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칼럼

10월 28일 토요일 묵상구절 대하29:1-19  <유다 왕 히스기야의 성전 정화(왕하 18:1-3)>

Jeehyun 2023. 10. 28. 23:02

맥체인성경읽기

열왕기하 9, 디모데전서 6, 호세아 1, 시편 119:73~96

묵상구절

29:1 히스기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구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비야요 스가랴의 딸이더라

29:2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실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29:3 첫째 해 첫째 달에 여호와의 전 문들을 열고 수리하고

29:4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동쪽 광장에 모으고

29:5 그들에게 이르되 레위 사람들아 내 말을 들으라 이제 너희는 성결하게 하고 또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성결하게 하여 그 더러운 것을 성소에서 없애라

29:6 우리 조상들이 범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하나님을 버리고 얼굴을 돌려 여호와의 성소를 등지고

29:7 또 낭실 문을 닫으며 등불을 끄고 성소에서 분향하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므로

29:8 여호와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에 진노하시고 내버리사 두려움과 놀람과 비웃음거리가 되게 하신 것을 너희가 똑똑히 보는 바라

29:9 이로 말미암아 우리의 조상들이 칼에 엎드러지며 우리의 자녀와 아내들이 사로잡혔느니라

29:10 이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와 더불어 언약을 세워 그 맹렬한 노를 우리에게서 떠나게 할 마음이 내게 있노니

29:11 내 아들들아 이제는 게으르지 말라 여호와께서 이미 너희를 택하사 그 앞에 서서 수종들어 그를 섬기며 분향하게 하셨느니라

29:12 이에 레위 사람들이 일어나니 곧 그핫의 자손 중 아마새의 아들 마핫과 아사랴의 아들 요엘과 므라리의 자손 중 압디의 아들 기스와 여할렐렐의 아들 아사랴와 게르손 사람 중 심마의 아들 요아와 요아의 아들 에덴과

29:13 엘리사반의 자손 중 시므리와 여우엘과 아삽의 자손 중 스가랴와 맛다냐와

29:14 헤만의 자손 중 여후엘과 시므이와 여두둔의 자손 중 스마야와 웃시엘이라

29:15 그들이 그들의 형제들을 모아 성결하게 하고 들어가서 왕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명령한 것을 따라 여호와의 전을 깨끗하게 할새

29:16 제사장들도 여호와의 전 안에 들어가서 깨끗하게 하여 여호와의 전에 있는 모든 더러운 것을 끌어내어 여호와의 전 뜰에 이르매 레위 사람들이 받아 바깥 기드론 시내로 가져갔더라

29:17 첫째 달 초하루에 성결하게 하기를 시작하여 그 달 초팔일에 여호와의 낭실에 이르고 또 팔 일 동안 여호와의 전을 성결하게 하여 첫째 달 십육 일에 이르러 마치고

29:18 안으로 들어가서 히스기야 왕을 보고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의 온 전과 번제단과 그 모든 그릇들과 떡을 진설하는 상과 그 모든 그릇들을 깨끗하게 하였고

29:19 또 아하스 왕이 왕위에 있어 범죄할 때에 버린 모든 그릇들도 우리가 정돈하고 성결하게 하여 여호와의 제단 앞에 두었나이다 하니라

매튜헨리/옥스퍼드

스페셜포인트

29-32장 소개

  • 남북 분열 왕국 가운데 다윗 언약을 계승한 왕조인 남유다 왕국외 20대 왕의 통치를 중심으로 하여 선민의 역사를 다루는 역대하 제2부 10-36장의 연속 부분.
  • 여기서는 남유다 제9-12대의 네 왕의 통치에 대하여 다루는 제25-28장에 이어 남유다 제13대 왕으로서 다윗 이래 가장 위대한 왕이라고 할 수 있는 히스기야의 통치에 대하여 다룬다. 이를 개관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히스기야 왕 통치 개요

  1. 29:1-36
    • 히스기야의 성전 정화 사업과 제사 제도의 회복에 대하여.
  2. 30:1-31:1
    • 히스기야의 유월절 준수와 백성드의 신앙 개혁에 대하여.
  3. 31:2-21
    • 제사장 및 레위인의 조직 정비와 십일조 제도의 복원, 성물 창고의 개설과 성물 분배 제도 등과 관련된 히스기야외 종교 제도 정비에 대하여.
  4. 32:1-23
    • 이차에 걸친 앗수르 왕 산헤럽의 침공과 격퇴에 대하여.
  5. 32:24-33
    • 히스기야의 생명 연장과 번영에 대하여.

  • 히스기야의 통치 기사는 무려 네 장에 걸쳐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남유다 왕들의 통치 기사 가운데 여호사밧과 함께 가장 긴 것이다.
  • 그리고 이는 남유다의 왕들 가운데 히스기야가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본서의 독자들에게 그가 본받을 만한 인물임을 시사하여 준다.

병행구절(왕하18-20장)과 비교, 대조

  • 두 병행 본문 사이에는 기록상의 상당한 차이점이 있다.
  1. 열왕기서
    1. 역사적인 사실들을 중시하여, 히스기야의 통치를 정치•군사적인 측면에서 많이 다루고 있다.
    2. 강조점 : 산헤립의 침공, 히스기야의 와병과 치유, 바벨론 사절의 방문과 히스기야의 실수에 대하여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3. 그에 반해 히스기야가 종교적인 측면에서 힘쓴 사실에 대하여는 → 비교적 간단하게 서슬.
  2. 역대기서
    1. 산헤립의 침공 기사 외에는 열왕기에서 다루고 있는 사실을 모두 생략하거나 간단히 한 마디로 언급하는 것으로 그치고 있다.
    2. 대신 성전 정화, 유월절 준수 등 히스기야의 종교적 측면의 업적을 상세히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 열왕기서
    • 보다 객관적으로 히스기야의 통치 기사를 기술하는 방식을 택한 것과 달리,
    • 기자가 히스기야의 실수까지도 생략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상술.
  • 역대기서
    • 그의 주된 관점인 성전과 신앙에 초점을 맞추어 히스기야의 통치 기사를 기록함으로써 발생한 것이다.
    • 남유다의 역사를 비교적 긍정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역대기서 기자.
      → 히스기야의 실수에 대한 부분은 완전히 생략하고 그가 다만 일시적으로 교만하였다가 회개한 사실만을 언급하고 있다.

히스기야의 통치 기사에서 살펴볼 2가지 주안점

1. 히스기야의 성전 정화 사업으로 시작하는 점

  • 히스기야의 통치 기사를 본격 시작하면서 그의 성전 정화 사업부터 다루고 있다는 점.
  • 더욱이 주목할 것은 히스기야가 원년 정월에 성전 정화를 단행하였다는 사실이다.
    → 이것은 히스기야가 여호와 신앙의 회복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음을 시사하여 준다.

그렇다면 히스기야가 이렇게 여호와 신앙의 회복을 중요하게 여긴 이유는 무엇일까?

  1. 이유1
    1. 그것은우선 29:6-10에 나타난 히스기야의 연설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그가 부왕 아하스 시대에 남유다에 닥친 재앙의 원인이 — 아하스의 우상 숭배와 하나님을 배반한 것에 있음을 깨달은 까닭이라고 할 수 있다.
  2. 이유2
    1. 히스기야가 남유다의 왕으로 즉위한 때
      → 북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한 지 불과 10년이 되지 않은 때.
    2. 그리하여 히스기야는 같은 하나님의 선민의 자손인 북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망하게 된 원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 그리고 그 원인이 북이스라엘의 우상 숭배와 하나님을 배반한 것에 있었옴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3. 이에 히스기야는
      1. 남유다 또한 여호와 신앙을 속히 회복하지 않는다면 북이스라엘의 운명을 따르게 될 것임을 직시하고,
      2. 무엇보다도 여호와 신앙 회복을 위한 일차 단계로서
        그 아비에 의해 더럽혀진 성전을 정화하는 일부터 한 것이다.
  • 결국 그의 이러한 노력의 결과 남유다는 북이스라엘이 망한 뒤로도 약 140년 간이나 더 존속할 수 있었다.

2. 유월절 준수에 힘썼음.

  • 다음으로 주목할 사실은 히스기야가 무엇보다도 유월절을 준수하기에 힘썼다는 것.

당시 유월절 준수에 대한 인식과 현실

  • 이스라엘외 출애굽을 기념하는 절기로서 이스라엘의 3대 절기 가운데 첫번째에 해당하는 절기.
  • 그런데 유월절을 제외한 칠칠절과 장막절은 농사와 관련된 측제로 그나마 근근히 지켜져 오던 것과 달리 유월절은 솔로몬 시대 이후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 그리하여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치 잊혀진 절기와 같이 되었다.

⇒ 그런데 히스기야는 바로 이 유월절 절기를 시급히 지키고자 하였다.

그 이유

  • 유월절이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을 감사하는 절기로서,
    출애굽의 구원 사건과 하나님의 언약을 상기시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간의 관계를 확인시키고 또 회복시키는 데 있어 매우 적절한 방편이 되었기 때문이다.
  •  
  • 즉 히스기야는 성전을 정화하고 곧이어 유월절을 준수함으로써
  • 백성들로 하여금 여호와 중심 신앙을 온전히 회복하도록 하였던 것이다.

한편 히스기야는 북이스라엘 지역에까지 유월절 준수 명령을 반포하였는데,

  • 당시 북이스라엘 상황
    • 앗수르에 멸망한 상태에서 앗수르가 국내 정세의 불안으로 말미암아 북이스라엘 지역에까지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였는 바,
  • 거의 무정부 상태와 같았던 북이스라엘 지역에도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본서 저자가 이 사실을 굳이 기록한 것은

  • 북이스라엘도 남유다와 동일한 선민의 자손임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 서론

역대기는

  • 포로 귀환 이후 세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민 역사의 영속성과 정통성을 보여주기 위하여 남유다 다윗 왕조 중심의 이스라엘 역사를 기록한 책.

역대하 개요

  1. 1-9장 : 성전 건축 기사를 중심한 솔로몬의 통치 기사
  2. 10-36장 : 남북 분열 왕국 가운데 다윗 언약을 계승한 왕조인 남유다 왕국의 20명의 왕의 통치 기사.
    1. 10-28장 : 다시 분열 왕국의 역사룰 기록.
    2. 29-36장 : 북이스라엘 덜망 이후 남유다 단독 왕국 기사를 기록.

그 가운데 본장

  • 바로 분열 왕국이 종식되고 남유다 왕국만이 지속되는 시기의 첫번째 왕이며, 남유다 제13대 왕인 히스기야 왕의 사적이 기록된 29-32장의 서두.

히스기야 기사 29-32장

  • 총 101절에 걸쳐 소개되어 있는 유다의 제4대 왕 여호사밧에 관한 기사(14-16장)보다 더 많은 분량.

  • 히스기야에 관한 기사가 이토록 많은 이유
    • 단지 그가 다른 왕들에 비해 오랫동안 남유다를 통치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 그의 29년 통치는 41년 간 통치한 아사(17-20장)와 40년 간 통치한 요아스(24장)와 52년 간 통처한 웃시야(26장)와 55년을 통치한 므낫세(33장), 그리고 31년을 통치한 요시야(34,35장)보다 적은 통치 기간이지만, 그에 관한 기사가 이들 각각의 기사보다 훨씬 많다.
    • 이처럼 본서 저자가 히스기야에 관한 기사를 남유다 역대 어느 왕들의 기사보다도 길게 기록한 것은,
    1. 첫째,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만큼 하나님을 의지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가 여호와에 대한 신앙이 뛰어나 모든 사람들에게 본이 될 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며(2절; 왕하 18:5)
    2. 둘째, 그만큼 예루살렘 백성들에게 영적 희락을 크게 가져다준 자도 없었기 때문이며(30:26)
    3. 셋째, 오랫동안 폐지되었던 유월절을 다시 회복하여 지킨 사람이었기 때문이며 (30:5)
    4. 넷째, 여호와께서 일생 그와 함께하심으로 그만큼 형통한 왕이 없었기 때문이다(31:21 ; 왕하 18:7).
    • 이와 같은 네 가지 사실은 히스기야가 다윗 이래로 하나님 마음에 가장 합한 왕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 본서의 저자는 바로 그러한 왕에 관한 기사를 영적 측면에서 길고도 상세 하게 기록하여 후대 사람들에게 교훈으로 삼고자 했던 것이다(롬 15:4). 

히스기야 왕의 선정(역대하 29:1-11)

Ⅰ. 히스기야가 왕위에 즉위할 때의 나이가 나타나 있다.

그는 "25세" 였다. 두 왕의 나쁜 통치가 지난 후에 왕위에 올랐던 요아스 왕은 즉위 당시 겨우 일곱 살에 불과했다. 요시야도 역시 2대에 걸쳐 나쁜 왕이 지난 후에 즉위했고, 그때의 나이는 겨우 8세였다. 따라서 개혁하는 일은 늦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나이가 들었으므로 곧 개혁 사업에 착수할 수 있었다. 그의 아버지의 우상 숭배와 불경한 행실을 보고 그가 얼마나 가슴 아파했으며, 그의 아버지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가 감히 열 수 없었지만 성전 문이 닫힌 것을 보고 얼마나 괴로워했을 것인가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이것 때문에 그의 영혼은 남몰래 눈물 흘렸을 것이고, 그가 왕위에 오르게 되면 이 비탄스러운 일들을 바로 잡으리라 생각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그의 결심을 실현하기 위하여 그는 더욱 많은 준비를 해두었을 것이다.


💡 29:1 히스기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구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비야요 스가랴의 딸이더라

  • 4장에 걸친 히스기야에 관한 기사가 시작되는 본문.
  • 남유다의 제13대 왕으로서 B.C. 715년부터 B.C. 687년까지 29년 간 유다를 통치하였던 히스기야가 왕위에 올랐다는 기사.

병행 구절인 왕하 18:1에는

  • 그가 '이스라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삼년에' 왕이 된 것으로 나온다.
  • 통치 시기
    • 북이스라엘 마지막 왕이었던 호세아는 B.C. 732-722년을 다스렸으므로 '호세아 삼년'은 B.C. 729년이 된다.
    • 그렇다면 B.C. 729년부터 선왕 아하스가 죽온 B.C. 716년까지는 히스기야와 아하스가 공동 통치한 기간.
    • 공동 통치는 약 14년 간 지속되었고 공동 통치를 시작할 때 히스기야는 약 11세.
  • 본절의 25세는 ⇒ 단독 통치를 시작할 때의 나이.

악한 왕 아하스의 죽음과 그 아들 선왕 히스기야 왕의 즉위

  • 역사상 유례롤 찾기 어려울 정도로 통치 기간 내내 악으로 일관된 삶을 살았던 아하스가 죽고 히스기야가 통치를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본문은 암울했던 유다에 새로운 희망이 보인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 아하스가 죽고 히스기야가 새롭게 즉위함으로써 유다는 악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한 가닥 희망을 가질 수 있었는데,
    히스기야는 이 희망을 성취했다.

히스기야 왕

  • 그는 유다 역사상 가장 악한 왕 아하스의 아들이었으나, 유다 역사상 가장 선한 왕의 반열에 오른 자이다.
  • 이름 뜻 : '여호와께서 강하게 하심'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 그 이름에 걸맞게 이제 여호와께서 바로 히스기야를 통 해서 당신의 언약을 두신 유다 왕국을 영적으로 회복시키시고 강하게 하실 것이다.
    •  

히스기야의 모친 ‘아비야’

  • 이름 뜻 : '여호와는 아버지이시다'라는 의미.
  • 병행 구절인 왕하 18:2에는 축약형인 ‘아비'로 소개.
  • 그녀의 부친 '스가랴'
    • '여호와께서 기억하셨다'라는 이름 뜻.
    • 아마 그는 사 8:2에서 소개되고 있는 '진실한 증인 제사장' 가운데 한 명인 '스가랴'와 동일인일 것.

    그렇다면 히스기야가 자신의 아비 아하스의 사악함을 본받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1. 신앙적인 외할아버지와 그 신앙을 계승한 어머니의 신앙 교육의 걸과로 볼 수 있다.
    2. 히스기야 통치 당시 선지자들의 활동
      • 이스라엘의 대선지자인 이사야와 미가 등의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 이러한 선지자들의 가르침과 경고 역시 히스기야를 경건한 왕으로 서게 하는 데 상당한 영향력을 끼쳤을 것으로 추정 할 수 있다. 

Ⅱ. 그의 일반적 품성을 보자.

" 그는 다윗처럼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 고 했다(2절).

그의 조상들 가운데 정직히 행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는 사람들은 몇 명 있으나, "다윗처럼" 고결하고 성실하게 행하였다고는 적혀 있지 않다. 그러나 여기에 다윗처럼 하나님의 율법과 법궤에 대해 참된 사랑을 지녔던 자가 있다.


💡 29:2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실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다윗의 모든 행실과 같이.. 정직하게 행하였음

  • 그는 다윗처럼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는 지극히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 평가의 기준으로 제시되는 다윗
    : 이스라엘 모든 왕들의 모델이 되는 인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이었다(행 13:22).
  • 그러므로 히스기야가 다윗과 같은 삶을 살았다는 것은
    그의 평생의 삶이 하나님 앞에 합당한 삶이었음을 나타낸다.

‘모든’

  • 더욱이 본서 저자는 ‘모든'이라는 의미의 ‘콜'까지 사용함으로써
    ⇒ 히스기야의 삶 중 일부분만 다윗과 닮았던 것이 아니라 전생애 모두가 다 그러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 이러한 표현은 23-25장에 소개된 요아스나 아마샤를 떠오르게 한다.
    • 그들 모두는 초기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적인 자세를 견지했지만 종국에 가서는 모두 타락하고 하나님을 거스르는 잘못을 범하였던 왕들.
  • 사실 이후 이어지는 히스기야에 관한 기사인 29-32장
    • 이러한 평가 즉 악을 행하였던 왕들이나 생애의 일부만 선한 통치를 수행했던 왕들과는 대조되는 히스기야의 선한 통치를 설명하는 실례들이라 할 수 있다.

‘정직히’ 행함

  • 정직히
    •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똑바로 걷는 것을 나타내는 단어.
      • 용례
        : 블레셋이 탈취한 언약궤를 이스라엘로 돌려보낼 당시 하나님의 언약궤를 실은 수레를 끄는 암송아지가 뒤에서 우는 새끼 송아지의 울옴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좌우로 고개를 돌리거나 길을 벗어나지 않고 목적지 벧세메스까지 똑바로 걸어간 사실을 나 타내는 데도 ‘야솨르'가 사용되었다(삼상 6:12).
    이 단어의 이러한 용례를 고려할 때, 히스기야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어떠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 그는 일평생 율법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며,
    • 우상 숭배와 이방 강대국에 의존하고 싶은 수많은 유혹에도 —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정도를 지켰던 것이다.
    • 완전한 분이신 예수조차도 여러 가지 시험이 있었는데(마 4:1-11; 2 6:39; 히 2:18; 4:15), 하물며 연약한 인간에 부과한 히스기야에게 시험이 없었겠는가?
    • 그러나 그는 그러한 시험들을 당당히 이겨냄으로써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라는 칭송을 받은 것이다.
    • 병행 구절인 왕하 18:3에도 이와 동일한 평가가 나오고 있다.
      — 즉 그는 모든 시대의 사람들에게 경건하고 의로운 왕이라는 영예스러운 칭송을 받게 된 것이다

❖ 3-11절 : 원년 정월에 성전 문을 열고 수리하고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불러 모아 성전 정화를 지시함

Ⅲ. 그는 믿음을 회복시키는 위대한 일에 속히 착수했다.

그가 한 첫 번째 일은 "여호와의 전 문들은 여는" 것이었다(3절).

그의 아버지가 성전 예배를 완전히 금지하지는 않았으리라고 본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었더라면, 제단 위의 거룩한 불은 아주 꺼져 버렸을 것이 틀림없으나, 다시 불을 붙였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는 자기 편이 아니고는(왕하 16:15) 제사장들도 성전에 참례하지 못하게 했다(왕하 16:15). 그러나 히스기야도 곧 교회(성전)의 문을 열고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그 안으로) 모았다." 그는 유다 나라가 쇄하여졌다는 것을 알았으나, 국가의 정무를 회복하는 것을 과제로 삼지 않고 믿음을 복귀시키는 것을 급선무로 삼았다. 하나님과 함께 시작하는 자는 올바른 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요, 그 사업은 분명히 번영하게 될 것이다.


💡 29:3 첫째 해 첫째 달에 여호와의 전 문들을 열고 수리하고

성전 숙정 사업의 시작

  • 본절부터 19절까지 나오는 히스기야의 성전 정화 사업이나 20절부터 36절까지 나오는 범국가적 속죄제와 성전 제사 회복 기사는 열왕기에는 나오지 않는다.
  • 그럼에도 이같은 내용이 본서에 기록된 이유
    • 본서 저자가 성전을 중심한 제의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기 때문.

    본서 저자가 열왕기 저자가 기록하지 않은 내용까지 발굴하여 본서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이유
    • 하나님외 임재의 상징적 처소인 성전을 중심한 신앙 생활외 중요성을 각성시키기 위한 목적에서.

성전 숙정 시작 시점

  • 첫째 해 첫째 달 : 대개의 학자들은 통치 후 첫번째 달이라고 이해하기보다는 유대력으로 첫번째 달인 니산월로 해석함.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갈 길이 열림 —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함

여호와의 전 문들을 열고 수리하고

  • 히스기야는 그의 부친 아하스가 28:24에서 폐쇄해 버렸던 성전 문을 다시 활짝 열어젖힘으로써
    1. 성전의 기능을 회복시키고
    2. 제사장들이 성소에 들어가서 자신들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하나님 임재의 상징적 처소인 성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백성으로서 하나님께 나아가 분향을 하지 못하고 진설병을 바칠 수 없다는 것은 — 실로 큰 비극이었다.

    그런 비극을 히스기야는 그에게 주어진 왕권을 발휘함으로써 끊어버렸던 것이다.
    이처럼 히스기야는 굳게 닫혔던 성전 문들을 열어젖힘으로써
    백성들로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하였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 대제사장 외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게끔 굳게 닫혀 있던 성소의 휘장을
  • 십자가에서 그의 육체로 찢어버림으로써
  •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다(마 27:51; 히 10:19.20). 그런 의미에서 히스기야의 이 사역은 장차 예수께서 행하실 사역의 예표적 성격을 갖는 것이기도 하다.

 

성전 문을 ‘수리하였음’

  • ‘수리하다’의 원형 ‘하자크’
    • 기본적으로 꽉 달라붙거나 강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이다(창 19:16).
    • 본문에서는 강의 능동형(Piel)으로 사용되어, 성전의 문들을 매우 튼튼하게 수리하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히스기야는 성전 문을 열고 훼파된 것들을 수리하되, 형식적으로 하지 않고,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확실하게 수리하였던 것이다. 

Ⅳ. 그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에게 연설했다.

그가 믿음에 대해 참된 호의를 품고 있었으며 지난 통치기간 중에 만연된 타락에도 물들지 않았다는 사실은 물론 잘 알려진 일이다. 그러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성전 예배의 회복을 그에게 청원을 했다는 사실은 찾아 볼 수 없고, 오직 그가 그들을 불러 모았다는 것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히스기야의 열의에 비해 제사장들이나 레위인들은 퍽 냉담했다는 것을 뜻한다. 만일 그것이 자기들의 임무를 힘차게 수행했다면 사태는, 그렇게까지는 악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히스기야가 레위인들에게 한 권고는 매우 감동적인 것이었다.


💡 29:4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동쪽 광장에 모으고

종교 개혁을 앞두고 먼저 종교 지도자들을 모음.

  • 히스기야는 본격적인 종교 개혁을 착수하기에 앞서 특별히 여호와를 섬기는 종교 지도자들을 모아 영적 각성 운동을 벌였다.

’모으고’ (사역 능동형)

  • 히스기야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영적 각성 운동을 벌일 때, 단지 법령을 선포하여 명령만 하거나 신하 중 한 사람을 시켜 대신하게 하지 않고, 그가 직접 그들을 광장으로 인도해 모아 각성 운동을 직접 이끌었다는 사실을 강조. 

💡 29:5 그들에게 이르되 레위 사람들아 내 말을 들으라 이제 너희는 성결하게 하고 또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성결하게 하여 그 더러운 것을 성소에서 없애라

‘성결하게’ 하라

  • 종교 지도자들을 성전 동편 광장에 모아 영적 대각성 운동을 벌일 때에 히스기야 가 맨 처음 한 말은 다름아닌 ‘성결'이었다.

‘성경’ (카다쉬’) — 다른 형태로 연속 2번 사용.

  • ‘카다쉬’
    • 어원적 의미:
      • 원래 ‘자르다(cut)', ‘분리하다(separate)' 라는 의미,
      • 속되고 세속적인 용도로부터 분리하여 거룩한 영역에만 전적으로 바치는 것을 나타내는 데에도 쓰였다.
    • 또한 이 단어는 히브리어에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 고대 아카디아어, 우가릿어를 비롯한 고대 근동의 여러 문화권에서 함께 사용되었다.
    • 구약 성경에서 모두 154회 등장하는 이 단어가 최초로 사용된 곳은 창 2:3로서, 일곱째 날인 안식일을 다른 6일과 구별하여 거룩한 날로 지정한 것을 표현하고 있다.
    • 특히 본문에서 이 단어는 각각 재귀형(Hithpael)과 강의 능동형(Piel)으로 사용되었는데, 이를 고려하여 본문을 다시 번역해 보면 ‘너희들은 너희 자신을 거룩하게 하라. 그러고 확설히 거룩하게 하라' 가 된다.

  1. 너희는 성결케 하고 (’히테캇데슈’ — 재귀형)
    1. 제사장과 레위인들은 자신을 스스로 거룩하게 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강조.
    2. 무엇으로부터 성결케 해야 하는가?
      • 본절의 문맥을 보면 이 거룩게 함은 이전 아하스 왕 당시 우상 숭배로 인해 더러워졌던 그들을 하나님 앞에서 새롭게 하기 위한 필수적 조치였다.
    3. 여기에서 사용된 재귀형
      • 거룩게 되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회개와 의지적 결단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4. 더욱이 이 단어가 성전을 거룩하게 할 것을 명하는 ‘갓데슈' 앞에 사용된 것은
      • 성전과 그 성전에서 받들어 섬기는 사람 중 무엇을 먼저 성결케 해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지침을 준다.
        • 즉 성전이 아무리 거룩하게 되어 있다 할지라도
        • 그 안에서 섬기는 사람의 마음이 세속적 더러움으로 물들어 있다면
        • 그 제사는 헛된 것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 이러한 측면에서 히스 기야는 성전을 거룩하게 하기에 앞서 제사장과 레위인들 자신이 던저 거룩해져야 한다고 역설했던 것이다.
  2. 여화와의 전을 성결하게 하여(’웨캇데슈 — 강의 능동 명령형)
    1. 거룩하게 하되, 철저하게 거룩하게 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
    2. 성전 정화의 필요성
      1. 아하스의 신성모독적 행위로 인해 성전 문은 폐쇄되었으며, 성전 기구들은 훼파되거나 방치되어 있었고, 오히려 가증한 것들이 그 성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2. 이러한 현실에서 여호와 신앙 회복을 위하여 성전 정화는 그 무엇보다도 시급히 시행되어야 할 일이었다.
      3. 그것은 유다 여러 지역에 있는 산당을 척결하는 것보다도, 예루살렘 모통이 곳곳에 있던 우상들을 훼파하는 것보다도 더 시급한 일이었다.
    • 따라서 히스기야는 레위인과 제사장의 성결과 더불어 성전 성결을 가장 먼저 착수하도록 명했던 것이다.

그 ‘더러운’ 것을

  • 원형 ‘닛다’
    : 본래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배설물을 지칭(겔 7:20).
    • 성결 의례에 관한 규정을 많이 언급 하고 있는 레위기에서
      — 이 단어는 여성의 월경을 나타내기도 한다(레 12:5).
    본문에서 ‘더러운’ 것이란?
    • 본문에서는 신체의 배설물을 가리키지 않고, 여호와의 거룩한 전에서 방출되어야 할 것이라는 차원에서
      → 아하스가 섬기려고 두었던 우상을 가리킨다.
    • 본문에서 이 단어는 단수형으로 사용되었으나 우상과 관련된 것들 전체를 포괄하는 집합적 단수 개념으로 볼 수 있다.
  • 아하스는
    • 냄새나고 더러워서 모든 사람이 피하는 배설물 같은 우상을 사랑하여 섬겼으며,
    • 그것을 여호와의 거룩한 전에 둠으로써 여 호와를 모독하였으나
  • 히스기야는
    • 더 이상 그런 꼴을 두고 볼 수 없었다.

히스기야의 앗수르에 대한 정치적, 종교적 독립 의지를 피력

  • 히스기야가 성전의 문을 열고 성전 제의를 부활시킨 것은 어떤 의미에서 그 동안 유다를 압제하던 앗수르에 대한 히스기야 자신의 도전적인 의사를 피력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 왜냐하면 본문에서 허스기야가 '그 더러운 것'이라 지적한 우상 숭배와 관련된 모든 것은 → 아하스가 앗수르 왕의 환심을 사고 자신이 앗수르의 신하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기 위한 목적에서 세운 것이기 때문이다(왕하 16:10-18).

따라서 히스기야가 성전 문을 열고 그 안에 아하스가 남겨놓은 우상의 잔 재들을 척결한 것은
더 이상 앗수르를 섬기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풀이되는 행동이다.

더욱이 이 일이 그 동안 지켜지지 않고 있던 유월절을 부활시키는 시점에 행해졌다는 점에서 그 파장은 더욱 확대된다.

  • 주지하다시피 유월절은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 원해 내신 것을 기념하는 뜻 깊은 절기이다.
  • 따라서 히스기야 원년에 유월절을 기념하기 위해 성전을 성결케 하고 모든 백성이 참여하는 성회로 모이게 한 것은 — 새로운 이스라엘의 시작을 알리는 의미를 지닌다.
  • 따라서 히스기야가 시행한 이같은 행동과 그 일을 벌인 시점을 감안하면 앗수르의 압제로부터 독립하여 하나님의 백성의 정체성을 회복하겠다는 일종의 신앙적 • 정치적 독럽 선언과 같은 의미를 지닌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1. 그는 황폐한 믿음과 그 결과로 닥쳐온 비참한 상태를 말했다(6, 7절).

"우리 열조가 범죄하였도다."

그는 "나의 선조" 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자기 아버지의 이름에 대해 따뜻한 점을 품고 있는 아들이었기 때문이며, 또한 그들의 선조들이 그들의 의무를 소홀히 하지만 않았었다면 아버지 역시 모든 일을 이렇게 처리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제사장 우리야는 아하스와 함께 우상의 제단을 세우는 일에 가담했었다. 히스기야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한탄했다.

(1) 하나님의 전이 황폐하게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여호와의 성소에서 등졌도다." 하나님의 규례를 등진 자는 바로 하나님을 저버린 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29:6 우리 조상들이 범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하나님을 버리고 얼굴을 돌려 여호와의 성소를 등지고

얼굴을 돌려 여호와의 성소를 등지고

  • 히스기야는 정직하게 그의 조상들이 행한 죄악을 구체적으로 고백하고 있다.
  • 이러한 사실을 나타내는 본문에 대해 공동 번역은 다음과 같이 의역하였다. ‘그가 계시는 곳을 바라보기도 싫어해 등을 돌리고 말았다’
  • 히스기야는 배반자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 당시 그 조상들이 여호와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살았었는지선명하게 고백하였다.

‘여호와의 성소’

  • 하나님은
    • 그의 백성인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기 위하여 그들 가운데 '성막'을 만들게 하시고 후에 이것이 ‘성전'으로 대체되었다.
  • 하지만 이스라엘은
    • 여호와와 교제하기를 싫어하여 성전으로부터 얼굴을 정반대로 돌려 여호와께 그들의 등을 보이고 말았다.
      → 이는 그들을 구원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에 대한 배반의 행동이었다.
  • 이처럼 여호와께 등을 돌리는 자들이 취할 행동은 단 한가지밖에 없다.
    ⇒ 하나님과 정반대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을 자신의 주인으로 점해 열정적으로 섬기는 일이다.
    즉 도덕적이거나 윤리적인 것과 무관하며 비인격적일 뿐 아니라 생명도 능력도 없는 헛된 우상을 섬기게 되는 것.

  • 이러한 점에 대하여 하나님은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다음과 같이 표현하셨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름 버린 것파 스스로 웅덩이를 관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렘 2:13).

(2) 하나님을 섬기던 의식이 행해지지 않게 되었다.

등불은 켜지지 않았고 분향을 하지 않았다. 그러한 일이 아직도 소홀히 여겨지고 있었으며, 그들은 말씀대로 행하지 않고(이것은 "등불을 켜는" 일로 상징되었다) 기도와 찬미도 올바르게 바치지 않았으므로(이것은 "분향하는" 일로 상징되었다), 큰 과오를 범하게 되었다.


💡 29:7 또 낭실 문을 닫으며 등불을 끄고 성소에서 분향하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므로

낭실 문 = 성전 마당에서 성소로 들어가는 문

  • 이 문을 닫는 행위
    = 성소 안에서 행하여지는 모든 의식을 중단시키는 것.
    히스기야의 부친 아하스는 씻을 수 없는 죄악을 범한 것이다.

등불을 끔

  • 등불 = 성소에 있는 등잔의 불. 성소에 10개가 있었음.
  • 제사장은 그 등대의 등불을 저녁에 켜고 아침에 끄며 날마다 이를 중단 없이 계속해야 했다(출 27:20, 21).
  • 그런데 아하스는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고 그 불을 강제로 꺼버렸던 것이다.
    → 끄고 : 강의 능동형. 제사장의 관리 소홀로 자연적으로 꺼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계속 타오르고 있던 불을 아하스가 명령하여 강제로 꺼버렸다는 의미.

2. 히스기야는 그들이 믿음을 소홀히 함으로써 타락하게 된 슬픈 결과를 그들에게 밝혔다(8, 9절).

그들이 이 모든 참화를 겪게 되었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것으로 해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시어 그들을 곤고케 하셨고 칼을 피할 수 없게 하셨으며 포로가 되도록 만드셨다.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를 책망할 때는,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계율을 소홀히 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와 다투시는 것이 아닌가를 살펴 이러한 길을 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 29:8 여호와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에 진노하시고 내버리사 두려움과 놀람과 비웃음거리가 되게 하신 것을 너희가 똑똑히 보는 바라

영적 위기를 직시한 히스기야

  • 히스기야는 자신이 왕이 되기 10여년 전에 패역한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목도한 바 있다.
  • 이와 더불어 그는 유다가 이방 나라들로부터 유린을 당하고 그들로부터 비웃음거리가 되는 과정을 목도하면서,
    그러한 결과가 유다 백성이 여호와률 버리고 멸시한 데 대한 심판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에 그는 원년 정월에 바로 그러한 깨달음을 여러 종교 지도자들을 모아놓고 설파함으로
그들로 하여금 국가적 위기의 원인과 그 심각성을 깊이 생각하게 하였던 것.

이처럼 히스기야가 유다의 영적 위기를 직시하고 이에 대한 해결 방안을 모색할 수 있었던 데에는

  • 앞서 언급한 것처럼(1절) 그를 경건한 왕으로 양육한 그의 모친과 외조부의 영향력과 더불어
  • 당시 활발한 예언 활동을 전개했던 이사야와 미가 등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히스기야가 직시한 공의의 하나님

‘진노하시고 내버리사’

  • 진노 (원형 ‘케체프')
    • 본래 무언가가 심하게 갈라진 것을 묘사하는 단어 에서 유래.
    • 정신이 분열될 정도로 폭발하는 분노를 나타낸다(민 17:11).
    • 구약 성경에서 모두 29희 사용된 이 단어는 대부분 언약 백성의 범죄로 참고 참다가 폭발하는 여호와의 진노를 나타내는 표현.
  •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 유다의 범죄를 보고만 있지는 않으셨다.
    • 그들이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악을 행하면서도 도무지 돌이키려 하지 않자, 당신이 정한 어느 시점에 분노를 폭발해 그들을 심판의 칼로 내리치셨던 것이다.

그 결과, ‘비웃음거리가 되게 하신 것’

  • 여호와께서 남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진노하시고 내어버리신 결과
    유다는 이방의 두려움과 놀람과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 본절의 이 세가지 현상은 각각 별개의 것이라기보다는 그들이 당한 극심한 어려움을 강조하기 위한 반복적 표현.

  • ‘비웃음거리가 되게 하신’
    • 무너지고 폐허만 남은 큰 성을 지나가는 사람이 예전의 영광은 찾아볼 수도 없는 현재의 황폐함에 큰 충격을 받아 소리지르는 것을 나타내는 데 주로 사용.
    • 이러한 외침에는 조소와 경멸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렘 19:8).
  • 히스기야가 이 단어를 사용하여 현재 유다의 상황을 묘사하는 것은
    → 과거 웅장하였던 유다 성읍들이 이방의 침략으로 유린을 당하고 다 무너져 내린 상황에서 대적들이 유다의 그 변화된 모습을 보고 모욕과 조소가 담긴 소리를 질러대며 기뻐하고 있다는 치욕적인 현실을 선명히 설명하기 위함

  • 그리고 이러한 자극적 용어가 가져왔을 영향
    → 히스기야의 설명을 듣는 백성들로 하여금 다시는 유다를 그러한 상태 에 빠지게 해서는 안되겠다는 영적 • 도덕적 각성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담게 살지 않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 사람들의 타락한 삶을 좇아 살게 될 때는
반드시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이방 사람들은

  • 사실상 자신들이 그 원인을 제공했으면서도, 하나님의 백성들의 비참한 모습을 보면서 — 조소를 금치 못한다.
  • 더 나아가 그들의 비웃음은
    • 단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비웃음으로 그치지 않고,
    • 그들의 하나님이신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 29:9 이로 말미암아 우리의 조상들이 칼에 엎드러지며 우리의 자녀와 아내들이 사로잡혔느니라

생략된 표현, ‘웨힌네’

  • 그리고 보라!
  • 청자들의 주의를 집중시키는 기능을 하는 감탄사.

‘이로 인하여’ …

  • because of this,
  • 이방 사람들의 잔인한 칼에 유다 백성들의 자녀들과 아내들이 포로로 사로잡혀 가게 된 상황을 묘사한 것.
    • 단순히 잔악 무도한 이방인들의 칼이라는 의미 뿐만 아니라,
    • 배역한 유다에 내리시는 하나님의 심판의 칼이라는 의미까지 내포.

⇒ 신28 말씀대로 된 것.

  • 그러므로 자녀들과 아내들의 포로됨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결과인 것이다.
  • 28장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분의 뜻에 불순종하고 우상에 빠질 때에 임할 저주를 언급하는 가운데
    → “네가 여자와 약혼하였으나 다른 사람이 그와 같이 잘 것이요 … 네 자녀로 다른 민족에게 빼앗기고 종일 생각하고 알아봄으로 눈이 쇠하여지나 네 손에 능이 없을 것이며"(신 28:30, 32)라는 내용이 나온다.
    ⇒ 바로 이 말씀이 하나님을 거슬러 우상 숭배 및 온갖 죄악을 행한 아하스 당시 유다 백성들에게 문자 그대로 성취되었던 것이다.

3. 그는 자기가 믿음을 복귀하고 발전시키는 데에 주력하겠다는 자신의 의도와 결심을 자세히 알렸다(10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로 더불어 언약을 세울(즉 그가 명하신 대로 그만을 섬김) 마음이 내게 있도다(다시 말해서 나는 확고히 결심했노라). 그렇게 아니하면 그의 진노가 우리에게서 떠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실히 믿기 때문이다."

이 언약은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것일 뿐만 아니라 그의 백성들과 합의한 것이다.


💡 29:10 이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와 더불어 언약을 세워 그 맹렬한 노를 우리에게서 떠나게 할 마음이 내게 있노니

언약갱신의 요구

  • 과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세우시면서 그들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고 당신은 친히 그들의 하나 님이 되시겠다고 말씀하셨다(출 6;7; 신 29:13).

그런데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이러한 관계는 일방적 관계가 아니라, 쌍방간의 관계이다. → 즉 쌍방이 자신의 의무 이행을 할 때에만 그 언약 이 효력이 있는 것.

  • 만약에
    하나님이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보호할 책임을 저버리신다면, 이 스라엘은 그 하나님을 더 이상 하나님으로서 인정하지 않게 될 것이다.
  • 반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이방의 생명 없는 우상을 계속해서 섬기게 된다면 하나님은 그들을 계속해서 보호하실 의무를 더 이상 지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출애굽 직후 언약 체결 시점부터(출 19 장) 지금까지 하나님은

  • 이스라엘에 대한 의무를 단 한 번도 저버리신 적이 없었다.
  • 항상 그들을 눈동자같이 지켜 보호하셨으며, 그들을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셨으며, 어떠한 권리나 자격도 없는 그들에게 가나안 복지를 유업으로 주셔서 지금까지 누리게 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 끊임없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저버렸으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상을 승배하고 이방 사람들의 악을 따라 행하며 살아 왔다.

그래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체결하였던 언약은
 이스라엘의 일방적 의무 불이행으로 인해 그 효력을 상실할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 이에 히스기야는 이스라엘의 마음을 다시금 새롭게 하여 하나님과의 언약을 갱신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언약 갱신을 요구한 이유

  • 고대 근동의 언약 체결식에서는 송아지를 완전히 두 동강낸 후 언약외 당사자들이 그 쪼개져 있는 송아지 사이를 걸어감으로써 언약을 체결하였다(렘 34:18).
  • 이처럼 쪼개진 송아지를 보면서 — 그들은 언약을 자르는 것으로 표현하였던 것.

그런데 송아지를 쪼갱으로써 언약을 체결한 것에 담긴 의미

  • 만약 언약 당사자 중 한 사람이 언약을 어길 경우, 그 어긴 사람은 송아지처럼 쪼개질 것이라는 사실을 가슴에 새겨 어떠한 일이 있어도 언약을 지키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 히스기야 왕은 제사장 및 레위 사람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재확인하고 그들이 앞으로 다시는 하나님을 저버리지 않기률 촉구하는 차원에서 언약을 갱신하고자 했던 것이다.

 

언약을 갱신하여 현재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는 하나님의 분노를 사라지게 한다는 것의 전제

  • 바른 길로 돌아오려는 자들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더 이상 처벌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 바른 길로 돌아왔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분노를 거두지 않으신다면 하나님의 분노는 정당성을 상실하는 것이다.
  • 따라서 본문의 히스기야외 말은 근거 없는 희망을 피력한 것이 아니라, 확실한 사실을 선언한 것이었다.

4. 그는 레위인과 제사장들에게 그들의 의무를 행하라고 촉구했다.

그의 연설은 이 이야기로 시작되고(5절) 끝났다(11절).

  • 그는 그들이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상기할 수 있도록 "레위 사람" 이라 불렀다.
  • 자기와의 관계를 상기시키기 위해 자기의 "아들들" 이라 불렀다.
  • 그리하여 그는 그 나라를 바로 잡기 위해 "그들이 아버지와 함께 아들로서 수종들어 여호와를 섬기기를 원했다."

(1) 그는 그들의 의무로 제일 먼저(그들이 의무를 소홀히 한 것을 회개하고, 그들 자신의 마음과 생활을 바로 잡고, 앞으로는 그들의 의무를 좀 더 잘 행할 것을 하나님과 다시 언약함으로써) "그들 스스로" 를 성결케 하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전을 성결케" 하는 것, 곧 악용이나 신성 모독으로 인하여 더럽혀진 성전을 다시 깨끗게 하며 원래의 목적에 합당하도록 다시 세우는 것이라고 했다.

(2) 그는 그들에게 그 일을 촉구했다(11절).

"이제는 게으르지 말라. 또한 너의 의무를 잘못 행하지 말라. 이 선한 사업이 너희의 부주의함으로 인하여 지체되도록 하지 말라." 난외에는 다시는 "속지 말라" 로 되어 있다. 하나님의 일을 게을리 함으로써 하나님을 비웃고 그를 속이려고 하는 자들은 바로 자기들을 속이는 것이며, 그들의 영혼을 속여 저주하는 것임을 기억해 두자.

또 혹자는 그 일을 행하지 아니하고서도 어떤 위험을 당하지 않는다거나 위급한 일이 없으리라고 "방심치 말라" 는 뜻으로 본다. 사람들이 믿음을 게을리 하게 되는 것은 육신적인 방침 때문이다.


💡 29:11 내 아들들아 이제는 게으르지 말라 여호와께서 이미 너희를 택하사 그 앞에 서서 수종들어 그를 섬기며 분향하게 하셨느니라

내 아들들아 이제는 게으르지 말라

  • 성전이 폐쇄되었고, 성전의 제사 도구들이 훼파되었으며, 제사가 끊어진 상황에서 히스기야 는 여호와 신앙 회복을 향한 마옴이 매우 급했다. 본문은 이러한 히스기야의 간절한 마음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 ‘게으르지 말라'
    • 현재적이고 즉각적인 금지 명령의 의미를 나타낸다.
    • 즉 본문은 게으르지 말되 바로 지금 그렇게 해야 한다는 히스기야의 절박한 심정을 잘 표현해 주고 있는 것.
    당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영적 상태
    • 성전에서 마땅히 여호와를 섬기는 일에 전적으로 헌신해야 할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아하스 왕의 불신앙에 휘둘려 자기들의 책무를 오랫동안 태만히 해왔었다.
    • 그러한 이유로 그들은 자신들의 직무를 게을리 하면서도양심의 가책을 전혀 받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 이에 히스기야는 바뀐 현실을 직시하도록 하면서, 그들에게 본래의 자리로 속히 돌아가도록 촉구타고 있는 것.

‘내 아들들아’

  • 히스기야는 본문에서 이들 레위 지파 사람들을 가러켜 '내 아들들아'라고 칭함.
  • 이는 히스기야가 이들 거룩한 직무를 감당하는 레위 지파 사람들 및 제사장들과 — 얼마나 친밀해지고 자 노력했는지를 반영해 준다.

  • 왕인 히스기야가 자신들을 대하여 ‘내 아들들아'라고 청하는 말을 들은 제사장들과 레위 지파 사람들은
    → 커다란 격려를 받았을 것이다.
  • 분명 이들은 오랫동안 아하스 의 악정으로 인해 성전 문이 닫히고 제사 제도가 중단되는 비극을 경험함으로 인해
    → 당시 그들이 마땅히 감당해야 할 거록한 특권을 감당함에 있어 심각하게 위축되었을 것이다.
    이런 그들에게 있어 히스기야의 권고와 친밀감 넘치는 표현은 그들을 격려하고 본래의 자러로 돌아가도록 하는 데 있어 커다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가 그들에게 깨우쳐 준 것은 그들의 직무에 대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 직무를 통해 그들을 영예롭게 하셨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택하사 그 앞에 서게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이 일해줄 것을 기대하셨다. 그들은 게을리 행하거나 권세를 즐기거나 의무를 남에게 맡기라고 택함받은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수종들어 섬기게 하기 위해 택함받은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지난 실책을 부끄러이 여길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성전 문이 다시 열리게 되었으니 몇 배나 더 근면하게 임무에 착수해야 했다.


💡 11절, 여호와께서 이미 너희를 택하사 그 앞에 서서 수종들어 그를 섬기며 분향하게 하셨느니라

레위 사람들이 여호와를 섬기는 데에 게을러서는 안되는 이유

  • 이스라엘은 많은 민족 가운데서 여호와의 특별 한 선택을 받은 민족이며, 그 가운데서도 레위 사람들은 여호와를 가까이에서 전적으로 섬기도록 선택을 받은 지파이고, 그 가운데서도 제사장둘은 온 백성을 대신하여 여호와께 제사드러는 일을 위해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다.
  • 이러한 측면에서 그들에게 주어진 직무, 즉 여호와 앞에 서서 수종 들어 섬기며 분향하는 일은 부담스런 의무이기보다 그들이 가진 거룩한 특권이었다.
  • 따라서 이와 같은 언급을 통해 히스기야는 제사장들과 레위 지파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맡기신 복된 특권을 성실히 수행해 나갈 것을 독려하는 것이다. 

정결해진 성전(역대하 29:12-19)

여기서는 여호와의 전을 정결케 하는 그 긴요하고 선한 사업을 분주히 진행하는 사실을 보게 된다.


💡 서론

앞선 3-11절

  • 유다의 제13대 왕위에 오른 허스기야의 성전 숙정을 촉구하는 명령이었다.

뒤이어 계속되는 12-19절까지는

  • 이와 같은 히스기야의 성전 숙정 명령에 따라 레위 사람들과 제사 장들이 성전을 정화한 사실에 대한 보도이다. 

Ⅰ. 이 일을 맡게 된 사람들은, 성전을 성결케 해야 할 의무가 있으나 여지껏 이 일에 관심을 갖지 않았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었다.

일을 맡은 레위인들의 명단이 몇 개 나와 있다. 즉 레위 지파의 주요 세 집안(12절)인 고핫, 게르손 그리고 므라리 가(家)와 찬송을 맡았던 집안(13, 14절) 곧 아삽 헤만 여두둔 가(家)에서 뽑힌 각각 두 사람 씩의 이름이 나와 있다. 우리는 이들이 단지 그 직책상의 우두머리였기 때문에 여기에 이름이 나와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그렇다면 물론 대제사장이나 제사장의 반차에 의한 우두머리들이 언급되어졌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직 이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열성적이고 적극적이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하실 필요한 일이 있을 때는 하나님께서 친히 그 일을 주관할 지도자를 세우실 것이다. 직책이나 지위가 가장 높은 사람이라고 해서 언제나 일에 가장 합당한 것은 아니며, 또한 그들만이 가장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레위인 자신들도 분발했을 뿐만 아니라 "그 형제를 모아 왕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명한 것을 행하도록 촉구했다." 그들은 왕의 명령대로 행하되 또한 하나님의 말씀도 염두에 두었다는 사실을 주목하자. 왕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이미 그들의 의무가 된 것만을 그들에 명했으며 그들은 일을 행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규율로 삼고 왕의 명령을 자극제로 삼아 해 나갔다.


 💡 29:12 이에 레위 사람들이 일어나니 …

‘이에’ 레위 사람들이 일어나 (와이야쿠무 ..)

  • 본절의 첫 단어는 '와이야 쿠무'.
  • 이 단어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의미 심장한 내용이 들어 있다.
  1. 와우 계속법
    • 이는 레위 사람들이 히스기야의 성전 숙정 명령 에 직접적으로 반응하여 즉각적으로 행동을 취하였음을 나타낸다.
    • 그들은 히스기야의 건실되고 호소력 있는 개혁 촉구 명령에 깊은 감화 감동을 받아 그 자리에 그냥 그대로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2. ‘와이야쿠무’의 원형 — ‘쿰’
    • 이 단어는 기본적으로 누워 있거나 앉아 있는 자리에서 일어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 이러한 측면에서 이 단어는 잠자리에서 일어 나는 것을 나타내는 '와캄'이나 그 자리에 서 있는 상태를 나타내는 '아마드’ 와 유 사하다.
    • 하지만 ‘쿨'이라는 단어에는 이 두 단어가 가지고 있지 않은 비유적 의미가 더 포함되어 있다.
      즉 이 단어에 담긴 비유적 의미는,
      • 어떠한 행동을 취하기 위한 준비적 행동,
      • 중요한 일을 시작하기 위해 결단하는 태도 등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창 35:1).
    • 본문에서도 이와 같은 비유적 의미를 염두에 두고 이 단어를 사용하였음이 분명하다.
      • → 즉 성전 동편 광장에 모여서 히스기야의 성전 숙정 촉구 연설을 듣고 있던 레위 사람들은
      1. 개혁을 수행하기 위해 단호한 결심을 하고,
      2. 곧바로 행동으로 옮겼던 것이다. 

 


❖ 12-16절 : 레위 사람들과 그 형제들 및 제사장들의 성전 정화 실행

💡 29:12 곧 그핫의 자손 중 아마새의 아들 마핫과 아사랴의 아들 요엘과 므라리의 자손 중 압디의 아들 기스와 여할렐렐의 아들 아사랴와 게르손 사람 중 심마의 아들 요아와 요아의 아들 에덴과

29:13 엘리사반의 자손 중 시므리와 여우엘과 아삽의 자손 중 스가랴와 맛다냐와

29:14 헤만의 자손 중 여후엘과 시므이와 여두둔의 자손 중 스마야와 웃시엘이라

성전 숙정에 앞장선 14명의 레위 사람들

‘그핫’ 자손, 므라리 자손, 게르손 자손.

  • ‘그핫’ : 레위의 둘째 아들 가문.
  • 므라리 : 레위의 셋째 아들 가문.
  • 게르손 : 레위의 장남의 후손 가문.

엘리사밧 자손

‘엘리사밧' : ‘나의 하나님께서 보호하셨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 엘리사밧이라는 인물은 — 고핫의 직계 자손 웃시엘의 아들로서 그핫 종족의 족장의 지위를 물려받았다(민3:27,30).
  • 그의 후손들은 성막의 일 중에서도 언약궤와 상과 등대와 단들과 성소의 기구들과 휘장과 그것에 쓰는 모든 도구들을 맡아 관리하였다(민 3:31).

아삽 자손

  • ‘아삽’ : ‘모으는 사람'이란 의미를 지닌 인명이다.
    • 그는 레위의 장남인 게르손의 후손,
    • 성전에서 찬송하는 직무를 맡은 자(대상 6:39-43).
    • 그는 다윗과 더불어 많은 시편을 남긴 인물로서도 유명하다(시 73-83편).

헤만의 자손

  • ‘헤만’ : ‘신실한’ 이란 뜻
  • 레위의 둘째 아들인 고핫의 후손.
  • 아삽과 더불어 성전에서 찬송하는 직무를 맡았었다(민 6:33-38).
  •  

여두둔의 자손

  • ‘여두둔’ : ‘칭찬’, ‘찬송’
  • 레위의 셋째 아들인 므라리의 후손.
  • 다윗의 궁중 찬양을 맡은 자, ‘에단'으로도 불리운다(대상 6:44-47). 


Ⅱ. 그 일은 "하나님의 전을 깨끗게 하는 것" 이었다.

  1. 그들은 성전이 닫혀 있는 동안 쌓였던 먼지나 거미줄 그리고 기구에 낀 먼지를 제거했다.
  2. 그 안에 세워진 우상과 우상의 제단을 제거했다. 비록 우상과 그 제단이 말끔히 간수했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성읍의 오물보다도 더 성전을 더럽게 한 것이었다.
    이 일을 선두자로 나서서 한 제사장들의 이름은 하나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성전을 정결케 하기 위해 그 안으로" 감히 들어갔던 자들은 바로 그들이었다. 그리고 아마 지성소에 들어가서 그곳을 정결케 한 자는 대제사장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비록 레위인들은 이 성전 청소 일을 지휘할 만한 영예를 가지고 있었지만, 직무상 제사장들의 종이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제사장들이 뜰로 가져온 더러운 것들을 기드론 시내로 날랐다. 아무리 유능한 자라도 자기들이 해야 할 자기들의 처지를 잊어서는 안 된다.

💡 29:15 그들이 그들의 형제들을 모아 성결하게 하고 들어가서 왕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명령한 것을 따라 여호와의 전을 깨끗하게 할새

  • 앞서 12-14절에 언급된 14명 뿐 아니라 ‘그 형제'로 표현되는 다른 레위인들도 성전 정화 사역에 동참시켰다.
  • 더불어 왕의 명령이 — 자신의 뜻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에 따라 한 것이었다.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의 성전 정화 사역의 성격 = ‘성결’

  • 이는 본절부터 19절 사이에 ‘성결케 하다', ‘깨끗케 하다'라는 단어가 — 모두 7번 사용되었다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성결케 하다’, ‘깨끗하게 하다’의 영적 의미 2가지

  1. 첫째, 더러운 것을 깨끗게 하는 것이 개혁의 핵심이다.
    1. ‘성결케 하고’ (와이테캇데슈) 의 원형 ‘카다쉬’
      1. 기본적으로 모든 세속적인 것들로부터 구별하여 신적 용도에 합당하게 헌신한다는 의미.
      2. 따라서 이 단어는 지극히 의식적이고(ritual) 도덕적인 (moral) 뉘앙스를 지님.
      3. 본문에서는 '카다쉬'가 재귀형(Hithpael)으로 쓰였으며,
        → 이는 14명의 레위 사람 대표들에 의해 모인 모든 형제들이 그들과 더불어 스스로를 1)세속의 모든 더러움으로부터 철저하게 분리시켜, 2)하나님께 새롭게 헌신하였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 이는 그 때까지 레위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성을 지키지 못하고 세속에 물들어 살아왔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2. ‘깨끗케 할새’ (’레타헤르’) 의 원형 ‘타헤르’

      1. ‘순결한’, '순수한', ‘티없이 깨끗한'이라는 의미의 어원에서 유래한 단어
      2. 특히 정결례를 나타내는 데 자주 쓰인 단어.
        • 구약 78회의 용례 중에서 레위기에 35회 사용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 준다.
      3. 본문에서는 강의 능동형(Piel)으로 사용되었다.
        • 동일하게 강의 능동형으로 사용된 용례 중 에서 말 3:3에서는 변색된 은을 문질러 본래의 색깔로 되돌아오게 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 본문의 경우,
          • 성전을 깨끗케 하는 과정에서 탈색된 기구들을 깨끗하게 닦았으며,
          • 더 나아가서는 영적으로 성전을 더럽혔던 모든 우상의 도구들을 치워버린다는 의미도 내포.
  1. 둘째, 당시 정화 사역의 완전성.
    • 15-19절에 ‘카다쉬'와 '타헤르' 가 모두 일곱 번 사용되었다.
    • 히브러 사람들에게 있어서 7은 완전수로서 특별한 의미를 내포한다.
    • 21절에 보면, 성전 정화를 마친 후 드리는 속죄제의 제물로 바쳐지는 네 가지 동물들이 각각 일곱 마리씩 선정된다.
      • 히스기야는 속죄제를 완전하게 수행하려는 마음에서 의도적으로 네 가지 동물들을 각각 일곱 마리씩 잡았으며,
      • 본서의 저자 역시 당시 성전 정화 사역의 완전성을 강조하기 위해 ‘카다쉬'와 ‘테헤르' 란 단어를 모두 일곱 번 사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

성전 개혁의 핵심은?

  • 이상의 ‘카다쉬'와 '타헤르' 라는 단어를 통해서 보았듯이
  • 성전 개혁의 핵심은
    • 세속에 물들고 부정케 된 것들을 성결케 하는 것.
  • 그 성결의 대상은
    • 성전에서 수종드는 모든 사람들과 성전 자체.
  • 성결의 순서는
    • 사람과 성전 순.
    • 레위 사람들은 히스기야의 명령대로(5절)
    • 1) 그들 자신을 거룩하게 한 후에,
      2) 성전을 정화하였던 것이다.

💡 29:16 제사장들도 여호와의 전 안에 들어가서 깨끗하게 하여 여호와의 전에 있는 모든 더러운 것을 끌어내어 여호와의 전 뜰에 이르매 레위 사람들이 받아 바깥 기드론 시내로 가져갔더라

레위 사람들에 이어 제사장들도 성전을 정화함.

  • 특별히 본서 저자는 그들이 ‘여호와의 전 안에' 들어갔음을 밝힘
  • ‘여호와의 전 안에 들어갔다' = 성소와 지성소에 들어갔다.
    이곳은 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었으므로 성전 뜰의 정화는 레위인들이 감당한 반면,
    → 성전 내부의 정화는 제사장들이 감당했던 것이다.

모든 더러운 것을 끌어내어

  • 더러운 것 = 모든 종교적 불결.
    • 구약의 29회 용례 중에서 레위기에 12 회 사용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 본문에서는 성전에 있어서는 안될 우상 및 그것과 관련된 모든 제사 도구들을 지칭.

기드론 시내로 가져갔더라

  • ‘기드론 시내’
    • 문자적으로 '어두 컴컴한 골짜기'라는 의미.
    • 예루살렘과 그 동편 감람산 사이에 있는 이 골짜기는 우기시에는 급류가 흐르나 건기시에는 물이 없는 와디(Wadi)의 일종.
    • 옛적에 다윗이 그 아들 압살롬을 피해 울며 건넌 골짜기가 바로 이 기드론 시내(삼하 15:13,20).

성경에서 기드론은 무엇보다 본문과 같은 개혁 작업이 있을 때 자주 등장하는 곳.

  • 아사 왕
    • 개혁을 수행할 때 태후 마아가가 만들어 섬기던 아세라상을 찍어 그곳에 버렸으며(15:16 :왕상 15:13),
  • 요시야 왕
    • 역시 므낫세로 인해 더러워진 성전을 개혁하면서 모든 우상을 그곳에 버리고 불살랐다(왕하 23:6).
  • 마찬가지로 당시 레위 사람들도
    • 본문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성전을 더럽히던 온갖 부정한 것들과 우상 숭배의 잔재들을 모아 기드론 시내에 버렸던 것이다. 

❖ 17절 : 히스기야 성전 정화의 전과정

Ⅲ. 그들이 이 일을 위해 세운 계획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그들은 한 해가 시작되는 날, 제1월 1일에 착수했다. 그날은 복된 한 해를 약속해주는 날이다. 이처럼 해마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고 지난 해에 범해진 모든 불경한 일들을 참된 회개로써 깨끗하게 함으로 출발해야 한다. 그들은 8일 동안 성전을 깨끗이 치우고, 그 다음 8일 동안은 성전의 "낭실" 을 치웠다(17절). 선한 사업을 하는 자는 일을 끝마치고 성취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잘못된 일은 빨리 바로 잡도록 하자.


💡 29:17 첫째 달 초하루에 성결하게 하기를 시작하여 그 달 초팔일에 여호와의 낭실에 이르고 또 팔 일 동안 여호와의 전을 성결하게 하여 첫째 달 십육 일에 이르러 마치고

  • 모두 16일이 걸림.

본서 저자가 이처럼 성전 정화 사업의 시작 시점과 진행 과정과 종결 시점을 일파로 명시한 이유는?

  • 이 일이 치밀한 계획에 따라 조직적으로 진행되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 ‘마치고’

  • ‘킬루’ : ‘칼라’의 강의 능동형
    • ‘칼라’ : 어떠한 일을 완전히 기진맥진할 때 까지 수행하여 부족함 없이 완성하는 것.
  • 그러므로 당시 성전 정화는 모두 16일에 걸쳐 조금의 착오도 없이 완전하게 수행되었다. 

❖ 18-19절 :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왕의 명령에 따른 후 보고함

Ⅳ. 그들이 히스기야에게 전한 보고는 매우 합당한 것이었다(18, 19절).

자기들이 행한 것들을 그에게 알려 주었다. 그들에게 그 일을 착수하도록 만든 자가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배려와 수히스기야 왕이 드린 제사(역대하 29:20-36)


💡 29:18 안으로 들어가서 히스기야 왕을 보고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의 온 전과 번제단과 그 모든 그릇들과 떡을 진설하는 상과 그 모든 그릇들을 깨끗하게 하였고

그들이 성전 정화에 최선을 다했으며 그 결과가 만족스러웠다

  • 이 사실은 본문의 단어 ‘티하르누'가 '깨끗하다'라는 의미의 동사 '타헤르'의 강의 능동형(Piei) 완료 동사란 점에서 잘 드러난다.
    • 즉 강의 능동형을 사용 — 성전 정화 사실을 강조하고
    • 완료형을 사용 — 성전 정화를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완결시켜 수행하였옴을 나타내고 있는 것.

이처럼 본문은 성전 개혁을 향한 그들의 자세가

  • 얼마나 진지하고 그들의 열정이 얼마나 뜨거웠었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 29:19 또 아하스 왕이 왕위에 있어 범죄할 때에 버린 모든 그릇들도 우리가 정돈하고 성결하게 하여 여호와의 제단 앞에 두었나이다 하니라

  • 본문을 직역하면 '그리고 보소서 그것들이 여호와의 단 앞에 있나이다(NASB, and behold, they are before the altar of the Lord)'.

한글 개역 성경에서는 번역하지 않은 '웨힌남’

  • 독자나 청자들외 주의를 집중시키기 위해 사용되는 관용적 표현.
  •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히스기야 왕에게 성전 개혁을 완수한 사설을 보고하면서 이 단어를 사용한 것은
    → 이 모든 일을 흡족하게 수행하였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

  • 사실, 히스기야 왕은 성전에서 더러운 것들을 다 내다 버리고 깨끗하게 하라는 지시는 하였지만, 아하스 왕이 버린 성전 기구들을 본래의 자리에 되둘려 놓으라는 지시는 하지 않았다.
  • 그러나 레위 사람들 제사장들은 — 성전에서 더러운 것들을 내다 버러는 것만으로 성전 개혁이 완수된다고 여기지 않았다.
    → 그들은 비어 있는 그 자리를 본래의 성전 기구들로 채울 때 성전 개혁 작업도 완수된다고 믿었으며,
    → 이로 인하여 그 일을 자발적으로 수행하였던 것.
  • 이때 그들이 가져다 놓은 기구들은?
    • 놋번제단(왕하 16:14), 물두멍, 놋바다(왕하 16:17) 등.
    • 그들은 바로 자신들의 그러한 행위를 강조하기 위해 '웨힌남' 즉 '그리고 보소서' 라는 표현으로 왕의 주의를 끌었던 것. 

💡결론
우리가 본문을 통해 주목할 사실.

저자는 히스기야의 통치 기사를 본격 시작하면서 다른 무엇보다도 그의 성전 정화 사업부터 다루고 있다.
→ 이것은 히스기야가 여호와 신앙의 회복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히스기야가 이렇게 여호와 신앙의 회복을 중요하게 여긴 이유는 무엇일까?

  1. 그것은 우선 6-10절에 나타난 히스기야의 연설을 통해 알 수 있듯, 그가 부왕 아하스 시대에 남유다에 닥친 재앙의 원인이 아하스의 우상 숭배와 하나님 배반에 있음을 깨달은 까닭이다.
  2. 그러나 여기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히스기야가 유다의 왕으로 즉위한 때는 북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한 지 불과 10년이 되지 않은 때이다.
    그리하여 히스기야는 같은 하나님의 선민의 자손인 북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망하게 된 원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원인을 찾던 중 북이스라엘의 우상 숭배와 하나님 배반에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이에 히스기야는 남유다 또한 여호와 신앙을 속히 회복하지 않는다면 북이스라엘의 운명을 따르게 될 것임을 직시하고, 무엇보다도 여호와 신앙 회복을 위한 일차 단계로서 그 아비에 의해 더럽혀진 성전을 정화하는 일부터 한 것이다.
    결국 그의 이러한 노력의 결과 남유다는 북이스라엘이 망한 뒤로도 약 140년 간이나 더 존속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