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열왕기하 10, 디모데후서 1, 호세아 2, 시편 119:97~120
묵상구절
29:20 히스기야 왕이 일찍이 일어나 성읍의 귀인들을 모아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서
29:21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와 어린 양 일곱 마리와 숫염소 일곱 마리를 끌어다가 나라와 성소와 유다를 위하여 속죄제물로 삼고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을 명령하여 여호와의 제단에 드리게 하니
29:22 이에 수소를 잡으매 제사장들이 그 피를 받아 제단에 뿌리고 또 숫양들을 잡으매 그 피를 제단에 뿌리고 또 어린 양들을 잡으매 그 피를 제단에 뿌리고
29:23 이에 속죄제물로 드릴 숫염소들을 왕과 회중 앞으로 끌어오매 그들이 그 위에 안수하고
29:24 제사장들이 잡아 그 피를 속죄제로 삼아 제단에 드려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속죄하니 이는 왕이 명령하여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게 하였음이더라
29:25 왕이 레위 사람들을 여호와의 전에 두어서 다윗과 왕의 선견자 갓과 선지자 나단이 명령한 대로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잡게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선지자들로 이렇게 명령하셨음이라
29:26 레위 사람은 다윗의 악기를 잡고 제사장은 나팔을 잡고 서매
29:27 히스기야가 명령하여 번제를 제단에 드릴새 번제 드리기를 시작하는 동시에 여호와의 시로 노래하고 나팔을 불며 이스라엘 왕 다윗의 악기를 울리고
29:28 온 회중이 경배하며 노래하는 자들은 노래하고 나팔 부는 자들은 나팔을 불어 번제를 마치기까지 이르니라
29:29 제사 드리기를 마치매 왕과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다 엎드려 경배하니라
29:30 히스기야 왕이 귀인들과 더불어 레위 사람을 명령하여 다윗과 선견자 아삽의 시로 여호와를 찬송하게 하매 그들이 즐거움으로 찬송하고 몸을 굽혀 예배하니라
29:31 이에 히스기야가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제 스스로 몸을 깨끗하게 하여 여호와께 드렸으니 마땅히 나아와 제물과 감사제물을 여호와의 전으로 가져오라 하니 회중이 제물과 감사제물을 가져오되 무릇 마음에 원하는 자는 또한 번제물도 가져오니
29:32 회중이 가져온 번제물의 수효는 수소가 칠십 마리요 숫양이 백 마리요 어린 양이 이백 마리이니 이는 다 여호와께 번제물로 드리는 것이며
29:33 또 구별하여 드린 소가 육백 마리요 양이 삼천 마리라
29:34 그런데 제사장이 부족하여 그 모든 번제 짐승들의 가죽을 능히 벗기지 못하는 고로 그의 형제 레위 사람들이 그 일을 마치기까지 돕고 다른 제사장들이 성결하게 하기까지 기다렸으니 이는 레위 사람들의 성결하게 함이 제사장들보다 성심이 있었음이라
29:35 번제와 화목제의 기름과 각 번제에 속한 전제들이 많더라 이와 같이 여호와의 전에서 섬기는 일이 순서대로 갖추어지니라
29:36 이 일이 갑자기 되었으나 하나님께서 백성을 위하여 예비하셨으므로 히스기야가 백성과 더불어 기뻐하였더라
매튜헨리/옥스퍼드
●히스기야 왕이 드린 제사(역대하 29:20-36)
❖ 서론
💡 성전 정화 사역의 과정과 완성에 대한 기록인 12-19절에 이어지는 20-36절
- 새롭게 된 성전에서, 히스기야 주도로 범국가적 속죄제를 드리며 성전 제사를 회복한 사실에 대한 보도.
이는 히스기야를 중심한 온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다시금 헌신을 다짐하는 중요한 내용.
- 즉 본단락의 내용은 이스라엘이 그 동안 소홀히 했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함으로 언약을 갱신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 20-30절
- 이러한 재헌신과 관련해 본서 저자는 먼저 지도자들, 즉 왕을 비롯한 제사장과 귀인들의 헌신의 장면을 묘사한다(20-30).
- 31-36절
- 백성들이 가져 온 제물을 드리는 장면을 묘사함으로
- — 전이스라엘이 다시금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회복에 나섰음을 다루고 있다(31-36).
❖ 20-24절 : 온 이스라엘을 위한 속죄제
성전이 깨끗케 되자, 곧 선한 사업을 위해 사용되는 이야기를 여기에서 읽게 된다.
히스기야 왕이 성전에다가 성회를 소집한 것은 바로 그 다음 날이었다(20절).
예루살렘에 있던 선한 백성들은 모두 기뻐하면서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시 122:1)고 말했을 것이 분명하다. 히스기야는 성전이 준비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조금도 지체함이 없이 자기가 준비한 일을 시작했다. 그는 일찍 일어나 여호와의 집으로 갔다. 그는 다른 날보다 더 일찍 일어났다는 것은 그 일에 온 마음을 기울이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 29:20 히스기야 왕이 일찍이 일어나 성읍의 귀인들을 모아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서
- 이같이 감격스런 제사와 경배는 성전 정화 사역이 완수된 다음날 일찍부터 시작되었다.
일찍이 일어나
- 원형 ‘솨캄’ : 12절의 ‘일어나다’로 번역된 ‘쿰’과 달리 아침 일찍 잠에서 깨어 일어나는 것을 나타내는 동사(창 19:2). → 그러므로 본문에는 어떤 결단의 뉘앙스가 나타나 있지 않다.
- 본서 저자가 문자적 의미와 비유적 의미를 모 두 지니고 있는 '쿰'을 사용하지 않고, 문자적 의머만 지니고 있는 '와캄'을 사용하여 히스기야 왕의 일어남을 묘사한 것은
→ 새롭게 정화된 성전에서 여호와께 제사드러고자 하는 그의 결단이 그 날 아침에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닌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하기 위함이다. - 성전 정화 사역이 장장 16일에 걸쳐 완성되자 그는 오래 전부터 간절히 마음에 소원했던 바를 실현시키고자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그 일을 이행하였던 것이다.
성읍의 귀인들을 모아
- 예루살렘성에서 가장 높은 머리인 히스기야 왕을 제외한 예루살렘의 여러 관할 구역의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이나 왕의 측근인 유력자들.
- 이들은 예루살렘 성읍 백성들을 대표하는 인물들로서 성전 제사에 참여하였다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서’
- 원형 ‘알라’ : 기본적으로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다(go up)'라는 의미.
- 저자가 이 단어로써 히스기야가 성전으로 나간 사실을 나타낸 것은
— 여호와의 이름이 머물러 있는 곳이자 여호와 임재의 상징적 처소인 성전에 대한 경의를 표현하기 위함이었다.
이에 이 날의 일을 두 가지 면에서 살펴보자.
Ⅰ. 첫째 지난 통치 때에 지은 죄를 속죄해야만 했다.
죄를 슬퍼하며 떠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속죄 제물을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회개와 개심도 우리를 위해 죄를 짊어지신(즉 속죄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다. 그의 피를 통하지 않고서는 어떤 회개자도 하나님과의 화목을 얻을 수 없다.
다음을 살펴보자.
1. 속죄 제물은 "나라와 성소와 유다를 위해" 드린 것이었다(21절).
다시 말해서 방백들과 제사장, 그리고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 모두가 타락했기 때문이다. 모세의 율법은 모든 회중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제물을 바치라고 명하였다(레 4:13, 14; 민 15:24, 25). 그것은 그 민족의 죄로 인하여 민족 전체가 받을 심판을 면하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우리도 각자의 죄를 사하며 구원해 주실 뿐만 아니라 중보자가 되시는 그리스도께로 우리의 눈을 돌려야 한다.
💡 29:21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와 어린 양 일곱 마리와 숫염소 일곱 마리를 끌어다가 나라와 성소와 유다를 위하여 속죄제물로 삼고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을 명령하여 여호와의 제단에 드리게 하니
- 수년 동안이나 행헤지지 않던 여호와를 향한 성전 제사를 회복하면서 히스기야 왕은 수송아지 등 모두 스물여넓 마리의 동물을 속죄 제물로 드렸다.
여기에서 각 동물을 일곱 마 러씩 드렸다는 사실은 깊은 영적 의미를 지닌다.
- 히브리 사람들에게 있어서 '일곱' = ‘완전성’을 상징.
- 재물이 완전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일곱 마리씩의 동물들이 제사를 위해 취해졌다는 것은
⇒ 그 '제사' 자체가 완전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 히스기야 왕은 범국가적 속죄제를 하나님께 드리는 시점에서 완전한 제 사를 드리기를 원했고, → 이에 따라 제물들을 각각 종류별로 일곱 마리씩 취해 드렸던 것이다.
속죄제물로 삼고
- 본래 표적을 향해 무엇을 던졌는데 그것이 맞지 않고 빗나가는 것이나 정도에서 벗어나 그릇된 길로 치우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 이 단어의 용례
- 삿 20:16에서는 물맷돌을 던져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적중시킨다는 내용 중에 사용되었고,
- 잠 19:2에서는 발이 급하여 '길을 벗어난다'는 내용 중에서도 사용.
- 이 단어의 용례
- 문자적 의미 이외의 영적 의미
- 이 경우에는 하나님의 의로운 표준에 미치지 못하거나, 하나님의 뜻을 행치 않는 것,
= 즉 범죄를 나타냄(사 1:4).
- 이 경우에는 하나님의 의로운 표준에 미치지 못하거나, 하나님의 뜻을 행치 않는 것,
- ‘죄를 위하여’ ‘대신하여’
- 여기에서도 나타나듯이 당시 도살된 동물들은 모두 이스라엘 백성의 죄 때문에 희생된 속죄 제물들이었다. → 동물들이 대신 죽임을 당함으로써 죄인 둘의 죄가 속함을 받았던 것.
- 모든 죄인을 대신하여 거룩한 몸을 십자가의 희생 제물로 드림으로써 완전한 속죄를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완성•종결되었다(히 9.12; 10:12).
나라와 성소와 유다를 위하여
- 당시 제사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 및 그와 관련된 것을 포괄적으로 속죄하는 대대적인 제사였다
2. 율법은 속죄일에나(레 16:15) 이처럼 특별한 날에는(민 15:24) 속죄 제물로써 단 한 마리의 수염소를 바칠 것을 명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여기에서 일곱 마리나 제물로 바쳤다(21절). 그것은 회중의 죄가 매우 오랫동안 크게 범해진 때문이었다.
일곱은 완전 숫자이다.
우리의 위대하신 속죄자는 단 한 분이셨으나, "성결케 된 자들" 을 위해서 영원히 "완전하신 분" 이시다.
💡 29:22 이에 수소를 잡으매 제사장들이 그 피를 받아 제단에 뿌리고 또 숫양들을 잡으매 그 피를 제단에 뿌리고 또 어린 양들을 잡으매 그 피를 제단에 뿌리고
레위기에 규정된 제사법
- 제사장들이 수송아지의 피를 회막의 문 앞에 있는 제단 사면에 뿌리는 것이 맨 처음에 하는 일이다(레 1:5).
- 이처럼
- 피를 뿌리는 것은 = 정결케 한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 무죄한 대속 제물의 피가 제단에 뿌려짐으로써 → 죄인들이 정결케 되어 속함을 받게 된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피 뿌림이 예표하는 바,
-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상징,
-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 뿌림은 — 그 공로를 힘입은 죄인을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상 변화시킨다(벧전 1;2).
3. 왕과 "회중(곧 회중의 대표들)은 속죄 제물로 드릴 수염소 위에 안수했다" (23절).
그것은 그들이 스스로가 하나님 앞에서 유죄함을 시인하는 행위요, 죄인의 죄가 그 제물에게 전가되기를 바라는 뜻을 표명하는 것이다. 우리는 믿음으로써 예수 그리스도 위에 안수 할 때, "속죄함을 얻게 된다" (롬 5:11).
💡 29:23 이에 속죄제물로 드릴 숫염소들을 왕과 회중 앞으로 끌어오매 그들이 그 위에 안수하고
- 레위기 제사법에 있어 ‘안수’는 누가 해야 하는가?
속죄제를 드릴 때는 속죄를 받아야 할 사람이 속죄 제물에 안수를 하게 되어 있다(레 4:15, 24, 29).
본절에서는 왕과 회중이 숫염소 일곱 마리에 직접 안수를 하였다,
→ 그 숫염소들은 왕과 회중의 죄를 대신해서 제물로 드려졌던 것이다
안수하는 행위의 영적 의미 : 전가
- 제물에 안수하는 것은 안수하는 자가 자신의 죄를 안수받는 동물에 전가시킨다는 것을 의미.
- 그리하여 그 안수받은 동물이 헌제자 대신 피를 흘려 죄의 형벌을 받음으로써 — 그의 죄가 사하여진 것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속죄 제물들은 →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속죄를 예표하는 것들.
- 세례 요한은 이와 같이 구약에서 상징적으로 예표된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속죄 사역을 대망하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목격하자마자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칭하였다(요 1:29).
- 그리고 이와 같은 약속대로 죄 없는 완전한 제물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의 죄를 전가받아 그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그 피를 의지하는 자들을 위한 온전한 속죄를 이루셨다.
4. 속죄제와 함께 번제물로서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과 어린양 일곱" 을 바쳤다.
번제를 드린 의도는, 그들이 오직 한 분이신 참된 하나님으로 인정한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이 속죄제를 바쳐 속죄 받음과 동시에 이렇게 행한다는 것은 퍽 합당한 일이었다. 번제물의 피로 속죄 제물의 피처럼 유다 나라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24절) 하나님과 화목하고자 하여 "단 위에도 뿌렸다" (22절). 그리스도가 화목 제물이 되신 것은, 이스라엘의 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속하기 위한 것이었다(요일 2:1, 2).
💡 29:24 제사장들이 잡아 그 피를 속죄제로 삼아 제단에 드려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속죄하니 이는 왕이 명령하여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게 하였음이더라
‘온이스라엘’
- 유다와 이스라엘을 모두 포함한 표현.
- 히스기야 왕은 성전 정화 이후 제사를 개시하면서 단지 유다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모두를 위해서 속죄 제사를 드리게 하였던 것.
- 이는 북이스라엘 역시 여호와께 속한 언약 백성임을 히스기야가 인정하 였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속죄’하니
- 원형 ‘카파르’ : ‘덮다’, ‘덮어 가리다’ 란 의미의 아람어에서 유래.
- 종교적 측면에서 사용될 때는 죄를 덮어 가리우고 신의 분노를 달랜다는 의미.
- 이러한 의미의 단어가 히브리어 성경에 채용되면서
⇒ 제사를 통해 하나님의 분노를 달랜다는 의미로 사용.
- 혹자는 제물을 태우는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면서 그 연기가 하나님의 눈을 가리워 백성들의 죄를 보지 못하게 한다고 주장하나, 이러한 개념은 이방의 미신적인 신 이해에서 나온 것이지 성경적인 것이 아니다.
- 히브리적 문화와 성경적 측면에서 ‘카파르'
= 속전(ransom)을 지불한다는 의미로 변경(출 29:37). - 속전 = 억압된 자를 자유롭게 하는 데 필요한 돈,
번제단에 올려 지는 동물 ⇒ 이스라엘의 죄를 위해 지불되는 속전의 역할. - 그리고 이러한 의식은 최종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었다.
그는 모든 죄인의 죄를 속하기 위한 속전으로 하나님께 드려졌던 것이다.
❖ 25-30절 : 번제의 회복과 규례에 따른 레위인들의 여호와 찬양 회복
💡 29:25 왕이 레위 사람들을 여호와의 전에 두어서 다윗과 왕의 선견자 갓과 선지자 나단이 명령한 대로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잡게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선지자들로 이렇게 명령하셨음이라
- 본절은 히스기야가 찬양대를 조직하면서 다윗 왕과 나단 및 갓 선지자가 명했던 규례를 따랐음을 보도.
다윗과 왕의 선견자 갓과 선지자 나단이 명령한 대로
- 명령한 대로 = ‘명령 안에서’
- 히스기야가 과거의 규정에 한치도 벗어남이 없이 따랐다.
- 원형 ‘미츠와’ : 일회성 명령 X. 법령으로 제정되어 모든 사람의 규범이 되는 명령을 의미(출 20:6).
- → 즉 다윗 당시 다윗과 선지자들에 의해 성전에서 찬양하는 것에 관한 규범이 제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 히스기야 왕은 레위 사람들을 성전에 세우되,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잡는 사람들을 각각 분야별로 위치를 지정하여 세웠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선지자들로 이렇게 명령하셨음이라
- NASB는 ‘왜냐하면 그 명령은 여호와로부터 그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왔으므로(for the command was from the Lord through His prophets)’ 의역.
- ‘~의 손을 통하여’
- 다윗 왕이 제정하였던 찬양대에 관한 규범은
- 그 기원이→ 여호와께 있으며,
- 전달 통로는 → 갓 선지자와 나단 선지자였다.
- 즉 이는 다윗 왕이
독자적으로만든 것이 아니라 신적 기원을 가진 것이다
- 다윗 왕이 제정하였던 찬양대에 관한 규범은
💡 29:26 레위 사람은 다윗의 악기를 잡고 제사장은 나팔을 잡고 서매
‘제사장은 나팔으 잡고 서매’
- 히브리 사회에서 종교적 용도로 나팔을 잡고 부는 일은
→ 전통적으로 제사장의 직무, 그것은 여호와 께서 그렇게 명하셨기 때문이었다(민 10:8). - 따라서 제사장 외에 종교적 용도로 나팔을 부는 것은 불법이었다.
제사장들이 나팔을 부는 경우
- 절기와 월삭 및 제사를 드릴 때.
- 이렇게 나팔을 불 때 여호와께서는 길게 울려 퍼지는 나팔 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기억하여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을 약속하셨다(민 10:9,10).
- 히스기야 왕은 이러한 율법 규정을 따라
— 나팔을 제사장들에게 맡겼고,
— 그들로 하여금 나팔을 불게 함으로 하나님의 회복을 구하도록 했던 것이다.
‘다윗의 악기'
- 이는 본서 저자가 앞서 소개했던 바 다윗이 종교 제의를 위하여 만들었던 비파, 제금, 수금 등의 악기를 가리킨다(대상 23:5).
💡 29:27 히스기야가 명령하여 번제를 제단에 드릴새 번제 드리기를 시작하는 동시에 여호와의 시로 노래하고 나팔을 불며 이스라엘 왕 다윗의 악기를 울리고
- 본절은 히스기야가 명하여 번제를 단에 드리게 하고, 그것이 시작되는 동시에 여호와의 시로 찬양하고, 나팔과 다윗의 악기가 연주되는 장엄한 광경이 펼쳐졌음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여호와의 시로 노래하고
- 직역하면 '여호와를 향한 노래가 역시 시작되었다(NASB, the song to the Lord also began)’
번제 드리기를 시작하는 동시에
- ‘시작하는’ (헤헬) : 원형 ‘할랄’
- 본래 구멍을 뚫는다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
- 이런 어원에서 '깨뜨리다'(시 89:32), ‘상하게 하다'(시 109:22)라는 의미가 파생되었으나, 특별히 본절에서는 정적을 깨뜨리고 무언가 시작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 즉 번제를 드리기를 시작하는 동시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노래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 노래 소리는- 마치 오랫동안 세상을 어둡게 했던 먹구름을 찢고 찬란한 태양빛이 땅에 쏟아지듯이,
- 수년 동안 우상 숭배와 죄악으로 어두워졌던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과 유대 백성들의 마음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럼자를 거두어 내면서 아름답게 울려퍼져 나갔을 것이다.
5. 희생 제물이 제단에서 타는 동안, "레위 사람" 은 다윗과 아삽이 지은 시로(30절) "여호와를 찬송" 했으며, 그들은 하나님께서 선견자를 통해 사용하도록 명하였으나 오랫동안 무시되어 졌던 악기를 동원했다.
죄에 대한 슬픔도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찬송을 막지 못한다. 믿음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의가 되시는 그리스도 예수를 기뻐해야 한다. 우리의 기도와 찬송은 그리스도라는 제물과 같이 드려질 때에만 그 공로로 인하여 하나님께 상달되는 것이다.
💡 29:30 히스기야 왕이 귀인들과 더불어 레위 사람을 명령하여 다윗과 선견자 아삽의 시로 여호와를 찬송하게 하매 그들이 즐거움으로 찬송하고 몸을 굽혀 예배하니라
- 본절은 히스기야가 귀족들과 함께 레위인들에게 명하여 다윗과 선견자 아삽의 시로 여호와 를 찬송하게 하자 — 거기 참석한 모든 이들이 즐거움으로 찬송하고 몸을 굽혀 경배한 사실을 보도.
- '다윗과 선견자 아삽의 시'는 = 27절에 나온 바 있는 ‘여호와의 시'를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 아마 이는 히스기야 시대에 이미 정경의 일부가 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들이 즐거움으로 찬송하고
- 본장 전체를 대표할 만한 구절. 당시 성전의 회복과 하나님께 대한 예배의 회복의 성격을 한 마디로 표현해 주고 있다.
-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들을 만드시고 선택하신 목적이 드디어 성취되고 있는 것이다
‘즐거움으로’
- 원문의 뉘앙스를 고려하여 다시 번역하면, ‘즐거움이 지나칠 정도까지 즐거워 하면서’
- 공동 번역, '크게 기뻐하며'로 번역.
- 당시 성전에 모인 회중은 여호와를 찬송하되 그들의 기쁨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큰 기쁨으로 찬송하였다.
— 이는 그동안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얼마나 열망하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원래 하나님이 인간 을 지으신 목적은, 특히 유다 백성을 선택하신 목적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었다(사 43:21).
그런데 유다 백성들은 참으로 오랜 시간 동안 하나님을 찬송하지 못하였으며, — 그로 인해 그들의 마음은 점점 어둠으로 얼룩져 가기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히스기야 왕의 개혁으로 그들은 하나님께 대해 마땅히 드려야 할 찬송의 의무를 이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비록 여호와를 찬송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이며 선택 받은 목적이지만,
그들은 그것을마지못해 의무적으로하지 아니하고, 기쁨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감격 속에서 자발적으로 행했던 것이다.
6. 왕과 온 회중을 "엎드려 경배하여" 하나님의 존귀에 대한 존경심을 표함으로써, 그들은 모두 이 일에 동의하고 협력한다는 사실을 증거했다.
이러한 사실은 28절에서 30절 사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에 가 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몸으로만 드리는 예배는 아무런 뜻이 없다. 마음과 몸을 다 묶어 바쳐야 된다.
💡 29:28 온 회중이 경배하며 노래하는 자들은 노래하고 나팔 부는 자들은 나팔을 불어 번제를 마치기까지 이르니라
- 제사장이 번제를 드리고 레위인들이 노래하며 다른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동안
⇒ 성전 앞 뜰에 참여한 모든 회중들은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하였다.
‘온 회중’ (학카할)
- 원형 ‘카할’ : 구약 성경에서 여호와께 예배하는 종교적 성격의 공동체를 나타내는 전문 용어(신 5:22).
그러므로 저자가 본문에서 무리를 '카할'이라 표현한 것은
-
- 그들이
단순히 성전에 모여든 군중들이 아니라, - 여호와께 예배 드리기 위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룬 교회였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 그들이
‘경배하며’ — 예배의 회복=하나님과 관계의 회복
- 원형 ‘솨하’ : 본래 왕이나 존귀자, 혹은 신적 존재 앞에서 자기 몸을 땅바닥에 엎드려 절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 본문에서는 재귀형 분사로 쓰여 당시 성전에 모인 무리들이 하나님 앞에 자발적으로 엎드려 예배를 드렸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 70인역은 — ‘예배드리고 있었다’ 라고 번역.
아하스 이후 수년 동안이나 끊겼던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예배가 시작되었으며, 그 예배의 시작은 그 동안 끊겼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새롭게 회복되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하나님을 떠나 있던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의 표시로 보일 수 있는 가장 대표적 행위가 예배일 것이다.
예배란
- 지존하신 하나님 앞에서 —
- 자신의 비참함과 무력함을 인정하는 가운데,
- 그분을 높이며
- 그분으로부터 은혜를 구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 하나님을 떠난 자는 결코 생각도, 흉내도 낼 수 없는 일이다.
교회의 본질적 사명은 예배다.
-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할 심령을 돌이켜 예배의 자리로 초대하고, 그들로 지존하신 하나님께 에배 드리도록 만드는 것,
- 이것이 바로 교회의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사명이다.
💡 29:29 제사 드리기를 마치매 왕과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다 엎드려 경배하니라
- 제사를 마치자마자 기존에 예배 드리던 자를 비롯하여 노래하던 자, 나팔을 불던 자, 제사를 집행하던 자, 그리고 히스기야 왕까지
- — 모두가 여호와께 무릎을 끓고 엎드려 경배를 드렸다.
‘엎드려 경배하다’
- ‘엎드려’ 원형 ‘카라으’
- 본래 무릎을 끓고 엎드린다는 의미의 단어(민24:9).
‘무릎을 꿇는’ 행위의 의미
- 무릎을 끓는다는 것은 이제까지 하나님을 거스르는 잘못을 범한 조상들의 과오를 회개하고,
- 하나님의 통치에 굴복하고,
- 그분의 뜻에 전폭적으로 순종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풀이되는 행동.
❖ 31-35a절 : 회중들의 제물로 드리는 제사장의 제사 집전 회복
💡 앞선 25-30절은
- 번제와 레위인들의 여호와에 대한 찬양이 다시 회복되었음을 보도.
이제 31-36절은
- 제사장들의 제사 집전이 다시 회복된 사실과 더불어
- 이로 인한 백성들의 기쁨을 보도.
Ⅱ. 이 날의 의식은 앞으로도 진전될 것 같았다.
성전 예배를 다시 복귀시켜 계속 지켜나갈 수 있도록 했다. 또 히스기야는 그들에게 이것을 당부했다(31절).
"이제 너희가 몸을 깨끗게 하여 여호와께 드렸으니 제물을 드려 속죄하고 언약을 맺음으로써 엄숙히 그와 화해하고 그를 섬기기로 했으니-마땅히 나아와 제물을 가져오라." 우리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그와의 교제를 통해 계속 발전되어야 한다. 제일 먼저 우리의 몸을 깨끗이 하여 여호와께 드린 다음, 우리는 기도와 찬송과 헌금의 예물을 그의 전에 드려야 한다.
💡 29:31 이에 히스기야가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제 스스로 몸을 깨끗하게 하여 여호와께 드렸으니 마땅히 나아와 제물과 감사제물을 여호와의 전으로 가져오라 하니 회중이 제물과 감사제물을 가져오되 무릇 마음에 원하는 자는 또한 번 제물도 가져오니
- 본절은 온 이스라엘을 위한 범국가적 속죄 제사와 예배가 모두 끝나고 히스기야 왕이 회중에게 감사 제사를 드릴 것을 명령하였으며, 백성들이 이에 순종한 사실을 소개.
- 범국가적인 속제 제사와 예배를 통해 → 유다 백성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새롭게 정립되었으며,
→ 이제 그런 바탕에서 다시 하나님께 나아가 감사 제사를 드리며 감사의 표시를 해야 했던 것. - 이와 같이 계속되는 제사의 필용성
- 신앙 공동체에 속한 유다 백성들 모두의 신앙을 지속적으로 유지 • 고양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 신앙 공동체에 속한 유다 백성들 모두의 신앙을 지속적으로 유지 • 고양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감사 제물
- 속죄로 인해 관계의 회복을 이룬 상태에서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그분과 영적 교제를 더욱 풍성하게 하는 수단으로 소용되는 예물
마음에 원하는 자는 번제물을 가져오니
- 본문을 직역하면 '그리고 마음으로 자원하는 모든 자들이 번제물을(가져 왔다)'.
- 번제물
- 여러 제사 중에서도 제물을 완전히 다 태워드리는 제사.
- 이러한 번제가 나타내는 영적 의미
- 제사드리는 자의 온전한 헌신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감사할 뿐 아니라 온전히 헌신하기를 원하였던 것이다.
- 제사드리는 자의 온전한 헌신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감사할 뿐 아니라 온전히 헌신하기를 원하였던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감사 제물을 가져오라는 히스기야 왕의 명령은
- — 듣기 싫은 강요가 아니라 그들이 기다리고 있던 바였다.
- 따라서 그들은 감사 제물은 물론이거니와 추가로 번제물까지 가지고 와 하나님께 드렸던 것이다.
너희가 이제 스스로 몸을 깨끗하게 하여 여호와께 드렸으니
- 본문을 직역하면 ‘이제 너희가 너희 손을 가득 채웠다'
→ '너희가 이제 너희 스스로를 봉헌하였다(NRSV, You have now consecrated yourselves) ' 라는 의미를 나타냄. - 어떤 사람이 여호와를 향하여 자신의 손을 가득 채웠다는 것
= 그 자신을 여호와께 거룩히 구별하여 봉헌하였다는 의미.
번제와 속죄제와 찬양과 경배를 통해
- 유다 회중은 그들 스스로를 여호와께 거룩히 봉헌해 드렸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들은
- 더 이상 세속의 요구에 자신을 내어줄 수 없으며,
- 오직 하나님의 뜻만을 기쁨으로 준행해야 할 자들이 된 것이다.
이제 이 일을 통해 다음 사실을 알아 볼 수 있다.
1.백성들은 마음이 너그러웠다.
왕이 그들을 그곳으로 불러모으자 그들은 솔로몬의 영화로운 시절에 바칠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제물은 아니었지만(유다는 이제 쇠약해지고 황폐케 되어 매우 저조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믿음이 타락하여 궁핍해진 가운데 기대할 수 있었던 만큼의 제물을 능력껏 바쳤다.
(1) 어떤 자들은 자기들의 몫은 조금도 없는 제사, 곧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드리는 번제물을 가져오는 데에 대단히 관대했다. 이러한 제물 가운데는 70마리의 수소와 백 마리의 수양, 그리고 2백 마리의 어린 양이 있었다(32절).
💡 29:32 회중이 가져온 번제물의 수효는 수소가 칠십 마리요 숫양이 백 마리요 어린 양이 이백 마리이니 이는 다 여호와께 번제물로 드리는 것이며
- 당시 유다 회중이 히스기야 왕의 명을 따라 여호와께 드렸던 번제물의 수효를 정확하게 기록.
당시 백성들이 가져온 번제물
- 수소와 숫양, 어린 양을 통틀어 무려 370마리나 되었다.
- 이러한 숫자는 얼마나 많은 백성이 기뻐함으로 번제를 드렸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 29:33 또 구별하여 드린 소가 육백 마리요 양이 삼천 마리라
- 32절에 소개된 번제물 외에 감사 제물로 구별하여 가져온 동물(31절)의 수효.
‘구별하여 드린’ (’학코다쉼)
- 세속적인 것으로부터 구별하여 거룩한 쓰임을 위해 바치는 것
- → 여기서는 32절의 번제물 외의 감사 제물로 보인다.
이같은 용도로 드려진 예물의 수
- 소와 양을 합해 무려 3,600마리나 되었다.
- 이 역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공동체로 발돋움하기를 원하는 백성들의 거룩을 위한 소망을 반영해 주는 상징물이다.
(2) 다른 사람들은 화목제와 번제로서 기름진 짐승을 제단에 바친 후 그 고기를 제사장과 제물을 바친 자가 함께 나누어 먹었다(35절). 아마 그들은 이전에 산당에다 제물을 드리던 죄를 생각하면서, 이제 더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의 제단으로 제물을 가져왔을 것이다.
2. "제사장이 부족하여" 도저히 집무를 다 행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34절).
많은 제사장들은 그들이 지난 통치 때에 우상에게 제물을 바쳤기 때문에 부정한 자로 간주되어 정직을 당하든지 직임 해제 된 것 같다. 그리고 다른 제사장들도 이런 특별한 때에는 능히 기대할 수 있을 그런 열의를 보이지 않은 것 같다. 그런 제사장들은 왕이 그렇게 나서서 행할 필요가 없으며, 또 그렇게 급히 서둘러 성전 문을 열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스스로를 성결케 하는 데에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들을 성결케 하지 않았으므로 자격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자기들은 이 의식에 참여할 수 없다고 변명할 뿐이었다. 마치 자기들의 범죄가 변명의 구실이라도 되는 듯이 행한 것이다. 여호와께 희생 제사를 드리고 나면 제사장들에게 많은 소득이 생기게 되기도 하는데, 그들이 자기들의 임무를 소홀히 했다는 사실이 여기에 기록된 것은 제사장들에 대한 영원한 치욕이다. 할 일이 많았으나, 일손이 부족했다고 했다.
💡 29:34 그런데 제사장이 부족하여 그 모든 번제 짐승들의 가죽을 능히 벗기지 못하는 고로 그의 형제 레위 사람들이 그 일을 마치기까지 돕고 다른 제사장들이 성결하게 하기까지 기다렸으니 이는 레위 사람들의 성결하게 함이 제사장들보다 성심이 있었음이라
- 한꺼번에 너무나 많은 동물들이 제물로 드려지는 상황.
- 그 제물들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는 등 제사를 집전할 제사장들이 부족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동물은 엄청나게 많은 반면 그 동물둘을 처리할 수 있는 제사장들의 수효는 너무 적었다.
레위 사람들의 성결하게 함이 제사장들보다 성심이 있었음이라
- 당시 레위인들은 제사장들보다 그들 자신을 성결케 함에 있어 — 더 마음이 올바랐으며, 열심을 내었다.
→ 그리고 이는 제사장이 부족한 상황에서 그들이 제사장들을 도울 수 있었던 근거가 되었다. - 구약 신 학자 카일(Keil)은 이러한 현상이 근본적으로 아하스 통치하에 있을 때에 보다 정치적으로 민감할 수 있는 제사장들이 레위인보다 세속적인 삶에 더 오염되었던 데에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도 나름대로 설득력을 지닌 주장이라 할 수 있다.
3.레위인들이 나서서 행했다. 레위인들이 "자기들을 성결케 하는 데에 제사장들보다 성심이었던" (34절) 때문이다.
그들은 제사장들보다 더 열의를 가지고 자신을 성결케 했으며, 더욱 준비성이 있었고 더 나은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이것은 칭찬받을 만한 일이었으며, 그 대가로 그들은 제사장의 일을 할 수 있는 영예를 얻었다. 레위인들이 "번제 짐승의 가죽 벗기는 것을 도왔다" 고 했다. 이것이 율법에 부합하는 일은 아니었다(레 1:5, 6). 그러나 필요에 따라서는 불규칙성이 유보되는 법이다. 그리하여 충성되고 열심있는 레위인들에게는 큰 위로가 돌아갔고, 불성실한 제사장들에게는 당연히 수치가 돌아갔다. 출생으로 보다 성별된 직임상으로는 레위인들에게 의식법상의 결점이 있었지만, 그것은 그 일을 해내는 솜씨와 그들의 의지에 있어서의 탁월함 때문에 능히 보상되었다.
❖ 35b-36절 : 성전 제사의 회복에 대한 백성들의 기쁨
4. 모두들 즐거워했다.
왕과 모든 백성들은 그 일이 저들에게 넘어간 복된 전환과 나라 안에 일신된 종교의 새 모습을 보고 기뻐하였다(36절).
두 가지의 사실이 그들을 기쁘게 했다.
(1) 이것은 신속히 이루어진 일이었다.
"이 일이 갑자기 되었다" 고 했다. 별로 오래 걸리지 않고, 어떤 반대 세력 없이 매우 쉽게 이루어진 것이다. 믿음과 결단으로 하나님의 사업을 이끌어 나가는 자는, 의외로 어려움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또 그것이 빨리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놀라운 기쁨을 금할 수 없게 될 것이다.
💡 29:35 번제와 화목제의 기름과 각 번제에 속한 전제들이 많더라 이와 같이 여호와의 전에서 섬기는 일이 순서대로 갖추어지니라
35절 상반절
- 당시 제사장들이 번제 뿐만 아니라 화목제와 각 번제에 속한 많은 전제도 수행하였음을 밝힌다.
예배 공동체의 모습이 회복됨
‘여호와의 전에서 섬기는 일이 순서대로 갖추어지니라’
- 본문은 여호와의 성전에서 제사드리는 일이 바야흐로 새롭게 확립되었음을 나타내는 문장.
- 수년 동안 방치되었던 성전 제사가 → 히스기야 왕의 명령으로 재개되고,
- 또한 그 동안 소홀하게 여겨졌고 왜곡되이 시행되었던 제사법 및 각종 의식에 관한 절차 등이 → 완전히 옛 모습을 되찾아 새롭게 재확립되기에 이르렀던 것.
- 이러한 내용들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다 시금 그들의 본연의 모습인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예배 공동체로 회복되어졌다는 사실을 부각시켜 주고 있다.
(2) 하나님의 손이 분명코 그 안에 역사했다.
"하나님이 백성을 위하여 예비하였다" 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비밀히 은총을 내리시었다. 그래서 지난 통치 때에는 우상의 제단에 열중하던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하나님의 제단을 매우 사랑하도록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 속에 역사하시어 일어난 이 변화는 그 일을 용이하게 진척시키는 매체가 되었다.
성직자들과 정치인들은 그 나라를 바로 잡기 위해 그들의 역할을 수행한 후, 그 다음은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그리고 이루어진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하며, 특히 빨리 이루어져 놀라운 기쁨이 될 때는 더욱 그러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매우 놀라운 역사이다."
그들은 자기 수고를 자랑하지 않았고, 또 그에게 와서 그것에 대한 대가를 받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단지 그에게 더럽혀졌던 모든 물건들이 율법대로 이제 성결케 되어 그가 원할 때는 언제나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두었다는 것을 알리려 했던 것이다.
그들은 그 선한 왕이 하나님의 제단에 마음을 쏟고 있으며, 성전에 참례하기를 열망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제단의 기구들을 닦아 빛나도록 해 놓았다는 것을 가장 힘있게 주장했다. 그들은 아하스가 별로 좋아하지 아니하며 "범죄하여 버린" 모든 기구들을 모아 깨끗이 하고 "단 앞에" 비치했다. 비록 성소의 기구들이 잠시 더럽혀질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하나님은 알맞은 때에 합당한 방법으로 다시 성결케 해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규례로 백성들이 영원히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용납지 않을 것이다.
💡 29:36 이 일이 갑자기 되었으나 하나님께서 백성을 위하여 예비하셨으므로 히스기야가 백성과 더불어 기뻐하였더라
하나님의 예비하심으로 인한 온전한 기쁨
- 본절에서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제사가 한꺼번에 드려졌지만, 그것 때문에 혼란이 오지 않고, 오히려 히스기야가 백성들 모두와 더불어 기뻐하였음을 보도.
→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일에 대해 잘 준비해 놓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 본서 저자는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개입을 강조하여 나타내기 위해 얼핏 보면 사족처럼 여겨질지도 모르는 본문을 본장 맨 끝에 첨부해 놓은 것.
- 폭주하는 제사를 감 당할 만한 제사장의 수효가 부족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그 상황에서 혼란을 겪지 않도록 미리 많은 레위인들의 마음을 준비해 두셨던 것이다.
역사의 무대 뒤에 보이지 않게 서 계시는 하나님은
- 비록 백성들 앞에 명백히 자신을 나타내 보이시지는 않지만,
- 그들의 영적 회복을 위해
- 보이지 않는 손으로 그 백성들의 기쁨을 도모하면서 일하고 계셨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