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10월 30일 월요일 묵상구절 대하30:1-12 <유월절 준비>

Jeehyun 2023. 10. 31. 12:36

맥체인성경읽기

왕하11-12, 딤후2, 호3-4, 시119:121-144

묵상구절

30:1 히스기야가 온 이스라엘과 유다에 사람을 보내고 또 에브라임과 므낫세에 편지를 보내어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에 와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니라

30:2 왕이 방백들과 예루살렘 온 회중과 더불어 의논하고 둘째 달에 유월절을 지키려 하였으니

30:3 이는 성결하게 한 제사장들이 부족하고 백성도 예루살렘에 모이지 못하였으므로 그 정한 때에 지킬수 없었음이라

30:4 왕과 온 회중이 이 일을 좋게 여기고

30:5 드디어 왕이 명령을 내려 브엘세바에서부터 단까지 온 이스라엘에 공포하여 일제히 예루살렘으로 와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유월절을 지키라 하니 이는 기록한 규례대로 오랫동안 지키지 못하였음이더라

30:6 보발꾼들이 왕과 방백들의 편지를 받아 가지고 왕의 명령을 따라 온 이스라엘과 유다에 두루 다니며 전하니 일렀으되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너희 남은 자 곧 앗수르 왕의 손에서 벗어난 자에게로 돌아오시리라

30:7 너희 조상들과 너희 형제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멸망하도록 버려 두신 것을 너희가 똑똑히 보는 바니라

30:8 그런즉 너희 조상들 같이 목을 곧게 하지 말고 여호와께 돌아와 영원히 거룩하게 하신 전에 들어가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섬겨 그의 진노가 너희에게서 떠나게 하라

30:9 너희가 만일 여호와께 돌아오면 너희 형제들과 너희 자녀가 사로잡은 자들에게서 자비를 입어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리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은혜로우시고 자비하신지라 너희가 그에게로 돌아오면 그의 얼굴을 너희에게서 돌이키지 아니하시리라 하였더라

30:10 보발꾼이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방 각 성읍으로 두루 다녀서 스불론까지 이르렀으나 사람들이 그들을 조롱하며 비웃었더라

30:11 그러나 아셀과 므낫세와 스불론 중에서 몇 사람이 스스로 겸손한 마음으로 예루살렘에 이르렀고

30:12 하나님의 손이 또한 유다 사람들을 감동시키사 그들에게 왕과 방백들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전한 명령을 한 마음으로 준행하게 하셨더라

매튜헨리/옥스퍼드

❖ 서론

💡본서 29-32장은 남유다 제13대 왕 히스기야의 사적을 보도하는 내용이다.
그 가운데 앞선 제29장은 히스기야가 원년 정월에 시행한 성전 정화 사업과 범국가적인 속죄제 거행 및 성전 제사 회복 기사이다.

이러한 29장에 계속되는 본장은 유월절 준수에 관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솔로몬 통치 이후 유월절다운 유월절을 지키지 못하던 유다와 이스라엘이 하나님에 대한 열심으로 충만한 히스기야 왕의 즉위로 인해 하나님께 마땅히 지켜야 할 유월절을 지킬 수 있게 되었음을 보도하는 것이다.

이 역시 앞장의 내용 과 더불어 열왕기에는 나오지 않는 단독 기사이다.
그렇다면 왜 본서 저자는 열왕기 저자와 달리 유월절 준수 기사를 길게 다루었을까?
이는 본서 저자가 유월절 준수야말로 신정 왕국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유월절을 위한 준비(역대하 30:1-12)

❖ 1-3절 : 히스기야의 유월절 준수 계획

Ⅰ. 유월절을 지키기로 했다.

이 연례적 절기는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온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된 것이다. 성전 예배가 회복된 것은 바로 이 절기의 날로 정해졌던 제1월 17일 이전이었다. 그리하여 잊혀졌던 의식이 상기되었다.

"우리가 유월절에 무엇을 할꼬?" 하고 히스기야는 계속 생각했다.

"그것은 매우 즐거운 의식이지만, 오랫동안 지키지 못했다.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회복시킬 것인가? 지금까지 세월은 마냥 흘렀다. 우리는 그 일을 곧 착수할 수가 없다. 회중은 미약하고, 백성들은 무관심하며, 제사장들은 준비되어 있지 않다(3절). 우리가 이 일을 다음 해로 연기해야 하는가?"

많은 조건이 마땅치 않아 연기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열두 달이 다시 지나면 백성들의 선한 애착도 냉각되어 성전 의식을 열망하던 마음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는 모세의 율법에서 이런 사실을 찾아냈다. 즉 제1월에 부정한 자는 2월 14일에 유월절을 지켜도 된다는 단서였다(민 9:11). 그리고 바로 그 율법은 그의 회중에게도 관련된 내용이라는 것을 의심치 않았다. 따라서 그들은 2월에 유월절을 지키기로 결정했다.

형식적인 것은 본질적인 것에 길을 양보하게 하자. 그리하여 시간을 핑계하고 본질이 되는 그 일을 빼먹는 일이 없도록 하자. 철은 달아 있을 때에 쳐야 하고, 백성들은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동안에 일하도록 해야 한다. 일을 지연시키는 것은 위험하다.

Ⅱ. 백성들에게 유월절을 명심하여 지킬 것을 반포했다.

1.배반한 열 지파 사람들에게도 초대장을 보내어, 이 의식에 참석할 것을 촉구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 사람들에게 예루살렘에 와서 유월절을 지킬 수 있도록 초대한다는 편지를 보냈다(1절). 이것은 그들을 다윗의 집으로 끌어들이려는 정치적인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도록 하려는 경건한 의도에 의한 것이었다.

"그들이 원하는 자를 그들의 왕으로 삼도록 하라. 그러나 그들도 여호와만을 하나님으로 택하여야 한다" 고 히스기야는 말했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심으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온다면, 히스기야도 그들이 자기 백성들처럼 유월절을 지키러 오는 것을 환영할 것이다. 그러므로 유다와 이스라엘이 정치적보다 종교적으로 서로 상이점이 있다 하더라도, 방해가 될 수 없었다. 이스라엘의 온 지파에 청원서를 보내어, 그 백성들이 배반했던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기회를 가지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 30:1 히스기야가 온 이스라엘과 유다에 사람을 보내고 또 에브라임과 므낫세에 편지를 보내어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에 와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니라

유월절 (passover) (페싸흐’)

  • ‘뛰어넘다’ 의미의 ‘파싸흐’ 단어에서 유래
    하나님께서 죽음의 사자를 보내 애굽 땅의 모든 처음 난 것을 심판하실 때에 그 땅에 살고 있던 히브리 백성을 심판하지 않고 지나쳤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용어.
  • 출12:27 '여호와께서 …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을 넘으사(파싸흐)’

히브리 민족이라고 해서 여호와의 심판을 당하지 않을 특별한 권리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 때에 그들을 심판하지 않고 그냥 뛰어넘은 것은

  •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억했기 때문,
  • 그들을 대신해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피 때문.

이스라엘 자손에게 유월절의 의미.

  • 이스라엘 자손들들로 자신들의 민족적 자긍심을 내세우게 하는 절기가 아니며,
  • 오히려 그들을 긍휼히 여기신 하나님 의 은혜를 기억하며 찬양하는 절기였다.

뿐만 아니라 유월절은 독립된 국가로서 이스라엘의 시작을 축하하는 절기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솔로몬 이후 남북으로 분열되면서부터 유월절다운 유월절을 준수하지 못했다.

  •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기억하며 기념하지 못하였다는 의미이며,
  • 이방 나라와 구별되어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독립된 나라로서의 위상을 저버렸음을 증거하는 것이기도 하다.

본서 저자는 히스기야 당시까지 이어져 온 이러한 어두운 과거, 즉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불순종의 역사를 한탄하면서 비록 나라가 기울어져 가는 시점이지만 그나마 히스기야 때에 유월절 준수가 재개되었음을 보도하고 있다.

특별히 본서 저자가 이를 상당히 길게 서술하는 이유

  • 이는 히스기야 때에 재개된 유월절 준수가 그만큼 중요한 것임을 강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궁극적으로 본서 저자는 이러한 유월절 준수라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서술을 통해 히스기야 때 비로소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다시 들어오게 됨으로 → 신정 왕국으로서 바른 위상 을 회복하였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 이는 당시 포로에서 귀환한 본서의 일차 독자들로 하여금 히스기야와 같은 신앙을 본받아 신정 국가로서의 굳건한 나라를 세우라는 신앙적 촉구와 결단의 의미도 전달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북이스라엘을 포함한 온 이스라엘이 지킴 — 온 지파를 아우르는 히스기야의 신앙적 열정.

  • 이 유월절은 유다 뿐만 아니라 북이스라엘 백성들까지 준수하였다.
  • 당시 북이스라엘은 이미 앗수르의 침략으로 주권을 상실한 상태였으며 앗수르에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을 제외한 사람들만 살고 있었다(6절).

그런 상황에서 히스기야 왕은

  • 유월절 행사에 북이스라엘 백성들까지 참여하게 함으로써 그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회복시켜 줄 뿐만 아니라,
  • 이스라엘 모든 지파들이 참석하는 — 온전한 유월절을 거행하고자 했던 것이다.
  • 이러한 행동은 결국
    북이스라엘 역시 신정 국가인 다윗 왕조외 통치 영역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히스기야의 의도를 반영해 준다.
  • 이러한 히스기야의 의도는 본문의 '온 이스라엘과 … 보내고'라는 표현을 통해 더 분명하게 전달된다.

‘편지를 보내어’

  • 왕이 특사를 보내어 자신의 명령을 포고하였다.
  • 여기에는 구술적 전달 뿐만 아니라 공문서 즉 서신적 전달의 의미까지 들어 있는데 이러한 포고의 형식으로 유월절 준수를 독려하고 전하는 것은 북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신정 통치에 순종해야 한다는 히스기야의 의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

  • 북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지파들.
  • 본절에서 저자가 '에브라임과 므낫세에 편지를 보냈다' 라고 표현한 것은
    이들 두 지파만 아니라 사실상 북이스라엘 전체에 편지를 보냈다는 의미.
  • 앞서 ‘온이스라엘'이란 표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표현을 거듭 사용한 것은
    북이스라엘까지 아우르는 히스기야의 신앙적 열정을 강조하기 위해서.

💡 30:2 왕이 방백들과 예루살렘 온 회중과 더불어 의논하고 둘째 달에 유월절을 지키려 하였으니

둘째 달에 유월절을 지키게 된 근거

유월절은 원래 1월 14일에 지키는 절기이다(출 12:18). 그러나 제2유월절 규례에 따르면, 만약 누군가가 시체를 만져 부정하게 되었거나 여행 중에 있다면 그 사람은 한 달 후인 2월 14일에 유월절을 지킬 수 있었다(민 9:9-12).

히스기야는 율법에 언급된 이 두 가지 상황을 고려하여 유월절을 1월이 아닌 2월에 준수하기로 결심하였다.

  1. 이는 첫째, 성전 성결을 완수한 때가 ⇒ 1월 16일로(29:17) 유월절 준수 기간이 지나가는 상황에 있었고
  2. 둘째로는, 3절에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이 아하스의 악정과 우상 숭배로 인해 당시 상당수의 제사장들이 성결례를 마치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히스기야가 보낸 사자들에 의한 유월절 준수 공문을 전해 듣게 된 이들이 뒤늦게 북이스라엘에서 예루살렘으로 오는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 히스기야는

  • 율법에 근거해 이들 모두를 배려하고,
  • 온 이스라엘이 하나된 모습으로 유월절 절기를 준수하게 하고자 이와 같이 1월에 준수해야 할 유월절을 제2유월절 규례에 따라 한달 뒤인 2월에 지키도록 하였던 것이다.

‘지키려 하였으니’

  • 문자적으로는 ‘행하기로(to do)'라는 의미.

'행하다'라는 의미의 단어가 쓰인 이유

  • 유월절 준수가 수동적 차원이 아닌 능동적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유월절을 지키는 사람들은 어린양과 무교병과 쓴나물을 먹어야 했다.

  • 어린양을 먹음으로써
    :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신 은혜를 기억해야 했고,
  • 무교병을 먹음으로써
    :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 없는 삶을 살기로 결단해야 했으며,
  • 쓴나물을 먹음으로써
    : 그들은 구원받기 이전의 삶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는가를 되새겨 다시는 이방의 종이 되지 않을 것을 결단해야 했다.

⇒ 이런 측면에서 바른 유월절 준수는 퇴보되었던 신앙과 국운 모두의 중흥을 이루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었다.


 💡 30:3 이는 성결하게 한 제사장들이 부족하고 백성도 예루살렘에 모이지 못하였으므로 그 정한 때에 지킬수 없었음이라

성결하게 한 (’카다쉬’) 제사장들

  • 카다쉬 : 속된 용도로부터 자신을 분리하여 거룩한 용도로 헌신하는 것.

제사장들이 스스로를 ‘카다쉬'하지 못하게 된다면
→ 그들은 거룩한 제사를 집행할 수도 없고, 거룩한 예식에 참여할 수도 없는 것이 당연했다.

여기서 성결케 한 제사장이 부족했던 이유는?

  1. 유월절 제사가 워낙 방대 하기도 하였지만, 16년간 계속된 아하스의 악정 때문에 제사장 임직식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 더 근본적 원인일 것.
    아하스 당시에 남유다는 성전이 폐쇄되고 우상 숭배가 만연하였다. 따라서 아론의 혈통을 이어받아 제사장 직분을 감당해야 할 자들에게 제사장 위임식을 수행할 수조차 없었다.
    출 29장에는 여러 가지 제사장 위임식과 관련된 예식들이 있지만, 성전 문이 폐쇄된 마당에 이러한 예식들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
    → 따라서 당시 스스로를 성결케 한 제사장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2. 이와 더불어 아하스의 악정으로 인해 제사장들마저 자신의 본분을 떠나 도덕적•영적으로 타락하여 — 하나님 앞에 온전한 제물을 드릴 수조차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 이로 인해 1월 14일에 이루어져야 할 유월절 준수는, 제사장 임직식을 거행하지 못한 이들로
    1) 합법적인 임직 식을 거쳐 제사장으로 세움을 입게 하고
    2)그릇 행하던 이들이 회개하고 다시금 하나님 앞에 헌신하도록 준비되어야 했기에 한달을 미룰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4-5절 : 온 이스라엘의 유월절 동참을 위한 왕명 반포

 💡 30:4 왕과 온 회중이 이 일을 좋게 여기고

‘좋게 여기고’

  • 원형 ‘야솨르’ : 비유적으로 마음이 곧고 정직한 것을 나타낼 때 사용.
    → 유월절을 이월에 준수토록 한 히스기야 왕의 결정이 모든 사람들의 보기에 옳았다.
  • 그만큼 히스기야의 결정은
    : 합리적이고 모든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 것이었다.

💡 30:5 드디어 왕이 명령을 내려 브엘세바에서부터 단까지 온 이스라엘에 공포하여 일제히 예루살렘으로 와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유월절을 지키라 하니 이는 기록한 규례대로 오랫동안 지키지 못하였음이더라

드디어 왕이 명령을 내려 … 공포하여 … 하니

  • 본문을 직역하면 '그리고 그들은 소리가 건너가도록 말씀을 확립하였다'가 된다.
    → 이를 의역하면 ‘그리고 그들은 칙령을 선포하여 그것이 두루 퍼져 나가도록 하였다' 가 된다.
  • 당시 이월에 유월절을 지킨다는 사실이 — 문서상 왕명으로 기록되고 공포되었다.

‘브엘세바에서부터 단까지’

  • 이스라엘 사회에서 본문의 표현 즉 ‘브엘세바에서부터 단까지' 라는 표현은 가나안 땅 전부를 통칭하는 표현.

‘일제히 예루살렘으로 와서’

  • 이스라엘에는 3대 절기로 불리우던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이 있었다. 이들 3대 절기시에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는 여호와께서 택한 곳인 예루살렘에 와서 각각의 절기와 관련된 규례대로 이들 절기를 지켜야 했다(신 16:16).
  • 그러나 여로보암 1세가 르호보암에 반역을 일으켜 열 지파를 이끌고 북이스라엘을 창건한 이후로
    북이스라엘 사람둘은 예루살렘에 가서 이돌 절기듈을 지킬 수 없었다(왕상 12:28).
  • 그런데 B.C. 715-687년 동안 남유다를 단독 통치하였던 히스기야가 이 명령을 내렸을 때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한 B.C. 722년으로부터 상당한 세월이 흘렀으며, 그 당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정복국인 앗수르의 정치적 공백이 있었던 듯하다.
    이로 인해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루살렘으로 오는데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히스기야는 율법의 가르침을 따라 북이스라엘 최북단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절기를 지켜야 한다는 선민으로서의 본분을 가르치면서,
→ 그들 모두가 예루살렘에까지 내려와서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고 촉구하는 명을 내렸던 것이다.


❖ 6-9절 : 파발꾼들의 히스기야의 유월절 준수 명령 전파

💡 30:6 보발꾼들이 왕과 방백들의 편지를 받아 가지고 왕의 명령을 따라 온 이스라엘과 유다에 두루 다니며 전하니 일렀으되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너희 남은 자 곧 앗수르 왕의 손에서 벗어난 자에게로 돌아오시리라

‘보발꾼’

  • 만은 영역본들은 ‘특사들’ 이라 번역.당시 편지를 전하는 사람들이 특별히 이 일을 위하여 선발된 사람들임을 보여준다.
  •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신앙 회복을 위하여
    • 단순히 어떤 정책이나 방법만을 제시 한 것이 아니라
    • 이를 이루기 위해 펄요한 사람을 선별하여 세우고 파송하여
    • 전이스라엘을 신앙의 기초 위에 서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던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이스라엘 자손들아’ (’빼네 이스라엘’)

  • 이들의 정체성을 상기시키는 표현.
  • '뻬네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던 자들에게 그들이 본래 어떤 존재들인지를 생각하도록 하였을 것.

  • '이스라엘'은
    • 본래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주셨던 새 이름이다(창 32:28).
    • 그러므로 야곱, 즉 이스라엘을 조상으로 하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둘은 그들의 민족을 명칭하게 된 ‘이스라엘'을 말하고 들을 때마다
      → 하나님을 향한 야곱의 신앙을 기억하며 그들을 다스리시는 분이 누구인지를 기억해야 했다.

    하지만 여로보암을 따라간 수많은 사람들은
    • 하나님을 신앙하지 않았으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치하도록 허락하지 않았고, 이방의 우상들이 그들을 주관하도록 하였다.
    그러한 삶이 수백년 동안 계속 이어져 왔으며,
    결국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으로 섬기기를 기뻐하였던 이방 신들의 나라에 포로로 끌려가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직까지 북이스라엘 영토에 남아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히스기야 왕은
    ‘이스라엘 자손들아'라는 명칭으로 부르면서 그들의 정체성을 새롭게 인식하도록 촉구하며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는 사실을 목놓아 외쳤던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 조상들의 아름다운 신앙을 상기하라는 촉구는
  • 이러한 '이스라엘 자손들'이란 호칭과 더불어 하나님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부르 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 즉 히스기야 왕은 그들에게 자신돌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이스라엘이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는 자들이었음을 상기시킴으로써 그 후손 역시 하나님 여호와를 섬겨야 함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돌아오라‘

  • 가던 방향을 완전히 돌이켜 반대 방향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
  • 단순히 죄를 고백하는 소극적 의미보다 죄된 행실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행해야 한다는 '행동'의 의미까지 들어 있다.
  • 과거에는 비록 하나님께 등을 돌렸으나,
    이제는 그분을 향하여 얼굴을 들고 달려와야 한다는 것이다.

  • 그리고 이들을 향해 히스기야는 그러한 회개의 구체적인 표현으로서
    예루살렘에 나아 와 하나님이 선민에게 지키라 명하신 유월절을 거룩히 지킬 것을 요구한 것이다.

그리하면 그가 너희 남은 자 곧 앗수르 왕의 손에서 벗어난 자에게로 돌아오시리라

‘남은 자 … 벗어난 자에게로’

  •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너희 피한 자 곧 남겨진 자에게로’
  • 벗어난 자
    • 앗수르의 말발굽에 밟히지 않고, 그들의 포로가 되지 않고 피한 자.
    • 그러나 그들이 피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자신이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진노 중에라도 잊지 않으셨기 때문이었다.
  • 벗어난 자 — 원형 ‘솨아르’
    • ‘여분이 있다', ‘남기다'라는 어원에서 유래한 단어(창 7:23) ; 구약 성경에서 모두 123회 사용.
    • 그중 선지서에서 모두 38회 사용되었는데, 본문에서처럼 수동형으로 사용 되면
    • → 하나님의 심판 중에 파멸을 당하지 않고 남겨진 사람(the remnant)을 의미하는 전문 용어가 된다(사 24:6 ;렘 21:7).
    • 본문에서도 그러한 측면, 즉 여호와 하나님께서 범죄한 이스라엘을 앗수르의 손을 통해 심판하실 때에 포로로 끌려가지 않고 이스라엘 땅에 남겨진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아직까지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올 기회가 있는 것이다.
  • ‘남은 자’ ‘벗어난 자’ → 모두 단수형.
    이러한 사실은
    1. 그들을 단일 개념으로 본다는 것을 말하며,
    2. 나아가 그들은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진노 중에서 구원해 내신 하나님의 한 백성이라는 의미도 내포한다.
  •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여전히 구원의 희망이 있는 것이며,
    이 희망이 이번 유월절 준수에 초대된 것을 기점으로 구체적으로 실현될 것임을 나타내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 30:7 너희 조상들과 너희 형제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멸망하도록 버려 두신 것을 너희가 똑똑히 보는 바니라

참된 회개를 강조함

  • 히스기야 왕의 특사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과거 그들의 열조나 형제들처럼 행하던 삶을 멈추되 지금 당장 그렇게 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

참된 회개란

  • 죄악된 삶을 내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버리는 것이다.
  • 위대한 교부였던 성 어거스틴은 젊은 시절 '주여 내가 죄를 버리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라는 기도를 자주 했었다.
    그러나 그는 훗날 복음 안에서 새사람이 된 후에 과거 그러한 고백이 얼마나 잘못되었었는지를 깨닫고 가슴 아파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계시하신 롬 13:11-14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자신의 잘못된 과거를 즉각적으로 청산하기에 이른다.

오늘 말씀에 언급되는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 과거 그 조상들 및 형제들처럼 행하던 죄악을 유월절 준수 이후 버려야 할 것이 아니라,
  • 특사들을 통해 전달된 왕의 칙령을 듣는 순간 버려야 했던 것이다.

여호와께서 멸망하도록 버려 두신 것을 너희가 똑똑히 보는 바니라’

  • 단순히 죄악을 버리고 회개하라는 메시지는 현실적인 근거가 없는 경우 듣는 자들의 마음에 강하게 부딪처기 어렵다.
  • 따라서 히스기야 왕의 특사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하라는 메시지를 전하면서
    그들이 왜 회개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에 대한 분명한 근거를 제시함으로써 그들의 가슴에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게 하였다.

  • 이스라엘은 그들의 조상들 및 형제들이 하나님께 범죄한 결과 앗수르의 말발굽 아래 짓밟혔으며 가나안 복지를 상실해 버렸고 이방 땅으로 포로되어 끌려가는 비참한 운명을 당하고 말았다.
    → 바로 이러한 사실을 가나안 땅에 아직 남아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직접 목도하였고, 그 영상이 아직까지 그들의 뇌리에 생생히 남아 있었던 것이다.

  • 당시 황폐한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날마다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 그러므로 그들은 여호와께 회개하지 않는 일이 그들 자신에게 어떠한 결과를 가져다주었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더더욱 속히 회개해야만 했던 것이다. 

💡 30:8 그런즉 너희 조상들 같이 목을 곧게 하지 말고 여호와께 돌아와 영원히 거룩하게 하신 전에 들어가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섬겨 그의 진노가 너희에게서 떠나게 하라

  • 본문을 직역하면, ‘이제부터는 너희 목 뒷부분을 뻣뻣하게 하지 말고•••손을 주어라(Now do not stiffen your neck … stretch forth the hand)'

‘그런즉’

  • 시간적 의미에 주안점이 있음. (Now)
    → 따라서 여기에는 과거 그들이 어떻게 살았든지 이제 다 지나간 일이기 때문에 다시 돌이킬 수 없지만,
  • 그러한 삶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지금 이 순간부터는 과거처럼 살아서는 안된다는 절박한 호소가 담겨 있는 것이다.

‘목을 곧게 하지 말고’

  • 문자적으로 ‘너희 목 뒷부분을 뻣뻣하게 하지 말라’ (히브리어 관용구, 신31:27)
    → '너희 마음을 완강하게 하지 말라(LXK harden not your hearts)', 혹은 ‘고집 부리지 말라(NJB, Do not be stubborn)’
  • 사람이 다른 사람의 충고나 책망을 듣기 싫어하고 계속해서 고집을 부리는 상태를 목을 뻣뻣하게 하는 구체적 태도로 묘사한 것이다.
  • 그간의 이스라엘의 역사를 돌아보면 하나님을 향해 불성실하고, 그러면서도 목을 곧게 했던 기억들로 점철되어 있다
    • (출 32:9; 34:9; 신 9:6; 31:27; 왕하 17:24).
    • 그들은 수백년 동안 우상 숭배 등 온갖 죄를 다 범하는 가운데 엘리야 선지자 등과 같은 수많은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경고의 메시지를 들었으면서도, 끝까지 자기 죄를 버러지 않고 하나님께 대적하는 삶의 방식을 고집함으로써 한 순간에 멸망을 당하고 말았다.
  • 하나님 앞에서 자기 죄를 버리지 않고 완강하게 버티는 것은
    • 하나님을 이기는 길이 아니라
    • 자기 멸망을 스스로 재촉할 뿐이다.
    • 히스기야는 바로 이 사실을 지적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깨닫고 삶의 방식을 바꾸도록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여호와께 돌아와’ (’테누 야드’)

  • ‘반항심을 버리고 순종하라’
  • 문자적으로 ‘손을 주어라(give hand)’란 의미.
  • 히브리어 ‘손’(’야드’)
    • 비유적으로 사용되면 '권능’, ‘권한', '권리', ‘지배권', '통치권' 등을 의미.
  • 따라서 ‘테누 야드’는
  • → '다스리는 권한을 주어라’, ‘운명을 맡겨라'라는 비유적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어떻게 살아왔는가?

  •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그들의 인생을 하나님이 통치하도록 내어드리지 않고 자기 멋대로 살다가 멸망하고 말았다.

따라서 더 이상의 비극을 방지하려면,

  • 가나안 땅에 남은 자들만큼이라도 이제부터는 그들의 인생을 하나님께 내어드리며, 삶의 주권을 그분께 완전히 내어맡겨야만 하는 것이다.
  • 자신들의 인생에 대해 자신이 주관자라고 하는 고집을 버리고
  • 오직 그들을 형통한 길로 이끄실 유일한 하나님께 자기 삶의 결정과 운명을 전폭적으로 맡기는 것만이
  • 과거의 실수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 길인 것이다.

 

영원히 거룩하게 하신 전에 들어가서

  • 직역하면, ‘그리고 그분이 영원히 거룩하게 하신 그의 거룩한 곳(성소)에 들어가라’

원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 ‘전’ = ‘하나님의 성소’를 의미.
    • '그분의 거룩한 곳'이라는 의미,
    • 이는 하나님이 영적으로 임재해 계시는 성소(His sanctuary)를 나타낸다.
    • 그 성소는 하나님께서 영원히 거룩하게 하신 장소이다.
  • ‘거룩하게 하신’ : ‘그분이 거룩하게 하신’

르호보암에 대항해서 반역을 일으킨 여로보암이 벧엘과 단에 우상들을 만들어 놓은 이래로

  • 수백 년 동안 이스라엘은 — 거룩하게 구별된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하지 않고 더러운 우상에게 예배해 왔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이를 깨닫게 함으로

  • 이제 남은 자들이 이러한 과거의 그늘을 벗어 던지도록 이끌어 주고 있다.
  • 그리고 더 나아가 그들 스스로를 깨끗하게 성별하여 성전에 들어가 참 된 예배를 드려야 함을 촉구하고 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섬겨 그의 진노가 너희에게서 떠나게 하라

‘그의 진노’ = '그분의 타오르는 분노(NASB, His burning anger)'.

  • 하나님의 진노가 불타오르고 있다는 사실은
    → 이미 이스라엘이 앗수르의 포로로 끌려간 상황이지만, 가나안 땅에 남은 자들이 여전히 멸망에 처해질 가능성을 안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
  •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진노를 떠나게 헤야 한다는 촉구는
    → 이제 남은 자들이 마음을 새롭게 하여 여호와만 진심으로 섬긴다면 하나님의 진노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 하나님의 심판이 한 번 강하게 휩쓸고 지나갔다고 해서 이제 더 이상 진노가 임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여 이전에 저지른 죄악을 답습하고 회개하기를 주저한다면
    → 그것은 점점 심판을 향해 가까이 나아가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30:9 너희가 만일 여호와께 돌아오면 너희 형제들과 너희 자녀가 사로잡은 자들에게서 자비를 입어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리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은혜로우시고 자비하신지라 너희가 그에게로 돌아오면 그의 얼굴을 너희에게서 돌이키지 아니하시리라 하였더라

‘너희가 만일 여호와께 돌아오면’

  • 6절부터 9절까지 이어지고 있는 왕의 특사들의의 선포에는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그리하면 그가 돌아오시리라'는 내용의 표현이 여러 차례 반복되어(6,8,9절) 나온다.
    → 이러한 사실은 히스기야 왕의 특사들이 다른 무엇보다도 그 내용을 강조하였음을 나타낸다.

  •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너희에게로 돌아오시리라'는 표현에 대해
    • 혹자는 행위 구원론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 물론 성경의 사상은 하나님께서 먼저 죄인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푸실 때 그들이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을 얻는다는 사상이므로 행위 구원론을 넘어선다.
    • 그렇다고 해서 본표현이 행위 구원론적이라고 비난 받을 이유는 없다.
      하나님의 구원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인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바라는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조건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 하나님의 무조건적 은혜(unconditional grace)는
      자신의 죄인됨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자비를 원치 않는 자들에게까지 주어지는 무책임한 은혜가 아니다.

    • 때문에 무조건적 은혜의 교리는 제한 속죄(limited atonement)의 교리와 더불어 이해되어야 한다.
    •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자신의 상태를 살피고 자신의 죄인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성령을 보내사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완전히 돌아올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신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이며 회복이며 구원인 것이다.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리라

  •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돌아오시고,
  • 그 결과로 이방에 포로되어 끌려갔던 동족들이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 선포되는 부분.

‘이 땅으로’

  •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그 땅의 의미
    • 단순히 지중해 동쪽 연안에 있는 작은 팔레스틴 땅이 아니다.
    • 그 땅은 일찍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파 야곱에게 주시기로 맹세하고, 그 맹세를 지키사 이스라엘 족속에게 약속의 땅으로 주신 선물이었다.
    • 그리고 그들이 여호와의 율법을 지키고 하나님만을 신실하게 섬겼다면 — 그 땅에서 영원히 복락을 누리며 살 수 있었다.
    •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그 땅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였으며, 우상을 숭배하는 등 율법을 헌신짝처럼 내어버렸다.
    • 그 결과 그들은 마치 영원히 거주할 것만 같았던 그 약속의 땅에서 비참하게 내쫓기고 말았다.
    • 약속의 땅을 유업으로 주신 하나님을 버린 그들을
      그 땅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어 토해 냈던 것이다(신 28:63).

    하나님은 어떤 마음이셨는가?
    • 그러나 그들을 자기 언약 백성으로 택하신 하나님은 그들을 이 방 땅에 영원히 버려 두시기를 기뻐하지 않으신다.
    • 그들이 다시 하나님의 백성에 합당한 모습으로 돌아오면
      → 그분은 그들을 기꺼이 옛 언약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
  • 바로 이러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왕의 특사들은 이스라엘 땅의 남은 자둘에게 위와 같은 사실을 선포했던 것이다.
  • 따라서 '다시 돌아오리라'라는 표현은 아무 근거 없는 맹목적인 희망의 제시가 아니라,
    •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과
    • 은혜로운 성품에 분명한 근거를 둔
    • 확실한 예언적 선언인 것이다.

그의 얼굴을 너희에게서 돌이키지 아니하시리라 하였더라

  • 본문은 *'그러면 얼굴을 너희로부터 돌려 외면하지 않으실 것이다'*라고 해석될 수도 있고, *'그러면 얼굴을 너희로부터 돌려 외면하지 못하시도록'*이라고 해석될 수도 있다.
  • 즉, “자기에게로 돌아온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절대로 외면하는 일이 없다”

하나님께서 그의 얼굴을 이스라엘에게로 향하시는 개념과 vs. 그 얼굴을 돌이키시는 개념

  • 이는 이스라엘에게 엄청난 결과의 차이를 가져온다.
  • 아론의 축복 기도 중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민 6:25,26)는 문구가 있다.
  • 영적 존재이신 하나님에게는 사람과 달리 얼굴이 있을 수 없고 아무도 그 얼굴을 볼 수 없다(출 33:20;요 4:24;덤전 6:16). 그러므로 민 6장의 '얼굴'이라는 표현과 본절의 ‘얼굴'이라는 표현은 문자적 의미가 아닌 비유적 의미로 이해하여야 한다.
  • 하나님의 얼굴이 나타내는 비유적 의미는
    • 은혜, 보호, 평강, 축복.
  • 그 얼굴을 돌이켜 외면 하신다는 것은
    •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으시고 그들을 축복하지 않으시겠다는 의미.
  • 그러나 만약 이스라엘이 그분에게로 돌아오기만 한다면, 하나님은
    • 아론의 축복 기도처럼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실 것이며, 그들을 평강에 평강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1) 이 일을 기하여 급히 보내어진 회람장의 내용에는,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 나라의 번영에 대해 큰 관심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나타나 있다. 비록 그가 그 이웃 나라로부터 어떤 대가나 조공, 혹은 세금을 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 나라에 의해 자주 그리고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괴롭힘을 받아 왔지만 진심으로 그들의 번영을 원했던 것 같다. 이것이 바로 악을 선으로 갚는 것이다.

[1] 그가 그들에게 강조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여호와께 귀순하라(8절). 너희는 그와 교제를 하기 전에 먼저 그와 계약을 맺어야 한다."
"하나님께 손을 드리라" (문자적인 뜻은 그렇다)는 것은, → "그를 너희 하나님으로 받아들이라" 는 것이다.

서로 우리는 손을 내밀어서 계약을 확정한다. "이 협정을 따르라. 그와 함께 영원한 언약을 맺으라. 너희가 그의 것이 됨을 손으로 기록하라(사 44:5). 너희의 마음을 드린다는 표징으로 그에게 너희 손을 드리라. 그를 위한 사업과 의식에 스스로 전념하라. 그에게 귀순하라." 즉 "와서 그와 교제를 맺으라. 더 이상 그를 거역하지 말고, 그의 다스리심을 복종하라."

"그에게 귀순하여, 너희가 무엇이 되든지, 무엇을 하든지, 어떠한 것을 가지게 되든지 또한 어떠한 고통을 겪든지, 이 모든 것을 그가 뜻하시는 대로 그의 명령에 전적으로 순종하라. 이렇게 하기 위해 너희는 너희 열조같이 목을 곧게 하지 말라. 또한 너희의 타락하고 사악한 마음이 고개 들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반항하지 않도록 하라. 너희가 원하는대로 하겠다고 말하지 말고, 그가 원하시는 대로 할 것을 결심하라."

우리에게는 완고하여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으려는 육신에 속한 마음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우리 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았으며, 그것은 우리의 뼈 속에서 우리와 함께 자라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극복되어야 한다. 그러한 모순된 정신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녹아 없어져야 한다. 쇠같이 굳은 목도 하나님의 멍에에 순복해야 한다.

하나님께 대한 복종을 권면하기 위해, 히스기야는 그들에게 "하나님 전에 들어가서" 즉 그가 택하시고 그의 이름을 둔 그곳으로 들어가서 하나님께 시종들고 그가 명하신 규례대로 그를 섬길 것을 촉구했다.

"이제 성전의 문이 열렸으니, 들어가도 좋으니라. 성전 예배가 이제 복구되었으니, 너희도 거기에 참여하기를 원하노라." 왕은 "오라" 고 권유하였다. 방백과 제사장들도 "오라, 뜻 있는 자는 누구나 오라" 고 말하였다. 그는 이것을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것" (6절)이라고 일컫고 있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겼기 때문이다.
"이제 회개하고 돌아서라."
이처럼 하나님 은혜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된 자들은 또한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2] 그는 다음과 같은 논증을 폈다.

첫째, "너희는 이스라엘의 자손이므로 바로 너희가 배반한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관련이 있으며, 그에 대한 의무가 있다."

둘째, "너희가 돌아오도록 기다리시는 하나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시며, 너희의 첫 조상들이 그를 섬기고 그에게 복종하기로 언약을 맺은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그들의 영광이며 행복이었다."

셋째, "최근에 그를 버리고 죄를 범한 너희 선조들은 결국 멸망하고 말았다. 그들의 배신과 우상 숭배가 너희도 알다시피 그들의 멸망을 몰고 온 것이다(7절). 그들의 재난을 경고로 삼아라."

넷째, "너희는 겨우 앗수르 왕의 손에서 벗어난 남은 자에 지나지 않는다(6절). 그러므로 너희가 완전히 삼키우지 않도록 너희 열조의 하나님의 보호를 얻도록 노력하라"

다섯째, "이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너희에게서 떠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다(8절). 너희가 계속 목을 곧게 하면 분명 그의 진노가 너희를 불사를 것이다."

끝으로, "만일 너희가 하나님께로 돌아와 의무를 이행하면, 하나님도 다시 자비를 베푸실 것이다."

그는 이런 말로 시작하고(6절) 끝맺었다(9절).

즉 대체로 말하면, "너희는 그가 은혜로우시고 자비하셔서, 그를 진노케 했음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그를 구하면 그 얼굴을 너희에게서 돌이키시지 아니하시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너희는 포로로 사로잡혀 갔던 너희 형제가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기를 바랄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처럼 애절하고 감동적인 호소가 어디 있겠는가? 이보다 더 훌륭한 이유나 변론이 있을 수 있는가?

(2) 히스기야의 사자들과 그 전문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 당시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호세아가 이에 대해 분노를 일으키거나 반박을 일으켜, 이런 소식을 발포하러 다니는 자들을 쫓아내거나, 자기 백성들에게 그 초대를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막거나 한 일은 여기에서 찾아볼 수 없다. 호세아왕은 이것을 전적으로 그들의 자유에 맡겼던 것 같다. 그들은 의사가 있으면 하나님을 섬기러 예루살렘에 갈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비록 악을 행하기는 했지만 "그 전 이스라엘 왕들과 같이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왕하 17:2). 그는 그의 나라에 멸망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 만일 자기 부하가 이것을 방해하려 했었다면, 물론 그것을 쾌히 허락했을 것이다.


 

❖ 10-12절 : 유월절 동참 명령에 대한 백성들의 상반된 반응들

[1] 그러나 백성들은 대부분 전하는 자들의 소식을 무시했으며,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사자들은 이 성읍에서 저 성읍으로, 한 사람은 이 성읍으로 또 한 사람은 저 성읍으로 가서 백성들로 하여금 유월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으로 오도록 간청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소식에 응하기는커녕, 그것을 전하는 자들을 욕했고 "조롱하며 비웃었다" (10절). 즉 그들은 그것을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경멸하기까지 했다.

그들에게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이야기 하다니! 그들은 그를 알지 못했으며 바알과 아스다롯과 같은 신들을 섬기고 있었다. 그들의 산당도 훌륭한 성소였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자비와 진노하심을 말해 주다니! 그들은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또 이 우상들 외에는 어떤 것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왕의 사자들이 이처럼 패역한 종족들에게 경멸받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하나님으로부터 신임장을 받은 하나님의 사자들, 곧 그의 종 선지자들도 그러한 경멸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열 지파들의 멸망은 이제 눈 앞에 다가왔다. 앗수르 왕이 사마리아를 공격하고 이 지파 사람들을 사로잡아간 일은 이로부터 불과 이삼 년 후에 일어났던 것이다. 이러한 일이 있기 직전에, 그들 나라의 왕이 그들에게 하나님의 성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유다의 왕도 간곡하게 그들이 와줄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만일 그들이 모두 이 초대를 받아들였다면, 그들의 멸망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 초대를 경멸했기 때문에, 그들의 멸망은 더욱 재촉되었고 더욱 커졌으며,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자가 되고 말았다.


💡 30:10 보발꾼이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방 각 성읍으로 두루 다녀서 스불론까지 이르렀으나 사람들이 그들을 조롱하며 비웃었더라

본절부터 12절까지

  • 히스기야 왕의 칙령을 전한 톡사들의 활동에 따른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 즉 북이스라엘 지역의 백성들
    • 대다수가 이를 비웃고
    • 소수의 사람들만 스스로 겸비하여 예루살렘에 이른 반면,
  • 유다 백성들은
    • 모두 히스기야의 명령에 순종하였음을 언급하고 있다.

각 성읍으로 두루 다녀서

  • ‘성읍으로부터 성읍으로까지'라는 의미.
    → 이는 당시 그들의 칙령 선포 및 회개의 촉구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성읍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 이는 초대 교회 시대 사도 바울이 도시 중심의 선교를 했던 것과 흡사하다. 아마도 성읍을 중심으로 전달된 특사들 의 말은 거기 모인 사람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을 통해 시골 산간에까지 퍼져 나갔을 것.

사람들이 그들을 조롱하며 비웃었더라

  • 복이스라엘의 남은 자들 대다수가 히스기야 왕의 특사들에게 보인 냉소적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 ‘비웃었더라' : 능동태 분사형
    • 특사들을 향한 그들의 조롱과 비웃음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의미함.
    • 특사들은 왕명을 선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조롱과 비웃옴 을 당했으며, 그들이 선포를 마치고 예루살렘에 귀향한 이후에도 북이스라엘의 대다수 사람들은 한 동안 조롱과 비웃옴을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을 암시한다.

  1. 첫째는 왕의 특사들은
    1. 가는 곳마다 환영을 받지 못하고,
    2. 그들이 전하고 외치는 말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조롱을 당하고 비웃옴을 당했으나,
    3. 중도에 포기하거나 그 사람들과 싸우지 않고 끝까지 자기들의 사명을 다했다는 것이다.
    • 이는 그들이 히스기야 왕의 특사로서 임무를 하나님의 소명으로 여겼기 때문이요,
    • 자기들을 조롱하는 사람들의 영혼을 진실로 불쌍히 여겼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2. 둘째는 북이스라엘의 남은 자들 편에 관련해,
    1. 그들은 이미 앗수르의 말발굽에 국토가 유린당하고 그둘의 왕은 물론 많은 형제들이 포로되어 끌려가는 것을 목도했던 사람들이다.
    2. 그리고 얼마 후에 남쪽 유다에서 온 사람들에게 그들이 왜 그렇게 패망을 당해야 했는지 설명하는 것을 들었던 사람들이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남쪽 특사들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조롱하며 비웃었다는 것은
      ⇒ 그들이 아직도 하나님의 심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어떻게 반응했어야 하는가?
    • 그들은 이글거리며 타오르고 있는 하나님의 진노를 바로 직시하고, 하나님께 머리를 숙여야 함에도
    • 이를 거부하고 있다.
    • 이는 영적 어리석음과 교만의 발로에서 나온 것으로
    • 하나님이 제공한 최후의 자비의 초청을 묵살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었다. 

[2] 그러나 그 초대를 받아들인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이 소식이 비록 어떤 자들에게는 "죽음에서 죽음에 이르는 향기" 였지만,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생명에서 생명에 이르는 향기" 였다(11절). 가장 악한 시대에도 하나님은 남은 자를 두셨다.

여기에서도 역시 아셀과 므낫세와 스불론 중에(여기에 몇 지파는 언급되어 있으나 에브라임 지파에 대한 언급은 없다. 8절) 몇 사람들이 "스스로 겸비하여 예루살렘에 이르렀다." 즉 그들은 자기들의 죄를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하나님께 복종했다. 교만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길을 막는다. 그러므로 이 교만이 무너질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게 되는 것이다.


 💡 30:11 그러나 아셀과 므낫세와 스불론 중에서 몇 사람이 스스로 겸손한 마음으로 예루살렘에 이르렀고

  • 본문은 북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이 믿음을 저버리고 회개에로의 초대를 멸시하고 비웃는 상황 속에서도 남은 자가 있음을 보여주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남은 자들이 아무리 극소수여도

  • 하나님 앞에는 소중한 존재들이고,
  • 그들을 통해 하나님은 당신의 구속 역사를 면면히 이어나가신다.

결국 그들이 돌이켜 남유다로 내려가 유월절을 지킴으로
북이스라엘에 속한 자들이 함께 유월절을 지키는 역사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본절을 시작하는 단어 ‘아크'

  •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역접의 의미를 나타내는 접속사.

이 접속사가 드러내주고 있는 의미

  • 본절의 몇 사람들이 조롱과 비웃음으로 가득 찬 외부 환경에 동요되어 물들지 않고,
  • 그들 속에서 울려 나오는 진리의 세미한 음성에 자기의 의지를 쳐 복종시켰다는 사실이다.

사실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진리를 거슬러 행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마음속으로는 진리를 믿어도, 그것을 행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요 12:42,43).
그런데 북이스라엘의 남은 자들 중 몇 사람들은 주위의 비난에 개의치 않고, 오직 속에서 역사하는 진리의 음성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특사를 따라 예루살렘성으로 발걸음을 옮겼던 것이다.
그러한 몇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며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전도자는 희망을 가지고 복음을 전해야만 하는 것이다(고전 1:23).

‘몇 사람’ (’아나쉼’)

  • ‘아나쉼’ : 사람을 나타내는 여러 단어 중에서 특히 '죽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로서의 사람'을 의미하는 '에노쉬’의 복수형.
    → 여기에서 특사들의 말을 들은 후에 주변의 조롱과 비웃음을 과감히 뿌리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루살렘에 간 사람들을 — ‘아나쉼'이라는 단어로 표현한 것은 의미 심장하다.
  • 이러한 표현은 그들이 선천적으로 용기가 있고 강한 자듈이기 때문에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타내준다.
    즉 그들 모두는 히스기야외 초대를 멸시하고 조롱했던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연약함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결단을 내렸던 것.
  • 그리고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것은 이 사건의 배후에서 그들의 심령에 강권적으로 역사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 이러한 사실을 분명하게 나타내기 위해 본서 저자는 의도적으로 ‘아나쉼'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스스로 겸손한 마음으로

  •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낮아졌다’
  • 마음의 편견과 고집을 버리고, 또 자아를 버린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면
    — 누구라도 그 말씀 아래에서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다.

본절에 나온 몇 사람들은 바로 이러한 자들이다.

이러한 겸손한 자세를 어떻게 가질 수 있는가?

  • 자신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비참한 존재 이고,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얼마나 큰 심판을 당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를 자각하고,
  •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가를 절실히 깨달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태도.
  • 하나님은 바로 이러한 자를 기뻐하시며, 이러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잠 3:34).

2. 유다 사람에게도 이 제전에 참석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그들은 모두 여기에 복종했다(12절).

그들은 온전히 한 마음으로 행했으며, "하나님이 그들을 감동시키사" 그들로 하여금 "일심으로" 준행케 하셨다. 그리스도의 종들은 권능의 날이 오면 기꺼이 복종하는 법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행하게" 역사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어느 때든지 백성들이 선한 사업에 힘쓰게 되거든 그들은 하나님의 역사인줄로 알아야 한다.


💡 30:12 하나님의 손이 또한 유다 사람들을 감동시키사 그들에게 왕과 방백들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전한 명령을 한 마음으로 준행하게 하셨더라

  • 본절은 왕의 특사들이 선포한 말에 대한 유다 사람들의 반응을 보여줌.,
  • 그들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로 왕의 뜻을 따른 — 복된 자들이었다.

‘하나님이 … 감동시키사’

  • 문자적으로 ‘그 하나님의 손이 주셨다'.
  • 이는 유다 사람들이 왕의 명령을 지킬 수 있도록 —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가 유다 사람들에게 임했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관용적 표현.

대부분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 복이스라엘 사람들과 달리, 남유다 사람들에게 이와 같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임한 것은

  • 이미 성전 개혁 및 국가적 번제와 속죄제를 통해 유다가 하나님 앞에 기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 그런 바탕에서
    → 하나님은 유다 사람들의 마음을 주장하셔서, 
    → 왕의 명령에 기쁘게 순종할 수 있도록 역사하셨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