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29:10 다윗이 온 회중 앞에서 여호와를 송축하여 이르되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을 받으시옵소서
29:11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29:12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29:13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29:14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29:15 우리는 우리 조상들과 같이 주님 앞에서 이방 나그네와 거류민들이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희망이 없나이다
29:16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려고 미리 저축한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
29:17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며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자원하여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
29:18 우리 조상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것을 주의 백성의 심중에 영원히 두어 생각하게 하시고 그 마음을 준비하여 주께로 돌아오게 하시오며
29:19 또 내 아들 솔로몬에게 정성된 마음을 주사 주의 계명과 권면과 율례를 지켜 이 모든 일을 행하게 하시고 내가 위하여 준비한 것으로 성전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라
29:20 다윗이 온 회중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라 하매 회중이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고 머리를 숙여 여호와와 왕에게 절하고
29:21 이튿날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고 또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니 수송아지가 천 마리요 숫양이 천 마리요 어린 양이 천 마리요 또 그 전제라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풍성한 제물을 드리고
29:22 이 날에 무리가 크게 기뻐하여 여호와 앞에서 먹으며 마셨더라
29:23 솔로몬이 여호와께서 주신 왕위에 앉아 아버지 다윗을 이어 왕이 되어 형통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의 명령에 순종하며
29:24 모든 방백과 용사와 다윗 왕의 여러 아들들이 솔로몬 왕에게 복종하니
29:25 여호와께서 솔로몬을 모든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심히 크게 하시고 또 왕의 위엄을 그에게 주사 그전 이스라엘 모든 왕보다 뛰어나게 하셨더라
매튜헨리/옥스퍼드
●솔로몬의 즉위(역대상 29:10-22)
Ⅰ. 방백들이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훌륭히 응해 주었을 때, 다윗은 하나님께 엄숙하게 송축을 드렸다(10절).
"다윗은" 골방에 혼자 있을 때 뿐만 아니라, "회중 앞에서 여호와를 송축하였다." 이것은 내가 "다윗도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더라" (9절)는 구절을 읽었을 때 기대하던 바의 것이다. 왜냐하면 이처럼 믿음이 깊은 자들에게는 감사할 일이야말로 분명히 기뻐해야 할 일이 되기 때문이다. 화평을 얻은 자는 반드시 찬미를 드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다윗은 이제 늙었으므로 얼마 안가 곧 죽게 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이 많은 성도들이나 임종을 맞이한 성도들의 마음이 감사와 찬미로 가득 차게 되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이러한 마음은 그들의 육신의 고통을 진정시켜 주고, 죽음 그 자체를 그리 우울한 것으로 생각지 않게 해준다. 이 책 후편에 나오는 다윗의 시편들은 대부분 찬미의 노래이다. 우리가 영원한 찬미의 세계로 가까워질수록, 찬미하게 되고, 그 세상의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의 설교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알 수 있다.
1. 그는 하나님을 사모하여 영원히 송축받으옵소서 하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 돌렸다.
⛪ 10절, 여호와를 송축하여 이르되
- 송축하여 :
-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행위 — ‘하나님이 그에게 행하신 은혜에 감사를 표한다’(시103:1,2)
-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도할 때에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신실하심, 그리고 그분의 능력과 은혜에 대해(창 24:27; 출 18:10; 왕상 1:48) 감사하는 내용으로 시작하였다.
- 본문에서 다윗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는
- 이스라엘 백성들 특히 지도자들이 자원하여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기 위해 자신들의 귀한 물건들을 풍성하게 가지고 나왔기 때문이었다.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 이스라엘 : ‘야곱’을 지칭.
왜 ‘이스라엘’을 언급하는가?
- 다윗은 조상들 중에서 야곱의 하나님을 특별히 언급하면서, 인격적으로 부족했던 야곱을 언약에 따라 끝까지 축복하셨던 신실하신 하나님의 자비 로우신 면모를 되새기고 있는 것이다.
- 이는 미천한 자신을 왕으로 선택하셨을 뿐만 아니라 부족한 자신의 아들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의 대과업까지 허락하신 여호와의 놀라운 은혜에 감격하여 터져 나온 호칭이다.
- 18절에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보다 확장된 호칭을 사용함.
‘주는 영원히 송축을 받으시옵소서’
⇒ 10-20절까지 다윗의 찬양과 기도의 첫 마디
- 원문으로 볼 때 본문은 한글 개역 성경상으로 가장 먼저 나오는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란 호칭보다 더 앞서 나오는 것이다.
- 이를 통해 다윗이 무엇보다도 여호와를 찬양하는 말을 앞세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원히’
- 직역하면, ‘영원부터 영원까지’
- 이 표현은 매우 강조적 의미를 갖는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송축받으실 분이란 의미를 더욱 강조하는 표현이다. 성숙한 신앙인이었던 다윗은 하나님이야말로 다른 피조물과 구별되게 단 한순간의 멈춤도 없이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양받으실 분이심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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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도 다윗이 여기에서 시작되는 찬미처럼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주께 속하였사옵니다." 라는 찬미로 끝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을 찬미하기에 합당한 구절로써 거룩한 경외심과 참다운 사랑을 나타내며, 또한 다음 사실을 고백한 것이다.
⛪ 29:11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29:12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 본문에 나타난 개념들은 다윗에게 있어서 피상적인 것이 아니라 일생의 경험을 통하여 직접 체득된 것들이다. |
(1) 그의 무한함과 완전함을 인정하는 말이다.
하나님은 광대하시고 능력이 무한하시며 영광스러우실 뿐만 아니라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이 그에게 속하여 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그것들을 가지셨을 뿐 아니라, 그의 속성이기도 하다(11절).
⛪ 다윗이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사용한 다섯 단어(광대하심, 위대하심, 능력, 영광, 위엄)는 본문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자주 함께 사용되는 단어들로서다윗이 얼마나 하나님 에 대해서 깊고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는지를 잘 알 수 있게 해준다. |
- 그는 빛나고 복된 모든 것의 근원이요 중심이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를 찬미할 때 그에게 지극히 높은 칭호를 드려야 마땅할 것이다.
- 그에게 "광대함이" 있었다. 그의 광대하심은 거대하고 헤아릴 수 없는 것이었다. 그와 비교해 볼 때, 다른 것들은 모두 보잘 것 없는 것에 불과하다.
⛪ 광대함(‘께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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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약에서 12회밖에 사용되지 않은 단어, ‘위대하심’, ‘위엄’이라는 의미.
- 하나님께서는 다윗으로 하여금 이스라엘 주위에 있는 나라들을 물리치게 하심으로서 자신의 광대하심을 나타내셨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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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에게 "권능" 이 속하였으며, 전능하여 거역할 수 없는 권능이었다.
⛪ 권능(’께부라’)
- 구약에서 63회 사용, ‘힘, 능력’이라는 의미.
- 그 중에서도 특별히 통치권자의 힘 즉 ‘왕권'이라는 의미로 쓰였는데, 궁극적으로 이는 왕에게 통치권을 위임하신 하나님께 귀속되는 힘이다.
- 이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었던 다윗의 고백으로서, 실제로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는 진정한 왕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나타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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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모든 창조물은 그에 의존하며, 그로부터 나왔다.
- 그에게 "영광" 이 속하였다. 그의 영광은 그 자신의 목적이었고, 모든 창조물의 목적이었다. 우리가 마음과 입과 생명을 다하여 그에게 지극한 영광을 돌린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의 영광에 비해 무한히 작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 영광(’티프아라’)
- 일반적으로는 ‘아름다움(사44:13), 화려함(겔16:12)이라 의미이지만 여기서는 모든 피조물보다 뛰어난 창조주의 ‘영화’(사28:4)
- 이는 일시적이지 않은 영속적인 힘이나 승리를 의미하므로 하나님의 능력의 ‘영속성'과 ‘영구성'을 나타내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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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에게 "승리" 가 있다. 즉 그는 모든 것을 초월하고 극복하시므로 무엇이나 정복하여 굴복시킬 수 있다. 또한 아무 것도 그의 승리를 겨룰 수 없고 막을 수 없다.
- 그에게 참되고 인격적인 "위엄" 이 있다. 그에게는 형언할 수 없는 두려운 위엄이 있다.
⛪ 위엄(’호드’)
- 구약 성경에서 24회 사용, 거의 하나님에 대해서만 사용되는 단어.
- 창조물에서 느껴지는 위엄이나(시 30:30) 성전에서 나타나는 위엄(시 1:6) 등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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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에게는 모든 것을 정당하게 소유하고 있는 주권이 있다. 다시 말해서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다."
그리하여 피조물에 대해 명백한 권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모든 것을 명하는 최고의 통치자였다.
"나라가 주의 것이니이다. 그리고 모든 왕들도 당신의 신하이옵니다. 왜냐하면 주께서 모든 것의 머리되시어 찬미와 숭배를 받으시기 때문이옵니다."
⛪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
- 하늘과 땅에 있는 그밖의 모든 것들도 실상은 여호와께 속해 있다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 다윗의 겸손한 고백
- 한글 개역 성경은 문맥을 고려하여 본문을 의역함.
- 본문을 직역하면 단지 ‘그 왕국(the kingdom)'이다. → 이는 ‘왕의 신분 (kinship)' 또는 ‘왕권(royalty)’ 이라는 의미이기도 함.
- '왕권'
- 이스라엘에 대한 여호와의 통치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열방에 대한 통치권과 더 나아가서 온 세상의 모든 피 조물에 대한 통치권을 의미함.
- 만왕의 왕이신 여호와께서는 다윗을 비롯한 이 세상의 왕들을 세워 이스라엘을 통치하시며, 이방 족속들을 통치하시고 세상 만물을 통치하시는 것.
- 본문에서 다윗의 의도
- 그러나 본문에서 다윗은 특히 이스라엘의 운명이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의미로 이 표현을 사용하였을 것.
-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 대한 다윗의 신앙
- 이스라엘의 왕과 백성들이 여호와의 계명을 성실히 준행할 때에는 이방 족속들을 잠잠하게 하시고,
- 반대로 그들이 여호와를 배신하고 우상을 섬길 때에는 이방 족속들을 일으키셔서 이스라엘을 대적하게 하셨다.
- 다윗은 자신이 이스라엘의 공식적언 왕의 위처에 있지만 이스라엘을 통치하시는 진정한 왕은 여호와이시며, 나라의 운명 역시 진정한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겸손하게 고백하였던 것.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이심이니이다'
- 다윗이 온 우주에 대한 여호와의 통치권을 인정하고 찬양하는 대목.
- 주는 높으사
- 높으사(미트낫세): 들어올리다
-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인간에 의해 높여지는 분이 아니라 그 존귀의 요소가 그 본체 안에 있기 때문에 원래 높으신 분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 만유의
- 만유(레콜): 모든 것.
- 여호와의 통치권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미치고 있음을 명시적으로 나타낸다.
- 머리이심이니이다
- 머리(로쉬): 머리, 다른 모든 사람들의 위에서 소유권과 지배권을 행사하는 ‘우두머리’라는 추상적 의미도 가짐.
- 신약 교회는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유의 주’로 고백한다. (행10:36; 고전15:28; 히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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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는 만유를 움직이시며 감화시키신다.
자손들이 부하고 귀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다. 다윗이 방백들에게 이 사실을 깨닫게 하고 인정하도록 하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당연히 어떤 상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부와 존귀를 얻었으나, 그들이 그에게 보답하는 것은 그들이 받은 것 중 지극히 작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누구든지 위대하게 되는 자는 바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어떠한 힘을 얻든지, 그것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우리 아버지이신" (시 68:35) 그가 주시는 것이다(10절).
⛪ 12절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 부(오쉐르)
- 부지런한 노동의 열매일 뿐 아니라 여호와의 축복의 상징.
- 그러나 여호와를 의뢰하지 않는 자에게 주어진 ‘부’는 속임과 배반의 결과이며, 자신조차 구원할 수 없는 일시적이고 허무한 것에 불과하다.
다윗은 구약의 어느 인물보다 많은 재물을 소유하였던 자둘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부가 자신의 능력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철저히 인정하였다
- 그러므로 그 물질들을 아낌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 솔로몬은 다윗보다도 더 많은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인생 말기에 여호와를 떠남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의 분열이라는 비극의 원인 제공자가 되었다. ⇒ 위의 사실을 통해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얼마나 많은 물질을 소유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며 물질의 많고 적옴 자체가 결코 하나님의 복의 절대적인 척도가 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오직 자신에게 주어진 부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물질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사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귀(웨학카보드-카보드)
- 사람들에게 하찮은 존재가 아닌 존귀한 존재로 여김받는 것을 의미. 주로 ‘영광’, ‘명예’ 등으로 번역됨. 개인의 지위, 왕가에 속하는 영예, 귀족으로서 명예를 나태내기도 함.
- 다윗이 말하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귀’란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을 뿐만 아니라 유다 왕조의 실질적인 시조로 삼으셔서 얻게 하신 명성과 영에를 가리키는데, 이는 다윗이 자신의 일생의 삶을 통하여 체험한 것이었다(28절).
- '부와 귀'는 역대기서에서 측복의 상징으로 항상 함께 등장.
- 주께로 말미암고
- 부와 명예가 바로 하나님 그분 자신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강조.
- 다윗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철저히 인정하였음을 잘 보여준다.
- ⇒포로기 후대 공동체(본서 일차 독자)에게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는 신앙을 회복할 것을 교훈.
- 만유의 주재가 되사
- 직역하면,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
- 성경은 모든 다스러는 권세가 창조주이신 하나님에게 있다는 사실(사 40:26)을 거듭 강조한다.
- 따라서 인간적 측면에서 아무리 큰 권세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권세는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므로 마땅히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해야 한 다 ( 단 2 :37; 롬 13:1 ) .
-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 다윗은 하나님의 활동에는 권세와 능력이 동반됨을 고백.
- 다윗은 현재 왕의 신분으로 누구보다 막대한 권력을 손에 쥐고 있음에도, 그 모든 것이 여호와로 말미암았음을 겸손히 고백함.
-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 작은 자를 크게 만드시고 약한 자를 강하게 만드시는 여호와의 주권적 섭리.
- 일개 미천한 목동 출신인 자신이 여호와의 주권적 개입으로 크고 강한 권세를 지닌 현재의 왕의 위치까지 이르게 된 사실을 배경으로 함.
- 다윗은 자신의 삶의 경험을 통해 본문같은 신앙고백을 할 수 있게 된 것.
- 반대로 큰 자, 강한 자를 작은 자 연약한 자로 만들 수도 있으심.
- 사울은 유력한 집안 출신에 개인적 용모도 남들보다 훨씬 뛰어났다. 그러나 왕권을 내세워 여호와의 명령을 고의로 어기는 교만으로 인해 여호와의 능력이 떠나자 악령에 사로잡혀 연약하고 비참한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 인간의 운명이 여호와의 주권적 섭리로 인해 변화될 수 있다는 하나님 주권 사상이 담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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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윗은 그들로 하여금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기쁘게 봉헌할 수 있도록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말씀을 올렸다(13, 14절).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나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일을 많이 하면 할수록, 우리는 그의 일을 하는 데서 오는 영광을 받게 되고, 또한 언제나 그를 받들 수 있도록 능력주시는 은총을 힘입게 된다. 그러므로 "그가 종에게 사례하는 것이냐?" (눅 17:9) 아니다. 오히려 종이 그에게 감사해야 할 많은 이유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다윗은 그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수 있었던" 것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다음을 명심해 두자.
(1)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업을 기쁘게 행할 수 있도록 해주신다는 것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의 권능을 나타내는 분명한 실례라 하겠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즐겁게 행하도록" 역사하신다. 그리고 백성들이 즐거이 헌신하는 것은 바로 주의 권능의 날에 이루어진다(시 11:3).
(2) 우리는 어느 때나 우리들 자신에 의해, 혹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행해진 모든 선한 영광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우리가 선한 일을 했다고 해서 교만해져는 안되며, 다른 사람들이 선한 일을 했다고 해서 불평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모두 찬양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충성스럽게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분명 최고의 영광이요 기쁨이기 때문이다.
⛪ 13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 10절부터 이어진 주권자 하나님에 대한 찬양을 마무리하는 본문은 감사와 찬양으로 요약됨.
- 감사(모딤): 인정, 감사, 찬송
- (본문처럼 사역형으로 사용될 때) 하나님의 속성과 그의 역사에 대한 인간의 공적 선포나 선언을 나타내는 데만 사용됨.
- 찬양(우메할렐림): 빛나게 하다, 자랑하다, 칭찬하다→ 찬송하다, 송축하다, 찬양하다
- ⇒ 감사, 찬양 두 단어 모두 ‘능동 복수 분사’ 형태.
다윗을 비롯한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현재 감사와 찬양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그것이 타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인 찬양과 감사임을 의미함.
- 하나님을 향해 감사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할 수 있다. 삶에 찬양이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향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 감사와 찬양이 현재와 미래의 성도의 삶의 전반을 사로잡아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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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다윗은 그 자신과 그의 백성들, 그리고 하나님께 바친 제물은 매우 보잘 것 없는 것이라고 했다.
(1) 다윗 자신, 그리고 방백들이지만 자기 일에 협력해 준 그런 자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유념하신 은혜를 그토록 베풀어 주실 수 있겠는가고 생각했다(14절). "나와 나 의 백성이 무엇이옵니까?" 그 당시 다윗은 이 세상에서 가장 영예로운 자였고, 이스라엘은 가장 영예로운 백성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처럼 하나님이 알아 주시고 베풀어 주신 은총에 비해 자기 자신과 그들은 보잘 것 없는 인간이라고 일컫고 있다. 이 엄숙한 회의를 주관하고 그의 후계자를 정하는 다윗은 매우 위대해 보였다. 그러나 다윗은 그 자신의 눈에는 보잘 것 없고 비천하게 보였다. "주여 내가 무엇이옵니까?" 왜냐하면, "주 앞에서는 우리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초라한 "나그네와 우거한 자이기" 때문이옵니다(15절). 하늘에 있는 천사들은 집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땅 위에 사는 성도들은 이 세상의 나그네에 불과하다.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와 같도다." 다윗의 일생은 보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즉 그는 훌륭한 자였고 선하고 유익한 자였으며, 오래 살았고 사는 동안 선한 뜻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시귀에서 뿐만 아니라, 그들 앞에서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와 같다" 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은 우리의 삶이 헛된 것이요, 어두운 것이며, 인생이 덧없는 것이라는 것과 장차 완전한 광명이나 흑암의 운명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해 주고 있다.
그 다음 말이 그것을 설명해 주고 있다. "머무름이 없도다" (원어로는 "기대할 것이 없도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떤 큰 일을 기대할 수 없으며, 또한 그것이 오래 지속되리라고 바랄 수도 없다.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로 자랑하지 말 것을 암시하고 있다. 슬프게도 그것은 작은 시간 속에 한정되어 있으며, 그것은 연약하고 덧없는 인생의 봉사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그것으로 상 받으려 할 수 있겠는가?
(2) 그들의 제물에 관하여는 다윗이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옵니다" (14절). "그것은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16절)." 즉 "우리는 우리의 제물을 주께로부터 값없는 선물로 받았으므로, 우리가 그것을 주를 위해 써야 하옵니다. 우리가 주께 바치는 것은 주께로부터 얻은 것 뿐입니다" 는 것이다. 패트릭(Patrick) 감독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도 이와 같이 모든 영적인 일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야 하며, 선한 생각과 선한 목적과 선한 사업은 모두 그것을 주신 하나님의 은총의 덕분임을 고백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로 하여금 주님 안에 있는 영광을 빛나게 하라."
⛪ 14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 10-13절: 주권자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신앙고백적 성격의 찬양
- 14-17절: 성전 건축 헌물에 대한 봉헌 기도 새로운 단락은 의문문으로 시작.
- 이는 다윗이 자신의 정체성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체성을 몰라서 던진 질문이 아니다.
- 다윗은 이미 자신과 백성들이 여호와 앞에서 단지 나그네와 그럼자와 같은 존재임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15절).
⇒ 따라서 본문은 다윗이 자신과 백성들의 신분이 너무나 미천함에도 불구하고 성전 건축과 같은 위대한 사업을 준비할 수 있게 하신 여호와께 수사 의문문을 사용해서 감사의 고백을 드리고 있는 것으로 이해.
- = 어떻게 여호와께 집중적으로 드릴 힘이 우리에게 생겼는가? 사실상 아무 능력도 없었다라고 하고 있는 것.
→ 즉, 다윗은 자신이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 건축을 위해 헌금을 드린 것 자체도 인간의 능력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았다는 겸손하고도 성숙한 신앙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 다윗은 백성둘 앞에서 자신이 '힘을 다하여' 성전 건축을 위해 준비했음을 선포했지만(2절), 본문의 고백에 의하면 그것은 억지로 한 것이 아나라 당연한 일로 생각하고 자발적으로 한 일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물질에 대한 다윗의 가치관
- 다윗은 그 동안 목숨을 건 이방 족속들과의 전투를 통해서 많은 물질을 축적했지만, 그 모든 것이 여호와의 손에서 나 온 것이기 때문에 다시 여호와께 되돌려드릴 뿐이라는 놀라운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다.
- 주의 손 에서 받은 것으로(우미야데카)
- 손(야드): '권능'을 상징.
- 다윗이 그 동안 여호와의 권능으로 많은 물질을 축적할 수 있었음을 고백하는 것이 된다.
- 단지 물질 뿐만 아니라 자신이 누리고 있는 왕의 권세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것들이 여호와께 속해 있다는 하나님의 주권과 관련된 다윗의 성숙한 신앙이 담겨져 있다(롬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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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우리는 우리 조상들과 같이 주님 앞에서 이방 나그네와 거류민들이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희망이 없나이다
주님 앞에서 이방 나그네와 거류민들이라
- 다윗어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체성을 고백하는 대목
-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열조와 마찬가지로 나그네와 우거하는 자에 볼과함을 고백.
- 나그네(‘게림’)
- 나그네 삶의 특징: 재산권을 갖지 못함.
- 사실 본문의 배경어 되고 있는 다윗 통치 말기는 일정한 영토를 소유하지 못하고 살았던 그들의 조상들과는 달리, 여호수아의 영도하에 가나안 땅을 점령한 이후로 가장 많은 영토를 확보하였고 또한 전쟁을 통해 많은 물질을 소유한 상태였다.
- 따라서 오히려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돌은 모두 나그네가 아니라 가나안의 주인으로서 풍성한 소유를 가진 부자였다.
- 나그네는 물질적 의미라 아니고 신학적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이는 직역하면 '당신의 얼굴 앞에서'가 되며, 의인이 세상에서의 나그네 인생 길을 마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하나님의 면전에 서게 되는 상황을 염두에 둔 표현.
- 조금의 결핍도 없는 저 본향 하나님 나라에서 누릴 완전한 부요함과 영광스러움을 바라보는 자에게 있어 나그네 길에 불과한 이 세상에서 잠시 소유하는 물질은 의미 있는 것이 되지 못한다.
- 다윗이 가진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이러한 정체성이야말로 자신들이 소유한 귀한 것들을 하나님의 성전을 짓기 위해 아무런 아까움도 갖지 않고 바치는 위대한 신앙의 행위틀 하게 한 원동력이었다.
- 이는 역대기 기자가 그를 바벨론으로부터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의 모델로 삼은 이유이기도 하다.
- 우거한 자(웨토솨빔)
- 나그네(게르)가 가진 특권 중 일부만을 누릴 수 있었고, 대개 종이나 노예였기 때문에 더 열악한 상태에 있었음.
- 우거하는 자의 자녀들은 매매의 대상이 되고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을 수도 없었다.
다윗은 왜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을 나그네와 우거한 자로 묘사했을까?
- 이 세상에 궁극적 소망을 둘 수 없음을 명백히 한 것.
- 하나님의 백성인 자신들은 하나님이 계신 하늘을 본향으로 바라보며 이 세상에서는 나그네와 우거하는 자로 살고 있다는 자신들의 정체 성을 밝히고 있는 것.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희망이 없나이다
- 그림자: 세월의 덧없음, 인생의 허무함, 약해지고 병들기 쉬운 인간의 허약함을 나타냄.
- 인간의 지상에서 삶은 극히 짧고 허무하다. 지극히 짧고 허무하고 허약한 이 땅에서의 삶에는 아무런 소망을 둘 수 없다는 의미.
- [시92:8] 여호와여 주는 영원토록 지존하시니이다
- 하나님의 영원성에 비해 이 땅에서 사람의 인생은 보잘것 없는 지극히 짧은 순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은 다윗.
- 따라서 본문은 인생에 대한 비관주의적 입장이 아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와 비교해 인생이 가지는 유한성에 대한 참된 깨달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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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려고 미리 저축한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
- 다윗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자 미리 저축한 모든 물건이 다 주의 것임을 고백한다.
- 미리 저축한(하키노누-원형 쿤): 준비하다.
- 음식, 군대 같은 가시적인 것 뿐 아니라 ‘마음’과 같은 비가시적인 것도 있다.
- 다윗이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자신이 준비해 바친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 대상은 단순히 물건만은 아니다.
- 역대기 기자가 본문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둘이
단지 눈에 보이는 어떤 물건을 바쳤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께 열망과 열정 그러고 풍부한 부를 함께 묶어서 바쳤다는 사실이다.
- 놀라운 것은 다윗이 이 모든 것은 바로 주님께로부터 비롯된 것이란 사실을 고백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다윗은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것을 비롯해 눈에 보이지 않는 열망이나 열정 등도 모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측복으로 인식하는 성숙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것어다.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 다윗이 그렇게 짓기를 원했던 예루살렘 성전의 건축 목적을 분명하게 제시
- 궁극적 목적: 여호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기 위해서.
-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등 이스라엘 선조들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자신을 계시하셨고,
-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처음 계시하셨다. 여호와는 스스로로 존재하는 자라는 의미이며 이는 하나님의 자존성과 영원성을 나타내 준다. 아울러 이는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미한다.
⇒ 성전의 목적: 여호와의 이름을 위해서=여기에는 성전을 통해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서만 영광을 받으셔야 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여호와의 이름에 함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시 29:2).
- 구약 시대 의 성전이 신약 시대의 교회로 대치되었다는 점에서 본다면 신약 교희인 우리 성도들 역시 하나님의 것이고 우러의 삶과 인격을 통해서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둘려야 한다는 사실을 교훈받을 수 있다.
- ⇒ 성전을 지음으로 여호와의 자존하심, 영원하심, 신실하심이 더 한층 드러나게 됨을 염두에 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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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다윗은 하나님께 자기가 진실되게 행하였음을 호소하였다(17절). 누구든 하나님께서 자기의 "마음을 감찰하시고", 자기의 "정직을 기뻐하시라" 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은 선한 사람으로서는 큰 기쁨이 된다. 다른 사람들이 오해하더라도 하나님은 "의로운 길" 을 알고 계시며, 그것을 인정해 주신다. 다윗 자신과 그 백성들이 즐거이 제물을 바쳤다는 것을 하나님이 알고 계시리라는 것이, 다윗에게는 위안이 되었다. 그는 그 자신의 선한 사업을 자랑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의 선한 사업을 시기하지도 않았다.
⛪ 17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며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자원하여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
- 다윗은 자신과 백성들이 이러한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께 정직한 마옴으로 즐거이 바쳤옴을 고백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 다윗은 자신이 정직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즐거이 바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분이심을 인식하였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 감찰(빠한): 시험하다
- 이 단어는 용례를 살펴보면 모두 하나님을 주어로 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목적어로 취한다.
-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훈련하기 위해 그들의 삶을 시험하신다라는 의미로 사용.
- 다윗은 이런 사실을 알았으며 정직한 마음으로 자신의 것들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다.
정직(A)을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B)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며
- 정직(메솨르): 굽지 않고 똑바르다, 즉 재판 등에서서 ‘공정하게’, ‘합법적으로’ 행한다는 의미.
- 정직A: 하나님을 주체로 하여 그의 심판 기준에 부합하는 정직.
- 정직B: 다윗을 주체로 하여 그의 실제적 삶에서 정직을 강조.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자원하여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
- 다윗 뿐 아니라 일반 백성들도 주께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바쳤음을 고백하는 내용.
- 주의 백성이(한니므체우): 발견되어진 그들
- 여호와의 눈이 현재 이 백성들을 찾고 발견하셨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으로, 살아계셔서 끊임없이 자기 백성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신앙 고백이기도 하다.
-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주의 백성’이라고 칭한다. 가시적으로 자신이 이들을 통치하지만, 이들의 진정한 주인은 여호와이시며 그 통치 권한도 궁극적으로 여호와께 있다는 신앙 고백적 의미가 담김. </as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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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다윗은 그 백성과 솔로몬이 그들이 시작한 일을 지속시킬 수 있도록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였다. 이 간구 속에서 그는 하나님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이라 일컫고 있다. 즉 하나님은 그들과, 또 그들로 인하여 자기들과도 계약을 맺으신 하나님으로 일컫고 있는 것이다. "주여, 우리가 그 언약을 잘 지키는 유익함을 빼앗기지 않도록,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라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그 언약을 잘 이행할 수 있었나이다 라는 것이기도 하다. 그들에게 풍족히 내리신 것과 같은 은총을 우리에게도 내려 주소서 하는 것이다.
(1) 그가 백성을 위해 간구한 것은 그들로 하여금 선한 하나님을 항상 심중에 두고 지금의 믿음을 결코 버리지 말며, 그들이 지금 지니고 있는 확신을 잃는 일이 없이 또한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는 마음이 식어지지 않고, 지금 그들이 지니고 있는 마음을 항상 유지하려는 것이었다. 우리가 목표를 정하여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가장 깊고 가장 훌륭한 심중에 두어둔 생각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어떠한 선한 것을 우리 심중에 혹은 우리 친구들의 심중에 얻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것을 계속 간직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은총을 간구하는 것이 좋다. "주여, 그것을 지켜주시옵소서. 영원히 그것을 지켜주옵소서. 다윗이 성전을 위하여 물건들을 예비해 두었었나이다. 그러나 주여, 주께서 이러한 특권을 누릴 수 있는 그들의 마음을 예비해 주소서." 흠정역의 난외에 있듯이, 그들의 마음을 "세워주소서." 또한 "그들의 결심을 확고히 하소서. 그들은 지금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사오니, 내가 죽은 후에도 그들과 그들의 것을 영원히 지켜 주소서" 라는 기도이다.
⛪ 18 우리 조상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것을 주의 백성의 심중에 영원히 두어 생각하게 하시고 그 마음을 준비하여 주께로 돌아오게 하시오며
- 다윗이 기쁜 마음을 가지고 이런 신앙적 행위를 한 이스라엘 전체를 위해해 중보 기도를 드리는 내용.
- 아브라함, 이삭,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선민의 뿌리로 일컬어지는 세 족장들과 관련해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상기시킴. 이들과 더불어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맺으시고, 그들과 하신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셨다.
⇒ 이러한 호칭 속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솔로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능력과 신실하심으로 반드시 언약을 성취시켜 달라 는 다윗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져 있다.
주께서 이것을 주의 백성의 심중에 영원히 두어
- 이것: 여호와께 자원해서 최선을 다해 물질과 마음을 바치는 백성들의 신앙적 태도
- 두어: 지키다, 보존하다
- '제발 지켜주소서'라는 뜻.
- 다윗은 여호와께 이미 백성들의 마음에 존재하는 자원하는 태도를 계속 유지 보존시켜 달라고 간구한 것.
- 이 기도는 성전 건축 시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포로기 후대를 포함해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까지 확장됨.
생각하게 하시고
- 현재 보여준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원하는 마음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들의 '생각들의 근본적인 틀'이 되게 해 달라는 의미
- =앞으로 어떤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그들이 여호와 앞에 자원하는 마음으로 나오게 해달라는 염원
- 본문에 나타난 다윗의 기도 속에는 하나님께 즐거이 드리는 마음 역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언간 스스로 갖거나 보전할 수 없다는 신앙 고백. 다윗이 범죄한 뒤에도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옴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 51:10)라고 기도한 것은 바로 이러한 믿음에 근거한 것.
그 마음을 준비하여 주께로 돌아오게 하시오며
- 다윗이 헌물이 바쳐지도록 준비시켜 달라는 기도 말고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도록 준비해 달라고 기도하는 이유
-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마음임을 알았기 때문.
- 본서 저자가 이러한 다윗의 기도를 소개한 것은 하나님 앞에 범죄하여 이방에 포로로 잠혀갔다가 다시 약속의 땅에 귀환하여 신정 국가의 영광을 회복시켜야 할 시대적 사명을 지닌 본서 일차 독자들에게 그들이 먼저 회복하고 지켜야 할 것이 오로지 마옴을 다하여 하나님을 향하는 것임을 각인시켜 주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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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는 솔로몬을 위해서는, "그에게 정직한 마음을 주소서" (19절) 하고 간구하였다. 그는 전에(28:9) 솔로몬에게 "온전한 마음" 으로 하나님을 섬길 것을 당부했다. 다윗은 "주여, 솔로몬으로 하여금 훌륭하고 부유하고 학식 있는 자가 되게 해주소서" 하고 간구하지 않고, "주여, 그가 정직한 자가 되게 하소서" 하고 간구하였다. 그것은 정직함이 그 어느 것보다 가장 훌륭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주여, 그에게 정성된 마음을 주사 주의 계명을 지킬 뿐만 아니라, 특히 한 마음으로 섬길 수 있도록 전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만일 그가 계명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전을 건축할 만한 정성된 마음도 지니지 않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에 복종하지 않는 생활을 한다면, 우리를 구원할 교회를 건축할 생각도 가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19 또 내 아들 솔로몬에게 정성된 마음을 주사 주의 계명과 권면과 율례를 지켜 이 모든 일을 행하게 하시고 내가 위하여 준비한 것으로 성전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라
- 정성된 마음(레바브 솰렘): 온전한 마음.
- 9절에서 ‘성심으로’로 번역. 여호와께 자원해 헌물 드리는 지도자들의 마음가짐 나타내는데 사용됨.
- 다윗은 솔로몬이 성전 건축에 성공하는 것보다 먼저 정성된 마음, 즉 여호와를 자원해서 섬기는 마음가짐 자체를 소유하기를 기원했던 것이다.
- 하지만 솔로몬은 다윗의 염원과 달리 통치 말기에 여호와께 대 한 온전한 마음을 갖지 못하고 이방의 우상들에게 마음을 빼앗김으로써 배도의 길을 걷고 말았다. 솔로몬의 이름에는 평화와 온전함이라는 의미가 있는데, 끝까지 온전한 마옴을 유지하지 못한 그의 일생 은 역설적 교훈을 전달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 주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
- 모두 하나님이 내리신 율법을 의미하는데 이를 솔로몬이 반드시 지켜야 함을 강조하기 위해해 유사한 의미의 용어를 삼중으로 표현한 것.
- 지켜(솨마르)
-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삶의 기준으로서 계명, 법도, 율례를 면밀히 살피고 마음에 둘 뿐 아니라 최선을 다해 준수해야 한다는 포괄적 의미를 드러냄.
이 모든 일을 행하게 하시고
- 지킬 뿐 아니라 행함(아사)을 따로 쓴 것은 수동적 차원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행한다는 의미 전달하기 위해서.
- 이러한 표현들을 통하여 다윗은 여호와의 율법을 지키고 행하는 것을 온전한 마음의 결과로서, 그리고 성전 건축보다 더 근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사항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윗은 가시적으로 아무리 큰 업적을 남긴다 하더라도 온전한 마옴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성실히 준행하지 않는다면 이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위하여 준비한 것으로 성전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라
- 성전이 온전하게 세워지는 것은 여호와께서 허락하시는 온전한 마음이 있어야 가능함.
- 내가 위하여여 준비한 것으로: 솔로몬이 더 이상 준비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다윗이 성전 건축을 위해 충분한 준비를 한 사실을 알 수 있음.
- 성전 건축을 위한 물질적 준비, 인적 자원 배치 등 준비는 다 했으니 솔로몬에게 필요한 것은 온전한 마음으로 여호와의 율법을 지키고 행하며, 온전한 마음으로 전을 건축하는 것뿐임을 밝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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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이 엄숙한 자리에서 온 회중이 모두 기쁘게 동조하였다.
- 그들은 다윗과 함께 하나님을 송축하였다. 그가 기도를 끝낸 후, 그들의 의견을 알기 위해 동조를 호소했을 때(" 이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라." 20절), 그들은 모두 이에 응하여 "그들의 머리를 숙임으로써" 그들의 숭배심을 표하였다. 회중에 모인 자가 누구든지 간에, 단지 "머리를 숙이는" 것만이 아니고 "영혼까지도 바침으로써" 그와 함께 한 유익을 얻게 되는 것이다.
- 그들은 하나님의 손이 되어 자기들에게 은혜를 전해주는 자인 다윗을 존경하고, 그에게 경의를 표했다. 즉 그들은 다윗에게 경의를 표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던 것이다.
⛪ 20 다윗이 온 회중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라 하매 회중이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고 머리를 숙여 여호와와 왕에게 절하고
- 다윗이 찬양, 성전 봉헌 기도, 중보 기도를 모두 마치고 백성들을 선도하여 여호와를 찬양하는 부분.
- 다윗의 선도를 통해 그 자리에 모인 회중 전체가 여호와를 송축했다.
- 이처럼 왕과 백성이 한 마음이 되어 여호와를 찬양히는 모습은 이상적인 신정 왕국의 모델로 제시된 다윗 통치의 절정에 해당하는 내용
- 조상들의 하나님
-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 즉 이들을 미천한 가운데 부르셔서 언약을 맺으시고 현재의 이스라엘 족속이 존재하도록 그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신 여호와의 은혜를 찬송하고 있는 것.
- 머리를 숙여 여호와와 왕에게 절하고
- 단순히 머리 숙이는 육체적 동작만 의미하지 않고, ‘복종’의 의미까지 수반.
- 외식적 복종이 아닌 자발적이고 헌신적 복종을 나타냄.
- 절하고: 이스라엘 온 회중이 하나님 앞에 자신들을 겸손히 낮추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음.
- 머리를 숙여: 하나님께, 그리고 다윗 왕에게까지 머리리 숙여 경배했다고 묘사함.
- 온 회중이 다윗이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표시로서 이런 행동을 함.
- 다윗이 하나님께 위임받은 신정 왕국 대리 통치자라는 사실 강조하기 위해 기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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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다음날 그들은 하나님께 풍성한 제물을 드렸다(21절). 그들은 번제를 드려 모두 불사르고, 화목제를 드린 후 그 제물을 먹으며 즐겼다. 비록 다윗이 이 세상에서 많은 수고를 하기는 했지만, 그들은 여기에서 이렇게 자기들의 나라를 복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표하였다.
⛪ 21 이튿날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고 또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니 수송아지가 천 마리요 숫양이 천 마리요 어린 양이 천 마리요 또 그 전제라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풍성한 제물을 드리고
- 다음날 거행된 백성들의 감사 제사. 백성들은 여호와를 송축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성전 건축 헌금을 드릴 수 있도록 배후에서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린 것.
- 하나님의 전을 짓기 위한 뜻을 가지고 성전 건측 헌금 붕헌에 참여한 이스라엘 회중둘온 자신들의 귀한 재물을 바친 다옴날 하나님께 감사 제사를 드리고 함께 음식을 나누며 기뻐하였던 것이다.
- 다윗과 이스라엘 온 회중들은 하나님의 규례에 맞게 최선을 다해 성대한 제사를 드림. </as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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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향연을 베풀고 기뻐하였다(22절).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며 그와 함께 교제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그들은 여호와 앞에서 경건하게 화목제를 드리고 잔치를 베풀었다. 그들이 하나님께 드린 것을 먹고 즐기며 잔치를 베푼 것은, 그들이 성전 일을 위해 기쁘게 봉헌하였으므로 결코 그것 때문에 궁핍하게 되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암시해 주는 것이었다. 즉 그들 자신이 바친 제물의 은덕을 입게 된다.
⛪ 22a 이 날에 무리가 크게 기뻐하여 여호와 앞에서 먹으며 마셨더라
- 여호와 앞에서: 여호와의 면전에서, 제단 앞에서, 여호와의 임재를 느끼면서
-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린 큰 기쁨이 단순히 먹고 마시는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임재를 느끼며 화목 제물을 나누어 먹는 가운데 생겨난 영적 기쁨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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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들은 솔로몬으로 다시 왕을 삼았다. 아도니아의 반란으로 해서 이전에 급히 서둘러 솔로몬에게 기름을 붓는 의식을 가졌었으나, 이제 그 의식을 다시 가지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되어졌다. 이것은 백성들을 매우 기쁘게 해주었다. 그들은 "그에게 기름을 부어 여호와께 돌렸다." 장관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위하여 종이 된 자라고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품고 치리해야 한다. 사독도 역시 기름부음을 받아 아비아달의 뒤를 이어 제사장이 되었는데, 아비아달은 근래에 그의 영예를 박탈당하였다. 이러한 왕과 제사장을 두고 있는 이스라엘은 얼마나 행복한가!
⛪ 22b 무리가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다시 왕으로 삼아 기름을 부어 여호와께 돌려 주권자가 되게 하고 사독에게도 기름을 부어 제사장이 되게 하니라
- 22-30절: 솔로몬의 즉위, 솔로몬과 다윗의 통치 개요.
- 다시 왕으로 삼아:
- 아도니야가 스스로 왕이 되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고 이에 다윗은 솔로몬에게 왕위 이양을 선언함. 그리고 자신과 더불어 공동 통치를 하게 함.
- 본서 저자가 성전 건축 헌금, 감사 제사 뒤이어 이 내용을 기록한 이유
- 솔로몬의 즉위가 성전 건측 사업과 밀접하게 연관될 뿐 아니라 하나님께 헌물과 감사 제사를 드리는 등 여호와 신앙을 지닌 백성돌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아 왕이 되었음을 보다 부각기키기 위해서
- = 즉, 다윗 왕가의 왕권 이앙이 온 백성들의 전폭적 지지와 여호와의 축복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옴을 독자들 에게 부각시킨 것이다.
- 다윗의 아들
- 솔로몬이 개인 능력으로 왕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다우시 사이에 맺어진 영원한 왕조 언약으로 인해 왕이 되었음을 보여 준다.
기름을 부어…주권자가 되게 하고
- 성막, 제단, 성막 기구 등의 물건들도 포함됨.
- 기름부음(마솨흐): 이 단어가 사람에게 사용되는 경우 하나님께 봉사하기 위해 특별한 신적 권위가 부여된다는 의미를 가짐.
- 메시야: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오시는 메시야, 즉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단어와 연관.
- 구약 시대 기름부음을 통해 직위를 부여받았던 왕, 제사장, 선지자는 만왕의 왕으로서 완전한 통치권을 가지시며, 자신을 온 세상을 위한 속죄 제물로 바쳐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완전한 중보자가 되시며,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셨던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여호와께 돌려
- 솔로몬이 왕으로 세움 받은 것: 다윗의 인간적 계획에 따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에 따른 것이다. 하나님이 정하심. 또한 그 과정에 있어서도 온 백성의 지지와 즉위식에 있어 본질적 요소인 기름부옴의 예식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역대기 기자는 솔로몬을 '기름부옴 받은 자'와 '주권자 (나기드)'로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솔로몬 개인이 다윗의 말째 아돌로 태어났지만 하나님에 의해 택함받은 정통성있는 왕이라는 사실을 나타내며 이와 더불어 야곱의 유언적인 예언, 즉 처리자가 유다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며 메시야가 그 가문에서 태어날 것이라는 에언(창 49:10)이 다윗 가문을 통해 성취되어 가고 있옴을 전달하기 위헤서라고 풀이된다.
- 당시에는 사독만 대제사장으로로 있었다. 아비아달은 아도니야 반역 사건으로 파직되었음.
- 사독이 이때 솔로몬과 더불어 기름부음 받은 것은 앞으로 전개될 솔로몬 왕국이 인위적 통치가 행해지는 세속 국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가 이뤄지는 하나님 중심의 신정 국가임을 확인케 하려는 의도 때문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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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교체(역대상 29:23-30)
여기에 적힌 내용은 솔로몬이 왕위에 오른 것과, 다윗이 죽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이처럼 새로운 세대는 옛 것을 몰아내고 그들을 위한 자리를 만들어 줄 것을 요구한다. 사람에게는 각자의 때가 있는 법이다.
Ⅰ. 이제 솔로몬이 즉위했다(23절). "솔로몬이 여호와께서 주신 보좌에 앉았다." 그것은 하늘에 예비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주신 보좌" 라고 불리우는 이스라엘의 보좌였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만유의 왕이시며, 모든 나라의 왕들이 그의 아래 있을 뿐 아니라, 특별히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기 때문이다(삼상 12:12). 하나님께서 손수 그들의 보좌를 만드시고 채워주셨으며, 그들의 왕국을 다스리는 율법은 거룩하였다. 또한 우림과 선지자들은 방백들의 개인적인 조언자가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보좌는 "여호와께서 주신 보좌" 라고 불리웠다. 더욱이 솔로몬의 왕국은 메시야 왕국을 상징하는 것이었으므로, 그것을 사실상 "여호와께서 주신 보좌" 였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심판치 않으시고 그에게 심판하도록 하셨으므로 하나님은 그를 "그의 왕" 이라 부르셨다(시 26:). 하나님께서 그를 불러 "여호와께서 주신 보좌" 에 앉히시매 그는 번영하였다. 거룩한 인도를 따른 자들은 거룩한 축복에 의해 성공할 것이다. 솔로몬은 번영하였다. 이유가 있다.
- 그의 백성들은 그들이 마땅히 존경할 자로서, 그에게 경의를 표하였기 때문이다. "온 이스라엘이 그의 명령을 순종하였다" (23절). 즉 "방백들과 용사와 더욱이 다윗의 아들들" 까지도-그들이 솔로몬보다 윗자리에 있었으므로 출세에 있어서 그들 자신이 배반당했다고 생각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솔로몬에게 충성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이 왕 되기에 합당하다고 생각하시어 그를 그렇게 만들었으므로 "그들은 모두 그에게 복종하였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주시어서, 솔로몬의 통치는 처음부터 평화롭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의 아버지 다윗은 그보다 더 훌륭한 자였으나 왕위에 오를 때까지 퍽 많은 어려움과 오랜 시일이 걸렸었고, 여러 단계를 거쳐서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다윗은 더 큰 신념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것은 더욱 시련을 당하였다. "그들은 스스로 복종하였다" (원문에 따르면 "그들은 솔로몬에게 손을 주었다"). 즉 그들은 그에게 충성될 것을 서원했거나(손을 허벅다리 아래에 놓는 것이 고대의 서원하는 의식이었다), 아니면 그들은 그를 섬기기 위해 그들의 손을 그들의 발 밑에 놓으려 할 정도로 그에게 충성을 다했다.
⛪ 23 솔로몬이 여호와께서 주신 왕위에 앉아 아버지 다윗을 이어 왕이 되어 형통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의 명령에 순종하며 24 모든 방백과 용사와 다윗 왕의 여러 아들들이 솔로몬 왕에게 복종하니
- 여호와께서 주신 왕위에
- 본문 직역하면: ‘여호와의 보좌 위에’
- 솔로몬이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여호와의 나라로 간주하고 솔로몬을 이스라엘 대리 통치자로 나타낸 것.
- 역대기 기자는 본서의 일차 독자인 바벨론으로부터 귀환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여호와 신앙을 회복할 뿐만 아니라 그둘의 진정한 통치자는 사람이 아닌 여호와 하나님 한 분뿐이라는 사실을 본문의 표현을 통해 암묵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 형통하니: 번영, 성공
- 인간적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나타냄.
- 진정한 형통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 악인의 형통은 영원한 형통이 아닌 잠시 동안의 형통일 뿐이며(사 53:10) 심판날에 형벌을 면처 못한다(단 11:36).
- 솔로몬이 일생 동안 형통하였던 것은 아니다. 솔로몬 역시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했을 때에는 형통하였지만 하나님을 떠나 불순종하였을 때에는 그 자신은 물론 이스라엘까지 쇠퇴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기 때문이다(왕상 11장).
온 이스라엘이 그 명령을 순종하여
- 직역: 그리고 온 이스라엘이 그에게 귀를 기울였다.
- 단순히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매우 세심하게게 들음으로 행동에 옮기는 차원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순종으로 번역됨.
- 이스라엘이 솔로몬이란 인물 자체에 순종함. 다윗처럼 전폭적 지지를 받음.
- 마땅히 왕에게 순종할 신하들 뿐 아니라 왕권을 노리고 반역을 일으킬 가능성을 다분히 지닌 왕자들까지도 복종했음.
- 열왕기서에는 아도니야의 반역과 진압과정이 나온다. 그러나 역대기에서는 부정적인 사건을 과감히 삭제하고 긍정적 사실만 기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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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나님은 그를 영예롭게 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영광되게 하려는 자를 하나님은 영광되게 해주시기 때문이었다. "여호와께서 솔로몬을 심히 존대케 하셨다" (25절). 하나님께서 솔로몬과 함께 하여 주셨으므로, 그들은 무엇인지 모를 위엄과 두려움을 느꼈으리라 생각된다. 그가 한 모든 말과 모든 명령은 존경되어졌다. 그의 선조들 가운데 어떤 사사나 왕도 그와 같은 위엄을 지닌 자가 없었을 뿐 아니라, 이처럼 눈부신 생애를 살았던 자도 없었다.
⛪ 25 여호와께서 솔로몬을 모든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심히 크게 하시고 또 왕의 위엄을 그에게 주사 그전 이스라엘 모든 왕보다 뛰어나게 하셨더라
- 여호와께서 솔로몬으로 심히 크게 하시고
-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위대하게 만드셨음.
- 솔로몬은 다윗의 고백대로 왕이 되기에 어리고 연약한 존재였지만 여호와의 주권적 섭리로 솔로몬을 위대한 왕이 되도록 하셨음.
- 심히: 여호와께서 솔로몬을 위대한 존재로 만드시되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높은 위치의 왕으로 만드셨음.
- 이스라엘 무리의 목전에
- 모든 이스라엘 백성 판단에 솔로몬이 위대해 보이도록 여호와께서 섭리하셨음. 그렇게 섭리하셨기에 위대한 왕이 될 수 있었음 .
- 또 왕의 위엄을 주사
- 왕으로서 갖출 외적 근엄함을 주셨다는 것이 아니라, 뛰어난 통치 능력에서 나오는 위엄을 주셨다는 의미.
- 그전 …왕보다 뛰어나게 하셨더라
- 솔로몬 이전에 존재했던 왕들에게 전혀 주신 바 없었던 왕의 위엄을 솔로몬에게 주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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