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셜 리포트
모두 다 똑같이 인생이 칠십이요 강건할지라도 괄십언 짧은 한평생(시 90:10)을 살면서 그저 자신이 가진 것을 보전하기에 급급한 삶을 살아야 하거나 심지어는 남에게 쫓기며, 부림당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그러나 여기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군대요 당당한 정복자로서 도전하고 전진하는 삶을 살 수 있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 각자 그 한 사람, 한 사람은 보잘 것 없었지만 그들이 선민의 회중의 한 사람으로서 썩어 없어질 인생들이 만든 모임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의 군대에 속했기 때문에 이처럼 당당한 하나님의 군사의 일원으로서 정복하고 전진하는 삶을 살 수 있었다.
이같은 사실은 만세대의 모든 성도가 세상에 속한 무리나 단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택한 자들의 무리인 교회에 속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군사로서 비록 그 겉사람은 날로 후패해 가지만 그 속사람은 오히려 더욱 새로워지면서 죽음(고후 4:16)과 멸망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을 향하여 전진하는 삶을 살아같 수 있는 영적 현실의 한 상징일 수 있다. 또한 이미 잘 알고 있듯이 하나님의 진영의 배치와 행군 순서의 원리는 한마디로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그러고 우리 앞에 앞서 가시는 하나님을 따라서 였다.
사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정적 처소인 성막(the Tabernacle) 을 중앙으로 한 동서남북 이스라엘 진영의 배치 모습과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 관계의 결정적 실체였던 법궤(the Ark)를 앞세운 출애굽 광야 시대의 이스라엘의 행군 장면처럼
—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삶,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가는 삶을 생생하게 형상화하고 있는 장면도 드물 것이다.
넓은 시각에서 볼 때 그 옛날 이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설로 오늘날의 우리들 각자처럼 배은망덕하고 완악하였지만 스스로 우리 가운데 거하기를 원하시며 우러를 앞서 인도해 가시는 하나님의 인도에 따라 끝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갔었다.
그러므로 우리도 언제나 하나님과 교회를 중심으로 그분의 말씀을 따라 이 거친 광야 같은 인생길을 지나 저 천국에 다다라야 할 것이다.
* 각 지파의 우두머리 지명(민수기 1:1-16) (매튜헨리, 옥스퍼드)
Ⅰ. 이스라엘 민족을 계수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오랜 후에 다윗은 지시를 받지 않고 민족을 계수하려다가 값비싼 댓가를 치렀다.
1. 그 지시의 일자(1절)
💡 1. 출애굽: 야곱이 기근을 피하기 위해 가족들을 이끌고 애굽으로 이주한 지 430년이 지난 시점.
- 시작은 불과 한 가족에서부터였지만 마침내 거대한 민족을 이룬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애굽에서 나와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하여 출발함.
- 출19:1 B.C.1446년 3월 15일 혹은 3월 1일 : 2달여만에 시내산에 도착. 십계명을 받고 성막을 지을 것을 지시받음.
- 출40:17 B.C. 1445년 : 9개월 15일, 혹은 10개월 만 출애굽 2년 1월 1일에 성막을 건립함.
- 레위기 : 성막이 건립되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1개월여 기간에 걸쳐 레위기 규례를 주심.
- 민수기 : 이러한 과정을 거친 후 출애굽 제 2년 2월 1일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새로운 계시를 주시는 것으로부터 시작됨.
(1) 명령이 전해진 장소.
하나님의 궁궐인 "시내 광야의 회막" 이었다.
(2) 시기 : 출애굽 "제 2 년" 이다. 이것을 건국 제 2 년이라고 부를 수 있으리라. 레위기에 기록된 법은 그 해의 첫 달에 주어졌고, 여기의 명령은 둘째 달 초에 주어진 것이다.
💡 성막이 건립된 출애굽 2년 1월 1일부터 꼭 한 달이 지난 시기(출40:2,17).
이 날은 출애굽한 지 1년 15일이 지난 날, 시내산에 도착한 지 10개월 15일 혹은 11개월이 지난 날.
이제 이들은 이곳에서 다시 20일 동안 머물면서 가나안 정복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치고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출발할 것어다(10:11).
이들이 시내산에서 이렇게 오랫 동안이나 머물렀던 이유는?
- 율법의 전수와 성막의 건립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
- 즉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인간적으로 가장 시급한 문제는 빨리 가나안으로 가서 그 땅을 차지하는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었겠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그들에게 더 필요했던 것은 먼저 하나님의 백성다워지는 것.
- 왜나하면 가나안은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에게 허락된 약속의 땅이지 욕심에 사로잠힌 애굽의 노예이며 타락한 가나안 거민과 다를 바 없는 자들에게 허락된 땅이 아니었기 때문.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심
- 원어 성경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을 주시는 내용으로 본서를 시작함.
- 직역하면, ‘그리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모세에게’ — 민수기는 앞선 레위기에서 전개되었던 사건을 이어받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 본문의 표현은 모세에게 말씀하시는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하고 있다.
- 이는 민수기에 기록된 말씀이 신적 권위를 가지며 따라서 필연적으로 성취될 것을 강조.
- 본서에는 이같은 표현이 80회 이상 사용됨. 마침내 36:13에서 ‘이는 .. 여호와께서 모세로 ... 명하신 명령과 규례니라’ 라는 본문과 비슷한 표현을 끝을 맺음.
- ⇒ 이는 결국 민수기가 하나님의 명령으로 시작하여 하나님의 명령으로 끝을 맺는 하나님께서 주도하신 역사의 기록임을 나타내는 것.
어디에서?
- 시내 광야:
- 광야 — 일반적으로 땅이 거철어 거주하거나 경작지로 사용하기가 힘든 넓은 지역을 가리킨다.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앙이 약해져서 가나안 땅으로 이끄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했을 때 그들 모두 이곳에서 죽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출 14:11-12).
- 특히 이스라엘이 40년 동안이나 생활을 했던 팔레스틴 남부에 위치한 시내 광야는 크고 두려운 광야(신 1:19; 8:15)로 물과 양식을 구할 수 없는 곳(21:5; 출15:22; 16:2-3; 17:1)으로 묘사되기도 하였다.
- 회막에서
- 회막 — 하나님과의 만남의 장소 (’만남의 장막 안에서’) — 하나님께서는 만남의 장소인 회막에서 새로운 계시의 말씀을 주셨다.
2. 임무 수행을 위해 내려진 지시(2,3절).
💡 2절, ‘회중’
-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지칭. — 이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에 의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지정받은 언약 공동체임을 보여 준다.
(1) 종군할 수 있는 남자만이 계수되었다. 이십세 이하는 계수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비록 군복무를 감당할 체격과 체력을 소유하였다 할지라도 아직 미숙한 연령이어서 하나님께서는 무기를 들고 군복무를 하다가 희생당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 고대 이스라엘에서 여자와 20세 미만의 아이는 인구 조사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이는 인구 조사의 목적이 대부분 제금을 부과하거나, 군대를 편성하거나 혹은 가계를 확인하여 사회적 의무 및 권리를 명확히 할 목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부장적 제도하에서 가장인 남자에게 소속되어 있었던 어린 아이와 여자는 그 조사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본문에 기록된 인구 조사는 특히 과거 생명의 속전을 바치기 위해 실시되었던 제 1차 인구 조사와는(출 30:12-16; 38:26) 달리 제 2차 인구 조사는 군대를 조직할 목적으로 이루어진 군대 계수였으므로 더욱더 싸움에 나같 수 었을 만한 20세 이상의 남자들만 계수되었다(1:3).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들’
- 1장에서만 무려 14회나 반복되는 표현 (20, 22, 26절 등).
- 군대 조직을 위한 첫번째로 시행되는 인구 조사 대상자의 자격 요건을 분명히 나타냄.
- 20세 이상.이 기준을 통해 볼 때 아무리 신체적으로 건장하고 다 자랐다고 할지라도 일정한 나이에 이르지 못한, 즉 정신적으로 성숙되지 못한 자는 군대에 편성될 수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이스라엘의 성인의 연령 기준이 20세였음을 시사함.
- 싸움에 나갈 만한 자.⇒ 위의 두 가지 조건은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연약한 자에 대한 차별이 아니었다. 이는 오히려 그들이 전쟁터에 나가서 목숨을 빼앗기지 아니하도록 보호하시려는 하나님의 배려였다.
-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그의 능력 이상의 것을 강요하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도 우리의 연약한 부분을 잘 아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 20세가 넘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신체적으로 불구이거나 병이 든 사람은 ‘하나님의 군대’에 들어갈 수 없었음.
- 반면 이 두 가지 조건에 부합되는 자들은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모두’ 하나님의 군대로 계수됨.
- ⇒ 하나님께서는 싸울 수 있는 자가 싸우지 않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시기 위하여 한 사람도 빠짐없는 철저한 인구 조사를 명하셨던 것이다.
(2) 신체적 허약자, 맹인 또는 불구자, 만성병 환자들은 누구든지 나이를 불문하고 전쟁을 감당할 수 없는 자들이어서 계수하지 않았다. 교회는 전투적이다.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군병으로 입대한 한 지체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일종의 전투인 까닭이다.
(3) "그들의 가족을 따라" 계수하여, 그들이 얼마나 되고 그들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알게 할 뿐 아니라, 어떤 종족과 씨족 또는 가족, 더 나아가 어떤 특정 가문에 속하여 있는지를 알기 위함이다. 또한 모든 사람이 자기가 속한 부대를 알게 하고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알게 하여, 다스리는 사람들은 찾을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쉽게 알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바로 얼마 전에도 계수되었다. 그 때에는 성소의 제사를 위하여 세를 지불하였다(출 38:25, 26). 그러나 그 때에는 지금처럼 "종족을 따라" (가문별로) 등록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들의 통계는 현재나 전에나 같았다. 즉 603,550명의 남자가 있었다. 그 후에 죽은 자들이나 계산상에 누락된 자들이 많았을 것이지만, 또 그렇게 많은 사람이 이십세가 되어 그 계산에 포함되었던 것이다.
" 한 세대가 지나면 다른 세대가 온다." 매일 빈 곳이 생기면 보충병이 그 빈 곳을 매일 채운다. 하나님의 섭리는 이번 아니면 다음 번에, 이곳이 아니면 저곳에, 출생과 사망의 균형을 이루게 하시고 인류의 거룩한 씨가 소멸 당하지 않게 하시고 단절되지 않게 보살핀다.
💡 하나님께서는 혈연 관계를 중심으로 인구 조사를 하라고 명하셨다.
- 이는 혈연 공동체를 중심으로 군대를 편성함으로써 혈연 공동체 특유의 결집력을 이끌어 내기 위한 조치이기도 하였다.
- 그러나 그보다는 하나님의 언약을 계승한 12지파의 구분을 유지함으로써 12지파에게 각각 예언되었던 바를(창 49장) 성취하시기 위한 목적어 더 컸다.
- 이렇게 12지파의 구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행군하고 진을 칠 때에 기준이 되었을 뿐 아니라 가나안을 정복한 뒤에 땅을 분배할 때에도 기준이 되었다.
- 12지파는 또한 사사 시대와 왕정 시대를 거처면서 하나님의 예언(창 49장.신 33장) 성취를 통해 이루어질 신약 교회의 예표가 되기도 했다.
💡 3절, 그 ‘군대대로’ 계수하되
- 이런 표현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당신의 군대로서 감독하실 목적으로 그들을 친히 사열하고 계신다는 뉘앙스가 있다.
하나님의 군대로 재편성되는(2:1-34) 이스라엘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이러한 모습에서 군대의 총사령관으로서 철저히 군사들을 관리하는 세심함을 발견할 수 있다.
- 이스라엘은 그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때 그의 대적들과 싸워 연전 연승할 수 었었다(21:1-3, 10-35; 31:1-54).
-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려 불순종하였을 때는(11:1,4-6; 14:1-10; 16:1-3,19,41-42) 철저한 징계를 당했다(11:1,33-34; 14:20-37; 16:31-35, 46-50).
- ‘군대'로서의 이러한 이스라엘의 모습은 = 오늘날 하나님의 군사로 부르심을 입은(딤후 2:3-4) 모든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를 예표한다.
-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철저한 순종이 없이는 결코 사단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없음을 명심하고 더욱 힘써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순종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엡6:10-17).
- 이 일을 수행하기 위하여 수임자를 두었다.
모세와 아론은 사회를 맡고(3절) 매 종족마다 한 사람씩, 즉 그 족속에서 이름 높은 자로 그 종족을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 생각되는 자들이 그 일에 협조하였다. 그들은 곧 그 "종족의 두령(왕자)이었다" (16절).
💡 4절,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곧 “가문의 지도자”가 너희와 함께 있게 하여라.
- ‘가문의 지도자’ = 각 지파의 최고의 권위자.즉 성막세를 거두기 위한 인구 조사가 종교적인 목적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레위인들이 동원되었던 반면 이번의 인구 조사는 군대를 조직하기 위한 군사적인 목적으로 실시된 것이기 때문에 각 지파의 두령들이 이 일에 부름받은 것.
- 이들은 모세와 아론을 도와 이스라엘 인구 조사를 위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 이같은 사실은 앞서 성막세를 거두기 위한 인구 조사에서 레위인들이 언급되었던 것과는 대조가 된다(출30:11~16’ 38:21).
- ‘너희와 함께 있게 하여라.
- (미완료형) 한 순간만 같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함께 있으라.즉 그들은 광야 여행에 있어 계속 모세를 도왔던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친히 지명하신 각지파의 두령들을 모세와 아론과 함께 있도록 하신 것은 곧 하나님께서 소명자들을 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그들과 늘 함께하시며 다양한 방식으로 그들을 도우심을 보여 준다.
-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역자들에게 필요에 따라 물질도 공급하시고(왕상 18:4-6.8-16) 일꾼도 보내 주시는 것이다(출 31:1-11).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맡은 자들은 항상 함께하시며 도우시는 하나님을 믿고 담대히 맡은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 실제 이때 지명받은 각 지파의 두령은 본장의 인구' 조사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후에 행군하고 진을 칠 때도 각 지파를 통솔했으며 (2장) 또한 성막에 예물을 바칠 때에도 이들이 거명되었다(7장).
5절, ‘너희와 함께하며 도와줄 사람들의 이름은 이러하니’
- 도와줄 사람들 ⇒ 이 단어는 ‘모시다’, ‘섬기다’ 라는 뜻의 원형으로 하여 — 명령을 듣기 위해서 긴장하고 곁에 있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그리고 있는 단어.
- ⇒ 권세를 부리거나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도록 세워진 사람들이 아니고 모세와 아론을 도와서 그들이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들을 잘 수행해 나같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 내지 ‘수종자' 를 뜻함.
- 사실 모세와 아론 역시 하나님께로부터 세우심을 받은 ‘수종자'요 ‘조력자' 였다. 그러므로 무엇 하나도 자신의 뜻과 의지대로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대로 행하여야 했다. 오늘날 주의 일을 맡은 모든 청지기들 역시 항상 자신이 하나님의 수종자요 조력자임을 명심하고 자신의 뜻을 하나님께 강요하거나 자신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대로 행하는 충성된 종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16절, 이들은 회중의 부름을 받은 자들로서 자기 조상 지파들의 우두머리이며 이스라엘 종족들의 지도자이다.”
- 부름을 받은 자
- 부름’ 의 어근은 일차적으로 특별한 말, 도는 메시지의 발설을 의미함. 그런데 이 단어가 하나님과 관련되어질 때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관념이 강조된다(출2:7; 사41:2). 본문의 ‘부름을 받은 자’ 라는 표현에 부르신 주체에 대한 직접적 언급은 없지만 이들을 부르신 자는 분명히 하난미이시다.
- 그런 의미에서 부름을 받은 자들 은 ‘회중'에 의해 선출된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세우심을 입은 자들이다(1:15).
- 따라서 그들의 직무는 사람을 위하여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봉사하는 것.
- 또한 회중의 뜻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순복하는 것.
17절, 모세와 아론이 지명 받은 이 사람들을 데리고,
- 지명 받은 ⇒ ‘그들의 이름에 의해 명명된’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택하신 자들을 일대일로 아시며 만나시고 또 사명을 맡기신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자신에게 부여된 사명이 곧 하나님께서 직접 맡기신 것이며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일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그리고 주님의 일을 하듯이 충성스럽게 그 일을 감당해야만 한다.
- 이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일꾼들을 개인적이고 직접적으로 한 사람 한 사람씩 지목하여 정하셨다는 것을 나타낸다(출 35:30; 사 43:1)
존경받는 사람은 봉사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위대한 삶은 봉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 그는 민중을 파악함으로써 대중적으로 알려질 만한 가치가 있음을 보여 주어야 한다. 이러한 군대를 소집하는 역할은 그 지파의 지도자요 지휘관인 자에게 위임되었다.
Ⅱ. 왜 이러한 계산을 하도록 명령하셨을까?
몇 가지 이유를 열거하면,
- 아브라함과 맺어진 약속의 성취를 증거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통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씨를 넘치게 번성시키리라" 는 그 약속을 야곱에게 새롭게 하시었다.(창 28:14). 즉 "그의 씨는 땅 위의 티끌 같게 하리라."
이제 하나님은 그 복된 약속의 일점이라도 어기시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아울러서 기업으로 가나안 땅을 주시리라고 한 다른 약속도 때가 차면 이루어지리라는 희망을 갖도록 격려하였다. 사람 수를 대략 짐작으로 헤었을 때는, 잘못되었다고 하는 억측으로 트집 잡히기가 쉽다. 또 사람을 계수할 때 반은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트집을 잡기 쉽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여 그들이 짧은 시간에 얼마나 광대하게 증가하였는가 하는 것을 기록으로 보여준다. 하나님의 섭리의 능력과 그 약속의 진리가 모든 사람에게 볼 수 있게 인정되도록 하시었다. 75명이 215년간에 수십만으로 번식한다는 것은 자연의 합리적인 방법으로는 기대할 수가 없는 일이다(75명은 야곱이 애굽으로 갈 때 그의 가족이다). 따라서 이 사건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약속과 축복에 기인하는 특수한 능력으로 되어진 것이다.
- 그것은 하나님 자신과 모세와 그 밑의 통치자들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갖는 특별한 관심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목자라" 고 불리운다(시 80:1). 목자는 언제나 양의 무리를 중요시하고 거느리는 양을 헤아려서 보살핀다. 그렇게 함으로써 양들의 동태를 알고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그의 의를 위하여 희생 당한 것까지라도 그의 양의 무리를 계수하여 한 마리도 손실되지 않도록 잘 보호하여 양의 우리 안에 간수되도록 한다.
- 참 이스라엘인과 그 이스라엘인들 중에 섞여 사는 무리들 사이에 차이를 두었다. 단지 이스라엘족만을 계수하였다. 모든 세계는 보석과 비교할 때 찌꺼기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약간의 계수밖에 하지 않았으나 거룩하신 하나님은 특별히 소유권을 가지고 있고 관심을 갖고 계신다.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시고" (딤후 2:19), "이름도 아신다" (빌 4:3). 그들의 머리카락도 계수하시나, 이스라엘 밖에 사람들에게는 말씀하시기를 "나는 결코 너를 몰랐고 너를 계수하지 않았다" 고 하신다.
- 여러 개의 지역으로 나누어 다스리기 위한 것이었다. 의를 이루기 위하여 보다 용이하고 광야를 보다 질서정연하게 행진하기 위하여 구역으로 나누었다. 그들은 소집되어 잘 정돈된 정규 군대가 아니라 오합지졸이었었다.
* 인구조사 (민수기 1:17-43) (매튜헨리, 옥스퍼드)
우리는 여기에서 백성을 계수하라는 명령이 속히 실행된 것을 볼 수 있다. 명령이 내린 당일에 실행되었다. 즉 "둘째달 첫날이다" (18절을 1절과 비교하라).
어떤 일이든 하나님을 위한 것이면 의무감을 강하게 갖고 속히 착수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명심하자. 그리하여 생각컨대 이스라엘 백성이 진을 이동한(10:11) 이날과 그달 20일 사이에는 많은 다른 일들이 있었던 것에 비하여, 계수하는 일은 하루만에 다 된 것 같다. 요압은 다윗 시대에 거의 열달 동안 그 백성을 계수하였다(삼상 24:8). 그러나 그 때의 그들은 흩어져 있었지만 지금은 서로 가깝게 살고 있었다. 그 때는 사탄이 그렇게 하도록 제의했으나, 지금은 하나님이 그 일을 명령하신 것이다. 또 얼마 전에 이미 한 번 했던 까닭에 이번에는 쉽게 빨리 되었다. 아마 지난 번 기록을 참고했을 것이다.
💡 1:18 이월 일일에 모든 회중을 모이게 하니, 그들이 자기들의 가족과 가문을 따라 이십 세 이상의 남자들을 그들의 머릿수대로 명단에 등록하였다.
- ‘자기들의 가족과 가문을 따라’ =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 섞여 있었던 ‘중다한 잡족'(출12:38)들이 가려내어져서 이방인들은 이스라엘 군대 중에 들지 못하였던 것.
- ⇒ 광야 교회, 즉 이스라엘 중에는 중다한 잠족이 함께 섞여 있었지만 이들은 걸코 이스라엘 자손으로 계수되지 않았으며 이 계수에 둘지 못했던 자들은 하나님을 위한 거룩한 전쟁에도 참여할 수 없었다.
1:19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가 시내 광야에서 그들의 수를 세었다.
- ‘명하신 대로' = 이 단어는 아버지가 자식에게, 농부가 일꾼에게(룻2:9), 왕이 신하에게(삼하21:14) 권위를 가지고 지시할 때 사용됨.
- ⇒ 이 단어는 명령하는 자의 권위를 전제로 하므로 이 명령을 받은 자는 반드시 실행해야 한다는 ‘강조'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 궁극적인 의미에서 명령의 전제가 되는 권위의 근원은 오직 하나님이다(단2:37; 마6:13; 28:18; 롬 13:1). 왜냐하면 천지를 창조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이 땅을 질서 있게 통치하시기 위해서 그의 정하신 자(롬 13:1)들에게 권위를 주셨기 때문이다(단 2:37).오늘날 교회에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자들이 있다. 성도들은 그들의 권위가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라는 것을 언정하고 그 권위에 복종함이 당연하다.자신에게 맡겨진 사역의 범위를 넘어서 하나님의 권위를 도적질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결단코 용서치 않으실 것이다(단 5:18-28; 행 12:20-25).
- 그러나 그 권위는 분명히 범위가 정해져 있는 것이어야 한다. 또한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만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 그러므로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도하는 최고의 권위자였던 모세도 하나님 앞에서는 그분의 수종자요 심부름꾼에 불과했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만 행동하여야 했으며 단지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범위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만 일하여야 했고 그에게 주어진 범위 내에서만 권위를 사용해야만 했다. 모세도 이 범위틀 넘어섰을 때 하나님의 혹독한 정계를 면할 수 없었다(20:10-12).
여기에 기록으로 상세하게 남은 사실들에서 다음과 같은 것을 볼 수 있다.
- 상세하게 몇 마디로 그 계수가 정식으로 기재되어 있다. 그것은 결코 상상적으로 된 것이 아니다. 12지파에 대하여 매번 반복되어 있다.
계수하는 정중한 예식이 있었다. "세대별로 가족에 따라서, 종친을 따라 가계별로 계수되었다." 그리하여 모든 지파가 같은 규칙과 같은 방법으로 계산하였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상당히 많은 사람이 그 일에 고용되어 처음으로 족보를 기록하여 그들의 가정이 이스라엘의 후손이며 그들의 가문이 떳떳한 가문이며 따라서 그 집을 나누어 갖고 또는 가지로써 가정들이 연결성을 가져 계보의 규칙대로 특정한 사람들의 이름 밑에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하여 모든 사람들은 누가 자신과 관계가 있는 사람인지 또는 그의 가까운 친척인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또 누구든 우리에게 더 가까우면 가까운 사람일수록 그에게 우리는 선대하도록 준비하여야 한다.
- 20~21절, 이스라엘의 맏아들 르우벤 자손에게서 난 자들
- 맏아들: 고대 근동 지역에서 ‘장자’는 다른 형제들보다 특권을 지녔다. 가족들의 정신적, 사회적 지도권과 아버지의 경제적 소유를 상속 받을 때에도 다른 아들들이 받는 몫의 두 배를 받았다.
- 르우벤은 이런 축복을 누릴 수 있는 ‘장자' 였다. 그러나 그는 그의 서모 빌하와 간통함으로써 장자로서의 모든 권한을 박탈당했고(창49:4), 후일 르우벤 대신 요셉이 상속권을(대상5:1.2) 그리고 유다가 영적 권리(창49:8,11)를 각각 누리게 되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인구 조사에서는 르우벤이 여전히 이스라엘 장자로서 언급되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본 인구 조사가 ‘가족과 종족' , 곧 ‘혈통'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으로서 혈연적 계통을 중요시했기 때문일 것이다.
- 한편 르우벤의 자손들로는 하녹 가족과 발루 가족과 헤스론 가족과 같미 가족이 있었다(26:5.6).
- 르우벤 지파에서 계수된 군사는 수효에 있어서 7번째로 많았다. 르우벤 지파는 장자 지파였기 때문에 다른 지파에 비해 훨씬 탁월한 복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야곱의 예언처럼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힌 조상 르우벤의 죄악으로 인하여 르우벤 지파는 ‘탁월하지 못했다' (창 49:4).
- 22~23절, 시므온의 아들들
- 비록 시므온이 과거 이스라엘에 의해 저주를(창 49:6,7) 받았을지라도 그에게서 나온 자손들 역시 하나님의 언약을 계승한 이스라엘 12지파 중 한 지파로서 하나님의 은총의 대상이 되었던 것.
- 한편 시므온의 자손들로는 느무엘 가족과 야민 가족과 야긴 가족과 세라 가족과 사울 가족이 있었다(26:12,.13).
- 임종하기 직전 자식들의 장래를 예언하는 야곱에게서 저주를 받은 지파임에도 불구하고 제 1차 군대 계수에서는 시므온 지파에 속한 군인의 수는 12지파 중에서 3번째로 많았다.이는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라' (창49:7)는 야곱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다(2:16 설명 참조).
- 그러나 광야 생활이 끝날 무렵에 이루어진 제 2차 군대 계수의 결과에 의하면 시므온 지파는 12지파둘 중에서 가장 적은 인원으로 격감하였다(26:14). 그리고 가나안 정복 후 이들은 한 지파로서의 독립성마저 잃어버리고 유다 지파 지역에 속한 남부 지역의 일단의 성읍들만을 차지해야 했다.
- 24~25절, 갓의 아들들
- 갓 자손들이 세번째로 언급되고 있는 것은 그들이 르우벤, 시므온 지파와 함께 한 진에 편성되었기 때문(2:10~16).
- 또한 르우벤, 시므온, 갓 지파가 한 진에 편성된 것은 — 그들이 혈통적으로 가까운 지파였기 때문. 르우벤과 시므온은 레아의 아들, 갓은 레아의 여종 실바의 장남. 그러므로 그들 사이에는 다른 지파들과의 관계에서 겼을 수 있는 갈등과 마찰의 여지가 적었으며, 오히려 서로간의 친밀한 유대를 바탕으로 한 강한 결속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 제 1차 군대 계수에 있어서 갓 지파의 군인의 수는 12지파 중 8번째에 해당된다. 광야 생활이 끝날 무렵에 실시된 제 2차 군대 계수에서는 그 수가 사만 오백 명으로 더 줄어들었다(26:18).
- 하지만 갓 지파는 야곱의 표현처럼(창49:19) 진취적이고 용맹스러운 기질을 발휘하여 요단강 동편의 비옥한 땅을 다른 지파들보다도 먼저 차지하였다(32:16-33; 신33:20, 21).
- 26~27절, 유다의 아들들
- 유다 지파는 비록 장남 르우벤 진에 속한 지파들 다옴에 기록되고 있지만 실제로 광야 행진에서는 선봉에 서서 진을 이끌었으며, 머무를 때에도 성막을 중심으로 해 돋는 편인 동쪽에 진을 쳤다.
- ⇒ 히브리인들에게 동쪽은 ‘의 '와 ‘승리 '(사 41:2) 그리고 ‘구원'(사43:2)을 상징하였다. 이를 통해 볼 때 이미 유다 지파가 이스라엘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르우벤이 가졌던 장자의 영적 권한을 연계받으며 장차 그에게서 모든 인류의 구원자요 만왕의 왕되신(계17:14; 19:16)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실 것이라는 야곱의 예언이 점차적으로 성취되어가고 있었던 것(창49:10).
- 한편 유다 자손으로는 셀라 가족과 베레스 가족과 세라 가족이 있었다(26:20).
- 유다 지파의 군대는 다른 어떤 지파보다 월등히 많은 인원을 보유하고 있었다.
- 뿐만 아니라 이들의 막강한 군사력은 40여 년 동안의 광야 생활을 지내면서 칠 만 육천오백 명으로 오히려 더욱 증대되었으며(26:22) 이로 인해 가나안 정복 이후 다른 지파보다도 더 많은 땅을 차지할 수 있었다(수14:6-14; 15:13-20).
- 뿐만 아니라 유다 지파는 그들의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하여 자신들의 영토에서 이방 족속들을 완전히 몰아내어 자신들의 신앙적 순수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는 분배 받은 땅에서 이방 족속을 쫓아내지 않았던 에브라임 지파나 므낫세 지파와 대조가 된다(수16:10; 17:12, 13, 16).
- 그 결과 왕국 분열 이후 신앙적으로 완전히 타락한 북이스라엘과는 달리 유다 지파로 이루어졌던 남유다 왕국은 비교적 오랫 동안 왕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왕하17:5~18; 19:1-7, 35-37).
- 뿐만 아니라 바벨론에 의하여 왕국이 멸망하고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는 가운데서도 언약의 백성이라는 확고한 선민 의식을 가지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
-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굳은 신뢰와 선민 의식은 후일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킬 수 있는 근거(느1:1-2, 20; 단1:8-21)와 만왕의 왕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위한 역사적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마1:12-16). 실로 그리스도는 바로 이 유다의 후손인 다윗의 혈통에 따라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던 것이다.
- 28~29절, 잇사갈의 아들들
- 잇사갈 지파가 유다 진에 포함된 것은 잇사갈이 유다처럼 야곱의 첫번째 아내였던 레아가 낳은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 따라서 그들은 다른 지파들과의 관계에서보다 더 확고한 결속력을 가질 수 있었다. 한편 잇사갈 자손으로는 돌라 가족과 부니 가족과 야습 가족과 시므론 가족이 있었다(26:23, 24).
- 이스라엘 12지파 중에서 다섯 번째로 많은 광야 생활을 통해서 오히려 인구가 증가한 지파로 무려 20%에 가까운 만 백(26:25). 이처럼 잇사갈이 이스라엘의 한 지파로서 당당한 위치를 차지할 수 나귀'와 같을 것이라는 야곱의 예언(창49 :14)의 성취이다.
- 30~31절, 스불론의 아들들
- 스불론 역시 유다, 잇사갈과 함께 레아가 낳은 자녀로서 유다 진에 속하였다. 한편 스불론 자손으로는 세렛 가족과 엘론 가족과 얄르엘 가족이 있었다(26:26).
- 시므온 지파에 이어 4번째로 많은 군대 수를 보유한 지파로 이들 역시 광야 40년 생활을 통해 오히려 인구가 증가한 지파이다.이러한 결과에 대하여 혹자는 광야 생활에서 이스라엘 각 지파들에 나타난 인구의 증감은 전쟁에 의한 것어기보다는 각 지파에 주어졌던 하나님의 심판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 예를 들어 시므온 지파의 족장들 중 한 사람인 시므리가 바알브올에 대한 음란한 우상 숭배에 가담했고, 시므온 지파 사람들이 이 사건에 가담했다가 24,000명이 졸지에 염병으로 죽임을 당했던 하나님의 징계 사건이 바로 그 증거이다(2 5:1-9).
- 그 결과 시므온 지파는 이 사건 직후 행하여진 제 3차 인구 조사에서 장정의 수가 22,000명으로 가장 인구가 적었으며, 또한 1, 2차 인구 조사 때의 결과보다 무려 63%에 달하는 가장 많은 인구가 감소하는 결과를 보였다.
- 유다 진에 속한 유다, 잇사갈, 스불론 세 지파들은 모두 광야 생활을 통해 그 인구가 오히려 증가하였다. 이것은 어 세 지파가 광야 행진시 가장 선두에 섰던 지파들로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설에 비추어 본다면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성도의 삶이 몰락하는 것은 그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단과 맞서 싸우기 때문에 초래되는 것이 아니라(약4:7) 오히려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 사람들의 방식대로 살면서 하나님을 배반하기 때문에 스스로 자신을 멸망시키게 되는 것이란 소중한 진리를 배울 수 있다.
- 이처럼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떠난 방탕한 삶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징계를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히12:5 ,6; 계3:19).
- 그러므로 성도들은 세상이 주는 달콤한 유혹이나 거센 핍박 앞에서도 결코 굴하지 말고 조금도 타협하지 않고 이겨나가는 신앙의 절개를 가져야만 한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더욱 풍성한 삶을 보장하신다(막10:28-30; 눅18:28-30).
- 32~33절, 요셉의 아들들, 에브라임의 아들들
- 요셉의 아들들이 각각 독립된 지파로 인정되었던 것은 야곱이 요셉에게 다른 형제들보다 한 몫을 더 주기 위하여(창48:22)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틀 자신의 양자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창48:5).
- 이처럼 요셉이 두 몫을 받았다는 것은 르우벤이 가졌던 장자로서의 상속권이 요셉에게 넘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고대 근동 사회에서 장자는 다른 아들들이 받을 몫의 두 배를 받는 것이 관행이었기 때문이다(신21:17).
- 장자인 므낫세보다 차자인 에브라임이 먼저 언급되고 있다. 이는 에브라임이 요셉의 아들들을 대표하고 있음을 나타낸다(2:19). 에브라임은 요셉의 둘째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므낫세보다 먼저 거명되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므낫세보다 앞세우길 원하셨기 때문이다(창49:19). 이처럼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과 다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순복해야 한다. 한편 에브라임 자손으로는 수델라 가족과 베겔 가족과 다한 가족이었었다(26:35).
- 에브라임 진에 속한 다른 지파, 즉 므낫세나 베냐민 지파(2:18-23)에 비하면 가장 많은 수의 군인을 보유하였지만 12지파 가운데서 본다면 10번째에 해당하는 약소한 지파였다. 게다가 그들은 광야 40년 생활을 지나면서 그 수가 20%나 감소하여 삼만 이천오백 명의 더욱 작은 지파가 되었다(26:35-37).⇒ 이는 아우가 형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룰 것이라는 야곱의 예언의 성취였다(창48:19; 49:22-26).
- 이처럼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된다. 현재의 모습은 비록 약하고 보잘것없어서 이루어질 것처럼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상황을 뛰어넘어 반드시 그 약속을 성취하시는 신설한 분이심을 믿고 소망을 가져야 한다(히11:1-2 ; 12:3).
- 그러나 에브라임 지파는 비옥할 뿐만 아니라 다른 지파의 영토에 둘러싸여 있어 외적의 침입으로부터도 안전한 땅을 분배받음으로써 가나안 정착 이후에는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는 왕국 분열 이후 이스라엘의 첫번째 왕인 여로보암 1세를 배출하는(왕상11:26) 등 북왕국을 대표하는 지파로 성장했다.
- 34~35절, 므낫세의 아들들
- 므낫세는 요셉의 맏아들이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한다면 므낫세가 라헬의 아들들을 대표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야곱은 자신이 차자 에브라임에게 장자의 축복을 하는 것을 요셉이 기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창48:17)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우고 그가 더욱 크게 될 것이라고 예언함으로써 므낫세의 장자권을 인정치 않았다.
-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의 역사가 인간의 바람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창25:23; 삼상16:7; 요1:13).
- 므낫세 지파는 야곱의 축복(창49:19)에도 불구하고 1, 2차 인구 조사 때는 이스라엘 12지파 중에서 가장 작은 지파에 불과했다. 그러나 광야에서 40년을 지내면서 그 인구가 무려 63%나 증가하여(26:34) 야곱이 예언한 대로 이스라엘의 ‘한 족속'으로서 당당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 뿐만 아니라 이들은 가나안 땅의 분배시에도 요단강 동편의 땅과 요단강에서 지중해까지 이르는 요단강 서편의 광활한 땅을 모두 분배 받아(수17:5-10) 이스라엘 12지파 가운데서의 위상을 더욱 확고하게 세울 수 있었다.
- 36~37절, 베냐민의 아들들
- 베냐민 지파가 에브라임 진에 속하게 된 것은 베나민이 라헬의 둘째 아들이기 때문. 그는 야곱이 특별히 사랑했던 아내 라헬이 난산으로 숨을 거두면서 낳은 아들로서 야곱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지만(창35:18; 43:6; 44:20, 27~31) 그 형 요셉의 직계 자손이 있었기 때문에 라헬의 자손들을 대표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지파에 비해서도 특별히 많은 축복을 받지 못하였다.
- 이는 하나님의 복이 인간적인 사랑에 의해 좌우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주권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 베냐민 지파에 속한 군인의 수효. 이는 이스라엘 12지파 중에서 3만 2천 2백명이었던 므낫세 지파 다음으로 가장 적은 수였다(2:23 설명 참조). 이로써 에브라임 진은 다른 진에 비하여 현저하게 적은 인원으로 편성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하나님의 군대로서의 임무에서 제외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의 주어진 조건 속에서 최선을 다해야 했다.
- 38~39절, 단의 아들들
- 라헬의 여중인 빌하의 첫 아들이었던 단이 이룬 지파와 막내 납달리가 이룬 지파가 레아의 여종 실바의 막내 아셀이 이룬 지파와 더불어 광야 행군시 이스라엘의 가장 후미를 따르는 진을 형성하였다.
- 그런데 성경을 살펴볼 때 단 지파는 영적으로 열등한 지파였다. 특히 단 지파는 가나안 정착 이후 적극적인 우상 숭배(삿18장 ; 왕상12:29)로 이스라엘을 범죄케 하였으며,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구원받은 12지파의 반열에도 단 지파는 나타나지 않았다(계7:5-8).
- 단 지파에 속한 군인의 수, 12지파 가운데서 유다 지파에 어어 두번째로 많은 인원이다. 더욱이 이들은 광야 40년 생활을 지나면서 그 인구가 더욱 증가하였다(2 6:43).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그들에게 분배된 땅을 차지하지 못하였으며(삿1:34) 거할 지역을 찾아 방황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삿18:1). 야곱은 이러한 처지에 놓이게 될 단 지파에 대하여 ‘길의 뱀'(창49:17)이라고 예언하였었다.
- 이들은 성경의 표현에 의하면 기업을 찾아 가나안 땅을 두루 탐지하다가 라이스에 이르러 한가하고 평안히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마치 뱀이 말굽을 물듯이 갑자기 칼로 쳐서 정복하고 그 땅 이름을 단이라 이름지었다(삿18:27- 29).
- 40~41절, 아셀의 아들들
- 아셀은 레아의 여종 실바가 야곱에게서 낳은 두번째 아들이다. 아셀의 자손들이 단 진에 속하게 된 것은 다른 진들은 정실의 자손들로 편성되었기 때문. 오직 실바의 첫 아들을 갓을 제외한 단, 납달리, 아셀 지파 등 여종의 자손들은 모두 단 지파를 중심으로 한 전에 편성되게 되었다.
- 이러한 모계 중심의 군대 편성은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 모계를 중심으로 한 친족 의식이 남아있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간적인 관습을 무시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각 진을 구성할 때에 반영시켜 각 진마다 내부적 결속력이 강화되도록 만드셨다.
- 이스라엘 12 지파 중에서 9번째 규모. 그러나 광야 40년 생활이 끝날 무렵에는 그 수효가 무려 약 30%나 증가(26:47), 이스라엘 중에서 5번째로 많은 군인을 보유하게 됨.
- 이 지파는 야곱에 의하여 ‘왕의 진수를 공궤할'(창49:20) 만큼 ‘기름진 식물을 생산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되었었다. 이 예언대로 아셀 지파는 가나안 땅의 북서쪽 부분, 즉 동쪽으로는 스불론과 납달리의 경계와 점하고, 북쪽으로는 갈멜산에서 시돈에 이르는 비옥한 지대를 차지하였다(수19:24-31).
- 42~43절, 납달리의 아들들
- 납달리는 라헬의 여종 빌하의 막내 아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그에 대하여 아름답고 많은 새끼를 낳은 암사슴같이 될 것이라고 축복하였다(49:21).
- 야곱의 예언대로 납달리는 요단강과 갈릴리 호수 서편의 땅, 곧 잇사갈과 스불론 지파의 북쪽 그리고 아셀 지파의 동쪽 땅을 분배받음(수19:32~34). 이 지역은 샘물이 풍부하고 매우 기름진 곳이었다. 뿐만 아니라 신약 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로 활동하신 갈릴리 지방을 포함하는 곳으로 이곳은 영적으로고 복을 받은 풍요로운 땅이었다.(마4:12~16).
- 납달리 지파와 그들이 거주한 땅이 받은 복은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이 인간의 공로나 혈통에 의하여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으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다(요1:14; 엡2:8,9; 딛3:5).
- 이스라엘 12지파 중 6번째로 큰 규모. 그러나 광야 생활이 끝날 때 실시한 2차 군대 계수에서는 장정의 수만 8천명이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남(2:30).
* 조사된 인구의 총계 (민수기 1:44-46) (매튜헨리, 옥스퍼드)
우리는 이 계산으로 총합계를 얻을 수 있다. 즉 그들은 합하여 603,550명 이상이 싸울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것은 몇 달 전 레위인같이 계산된(출 38:26) 수효였는데, 이제는 그 지파가 하나님의 수종을 들기 위하여 구별되었는데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같은 수가 될 정도로 20세의 나이에 달한 자가 늘어났다고 혹자는 말한다.
💡 1:44 이들은 모세와 아론 및 각각 자기 가문을 대표하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도자들이 수를 센 자들이었다.
1:45 그들은 자기 가문을 따라 명단에 오른 전체 이스라엘 자손으로서 이스라엘에서 전쟁에 나갈 수 있는 이십 세 이상의 모든 남자였으며,
1:46 그 모든 자들의 수가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이었다.
- ‘다’ (’콜’) : 완전케 하다, 완전한 이라는 뜻을 지닌 단어에서 파생. 즉 ‘콜’은 단어 자체가 완전성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도 ‘콜’은 완전한, 빠짐없는 ‘모두’를 가리키며, 이는 이스라엘 중에서 20세 이상된 자로 싸움에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하나님의 군대로 명부에 기록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수종을 드는 일에 있어서는 이 방법 아니면 또는 다른 방법으로 확실히 하나님께서 성취하신다고 하심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다. 이제 우리는 그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되었는가 하는 것을 보게 된다.
다음 사실을 생각해 보자.
- 광야에서 함께 사십년 간을 이 많은 사람들(의심의 여지가 없이 여자들, 어린이들, 병든 노약자들로 혼란된 대중을 생각한다면 거의 두배 이상)을 어떻게 지탱해 나갔는가?
그들은 매일 매일 하나님의 돌보심에 의하여 하늘의 이슬로 식물을 삼았다. 기름진 땅의 소산에서 음식을 얻는 것은 아니었다. 선하시고 광대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당신을 의지하게 하셨고, 매일 당신께로부터 음식을 얻게 하시지 않았는가!
- 죄는 사람들을 어떻게 하는가?
40년간에 그들의 대부분이 민족적인 죄로 물론 죽었다. 죄가 세상에 들어왔을 때 죽음이 들어왔고 이 지구 위에는 죄로 심히 황량해졌다! 그러나 불신과 불평의 죄로 인하여 이제 계수된 모든 사람들은 두 사람만 제하고 그들의 뼈가 자신의 죄 밑에 놓였고 광야에서 멸망당했다.
- 하나님의 영적인 이스라엘은 드디어 큰 무리가 되었다. 비록 한때는 하찮은 무리처럼 보였을지라도, 그러나 함께 모였을 때에는 큰 무리가 되어 무수히 많게 되었다(계 7:9). 비록 교회의 시작은 조그마할지라도 그 결말은 굉장하게 증가한다. 보잘 것 없는 하나가 천이 된다.
* 예외가 된 레위 지파 (민수기 1:47-54)
레위 족속은 다른 족속과 조심 있게 구별된다. 황금 송아지를 만든 사건에서 이미 그들은 스스로 구별되었었다(출 32:26). 특별한 봉사에는 특별한 영예가 보상되는 법이다.
💡 47절, 그러나 레위인은 자기 조상의 지파에 따라 그들 가운데 들지 않았는데,
- 레위인들은 타지파의 장정들 속에 포함되어 군사로 계수되지 않았지만, 레위인들은 그들끼리 일 개월 이상된 남자에 이르기까지 더욱 철저히 계수되었다(3:14~39). 이는 레위인들이 이스라엘의 타지파 사람들과는 완전히 구별된 자들임을 의미한다.
- 레위인의 정체성
- 오직 하나님을 위하여 봉사하는 일 이외의 어떤 활동, 전쟁을 위하여 군대에 소집되는 것 뿐만 아니라 심지어 생계를 위한 노동까지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만을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소유로 완전히 성별된 자들이었던 것(3:12).
- 레위인들이 따로 구별되어 따로 계수된 레위인의 임무에 대한 것은 이 역시 하나님의 계시이다. 그들의 임무는 성막에서의 봉사였다. 모세가 레위인들을 군사로 계수하지 않은 것은 48절이 가르쳐주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의 결과였지, 결코 모세와 아론이 레위 지파에 속하였기 때문에 베풀어진 특혜가 아니었다.
- 레위인들에게 주어진 직분은 특권인 동시에 의무
- ‘오직’ 레위인들만이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중에서 유일하게 군사적 책무에서 완전히 면제되었으며, 모든 납세의 의무에서도 제외되었다.
- 이러한 사실은 성막세를 걷기 위해 실시된 인구 조사의 결과가 레위인이 제외된 이번의 인구 조사 결과와 일치한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 레위인들은 자신들의 생계를 위하여 일하지 않아도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만큼의 물질적 공급도 보장되었으며, ‘백성의 어른'으로서 사회적 지위도 갖는 등 많은 권리와 혜택을 누렸다(레21:4).
- 그러나 또한 그들은 초태생의 규례(출13:2,13; 민3:12,13)에 따라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난 자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바쳐진 자들로서 ‘반드시' 성별된 생활을 하며(레21장) 오직 하나님만을 섬겨야 하는 의무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Ⅰ. 레위 지파가 신령한 일의 수호자로 된 것은 그들의 영예였다. 따라서 진에서나 행진 중에서도 회막과 그 기물에 대한 문제는 레위족이 맡았다.
1. 이동할 때 레위 지파는 회막을 접어서 거기에 속한 모든 것을 운반하고 지정된 장소에 새워야 했다(50,51절).
누구도 그 장막 기구를 보거나 만져서도 안 되며, 오직 그 일에 봉사하도록 하나님께서 부른 자들에게만 허락함으로써 성물을 영광스럽게 하셨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과 교제하기에는 부적합하고 가치가 없다. 그러나 그의 은혜로 인하여 우리는 "그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를" 갖게 됨으로 대제사장의 영적인 씨가 되어 "우리의 하나님에게 제사장이 된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심지어 이방인 중에서도 사람들을 택하여 당신께 레위인으로 삼으리라고 약속하셨다(사 66:21).
💡 50절, 너는 레위인들에게 증거의 성막과 그 모든 기구와 그 모든 부속품들을 관리하게 하여 성막과 그 모든 기구들을 운반하고 돌보게 하며, 성막 주위에 진을 치게 하고,
- 증거의 성막
- 본문을 직역하면, ‘그 증거판의 장막’. 즉 증거막이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공의로우심을 증거하는 십계명이 새겨진 두 돌판, 곧 ‘증거판’이 보관되어 있는 성막 본체를 가리킨다.
- 성막을 가리키는 많은 이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함에서 비롯된 십계명 두 돌판이 보관되어 있는 장소임을 강조하는 ‘증거막(미쉬칸 하에두트)'이라는 이름이 사용된 이유
- : 레위인들에게 맡겨진 직분어 하나님의 거룩하신 율법에 따라 성결하고 거룩하게 수행되어야 할 막중한 직분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
- 그 모든 기구
- 증거막에 속한 모든 기구들. 이는 증거막에 속한 기구들(지성소 안에 있는 증거궤, 성소 안에 있는 향단, 등대, 진설병상, 성전 뜰의 주요 기구였던 번제단과 물두멍도 포함).
- 그 모든 부속품들
- ‘그리고 그것에 속한 모든 것’ — 앞선 그 모든 기구에 언급한 성막에 속한 여러 기구들을 제외한 모든 부속 기구들. 널판 기둥, 말뚝, 끈 등 각종 자재들.
- 관리하게 하라
- 이 단어에 ‘주의 깊게 돌보다, 주의하다’란 이면적 의미가 있는 것으로도 보았음.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증거막과 그에 속한 모든 기구와 부속물들을 ‘주의 깊게’ 돌보도록 레위인들에게 맡기라’는 명령이다.
- 레위인들에게는 성막에 속한 말뚝 하나, 끈 하나까지라도 세심하게 살피고 관리해야 하는 책임이 있었던 것.
- ‘운반하고’
- 이 ‘지다’ 라는 단어는 물건을 운반하기 위해 진다는 의미 뿐 아니라, ‘죄’ 혹은 죄의 형벌을 지는 것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사53:4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 레16:22의 속죄양, 레16:22의 대표자나 대리자.
- 본문에서 ‘운반하다’는 단어는 제사장이나 레위인의 직무와 연관되어 사용.
- 이들의 사역은 곧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등에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는 예수님을 예표한다.
- ⇒ 그들의 직무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신하여 짐을 지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지워진 점은 하나님의 임재와 죄의 대속을 상징하는 성막과 모든 기구들이었다.
- 한편 본문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사례는 이후에 다시 나온다. 즉 4:15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행진할 때 고핫 자손들은 회막의 물건들을 손으로 운반해야 했으며, 7:7, 8 에 의하면 게르손 자손들과 므라러 자손들은 소가 끄는 수레를 이용하여 성막의 기구들을 운반하였다.
-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처소이며 이스라엘 백성들과 만나는 장소였던 성막이나 성막의 기구들은 거룩하게 취급되어야 했으므로 이처럼 운반을 전담하는 사람들을 임명하였던 것이다.
- ‘돌보게 하고’
- 솨라트. 섬기다, 봉사하다. 이 단어가 제사장이나 레위인과 같이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용될 때는 특히 ‘예배 사역’에서의 봉사를 가리킴. 즉 단순한 육체적 노역을 가리키는 ‘아바드’와는 구분된다.
- 본문에서 레위인의 봉사를 언급하면서 ‘아바드’가 아니라 ‘솨라트’란 용어가 사용된 것은 — 레위인이 성막에서 하는 모든 일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었기 떄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레위인의 사역을 예배의 차원으로 보신 것이다.
- ‘성막 주위에 진을 치게 함’
- 성막을 돌보는 임무를 맡은 구별된 사람들인 레위인 이외의 타지파 사람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거룩한 성막에 접근하여 하나님의 거룩함을 훼손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1:51) 빈틈이 없이 성막 주위 사면에 레위인들의 진이 세워져 있어야 한다는 의미.
- 이와 같이 레위인들은 단순히 성막에서 봉사하며 성막을 이동할 떄 노동력을 제공하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이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는 실로 고귀한 사명을 수행했던 것.
- 오늘날 성도들도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부름받았다는 의미에서 레위인의 사명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 따라서 성도들은 교회를 위한 일에 열심을 보일 뿐 아니라 교회가 죄악에 물들지 않도록 교회의 성결함을 굳건히 지켜야만 한다(히3:13; 약1:13). 이교적이며 세속적인 가치관이 교회가 침범한다면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은 가리워질 수밖에 없음을 명심하고 교회가 하나님의 진리의 보루로 남아 있는 일에 힘써야 한다(28:7,8; 겔22:26; 미3:11; 계2:13~16, 20~23).
51절, 성막을 옮길 때에 레위인들이 그것을 걷고 성막이 머물 때에 레위인들이 그것을 세우게 하여라. 만일 다른 사람이 접근하면 죽임을 당할 것이다.
- 이방인, 나그네 뿐만 아니라 레위인 이외의 이스라엘 사람들 모두 포함하여 접근을 철저히 금지하셨다. 이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조금이라도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2. 레위 지파는 휴식할 때에 그 "회막 주위에 진을 쳤다" (50,53절).
그렇게 함으로써 언제나 일할 준비를 갖추고 언제나 회막에 봉사할 준비를 하였다. 또한 기물이 약탈당하거나 신성이 모독당하지 않도록 하였다. 회막과 그곳의 일들이 멸시 당하거나 회막 주위를 무리를 지어서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의 일을 하며 "그 회중에게 결코 진노를 받지 않도록" 그들은 회막 주위에 노숙하여야 했다. 죄를 막는 데는 비상한 관심이 기울여져야 한다. 그 이유는 죄를 막는 일이 곧 진노를 막는 일이기 때문이다.
💡 52절, 이스라엘 자손은 각각 부대를 따라 자기의 깃발과 진영 옆에 진을 치겠지만,
53절, 레위인들이 증거의 성막 둘레에 진을 치면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 위에 진노가 임하지 않게 할 것이니, 레위인은 증거의 성막에 대한 책임을 수행하여라." 하셨기 때문이다.
- 이스라엘 자손들은 각각 자신이 속한 지파에 따라 진을 쳤는데 그 중심에는 항상 성막이 위치하도록 되어 있었다.
- 즉 이스라엘 군대는 성막을 중심으로 이동하고 성막을 중심으로 머물렀던 것이다. 이러한 성막 중심의 생활을 통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은 광야 40여 년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는 강한 군사들로 훈련될 수 있었다.
- 오늘날 성도들 역시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갈 때에만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돌보심을 체험할 수 있다(시119 :105; 요15:5). 따라서 성도들은 하나님을 떠난 삶이 곧 유리하는 삶이요, 방황하는 삶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눅15:11-32; 갈1:6-9).
각각 그 진을 쳤어야 했다
- 이는 성막 주위에 배치되었던 동서남북 각 방위의 야영장에 고유의 깃발이 있었음을 알려주고, 이스라엘이 잘 정비된 군사 조직으로서, 혼란을 막기 위하여 주거지조차 면밀하게 배분하였음을 잘 보여 준다.
- 이처럼 이스라엘이 하나의 군대로서 편성된 것은 그들에게 가나안 정복이라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출6:4; 레14:34; 25:38).
레위인은 책임을 수행하여라
- 레위인들의 책임이 그만큼 막중했다. (증거막을 파수하는 책임을 지키라는 의미의 단어를 2 단어로 거듭하여 사용함).
54절, 이스라엘 자손이 그대로 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였다.
- 이스라엘은 모세의 명령을 하나님의 ‘모든’ 명령으로 받아 자신들의 생각대로 빼거나 더하지 않고, 오직 명령 그대로만 행했다. 모세를 통해 듣게 된 (2:1) 하나님의 명령에 철저하게 순종했다.
- 한편 이러한 순종의 모습은 얼마 후에 있을 가나안 정탐 사건과는 너무나 대조를 이루는 모습.. 이들의 순종적인 태도는 장대한 가나안 사람들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던 것,..(14:1~10).
- 그것은 이들의 신앙이 단지 눈에 보이는 바대로만 믿는 신앙(요20:29)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곧 우리에게 눈으로 보는 것에만 의존하는 신앙, 체험만을 중시하는 신앙이 얼마나 나약한 것인지를 보여 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신앙의 근거를 오직 말씀 위에 두고 말씀 그대로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Ⅱ. 이스라엘은 거룩한 민족이므로 "열방 중에 계산되지" 않음 같이, 그들은 거룩한 지파이어서 다른 이스라엘 족속의 계산에 포함시키지 않았다는 것은 더욱 영예로운 일이다. 그러나 나중에 자신들에 의하여 계수되었다(49절).
레위족이 성물에 대하여 봉사할 일은 "전쟁" 이라고 말한다(4:23의 흠정역 난외주 참조). 그들은 이미 전쟁에 참가하여 군복무를 마쳤으므로, "전쟁에 나아갈" 자들과 함께 계수하지 않았다. 성물을 관리하는 자는 세속적인 일에 자신을 얽매거나 얽매이게 해서도 안 된다. 목회 자체는 전인(全人)을 요구하는 일이며, 그 일에 필요한 사람의 수효는 많지 않아도 된다. 사역자들은 더 훌륭한 자로 보이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모든 생각에서 정말로 뛰어난 사람들이 되고 생활로 본을 보임으로써 남보다는 구별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