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사무엘하 8, 9, 고린도후서 2, 에스겔 16, 시편 58, 59
묵상구절
1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성전에 가득하니
2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므로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전으로 능히 들어가지 못하였고
3 이스라엘 모든 자손은 불이 내리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위에 있는 것을 보고 돌을 깐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이르되 선하시도다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니라
4 이에 왕과 모든 백성이 여호와 앞에 제사를 드리니
5 솔로몬 왕이 드린 제물이 소가 이만 이천 마리요 양이 십이만 마리라 이와 같이 왕과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전의 낙성식을 행하니라
6 그 때에 제사장들은 직분대로 모셔 서고 레위 사람도 여호와의 악기를 가지고 섰으니 이 악기는 전에 다윗 왕이 레위 사람들에게 여호와께 감사하게 하려고 만들어서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을 찬송하게 하던 것이라 제사장들은 무리 앞에서 나팔을 불고 온 이스라엘은 서 있더라
7 솔로몬이 또 여호와의 전 앞뜰 가운데를 거룩하게 하고 거기서 번제물과 화목제의 기름을 드렸으니 이는 솔로몬이 지은 놋 제단이 능히 그 번제물과 소제물과 기름을 용납할 수 없음이더라
8 그 때에 솔로몬이 칠 일 동안 절기를 지켰는데 하맛 어귀에서부터 애굽 강까지의 온 이스라엘의 심히 큰 회중이 모여 그와 함께 하였더니
9 여덟째 날에 무리가 한 성회를 여니라 제단의 낙성식을 칠 일 동안 행한 후 이 절기를 칠 일 동안 지키니라
10 일곱째 달 제이십삼일에 왕이 백성을 그들의 장막으로 돌려보내매 백성이 여호와께서 다윗과 솔로몬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은혜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마음에 즐거워하였더라
매튜헨리/옥스퍼드
●하나님의 공개적 응답(역대하 7:1-11)
Ⅰ. 하나님은 솔로몬의 기도에 즉시 은혜롭게 응답하셨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살랐다" 고 했다(1절).
이러한 방법으로써 하나님은 모세와(레 9:24) 기드온(삿 6:21), 다윗(대상 21:26), 엘리야(왕상 18:38) 등을 용납하셨다는 것을 입증하셨다. 일반적으로 히브리 어법에 의하면, 번제를 열납하는 것은 그 제물을 재로 변하게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시 20:3). 그 불이 여기에 내려온 것은 희생 제물을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기도의 응답을 위한 것이다.
💡 1절, 솔로몬이 드렸던 기도가 하나님에 의해 응답되었음을 가시적으로 나타냄.
제물들을 ‘사르고’
본문은 ‘하늘에서 내려온 불이 번제물들과 제물들을 마치 삼키듯이 태워 재로 만들었다'라는 의미를 전달.
→ 이처럼 하늘에서 불이098;38). 그리고 이러한 일에는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열납하셨다는 상정적인 의미가 있다.
대상 21장도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물을 태운 사건을 기록함
인구 조사로 하나님께 범죄한 다윗이 오르난의 타작 마당을 사서 화목제를 드리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사건. 이 사건이 있은 후 다윗은 그곳을 ‘여호와 하나님의 전이요 이스라엘의 번제단'이라고 칭하는데, ⇒ 이곳은 결국 후에 솔로몬의 성전이 건축되는 터가 된다. 이와 같은 역사적 사건을 참조해 볼 때 본문은 다윗의 제사가 열납된 것과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 되며, 솔로몬이 성전 봉헌을 위해 드린 제사 역시 다윗이 인구 조사 범죄 후 화목제를 드린 동일한 장소에서 열납되었음을 강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여호와의 영광이 그 전에 가득하니’
대하5:14, 왕상8:11, 출24:16
2절, 제사장이 그 전에 능히 들어가지 못하였고..
직역하면 ‘그래서 그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전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성전에는 오직 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었으나 이들마저도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한 성전에 들어갈 수 없었다는 것은 연약한 인간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성전에 임한 여호와의 영광이 압도적이었다는 뜻이다.
‘제사장'에 해당하는 ‘학코하님'은 단수가 아닌 복수형.
따라서 대제사장 한 명이 아닌 다수의 제사장이 성전 내에서 활동하였옴 을 알 수 있다. 이는 모세의 성막에 비해 솔로몬 성전의 규모가 컸을 뿐 아니라 당시 이스라엘 전 회중이 성전 봉헌을 위해 운집해서 번제를 드리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3절, 박석 깐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 여호와의 영광의 임재에 대한 백성들의 경배와 찬양
‘박석 깐 땅’
박석 : 빛나는 돌로 만든 석판.
박석 깐 땅 = 박석을 이용하여, ‘모자이크 모양으로 만든 포장 도로’
겔40:17에 따르면, → 박석'은 성전 바깥 들 사면에 모두 깔려 있었다. 또한 윗뜰 곧 제사장의 뜰에도 역시 박석이 깔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Payne). 따라서 제사장을 포함한 그곳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 가 박석 깐 땅에 엎드려 여호와께 경배하였음을 알 수 있다.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땅에 엎드려
➤ 유대인들이 드리는 기도와 경배의 자세.
직역하면, ‘그들이 무릎을 꿇어 그들의 얼굴을 땅에 대었다’
그들은 단순히 고개를 숙인 정도가 아니고 완전히 몸을 굽혀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까지 자신을 낮춘 자세로 경배하였던 것이다.
‘선하시도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대하5:13 해설 참고,
💡 1-3절까지의 기록은 역대기만의 단독 기사.
열왕기서의 경우
칠중 청원 기도를 마친 후 솔로몬과 함께 온 이스라엘이 다 성전 봉헌식을 성전 낙성 제사를 드리는 장면이 곧바로 이어짐(왕상 8:62.63).
그러나 역대기의 경우
하나님이 솔로몬의 기도에 응답하여 불로 솔로몬이 드린 제물을 사르는 장면이 서술되고(1절),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것을 보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장면을 첨가하고 있다(2,3절). 그리고 이처럼 놀라운 광경을 서술한 이후에 열왕기서와 같이 왕과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께 성전 낙성 제사를 거행하는 장면을 연결시키고 있다.
이같은 차이점을 감안하면
솔로몬은 백성을 향한 철중 청원 기도틀 드림과 동시에 하나님께 제물을 드린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이 기도와 제물을 열남하심을 나타내기 위해 불로 제물을 사르신 것이 된다.
➤ 이처럼 솔로몬이 기도를 드리면서 제물을 드린 것과 거기에 여호와의 영광이 임한 사실, 그리고 그 이후 성전 낙성 제사를 거행한 사건은 하나님께 제사하는 공동체로서 선민 이스라엘의 특징을 나타내줌과 동시에 솔로몬의 신앙적 측면을 부각시켜 보여준다.
1.이 불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시사했다.
(1) 하나님은 스스로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 이므로, 지성소에서도 두려움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짙은 어두움을 가르는 이 불은 시내산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더욱 두려워했을 것이다(출 24:16, 17). "시온의 죄인들은" 이 광경을 보고 "두려워하며 누가 삼키는 불과 함께 거하리요?" 하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사 33:14).
(2) 그러나 이스라엘에게는 은혜로우심을 보이셨다.
왜냐하면 그들을 소멸시키는 것이 당연하기도 했지만 이 불은 그들 대신에 바쳐진 제물 위에 내려온 제물만 살랐고, 그것으로써 하나님이 그들의 제물을 열납하시사 진노를 돌이키셨다는 것을 나타내셨기 때문이다.
2.우리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풀이해 보자.
(1) 그리스도의 고난에 적용시키자.
여호와께서 그를 상하게 하시고 그를 상심케 하셨을 때, 하나님은 그 속에서 우리의 모든 죄악을 그리스도에게 짊어지게 하심으로써 인간에 대한 그의 선하신 뜻을 보여 주셨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의 생명이 되었다. 또한 그는 우리가 의와 축복을 유업으로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친히 죄와 저주가 되셨다. 그 제물이 불살라졌기 때문에 우리가 소멸을 피했다. "여기에 내가 있사오니, 이들은 저희 길을 가게 하소서."
(2) 성령의 성화하는 능력에 적용시키자.
성령은 불꽃같이 내려와 우리의 정욕과 타락을 불사른다. 그 욕정과 타락의 희생 짐승이 소멸되지 않으면, 우리가 멸망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영혼 속에 경건하고 열렬한 믿음의 거룩한 불을 켜, 마음의 제단에서 항상 그 불이 타오르게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열납하셨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이 거룩한 불꽃이 우리 위에 내려오는 것이다.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눅 24:32)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기도를 열납하셨다는 또 다른 증거로써 여전히 "여호와의 영광이 그 전에 가득하였다" 고 했다. 이처럼 거룩한 영광에 대한 거룩한 두려움과 경외감으로 채워진 마음 곧 하나님께서 당신의 광대하심과(조금도 그의 영광에 손색이 없는) 선하심을 나타내신 바 있는 그 마음은 이미 그 사실로 인하여 있는 성전으로 인정된 것이다.
Ⅱ. 하나님께서 당신의 은총을 이처럼 은혜롭게 표하신 것에 대해 그들은 감사한 마음을 돌려드렸다.
1. 백성들은 "경배하며 하나님께 감사했다" (3절).
하나님의 불이 하늘로부터 내려 온 것을 보았을 때, 그들은 놀라 달아나지 않고 여호와의 뜰에 계속 있었다.
(1) 그러면서 경외감을 품고 하나님의 영광을 숭앙했다.
"저희가 땅에 엎드려 경배했다." 즉, 그들은 이처럼 하나님의 존전에 대한 두려움과 하나님의 권위에 기꺼이 복종하려는 마음,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올 가치가 없으며 그의 진노의 능력 앞에 설 능력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을 표현했다.
(2)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정했다.
여호와의 불이 내려왔을 때에도, 그들은 "선하시도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라고 말하면서, 그를 찬미했었다.
이것은 결코 시기에 맞지 않는 그런 노래가 아니며, 우리의 마음과 입이 이것 때문에 불협화음을 이루어서는 안 된다.
아무튼 하나님은 선하시다. 그가 죄인들을 소멸시키는 불로 나타나실 때에도, 그의 백성들은 그를 자기들의 빛으로서 즐거워할 수 있었다.
나아가 그들은 이 속에서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것을 말할 수 있는 이유를 찾은 것이다. "우리가 불살라지지 않는 것은 여호와의 인자하심 때문이니이다. 따라서 우리 대신 제물이 불살라지는 것에 대해 우리는 매우 감사하지 않을 수 없나이다" 는 것이다.
2. 왕과 모든 백성들은 풍성한 제물을 바쳤다(4, 5절).
이것으로써 그들은 이 하나님의 불을 기뻐하는 잔치를 베풀었고, 또 그 불이 제단으로 임하도록 기원했다. 그들은 과거에도 제사를 드렸었으나, 지금도 또 드리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총의 표시를 보면 그를 섬기고자 하는 우리의 마음이 더욱 불타올라야 하며, 그것을 계속하도록 해야 한다. 왕의 모범이 백성들을 자극했다. 지도자가 선한 일에 앞장 선다면, 그 선한 일은 계속 되어나갈 것이다.
💡 4절, 이에 왕과 모든 백성이 여호와 앞에 제사를 드리니
▶︎ 제사를 드리는 주체 : 왕, 모든 백성
본절에서는 ‘왕과 모든 백성’ 이 동등하게 하나님 앞에 제사드리는 제사의 주체로 묘사되어 있다.
병행 구절인 왕상 8:62에는 ‘왕과 왕과 함께한 이스라엘' 이라고 기록. 즉 제사의 주체가 왕이고 백성들은 다만 왕의 제사에 함께 동참한 존재처럼만 묘사되어 있는 것.
신정 왕국에서
왕은 이스라엘을 공동체를 대표하는 자일 뿐 이방의 왕처럼 백성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었다(삼상 9:16). 더욱이 예배자로 섰을 때 왕과 백성은 하나님 앞에서 동등하다. 따라서 본제사에서 왕 뿐만 아니라 백성들도 제사의 주체로서 참여하고 있는 것. 본문은 이와 같은 신학적 입장을 반영하기 위해서, 역대기 저자가 열왕기서를 참고 하면서 수정하여 기록한 것이다.
‘여호와 앞에 희생제사를 드렸다.
본서 저자는 본절에서 그 동안 수동적으로 성전 낙성식에 참여하던 백성들이, 솔로몬과 함께 자발적으로 제사를 드렸다.
5절, 솔로몬 왕이 드린 제물이 소가 .. 양이 .. 이와 같이 .. 하나님의 전의 낙성식을 행하니라
⇒엄청 난 양의 화목 제물이 바쳐진 사설을 통해서 성전 낙성식어 국가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행사였는지 를 암시 받을 수 있다.
📌 왕상8:63 강해,
“화목제”의 희생을 드림
화목제
‘평안하다’, ‘마치다’, ‘갚다’, ‘형통하다’ 라는 뜻을 가진 단어(솰람)에서 유래.
‘감사제’ (겔 43:27), ‘서원제’ (레 22:18), ‘낙헌제’ (레 22:18)로 나누어짐.
감사제는 말 그대로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는 제사,
서원제는 하나님께 맹세한 바 서원을 갚는다는 의미에서 드린 제사,
낙헌제는 하나님께 자원하여 드리는 제사.
화목제의 종류에 관해 성경상 이러한 구분이 있으나 사실상의 엄격한 구분은 어려우며 복합적 의미로 드리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이러한 화목제는 제사드리는 자의 형편에 따라 수소나 암소, 숫양이나 암양, 염소 모두를 제물로 드릴 수 있었다(레 3:1.6,12), 이 제사에서 기름 부위는 제단 위에서 태워졌으나 하나님께 불태워 바친 부분과 제사장의 몫 외의 나머지 부분은 경배자들에게 돌려졌다(레 7:15-18).
화목제에 드려진 희생 제물의 수효
→ ‘소 2만2천’, ‘양 12만’
혹자는 그 제물의 양이 엄청난 것에 대해 그 수가 과장되었거나 사본상의 오류가 있었다고 보기도 한다 (Thenius). 하지만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본문과 같은 제물의 수효는 가능한 숫자이다. 우선 본문과 병행구절인 대하 7:5에서도 본절의 제물의 숫자와 동일한 숫자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 시기 이전 다윗 당시에 30세 이상으로 제물을 취급할 수 있었던 레위인이 38, 000여 명이었고(대상 23:3)제사장도 2-3천 명에 달한 것을 감안할 때 다윗 시대보다 더 큰 번영과 평화를 누리고 있던 솔로몬 당시 이 숫자보다 더 많은 레위인과 제사장들이 섬기고 있었다고 보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무엇보다 이같은 제사장의 수는 차치하고 율법상 제사 의식에서 제물을 잡는 자는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아니라 제사에 참여하는 자라는 것을 감안한다면(레 1:3-5) 문제를 이해하는 핵심은 제사장의 숫자나 레위인의 숫자에 있지 않다. 실상 제사장들은 오직 피를 제단에 뿌리는 순서를 집 전하는 일만 하면 된다. 그러므로 문제는 제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규모에 있었다.
제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규모
이와 관련해 본문의 설명은,
제사에 참여한 이스라엘 회중이 ‘하맛 어귀에서 애굽의 하수까지’에 이르는 이스라엘 전지역에서 모였다는 언급(65절)을 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원래의 번제단으로는 제물을 감당할 수 없어서 성전 앞뜰을 구별해서 사용할 정도였다는 언급(64절)을 하고 있다.
이같은 본장 후미의 기록은 본장의 서두인 5절에서 백성들이 드린 제물의 규모로 소개되는 ‘그 수가 많아 기록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었더라’ 와 문맥상 수미상관적 호응을 이루고 있다. 이는 이스라엘의 절기와 관련해 볼 때에도 무리가 아니다. 당시 성전 낙성식과 장막절이 연속되는 이 시기에 백성의 대다수가 각지에서 모여 각자 준비한 제물을 바쳤다는 사실은 결코 이상할 것이 없다.
뿐만 아니라 정규적인 유월절 의식 때에도 이십오만 마리의 양이 두세 시간 내에 제물로 드려졌다는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의 기록을 참고해 보더라도 서전 봉헌식과 같은 역사적 대사건에 이토록 대규모의 희생 제물들이 바쳐졌다는 사실은 하등에 이상할 것이 없다(Keil). 한편 요세푸스는 이같은 사실과 관련해 네로 시대 예루살렘에서 행해진 유월절 제사에 희생 제물을 256.000마리 이상을 잡았지만 그 당시의 제사장 숫자는 솔로몬 시대에 비교해 오히려 적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화목제사를 드리고 곧이어 낙성식을 거행했음
제물이 매우 많았으므로, 제단 위에 다 놓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어떤 것들은(그 피는 모두 제단에 뿌려졌으리라고 우리가 상상할 수 있을지라도) 되돌려져야 했고 번제물의 고기와 화목제의 기름은 "뜰 한가운데" 에서 태워졌다(7절). 그 앞뜰은 솔로몬이 그 일을 목적으로 거룩히 구별해 두었거나 그 일 때문에 거룩히 구별되었을 것이다. 필요한 경우라면 도로가 제단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7절, 여호와의 전 앞에 설치된 놋단만으로는 당시 드려전 엄청난 양의제물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취해진 조치
병행구절과의 비교,
왕상8:64 — ‘여호와의 앞 놋단이 작으므로’ 라고 기록되어 있음.
대하 4:1의 보도에 따르면 단의 크기가 가로, 세로 모두 20규빗 즉 9.12m 정도 되어 상당히 컸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열왕기서 저자는 그 드려진 제사의 규모가 매우 거대했옴을 강조하기 위해서 상대적으로 놋단이 작았다고 과장해서 표현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역대기 — ‘작은’ 이라는 말을 생략.
역대기 저자는 열왕기서의 ‘작은'이란 말을 생략하고 솔로몬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린 제사가 그만큼 성대하였옴을 보다 강조하고 있다.
📌 왕상 8:64 강해,
감사의 원리: 풍부하고 풍성하게 표현함. 하나님의 역사를 더욱 기대하며 소망함.
성전 낙성식에서 번제, 소제, 감사제의 기름을 드림
번제: 제물 전체를 불살라 그 향기를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제사.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충성 및 헌신(레9:12-14,16)
소제: 곡물로 제물을 삼는 제사. 번제나 화목제를 드릴 때 기름, 유향, 소금 등을 섞어 불살라 드린 것으로, 하나님께 대한 순수한 희생적 봉사를 상징(레7:12).
감사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 드리는 제사로서 화목제의 한 종류.
화목제에는 감사제(겔43:27) 서원제(레22:18) 낙헌제(레22:18) → 산제사로서 삶의 제사를 드리는 원리. 종교심으로 믿으면 구원얻지 못한다. 성도는 믿음으로 산다.
성전 낙성식, 절기, 안식: 안식을 누리려면 헌신된 섬기는 믿음들이 나와야 한다.
3. 제사장들은 자기들의 역할을 했다. 그들은 각자 자기들의 직분을 수행했다.
노래 부르는 자들과 악기 다루는 자들은, 다윗이 만든 악기와 "다윗이 그들 손에 넘겨 준 찬송가" (혹자들은 대상 16:7 을 그렇게 읽는다)를 가지고(또는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것처럼) "다윗왕이 레위 사람으로 여호와를 찬송하려고 만든" 악기를 가지고 자기들의 임무를 수행했다. 솔로몬은 그들을 시켜 하나님을 찬송하는 이 일을 하게 했고, 또 그 일을 지도하며 격려했다. 그러므로 그들의 일이 솔로몬의 행위처럼 인정되었다. 그리고 그가 "레위 사람으로 찬송하게 했다" 고 적혀있다.
💡 6절, 그 때에 제사장들은 직분대로 모셔 서고 레위 사람도 여호와의 악기를 가지고 섰으니 이 악기는 전에 다윗 왕이 레위 사람들에게 여호와께 감사하게 하려고 만들어서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을 찬송하게 하던 것이라 제사장들은 무리 앞에서 나팔을 불고 온 이스라엘은 서 있더라
(열왕기 병행 문단에 기록되지 않은 내용 → 본서 저자의 제사장적 관점에 비롯된 첨가)
‘때에 제사장들은 직분대로 모셔 서고’
► 잘 정돈된, 하나된 모습
직분 : 그들이 봉사상의 직무.
‘직분대로 모셔 서고’
본문은 당시 제사장들이 직임에 참여하는 시기에 따른 각자의 반열대로 가지런히 서 있는 모습을 나타낸다. 당시 제사장들은 24반열로 반차가 나누어져 있었으며 각 제사장들은 정해진 반차에 따라 성전에 나와 봉사하였다. 따라서 본문의 표현은 성전 낙성 제사에 있어서 이들 제사장들이 각자가 속한 반열에 따라 질서 정연하게 도열하였음을 보여준다.
➤ 본문에 나타난 이러한 제사장들의 잘 정돈된 하나된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와 관련해 혹자는 어떤 의미에서 제사장들이 드렸던 수많은 제물보다, 그들의 하나된 모습을 하나님이 더 기뻐하셨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레위 사람도 여호와의 악기를 가지고 섰으니’
5:12,13에 따르면 레위 사람이 들고 있었던 악기에 ‘제금, 비파, 수금, 나팔' 등이 있었던 것으로 소개된다. 또한 본절에 따르면 이러한 악기들은 다윗이 레위 사람으로 하여금 여호와를 찬양하도록 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대상 15:16).
역대기 기자는 열왕기 기자가 언급하지 않았던 내용인 제사장들의 도열 장면이나 레위인 찬양단에 대한 설명 그리고 연주 광경 등을 묘사함.
이는 본서가 성전을 중심한 제사의식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제사장적 관점의 기록임을 잘 보여준다. 본서 기자는 바벨론 포수에서 돌아와 선민 신정 국가를 재건해야 할 사명을 지닌 본서의 일차 독자들에게 여호와 임재의 상징적 처소인 성전을 중심한 신앙 회복을 독려하기 위하여 특별히 성전 제의와 관련된 내용을 소상하게 기록하였던 것.
4. 온 백성들은 가장 큰 기쁨과 지극한 만족감을 표했다.
그들은 제2일부터 제9일까지 칠일간 낙성식의 절기를 지켰다. 제10일은 속죄일이므로, 그들은 죄에 대해 괴로워해야 했다. 또한 이러한 일들이 그들의 즐거움 중에 있어야 했다는 것이 불합리한 일은 아니었다. 제15일에는 초막절이 시작되어 22일까지 계속되었으므로, 그들은 제23일까지는 헤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와 교제를 나누는 데에 시간을 아껴서는 안 되며, 그것을 길게 생각하거나 지루하게 여겨서도 안 된다.
💡 8절, 7일 동안 절기를 지켰음 (성전 낙성식 → 장막절 준수)
▶︎ 절기 준수의 기간에 대하여
병행구절과의 비교
본문에 7일 동안 절기틀 지킨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병행 구절인 왕상 8:65에는 14일 동안 절기를 지켰다고 되어 있다. 열왕기서의 14일은 성전 낙성식 기간에 장막절 기간까지 포함된 기간인 반면 본문은 장막절 기간만을 나타내는 표현.
이러한 본문을 9절과 조화시켜 이해하면, 7월 8일부터 14일까지 7일 동안 먼저 성전 낙성식을 행하고 → 7월 15일부터 7일동안 다시 장막절을 지켰던 것(Dillard).
왜냐하면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장막절은 7월 15일에 시작하여 일주일 동안 지키고 제팔일에는 성회로 모이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레 23;23-36).
이스라엘의 대속죄일은 7월 10일(레 16:29-34). 그렇다던 대속죄일은 낙성식 기간에 있었던 것.
→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 낙성식(7월 8-14일)과 ⇒ 대속죄일(7월 10일) ⇒ 그리고 장막절(7월 15-22일)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7월의 거의 절반 가량을 예루살렘에 머물면서 축제에 참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맛 어귀에서부터 애굽 하수까지의’
► 온 이스라엘의 참여하는 모습
이스라엘의 전지역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성전 낙성 제사와 장막절 행사에 대규모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참여했음을 나타낸다. 한편 본문에 소개된 두 지명은, ⇒ 율법에 약속된 바 이스라엘이 차지할 땅의 남북 경계를 나타낸다(대상 13:5). (하맛-북쪽 경계, 애굽 하수-남쪽 경계)
➤ 이같은 지명 표기와 더불어 성전 낙성식이 거행된 사실에 대한 보도는 — 하나님의 언약이 얼마나 신실하고 완전하게 이루어졌는가를 전달해준다.
💡 9-10절 : 이스라엘 백성의 장막절 절기 준수 및 성회의 폐막
9절, 여덟째 날에 무리가 한 성회를 여니라 제단의 낙성식을 칠 일 동안 행한 후 이 절기를 칠 일 동안 지키니라
여덟째 날 : 7월 15일~ 7월 22일까지 7일 간의 장막절기가 끝난 다음날인 1 월 23일을 가리킴.
장막절 = 초막절. (레23:36, 민29:12)
‘제단의 낙성식을 행함’
▶︎ 낙성식이란?
신 20:5에 의하면 새 집을 짓고도 낙성식을 행한 것으로 나온다.
따라서 낙성식은 — 마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듯이(출 23:19), 처음 지어진 건축물이나 축조물을 사용하기 전에 하나님께 바치는 행사임을 알 수 있다.
제단의 낙성식은 ⇒ 번제단을 처음으로 하나님께 바친다는 의미가 있음.
(참고) 5절의 ‘성전의 낙성식' 과 다른 행사인가?
’성전의 낙성식'과 ‘제단의 낙성식'이 따로 있었던 것은 아니다. 7일 동안 진행된 제단의 낙성식은 사실은 성전의 낙성식이다. 다만 성전 낙성식을 거행하면서 제물을 번제단에 드려 번제단을 처음 사용하였기에 본절에서는 ‘제단의 낙성식'이라 부른 것이다.
10절, 일곱째 달 제이십삼일에 왕이 백성을 그들의 장막으로 돌려보내매 백성이 여호와께서 다윗과 솔로몬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은혜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마음에 즐거워하였더라
⇒ 하나님께서 다윗과 솔로몬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푸신 은혜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
‘다윗과 솔로몬과 그 백성 이스라엘들에게’ 베푸신 은혜 …
► 여호와께서 은혜를 베푸신 대상
병행구절 왕상8:66 — ‘그 종 다윗과 그 백성 이스라엘에게’
→ 역대기 기자는 ‘다윗과 솔로몬’ 이라 기록.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고 대측제를 벌인 뒤에 백성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던 것처럼(대상 16:13-43), 솔로몬도 성전 낙성식과 장막절을 마치고 백성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있다. 역대기 저자는 이와 같이 다윗과 솔로몬을 유사한 사건으로 나란히 병치시키는 것을 통해, 이 두 인물을 이상적인 언약의 왕들로 묘사한다.
‘은혜를 말미암아’ ‘기뻐하며’ ‘마음에 즐거워하였더라’
► 백성들이 누린 기쁨과 즐거움의 근원
은혜(핫토바) , 즐거워하였더라’(웨토베)
⇒ 두 단어의 어근은 모두 ‘선하다’는 의미의 ‘토브’.
➤ 이 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린 줄거움은 다윗 왕조와 이스라엘을 향하신 여호와의 선하신 은혜에서 비롯된 것.
📌 왕상8:66 강해,
‘그 종 다윗과 … 모든 은혜(’핫토바’)를 인하여’
⇒ 성전 봉헌식을 마무리짓는 본절에서 성전 건축의 당사자였던 솔로몬 대신에 이미 오래 전에 죽은 다윗이 ‘하나님의 종’인 동시에 ‘은혜의 수혜자’로 언급되고 있다.
이는 성전 건축이 솔로몬 왕의 위업이 아니라 오히려 다윗 왕에게 주어진 언약의 성취이며, 실질적 성전 건축자는 솔로몬이 아니라 다윗임을 나타낸다. 솔로몬은 다만 다윗의 계획과 이상을 실행에 옮기는 역할을 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저자는 백성들의 생각을 빌려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은혜(’핫토바’) : ‘그 선한 것’
구체적으로 어떤 은혜인가? → 하나님이 다윗과의 언약을 성취하심으로 성전 건축을 허락하시고 그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거하시는 은혜를 뜻함. → 이 단어는 66절에서 또한 ‘즐겁다’ 라는 의미로 번역됨.
기뻐하며(세메헴) 마음에 즐거워하였더라
▶︎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
기뻐하며:
4:20에서 태평 성대를 누리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등장한 단어.
→ 이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 봉헌식을 마치는 시점에서 마치 태평 성대를 누리는 것과 같은 기쁨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마음에 즐거워하였더라:
직역하면 ‘마음이 선하다’
→ 백성들의 즐거움이 막연한 것이 아닌 앞의 본문의 결과, 즉 하나님이 다윗과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선한 것(은혜)’에 대한 결과임을 나타낸다.
‘마음’
성경에서 ‘마음’을 뜻하는 명사 ‘레브’는 감춰져 있는 고요한 인간의 내적 감정만을 뜻하지 않는다.
→ 이는 오히려 지·정·의를 모두 포괄하는 인간의 전인격을 가리킨다. 따라서 본문은 이들이 놀라운 기쁨을 가슴 뿐 아니라 춤과 노래와 잔치의 흥겨움 등과 같은 모든 측면에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성전 봉헌식에 대한 결론적 평가에 해당하는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 민족 전체와 왕에게 하나님의 큰 축복이 임하였음을 깨닫고 → 이를 매우 기뻐하여 흥겨움과 즐거움에 넘쳐 집으로 돌아갔음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