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10월 2일 월요일 묵상구절 대하17:1-9 <여호사밧이 유다의 왕이 되다>

Jeehyun 2023. 10. 4. 18:40

맥체인성경읽기

사무엘하 14, 고린도후서 7, 에스겔 21, 시편 68

묵상구절

1 아사의 아들 여호사밧이 대신하여 왕이 되어 스스로 강하게 하여 이스라엘을 방어하되

2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또 유다 땅과 그의 아버지 아사가 정복한 에브라임 성읍들에 영문을 두었더라

3 여호와께서 여호사밧과 함께 하셨으니 이는 그가 그의 조상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여 바알들에게 구하지 아니하고

4 오직 그의 아버지의 하나님께 구하며 그의 계명을 행하고 이스라엘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라

5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나라를 그의 손에서 견고하게 하시매 유다 무리가 여호사밧에게 예물을 드렸으므로 그가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더라

6 그가 전심으로 여호와의 길을 걸어 산당들과 아세라 목상들도 유다에서 제거하였더라

7 그가 왕위에 있은 지 삼 년에 그의 방백들 벤하일과 오바댜와 스가랴와 느다넬과 미가야를 보내어 유다 여러 성읍에 가서 가르치게 하고

8 또 그들과 함께 레위 사람 스마야와 느다냐와 스바댜와 아사헬과 스미라못과 여호나단과 아도니야와 도비야와 도바도니야 등 레위 사람들을 보내고 또 저희와 함께 제사장 엘리사마와 여호람을 보내었더니

9 그들이 여호와의 율법책을 가지고 유다에서 가르치되 그 모든 유다 성읍들로 두루 다니며 백성들을 가르쳤더라

매튜헨리/옥스퍼드

▶스페셜포인트

17-20장 개관

  • 남북 분열 왕국 가운데 다윗 언약을 계승한 왕조인 남유다 왕국의 20대 왕의 통치를 중심으로 하여 선민의 역사를 다루는 역대하 제2부 10-36장의 연속 부분.
  • 남유다 제2,3대 왕인 아비야와 아사의 통치에 대하여 다루는 제13-16장에 이어 남유다, 제4대 왕인 여호사밧의 통치에 대하여 다룬다.

이를 개관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1. 17:1-19 문단
    • 여호사밧의 종교 개혁과 그의 시대의 남유다의 번영에 대하여.
  2. 18:1-19:3 — 세 문단.
    • 여호사밧의 북이스라엘 아합과의 동맹과 길르앗 라못 전쟁과 관련한 기사.
    1) 18:1-11
    • 길르앗 라못 수복을 위한 여호사밧과 아합 간의 남북 연합군 결성과 북이스라엘 거짓 선지자들의 남북 연합군 승리 예언에 대하여,
    2) 18:12-27
    • 참 선지자 미가야의 아합 왕 전사 예언과 아합 왕의 미가야 박해에 대하여,
    3) 18:28-19:3
    • 아합 왕의 전사와 여호사밧 왕을 향한 선지자 예후의 남북 동맹 책망에 대하여 다룬다.
  3. 19:4-11
    • 여호사밧 왕의 내치 주력과 사법 제도 정비에 대하여.
  4. 20:1-30 — 세 문단
    • 모압, 암몬, 세일 연합군의 남유다 침공 관련 기사.
    1) 1-13절
    • 모압, 암몬, 세일 연합군의 남유다 침공과 그로 말미암은 전유다 및 여호사밧 왕의 금식 기도에 대하여,
    2) 14-19절
    • 야하시엘의 남유다 승러 예언과 남유다 백성들의 감사 찬양에 대하여,
    3) 20-30절
    • 모압 연합군의 자중지란에 의한 남유다의 승리와 이후의 태평 성대에 대하여.
  5. 20:31-37
    • 여호사밧의 통치에 대한 평가와 북이스라엘 아하시야 왕과의 해상 무역 동맹 실패에 대하여 다룬다.

여호사밧 왕의 종교 개혁

  • 여호사밧은 B.C. 872년에 즉위하여 848년까지 25년간 남유다를 다스렸다.
  • 그는 즉위하자 다윗과 아비 아사의 경건할 때의 행위를 본받아 행하였다.
  • 특별히 그는 아사의 말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쇠퇴한 여호와 신앙을 회복하기 위하여
  • 전격적으로 종교 개혁을 단행하였다.

여호사밧은 두 가지 측면에서 종교 개혁을 실시하였는데,

  1. 소극적, 외형적으로는
    • 그 자신이 우상을 숭배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였으며,
    • 산당과 아세라 우상 등을 유다 내에서 제거하였다.
  2. 적극적, 내면적으로는
    • 대국민을 상대로 율법 교육을 시행하였다.
    그가 이처럼 국민을 상대로 율법 교육을 실시한 것은
    • 남유다가 진정으로 개혁되기 위해서는,
      • 우상이나 산당을 제거하는 것으로만 그쳐서는 안되고
      •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1) 알아 2) 마음 중심으로부터 행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러한 여호사밧의 개혁 조치는

  1. 남유다에 영적 부흥을 가져왔고
  2. 외형적으로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된 이후로 최고의 번성기를 맞게 하였다.

 

여호사밧의 아합 동맹

여호사밧 시대의 군사 규모

  • 17:14 이하에 보면 여호사밧 시대의 남유다의 군사 규모가 기록되어 있는데 무려 116만 명에 달하였다. 이는 다윗 시대 군사의 수인 130만 명에 육박하는 수치로 여호사밧 시대 남유다가 그만큼 강성하게 되었음을 시사해준다.

아합과의 동맹이 잘못인 이유

그러나 남유다의 선한 왕으로 평가받는 왕들이 그러하듯이 여호사밧에게도 긍정적인 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의 가장 치명적인 실수는

  • 북이스라엘의 왕들 가운데 가장 악한 왕으로 평가를 받는 아합과 결혼 동맹을 맺음으로써
  • 악한 자를 돕고,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였다는 것(19:2)이다.

물론 여호사밧이 아합과 동맹을 맺은 것은 주번 강대국들의 위협에 대하여 민족적인 차원에서 공동으로 대처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아합이 —우상 숭배를 통해 하나님을 미워하고 대적하는 자였다는 점에서

  • 여호사밧이 아합과 동맹을 맺은 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지 않고 악한 자와 연합한 것이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길르앗 라못 전쟁과 예후의 책망

역대기 기자는 여호사밧이 악한 자를 도운 대표적인 실례

  • 아합과 더불어 길르앗 라못 전쟁에 나선 사실을 제시하고 있다.
  • 길르앗 라못 전쟁은 약속의 땅을 희복하고 선민의 위협 요소를 제거하기 위한 것이라는 명분이 있기는 하였으나,
  • 악한 자를 돕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여호사밧은 큰 잘못을 범한 것이었다.

결국 이 전쟁에서 아합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전사하고,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간신히 생명을 보존하여 귀환하게 된다.

그러나 그 역시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 예후로부터

  • 준엄한 책망과 함께
  • 하나님의 진노가 그에게 임할 것이라는 경고를 듣게 된다.

그리고 이 예후의 경고는

  • 가깝게는 그의 시대에
    • 모압, 암몬, 세일 연합군의 침공으로(20:1-30),
  • 멀게는 그의 사후 약 10년 후에
    • 여호람의 아내이자 북왕국 아합과 이세벨의 딸인 아달랴에 의해 일시적이나마 다윗 왕조의 왕권이 찬탈을 당하고 다윗 왕조의 씨가 완전히 진멸될 위기에 처함으로 성취된다(22:10-12).

 

예후의 책망과 경고에 대한 여호사밧의 반응

그러나 여호사밧은 예후로부터 책망과 경고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 그 아비 아사가 자신의 불신앙적인 처사를 책망하고 경고하는 선지자와 백성들을 핍박한 것과는 달리,
  • 하나님 앞에서 겸비한 마음을 갖고 더욱 개혁에 박차를 가하는 것은 물론,
  • 모압 연합군의 침공 앞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여 구하는 신앙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리하여 비록 그의 사후에 예후의 경고대로 재앙이 임하기는 하지만, 그의 대에서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모압 연합군을 격퇴하는 등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된다.


결론

우리는 이상의 내용에서 다음과 같은 진리들을 확인하게 된다.

  1. 첫째, 여호사밧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서 종교 개혁을 단행하여 하나님 보시기에 선을 행하였을 때 — 크게 부강하게 된 사실을 통해
    • 하나님은 당신께 충성하는 자에게 축복과 은혜를 베푸신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2. 둘째, 여호사밧이 악한 자와 연합하였을 때 극심한 위기와 하나님의 심판 경고를 들은 사실을 통해
    • 두 마음을 품은 자들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고,
      • 그로 인하여 삶의 위기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3. 셋째, 하나님께서 여호사밧이 그릇 행하였을 때 그를 엄히 징계하면서도 다윗 언약에 따라 그와 다윗 왕조를 버리지 않은 사실을 통해
    •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신실하심을 깨달을 수 있다.
  4. 마지막으로 넷째는 회개와 기도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
    • 앞서 살펴 볼 수 있었듯이 하나님께서는 여호사밧의 잘못에 대한 징계로 모압 연합군으로 하여금 유다를 침공토록 하였다.
    • 그러나 여호사밧과 백성들이 회개하며 당신께 일심으로 기도하자 —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해 주셨다.

이 모든 내용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 자기 백성이 잘못을 범하면필히 징계하시나,
  • 그들이 잘못을 회개하고 부르짖으면 — 다시 회복시키시고 은혜를 베푸신다는 진리를 확인하게 된다.

●여호사밧의 즉위(역대하 17:1-9)

❖ 서론

💡 본장부터 20장까지는 제4대 왕 여호사밧(B.C. 872-848년)의 행적을 다룬다.

이처럼 여호사밧의 행적은 — 전체 4장 101절에 걸쳐 길게 기술되고 있다.

이는 남유다의 왕 가운데 제13대 왕 히스기야에 대하여 117절이 기록된 것 다음으로 많은 분량. 이는 여호사밧의 행적이 짧게 기록되었을 뿐 아니라 북왕국 제7대 왕 아합과 관련하여 부수적으로 언급된 열왕기서와는 큰 차이를 나타낸다.

본서 저자가 여호사밧에 대하여 이처럼 길게 기록하는 이유

→ 그의 삶이 본서의 일차 독자들에게 줄 수 있는 교훈이 그만큼 크기 때문.

즉 여호사밧은 제3대 왕 아사나 제13대 왕 히스기야 그리고 제16대 왕 요시야와 더불어 남유다의 대표적인 선한 왕으로 평가될 뿐 아니라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할 때에는 형통하는(20:20) 반면, 여호와보다 인간을 더 신뢰할 때에는 해를 받게 된다는 진리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삶을 살았다.

본서 저자는 이러한 여호사밧의 삶의 모습을 자세하게 기록함으로써 → 여호와를 신뢰하는 것만이 개인과 선민 이스라엘 공동체를 성공과 번영으로 이끄는 길임을 역설하고 있는 것.

역대기 저자는 그에 대하여 총 4장, 101절에 걸쳐 길게 기록하였다.
이 중에서 본장(17장)은 여호사밧이 즉위하여 총체적이고 근본적인 종교 개혁을 일으켰고, 그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으로 나라가 군사적으로 강성해진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의 본장에도 여호와께 순종하면 축복과 평안이, 반대로 불순종하면 저주와 고통이 주어진다는 성경의 삶의 원 리가 짙게 배어 있다. 

❖ 1-2절 : 여호사밧이 자주 국방 체제를 강화하였음

이 문단에서 우리가 여호사밧에게서 찾아 볼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Ⅰ. 그가 얼마나 현군이었는가 하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왕위에 오르자 마자 "스스로를 강하게 하여 이스라엘을 방비하였다" (1절).

활동적이고 호전적 군주였던 아합이 이스라엘의 왕위에 있는지 3년이 되었었고, 자기의 통치 초기에 보였던 아합의 왕성한 정력은 아사왕의 쇠퇴한 종말과 마찬가지로 이제 몰락하고 있었다. 이스라엘 왕국은 최근만 해도 유다 왕국의 기반을 뒤흔들면서 유다에게는 무서운 존재로 발전해 나가기 시작하였던 것 같다. 그래서 여호사밧이 등극 후 제일 먼저 착수해야만 될 일은 바로 그 문제에 대해 적절한 대치를 하며 이스라엘 왕의 비대를 견제하는 것이었다. 또 실제로 여호사밧은 이 일을 너무나 효과적으로 유혈 사건이 없이도 잘 수행해 냈다. 아합 왕은 즉시 동맹국 유다에게 환심을 사려했다. 그래서 그가 여호사밧에게 아무런 방해를 끼치지는 않았으나 적국으로 있는 것보다 더 위험스런 우방이 되었던 것이다. 여호사밧은 스스로를 강하게 하되, 이스라엘에 대하여 공격적으로 작전을 취하지 아니하고 단지 자기 세력을 유지하고자 하였을 따름이다. 곧 그는 자기 나라의 일선 지방에 위치한 성읍들을 강화시키며 자기가 장악하고 있던 에브라임 지역에다 전보다 더 강력한 수비대를 투입하였던 것이다(2절). 그는 부왕 아사처럼 수리아 왕과 동맹을 맺어서 국력을 강화시키지 않고, 오직 공명정대하고도 정규적 방법, 곧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할 수 있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그런 방책을 강구하여서 국력을 신장했다.

Ⅱ. 그는 얼마나 선한 인간이었던가! 여기서 말하는 그의 비범한 특성은 다음과 같다.

1. "그는 그 조상 다윗의 길로 행하였다."

열왕들의 성격 중에서 다윗의 인품은 열왕기 상 15장 3, 11절과 열왕기 하 14장 13절, 16장 2절, 18장 3절에서처럼 표준으로 삼는다. 그러나 그 처음의 길과 나중의 행적 간에 다윗만큼 확연히 구별지어진 사람도 또 없다. 왜냐하면 그의 나중 길은 처음의 길보다 선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가 우리야의 문제로 인하여 그토록 크게 실수하기까지는(오랜 후에 그의 명예에 있어서 한 오점으로 언급된다. 왕상 15:5) 그의 길들은 선량한 길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그가 그 타락에서 회생하였다고는 하지만, 아마도 그는 여생 중에 우리야의 문제로 인해 상실한 위로와 영적인 힘을 다시 완전히 만회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여호사밧은 다윗이 하나님을 따랐던 것만 본따서 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도 바울도 한계를 그어 놓고 자기를 본받으라 했다(고전 11:1). "너희는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듯이 나를 따르되" 그 이상 달리지는 말라.

많은 선량한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처음 경험한 처음의 길이 최선의 길이며, 처음 사랑이 가장 강력했던 사랑이었음을 체험한다. 또한 우리가 무엇을 베껴 쓰려할 때는 주로 제일 좋은 것을 골라서 그것을 보고 베끼려 한다.

본문 중의 말은 달리 해독될 수도 있다. 즉 이런 뜻으로 된다. "그는 그 조상 다윗의 길, 즉 처음의 길 옛 길로 행하였더라."

그는 최근에 부패된 왕정이 아니라 순결한 시대, 곧 그 왕가의 초기 시대를 모범으로 삼고자 하였던 것이다(렘 6:16 참조).

70인역은 다윗이란 단어를 생략해 버리고 있다. 따라서 본문은 아사왕을 가리키게 된다. "그는 자기 아버지의 처음 길로 행하였다." 그래서 그는 자기 아버지의 말년에 있었던 실정은 본받지 않았다. 아무리 선량한 자들을 따라가더라도 신중을 기하는 것이 좋은 일이니, 우리가 그들을 따르다가 길을 잘못들까 함이다.

💡 17:1 아사의 아들 여호사밧이 대신하여 왕이 되어 스스로 강하게 하여 이스라엘을 방어하되

여호사밧

이름 뜻 : ‘여호와께서 심판하신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의 모범을 충실히 따라 우상을 타파하고 하나님을 찾았으며, 백성들에게 체계적으로 율법 교육을 행하였다.  그가 비록 북이스라엘 왕 아합과 연혼하고(18:1) 그를 원조함으로써 선지자의 책망을 받기는 하였지만(19:2), 일평생 여호와를 향한 신앙의 열정이 식지 않았으며 여호와 앞에 정직히 행하였다(20:32).

‘스스로 강하게 하여 이스라엘을 방어하되’ — 자주 국방 강화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을 대항하여 스스로를 강하게 하였다(KJV, and strengthened himself against Israel)’
이스라엘 = 남유다와 대치하고 있는 북이스라엘을 지칭.
북이스라엘은 분단 이후 지속적으로 유다에 위협적인 존재였으며, 여호사밧의 부친 아사 왕 통치 때에도 라마를 침략한 적이 있었다(16:1). ⇒ 따라서 여호사밧은 북이스라엘로부터 남유다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군사적 방어 체제를 구축하였다.

‘스스로 강하게 하여..’
(원형은) 매우 강하고 견고한 것을 나타내는 단어. 본문에서는 (재귀형으로) 사용되어 스스로의 힘으로 스스로를 강하게 하였다는 의미.
💡 17:2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또 유다 땅과 그의 아버지 아사가 정복한 에브라임 성읍들에 영문을 두었더라

남유다의 방어 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여호사밧 의 첫번째 정책
= 요새화된 모든 성읍들에 군대를 배처하는 것.

‘견고한’ 성읍
성벽으로 둘러싸여 사람들의 접근이 어려운 요새화된 성읍들.

군대 (’하일’)
하일 = ‘힘’이라는 포괄적 의미.
요새화된 성읍들 안에 힘을 둔다는 것은 군사들 뿐만 아니라 무기까지 배치하여 그 성읍들을 철통 방어 태세로 만든다는 것을 의미함.

‘그의 아버지 아사가 정복한 에브라임 성읍들’
실제로 그 성읍들을 취한 자는 제2대 왕 아비야.
3년밖에 통치하지 못해서 그 성읍들을 요새화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 성읍들의 요새화 및 체계적 관리는 아사 왕의 몫이었다(15:8). 이러한 측면을 고려하여 본서의 저자는 본절에서 에브라임 성읍들을 아사가 취하였다고 기록한 것이다.

❖ 3-6절 : 여호사밧의 신실한 믿음과 이로 인한 남유다 왕국의 축복과 번영

2. 그는 "바알들에게 구하지 않고 자기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였다" (3, 4절).

그 당시 인근 열방들은 바알을 저들의 신으로 삼고 있었으니, 이 민족에게는 한 바알이 저 민족에게는 다른 바알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두를 다 미워했고, 그들과는 상관하지 않았다. 그는 그의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배하였고, 그에게만 기도하였고, 그에게만 물었던 것이다.
그는 하나님을 구하는 데 있어서 기도하는 일과 묻는 일 두 가지 다를 포함시켰다.

💡 17:3 여호와께서 여호사밧과 함께 하셨으니 이는 그가 그의 조상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여 바알들에게 구하지 아니하고

본서의 저자는 여호사밧이 다스리는 남유다가 견고해진 것을 — 여호와께서 여호사밧과 함께하시는 증거로 보았다.

‘그가 그의 조상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여’
일부 히브리어 사본은 ‘다윗’ 이라는 단어를 번역하지 않았음.
여기서 다윗의 처음 길 = 1) 다윗, 2) 아사 왕

‘바알들에게 구하지 아니하고’
바알들
1.여러 지방에 흩어져 있는 여러 바알 신상들
2.베니게의 신 바알을 강조하는 의미
3.바알을 비롯한 모든 우상들

바알
문자적으로 바알은 ‘주인' 이라는 의미로서 베니게와 고대 가나안 땅에서 풍요의 신으로 숭배되었었다. 가나안에서 바알은 모든 신들 중 가장 강력한 신으로 추앙받았으며, 농경 문화권에 속한 당시 사람들은 겨울의 죽음의 신을 물리치고 봄에 비를 뿌려 준다고 여겨 바알을 최우선적으로 숭배하였었다. 심지어 유일신 여호와를 믿고 섬기는 이스라엘 사람들도, 그들의 영향으로 바알을 찾아 섬기는 일이 허다하였다.

본서의 저자는 여호사밧 왕이 당시의 관행을 좋아 바알을 찾지 아니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구한 것을 — 포로기 후대 공동체가 본받아 야 할 신앙의 모델로 제시하고 있다.
💡 17:4 오직 그의 아버지의 하나님께 구하며 그의 계명을 행하고

‘오직 그의 아버지의 하나님께 구하며’
‘하나님’
70인역은 본문의 ‘하나님’을 ‘주 하나님’(Lord the God)’ 이란 뜻을 갖는 ‘퀴리온 데온’ 으로 번역하였고,
NJB 역시 이와 비숫하게 ‘여호와 하나님'이란 뜻을 갖는 ‘Yahweh, the God'으로 번역하였다.

⇒ 이러한 번역이 강조하는 바
바알과 하나님을 대조하는 과정에서, 유다가 따라야 할 진정한 주인이 바알이 아닌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임과 동시에 여호사밧의 부친 아사가 구한 대상이 — ‘하나님 여호와’ 로 진술되어 있는 것(14:4.7.11 ; 15:4.12.15)과 균형을 맞추기 위함이기도 하다.

여호사밧이 하나님께 구했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그 마음에 항상 하나님을 갈망하며,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발생하였을 때에는 그에게 기도하였다는 의미이다.

3. 그는 "하나님의 계명 안에서 행하였다."

그는 참 하나님을 경배하였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규례에 따라 그를 경배하였고, "이스라엘의 행위를 좇지 아니하였다" (4절).

비록 이스라엘 왕이 그의 이웃인 동시 동맹군이었을지라도 여호사밧은 이스라엘의 길을 배우지 아니하였다. 그가 세속사에 있어서는 이스라엘 왕과 더불어 어떠한 거래라도 하였으나, 종교에 관한 한 이스라엘 왕과 교제하고자 아니 하였고 그에게 응하지도 아니하였다. 이런 점에서 그는 규율을 엄수하였다.

 💡 4절. ‘이스라엘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라’

본서 저자는 여호사밧의 행위를 북이스라엘의 행위와 비교함으로써 — 그의 신앙을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행위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하나님의 백성이 따라서는 안되는 행위로서,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며, 여호와의 계명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수정하는 등 언약 백성의 정체성을 상실한 일체의 행위를 가리킨다.

여호사밧의 신앙
본문은 여호사밧이 이스라엘의 죄악을 본받지 않고, 남유다를 하나님의 뜻에 맞게 통치하였음을 말하고 있는 것. 즉 여호사밧은 북이스라엘과 달리 여호와 신앙을 온전히 굳게 지켰다.

4."그는 여호와의 도를 전심으로 행하였다" (6절). 혹은 "그는 자기의 마음을 바쳤다."

그는 자기 마음을 하나님의 일에 쏟았고, 거기에 자기 마음을 바쳤으니, 곧 그는 그 일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진지한 존경심을 품었던 것이다.

"오! 여호와여! 주께 나의 영혼을 바칩니다."

그는 선한 일에 마음을 넓혔다(시 119:32).

그는 결코 자기가 하나님께 충분히 해드릴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는 신앙에 활기 있고 관심이 깊었으며, "여호와를 섬기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리고 그 일을 기뻐하였다

그는 즉시 하나님의 일을 계속 수행하되, 마치 벧엘에서 하나님을 본 후 "일어나" 동방으로 행하였던 야곱과 같이 하였다(창 29:1).

그는 대담하고 과감성이 있게 하나님의 길을 좇았고, 용기를 가지고 계속하였다.

그의 심령은, 그 의무의 길에 놓여 있는 난관들을 고려할 여지도 없이 전부 바쳐졌다.

그는 그 난관들을 쉽사리 극복하였으니, 그는 "파종과 수확기" 에 있을 "바람과 구름" 을 겁내지 아니하였다(전 11:4).

우리도 그와 같은 정신을 본받자.

💡 17:6 그가 전심으로 여호와의 길을 걸어 산당들과 아세라 목상들도 유다에서 제거하였더라

본문을 직역하면 ‘그리고 그의 마음이 여호와의 길들에서 높이 솟아 올랐다(KJV, And his heart was lifted up in the ways of the LORD)'

저가 전심으로 ‘여호와의 길을 걸어’

영역본,
NASB, ‘그리고 그가 주의 길에서 대단한 자긍심을 가졌다(And he took great pride in the ways of the LORD)’ NIV, ‘그의 마음이 주의 길에 헌신되었다(His heart was devoted to the ways of the LORD)’ NRSV, ‘그의 마음이 주의 길에서 용감해졌다(His heart was courageous in the ways of the LORD)' NJB, ‘그는 여호와를 순종하는 데에 대단히 열정적이었다(He was so enthusiastic about obeying the Yahweh)’

위를 종합할 때 배우는 여호사밧의 여호와께 대한 마음가짐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에 본문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 여호사밧이 여호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충만해졌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는 여호와의 이름을 높이고자 했으며, 그분의 계명을 생명보다 더 사랑했고, 여호와를 대적하는 모든 것들을 가증히 여겼다, 

Ⅲ. 그는 얼마나 유능한 사람이었던가! 그는 선량한 인간이었을 뿐 아니라 선량한 왕이었다. 그 자신이 착했을 뿐 아니라 그의 세대에 선행을 아주 많이 행한 자이다.

그는 거짓 스승들과(만든 상들은 거짓 스승이라고 불리운다. 합 2:18) "산당과 수풀들을" 제하여 버렸다(6절).

그것은 우상이 경배되는 장소를 의미한다. 오직 참 하나님께 봉헌된 것은 폐하지 않았다(대하 20:33). 그가 철폐한 것은 오직 우상 숭배였다. 그가 없애버린 우상 숭배의 수풀과 형상들보다 그 민족을 더 타락시키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 본서 20:33에서는 본문과 다르게 여호사밧이 산당을 폐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는 성경 자체 에 내재하는 모순이 아니다.
통치 초기에 그는 예루살렘, 혹은 유다 주요 부분에 있는 산당을 제거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에브라임 등 본래 이스라엘 영역이었다가 유다에 복속된 땅들에 있는 산당에까지는 개혁의 힘이 미치지 못하였던 것 같다. 본문에서 ‘유다에서’ 로 번역된 ‘미후다’란 제한적 표현이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산당과 아세라는 이미 선왕 아사 왕의 초기 개혁 때에 유다 땅에서 제거되었었다 (14:3).
그런데도 아들 여호사밧이 산당을 또 제거했다는 것?
아사 왕의 통치 말기에 그(아사)의 신앙이 해이해전 틈을 타 유다 백성들이 곳곳에서 그것들을 세워 숭배하였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이러한 사실은 개혁은 한 번에 그쳐서는 안되며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는 개혁주의 교회가 ‘개혁된 교회는 끊임없어 개혁되어야 한다’라는 모토를 핵심적 모토로 삼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 7-9절 : 여호사밧이 대국민 율법 교육을 시행함

1. 그는 진리의 스승들을 파송하였다.

그는 자기 나라 안의 종교상을 조사해 보고 그 백성이 일반적으로 무지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저희가 악을 행한 줄을 알지 못하였다." 이전에 선정을 베풀던 때에조차 저들의 의무 이행을 가르치는 데에 거의 주의를 기울인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여호사밧은 자기 일을 첫머리에서부터 잘 하기로 결심했다. 즉 저희를 이성있는 피조물로 대함으로써 맹목적인 개혁이 아니라 저들을 잘 교육시키는 길을 택하였다. 그것만이 저들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1) 이 훌륭한 사업을 방백들에 시켰다. 그는 자기 주위에 있는 자들을 파송하였고, 그들을 지방으로 보내어 "유다의 성읍들에게 가르치게" 하였다(7절).

그는 백성들이 악행하였을 때는 사법권을 발송하여 그들을 교정시키라고 명령했을 뿐만 아니라, 더 선하게 행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칠 것과 백성으로 하여금 선악간의 차이를 알 수 있도록 하라고 명령하였다. 높은 지위에 있는 방백이나 유사들에게는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백성들의 의무를 가르칠 기회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저희의 직분에 벗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율법은 곧 국법으로 간주되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 17:7 그가 왕위에 있은 지 삼 년에 그의 방백들 벤하일과 오바댜와 스가랴와 느다넬과 미가야를 보내어 유다 여러 성읍에 가서 가르치게 하고

여호사밧이 이러한 국민들의 교육을 위하여 파견한 일차적 대상이 방백이었음.

파견된 방백들
그들이 지방 성읍의 책임자들이었는지, 중앙 왕실에서 일하는 장관들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들의 이름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 당시 교육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며 영예로운 일로 여겨졌음을 암시한다.

여호사밧이 시행한 교육이 방백들에 의해 이루어진 점에 대하여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율법 교육은 전통적으로 레위 지파, 혹은 제사장이 담당하였다(레 10:11;신 33;10 :렘 18:18 :말 2;7). 그러나 레위 사람과 제사장의 명단이 나오기에 앞서 방백들의 명단이 먼저 나온 것은 ⇒ 당시 시행된 교육이 단순한 율법 교육을 넘어선, 삶의 전반적인 영역에 걸친 교육이었음을 암시한다.

물론 9절에 ‘저희가 여호와의 율법책을 가지고' 란 표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그들의 교육이 여호와의 율법에 철저하게 입각한 것이었음을 의심할 수 없다.

그러나 본절에 등장하는 방백들의 교육의 내용은?
율법 그 자체를 가르쳤던 레위 사람이나 제사장들과 달리, 율법 시행에 충실하였을 때 주어질 상이나 어긋날 경우 당할 형벌 등과 같은 정책 신정 왕국 백성으로서 마땅히 수행해야 할 삶의 지침들에 대헤 교육하는 것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여호사밧의 신정 정치를 향한 소명감
이처럼 여호사밧이 방백들까지 율법에 입각한 사항들에 대한 교육 일선에 나서게 한 것으로 보아, 여호사밧은 신정 정치에 큰 소명감을 가지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가르치게 하고’
이 단어의 어근 ‘라마드’ 본래 자극을 주기 위해 사용하는 막대기를 의미하는 명사에서 유래한 동사, 문자적으로는, ‘뾰족한 막대기로 찌르다'라는 의미. 그런데 이러한 의미에서 반복된 학습을 통해 ‘지식을 주입하다'라는 의미 로 확장되었다. 본문에서는 이 단어가 강의 능동형(Piel)으로 사용되어 — 가르친 사실이 매우 강조 되고 있다. 

(2) "레위인들이 방백들과 함께" 동맹하였으며, "그들은 율법책을 가지고 유다에서 가르쳤다" (8, 9절).

 💡 17:8 또 그들과 함께 레위 사람 스마야와 느다냐와 스바댜와 아사헬과 스미라못과 여호나단과 아도니야와 도비야와 도바도니야 등 레위 사람들을 보내고 또 저희와 함께 제사장 엘리사마와 여호람을 보내었더니

여호사밧은 백성의 교육을 위해 방백들을 파송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과 함께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까지 파송하였다.

본절에는 방백들과 함께 파송된 레위 사람들의 명단과 제사장들의 명단이 제시됨.
이들은 아마 방백들의 교육에 신앙적 권위를 더해 주며 주로 율법 자체에 대한 교육을 담당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많은 레위인과 제사장들 가운데서도 율법에 정통한 자들이었을 것이다.

7-9절에 걸쳐 여호 사밧의 율법 교육 사업이 기록되었을 뿐 아니라 이 일에 동원된 사람들의 명단까지 일일어 기록된 것은 율법 교육이 — 여호사밧이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시행한 주요 사업이었음을 보여준다.

파송된 제사장
엘리사마 : ‘하나님께서 들으셨다’
여호람: ‘여호와께서 높이셨다’ 

저희들은 직무상 스승이었다(신 33:10).

가르치는 것은 저희들의 생업의 하나였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그 외에 해야 할 것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백성들이 자기들의 말에 청종하도록 강제할 수 없다는 구실로 이 일에 태만하였던 것 같다.

여호사밧은 말한다. "자! 너희는 방백들과 함께 가거라. 그리하면 그들이 자기들의 권위를 이용하여 백성들이 너희들에게 나아와 너희들의 말을 청종하도록 해 줄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저희가 교훈을 잘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너희 잘못으로 여기겠다."

모세와 아론이 협력하여 가르치는 일을 행하며, 권세를 잡은 방백들과 성경 지식을 가지고 있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백성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선한 지식과 의무를 단결하여 가르치니, 그게 얼마나 선한 일이랴! 순회하는 유사들과 순회 설교자들은 함께 온 유다 성읍을 다니며 복된 빛을 퍼뜨리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여호와의 율법책을 가지고 갔다" 고 했다.

[1] 이것은 저희 자신의 교육 지침을 위한 것이었으니, 그로써 저희는 백성에게 줄 모든 교훈을 가져 갈 수 있어 "사람의 계명을 교육으로 가르치는 일이 없도록" 하고자 함이었던 때문이다.

[2] 이것은 백성의 확신을 돕고자 함이었다.

레위인과 제사장의 말은 오직 주께로부터 받은 것이요,

거기에는 하나님의 뒷받침이 있다는 것을 백성들이 믿게 하기 위해서다. 사역자들도 사람들에게 가르치러 나아갈 때에 성경을 꼭 가지고 다녀야 한다.

💡 17:9 그들이 여호와의 율법책을 가지고 유다에서 가르치되 그 모든 유다 성읍들로 두루 다니며 백성들을 가르쳤더라

가르침의 근거 — 율법책
본문은 여호사밧이 방백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로 하여금 백성들을 가르치게 했던 내용의 근거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그 출처를 밝히고 있다. 즉 여호사밧은 율법책을 교과서로 하여 백성들을 가르쳤던 것이다. 여호사밧은 자신이 율법에 복종하였을 뿐 아니라, 그 율법을 나라의 지배적인 원리로 삼아 백성들에게 가르치기로 한 것.

여호사밧의 종교 개혁과 통치가 성공적이었던 이유
율법에 대한 열성이 있었고, 그것을 실제적으로 백성들의 삶 속에 뿌리 내리기 위한 노력이 있었기에 여호사밧의 종교 개혁과 통치는 성공적인 것이 될 수 있었다.

여호사밧이 보여준 신정왕국의 참모습
이러한 내용은 어떤 의미에서 최고 지도자인 여호사밧에서 백성의 중간 지도자들인 방백들, 그리고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유다 온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의 가르침을 따라 세워지는 신정 왕국 통치의 이상적 모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율법
‘율법'에 해당하는 단어 ‘토라트' = ‘토라’ 의 연계형.
‘토라'는 일반적으로 — 모세 오경(Pentateuch)을 가리킴.
모세 오경에는 종교적 규례 뿐만 아니라 도덕법(moral law), 의식법(ritual law), 시민법(civil law) 등도 포함되어 있다. 즉 토라는 선민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가져야 될 태도 뿐만 아니라, 사람 사이에서 지켜야 할 규례까지 제시하고 있는 것이. 따라서 이러한 율법에 근거한 교육은 ⇒ 당시 남유다 백성들로 하여금 성숙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게 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 고대 사회에서는 율법책이 귀했음
파피루스나 양피지에 글씨가 새겨진 책들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매우 귀하였으므로 일반 백성들이 여호와의 율법책을 소유하기는 거의 불가능하였다.
⇒ 따라서 그들은 이러한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 그들은 여호와의 뜻을 알 길이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여호사밧의 교육 사업은 매우 유용한 것이었다.

특히 본서 저자가 여호사밧이 이러한 대국민 율법 교육을 통치 초기부터 중점적으로 시행했음을 소개하며 그 전후 부분에(3-6, 10-19절) 남유다 왕국에 축복과 번영이 있었음을 소개하는 이유
율법 교육이 갖는 중요성을 부각시켜, 본서의 일차 독자들로 하여금 이러한 선조의 모범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처럼 여호사밧의 종교 개혁이 보이는 특징은,
그 자신의 확고한 신앙을 바탕으로(3.4절) 하고 있으며 산당과 아세라 목상을 제거하는(6절) 수준에 머문 것이 아니라, 전체 국민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보다 확실하게 알고 실천할 수 있도록 교육시키는 일에 힘썼다는 점에서
그 어떤 다른 왕의 종교 개혁보다 더 총체적이고 철저하였다고 볼 수 있다.

Ⅳ. 그는 얼마나 복된 사람이었던가? 그는 자기 하나님의 은총에 아주 행복하였다. 그 하나님은 그를 특별히 인정하시고 축복하셨다.

1."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셨다" (3절). "여호와의 말씀이 그의 조력자였다" (갈대아 주석은 그렇게 해석한다).

"여호와께서 그 나라를 그의 손에서 견고하게 하셨다" (5절).

하나님의 임재가 함께 하시는 자들은 확고히 선다.

만약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아름다움이 우리 위에 임하고 있다면", → 그것은 "우리 손의 일을 이루어 주실 것이요", 우리의 정직을 지켜 주실 것이다.

2. 그는 그 백성의 사랑에 아주 행복하였다(5절).

"온 유다가" 자기들에게 설교자들을 보내 준 그의 친절함에 대한 사례로서 "그에게 예물을 가져왔다" 고 했다.

백성의 종교가 참되면 참될수록 더욱더 많은 양심적 충성이 생겨난다. 통치 목적에 부합하는 정부는 지지를 받을 것이다.

하나님과 유다 왕국 백성의 사랑은 "그가 부귀와 영광을 풍족히" 누리게 해 주었다.

신앙과 경건은 우리의 외적 번영에 대해 가장 좋은 친구라는 사실을 믿는 자가 드물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의심할 여지없는 진리이다.

그리고 그 뒤 잇따라 나오는 말을 관찰해 보자.

"그가 전심을 다하여 여호와의 도를 행하였다."

지극한 부귀와 영화는 대개의 사람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의 도를 따르는 데는 장애물이 되거나 방해가 되는 자만과 방심과 호색을 불러 일으킨다. 그러나 여호사밧에게는 전혀 반대의 효과를 나타내었으니, 그의 풍족함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의 수레 바퀴에 윤활유가 되었으며, 이 세상 제물을 더 늘리면 늘릴수록 그는 더욱더" 여호와의 길에 마음을 바쳤다."

💡 17:5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나라를 그의 손에서 견고하게 하시매 유다 무리가 여호사밧에게 예물을 드렸으므로 그가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더라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나라를 그의 손에서 견고하게 하시매’
본문을 직역하면, ‘그래서 여호와께서 그 왕국을 그의 손에서 튼튼히 세우셨다'가 된다.
본절의 처음에 쓰인 계속적 ‘와우' ⇒ 인과 관계를 나타내고 있다.
⇒ 이는 본문 이하 기술되는 여호와의 축복이 여호사밧의 신앙으로 인해 주어졌다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준다.

‘그의 손에서’
손 = 왕의 통치 능력을 나타내는 비유적 표현.

‘견고하게 하시매’
적극적 의지를 가지고 ‘세우셨다’
이는 여호와께서 — 여호사밧 왕의 통치하에서 남유다 왕국을 확실히 서게 하셨음을 말한다.
즉 여호사밧의 통치는 —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였고,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 그의 통치 하의 유다를 축복하여 견고케 하신 것이다.

‘그가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더라’
역대기에서 부귀와 영광과 명예는 — 하나님께로부터 축복을 받았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외적 표시 중 하나이다.
다윗과 솔로몬(대상 29:2-5, 28; 9:13-27), 웃시야(26;8.15)와 히스기야(32:27)와 같은 선한 왕들이 이러한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적 실례이다.

‘크게 떨쳤더라’
번역된 ‘와에히…라로브'는 ‘분량이 많고 풍부하였다'라는 의미.

여호사밧이 추구한 것은 재물과 영광이 아닌 여호와 하나님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 부차적으로 뒤따라온 것은 재물과 영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