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창세기 11, 마태복음 10, 에스라 10, 사도행전 10
묵상구절
6:1 그 날 밤에 왕이 잠이 오지 아니하므로 명령하여 역대 일기를 가져다가 자기 앞에서 읽히더니
6:2 그 속에 기록하기를 문을 지키던 왕의 두 내시 빅다나와 데레스가 아하수에로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모르드개가 고발하였다 하였는지라
6:3 왕이 이르되 이 일에 대하여 무슨 존귀와 관작을 모르드개에게 베풀었느냐 하니 측근 신하들이 대답하되 아무것도 베풀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6:4 왕이 이르되 누가 뜰에 있느냐 하매 마침 하만이 자기가 세운 나무에 모르드개 달기를 왕께 구하고자 하여 왕궁 바깥뜰에 이른지라
6:5 측근 신하들이 아뢰되 하만이 뜰에 섰나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들어오게 하라 하니
6:6 하만이 들어오거늘 왕이 묻되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냐 하만이 심중에 이르되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자는 나 외에 누구리요 하고
6:7 왕께 아뢰되 왕께서 사람을 존귀하게 하시려면
6:8 왕께서 입으시는 왕복과 왕께서 타시는 말과 머리에 쓰시는 왕관을 가져다가
6:9 그 왕복과 말을 왕의 신하 중 가장 존귀한 자의 손에 맡겨서 왕이 존귀하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서 성 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여 이르기를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게 하소서 하니라
6:10 이에 왕이 하만에게 이르되 너는 네 말대로 속히 왕복과 말을 가져다가 대궐 문에 앉은 유다 사람 모르드개에게 행하되 무릇 네가 말한 것에서 조금도 빠짐이 없이 하라
6:11 하만이 왕복과 말을 가져다가 모르드개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 성 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되 왕이 존귀하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니라
6:12 모르드개는 다시 대궐 문으로 돌아오고 하만은 번뇌하여 머리를 싸고 급히 집으로 돌아가서
6:13 자기가 당한 모든 일을 그의 아내 세레스와 모든 친구에게 말하매 그 중 지혜로운 자와 그의 아내 세레스가 이르되 모르드개가 과연 유다 사람의 후손이면 당신이 그 앞에서 굴욕을 당하기 시작하였으니 능히 그를 이기지 못하고 분명히 그 앞에 엎드러지리이다
6:14 아직 말이 그치지 아니하여서 왕의 내시들이 이르러 하만을 데리고 에스더가 베푼 잔치에 빨리 나아가니라
매튜헨리/옥스퍼드
●기록된 모르드개의 충성(에스더 6:1-3)
서론
💡본문은 본서 이 야기 의 절정 (Ifell)에 해당하는 부분으로서 하만의 유다인 멸절 음모 실패와 처형에 대하여 다루는 제5-7장 기사의 연속 부분.
- 앞단락 : 모르드개로 인한 하만의 불평과 아내와 친구둘의 조언에 따른 하만의 모르드개 처형 계획에 대하여 보도하고 있는 5:8-14에 이어,
- 본단락 : 모르드개의 과거 공적에 대한 아하수에로 왕의 포상 및 하만의 친구들 중 지혜로운 자들과 하만의 아내 세레스의 하만 몰락 예견에 대하여 보도하고 있다.
1-3절
- 자기를 위한 에스더의 일차 연회가 있던 날 밤 아하수에로는 잠이 오지 않아 궁중 일기를 가져다 읽는 가운데
— 전날 모르드개가 자신을 시해하려고 음모를 꾸민 자들을 고변한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에 왕은 시신에게 모르드개에 대한 포상이 무엇이었는지를 물은 결과 아무런 포상도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1-3절).
4-9절
- 그래서 그는 모르드개의 공을 포상하기로 마음먹고 어전 뜰에 누가 있는지를 물었다. 때마침 어전 뜰에는 전날 모르드개를 처형하기로 작정한 하만이 모르드개의 조기 처형을 건의하기 위하여 도착하여 있었다. 하만은 아마도 날이 새기만을 기다렸다가 왕궁으로 달려온 것 같다.
- 왕은 하만을 불러 그에게 모르드개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지 않고 다만 자신이 존귀케 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를 물었다.
- 왕은 단지 하만이 모르드개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그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으나 하만은 그로 인하여 왕이 존귀케 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자기뿐이라고 오판한 나머지 그에게 왕의 옷을 입히고 그를 왕의 말에 태운 다음 신하 중 가장 존귀한 자로 그를 인도하여 성중으로 다니며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는 자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외치게 하라고 주청하였다(4-9절).
10-11절
- 왕은 즉시 하만에게 그의 말대로 모르드개에게 시행할 것을 지시하였으며. 하만은 왕의 지시에 따룰 수밖에 없었다(10,11절).
- 이후 모르드개는 다시 왕궁 문으로 돌아오고 하만은 괴로움으로 머리를 감싼 채 집으로 돌아와 자기가 당한 일을 아내와 친구들에게 말하였다.
- 그러자 그중 지혜로운 자들과 하만의 아내는 앞으로 하만이 모르드개에게 굴욕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예견하였다(12-14절).
하나님의 섭리
이러한 본문은 앞문단까지 전개되어 오던 유다인의 위기 상황이 마침내 반전되기 시작하였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에스더가 동족을 위해 탄원하기로 되어 있는 두번째 잔치가 베풀어지기 전날 밤 아하수에로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역대 일기를 읽게 된 것은 — 참으로 우연의 일치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걸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이는 당신의 택한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세심하고 오묘한 섭리의 결과였습니다.
즉 아하수에로 자신은 깨닫지 못하였을지라도 유대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그로 하여금 자신을 시해하려 한 자들의 음모를 적발한 모르드개의 공적이 기록된 역대 일기를 읽도록 섭리하신 것이다.
이처럼 큰 공을 세우고도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였던 모르드개의 공적이 5년 만에, 그것도 가장 극적인 순간에 드러나 인정과 보상을 받은 사실은
-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치밀하게 섭리하시는가를 잘 보여준다.
또 우리는 본문에서 하만의 모르드개 처형 작정, 아하수에로의 모르드개 공적 발견, 하만의 입궐, 하만으로 인한 모르드개의 존귀, 하만의 아내와 친구들의 모르드개 존귀 및 하만의 몰락 예견 등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의 손길을 느끼게 됩니다.
의인 모르드개의 영광과 악인 하만의 수치가 임박함.
우리는 하만의 마음에 사탄이 어떻게 역사하여 모르드개를 죽일 방법을 고안해 내었는가를 전 장에서 읽었다. 이제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왕의 마음을 움직이시어 모르드개에게 영예를 부여하도록 했는가를 읽게 된다. 왕의 말이 하만의 말보다 위에 있다 할지라도(하만이 높은 자이긴 하지만 보좌 위에 있는 왕은 그보다 더 높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 속에 어떤 생각이 있든지" 간에 더욱 "하나님의 뜻을 세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왕이 모르드개를 영예롭게 하고자 했을 때는 하만이 그것을 반대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하만에게 실망을 안겨다 준 모르드개의 승진은 그 다음날 유다인을 구원하고자 하는 에스더의 큰 일을 돕는데 많은 힘이 되었다. 때로 일을 연기시키는 것이 좋은 결심을 가져온다. 잠시 연기하면 더 빨리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Cunctando resituitrem-" 그는 지체함으로써 승리했다." 이제 하나님의 섭리가 모르드개를 승진시킨 자취를 좇기로 하자.
Ⅰ. "이 밤에 왕은 잠이 오지 아니하였다." 그의 "잠은 달아나버렸다" (문자 그대로 하면).
그리고 그가 잠을 청하려 하면 그것은 그림자처럼 달아났을 것이다. 때로 우리는 너무 열심히 잠을 청하기 때문에 잠들 수 없다. 섭리자가 그로 하여금 깨어 있게 했을 때 그는 술잔치가 끝난 후에도 잠들 수가 없었다. 우리는 그가 잠을 이룰 수 없을 만큼 몸이 불편한가에 대해서는 읽은 것이 없다. 그러나 "잠을 선사하시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그로부터 거두어 가셨다. 항상 근심을 떨쳐 버리겠다고 결심하는 자들은 언제나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즉 그들은 전혀 그것을 예상치도 않고 또 원하지도 않을 때 그들의 벼개 속에서 근심을 발견하게 된다. 127도를 명하는 왕이 한 시간의 잠을 명할 수 없었다. 아마도 그는 전날 에스더의 매력적인 화술로 인해 그의 귀한 아내를 삼십일 이상 동안이나 돌보지 않고 멀리한 일에 대해 스스로를 책망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로 하여금 잠 못이루게 했을지도 모른다. 잘못을 범했을 때 양심은 조용한 시간을 틈타 말하게 될 것이다.
💡 1절, ‘이 밤에’
- 새로운 주인공의 등장이나 새로운 사건의 발생을 암시하면서 시간적 배경을 제시하는 것은 본서의 하나의 특징이다.
왕은 심한 불면증에 시달림. (잠이 ‘오지 아니하므로’) =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
본서 저자는 왕의 불면증의 직접적인 원인에 대하여는 침묵한다.
저자는 그 이유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면서 그냥 우연인 것처럼 기술한다.
바로 이런 구성 방법이 본서 저자의 독특한 기술 방법이다. 마치 모든 것을 우연인 것처럼 보이게 하지만 그 속에는 복선과 인과 관계와 풍자(Irony)가 복합적으로 함축되어 있다. 본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예민한 독자는 원문을 통하여 이것이 우연이 아니라 그 배후에 계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임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한글 개역 성경의 ‘왕이 잠이 오지 않으므로'에 해당하는 원문을 직역하면,
- ‘왕의 잠이 흔들렸다'.
여기에서 왕의 잠을 흔든 주체는?
- 본문에 직접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그러나 그 주체는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잠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요 잠을 들지 못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시 127:2).
본서에서는 이처럼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독특한 기술 방식으로 저자는 본서에서 비록 하나님의 이름을 한 번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스토리 곳곳에 감추어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본문에서 보여준 아하수에로의 불면증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즉 모르드개가 죽음을 피해가기는 이미 늦은 것과 같은 상태, 도무지 아무런 희망의 빛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상태에서, 아하수에로 왕이 뜻하지 않은 불면증에 시달리게 된다.
그런데 이 불면증은 왕으로 하여금 역대 일기 가운데서 모르드개의 공적 관련 부분을 읽게 만든다. 그리고 이는 모르드개가 원수 하만 앞에서 영예를 얻게 되는 원인이 된다.
본장 후반부에서 하만에 대하여 모르드개가 얻은 이 영예는
— 본서 결론부에서 대적에 대한 선민의 궁극적인 승리를 예표하는 사건이다.
⇒ 이러한 내용 흐름을 감안할 때 아하수에로의 불면증은
- 자기 백성의 승리와 구원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의 결과라 할 수 있다
Ⅱ. 그가 잠을 이룰 수 없을 때 그는 기록문서 즉 역대 일지를 가져와 그에게 읽어 주도록 명했다(1절).
분명 그는 그것이 그를 재울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그의 머리를 근심으로 채우고 잠을 몰아 낼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가 페르샤 왕들이 흔히 즐기던(단 6:18) 기악이나 노래로 그의 휴식을 구하기 보다는 오히려 역대 일지를 청하여 읽도록 그의 마음을 움직이셨다. 사람들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행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것에 대해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계시는가를 알 수가 없다. 아마도 하나님은 왕이 그 시대를 개선하고 어떤 선한 계획을 구상하게 하기 위해 그에게 이 궁중 일기를 읽혔을 것이다. 다윗의 경우에 그는 이 책 속에서 즐거운 생각을 얻으려 했다. 즉 다윗은 잠을 잘 수가 없을 때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을 묵상하고자 했다(시 64:6). 그리고 만일 그에게 어떤 책을 읽어 주길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성경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였기" 때문이었다.
Ⅲ. 신하가 그에게 읽어준 내용은 우연히도 처음부터 모르드개에 관한 것이었거나 아니면 얼마만큼 읽은 후 그 내용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 속에서 모르드개가 왕을 모살하려는 계획을 발각해 내어 그것을 막게 되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2절). 모르드개는 그 읽는 사람이 의도적으로 그 내용을 들추어 낼만큼 궁중에서 호감을 받고 있는 사람으로 섭리자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에게 호감을 갖도록 지시했다. 만일 우리가 유대인의 전설을 믿는다면(패트릭 감독은 그것을 이렇게 연관시키고 있다) 그가 이 내용을 펼치게 되었을 때, 다른 내용을 읽으려고 책장을 들추었으나 다시 모르드개의 내용이 실린 곳을 펼치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 내용을 읽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모르드개의 선한 업적이 어떻게 기록되었는가는 2장 23절에 언급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그 기록이 발견된 것이다.
Ⅳ. 왕은 이 선한 업적이 보답받지 않았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바로의 관원장처럼 그것을 "오늘날 그의 허물" 로 간주하면서(창 41:9) "무슨 존귀와 관작을 모르드개에게 베풀었는가" 를 물었다.
감사하는 법은 자연의 법도이다. 우리는 특히 아래 사람들에게 감사해야 하며 그들의 봉사는 우리의 은혜를 입은 대가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 왕의 물음에서 감사에 대한 두 가지의 규정을 들 수 있다.
💡 본서 2장 후반부에서 모르드개는 왕을 모살하려는 반역자들의 음모를 눈치채고 그것을 왕께 고변함으로 왕의 생명을 구하는 공적을 세웠다. 즉 모르드개는 아하수에로 왕의 생명의 은인인 셈이다.
- 생명의 은인에게는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최고의 것으로 보상해 주어도 아깝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하수에로 왕은 모르드개에게 아무런 포상도 내리지 않았다.물론 그 나라가 클수록, 그리고 반역 행위가 자주 발생한 나라일수록 이러한 보상 제도는 더욱 발달되어 있었다. 따라서 당시 근동 최대의 제국이자 암살 음모가 번번히 일어나던 페르시아 제국에서 반역자를 고발한 모르드개에게 응당의 보상이 주어지는 것이 마땅하였다.아무리 국정이 바빠서 포상을 내릴 겨를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5년이 지나도록 왕이 자신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에게 아무런 보답도 하지 않은 것은 상식적인 선에서도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르드개에게는 아무런 보상도 주어지지 않았다.
이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반역을 꾀한 자는 최악의 범죄자로 간주되어 가장 잔인한 극형이 주어지는 반면, 그것을 고발한 자는 최대외 공로자로 간주되어 부귀 영화를 누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이런 비상식적인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당신의 깊으신 뜻 가운데 절대적 주권으로 개입하신 것이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 그렇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에 대한 구원 사역을 완성시키시기 위하여 이 일이 있기 이전부터 치밀하게 계획하셨다.
- 모르드개가 큰 공적을 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그로 아무런 대가도 받지 못하게 하심으로, 차후 더욱 중요하고 커다란 목적을 이루는 데 모르드개의 공적을 사용하셨고, 이는 모르드개 개인에게도 더욱 유익하고 충족한 보상이 되었다.
그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Herodotus)의 기록에 의하면
- 당시 페르시아 제국에서는 왕에게 은혜를 입힌 자들이 특별한 계급을 형성했을 뿐만 아니라 그 이름이 특별한 책에 기록되었다고 한다.
- 또한 왕은 이런 공신들이 합당한 포상을 받았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하여 자신이 직접 확인할 의무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 그러므로 아하수에로 왕은 당연히 자신의 생명을 구한 모르드개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확인 차원에서 본문과 같은 질문을 하였을 것이다.
Ⅴ. 신하들은 왕에게 탁월한 공적을 세운 모르드개를 위해 어떠한 보답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렸다. 즉 그는 이전에 대궐 문 앞에 앉아 있었던 것 같이 지금도 여전히 거기에 앉아 있다고 말했다.
다음 사실을 주목하자.
1.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이 아래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은 흔한 일이다. 왕은 그의 신하가 그에게 고할 때까지 모르드개가 승진했는지 안했는지를 몰랐다.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은 그들보다 낮은 자들을 돌보지 않고 무관심하거나 그들의 상태를 모르는 척함으로써 긍지를 지니려 한다. 위대하신 하나님은 가장 비천한 종이라도 소홀히 여기지 않으시며 그들이 어떠한 관직을 가졌고 또 어떠한 굴욕을 당했는가를 다 알고 계신다.
2. 겸손과 정직과 자기 부인은 비록 하나님께서는 높이 평가하시는 것이나 일반적으로 이 세상에서는 출세 길에 방해가 되고 있다.
모르드개는 대궐 문보다 높지 않았으나, 교만하고 야심만만한 하만은 왕의 귀였고 마음이었다. 야심가는 빨리 출세하나 겸손한 자는 견고히 그 자리를 지킨다. 명예는 교만한 자를 경솔하게 만들지만, 마음이 겸손한 자는 높게 만든다(잠 29:33).
3. 존귀와 관작이 궁중 일기에서는 높이 평가되고 있다.
그는 모르드개에게 무슨 보답을 했는가, 돈을 얼마나 주었는가 무슨 재산을 주었는가 하고 묻지 않았다. 그는 단지 무슨 존귀를 주었는가 하고 물었다. 그러나 존귀란 보잘 것 없는 것으로서 그것을 지탱해 나갈 만한 여건을 갖추지 못할 때는 부담스러운 것일 뿐이다.
4. 매우 위대한 공적과 훌륭한 봉사는 흔히 인간들 가운데 소홀히 여김을 받고 보답을 받지 못한다.
가장 존귀를 받기에 합당하고 또 그것으로 가장 선한 일을 행하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거의 존귀가 부여되지 않고 있다. 전도서 9장 14-16절을 보라. 갑자기 얻은 부귀는 흔히 완전한 운수에 의한 것인데 거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최상의 상을 획득한 자들은 일반적으로 그것을 날려 버리게 된다.
5.선한 봉사는 사람을 승진시키기는커녕 때로는 그를 보호하는 무기가 되지도 못한다.
모르드개는 관작을 얻을 자격이 있음이 결국 인정되긴 했지만 그 당시 왕의 조서로 인해 모든 유다인들과 함께 파멸당할 위기에 처해 있었다. 하나님을 충성되게 섬기는 자는 이처럼 나쁜 보답을 받을까 보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좌절된 하만의 야욕(에스더 6:4-11)
이제 아침이 되어 백성들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 본문에서는 우연으로 보여지나 실상은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필연인 또 하나의 사건을 보여준다.
Ⅰ. 하만은 모르드개를 나무에 달아 죽이려는 데 광분하여 일찍 왕궁 뜰에 와 왕을 접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첫마디의 요청에 왕이 분명 그 일을 허락해 줄 것이라고 믿어 만사를 젖혀 놓고 허락을 받으러 나온 것이다(4절).
왕은 하만이 그것보다 더 큰 일을 요청했을지라도 그를 만족시켜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하만은 그의 요청이 타당하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고 왕이 그에게 그 일을 허락해 줄 것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이미 나무를 준비해 놓았다고 왕에게 말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왕이 한 마디만 던지면 그의 만족은 이루어질 수 있다.
💡
- 첫째, 아하수에로 왕은 역대 일기를 읽다가 모르드개의 공로를 발견하고는 아무런 상도 내리지 않았음을 깨달아 고민하면서 밤을 지새웠다.
- 둘째, 하만은 자신이 꾸민 일에 대하여 조급한 나머지 그 어떤 신하보다도 먼저 왕궁에 도착하여 왕이 호출하기만을 기다렸다.
이러한 아하수에로와 하만의 모습을 통하여 저자는 또 하나의 역설(Irony)을 보여준다.
- 아하수에로 왕과 하만, 이 두사람 모두 새벽을 기다려 왔다.
- 그리고 새벽이 이르자 아하수에로 왕은 자신의 설수와 관련하여 조언을 해줄 사람을 찾았는데, 그 때 마침 자리한 자가 바로 하만이었다.
- 하만도 새벽이 되자 자신의 청을 들어줄 사람을 찾아 나왔는데 - 그가 바로 아하수에로 왕이었다.
- 그러나
- 아하수에로 왕은 모르드개를 존귀하게 하기 위하여 새벽을 기다렸고,
- 하만은 모르드개를 멸망시키고 비참하게 만들기 위하여 새벽을 기다렸다.
하만의 심중의 의도
- '자기가 세운 나무에 모르드개를 달기를 왕께 구하고자 하여'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우연의 일치인듯 보이는 하나님의 치밀한 섭리와 계획
- 한편 본단락의 내용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 모르드개가 왕을 살해하려는 반역자들의 모의를 우연히 들은 사건에(2:21) 이어 우연하게 이루어지는 듯한 일련의 사건들이 계속되고 있다.
- 아하수에로 왕이 잠을 이루지 못하여 역대 일기를 읽다가 모르드개외 공적을 우연히 발견하였다(1 절). 그리고 왕이 모르드개에 대한 포상과 관련하여 의논할 사람을 찾고 있을 때 하만이 우연히 왕궁에 들어왔다.
- 이처럼 우연처럼 보이는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데 그것은 걸국 하나님의 백성을 멸절하려는 하만의 흉계를 파하는 일로 귀결된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성도들은 비록 사람의 눈에는 우연의 연속으로 보이지만 이는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치밀한 계획에 따라 이루어진 필연적 사건의 연속임을 볼 수 있어야 한다.
Ⅱ. 왕은 몹시 모르드개를 존귀하게 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 일을 수행하기에 합당한 자가 뜰에 있는가를 물었다. 그러자 하만이 뜰에 있다는 전갈이 들어왔다(5절).
💡 시신이 오직 한 사람의 이름, ‘하만'만을 밝히고 있는 점으로 봐서 하만 외에 어느 중신도 이 시간에 왕궁에 나오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하만은 그 날 아침 궁궐에 가장 먼저 도착한 신하였다.
추측건대 — 하만은 모르드개에 대한 분노와 아내와 친구들이 제안한 바 모르드개를 죽여 나무에 매다는 일을 실행에 옮기고자 하는 악한 열의로 인하여 불면의 밤을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날이 새자마자 그는 자신의 악한 계획을 왕에게 간하고자 왕궁 뜰을 향해 달음질한 것이다.
왕은 그의 총애를 전하고 시여하기에 합당한 자를 "들어오게 하라" 고 말했다. 그리고 왕은 하만이 모르드개와 반목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하만은 "왕이 일어나기 전" 왕의 침소로 들어가도록 허락 받은 그 영예를 흐뭇하게 여기며 곧 들어갔다. 왕은 모르드개를 존대하게 하라는 명령만을 내리고는 마음 편히 다시 자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하만은 모르드개를 처치하게 해달라고 청하기에 가장 좋은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왕도 하만처럼 긴히 하고자 하는 말이 있었으므로 왕이 먼저 말을 꺼내도록 해야 했다.
Ⅲ. 왕은 총애하는 신하에게 어떻게 그의 총애를 표할 수 있는가 하만에게 물었다.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뇨?" (6절) 상을 하사하기를 기뻐하고 벌하기를 기뻐하지 않는 것은 왕과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에게 속한 훌륭한 재산이다. 부모와 주인은 그들의 책임 하에 있는 선한 것을 장려하는 일에서 즐거움을 취해야 한다.
💡 자신의 명을 받고 곧장 들어와 앞에 선 하만에게 아하수에로 왕은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뇨"라고 하문하였다.
이러한 질문은 본장 3절에서 역대 일기 가운데 모르드개의 슴온 공을 알고 난 이후 아하수에로가 시신에게 한 질문과 약간 다르다.
- 앞선 3절에서 아하수에로는 “이 일을 인하여 무슨 존귀와 관작을 모르드개에게 베풀었느냐"라고 시신에게 물었다.
- 그런데 본절에서 아하수에로는 3절과 비교할 때 두 개의 중요한 단어를 생략한 채 유사한 질문을 하만에게 한 것이다. 이러한 질문은 다옴과 같온 점에서 3절의 질문과 구별된다.
- 차이점
- 왕은 자신이 마음에 두고 있는 인물을 언급하면서 모르드개를 언급하지 않음.
- 3절의 ‘관작’을 언급하지 않음.
⇒ 왕이 이렇게 말하는 바람에 하만은 쉽게 착각에 빠지고 말았다. 만약 왕이 '관작'이 란 단어만이 라도 언급했더 라면 하만은 의아해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만은 이미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벼슬이란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섭리로 역사하심
궁극적으로 볼 때 이러한 아하수에로의 단어 사용 역시도 하나님의 섭리의 결과라 할 수 있다.
- 즉 하나님께서는 하만이 아하수에로가 지목하고 있는 인물을 오해하도록 만들기 위해 아하수에로의 질문 시 중요한 단어들이 빠지도록 역사하신 것이다.
- 그리고 이와 함께 하만외 자만심과 상황에 대한 그릇된 판단을 통하여 하만 스스로 모르드개를 높이는 걸코 예상치 못한 사건이 일어나도록 연출하신 것이다. 이러한 일은 하만으로서는 결코 예상치 못한 일일 뿐 아니라 결코 원치 않았던 수치스럽고 절망스런 사건이었다.
- 그러나 이 일은 동시에 모르드개와 유다인들에게는 그들의 구원과 관련해 특별한 의미를 지닌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Ⅳ. 하만은 자기 자신이 바로 왕이 은혜를 베풀고자 하는 자일 것이라고 단정지었다. 그러므로 그는 왕이 한 번 신하에게 하사할 수 있는 가장 영예로운 것들을 진술하였다.
💡 하만이 왕의 마음에 있는 사람을 자신으로 확신한 것은 일차적으로 자기 중심적인 교만에서 비롯된 것이다. 왜냐하면 하만은 현재 페르시아 제국 내에서 왕을 제외한 최고의 자리에 올랐고(3:1), 왕의 총애를 받는 왕비 에스더에게서 왕과 더불어 잔치에 초대받은 유일한 자였기에 그는 자신보다 더욱 존귀한 자가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만의 명예욕과 교만 vs 모르드개의 겸손함
하만은 이미 넘치는 존귀 가운데 있었지만 만민이 보는 앞에서 영광을 받고 싶어하였다. 그의 이런 명예욕은 실제로 큰 공로를 세워 높아질 수 있는 위치에 있었으나 이를 내세우지 않았던 모르드개의 태도와는 매우 대조된다.
이는 어떤 면에서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의 철저한 대조이기도 하다.
지혜로운 자는
- 침묵할 때와 말할 때를 알며 말을 함에 있어서도 신중을 기하지만,
미련한 자는
- 그렇지 않다(잠12:19-28).
이로써 하만은
-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는(잠16: 18) 잠언의 가르침과 같이
- 교만함으로 인하여 스스로 무덤을 파고 멸망의 자리에 떨어진 대표적인 인물이 되었다.
따라서 그의 교만한 마음은 곧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다.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는 자는 나 이외에 누가 있겠는가? 나처럼 그것을 받을 만한 자가 또 없으리라. 또 그것을 받을 만큼 훌륭한 자는 나 이외에 없으리라."
💡 왕의 질문을 받은 하만은 왕이 존귀케 여기기를 원하는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확신을 가진 후에 본문에서부터 9절 말미에 이르는 긴 대답을 시작한다.
인간의 교만이 인간을 어떻게 기만하는가 보라.
1. 하만은 자기의 공적을 과대평가하여 그 자신보다 영예를 얻기에 더욱 합당한 자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우리들 자신만이 상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거나 혹은 다른 사람보다 더욱 받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우리 자신의 마음을 기만하는 일은 우리 스스로와 우리가 행한 일에 대해 자만하는 태도에서 나타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대항하여 끊임없이 경계하고 기도해야 한다.
2. 그는 자기의 세력에 대해 과대평가하고 있었다.
그는 왕이 자기만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긴다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오산이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 대한 존경을 고백할 때, 그것이 겉으로 표현된 것과 같이, 혹은 우리가 때로 기쁘게 믿으려 하는 것만큼 그리 큰 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말고, 또 따른 사람을 지나치게 신뢰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제 하만은 그 자신이 영예를 받게 되었다고 생각하여 매우 후한 영예를 제안했다(8, 9절). 아니, 그는 주제넘게도 왕복을 입고 왕관을 쓰고 왕의 말을 타야 한다고 생각하여, 어떤 신하에게도 수여하기에는 너무 과분한 영예를 지시했다. 간단히 말해서 그는 권력의 상징인 왕의 홀을 제외한 왕 자신의 온갖 화려함과 장엄함을 몸에 두른 모습을 나타내고자 했던 것이다.
게다가 그는 그의 하인으로서 "왕의 방백 중 가장 존귀한 자" 의 시중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모든 백성들은 그를 주시하고 경의를 표해야 했다. 왜냐하면 그는 이러한 모습으로 거리를 돌아다니며 그의 영예를 위해, 그리고 모두 그의 은혜를 구하도록 격려하기 위해,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고 "군중 앞에서 반포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요셉 앞에서 엎드려 절하라고 선포한 것과 같은 의도에서였다. 즉 훌륭한 신하는 모두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는 자를 영예롭게 해야 했다. 하물며 모든 선한 크리스찬들은 왕의 왕께서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시며 "땅 위의 성도로 뛰어난 자" 라고 부르시는 자들을 영예롭게 하지 않겠는가?
💡 8절,
하만은 왕이 심중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자기 자신임을 확신한 나머지 자신이 누리고픈 최고의 영예를 생각해 낸다. 그는 먼저 왕의 옷을 취하여 입히라고 말한다. 왕이 입는 옷을 취하여 입히는 것은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큰 영예를 얻는 것임에 틀림없다.
애굽의 왕 바로는 요셉에게 세마포 옷을 입혀 그를 높였다(창 41:42). 이스라엘의 왕자 요나단도 자신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줌으로 호의를 베풀었다(삼상 18:4).
그리스 역사가 폴루타크(Plutarch)도 이와 비숫한 사건을 기록했다.
어느 날 테리바저스(Teribazus)란 인물이 아닥사스다 왕에게 찾아와 옷을 달라고 요구하자 왕은 이를 흔쾌히 승낙한다.
그러나 왕은 자신의 옷을 주기는 하였으나 그것을 입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들에서 잘 드러나는 것처럼 왕이 입는 옷을 다른 누군가에게 주어 입도록 허락한다는 사실은 매우 드문 일로, 큰 영예를 주어 그를 높이는 일임이 분명하다.
게다가 본문에서 하만이 이야기하는 ‘왕의 입으시는 왕복'은 왕이 보통 입는 여분의 옷이라는 뜻이 아니라 왕이 현재 입고 있 는 옷을 가리킨다.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Herodotus)는 당시 페르시아에서는 왕이나 제후 등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입던 옷을 기증했고 이 옷들을 가리켜 메디아(Median)복이라고 불렀다고 증거하는데, 본문에서 하만이 말하는 왕복온 이 메디아복이 아니다. 하만이 말하는 왕복이란 왕 자신이 현재 입고 있는 옷을 가리킨다.
💡 9절,
통치자에 의한 신하의 영광을 다루는 이러한 내용은 창세기의 요셉 스토리와 상당히 많은 부분에 있어서 일치한다. 즉 창 41:37-43에서는 애굽 왕 바로가 자신의 인장 반지를 때어 요셉에게 주고 세마포 옷을 입히며 금 사슬을 목에 걸어주고 수레에 태워 화려한 행렬을 시켰던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본문에서 하만이 제안한 의식과 매우 흡사하다.
그러나 본장의 이러한 의식이 요셉에게 주어졌던 의식과 흡사한 만큼 현저한 대조 또한 보인다.
- 요셉의 경우는
- 장차 칠년 간 닥치게 될 흉년으로부터 나라를 구할 방책을 제시하였으며 이에 대한 보상으로 그에게 명에가 주어졌다.
- 반면 하만의 경우는
- 요셉과는 대조적으로 명에를 받아야 할 구체적인 이유가 없었다.
- 오히려 그는 '왕이 존귀케 하시기를 기뻐하시는 사람', 즉 오래 전에 왕의 생명을 구했던 자의 명예를 가로채려 하고 있다.
- 요셉은
- 만민에게 이익이 될 만한 계획을 고안하여 명예와 영광스러운 행렬을 수여받은 반면,
- 하만은
- 자기 자신만을 위한 명예와 허탄한 영예를 추구하고,
- 그에 따른 행렬을 고안하였다.
- 그러나 이러한 하만의 고안은 그의 대적자이자 왕의 참다운 은인인 모르드개를 높이는 결과를 야기했다.
- 요셉은
- 왕이 직접 인장 반지를 주고 옷을 입히고 관직을 주며 왕이 타는 수레 다음의 수레인 버금 수레에(NIV, a chariot as his second-in-command) 태우는 등 왕 스스로가 직접 이 행사를 주관했지만,
- 하만의 경우에는 누가 이 행사를 주관할 것인지 명확하게 드러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버금 수레가 아닌 왕이 직접 타는 말을 요구했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 요셉에게 주어졌던 명예는
- 제국의 2인자의 것으로 바로 왕에게 종속된 것이었던 데 반해,
- 하만이 차지하려고 했던 명예는
- 왕과 동등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점에서 본서를 읽는 독자가 만약 왕상 1:33의 사건, 즉 다윗이 그의 아들 솔로몬을 자신의 노새에 앉히고 왕위 즉위를 위하여 기혼으로 인도하여 내려가게 한 사건을 떠올린다면, 본절에서 하만은 단지 왕을 섬기는 신하의 신분으로서 최고의 명예를 얻고 싶어하는 것만이 아니라 왕과 동등한 위치에 서서 장차 왕위까지도 넘보려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케 된다.
하만이 실제로 왕위를 바라봤는지 그렇지 않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 그는 자신이 영화롭게 되기를 바랐고,
- 제2인자로서의 명에를 넘어서 왕과 동등한 명예를 얻고자 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10,11절에서 보여지듯이 그가 꿈꾸던 명예는 한갓 물거품에 지나지 않았다.
도리어 그가 열망하던 명예와 영광의 자리는 자신의 것이 아닌 자신이 증오하고 경멸하여 죽이려고 하였던 모르드개의 차지가 되었고 그에게 찾아온 것은 수치와 굴욕, 멸망뿐이었다.
Ⅴ. 왕은 하만에게 곧 가서 유다인 모르드개에게 이 모든 영예를 부여하라고 적극 명함으로써 하만을 당황케 했다(10절).
만일 왕이 그의 예상대로 네가 그 자라 하고 말하기만 했더라면 그것은 그가 여기 온 용건을 말할 수 있는 호기가 되었을 것이며, 그의 승리감을 더욱 풍성히 하기 위해 숙적 모르드개를 단번에 달아 죽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리라! 그러나 왕이 이것을 그에게 하사하지 않고 그가 이 세상에서 제일 증오하여 이제 파멸케 하려고 계획하고 있는 바로 그 유다인 모르드개에게, 하만 스스로가 행할 것을 명했을 때 그것은 그를 얼마나 소스라치도록 놀라게 했겠는가! 이제 모르드개가 "왕이 존귀케 하시기를 기뻐하시는 사람" 이 된 이상 모르드개에 대한 왕의 마음을 움직여 본댔자 소용이 없을 것은 분명했다. 솔로몬이 이르기를 "왕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다" (잠 25:3)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변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 ‘너는 네 말대로 속히’
하만의 음흉한 계략을 전혀 알지 못하였던 왕은 모르드개외 공로에 대한 보상이 그 어느 것으로도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던 터이므로 하만이 제안한 것을 한시도 지체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하수에로 왕은 하만이 제안한 바를 조금도 빠짐없이 실행할 것과 속히 진행할 것을 명령하였다.
왕의 일관된 즉흥적인 성격에 따른 결정
- 아하수에로 왕은 술에 취해 그의 아내 와스디의 미모를 그의 신하들 앞에 보여주고자 했다. 그러나 그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자 신하의 말을 좋아 즉시로 왕후 와스디를 폐위시켰으며, 그 후 신하의 말을 쫓아 수많은 처녀들을 뽑아 그의 쾌락의 도구로 사용했다.
- 본서 5장에서 왕은 에스더의 미모에 반해 ‘나라의 절반이라 할지라도 주겠노라’ 고 말했다.
-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왕은 즉홍적이며 신중하지 못한 성격의 소유자였으며 본서 저자는 왕의 이런 성격을 일관성 있게 그려왔다.
- 그러므로 본서 3:8에서 하만이 ‘한 민족’ 이라고 말했을 때
— 그는 그 ‘한 민족’ 이 어떤 민족인지 물어보지도 않은 채 하만의 말을 좋아 칙령을 내렸으며, 당시까지 아하수에로 왕은 그가 전멸시키라고 내린 조서가 어떤 민족을 향한 것인지 모르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Ⅵ. 하만은 왕의 명을 감히 반박하거나 싫은 내색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매우 후회하고 마지못해 하며 그것을 모르드개에게 전했다. 그런데 모르드개는 하만이 악의를 감추는 것이나 그 자신이 하만에게 거짓된 경의를 표하지 않는 것이나 피차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서 그전처럼 여전히 하만에게 아첨하기를 거부했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모르드개는 가져온 의복을 입고 말을 탄 후 성중 거리로 다니며 왕의 총애를 받는 사람으로서 반포되었다(11절). 이 두 사람 즉 모르드개에게 이 영예를 입힌 교만한 하만과 그것을 받아들인 겸손한 모르드개 중 누가 더 왕의 큰 세력을 얻고 있는지는 말하기 힘들다. 그러나 왕이 그렇게 하도록 명했으므로 이 두 사람은 모두 그것을 따라야 했다. 이 사실은 이제 모르드개는 왕의 총애하는 신하가 되었음을 시사하고 있으며 에스더가 유다인에게 선포된 조서를 역전시키는 일이 성공하게 되리라는 희망을 알려주고 있다.
●모르드개에게 부여된 영예(에스더 6:12-14)
우리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살펴 볼 수 있다.
Ⅰ. 모르드개는 승급을 했지만, 별로 자랑하지 않았다. 그는 "다시 대궐 문으로 돌아왔다" (12절).
즉 그는 즉시 그의 자리와 임무로 돌아왔고 이전처럼 열심히 그의 직책에 임했다. 영예는 그것을 얻어도 교만하게 되지 않으며 게을러지지도 않고, 또 그들의 직분을 등한히 해도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 자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이 마땅하다.
Ⅱ. 하만은 실망으로 해서 매우 기가 죽게 되었다.
그는 그것을 참을 수 없었다. 누구의 시중을 든다는 것은, 더욱이 모르드개가 달려 죽는 것을 보게 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던 바로 그 때에 그의 시중을 든다는 것은 하만처럼 교만한 마음을 꺾기에 충분했다. 그는 스스로 패배한 자로서 생각하고 저주받은 사람의 태도를 하고서 "머리를 싸고 급히 집으로 돌아왔다."
이처럼 모르드개에게 굽혔다고 해서 그것이 어떤 해를 그에게 끼쳤겠는가? 그것은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는 사람" 에게 행해 줄 것으로 그 스스로가 제안한 것이 아니었는가? 그런데 왜 그는 그렇게 행하기를 몹시 싫어했는가? 겸손한 자의 잠자리를 방해하지도 못할 일이, 교만한 자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
💡하만이 머리를 싼 이유는 수치와 절망감 때문이었다.
- 그의 대적자인 모르드개를 처형시킬 안건을 가지고 아침 일찍 왕에게 들렸던 하만,
-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냐"는 왕의 질문에 왕이 심중에 두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고 착각했던 하만,
- 그래서 왕에 버금가는 명예를 제시했지만 그 명예의 수여자는 자신이 아닌 모르드개였고,
- 자기는 자신이 경멸했던 모르드개의 명예를 드높이는 일을 수행한 하만,
— 이러한 자신의 모습을 생각할 때 하만은 치욕스러웠을 것이다.
이에 하만은 너무나 부끄럽고 마음이 괴로워 자신의 머리를 가리우게 된 것이다.
Ⅲ. 이 사건 속에서 그의 아내와 친구들은 그의 파멸을 읽었다.
"만일 모르드개가 사람들의 말대로 유다 족속이면 당신이 그 앞에서 굴욕을 당하기 시작하였으니 비록 그것이 영예에만 국한된 문제였었다 할지라도 능히 저를 이기지 못하리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분명히 그 앞에 엎드러질 것이기 때문이외다(13절)."
💡이와 같은 말을 한 사람들은?
-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이었다.
- 이들은 5:14에서 하만이 모르드개로 인하여 격분할 당시 하만의 아내와 더불어 그의 분노를 만족시켜 줄 방도를 제안했던 자들이다.
- 그런데 본문에서 하만이 왕궁에서 당한 일과 관련해 내놓은 그들의 말은 앞서 했던 말과는 너무나 상이한 것이었다. 즉 그들은 하만이 유다인 모르드개 앞에 엎드러질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하루 전만 해도 하만의 아내와 그의 친구들은 모르드개로 인해 격분하는 하만을 위해 그럴듯한 제안을 내놓옴으로써 하만의 비위를 맞추어 주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하루 만에 돌변하여,
— 모르드개가 아닌 하만의 몰락에 대한 예견을. 그것도 하만의 면전에서 내놓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모두 비참한 위로를 들려줄 뿐이었다. 즉 그들은 그가 회개하고 모르드개에게 악한 계획을 품고 있었던 일에 대하여 용서를 구하지 않고서 그의 운명이 절망적이고 피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예고했다. 그들은 다음의 두 가지 일을 예시했다. 즉
- 하만은 유다인을 전멸하려는 계획에 실패할 것이다. "당신은 그 백성들을 근접하는 일을 이기지 못하리이다. 분명 하늘은 당신을 칠 것입니다."
- 하만 자신이 멸망할 것이다. "당신은 분명히 그 앞에 엎드러지리이다." 천사장 미카엘과 용의 싸움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아니, 하만이 패할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들의 예측은 다음 두 가지 사실에 근거하고 있었다.
(1) 이 모르드개는 "유다 족속" 이었다.
그들의 적들은 그들을 "연약한 유다인이라" 고 불렀으나 그들은 때로 막강한 힘을 지닌 유다인이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거룩한 족속이었고 기도하는 족속이었으며 여호와께서 처음부터 축복하신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적들은 그들을 이길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 없었다.
(2) 하만은 이제 기울기 시작했으므로 분명 몰락할 것이었다.
왕의 총애를 받는 위대한 자들은 일단 형세가 기울기 시작하면 종국엔 그들이 출세한 것처럼 빨리 망하게 된다는 사실이 주목되고 있었다. 교회의 적들도 하나님이 역사하시기 시작할 땐 그들의 종말을 고하게 된다. 하나님의 역사는 완전한 것이다.
💡 저자는 이들간에 오고간 대화를 통해
- 하만의 멸망과
-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에 대한 복선을 깔고 있다.
우리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 가장 적절한 대답은, 하나님의 간섭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빈번하진 않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과 뜻을 — 악인들의 입술을 빌어서 나타내신 적이 있다.
거짓 선지자 발람은 모압 왕 발락에게 매수되어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하였지만 오히려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예언을 하였다(민 23,24장).
예수를 처형하는 데 적극성을 보였던 대제사장 가야바도 예수의 대속적 죽음을 예언하였다(요 11:49,50). 인간 뿐만 아니라 짐승도 입을 열어 하나님의 뜻을 전한 바 있다(민 22:28,30).
하만에게 주어진 회개의 기회..
본문의 하만의 아내와 친구들도 이처럼 하나님의 주권적 간섭으로 인하여 하만의 최후에 대하여 예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본문의 불길한 예언이
- 하만의 입장에서 볼 때는 그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이긴 하지만,
- 객관적 입장에서 볼 때 — 이는 하나님께서 악인에게 마지막으로 주시는 회개의 기회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하만이 악인이긴 하지만, 오래 참으시는 당신의 성품으로 인해 그에게도 잘못을 뉘우쳐 회개할 기회를 주셨다.
그가 만약 이 순간 뉘우쳐 회개했다면 비참한 최후를 피해갈 수 있었을 것이다.
Ⅳ. 에스더가 베푼 잔치에 하만이 나아간 일은 매우 시기에 적합했다(14절).
그는 그의 위축된 사기를 북돋우고 침체한 영예를 구하려는 희망을 가지고서 잔치에 나가는 것이 시기상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사실상 그것은 매우 호기였다. 왜냐하면, 비통한 실망으로 상한 그의 마음이 이제 에스더가 하는 비난으로 인해서 더욱 쉽사리 몰락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지혜는 적합한 때에 나타나서 그의 교회를 구원하신다. 그리하여 그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은 더욱 돋보이게 되는 것이다.
💡 6:14 아직 말이 그치지 아니하여서 왕의 내시들이 이르러 하만을 데리고 에스더가 베푼 잔치에 빨리 나아가니라
- 본절은 앞서 벌어진 사건을 마무리하면서 첫번째 잔처 석상에서 에스더가 왕과 하만을 다시 초청한 본서 5:8의 내용과 연결된다.
본절의 ‘아직 말이 그치지 아니하여서’ 란 표현은, 하만의 아내와 그의 지혜로운 친구들이 하만에게 조언을 해주는 가운데란 뜻이다.
이는 그들이 하만에게 말을 하고 있는 중에 이미 왕의 내시들이 왕의 전갈을 가지고 왔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사건의 흐름이 급작스럽게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 원래 하만의 아내와 그의 지혜로운 친구들이 제안한 방법은
— 모르드개를 먼저 처형한 후 에스더가 초청한 잔치에 나아가는 것이었다. - 그러나 일이 계획대로 되어지지 않았다.
즉 모르드개를 나무에 달아 비참하게 죽여 굴욕을 주어야 할 서간에 하만은 그 스스로 모르드개에게 왕의 옷을 입히고 그를 왕의 말에 태워 명예롭게 하는 일을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 이제 모르드개에 대한 처형은 잔치 다음날로 미루고 기회를 엿보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 급히 왕명을 받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만은 자신의 의사가 아니라 그들외 재촉으로 급히 접을 나서게 되었고, 사실상 이것을 끝으로 그는 다시 집에 돌아오지 못하였다.
본서 저자는 사실 생략하여도 되는 이러한 내용을 기록함으로써 하만 그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의 최후가 점점 가까워 오고 있음을 강력하게 암시하였다.
결론
💡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본장 전체는
- 본서의 주요 인물인 모르드개의 부상과
↔ 하만의 몰락을 예견해 주는 일련의 사건들을 보도하고 있다.
본장의 내용 가운데 많은 부분은 왕의 질문에 대하여 지레 짐작하여 대답하며, 왕의 명령을 받들어 모르드개를 영화롭게 하고, 또한 수치심으로 인하여 괴로워하며, 아내와 친구들에게 자문을 구하는 하만에 대한 기록으로 채워져 있다.
이를 통하여 독자들은 하만이
-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매우 적극적인 태도로 일을 처리하고자 하나,
- 도리어 시행착오만 거듭하며 점점 곤궁에 빠져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본장에서 모르드개는
- 스스로 어떤 적극적인 행동도 취하지 않았으나,
- 왕으로부터, 그리고 그의 대적으로부터 최대한의 영예를 얻었다.
본서 저자는 이러한 사실을 통하여 이 세상의 역사나 인간의 생사화복은 인간의 계획이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관하심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앞선 5장에서는
- 일사각오의 자세로 왕 앞에 나아간 에스더의 적극성과 지혜로움을 부각시켰던 저자는,
본장에서
- 에스더는 물론 모르드개까지 표면에 등장시키지 않고, 주로 악인 하만의 자기당착적인 행동과 이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점점 궁지에 빠져드는 상황만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모두 강한 암시가 담겨 있는 것으로 독자들로 하여금 역사의 이면에서 당신의 뜻대로 세상 역사를 이끌어 나가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