기자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헤 설제적으로 인구 조사를 실시케 한 장본인이 사단이라는 결과적인 차원에서 그 주체를 사단으로 기록한 것.
          2. 여호와 신앙에 근거하여 선민의 영광을 회복해야 할 과업을 앞두고 있는 포로 귀환 세대에게 하나님께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혹여라도 갖지 않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할 수 있다.
    • 사무엘하에 기록이 없는, 요압이 다윗의 인구 조사 지시에 불만을 품고 레위와 베냐민 지파는 계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본서가 추가함.
    2) 역대기서 기자가 다윗의 실수를 기록한 의도
    • 한편 역대기서 기자는 지금까지 포로 귀환 세대에게 다윗 왕국의 영광을 강조하려는 저작 의도상 다윗 개인이나 다윗 가문의 치부에 대헤서는 기록을 과감하게 생략하였다. 그런데도 본문에서는 다윗의 실수 가운데 하나인 인구 조사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 그러나 이 역시 다윗의 치부를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다.
    • 역대기 기자가 이를 굳이 기록한 것은 → 이 사건이 성전이 건축될 터와 22:2 이후에 언급되는 다윗의 성전 건측 준비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

2. 21:7-17 : 다윗의 인구 조사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와 다윗의 회개

다윗은 인구 조사를 실시한 직후에 그것이 자신의 교만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하나님께 악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회개한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징계를 피할 수는 없었다.

하나님은 갓 선지자를 통하여 다윗에게 당신이 제시한 세 가지 정계 중 하나를 택하게 하셨고, 다윗은 3일 간의 온역 징계를 택하였는데, 그 결과 이스라엘 가운데 삼일 동안 온역으로 죽은 자가 무려 칠만 명에 이르렀다.


3. 21:18-22:1 : 다윗의 오르난의 타작 마당 제사와 하나님의 불 응답

하나님은 재앙으로 예루살렘을 멸하려 하셨으나 그 일을 후회하시고 심판을 수행하는 여호와의 사자에게 심판을 멈추게 하셨는데, 여호와의 사자가 재앙을 멈추고 선 곳은 오르난의 타작 마당이었다. 

이곳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지닌 곳으로서 저 옛날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하였던 곳이자 훗날 성전의 터가 된 곳이다(대하3:1).

다윗은 갓 선지자를 통하여 전해진 여호와의 사자의 지시에 따라 이곳 오르난청 타작 마당에서 여호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 그러자 하나님은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 다윗의 회개와 간구를 받으셨음을 보이셨다. 즉 여호와의 재앙이 공식 중단된 것. 

22:1은 다윗이 오르난의 타작 마당을 가리켜 ‘여호와의 전이요 이스라엘의 번제단’ 이라고 선언하였음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다윗이 오르난의 타작 마당을 하나님의 전 건축터로 삼기로 작정하였음을 독자들에게 시사해 주는 것으로서,

다윗의 인구 조사 사건을 → 22:2 이하에 기록된 다윗의 성전 건축 준비 및 종교 조직의 정비와 연결시키고, 나아가 다윗의 실수 가운데 하나인 인구 조사 사건을 언급하면서도 그것을 부정적으로만 묘사하지 않고 오히려 성전 건축 부지를 결정한 사건이라는 긍정적인 측면에서 묘사하고 있다.



그 동안의 내용 전개와 달러 다윗에게 있었던 부정적인 사건들 가운데 유일하게 이사건의 전모를 자세히 기술하는 이유는?

→ 본서의 일차 독자들이 처한 상황과 관련해 이해.

  • 당시 다윗은 이스라엘의 군사적 능력을 가늠하고 이를 파악하고자 하려는 의도에서 인구 조사 명령을 내렸을 것이다. 이같은 다윗의 인구 조사 사건은
    • 하나님보다 군사적 힘을 잠시라도 의지하고 자랑하려 했던 다윗의 교만 반영해 주며
    • 궁극적으로 이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다윗이 여러 전쟁에서 지속적으로 승리를 일궈냈지만,
    이 모든 것은 전적으로 그를 승리케 하신 하나님의 은혜였지 그의 군사적 능력에 따른 결과가 아니었다.
    그러나 다윗은 이러한 인구 조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만큼은 그 동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행하신 일들을 자신의 힘과 눙력을 통해서 이룩한 것인 양 생각하는 교만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이처럼 다윗이 교만에 사로잡혀 시행했던 조치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것이었고 이후 나타나는 사건 흐름을 통해서 볼 수 있듯이 이는 결국 하나님의 징계를 자초하게 된다.

 

인구조사 사건의 결말이 본서의 일차 독자들에게 전하는 교훈

  • 70년 간의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와 주변의 이방 세력들에 의헤 압제와 핍박을 당하고 있는 본서의 일차 독자들의 형편에서 다윗에게 있었던 이같은 군사적 능력은 너무나 간절한 것이었다.
  • 그러나 본서 저자는 본문을 통해
     군사적 힘의 유무가 그들이 꿈꾸는 재기와 회복의 관건이 아니라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 비록 다윗이 군사적 측면에서 여러 가지 업적을 이루었지만 그것은 그의 군사적 능력의 결과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였다.
  •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신정 왕국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아무리 큰 현실적 어려움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만 있다면 그것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 반면, 아무리 그들에게 강한 군사력이 있다 해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결여되어 있다던 본장에 나타난 것처럼 그들은 제대로 힘 한번 쓰지 못한 채 하나님의 징계에 빠지게 될 것이 분명하였다.
  • 그러므로, 그들이 구해야 할 것은
     군사적 강성함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믿음.

 

다윗 또한 죄인임을 교훈함

  • 본문을 통해 이스라엘 사상 손꼽힐 만큼 뛰어난 신앙의 영웅이었던 다윗까지도 어쩔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목도하게 된다.
  • 그리고 이러한 다윗의 선례를 통해서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는 바 세상에 어떤 사람도 하나님 앞에 의인일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롬 3:10).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

  • 하나님 사자의 지시대로 다윗이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제단을 쌓고 회개의 제사를 드리자 하나님께서 그 형벌을 철회하시고 은총을 베푸신 사실.
  • 우리는 연약하여 범죄할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피할 수 없으나,
    회개하는 자에 대헤서는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긍휼로 인하여 망하지 아니하고, 궁극적으로는 영원한 구원에 이르게 될 것임을 확신하게 된다.
  • 오르난의 타작 마당
    마땅히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의 장소가 되어야 하였던 오르난의 타작 마당이 도리어 하나님의 은총을 상정하는 성전의 터가 된 사실을 통해,
    • 죄인이 선 자리는 진노와 형벌의 장소가 되는 것이 마땅하지만
    •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를 의지해 회개하기만 하면 그곳은 오히려 하나님의 은총이 시작되는 곳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 실로 진흙탕 속에서 연꽃이 피어나듯 죄로 얼룩진 곳에서도 회개와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가 만나기만 하면 하나님의 은총의 꽃은 찬란하게 피어나게 되는 것이다.

사탄의 격동(역대상 21:1-6)

우리는 백성들의 수를 헤아리는 것이 나쁜 일이라고 생각지 않을 것이다. 왜 목동이 양의 수를 몰라야 하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들이 보는 것과는 다르게 보고 계신다. 분명 다윗의 이 일은 그릇된 것이었으며,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가 마음에 교만을 품고 그 일을 행했기 때문이다. 교만한 것보다 하나님을 더욱 불쾌하게 하는 죄는 없다. 다윗의 죄는 바로 이것이었다. 그는 홀로 이에 대한 책망을 받아야만 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Ⅰ. 이 일에 있어서 유혹자의 역할은 매우 적극적인 것이었다(1절).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여" 그 일을 하게 했다.

사무엘하 24장 1절에는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다윗을 감동시키사" 그 일을 하게 하셨다고 적혀져 있다.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은 인간의 죄악과 불의함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또 거기서도 인정되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죄악의 창시자가 아니라는 것, 즉 그는 "어느 인간도 유혹하지 않는다" 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다윗을 감동하사 그 일을 하게 하셨다는 것은, 여기에 암시된 대로 지혜롭고 거룩한 목적을 위해 하나님이 마귀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허용하셨다는 뜻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 1절, 다윗이 인구 조사 범죄를 저지르게 된 원인에 대헤 사단이 이스라엘을 치려고 다윗을 부추겼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 본절의 ‘사탄’은 정관사가 없는 명사만 사용.
  • 이 용례는, 솔로몬 왕의 ‘대적’들을 가리킬 때 사용됨.
  • 본서 저자는 이미 앞서 기록된 열왕기서를 염두에 두고 솔로몬이 범죄함으로 대적을 통하여 고난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다윗 역시 범죄함으로 대적을 통해 고난 가운데 처해지게 될 것임을 암시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정관사가 없는 명사만으로 ‘사탄'을 나타냈다고 볼 수 있음.
  • 이러한 표현을 통해 본서 저자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탁월한 두 인물인 다윗과 솔로몬 조차 한계를 지닌 허물 많은 인간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다윗이 인구조사를 시행하게 한 주체]
  • 주어가,
    • 사무엘서: ‘여호와’
    • 역대기서: ‘사탄’
  • 하나님께서는 다윗으로 하여금 인구 조사를 하게 하려는 사단의 악한 의도를 신적 허용(permissio Dei)으로 방임하셨는데 사무엘서 저자는 이를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어 기록한 것이고 역대기 저자는 이를 사단에 초점을 맞추어 기록함.
    • 사무엘서: 이스라엘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의 일환으로 발생한 것으로 기록,
      • ‘감동시키사’
        • 하나님께서 당신의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사단의 악한 행위를 허용하셨다는 데 그 초점.(삼상26:19; 욥1:12)
      • 역대기서: 다윗에 대해 보다 동정적 입장

      • ‘격동하여’
        삼하 24:1과 본절의 주어만을 비교하면 본서가 사무엘서보다 더 부정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본절의 내용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던 그렇지 않다. 사무엘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심관하 시기 위해 다윗을 통헤 인구 조사를 행하게 만드신 것처럼 묘사하였는데, 이는 본서 독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다윗 왕조와 함께하시므로 이스라엘이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라는 역대기의 주제에 반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므로 역대기 저자는 이를 다시 정리하여 본문처럼 표현하였던 것이다.
      • 즉 역대기 저자는 다윗이 사단의 간사한 궤계에 이끌려 인구 조사를 행한 것처럼 묘사하여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셨다는 사실을 경감시켜 표현하고 있는 것. 이처럼 본서 저자는 밧세바와의 간음 사건과 더불어 다윗의 2대 범죄 사건으로 평가되는 인 구 조사 사건에 있어서까지도 다윗을 동정하는 입장에서 묘사하고 있다.
      • 본서 저자는 범죄한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정계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그둘을 대적하신다는 사무엘서의 표현을 우희하여 •사단이 이스라엘을 대적하였 다' 라는 표현으로 나타내주고 있는 것

    💡 삼하24:1-3절 강해,

    사무엘서 저자는 문장의 주어를 '여호와 하나님'으로 기록한 반면, ↔ 역대기 저자는 '사단' 으로 기록. 
    ⇒ 즉 동일한 행동의 주체를 각각 '여호와 하나님'과 ‘사단’ 으로 달리 기록하고 있는 것.

    이는 성경 무오설에 대한 반박의 증거로 인용되기도 할 만큼 쉽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였다. 과연 하나님께서 하신 것인가? 아니면 사단이 행한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하나님과 사단이 같이 행한 것인가? 
    그러나 이러한 문제 제기는 형식 논리학에서 ‘A는 B이다' 와 ‘A는 B가 아니다' 와의 두 판단 사이에 중간의 것은 없다는 사유 법칙 중의 하나인 서양 철학의 배중률에 근거한 생각이다.
    그러나 서양 철학이 성경을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서양 철학의 근간이 되는 고대 그러스 사고와는 현격히 다른 히브리적 사고에 따르자면, 하나님이 허용하시는 것은 곧 하나님이 그것을 행하시는 것이다. 
    • 이는 신 중심적인 사고에서 근거한 것으로, 하나님의 섭리 아래서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그분의 영역으로 돌려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 또한 히브리인들은 이차적 원인들을 밝힐 때에, 그것들과 일차적 원인과의 적절한 관계를 설명하는 일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 그러므로 이들의 사고로는 본문의 기록과 대상 21:1의 기록이 전혀 모순일 수 없었다. 이러한 히브리인들의 사고는 우리에게 자칫 하나님께서 악을 조장하시 는 것처럼 여겨지게도 한다. 그러나 단정적으로 말해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사람을 시험하시거나 미혹하시지 않는다(약 1:13-15). 그러므로 본문의 이러한 표현은 하나님께서 사단과 같이 인간을 죄 짓도록 미혹하셨다는 의미가 아니다.
    • 다만 모든 사건의 주재가 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강조한 히브러적 표현일 뿐이며, 하나님의 죄에 대한 허용을 설명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 즉 실제로는 대상 21:1의 기록처럼 사단이 다윗을 격동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본서 저자가 이렇게 표현한 것은 다윗 개인의 범죄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이스라엘 전체 회중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와 다윗의 범죄가 밀접한 연관이 있옴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 그러나 역대기 저자는 그러한 의도보다는 범죄의 일차 조장자가 사단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단을 문장 주어로 해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사단은 하나님의 섭리 하에서 하나님의 의도대로 행하였다는 것인데, 여기에는 다른 한 가지 의문이 더 제기될 수 있다.
    그것은 사단이 마치 천사처럼 하나님의 수종자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성경 무오론의 선봉장 중 한 사람인 구약 학자 글리슨 아처는 “그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사단 자기에게 이롭다는 사실을 사단이 발견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물론 다윗에게 인구 조사를 하게끔 하신 하나님의 목적
    — 나라가 부강해짐에 따라 점점 교만하여져서 당신보다는 강대한 군사력 자체를 의지하고 그 세력을 뽑내려 한 다윗에게 큰 시련을 주심으로써 다시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으로 돌아오게 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윗으로 하여금 인구 조사를 하게끔 격동한 사단의 목적은 달랐다.
    • 그는 동일한 그 일을 통해 오히려 다윗에게 크나큰 타격을 주고 그 가운데서 절망하게 하여 여호와를 떠나게 하려는 것이 목적이었다.
    • 하나님께서는
      • 근본적으로 자비로운 동기에서,
      • 다윗과 및 그의 백성이 배워야 할 교훈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며 또한
      • 그들을 영적으로 성장시키고 겸손하게 만들기 위하여 다윗으로 하여금 인구 조사를 하도록 부추기신 반면,
    • 사단은
      • 근본적으로 악의에 찬 동기에서,
      • 이스라엘에 혹독한 타격을 가하며 다윗에게 크나큰 상처를 주기 위하여 다윗을 부추겼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하나님과 사단이 동시에 다윗의 범죄에 관여한 것은 사실이나 이 일을 통해 성취하고자 한 목적이 서로 달랐으므로 결단코 사단을 여호와의 수종자로 볼 수 없다.

 📎 삼하24:1 강해,
본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 이는 다윗의 범죄가 다윗 한 사람만의 책임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즉, 사단의 사주로 다윗에게 생겨난 인구 조사하려는 마음을 이스라엘을 징계하려는 목적을 가지신 하나님이 막지 않으시고 방기하셨음을 강조해 보여주는 것이다.
  • 따라서 본문의 묘사를 근거로 인구 조사를 감행한 다윗의 무죄를 주장할 수 없다. 즉 다윗의 인구 조사는 이스라엘의 군사력을 확인하여 자신의 힘을 과시해 보려 한 다윗의 마음을 단지 사단이 적극적으로 충동질하고 하나님이 방기하심으로 일어난 사건일 뿐이다.
    • 이는 다윗이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자신의 군사력을 의지하려는 마음이 더 컸음을 암시한다.
    • 그리고 그런 다윗의 마음은 그 자체로 이미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할 신정 왕국의 통치자로서 그 마음에서 하나님을 추방한 큰 범죄라 할 수 있는 것이다. 

📎 삼하24:1 강해,

범죄한 이스라엘을 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
  • 하나님의 극렬한 분노를 불러일으킨 이스라엘의 범죄가 무엇이었는지는 정확히 드러나지는 않음.
  • 본문의 상황 이전에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하여 분노하셨음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그러한 분노는
    • 일차적으로 제21장에 기록된 ‘년부년 3년 기근'을 야기케 한 하나님의 분노와,
    • 더 나아가 다윗 시대에 있었던 이스라엘과 다윗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모든 분노를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본서 저자가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본장에 기술되고 있는 내용이 일회성을 가진 특별한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고 선민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전형적 사건, 즉 ‘인간의 범죄’하나님의 징계-인간의 회개-하나님의 회복'을 보여주는 구속사의 전형적 패턴임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 본장의 사건이 이렇듯 구속사의 전형적 사건이라는 것은 결국 본장외 내용이 사무엘하 전체의 모든 사건, 그러고 더 나아가서는 구속사의 모든 사건을 풀 수 있는 해석학적 틀을 제공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악한 일이 어디에서 흘러들어 왔는가를 추적해 보기로 하자. 하나님과 모든 선함의 적인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였다" 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가 목표한 것은 힘을 약하게 하고, 수를 감소시키며 하나님의 이스라엘의 영광을 어둡게 하는 것이었으며,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그는 "사탄" 곧 철천지 "원수" 였다. 그러나 하나님을 열심히 따르던 다윗이 사탄의 영광을 받아 그릇된 일을 행하였다는 것은 잘 이해되지 않는 일인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다윗과 같은 자들은 사악한 자들이 건드릴 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훌륭한 성자들일지라도 하늘나라에 가기 전까지는 결코 사탄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이제 사탄이 이스라엘을 해하고자 했을 때, 어떤 방법을 택하였는가를 보자. 그는 "하나님을 격동하여(욥기 2장 3절에서와 같이) 그(다윗)를 치게 하지" 않았으나, 백성들의 가장 훌륭한 친구인 다윗을 격동시켜, 그들을 계수하게 함으로써,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여 그들을 대적하게 하였다.

다음을 명심하자.

  1. 마귀는 하나님 앞에 우리를 고발하기보다는,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대적하여 죄악을 짓도록 유혹함으로써 우리를 더 큰 불행에 빠뜨린다. 그는 아무도 멸하지 않으나 그들 자신의 손으로 스스로를 멸하도록 만든다.
  2. 사탄이 하나님의 교회에서 행할 수 있는 가장 큰 악은 교회의 우두머리 된 자들로 하여금 교만하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도 모든 사람 가운데 특히 교회를 다스리는 자들 가운데 이 죄가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리라고는 생각지 않기 때문이다.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라" (눅 22:26).

 

Ⅱ. 계수의 일을 맡은 자들은 그 일에서 매우 수동적이었다.

다윗이 이 일에 고용한 요압은 매우 적극적으로 공적인 일을 행한 자였으나, 이 일에 있어서는 완전히 강요당하였고 마지못해 행하였다.

📎
21:3 요압이 아뢰되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보다 백 배나 더하시기를 원하나이다 내 주 왕이여 이 백성이 다 내 주의 종이 아니니이까 내 주께서 어찌하여 이 일을 명령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하시나이까 하나
  • ‘그 백성’ : ‘그의 백성’(3인칭 단수 소유격).
    •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강조하는 역대기 저자의 독특한 표현.
    • 사무엘서 병행 구절의 ‘내 주 왕의 눈으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라는 다윗의 각성과 재고를 촉구하려는 의도로 전달된 요압의 발언이 의도적으로 생략되어 있음.
    • 본서 저자는 보다 더 부정적 시각
      ‘이스라엘 백성은 다위 소앙의 소유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소유인데 어찌하여 마치 자신의 백성인 것처럼 계수하려고 하는가’
      제사장적 관점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소유권을 보다 강조, → 이스라엘 왕이라 할지라도 이를 침해할 수 없음을 부각시킴.
  • ‘내 주 왕이여 이 백성이 다 내 주의 종이 아니니이까
    • 요압은 앞의 본문에서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소개한 이후 본문에서는 ‘다윗의 종'으로 표현함으로써
      • ⇒ 하나님의 백성이 결국 다윗의 백성이라는 식의 논리로 다윗의 인구 조사 의지를 꺾으려고 했다.
      *‘이미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백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데 인구 조사가 무슨 소용 이 있는가'*라고 반문하고 있는 것이다.
  • 다윗의 반응
    이와 같은 요압의 신앙적 충언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인구 조사 계획을 철회하지 않고 강행하였다. 이러한 다윗의 자세는
    •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는 왕국을 자신의 소유로 여기는 그릇된 인식의 반영이며,
    • 자국의 군사력이 얼마나 되는지를 가늠하여 잠시나마 하나님보다 이러한 군사력을 의지하려 한 불신앙적 태도의 반영이다.
  •  

내 주께서 어찌하여 이 일을 명령하시나이까

  • 요압은 ‘내 주’라는 호칭을 3회나 반복하고 있음.
    • 다윗이 자신의 주인일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거듭 강조, 다윗이 굳이 인구 조사와 같은 방법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자신의 주인될을 확인할 필요가 없음을 각인시키고 있는 것.
  • 명령하시나이까
    • 자신이 목표한 바를 성취하기 위해 방법을 적극적으로 강구하는 것을 뜻함. → 사무엘서는 감정적 용어를 썼다면, 역대기서는 의지적 뉘앙스가 보다 강한 단어를 사용. 다윗의 인구 조사 동기를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

어찌하여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하시나이까 하나

[다윗의 인구 조사 명령이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1. 이스라엘 전체의 범죄를 유발하는 원인이 될 수밖에 없음.
    • 비록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다스리는 신정 국가라 하 더라도 당시 왕정 체제 아래서 왕인 다윗의 명령은 아무리 잘못된 것이라 하더라도 그의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있어서는 무조건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것이었다.
    • 따라서 이렇게 나라를 대표하는 다윗의 잘못된 판단과 명령은 왕 자신 뿐만 아니라 백성들 모두를 하나님 앞에 범죄케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요압은 다윗에게 본문과 같은 항변을 하는 것.
  2. 다윗 왕이 인구 조사를 실시한 목적 — 자신이 영광을 받고자 하는 마음
    1. 이 일은 표면적으로는 20-60세 사이의 군대에 나갈 수 있는 남자의 수를 조사하기 위한 것. 이는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군대의 힘을 의지하려는 다 윗의 속마음이 표출된 것.
    2. 아울러 이같은 인구 조사 실시의 배후에는 자신이 다스리는 백성의 다중함을 확인함으로써 자신이 영광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 결국 문맥을 통한 접근에서 발견되는 다윗의 죄는 그의 교만 즉 자신의 위세를 과시하고 하나님이 아닌 눈에 보이는 군사력을 의지하려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삼하24:2,3 강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백성을 백 배나 더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3절).
  • 삼하 본문의 ‘기뻐하시나이까' 에 해당하는 단어보다는 감정적 요소가 비교적 적고 의지적 요소가 강하게 드러나는 표현으로 죄에 있어 다윗의 책임을 더욱 부각.
  • 대상 21:3 기록은 범죄를 향한 다윗의 의지적 측면이 강조되어 있는 반면,
  • 본문 감정과 열정에 사로잡혀서 다윗이 죄를 짓게 되는 것으로 기술되어 있는 것이다.
  • 또한 역대상에서는 요압이 다윗에게 인구 조사가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데, 다윗이 그러한 간언을 무시하고 인구 조사를 한다는 점에서 다윗의 죄가 더욱 무거운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같은 사건을 두고서 역대기 저자보다는 다윗의 죄를 덜 부각시키는 방식으로 기술하는 이유]
  •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이 다윗의 범죄가 다윗 개인의 잘못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 온 회중과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 또한 본서 저자는 요압과 더불어 군대 장관들도 다윗 왕에게 설복 당하는 것으로 기록하여 이번 인구 조사 범죄에 여러 사람들이 연루되어 있음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 이러한 역대기와의 차이를 통해 본서 저자는 인구 조사 범죄에 있어 다윗 한 사람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가 공동으로 책임이 있음을 부각시켜 드러내려 했음을 알 수 있다.

1. 그는 이 일을 행하기 전에 항의를 하였다.

왕의 영예나 나라의 번영을 위해서는 그보다 더 용감히 나설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이 문제에서만은 변명을 하려했다. 왜냐하면

(1) 그것은 소용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일을 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번성케 해주실 것을 약속하셨으므로, 그것이 과연 이행될 것인가는 의심할 필요조차 없었다. 또 백성들은 모두 다윗의 종이었고, 그에 대한 그들의 충성과 사랑을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또한 그들의 수효도 다윗이 바랄 수 있는 믿음직한 힘이 되고 있었다.

(2) 그것은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그 일을 함으로써, 이스라엘이 죄에 물들지도 모르며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 임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요압은 이것을 깨달았으나 다윗 자신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율법에 매우 밝은 자들이라고 해서, 언제나 그 율법들을 적용시키는 데 가장 빠른 통찰력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 21:4 왕의 명령이 요압을 재촉한지라 드디어 요압이 떠나 이스라엘 땅에 두루 다닌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재촉한지라’

  • 재촉한지라(하자크) : 원래 ‘강하다’, ‘강하게 하다’ 라는 뜻.
  • 요압이 앞절에서 여러 가지의 말로 다윗의 인구 조사 계획을 저지하려고 했지만, 다윗은 명령을 철회하기는커녕 요압에게 오히려 더 강한 어조로 명령 시행을 촉구했다.
본서 저자가 다윗의 부정적 측면을 강조하는 의도는?
  • 본서의 저자가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다윗에 관하여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다 이처럼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것은 다소 당혹스럽기도 하다.
  • 그러나 다윗의 인구 조사 사건이 이후 구속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성전 건축 부지 선정의 배경이 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 본문의 내용은 이후 있을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부각시켜 주기 위한 본서 저자의 의도에 따른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드디어 요압이 떠나 두루 다닌 후에… 돌아와서’

  • ‘드디어 떠나서’
    — 요압이 다윗에게 간절한 어조로 간청했으나 다윗이 명령을 철회하지 않고 오히려 강화하자, 결국에는 그 명령에 따라 억지로 다윗의 곁을 떠났다는 뉘앙스를 전달한다.
  • 사무엘서와 비교하여, 인구 조사 과정과 기간에 대한 서술은 생략함.
  • → 이후 전개되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회복, 및 다윗의 헌신이라는 본서의 흐름과 강조점을 위해.


21:5 요압이 백성의 수효를 다윗에게 보고하니 이스라엘 중에 칼을 뺄 만한 자가 백십만 명이요 유다 중에 칼을 뺄 만한 자가 사십칠만 명이라

[다윗이 인구 조사를 실시한 궁극적 목적을 단적으로 드러냄]

‘칼을 뺄 만한 자’
  • 전쟁에 동원될 수 있는 튼튼한 장정들의 수효.
  • 이를 통해 볼 때 요압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은 이스라엘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모든 백성들의 수가 아니라 전쟁에 참여할 만한 장정들의 수를 계수하였음을 알 수 있다.
  • 인구 조사 과정에 있어서 사실 이러한 군대의 계수는 다윗이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군대의 힘을 더 의지하였음을 가시적으로 보여준다. (다윗의 불순한 의도)

숫자가 사무엘서에 기록된 수효와 일치하지 않음에 대하여
  • 역대기 저자가 기록한 수효의 합산에 해당하는 157만 명은 사무엘서 저자가 기록한 130만 명보다 무려 27만 명이나 초과함.
  • 이스라엘에 존재하는 정규군과 예비군의 차이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즉
    • 역대기 기자는 정규군과 예비군의 수효를 모두 합하여 밝힌 반면
    • 사무엘서 기자는 보다 강한 전력을 지니는 정규군의 수효만을 밝힌 것.
      • 요압의 인구 조사 결과 보고 이후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 계수된 베냐던 지파의 수 ‘삼만'까지 사무엘서 저자가 유다의 군사 수효에 포함시켜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

 📎 삼하24:9절 설명,

이 수효는 역대기 기록과 다름.

이와 같은 인구 조사 보고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왜 본서에서는 역대기의 기록에 비해 유다인들의 숫자를 많게 그러고 이스라엘인의 숫자를 적게 기록하고 있는가 하는 것
이다.


인구 수가 많은 것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축복과 관련된다는(창 16:10; 35:11; 신 1:10) 측면에서 본다면 본서 저자는 계수된 유다 지파의 수효 중 보다 많은 수효를 제시하여 다윗과 유다 지파가 보다 융성하였음을 강조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점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하여 상호 비교되는 이스라엘의 수효는 보다 적은 숫자로 제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 요압은 그 일을 다 마치기도 전에 싫증이 나버렸다. 왜냐하면 "요압이 왕의 명령을 밉게 여겼기" 때문이다(6절).

다윗왕이 무슨 일을 하든지 언제나 "모든 백성이 다 기뻐하였었다" (삼하 3:36). 그러나 이제 이 명령들은 일반적으로 기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요압도 이 일을 좋게 여기지 않음을 분명히 나타내었다.

그래서 백성들의 수효는 사실상 매우 컸지만, 그는 그 일을 완전히 해두려는 마음도 없었기 때문에 중요한 두 지파인 레위 지파와 베냐민 지파를 계수하지 않았다(5, 6절).
그리고 그는 그 일을 하는 것을 달갑게 생각지 않았기 때문에 아마 다른 지파를 계수하는 것도 정확히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계수한 것과 사무엘하 24장 9절에서 계수한 수효가 다른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21:6 요압이 왕의 명령을 마땅치 않게 여겨 레위와 베냐민 사람은 계수하지 아니하였더라

‘밉게 여겨’
→ 요압이 다윗의 명령을 신실하게 수행하지 않고 고의적으로 어긴 이유를 설명해줌.
  • 원문의 뜻
    • 제의적 이유나 신앙 또는 윤리적 이유로 인해 상대방을 ‘지극히 싫어하다’, 또는 ‘질색하다’, ‘혐오하다’ 등의 의미.
    • 본문에서처럼 수동형으로 사용되면 ‘가증스러워 하다’ 란 의미를 가짐. 

‘레위와 베냐민 사람은 계수하지 아니하였더라’

  • 다른 지파들에 대해서는 인구 조사를 하면서도 레위, 베냐민 지파에 대해서만은 인구 조사를 하지 않았다.
  • 또한 요압은 아직 인구 조사가 끝나지 않은 상태를 계속 지연시키고 있었다. — 이는 요압이 위의 두 지파에 대한 하지 않았기에 최종적인 보고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임시적 중간 보고만 한 채로 인구 조사 의 마무리를 계속 지연시키고 있었음을 나타낸다.
[요압이 레위, 베냐민 지파에 대해 조사를 빨리 끝내지 않고 인구 조사를 지연시킨 나름의 이유]
  1. 레위 지파
    • 율법의 가르침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 이들 레위 지파는 이전 모세 시대에 인구 조사를 실시했을 때에도 그들이 하나님께 바쳐진 자들이라는 이유로 계수의 대상에서 제외된 바 있다(민 1:49).
  2. 베냐민 지파
    • 그들이 주로 거하는 지역적 특성과 관련이 있다.
    • 이들은 주로 예루살렘과 기브온 지역에 거하였는데 먼저 예루살렘성에는 언약궤를 보관한 장막이 있었고 기브온에는 성막이 있었다. 따라서 신앙적 측면에서 합당치 못한 다윗의 명령을 애초부터 반대던 요압은 베냐민 지파가 거하는 지경이 모두 성소의 기능을 수행하였기에 이러한 지역에서 군사적 목적으로 인구 조사하는 것을 주저한 것으로 풀이된다.
    → 결론적으로 요압은 위의 상황들을 구실로 베냐민 지파와 레위 지파에 대한 인구 조사를 미룬 채 버티고 있다가,
    하나님이 내리신 재앙에 대한 소식을 듣고서야 다윗에게 돌아왔던 것으로 보언다.

 

💡 옥스퍼드 1-6절 결론
  • 이상 본단락에서 다룬 다윗의 인구 조사 명령과 이에 대한 요압의 미완성 인구 조사 보고는 앞서 소개된 전반적인 다윗 관련 기사와 대립적인 내용이라고 특징 지을 수 있다.
▶︎ 앞선 다윗의 형통함과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하셨다는 사실이며 다윗의 경우 그가 무엇을 하든지 던저 하나님께 묻고 일을 시행했다는 점이다(14:2. 10, 14, 16, 17; 18:13). 그
  • 형통함의 배후에 윗의 신복들의 절대적이고 헌신된 충성과 백성들의 결집된 의지가 있었음을 또한 밝허고 있다 (11:10-12:40; 13:1-4; 15:1-3; 18:1-17; 19:10-15; 20:4-8).
▶︎ ↔ 그러나 본문에 소개되는 다윗의 모습은 어떠한가?
  •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군사력을 의지하는 불신앙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 그리고 백성들 모두의 동의는 차처하고 다윗의 가장 가까운 측근이며 가장 충성스럽게 복종해야 할 요압조차도 반대 의사를 표명하면서 다윗의 명을 실행하는 것을 더디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그 자체만 보면 다윗의 인구 조사 사건은 불신앙적이며 부정적언 사건으로서 역대기 기자에 의해 지금까지 언급된 다윗 관련 기사와 비교할 때 이채로운 내용이라 아니할 수 없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본서 저자는 다윗 통치기의 이스라엘을 신정 왕국의 모델로 제시하며 그의 통치와 사적 가운데 어둡고 부정적인 측면의 사건들은 모두 생략하였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본서 저자가 앞선 내용과 달리 다윗 통치기의 이러한 부정적 사건을 언급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 이는 본서의 내용이 사무엘서와 비교되는 점을 들어 앞서도 언급하였지만 결코 다윗의 실패와 잘못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으로만 볼 수 없다. 이는 이 사건을 정리해 나가는 본서 저자의 주안점을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 즉 본서 저자는 사무엘서 저자와 비교할 때 다윗의 불신앙적 자세와 실패의 장면을 보다 간략하게 정리하고, 이후
    • 다윗이 회개하는 장면
    • 이로 인한 하나님의 용서
      성전 건축의 터로 지정된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관해 더 자세한 설명을 가하고 있다.
  • 이러한 본서 저자의 내용 서술과 관련된 강조점을 통해 본문의 내용은 다윗의 실패를 부각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 오히려 이후 있게 될 다윗의 회개와 그로 인헤 주어지는 하나님의 용서와 축복을 부각시키기 위함임을 알 수 있다.
📌 결국 본문은 본서를 읽는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일차 독자들에게
  • 과거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지만,
  • 언제든 죄로부터 돌이키고 회개하기만 하면 그 죄를 사유함 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더 큰 은혜를 받게 된다는 사실을 인식케 하여
  •  어떤 상황에서건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격려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인구 조사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와 다윗의 회개(역대상 21:7-17)

다윗은 이제 백성들을 계수한 일 때문에 징벌받게 되었다. 그것은 그의 마음의 어리석음, 곧 교만의 어리석음을 바로 잡기 위한 징벌이었다. 그러면 이에 대해 간단히 살펴 보기로 하자.

Ⅰ. 어떻게 그가 징계를 받았는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들이 잘못을 행하였다면, 그들은 마땅히 그에 대한 벌을 받으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1. 그는 하나님께서 괘씸하게 생각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는데, 다윗 같은 선한 사람에게는 이처럼 괴로운 일이 또 없었다(7절).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죄를 범하는 것을 살피시고는 언짢게 생각하셨다. 인간의 교만보다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는 죄악은 없으며, 하나님의 불쾌하심을 보는 것보다 은혜로운 영혼을 초라하게 하고 슬프게 하며 괴롭게 하는 것은 없다.

💡 21:7 하나님이 이 일을 악하게 여기사 이스라엘을 치시매
  • 하나님이 (빼에네 하엘로힘)
     ‘하나님의 눈들에(보시기에) 악했다’
    • 하나님을 가리키는 ‘엘로힘’ + ’~의 보기에’ 가 함께 표현된 경우는 매우 드뭄.
    • 뿐만 아니라, 부정적 의미의 ‘야라으’와 결합되어 있는데, 이런 표현은 더욱 찾아 보기 힘든 이례적인 것.
    • 이처럼 본서 저자가 구약 성경 전체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은 이례적인 표현까지 사용하여 다윗의 인구 조사 사건을 서술하는 데에는 특별한 의도가 내포 되어 있다.이는 이제까지 다윗을 신정 왕국의 이상적 왕으로 묘사하기 위해 밧세바와의 간통과 그녀의 남편 우리아 살해 사건(삼하 11,12장), 다윗 가문 안에 벌어전 피비린내 나는 반역과 살해 사건들을(삼하 13-20장) 모두 삭제하였던 본서의 경향과는 매우 다른 것이다.
      이처럼 본서 저자가 지금까지의 경향과 다르게 인구 조사의 범죄만큼은 강하게 부각시킨 것은 본서의 일차 독자들이 처한 상황과 관련헤 특별한 의미를 전달해 주기 위해서이다. (앞선 강해 참고)
  • 신인동형동성론적 표현까지 사용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낸 것은  다윗의 불신앙적인 행동과 이에 따른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컸는지를 선명하게 나타내주기 위해서이다.
  • 이처럼 하나님의 눈에 악한 다윗의 행동은 하나님의 진노를 유발시켰고 본문 이후에 언급된 것처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치시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본문의 징계 — ‘기근’]
  • 하나님의 징계가 내려지는 본문의 상황은 이어지는 8절에서 다윗의 회개가 다루어진다는 점에서 볼 때 다윗이 자신의 범죄를 인정하고 여호와께 용서를 구하기 이전의 일이다.
  •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전체에 어떤 징계를 가하시자, 비로소 다윗은 인구 조사가 여호와 앞에서 얼마나 심각한 범죄인지를 깨닫고 자복하게 된 것이다.
  • 사무엘서에서는
    • 갓 선지자가 다윗에게 나아와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세 가지 정계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고 하면서 그 가운데 하나로 7년 가뭄을 제시한 것으 로 나온다(삼하 24:13). 그런데 본서에서는 7년 가뭄이 아니라 3년의 기근을(12절) 징계 선택 사항으로 제시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차이점으로 미루어, 이스라엘의 가뭄은 이미 인구 조사가 감행된 직후부터 약 4년 간 지속된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으며, 12절의 기근은 그것이 다윗의 선택에 따라 7년으로 연장될 수 있음을 제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따라서 본문의 징계는 아마도 다윗이 회개하기 이전, 즉 갓 선지자로부터 기근을 징계의 선택 사항으로 제시받기 전부터 시작된 기근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2. 그는 그가 싸움에 의해서 징계받을 것인지, 기근에 의해서 인지 혹은 온역에 의해서인지를 선택해야 했다. 즉 그는 이 세 가지 중 한 가지 방법으로 징계받지 않으면 안되었다.

다윗을 좀 더 겸손케 하기 위해서 이러한 커다란 곤경에 빠지게 하였으며, 이 세 가지 중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를 신중히 생각하는 동안, 이 심판들은 그의 마음을 매우 두렵게 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 21:9 여호와께서 다윗의 선견자 갓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1:10 가서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세 가지를 내어 놓으리니 그 중에서 하나를 네가 택하라 내가 그것을 네게 행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신지라
  • 9절, 원문은 ‘이르시되’에 해당하는 단어가 2번 반복됨.
    • 이스라엘의 진정한 주권자이신 하나님이 내리시는 명령임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기에 이 부분은 정확히 번역되어야 한다.
‘여호와의 말씀’
  •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그릇된 명령을 내린 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
  • 왕으로서 다윗이 내린 인구 조사 명령에 신하인 요압이 순종해야 했던 것처럼 이제 주어지는 신정 왕국 이스라 엘의 진정한 왕이신 여호와의 말씀에 다윗은 무조건적으로 순종헤야 했다.
병행구절에만 있는 표현, ‘다윗이 아침에 일어날 때’
  • 이 심판의 말씀은 다윗이 회개한 직후가 아니고 그가 회개하고 하룻밤을 지낸 후였음.
  • 본문은 회개에 따른 응답의 즉각성과 회복의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한 것.
 📎 삼하24:12 강해,
본문은 궁극적으로는 어떠한 결정을 할 것인지를 말하라는 의미이지만 사용된 동사의 뉘앙스를 감안하면, 이 세 가지 중에 어떤 것을 선텍할지를 잘 숙고하라는 충고의 의미가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선지자 갓의 이 말은 결정 자체가 아니라 결정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갓의 말을 구체적으로 소개하는 데에는 저자의 특별한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 즉 결정 과정에서 다윗의 신앙적 면모가 드러나기 때문에 독자들로 하여금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하여 갓의 말을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 세 가지 제안 하나하나를 깊이 생각해 본 다윗은 이 셋 중 어느 하나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것들임을 깨달았을 것다.

물론 하나님께서 이 셋 중의 하나를 선택하도록 다윗에게 기회를 주신 것만으로도 하나님의 크신 은총과 자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에게 그 이상의 은총과 자비가 필요함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윗은 이 선택 사항 중 어느 하나도 감당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다윗에게 필요한 것은 선택의 기회가 아닌 하나님의 자비였다.

그러므로 다윗은 다음 절에서 이들 중 하나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대신 다소 엉뚱하게 들릴 수 있는 대답,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라고 말하는 것이다.


사실 죄의 삯은 사망이고(롬 6:23) 모든 인간은 죄인이므로 인간은 죽음 외에 다른 방법으로는 죄 값을 치를 수 없다.
→ 이는 본장 마지막에 다윗이 대속을 위한 제단을 쌓은 것처럼
 우리 모두를 위한 구속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스스로를 대속의 제물로 바치실 수밖에 없었던 십자가 구원 사건의 필연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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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절, 혹 삼년 기근이든지 혹 네가 석 달을 적군에게 패하여 적군의 칼에 쫓길 일이든지 혹 여호와의 칼 곧 전염병이 사흘 동안 이 땅에 유행하며 여호와의 천사가 이스라엘 온 지경을 멸할 일이든지라고 하셨나니 내가 무슨 말로 나를 보내신 이에게 대답할지를 결정하소서 하니

여호와의 칼 ↔ 대적의 칼
  • 결국 다윗은 대적의 칼을 피하고 여호와의 칼을 선택했다.
  • 그런데 이러한 다윗의 선택을 피상적으로만 판단하면, 다윗이 자신이 고난당하는 것 대신 비겁하게도 자신의 백성들의 죽음을 택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 그러나 본문에서 드러나는 이러한 대조는 오히려 다윗이 그의 대적, 즉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의 칼'에 의해 심판을 당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섬기는 ‘하나님 칼'에 의해 심 판을 당하는 편을 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역대기 저자의 의도
    • 두 칼의 대조는 사무엘서의 병행 구절에는 사용되지 않은 표현이다.
    • 역대기 저자는 ‘하나님의 칼'과 ‘대적의 칼'을 선명하게 대조시켜, 다윗이 비록 죄 중에 있었지만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수용하는 일에 있어서는 신앙적 선택을 하였다는 신학적 해석을 가미한 것이다. 

3. 그는 삽시간에 그의 백성 7만명이 온역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14절).

그는 그의 백성들의 수효가 증가하였다는 것을 듣고 교만했었지만, 이제 하나님의 심판이 그들의 수효를 적게 만들었다. 우리들이 교만했을 때, 그 힘을 빼앗기고 약화되고 우리에게 재앙이 더하게 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윗은 백성들의 수효를 부득이 알고자 했다. "그 수효를 내게 고하여 알게 하라."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이와는 다른 방법 즉 "그들을 칼에 붙여" 계수하려 하셨다(사 65:12). 다윗은 백성들의 또 다른 수효, 즉 죽은 자의 수효를 알게 되었으며, 이 계수는 그를 만족시키기보다는 오히려 매우 난처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죽은 자를 계수한 암담한 명부였으며, 이제 이 수효는 그의 계수 명부에서 제하여져야 했다.

💡 이 죽음의 원인은 :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의 공의.

📎 삼하24:15 강해,

다윗이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그 나라의 모든 영역이 여호와의 재앙에 빠졌다.

이로써 하나님은 다윗의 교만을 일시에 꺾어버리셨던 것이다
.

다윗은
  • 그가 통치하는 이스라엘에 존재하는 군대의 숫자, 혹은 백성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확인함으로 자기를 과시하고 만족감을 얻으려 하였지만,
하나님은
  • 그 중에서 '칠만 명׳ 을 일시에 온역으로 죽게 하심으로써 사람의 숫자를 의지하는 다윗의 인본주의적 가치관을 일시에 무너뜨려 버리셨던 것이다.
인간이 제 아무리 많은 소유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한 번만 치시면 그런 것들은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러고 만다는 사실을 다윗온 이 사건으로 철저하게 깨달았을 것이다.

📎 21:15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멸하러 천사를 보내셨더니 천사가 멸하려 할 때에 여호와께서 보시고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사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그 때에 여호와의 천사가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 곁에 선지라
  • 사무엘서: 천사가 그 손을 뻗어 예루살렘을 멸하려 하는 심관의 수행 과정에 강조점
  • 역대기: 하나님에 의해 보냄받은 천사가 예루살렘을 멸하려 하였다고 수정 기록하여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신 보도는 매우 이례적임
  • 대개 성경에서 하나님이 징계를 내러시는 방편은 이방의 침입을 통한 전쟁이나 질병, 기근 등을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 천사를 보내서 그런 정계를 시행하는 것으로 언급된 곳은 본문과 창세기의 소돔과 고모라 심판 사건(창 19장) 정도뿐.
  • 이처럼 본문의 사건을 천사를 통한 심판으로 묘사하는 것은
    • 이스라엘이 받은 징계가 우연한 결과가 아닌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임을 분명히 하기 위한 것이다.
    • 택한 백성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 사실을 더욱 직접적이고 분명하게 드러내고 각인시키기 위한 것이다.
    • 다윗의 합당한 자세
      •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신정 국가로서 선민의 대리 통치자로 세워진 왕은 이를 항상 언식하고 두렵고 떨림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했다.
    • 다윗의 죄
      • 그런데도 다윗은 하나님의 통치권을 무시하고 자의적으로 언구 조사를 강행하였다. 이는 신정 국가의 정체성과 그 근본을 뒤혼드는 행위라 아니할 수 없다.
      → 이 때문에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 다윗의 잘못을 지적하시고 그 천사를 보내사 다윗으로 하여금 심판하는 장면을 목도하게 하심으로(16절) 당신의 주권을 확연하게 드러내신 것이다

‘사자가 멸하려 할 때에 여호와께서 보시고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사’
  • ‘그가 그것을 파괴하고 있을 때에’원문의 의미,
    •  ‘천사가 예루살렘을 멸는 것을 보시고는’
      • 천사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재앙을 내리고 있었고, 이를 보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사 심판을 멈추게 하신 것.
[여호와께서 마음을 바꾸심 — 13절, 다윗의 고백에 대한 응답]

 13절, ‘여호와께서는 긍휼히 심히 크시니’
  • 본문에는 하나님이 천사가 심판하는 것을 보시고 이를 뉘우치셨다는 표현이 나온다. 이는 신인동형동성론적 표현으로서, 원어적으로 볼 때 여호와께서 당신의 백성들이 재난을 당하는 것을 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사 마음을 바꾸셨음을 나타낸다.
  • 이는 13절에서 다윗이 ‘여호와께서는 긍휼히 심히 크시니'라고 고백한 사실에 대한 여호와의 자비로운 응답이라고 할 수 있다.
본서를 읽는 일차 독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 당시 본서의 일차 독자들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약속의 땅에 다시금 정착할 수 있었지만 그들에게 약속된 선민 영광의 회복은 여전히 요원한 상태였다.
  • 심지어 그들은 주변의 여러 대적들에게 노략거리가 되 고 갖은 핍박을 당하고 있었다.
  • 이런 상황에 있는 본서 일차 독자들에게
    •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이 당하는 고통을 명백히 보고 계실 뿐 아니라,
    • 그들이 회개할 때는 마음을 돌이키신다는 내용의 본문 은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 곁에 선지라’

  • 병행 구절인 삼하 24:16
    → ‘오르난의 타작 마당'이 아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으로 기록. 오르난(Oman)은 히브리식 이름, 아라우나(Arauna)는 여부스식의 이름.
    • 사무엘서 — ‘아라우나'라는 본명을 그 대로 기록한 반면,
    • 역대기 — 그 이름을 히브리식으로 바꾸어 기록함으로써 이방적 요소를 제거하려 했다.
  • 본서의 일차 독자들의 정황을 감안해 표현한 것.
    • 당시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본서 일차 독자들에게 었어 가장 큰 문제 중 하나
    • 이방 족속들과의 타협 및 결혼을 통한 선민의 정체성 상실이었다.
    • 당시 예루살렘
      — 이방인들의 왕래와 침입이 잦았고 이러한 상황에서 그둘의 신앙적•혈통적 순수성을 깨뜨릴 수 있는 요소는 항상 도사리고 있었다.
    • 이러한 상황 속에 있는 본서 일차 독자들을 감안하여 본서 저자는 이방적 요소를 본문과 같이 될 수 있는 한 배제시키려 하였다.
 📎 삼하24:16 강해,

아리우나 타작 마당 곁
  • 본문의 표현은 하나님의 명령이 없었으면 예루살렘에도 큰 재앙이 임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음을 잘 보여준다. 즉 백성을 멸하는 여호와의 사자가 예루살렘 도성을 내려다볼 수 있는 모리아산에 위치한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 섰다는 것은 ⇒ 이제 막 예루살렘에도 재앙을 내릴 순간이었음을 보여준다. 타작 마당은 일반적으로 바람이 잘 통하는 고지대에 위치해 있었다.
  • 그리고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은 전승에 의하면 과거
    •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했던 모리아산에 있었다(창 22:1-14).
    • 후에는 솔로몬 성전이 이곳에 세워졌다(대하 3:1).
  • 이와 같이 자세히 밝히는 이유는, 허구가 아닌 실제 역사적 사건임을 보여줌과 동시에, 이 사건이 사람들에게 잊혀질 수 없는 인상 깊은 사건이었음을 보여준다. 

4. 그는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빼어 들고 예루살렘을 치려는 것을 보았다(16절).

그것은 하나님의 분노를 나타내며 다윗이 사랑하는 성읍을 멸해 버리겠다고 위협하는 표징이었으므로, 그는 매우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온역으로 인해서 백성들이 가장 많이 거하던 곳은 아주 황폐해 버렸다. 하나님의 사자는 비록 평온하게 그리고 고마운 임무를 가지고 왔다 하더라도, 그를 보는 힘센 자들까지도 두려워 떨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생명의 나무들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그룹들의 칼처럼 번쩍이는 칼날을 손에 든 사자를 본다는 것은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이었을까!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를 샀을 때, 우리가 다윗처럼 그 사자들을 볼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사자들이 무장을 하고 우리를 치려할 것이다.

💡 16-17절, 이스라엘 백성에게 임한 온역 재앙을 거두어 달라는 다윗의 간절한 기도


16절, 다윗이 눈을 들어 보매 여호와의 천사가 천지 사이에 섰고 칼을 빼어 손에 들고 예루살렘 하늘을 향하여 편지라 다윗이 장로들과 더불어 굵은 베를 입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여호와의 사자가 천지 사이에 섰고’,
  • 천사의 손이 예루살렘을 가리킴. →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인 급박한 상황.
‘칼을 빼어 손에 들고’
  • 이 상황은 다윗이 여호와께 제사를 드러고 여호와께 불로 응담을 받고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칼집에 꽂는 27절의 상황과 대조.
[다윗의 회개]
‘다윗이 장로들과 더불어 굵은 베를 입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림’
  1. 회개의 주체: 다윗과 장로들
    • 이 내용을 통해 특별히 본서 저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바
      • 인구 조사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의 현실 아래서 죄를 주도적으로 범한 다윗과 이스라엘 전백성을 대표하는 장로들이 다윗과 함께 회개했던 상황을 자세히 묘사하는 것은 이 내용을 통해 특별히 본서 저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바가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 앞서 여러 가지 내용을 통해 살펴보았듯이 본장 이전에 기술된 다윗 관련 기사는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측면의 역사 기술로 일관하고 있다. 이 가운데서 특별히 두드러지는 것은 다윗과 다윗의 용사들, 그리고 당시 백성들 모두가 연합하여 이방 족속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언약궤를 예루살렘에 안치하는 등의 역사를 이륙했다는 것이다.
      • 이러한 측면과 연결해서 본장의 사건을 보면 다윗과 백성들 모두가 축복의 상황에서 뿐만 아니라 형벌의 상황에서도 연합하여 문제를 수습해 나가고 있다 측면을 강조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2. 모습: 베옷을 입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림.
    • ‘굵은 베옷’ ⇒ 회개자가 하나님 앞에서 마땅히 입어야 할 복장(왕상21:27; 욘3:5,6; 눅10:13)
    • ‘땅에 얼굴을 대고 엎드리는 행위’ ⇒ 피지배자가 통치자에게 행해야 할 마땅한 자세(삼하24:20; 대하20:18).
    • 다윗과 장로들이 취한 이러한 행위는
      • 자신들이 죄인임을 자복하는 의미 뿐만 아니라,
      • 하나님께서만 이스라엘의 진정한 주권자이심을 고백하는 의미까지 포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궁극적으로 다윗과 이스라엘 장로들은 무엇을 구했는가?
    • 자기 백성을 향해 베푸실 여호와의 자비하심을 구했고,
    • 심판이 멈추어지기를 염원하였다.

 

Ⅱ. 그는 이 징계를 어떻게 견디었는가.

1. 그는 그의 죄를 매우 회개하여 고백하였으며, 그것을 용서해 주시기를 열심히 간구했다(8절).

이제 그는 그 자신이 매우 큰 죄를 지었음을 그리고 매우 어리석은 일을 행하였음을 자백하였다. 그러나 그 자신이 그에 대한 징계를 받더라도 그 죄악을 거두어 주실 것을 간청하였다.

💡 21:8 다윗이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 다윗의 범죄 사실 인정과 회개의 행동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치신 결과로 발생하였다.
  • 다윗은 인구 조사 감행 후 이스라엘 전체에 여호와의 징계가 임하자,
    앞선 요압의 권면(3절) 즉 왕의 범죄가 이스라엘 전체로 범죄하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권면을 기억하고
     자신의 처한 상황을 직시하게 되었을 것이다.
 📎 삼하 24:10 강해,
다윗의 회개의 자발성
  • 이전에 다윗이 밧세바 간음 및 우리아 살해의 죄를 범하고서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다가 나단 선지자의 지적을 받고야 회개하였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본문에서는 그 누가 죄를 지적하기 전에 스스로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는 점이 부각되고 있다.
  • 본장에서 다윗은 이렇듯 자신의 범죄를 스스로 깨닫고 즉시로 하나님께 나아가 회개하는 긍정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 사람은 누구나 양심이 있어서 죄를 지으면 스스로 깨닫게 된다(롬 2:15).
  •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로 인해 회개에 이르지만, 어떤 사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는다.
    • 회개할 줄 아는 자는
      —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함으로 생명에 이르지만,
    • 회개할 줄 모르는 자는
      —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음으로 인해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필경 멸망에 이르게 된다.

다윗은 무엇을 회개하고 있는가?
  • 이 인구 조사 뿐만 아니라 이 일과 관련하여 자신이 품은 마음과 생각 등 관련된 모든 것을 뉘우치고 있다는 뉘앙스를 전달한다.
📎 삼하24:10 강해,
‘미련하게 행하다’
  • 세상적 관점에서,
    사실상 한 나라의 통치자가 세금의 징수, 또는 국방력을 더욱 튼튼히 하기 위해 인구 조사를 하는 것은 지혜로운 행위이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그 행위가 하나님 앞에서 죄악된 것이었음을 깨닫고 회개하면서, → 이를 심히 미련한 행위라고 했다.
  • ‘미련하게 행하다’는 표현은,
    → 본문에서처럼 수동형으로 사용될 경우,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어리석게, 혹은 사악하게 행동하는 것을 나타냄(삼상13:13; 대하16:9)
자신의 불신앙을 고백함
  • 다윗은 자신의 인구 조사 행위가 불신앙에서 나온 것임을 이 단어를 통해 밝히고 있다.
    • 다윗은 자신이 굳이 인구 조사를 통해 군대의 수효를 확인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언약대로(7:6-17) 자신의 나라를 견고하게 세워주실 것인데,
    • 그것을 확신하지 못하고 자신이 인구 조사를 행했다는 의미에서 '내가 심히 어리석은 행동을 하였습니다’ 라고 고백하였던 것.
  • 이는 인간의 눈에 아무리 지혜로워 보이는 것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이상 그 행동은 미련한 것일 수밖에 없음을 잘 보여준다(고전 1:25). 
 📎 ‘사하여 주옵소서’
  • ‘사하다’
    •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지나가는 것, 또는 강이나 경계선 따위를 건너거나 가로지르는 것을 나타내는 동사.
  • 다윗은 바로 죄를 가려주시는 그러한 영적 축복을 아는 자였다. 하나님으로부터 죄의 가리움을 받는 자는 진정 복이 있는 자이다(시32:1)
  • 만약 하나님이 그의 죄를 눈감아주지 않고 계속해서 기억하고 계신다면,다윗은 고통에 사로잡혀서 절망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눈감아주고 용서해 주시길 간구하였던 것이다.

2. 그는 그의 죄악에 대한 형벌을 받아들였다.

"당신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소서(17절). 나는 그 징계에 복종하겠나이다. 죄를 지은 자는 나이니 오직 내게만 고통을 주소서. 내가 바로 그 죄악을 저지른 우두머리니 내게 그 칼날을 돌리소서."

💡 17절, 하나님께 아뢰되 명령하여 백성을 계수하게 한 자가 내가 아니니이까 범죄하고 악을 행한 자는 곧 나이니이다 이 양 떼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시고 주의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지 마옵소서 하니라


다윗은 자신이 지은 지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음
  • 하나님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이 거느린 백성들과 군사들의 수에 의지하려는 교만 때문에.
  • 병행 본문인 사무엘서에 나오지 않는 내용을 역대기 저자가 삽입한 것은
    ▶︎ 다윗의 인구 조사가 갖는 불신앙적인 측면을 다시금 부각시킴으로 본서의 일차 독자들인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재건해야 하는 신정 국가의 영광
    • 군사적 힘을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 위에서만 세워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손으로..’
→ 다윗은 어떤 하나님을 붙들고 간구하는가?
  • ‘나의 하나님’ : 자신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가 단절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고백함.
  • ‘여호와' :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기억하고 부르는 이름
  • 다윗은 자신이 일시적인 교만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인구 조사를 행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자신과 맺으신 언약까지(17:3-15) 파기하지는 않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언약 관계에 근거해 자신과 자신의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 부르짖은 것.

 3. 그는 그 자신을 하나님의 긍휼에 맡기었으며(비록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 진노하고 계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조금도 그에 대한 불평을 갖지 않았다.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심히 크시니" 어찌되든 간에 "그의 손에 빠지자" (13절).

선한 자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얼굴을 찌푸리시더라도 그를 좋게 생각한다.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믿겠노라."

 💡 21:13 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곤경에 빠졌도다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심히 크시니 내가 그의 손에 빠지고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하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다윗의 믿음
  1.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심히 크시니
    심히 크시니(메오드)
    다윗은 자신이 엄청난 곤경에 처해 있지만 하나님의 긍휼은 그의 곤경을 상쇄시키고도 남을 정도로 심히 크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다.
    즉 다윗은 자신의 범죄로 인해 헤어나오기 힘든 지경에 처해 있지만 그 탈출구를 하나님의 크신 긍휼하심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 본서 저자는 이처럼 *‘자신이 죄로 인해 심한 고난 속에 처해 있지만, 하나님의 긍휼은 이보다 더 크다’*는 다윗의 고백을 동일한 ‘메오드'의 반복을 통하여 효과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 다윗은
      • 일시적인 교만으로 인하여 인구 조사를 행했지만,
      • 그것이 죄라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즉각 회개하였을 뿐만 아니라(8절),
        자신의 죄에 대한 보응을 받는 순간에조차도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믿고 기대하는 믿음을 가짐.
  2. ‘내가 그의 손에 빠지고’
    • 다윗은 하나님의 손을 통해 주어지는 심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자에게 그 손을 통한 자비와 긍휼 또한 임할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하나님의 심판을 기꺼어 받아들이고 있는 것.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 공의와 자비
    • 하나님은 회개하는 죄인에 대해서는 용서하시는 자비로운 분이지만,
    • 그의 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보응하시는 공의로운 분임을 강조한다(시 55:19 ;렘 23:2).
  • 긍휼과 은혜
    하나님은 죄로 인한 보응의 과정에서도
    • 자신의 죄를 애통해하며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자에게는
    • 오히려 더 큰 사랑을 베푸시는 분을 확인시켜 줌으로 하나님의 크신 긍휼과 은혜를 더욱 분명하게 나타내주고 었다. 

 

4. 그는 그의 백성들에게 대한 매우 큰 염려를 나타내었다. 자기 죄로 인해서 그들이 온역을 당하는 것을 가슴 아프게 여겼다.

"이 양들이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 다윗은 인구 조사틀 명 한 장본인은 자신인데 여호와께서 이와 상관없는 무고한 백성들까지 심판하실 필요는 없지 않느냐 는 탄원의 기도를 올리고 있는 것.

💡 삼하24:17절 강해,
17절,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 다윗은 이 국가적 재앙인 온역에 대하여 강한 죄의식과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다.
  • 그런데 이러한 다윗의 모습에는 그가 자신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였다는 사실 이상의 것, 즉 모든 이스라엘에 대한 중보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음이 부각되고 있다.
    → 사실 이 국가적 재앙인 온역은 다윗이 실시한 인구 조사로 말미암은 것이지만,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가 더 근본적인 원인이었다(1절).
    그런 면에서 이스라엘이 겪는 이 재앙은 전적으로 다윗 한 사람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도 다윗은 이 모든 책임이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엎드려 회개하고 있는 것.
    더군다나 병행 구절인 대상 21:16에서는 다윗과 장로들이 함께 얼굴을 땅에 대고 있었던 것으로 기술되지만 본문에서는 장로들의 이러한 행위가 생략되어 있다.
  • 이는 본서 저자가 다윗 한 사람의 중보적 행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푸사 이미 징계를 멈추기로 결정하셨음에도 불구하고(16절)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다윗의 이러한 기도를 통해 구원의 길을 제시하셨다.
  • 백성을 대표해 서 있는 다윗을 통하여 이스라엘이 온역으로부터 구원을 얻게 된다는 사실은 온 인류를 대표하여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의 필연성을 예표해 주고 있다.
  • 다윗은 자신과 자신의 집만 심판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용서해 줄 것을 간구한다.
    • ‘이 양무리'
      :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스라엘의 목자로 세우셨옴을 깊이 인식한 데서 나온 표현이었다.
      • 사실상 그는 이스라엘 장군과 왕이 되기 이전에 아버지의 양무리를 치는 목자였으며(삼상 16장),
      •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도 ‘목자와 양' 의 관계로 보았다(시 23편).
      • 그런 다윗이 이스라엘 백성을 자신이 먹이고 돌보아야 할 양무리로 여긴 것은 그가 백성들을 얼마나 깊이 사랑하였는가를 매우 잘 보여준다 하겠다. 
💡 옥스퍼드 7-17절 결론
이러한 다윗의 기도는 죄를 범하였을 경우 마땅히 취해야 할 자세가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모델이라 할 수 있다.

▶︎ 다윗 같은 성군도 죄를 범하였듯 모든 인간은 연약하여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다.


▶︎ 그런데 죄를 범한 사실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까지 포기하려 하는 것이다.
▶︎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 우리가 본래 진토와 같이 연약하여 넘어지기 쉬운 존재임을 잘 알고 계신다.
  • 그리고 이런 우리를 심판하려 하기보다는 도리어 크신 긍휼하심으로 도리어 불쌍히 여기시는 분이다.
▶︎ 따라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자신의 죄악을 발견할 경우 이를 자기 스스로 해결하고자 하는 잘못된 고집을 부리기보다,
  • 하나님의 사유하심을 믿으며
    그 크신 자비하심에 근거해
    우리에게 구원의 약속을 주신 하나님께 먼저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 렇게 할 때 어떤 역사가 일어나는가?
  • 본문의 다윗의 실례에서 보듯 심판의 자리에서즉각적으로 용서와 회복의 자리로 옮겨지는 놀라운 은혜를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오르난의 타작 마당(역대상 21:18-30)

우리는 여기에서 다윗이 회개함으로 하나님과의 화평을 얻게 되고 다툼이 끝나는 것을 보게 된다.

"비록 나로 더불어 쟁론하더라도 그 진노를 거두어 주옵소서."

💡 하나님의 명령이 다윗에게 내려지는 과정
  1. 먼저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회개하는 모습을 보시고 다윗의 죄악을 심판하시기 위해 보내신 여호와의 사자에게 다윗으로 하여금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번제를 드리도록 명을 내리심.
  2. 그리고 여호와의 사자는 하나님의 명을 받듈어 선지자 갓에게 이 명령을 전달함.
  3. 연이어 갓은 여호와의 사자로부터 전해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다윗에게 전달함.
▶︎ 이처럼 역대기 저자가 하나님- 여호와의 사자-선지자 갓-다윗으로 이어지는 명령 전달 체계를 자세히 서술하는 이유는?
  • 신정 왕국 이스라엘의 성격과 관련해 특별한 의미를 전달한다.
    이는 다음을 드러내기 위함.
    • 신정 왕국인 이스라엘의 진정한 주권자가 누구인지?
    • 신정 국가의 대리 통치자인 왕이 어떠한 일을 행하는 자인가?
  • 즉 역대기 저자는 이러한 명령 전달체계에 대한 자세한 서술을 통해
    • 하나님이 진정한 이스라엘의 주권자이며
    • 이스라엘의 왕인 다윗은 자의적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릴 수 없고, 오로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그 명령을 힘써 지키는 것이 본분임을 지적하고 있는 것.
  • 이처럼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제사 명령 전달 과정이 자세히 서술된 것은
    • 제사를 통해 이루어질 결과로서 다윗이 심판의 자리에서 회복과 헌신의 자리로 옮겨겼다는 의미 또한 내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1. 징계가 멎게 되었다(15절). 다윗이 회개했을 때 하나님도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시어 멸하는 사자에게 "그의 손을 거두고 칼을 집에 꽂도록" 명하셨다(27절).

2.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제단을 세우라는 말씀이 다윗에게 내려졌다(18절).

그 사자는 선지자 갓으로 하여금 이 말씀을 다윗에게 전하도록 명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싸움을 행하려 했던 바로 그 사자가 이제 화해의 협정을 맺으려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자들은 재앙의 날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 사자가 직접 다윗에게 이 명을 전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선지자의 직책을 영예롭게 하기 위하여, 갓을 택해 그 일을 하도록 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가 사자를 통해 요한에게 전달되었으며, 요한이 이것을 교회에 전하였다.

다윗에게 제단을 쌓으라고 명한 것은, 화해를 뜻하는 축복된 표징이었다. 왜냐하면 만일 하나님이 그를 죽이기를 원하셨다면, 다윗의 손으로 바치는 제물을 용납치 않으실 것이므로, 그러한 명령도 하시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aside> 💡 ▶︎ 본문과 같은 지시를 받았다는 것이 전제하는 사실은?

  • 다윗이 회개함으로(17절) 이미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벗어났다는 것을 전제한다.
    •  다윗이 제사를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것이 아니라,
    • 이미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여호와께 제사를 드릴 수 있게 된 것이다.

▶︎ 제사 장소(오르난의 타작 마당)가 이스라엘 백성 전체 및 구속사의 전개와 연관하여 갖는 특별한 의미는?

  • 즉 본문에서 다윗에게 제사 장소로 지시된 오르난의 타작 마당은 훗날 솔로몬이 여호와의 임재의 상징적 처소인 성전을 건축한 장소로서(대하 3:1),
  •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여호와 앞에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 게 될 영광의 장소이다.

19절, 다윗이 이에 갓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른 말씀대로 올라가니라

<aside> 📎 ‘여호와의 명하신 바 갓의 말대로..’

선지자 갓의 말은

  • 다윗의 겸손한 회개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인 동시에 자애로운 화해 선언이었다.
  •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기도를 들으시고(17절), 그 기도대로 다윗과 그 가문을 치는 대신 다윗에게 제사를 요구하셨다.
  • → 이는 이스라엘에 대한 온역 재앙을 멈추고자 하신 하나님의 작정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를 보여준다.
  • 죄사함은 반드시 희생 제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피흘림이 없이는 사함도 없다는 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법이기 때문이다(레 17:11; 히 9:22).

▶︎ 하나님께서 그 화해의 장소로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을 지시하신 것은?

  • 그곳에서 천사의 심판 활동이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곳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나타난 곳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곳을 화해의 장소로 지정하시고 성별케 하신 것이다.
  • 후에 이곳에는 솔로몬의 성전이 세워져 택한 백성들을 위한 ‘시온소’ 가 된다 </aside>

</aside>

  1. 다윗은 즉시로 타작 마당을 매입하기 위해 오르난과 흥정하였다. 그것은 그가 백성들에게 부담을 주면서 하나님을 섬기려 하지 않은 때문이었다.

오르난은 관대하게 그것을 무상으로 제공하려 하였는데, 그것은 오르난이 왕에게 공손함을 나타내기 위한 것 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천사를 본" 때문이었다(20절).

그와 그의 아들들은 그 천사를 보고 그 찬란한 영광의 빛을 감히 쳐다볼 수 없었고, 또 그가 빼어든 칼을 매우 두려워하여 그들의 몸을 숨겼었다.

이러한 사실들을 깨닫고 그는 사죄를 위해 어떤 일이라도 기꺼이 할 마음이 생겼던 것이다.

주님에 대한 두려움을 충분히 깨달은 자들은, 믿음을 더하기 위해 그들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려 할 것이며, 하나님의 진노를 돌리기 위해 화해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강구할 것이다.

<aside> 💡

  • 사무엘서: 당시의 상황을 오르난과 다윗 사이에 있었던 대화 내용을 중심으로 비교적 객관적이고 자세하게 보도.
  • 역대기: 본사건의 핵심 사안만을 강조해서 언급.
    • 따라서 본절 이후의 내용에서 볼 수 있듯 본서 저자는 다윗이 오르난을 만나자마자 자신이 온 목적을 즉각적으로 언급하는 것으로 기술한다. 이처럼 긴박한 호흡을 통해 본서 저자는 여호와의 명령에 즉각적이고 적극적으로 순종하는 다윗의 자세를 더욱 극적으로 부각시켜 주고 있는 것.

22절, 다윗이 오르난에게 이르되 이 타작하는 곳을 내게 넘기라 너는 상당한 값으로 내게 넘기라 내가 여호와를 위하여 여기 한 제단을 쌓으리니 그리하면 전염병이 백성 중에서 그치리라 하니

▶︎ 다윗이 상당한 값을 지불하겠다는 말의 의미

  • 상당한 : ‘꽉 찬 충만한 상태’ → 다윗은 충분한 값을 주고 그 땅을 구입하고자 했음.
    1. 다윗이 교만한 마음으로 인구 조사를 행함으로써 여호와께 범죄한 일에 대한 ‘충분한 회개'라는 의미.
    • 다윗은 자신이 지온 죄를 마음으로만 애통해한 것이 아니라 그에 상용하는 충분한 대가를 치르기를원하 였고 또 이를 행동으로 나타내 보이기를 원했던 것.
    • 이는 결코 다윗이 자신의 죄를 물질을 통해 해결하려 했다는 식으로 풀이되어서는 안된다. 보다 근본적으로 그가 지불한 육백 세겔의 금 (25절)은
      • 회개의 의미와 함께
      • 하나님께 온전한 제사를 드리기를 소원하는 다윗의 정성이 반영된 물질적 헌신.
    1. 다윗 자신의 대에 이루지 못 한 성전 건축을 후일 아들 솔로몬이 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충분한 준비'의 의미.

[아브라함이 구입한 막벨라 굴]

  • 본문의 표현은 아브라함이 햇 족속으로부터 자신의 아내를 장사할 굴을 살 때 지급한 은 사백 세겔을(창 23:15) 가리키는 데에도 사용된 표현.
  • 아브라함이 막벨라굴을 그냥 주겠다는 햇 족속의 호의를 거절하고 굳이 은 사백 세겔이나 치르면서 동굴을 산 이유는?
    • 이미 하나님께서 그에게 허락하신 바 그의 자손들과 그둘이 거할 약속의 땅이 바로 가나안 땅임을 믿고 확 신한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창 15:18-21).
  • 아브라함의 이러한 행동의 의의
    • 막벨라굴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의 소유가 되었고 이는 약속의 자손이 거할 땅을 최초로 구입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 이곳은 사라 뿐만 아니라(창 23:19) 아브라함 자신과(창 25:9), 이삭과 리브가(창 49:31), 야곱과 레아(창 49:31 ;50:12,13) 등이 묻힌 곳, 창세기 저자는 여러 번 막벨라굴을 돈으로 주고 샀다는 사실을 강조하였었다(49:30; 50:13).
    • 조상들이 매장된 곳이며 하나님의 약속이 자신들에게 이미 부여되었기에 이스라엘 자손들은 후일 애굽 땅으로 가서 400년을 노에처럼 살지만,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을 수 있었던 것이다.

[다윗의 경우,]

  • 다윗이 오르난으로부터 타작 마당을 구입할 당시에 후대 의 솔로몬 성전을 세우기 위한 부지를 구입하려는 의도를 실제로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헤서는 잘 알 수 없다.
  • 하지만 ‘케쎄프말레' 라는 표현을 통해 볼 때 사무엘서 저자가 이미 기록한 이스라엘 역사를 다시 기록하는 역대기 저자는 적어도 사무엘서 저자의 관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 다윗으로 희개를 위한 층분한 값을 치르게 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 그뿐 만 아니라 그렇게 값을 치르고 번제률 을려드린 땅 위에 당신의 임재의 상징적 처소인 성전을 짓도록 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는 사실.
  •  하나님께서 다윗으로 하여금 오르난의 타작 마당을 금 육백 세겔에 구입하게 하신 데에는(18절)

[다윗과 아브라함을 통해 보는 하나님의 섭리의 지혜]

  •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들이 장차 거할 땅을 약속해 주시고 그 땅 가운데 막벨라굴을 매입하게 하여 이스라엘의 미래를 준비하신 것처럼,
  • 다윗으로 오르난의 타작 마당을 구입케 하신 것도 먼 미래까지 도 내다보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 역대기 저자는 ‘충분한 값(케쎄프 말 레)' 이란 표현을 통해 ‘충분한 회개'와 ‘충분한 준비'라는 하나님의 의도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본문은 다윗이 참으로 회개한 이후에 어떻게 처신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 그는 회개한 이후 하나님의 용서를 체험하게 되었지만, 거기에 멈추지 않았다.
  • 더 나아가 그는
    • 이후 하나님이 어떤 말씀을 주실 것인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였다.
  • 이러한 자세를 견지함으로 인해
    • 그는 그의 일생의 소망이었던 성전 건축의 터를 바라볼 수 있었으며
    • 또한 자기 손으로 그 터를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다. </aside>

<aside> 💡 23절, 오르난의 반응

  • 오르난은 자신의 타작 마당을 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는 다윗에게 소를 번제물로, 타작하는 기구와 소의 멍에를 번제를 위한 뗄감으로, 그리고 밀을 소제물로 바치기를 원 했음을 알 수 있다.

<aside> 📎 아라우나의 여호와를 경외함에서 나오는 헌신적 자세

  • 다윗 왕이 자신의 타작 마당에 온 목적을 안 아라우나는 그 제사에 필요한 모든 것을 자신이 무상으로 제공하겠다는 헌신적 자세를 보인다.
  • 여부스 사람이었으나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하나님께 바치고자 하였던 것이다.
  •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실한 사람이었으므로,
  • 그래서 그의 헌신적 자세는
    • 그가 제안하는 바, 번제를 드리기 위한 장소로서 그의 타작 마당 뿐만 아니라,
    • 다윗이 말하지 않은 번제물로서외 소와, 번제를 위해 사용되는 뗄감까지 자발적으로 제공하려는 모습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 아라우나는 이번 한 번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다윗이 드리는 제사와 더불어 다윗 그 자체를 기쁘게 받으시기를 원한다는 말을 한다. </aside>

</aside>

<aside> 💡 24절, “내가 결단코 상당한 값으로 사리라” — 다윗의 이어지는 의지

▶︎  다윗이 이처럼 ‘상당한 값’을 치르고 구입하고자 했던 땅은 훗날 어떻게 사용되는가?

  • 궁극적으로 다윗의 진실한 회개와 헌신, 그리고 온역 재앙으로 심각한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의 속죄를 위한 제사를 드리는 데 사용된다.

▶︎ 이러한 본문은 바벨론에서 귀환하여 예루살렘에 돌아온 본서 일차 득자들에게 주는 의미

  • 그들이 다시금 세운 제2성전의 터가 바로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 드린 제사의 터임을 확인케 하여주었을 것.
  • 본서 저자가 22절의 내용을 재차 강조하는 것은
    • 본서의 일차 독자들에게 새롭게 세워진 성전에서도 다윗이 드린 회개와 헌신, 회복을 위한 제사가 반복되어야 함을 부각시키기 위해서일 것.
    • 다시 말해 본문의 이같은 반복적 표현을 통한 강조에는 새롭게 선민 공동체를 재건해 나가야 할 본서 일차 독자들의 신앙적 각성과 다짐을 보다 견고하게 다지기 위한 저자의 의도가 내포되어 있는 것

▶︎ 다윗의 정직하고 공의로운 행동

‘내가 여호와께 드리려고 네 물건을 취하지 아니하겠고’

(병행구절에는 없음)

  • 직역하면, ‘내가 결코 너에게 속한 것을 여호와께 드리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 하나님 앞에 드리는 회개의 제사를 값없이 드리지 않으려 했기 때문.
    • 다른 이의 사유 재산을 불의하게 취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기도 함.
    ↔ 아합 왕이 나봇을 모함하여 죽인 이후에 그의 포도원을 취했던 악한 행위와(왕상 21장) 대조되는 다윗의 정직하고 공의로운 행동.
  • 다윗의 이러한 행동은 값으로 살 수 없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수여받은 자로서, 그같은 은혜에 감사하며 보답하고자 하는 그의 정성을 잘 표현해 주고 었다 </aside>
  1. 하나님은 이 제단에서 드린 다윗의 제물을 받으셨다는 것을 입증해 주셨다. 즉 그는 "하늘로부터 불을 내려 응답하셨다" (26절).

하나님의 진노를 다윗에게서 거두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의당히 살랐어야 할 불이 제물 위에 내려 제물을 태웠다.

<aside> 💡 하나님의 불이 제물을 태운 사건의 의미

(병행 구절인 삼하 24:25에는 없는 내용)

  • 하나님의 불이 사람이 드린 제물을 태우는 것은 그렇게 흔하지 않은 사건이다.
    •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이 제사장의 위임식을 행한 이후에 그들이 드린 번제물과 제물을 태우셨고(레 9:24)
    • 엘리야의 기도 이후에 그가 준비한 모든 제물들과 나무와 둘들과 흙까지 태우셨으며(왕상 18:24.37.38)
    • 성전 봉헌식 때에 솔로몬이 기도를 마처자마자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셨다(대하7:1).
  • 위 세 경우의 공통점
    • 위임식 때에는 백성들이 제물이 불타는 광경을 보고 소리틀 지르며 엎드렸으며,
    • 엘리야의 기도 후 제물이 탔을 때에는 모든 백성이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인정했으며,
    • 성전 봉헌식 때에는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했었다.
    ⇒ 즉 이 세 경우 모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 것이다.

▶︎ 본 단락의 제물을 모두 태운 사건이 갖는 3가지 의미

  1. 죄사함과 함께 온 이스라엘에 내려진 온역 재앙이 완전히 종식되었음을 보여줌.
  2. 하나님의 영광이 번제단이 세워진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임한 것으로서, 이곳이 성전이 세워질 부지로 하나님의 뜻에 의해 예정된 곳임을 암시함.
  3. 이처럼 오르난의 타작 마당이' 중앙 성소로서 성전의 부지가 되었으므로 앞으로 성전 건립 이후 이곳에서만 제사가 드려질 것임을 나타낸다.

→ 이처럼 본서 저자는 사무엘서 저자가 생략한 본문의 내용을 추가 기록함으로

포로에서 돌아와 신정 국가 건설을 담당해야 할 본서' 일차 득자들에게

  •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졌던 이곳은 바로 하나님의 불이 내려진 곳이라는 역사적 사실과
  • 더불어 하늘로부터 번제단 위에 불이 내려오는 것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 것인지를 암묵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aside>

그로 해서 멸망의 칼은 다시 그 칼집에 꽂히게 되었다.

<aside> 💡 ‘여호와께서’ 사자를 명하시매 그가 칼을 .

  • 한글 성경은 ‘여호와’를 번역에서 제외함.
  • 그러나 역대기 저자가 본문을 기록한 이유에 따라 원문을 올바로 번역해야 함.
  • — 객관적으로 드러난 사건만을 주로 제시하는 사무엘서와 달러, 인간 역사 이면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을 드러내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 중심의 신앙을 회복시키려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

▶︎ 15,16절과 대응, 대조

  • 15절,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멸하려 사자를 보내셨더니’
    • ‘하나님의 보냄'을 받아 이스라엘에 온역 재앙을 일으킨 여호와의 사자의 사역은 여호와의 명을 받아 칼을 집에 꽂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 그리고 이렇게 대응되는 두 표현은 재앙이 하나님에 의해서 시작되고 마무리 되었다는 사실을 강조.
  • 하나님께서 다윗의 인구 조사라는 교만한 범죄에 대해
    • 처음에는 심판을 행하셨지만,
    • 나중에는 그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실 뿐만 아니라,
    • 그 기회를 통해 오히려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성전을 지을 부지틀 마련하게 하신 은혜까지 베푸셨음을..
  • 아브라함의 모리아산이러한 연상이 가능한 이유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 했던 모리아산과 본문의 사건 즉 다윗이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한 장소가 동일한 곳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대하 3:1).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를 제지하시고 미리 예비한 제물로 이삭을 대신하여 제사하게 하셨다.
    •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드릴 곳으로 지정한 장소이기도 하지만(창 22:1.2) 동시에
    • 하나님께서 스스로 당신이 받으실 제사를 예비하신 곳이기도 하다(창 22:13.14).
    다윗은 신앙적으로 유서 깊은 동일한 이 장소에서 하나님의 명을 따라 이스라엘의 속죄를 위한 번제를 드렸으며 하나님은 불을 내려서 다윗의 제사에 응답하셨다.이상의 내용을 통해 하나님께서 당신께 드려질 제사룰 위한 처소 즉 성전 의 터로 오르난의 타작 마당을 지정하셨다는 사실을 유추해 낼 수 있다,
  • 결국 다윗은 이러한 모든 사실과 관련해 성령의 감동으로 이곳이 하나님의 전이며 이스라엘의 번제단이 라고 선포한다(22:1).
  • 따라서 모리아산은
  • 당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이삭을 제물로 바쳐야만 했다. 그는 실제 이삭을 결박하고 화목 위에 올려 번제로 드리려 했다.
  • 본문의 배경어 되는 오르난의 타작 마당은 창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아브라함 이 이삭을 바치도록 지시받았던 모리아산에서 발생한 사건을 연상시켜 준다(창 22장).

</aside>

이와 같이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와 저주를 짊어지시고 기꺼이 고난을 당하셨으며,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형벌의 불이 되시지 않고 화해하는 아버지가 되어 주셨다.

  1. 그는 이 제단에 제물을 그 후에도 계속하여 드렸다. 모세가 만든 놋제단이 기브온에 있어(29절), 이스라엘의 모든 제물을 거기에 바쳐왔으나, 다윗은 사자의 칼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 갈 수가 없었다" (30절).

온역이 시작되었을 때, 이 일을 급히 서둘러야 했다. 아론도 염병이 시작되었을 때 빨리 가서, 아니 "뛰어가서" 속죄해야 했었다(민 16:46, 47). 그런데 다윗의 경우는 이 일이 너무도 긴급한 것이었으므로, 미처 기브온에 갈 시간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가 돌아오기도 전에 이 치명적인 타격이 가해질 것이 두려워 그는 예루살렘을 향해 칼을 빼어든 사자의 곁을 감히 떠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너그럽게도 현재의 이 재난을 참작하시어 한 제단만 고수하라는 그 자신의 율법을 제하여 주시었고, 새로운 제단에다 제물을 바치는 것을 허락하시었다. 단일성은 단일성 그 자체만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다. 그 현재의 재난이 끝났을 때에도(분명 그랬을 것이다) 다윗은 그가 살아있는 동안, 기브온에도 제단이 계속 보존되어 있긴 했지만, 그가 쌓은 제단에 제물을 드렸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여기에 바쳐진 제물을 받으심으로써 그것들을 용납하신다는 것을 입증해 주셨기 때문이다(28절).

하나님의 임재의 표징으로 그가 실재 우리의 일과 함께 하신다는 표징을 경험하였을 때는, 우리는 그 일을 계속하는 것이 좋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나를 은혜롭게 만나 주셨다. 그러므로 나는 계속 그와 만날 것을 기대한다."

<aside> 💡 28-30절 : 어떻게 예루살렘이, 오르난의 타락 마당이 이스라엘의 새로운 제의 중심지가 되었는지 부연 설명.

(병행 문단에는 없는 내용)

28절, 이 때에 다윗이 여호와께서 .. 응답하심을 보고 거기서 제사를 드렸으니

  • 저자가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 후에(삼하 24:25) 다시 감 사의 제사를 드린 사실을 언급하는 것이나 제사를 드린 오르난의 타작 마당을 강조하는 이유는 이제 앞으로 계속헤서 이곳에서 제사가 드려질 것이기 때문.

▶︎ 제사의 장소의 원소유주는 여부르 사람 오르난(이방인)

성전 건축의 터가 본래 이방인에게 속하였다는 사실은

  •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이방인도 하나님을 위해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과 더불어
  • 혈통에 구애받지 않고 하나님의 공동체 안에 들어올 수 있 는 은총이 다윗 시대에도 동일하게 베풀어지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

29절, 옛적에 모세가 광야에서 지은 여호와의 장막과 번제단이 그 때에 기브온 산당에 있으나

‘옛적에 모세가 광야에서 지은 … ’

  • ‘여호와의 장막'과 ‘번제단’은 본문이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모세가 직접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모세가 감독하고(출 35:10) 오흘리압과 브살렐 등이 성막의 다른 기구들과 함께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원하여 가져 온 예물들로 만들었다.—그가 성막 및 성막 기구를 만드는 일의 주축이 되었기 때문.
  •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모세를 주체로 묘사하는 것은
  • 본서 저자가 여기서 굳이 이를 상기시키는 것은
    • 척박한 광야에서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성막과 그 부속 기구를 만들었던 모세의 신앙은
    • ⇒ 포로에서 돌아와 파괴된 땅에 다시 신정 국가를 재건해야 할 본서의 일차 독자들에게 좋은 본이 되기 때문이다.

번제단이 그 때에 기브온 산당에 있으나

  • ‘기브온 산당' = 여호와의 장막이 머물던 장소.
  • 여호와의 장막의 이동 역사
    •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정착하기 시작할 때에는 — 가나안 정복 전쟁을 위한 전초 기지로 삼았던 요단 동편 지경에 있는 길같에 머물렀다(수 4:19 ;5:10).
    • 이스라엘 백성들어 나안 땅을 분배받기 시작했을 때에는 — 아직 땅을 분배받지 못한 지파들을 위한 제2차 기업 분배를 행한 곳인 실로(Shiloh)로 여호와의 장막이 다시 옮겨졌다.
    • 엘리 제사장 시대에 블레셋 족속들에게 언약궤를 빼앗긴 이후에는 놉으로 피해 옮겨졌으며(삼상 21:1-6) 사울 시대에 제사장들이 사울에게 죽임을 당할 때에 본문에 언급된 기브온으로 옮겨져서(21:29) 다윗의 시대 에까지 이른 것.
    • 후일 B.C. 959년에 솔로몬에 의해 중앙 성소인 예루살렘 성전이 지어짐으로 인해 장막에서 제사를 드리던 역사는 종결된다(대하 5:1).

</aside>

<aside> 💡 30절, 다윗이 여호와의 천사의 칼을 두려워하여 감히 그 앞에 가서 하나님께 묻지 못하더라

  • 그 앞 = 기브온 산당.
  • 다윗은 결코 기브온 산당에서 제의적 행위를 할 수 없었다.
  • 이는 이제 오르난의 타작 마당이 위치한 예루살렘이 여호와의 섭리에 의해 이스라엘의 영원한 제의 중심지가 될 것임을 간접적으로 암시한다.

▶︎ 다윗은 무엇을 두려워 한 것일까?

  • 본문 전체의 정황상 다윗이 느낀 두려움은 그 자신이 오르난의 타작 마당이 아닌 기브온에 가서 하나님께 물었을 때 여호와의 사자의 칼이 다시금 이스라엘을 향해 내려질 것을 두려워한 것이다.
  • 표면적으로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다윗이 다시 임할지 모르는 여호와의 사자의 심판의 칼을 두려워한 나머지 기브온으로 가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 하나님께 대한 거룩한 두려움을 가진 결과, 즉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사죄의 은총을 베푸신 하나님을 다윗이 경외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 회개의 제사를 드린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대한 다윗의 선언

1절, 다윗이 이르되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이요 이는 이스라엘의 번제단이라 하였더라

  •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
  •  창 28:17의 야곱이 꿈에서 하늘에 닿은 사닥다리를 보고 하나님의 옴성을 들은 후에 ‘이는 하나님의 전어요’ 라고 두려워하며 한 말인 ‘하나님의 전' 이란 단어에 ‘여호와'라는 단어가 들어간 점을 제외하고는 동일한 표현.
  • 본문에 나타난 다윗의 고백은
    • 야곱의 고백처럼 하나님(또는 하나님의 사자)을 직접 대면한 이후에 토로되어 나온 두려움과 감격에 찬 고백이라 할 수 있으며,
    선민 이스라엘의 역사와 관련해서는
    • 오르난의 타작 마당을 영구한 하나님의 전을 세울 곳으로 지정하는 중대한 선언 </aside>
  • 다윗 개인의 신앙과 관련하여서는

<aside> 💡 옥스퍼드 21:18-22:1 결론

본장 전반과 이어지는 22:1의 내용은 다윗의 인구 조사 범죄로 시작하여 예루살렘이 새로운 종교적 중심지가 된 배경을 제시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고 있다.

  • 사무엘서 저자는
    • 이러한 내용을 사무엘서 전체의 맨 마지막에 위치시켜서 다윗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그와 그의 나라를 용납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부각시킨 반면,
  • 본서의 저자는
    • 여호와의 주도적인 행위를 통해서 다윗의 범죄가 오히려 예루살렘이 제의 중심지가 된 배경으로 작용하였음을 기술하여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부각시킨 것.

또한 최종적으로 다윗은 오르난의 타작 마당을 가리켜 ***‘여호와 하나님의 전'이며 ‘이스라엘의 번제단'***이라고 선언하는데

  • 이로써 이곳에 당위적으로 성전이 세워져야 함을 나타내주고 있다. 따라서 이후의 내용은 자연스럽게 성전 건축을 위한 준비의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asi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