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5월 27일 월요일 묵상구절 시편 106편

Jeehyun 2024. 5. 27. 23:28

맥체인성경읽기

민수기 36, 시편 80, 이사야 28, 요한이서 1

묵상구절

[1-6절: 선민을 향한 여호와 찬양 촉구, 주의 은혜에의 동참 간구 및 자신들 세대의 타락 자백]

106:1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06:2 누가 능히 여호와의 권능을 다 말하며 주께서 받으실 찬양을 다 선포하랴

106:3 정의를 지키는 자들과 항상 공의를 행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106:4 여호와여 주의 백성에게 베푸시는 은혜로 나를 기억하시며 주의 구원으로 나를 돌보사

106:5 내가 주의 택하신 자가 형통함을 보고 주의 나라의 기쁨을 나누어 가지게 하사 주의 유산을 자랑하게 하소서

106:6 우리가 우리의 조상들처럼 범죄하여 사악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

[7-12절: 홍해에서의 이스라엘의 패역과 여호와의 구원 회고]

106:7 우리의 조상들이 애굽에 있을 때 주의 기이한 일들을 깨닫지 못하며 주의 크신 인자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바다 곧 홍해에서 거역하였나이다

106:8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그들을 구원하셨으니 그의 큰 권능을 만인이 알게 하려 하심이로다

106:9 이에 홍해를 꾸짖으시니 곧 마르니 그들을 인도하여 바다 건너가기를 마치 광야를 지나감 같게 하사

106:10 그들을 그 미워하는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며 그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셨고

106:11 그들의 대적들은 물로 덮으시매 그들 중에서 하나도 살아 남지 못하였도다

106:12 이에 그들이 그의 말씀을 믿고 그를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도다

106:13 그러나 그들은 그가 행하신 일을 곧 잊어버리며 그의 가르침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13-33절: 광야 시대의 이스라엘의 거듭된 패역 사례들과 여호와의 징계 및 구원의 회고]

106:14 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내며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도다

106:15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요구한 것을 그들에게 주셨을지라도 그들의 영혼은 쇠약하게 하셨도다

106:16 그들이 진영에서 모세와 여호와의 거룩한 자 아론을 질투하매

106:17 땅이 갈라져 다단을 삼키며 아비람의 당을 덮었고

106:18 불이 그들의 당에 붙음이여 화염이 악인들을 살랐도다

106:19 그들이 호렙에서 송아지를 만들고 부어 만든 우상을 경배하여

106:20 자기 영광을 풀 먹는 소의 형상으로 바꾸었도다

106:21 애굽에서 큰 일을 행하신 그의 구원자 하나님을 그들이 잊었나니

106:22 그는 함의 땅에서 기사와 홍해에서 놀랄 만한 일을 행하신 이시로다

106:23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멸하리라 하셨으나 그가 택하신 모세가 그 어려움 가운데에서 그의 앞에 서서 그의 노를 돌이켜 멸하시지 아니하게 하였도다

106:24 그들이 그 기쁨의 땅을 멸시하며 그 말씀을 믿지 아니하고

106:25 그들의 장막에서 원망하며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아니하였도다

106:26 이러므로 그가 그의 손을 들어 그들에게 맹세하기를 그들이 광야에 엎드러지게 하고

106:27 또 그들의 후손을 뭇 백성 중에 엎드러뜨리며 여러 나라로 흩어지게 하리라 하셨도다

106:28 그들이 또 브올의 바알과 연합하여 죽은 자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어서

106:29 그 행위로 주를 격노하게 함으로써 재앙이 그들 중에 크게 유행하였도다

106:30 그 때에 비느하스가 일어서서 중재하니 이에 재앙이 그쳤도다

106:31 이 일이 그의 의로 인정되었으니 대대로 영원까지로다

106:32 그들이 또 므리바 물에서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으므로 그들 때문에 재난이 모세에게 이르렀나니

106:33 이는 그들이 그의 뜻을 거역함으로 말미암아 모세가 그의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음이로다

[34-46절: 가나안 정착에서 바벨론 포수 시대까지의 이스라엘의 패역과 여호와의 징계와 구원 회고]

106:34 그들은 여호와께서 멸하라고 말씀하신 그 이방 민족들을 멸하지 아니하고

106:35 그 이방 나라들과 섞여서 그들의 행위를 배우며

106:36 그들의 우상들을 섬기므로 그것들이 그들에게 올무가 되었도다

106:37 그들이 그들의 자녀를 악귀들에게 희생제물로 바쳤도다

106:38 무죄한 피 곧 그들의 자녀의 피를 흘려 가나안의 우상들에게 제사하므로 그 땅이 피로 더러워졌도다

106:39 그들은 그들의 행위로 더러워지니 그들의 행동이 음탕하도다

106:40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맹렬히 노하시며 자기의 유업을 미워하사

106:41 그들을 이방 나라의 손에 넘기시매 그들을 미워하는 자들이 그들을 다스렸도다

106:42 그들이 원수들의 압박을 받고 그들의 수하에 복종하게 되었도다

106:43 여호와께서 여러 번 그들을 건지시나 그들은 교묘하게 거역하며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낮아짐을 당하였도다

106:44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실 때에 그들의 고통을 돌보시며

106:45 그들을 위하여 그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 크신 인자하심을 따라 뜻을 돌이키사

106:46 그들을 사로잡은 모든 자에게서 긍휼히 여김을 받게 하셨도다

[47-48절: 자신들 바벨론 포수 세대의 구원 간구와 찬양 촉구]

106:47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사 여러 나라로부터 모으시고 우리가 주의 거룩하신 이름을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찬양하게 하소서

106:48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양할지어다 모든 백성들아 아멘 할지어다 할렐루야


매튜헨리 주석

- 이스라엘의 패역사와 여호와의 은혜사의 서사적 희고와 찬앙 촉구

(저자: 미상. 분류: 찬양시)

서론


 💡 본시는 ‘할렐루야'로 시작하고 끝을 맺는 소위 할렐루야 시편들' (106, 113, 135, 146-150편) 가운데 첫번째로 나오는 시입니다.

이전의 제 1편 등도 104,105편 등도 ‘할렐루야'로 끝을 맺고 있으나 ‘할렐루야'로 시작도 하고 끝을 맺고 있는 시는 본시가 처음업니다.

이러한 본시는 이스라엘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찬양하는 찬양시입니다.

시편에는 이처럼 선민의 역사를 회고하는 형식의 역사시가 78,105,106편 등 모두 세 편 수록되어 있습니다.

  • 이 가운데 제78편은 선민의 형성기인 이스라엘의 출애굽 당시로부터 다윗의 통치기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회고하는 중에 이스라엘 백성들과 그 후손들에게 영적 각성과 교훈을 주어 그들의 선조들과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하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지혜시입니다.
  • 그에 반하여 제 105편과 제 106편은 선민의 역사에 투영된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과 은혜를 감사하는 감사 찬앙시입니다.
    특히 제 105편과 제106편은 그 내용과 형식의 유사성으로 인하여 쌍둥이 시로도 불리는데,
    • 그 중에서도 제 105편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세 족장들과 맺은 언약에 따라 이스라엘을 출애굽시켜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근거로 하여 지은 찬양시적 성격이 강한 감사 예배시라면,
    • 제106편은 하나님의 크신 권능과 사랑을 맛보고도 계속해서 하나님을 시험하고 거역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을 통탄하며 지은 참회시적 성격이 강한 찬양시라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본시의 저자나 저작 배경이 무엇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1 05편의 1-16절이 다윗이 오벨에돔의 집에 모셔져 있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와 안치할 때에 다윗이 지어 부른 노래인 역대상 16:7-36 가운데 8-22절의 내용과 문자적으로 일치하는 것처럼 본시의 1절 및 47, 48 절의 내용이 역대상 16:34-36의 내용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일단의 학자들은 제105편과 본시를 다윗의 저작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시의 내용 가운데 41 절 이하의 내용은 본시가 바밸론 포로와 깊은 관계가 있음을 강력하게 시사하여 줍니다.

→ 따라서 본시는 이스라엘의 한 익명의 시인이 바벨론 포로 상황에서 선민의 회복을 바라보며 지었다고 보는 것이 더 합당하게 여겨집니다.

이제 이러한 본시의 내용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6절

선민의 구원사를 주도해 온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대하여 선민의 찬양을 촉구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자신들을 참여시켜 주시기를 간구함과 동시에 현재 자신들이 하나님의 은혜에서 벗어나 있게 된 원인으로서의 자신들의 죄악을 자백하고 있습니다.

7-46절

선민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사를 그 시기별로 회고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시인은 여기서 선민의 불순종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극명하게 대비하면서 선민의 죄악을 사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총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1. (7-12절) 홍해에서의 이스라엘의 패역과 하나님의 구원을,
  2. (13-33절) 광야에서의 이스라엘의 거듭된 패역과 하나님의 징계와 구원을,
  3. (34-46절) 가나안 정착에서부터 바벨론 포수 시대까지의 이스라엘의 패역과 하나님의 징계 및 구원을 희고하고 있습니다.

47,48 절

자신들 곧 바벨론 포수 세대의 구원을 간구하며 선민을 향하여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향한 찬양(시편 106:1-5)

I.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가르침을 받고 있다(1, 25절). "할렐루야, 여호와를 찬송하라."

1.하나님의 선하심, 곧 우리에게 나타난 그 많은 선한 일들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에 대한 우리의 의무와 그에게 우리의 최선의 사랑과 헌신의 보답을 드리도록 해야 할 것이다.

2.그에게 그의 위대하심과 그의 "능하신 사적"과 그의 전능하신 권능의 증거를 인하여 영광을 돌리라. 그는 그것을 통해 그의 선하심에 대조될 만한 위대한 일들을 행하셨다. "뉘 능히 이것들을 전파할 수 있을까?" 누가 그것을 할 만한 자격이 있겠는가? 누가 그것을 할 능력이 있겠는가? 그가 행하신 일들이 너무 많아서 헤아릴 수 없으며 너무 신비로와서 묘사할 수 없다. 우리가 여호와의 능하신 사적에 대해서 할 수 있는 대로 가장 많은 것을 말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 절반밖에 말한 것도 안 된다. 여전히 더 말할 것이 있게 된다. 그것은 결코 다 없어져 버릴 수 있는 그 일부를 자랑할 수 있으나 "누가 그 모든 것을 광포할꼬?" 찬양하는 일은 천사들에게만 속한 일이 아니다.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은 변명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도록 재촉해 준다.

Ⅱ.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축복하고 그들을 복되다고 하라는 가르침을 받고 있다(3절).

"공의를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에 사용되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규범에 타당한 자들이다. 즉 "그들은 공의를 지킨다"(그들은 지혜와 종교의 규범들을 고수하며 그들의 실행은 합당한 것이다). 그들은 "의를 행하는 자"들이며 하나님과 모든 인간들에게 공평한 자들이며, 견실하며 변하지 않는 자들이다. 그들은 "항상 그것을 행하며 모든 경우에, 그것을 행하며 마지막까지 그것을 보전한다."

Ⅲ. 여기에, 하나님의 은총 안에 있는 우리 자신들을 축복하며, 우리의 행복을 그 안에 두며, 따라서 시편 기자가 하는 것과 같이 열심을 다해 그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고 있다(4,5절).

1.그는 모든 행복의 근원인 하나님의 자비를 주목하고 있다.

"오 주여! 나를 기억하시며" 내가 필요로 하는 자비와 은총을 "주의 백성에게 베푸시는, 은혜로서" 나에게 주소서. 특별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자들이 있는 것과 같이, 하나님이 그 백성에게 베푸시며, 모든 은혜로운 영혼들이 갈구하는 특별한 은혜가 또한 있다. 그리고 그것이 있는 이상 우리는 더 이상 우리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 갈망할 필요가 없다.

2.그는 행복의 근원인 하나님의 구원, 영혼의 위대한 구원을 바라보고 있다.

"주의 구원으로 나를 권고하소서." "내게 내가 필요로 하는 용서와 은혜를 주소서. 그리고 당신 외에는 아무에게도 희망을 두지 않게 하소서"(하몬드 박사의 해석). 그 구원이 영원토록 나의 몫이 되게 하시며 그 증거가 나의 현재의 위로가 되게 하소서.

3.그는 모든 선을 포함하고 있는 의로운 자의 축복을 보고 있다(5절).

"나로 주의 택하신 자의 형통함을 보하시고 성도들과 같이 행복하게 하시면, 더 행복하게 되기를 갈구하지 않겠나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여기에서 그의 "택하신 자," 그의 "나라" 그리고 그의 "기업"이라고 불리워지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그 자신의 지배 하에 그들을 결합시키면서 그 자신을 위해서 그들을 성별시키며 그들에 의해서 섬김을 받고 그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은 그들에게 합당한 형통함을 갖는다. 그것은 기쁨과 영화로운 일이며 저들의 즐거움이 되며 저들의 찬양이 된다. 하나님의 백성은 기뻐하는 백성이 되어야 할 이유를 가지며 하루 종일토록 저들의 하나님을 자랑할 이유를 가진다. 그리고 기쁨과 영광을 가진 자들은 인간의 자녀들이 가지는 어떠한 쾌락이나 교만도 부러워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나라의 기쁨 즉 그의 기업의 영광은 어떤 사람도 만족하도록 하기에 충분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종말까지 영원한 기쁨과 영광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죄악(시편 106:6-12)

여기에서 죄에 대한 참회의 고백이 시작된다. 그것은 교회가 환난 중에 있던 당시에는 특별히 시의에 알맞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이 우리도, "우리가 범죄하여 악을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옳은 일을 행하셨음을 시인하면서, 그가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것에 대해서 하나님을 의롭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전의 죄에 대한 기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시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에게 희망을 주게 된다. 우리는 비록 우리의 죄 때문에 당연히 징계받아야 하지만, 아직 전적으로 버림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고 희망을 갖는다.

Ⅰ. 고난을 당하는 하나님의 백성은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범죄를 고백한다(6절).

"우리가 열조와 함께 범죄하였다. 즉 우리의 열조와 같이, 그들의 범죄를 따라서 행했나이다. 우리는 유전적인 범죄의 혈통을 이어받아 우리 조상의 불의의 분량을 넘치게 하여 여호와의 노를 더욱 심하게 하였다(민 32:14; 마 23:32). 또 이들이 얼마나 근심하며 참회하는가를 보라. 우리는 악을 지었나이다. 즉 그 자체에 있어서 죄악된 것을 행했나이다. 그리고 우리는 사특을 행했나이다. 즉 주제넘게 높은 손을 들어 범죄하였나이다." 본문은 또한 저들의 조상의 죄에 대한 모방뿐만 아니라 그것과의 이해 단계에 대한 고백인 것이다. "우리는 열조와 함께 범죄하였나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들에게서 태어났으며 "우리는 그 죄악을 담당하였기" 때문입니다(애 5:7).

Ⅱ. 그들은 그들이 처음으로 한 민족을 형성하였을 당시의 조상들의 죄를 슬퍼하였다.

그 자녀들이 종종 그들의 죄악으로 인하여 징벌받아 왔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반역의 역사로부터 인간의 본성의 타락과 완악함을 탄식하고, 가장 적합한 수단에 의해서도 고쳐지기 어려운 경직성을 슬퍼해야 한다. 여기에서 이러한 것을 자세히 관찰해 보자.

1.하나님이 저들에게 주신 은총 가운데서 이스라엘은 얼마나 이상한 어리석음을 행했는가? (7절)

"그들은 애굽에서도 주의 기사를 깨닫지 못하였다." 그들은 주의 기사를 보았지만 그 의미와 의도를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했다."보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 자들은 복이 있다." 그들은 애굽의 재앙이 자기들의 구원만을 목적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상 그 재앙들은 그들을 애굽의 노예살이에서 강권하여 이끌어낼 목적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신 위에 주권적인 권세와 지배를 증거함으로써, 애굽의 우상을 좇으려 하는 그들의 심성을 고쳐 주려는 교훈과 책망도 목적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사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섭리의 은택을 잃는다.

그들의 이해는 우둔했고, 그들의 기억이 패역한 것이었다. 대개 그러한 놀라운 사건은 결코 잊혀지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그것들을 잊었고, "주의 많은 인자를 기억지 아니하였다." 하나님의 은혜가 기억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도 불신되었다.

2.이러한 어리석음으로부터 제기되는 그들의 사악함은 어떠한가?

"그들은 바다 곧 홍해에서 거역하였다." 죄악의 도발은 구원의 절망(왜냐하면 위험이 컸기 때문이다)과 그들이 애굽에 계속 머물러 있게 되기를 원하는 것이었다(출 14:11, 12). 하나님의 섭리와 대적하는 것과 그의 권능과 선하심과 신실하심을 유혹하는 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더 큰 반역이다. 그 장소가 죄를 가중시켰다. 그것은 "바다 곧 홍해에서"였으며, 그들은 그때 막 애굽에서 탈출했으며, 그들의 마음 속에는 그들을 위해 하나님이 행하신 기적들이 넘치고 있던 때였다. 그들은 마치 그가 행하신 모든 권능에 자비가 없고 오히려 "광야에서 저들을 죽이려는" 목적으로 애굽에서 인도해 낸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에게 반역하였다. 그들은 홍해를 건너는 통로에서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자비에 의뢰하지 않고, 거기에 마주섰으며, 그의 진노를 야기시켰다

3.그들의 도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저들에게 행하신 위대한 구원을 관찰해 보자(8-11절).

(1) 하나님은 그들을 위하여 바다를 통해 갈 수 있는 통로를 드러내 보였다. 그가 그들의 길에 서서 행진을 방해하는 "홍해를 꾸짖으시니, 곧 말랐다." 그것은 창조 때에 물이 주의 견책을 인하여 도망하였던"(시 104:7) 것과 같다. 아니! 그는 그들에게 길을 예비하셨을 뿐만 아니라 구름 기둥과 불 기둥에 의해서 바다로 "저희를 인도하시고," 모세의 지휘 아래서 그들을 "광야를 통해 가는 것같이" 쉽게 홍해를 건너게 하셨다. 그는 그들이 가장 위험스럽고 위협하는 적들에 처해 있을 때 그들에게 발걸음을 인도하여 힘 주시며 그들의 두려움을 전복케 하셨다(사 63:12-14 참조).

(2) 하나님은 그들과 그들의 추적자 사이를 가로막아 추적자들이 계획하는 바를 제지하셨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걸어서 갔으나, 애굽 사람들은 병거와 말을 타고서 따라왔다. 그들은 그리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을 재빨리 잡을 수 있게 되었으나, 하나님은 "저희를 미워하는 자의 손에서 구원하셨다." 즉 저희를 미워하는 자는 바로 왕이었다. 그는 저희를 결코 좋아하지 않았으며, 그들로 말미암아 당했던 재앙 때문에 이제는 더욱 미워하게 되었다. 그들을 이제 곧 잡으려고 하는 "그 원수의 손에서 구속하셨다"(10절). 하나님은 박해받는 자와 박해자 사이에서 말하자면 불 기둥 속에서 중재하면서 그들을 구속하셨다.

(3) 자비를 성취하기 위해서, 구원을 승리로 환시키기 위해서 그들에게 높여 있는 홍해는 애굽 사람들에게는 무덤이 되었다(11절). 그들의 수치를 감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죽이기 위하여 "물이 저희 대적을 덮었다." 결국 그들은 다음의 썰물에 의해서 해변가에 죽은 자로 던져졌다(출 14:30). 소식을 전할 수 있는 자가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서 이 일을 행하셨는가? 아니 왜 하나님은 불신앙과 불평으로 가득차 있는 그들을 그들의 적에게 행하신 대로 덮으시지 않으셨는가? 그는 우리에게 말해 준다(8절). 그것은 "그의 이름을 위해서"였다고. 그들은 이러한 은총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계획하셨다. 그리고 그들의 무자격이 그의 계획을 바꿀 수 없으며 그의 약속을 물리칠 수도 없으며, 그것을 수행하는 것을 망칠 수도 없다. 그는 자기의 영광을 위해서 이것을 행하셨다. 그것은 그가 바다를 가르는 데에서만이 아니라 그들의 반역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행하심에서 "그 큰 권능을 알게 하려 하심이로다." 모세는 "주의 인자의 광대하심을 따라 이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옵소서"하고 간구하였다(민 14:17, 19). 죄를 사해 주며 죄인들을 용서해 주는 은총의 하나님의 권능은 물을 가르는 자연 하나님의 권능과 같이 더욱 더 찬양되어야 한다.

4.이것이 이제 저희에게 이루어졌다는 선한 표현을 보자(12절).

"이에 저희가 그 말씀을 믿고," 하나님이 진리로써 그들과 함께 하셨으며, 자비로 그들을 애굽에서 건져 내셨으며, 광야에서 그들을 죽일 계획도 갖기 않으셨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리고 "그들은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두려워하였다"(출 14:31). 그리고 나서 그들은 모세가 이렇게 위대한 일에 기록한 노래(출 15:1) 즉 "그 찬송을 불렀도다." 하나님이 얼마나 은혜롭고 자비로운 방법으로 그의 백성의 불신앙을 침묵케 하시며 그들의 두려움을 찬양으로 바꾸시는지를 보라! 그리고 그것은 다음과 같이 기록된 바와 같다. "마음이 혼미하던 자도 총명하게 되며 원망하던 자도 교훈을 받으리라 하셨느니라"(사 29:24).


●광야에서의 이스라엘의 반역(시편 106:13-33)

이것은 광야에서의 이스라엘의 반역의 역사와 그들의 반역으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의 역사의 초록(抄錄)이다. 그리고 이 초록은 사도 바울에 의해서 우리 그리스도 인들에게 적용되었다(고전 10:5 등). 왜냐하면 이것들은 "우리의 훈계를 위해서 씌여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도 저들과 같이 죄를 짓지 아니하여 저들과 같은 고통을 당하지 않게 하려 함이다.

Ⅰ. 그들의 죄의 요인은 하나님 역사와 말씀에 대한 경시였다(13절).

1.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행하신 것을 기억하지 않았다.

"저희가 미구에 그 행사를 잊어버리며," 그 행사가 그들에게 끼쳤던 인상을 잃어버렸다. 그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자비를 깨닫지 못하고, 그들에게 행하신 은택에 따라 어느 정도 갚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자들은 그 행사를 실제로 잊는다. 이 백성은 그것은 곧 잊었다(하나님은 이것을 아신다. 출 32:8 "그들은 속히 떠났다"). "그들은 속히 떠나, 그의 행사를 잊었다"(난외주에는 이렇게 되어있다). 어떤 사람들은 두 개의 다른 죄악 사례를 말하는 것으로 본다. "그들은 속히 떠났다"(서둘렀다). 저들의 기대는 하나님의 약속을 앞질러갔다. 그들은 자기들이 곧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들이 과연 가나안에 들게 되는지를 의심하지 않았으며, 그 때문에 도중에서 많은 어려움을 만났다. 그러나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서둘지) 아니하리로다"(사 28:16).

그러나 동시에 그의 지혜와 권능과 선하심의 부정할 수 없는 증거인 "그의 행사를 잊었고, "약속은 전혀 이루어지지 아니했다는 듯 단호히 그 결과를 부정했다. 이것은 거듭 언급되고 있다(21,22절). "그 구원자 하나님을 저희가 잊었도다." 즉 그들은 그가 저희들의 구원자였던 것을 잊었다. 하나님의 행사를 잊는 자들은 하나님 자신을 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 자신을 그의 행사에 의해서 알리시기 때문이다. 그들은 불과 며칠 전 일을 잊었다. 생각하건대, 그들은 그 역사를 선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잊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서 "애굽에서, 함 땅에서," 그리고 "홍해에서" 행하신 것이며, 우리가 기억하지 않으면 아니될 일들이었다. 그것들은 "큰 일"(왜냐하면 위대하신 하나님이 미천한 일이라곤 하지 않지만, 그가 특별한 방법으로 이 일을 행했기 때문이다)이라고 불리워지며, 섭리의 통속적인 방편에서 볼 때 "놀랄 일"이며, 따라서 그들에게 주목될 만하며 기억될 만한 것이며, "무서운 일이며" 놀라운 것이었고, 그들의 적에게는 위협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곧 잊혀졌다. 눈으로 본 기적도, 귀로 들은 이야기처럼 곧 사라져 버렸다.

2.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하신 것과 그들에 의존했던 사실을 기억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 가르침을 기다리지 아니했다." 즉 그의 말씀을 청종치 않았다. 비록 하나님의 대언자였던 모세가 함께 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그와 상의하지 않고 해결했으며 그를 부르지 않고 요구하였다. 그들은 가나안에 직접 들어가려 했고,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는 인내를 갖지 않았다. 지연은 참을 수 없는 것이었고, 따라서 난점들은 극복할 수 없는 것처럼 여겨졌다. 이러한 내용이 설명되어진다(24절). "저희가 그 말씀을 믿지 아니하고," 그가 저들에게 가나안의 주인이 되게 하리라고 하신 약속을 믿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치 아니하였다." 그는 모세와 아론의 말을 듣고도 갈렙과 여호와의 말을 듣고도 기다리려 하지 않았다(민 14:6, 7 등). 하나님의 가르침을 기다릴 수 없는 자들은 자신의 뜻에 따라 걷기 때문에 그들 자신의 마음의 욕망에 곧 굴복하게 될 것이다.

Ⅱ. 여기에 그들이 그들의 죄들로 인하여 받게 되는 하나님의 진노의 표징과 함께 그들의 많은 죄들이 언급되고 있다.

1.그들은 고기를 먹고 싶어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에게 고기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으려고 했다.

"그들은 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발하였다"(14절). 그들은 광야에서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의 빵을 얻었으나, 그들은 고기를 먹고 싶어했다. 그때 그들은 전적으로 기적에 의해서 공급되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지했으며, 따라서 이것은 저들의 창조자의 지혜와 선하심에 대한 불평이었다. 따라서 이것은 저들의 창조자의 지혜와 선하심에 대한 불평이었다. 그들은 모든 가능성에서 가나안을 가깝게 두고 있었지만, 거기에 갈 때까지 맛있는 음식먹는 것을 참을 인내심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가축들이 있었지만, 자기들 것을 죽일 생각이 없었다. 하나님은 그 떡을 준 것처럼 고기를 주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그를 신뢰하지 않으며, 그의 선한 말씀을 믿지 않으면 그들은 그를 신뢰하지 않으며, 그의 선한 말씀을 믿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들은 단지 고기를 원했을 뿐 아니라, 고기에 대한 "욕심을 크게 발하였다." 욕망은 합법적인 것일지라도 무절제하며 격렬한 것일 경우에는 죄된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하나님의 선물인 메추라기는 좋은 것이며, 또 그렇게 말하고 있지만(105:40), 그들은 "악을 즐겨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들(고전 10:6)이라고 불리워졌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들은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권능을 경험했지만 그가 여기에서 그들에게 만족케 할 수 있는지 또는 만족케 할 것인지를 의심했다(78:19, 20 참조). 이제 하나님이 이런 것에 대하여 그들에게 어떻게 진노를 나타내셨는가를 보자. 그 방법을 보자(15절). "그는 저희의 요구한 것을 주셨을지라도," 그것을 그들에게 분노와 저주로써 주셨다. 왜냐하면 "그는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때때로 술고래들이 커다란 방탕을 경험하게 되는 것같이, 저들의 육체를 과음으로 병약하게 하는, 마음의 불안과 양심의 위협과 자책(自責)을 그들에게 넘치게 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이것은 "고기가 아직 잇사이에 있을 때"(민 11:33) 여호와께서 그들에 내리신 큰 재앙을 뜻하는 것이다. 그것은 생명의 소모였다.

(1) 정욕 가운데서 간구된 것은 종종 진노 가운데서 주어진다.

(2) 매일 맛있게 먹는 자들, 그리하여 몸이 강건하며 살찐 자들은 동시에 영혼이 마르게 되며 하나님에 대한 아무런 사랑과 감사도 갖지 아니하며, 결국 영혼은 파리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들은 불쌍하게도 그들의 몸은 호식시키나 영혼은 굶어 죽게 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랑 가운데서 이러한 생명의 선한 것들을 주시며, 그것과 함께 그는 그를 영화롭게 할 은총을 주신다. 그리하여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사 55:2).

2.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즉 교회와 국가에 설정하신 통치자들과 싸웠다(16절).

그들은 "진에서 모세를 질투하였다." 즉 이스라엘 군대의 총사령관이며 모든 법정에서의 대법원장인 그의 권위를 질투하였다. 또한 "여호와의 성도 아론을 질투하였다." 아론은 대제사장직을 맡고 있었는데, 야곱의 장자 르우벤 족속의 후예인 다단과 아비람은 천부적인 장자권에 의해서 원수(元首)가 될 것을 주장하였다. 하나님이 영광을 허락하신 자들을 질투하며, 그들이 결코 스스로 계획하지 않았던 작위를 빼앗는 자들은 스스로를 파멸로 추대하게 된다. 그리고 여호와의 성도를 경멸하는 자들은 반드시 멸시를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일에 대해서 그의 진노를 어떻게 보이셨는가? 우리는 그 방법을 듣는다. 그것은 우리를 전율케 하기에 충분하다(17,18절). 우리는 그 이야기를 알고 있다.(민 16:32, 35)

(1) 당시 국가의 권위에 대항했던 자들은 "땅이 그 입을 열어 그들을 삼켜" 망하게 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용납될 수 없기 때문이다.

(2) 하나님께 속하는 교회의 권위를 빼았는 자들은 하늘의 복수를 당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여호와께로서 불이 나와서 저들을 소멸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짓 예배자들은 하나님의 정의에 희생당한다. "화염이 악인을 살랐도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여호와의 성도 아론"과 경쟁했기 때문에, 그리고 거룩한 자와 경쟁했기 때문에(민 16:3-5), 하나님은 그들을 악인으로 선고하시고 적당한 때에 그들을 사를 것이기 때문이다.

3.그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율법이 전수된 호렙산에서 예배했다.

하나님은 거기에서 분명하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거기에 절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 두 가지를 모두 행했다. "그들은 송아지를 만들고, 부어 만든 우상을 숭배하였다"(19절).

(1) 그들은 여기에서 하나님이 도덕적인 세상을 지배하기 위해서 만드신 두 가지의 큰 빛에 대항하고 무시했다.

[1] 인간의 이성의 빛.

"그들은 자기들의 영광을 바꾸었도다." 즉 저들의 하나님은 어떤 보이는 형상을 취하지 않고 항상 구름 속에서(검은 구름 또는 밝은 구름) 자기를 표현하였으나, 애굽 우상중의 하나인 아피스(Apis) - 즉 풀먹는 소의 형상으로 바꾸었다. 그것은 더욱 조잡하고 수치스럽게 바꿔진 것이다(20절). 우상 숭배자들은 완전바보가 되어 버렸으며 하나님을 야수의 형상으로 표현하고, 그렇게 하고 나서 그것에 예배하므로 하나님과 자신들을 가장 크게 경멸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저들의 영광을 바꾸었다고 한 말을 사도 바울은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꾸었다"고 설명하였다(롬 1:23).

[2] 하나님의 계시의 빛.

그것은 인간에게 말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만 아니라, 그가 그들에게 행하신 행사에서 "놀랄 일(기사"에서 나타났다. 하나님의 계시는 주 여호와는 오직 참되며 살아계신 하나님이며 홀로 예배받으실 분이라는 사실을 크게 선포한다(21, 22절).

(2) 이것을 인하여 하나님은 그들을 그들이 속한 백성에서 제거하시며, 그들이 그를 하나님 됨에서 제거한 것같이 멸하리라는 뜻을 선포함으로써 진노를 나타내셨다.

그는 "저희를 멸하리라 하셨다." 만일 "그 택하신 모세가 그 앞에 서서" 있지 않았더라면 즉 하나님이 그들에게 내릴 파멸과 진노를 돌이키려고 모세가 하나님께 중재하지 않았다면, 그는 확실히 그렇게 행하셨을 것이다. 여기에서, 반역하는 백성에게 조차 노함을 쉽게 자비로 돌이키는 하나님을 보라! 그리고 하나님의 택한 자가 하늘에서 얻는 기도의 권능을 보라! 그리스도의 모형인 하나님의 "택하신 자" 즉 그의 "선택된 자"는 그의 영혼을 기쁘게 하며 반역하는 세상과 그러한 사람들 가운데서 "그 노를 돌이키기 위해서 그 결렬된 중에서 그 앞에 서서" 중재하고 있는 것이다.

4.그들은 가나안 땅에 다녀온 악한 정탐군들이 하나님의 약속과는 반대되는 보고를 한 것을 믿었다.

"저희가 낙토(樂土)를 멸시하였다"(24절). 가나안은 낙토였다(신 8:7). 그들은 모함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을 때 가나안 땅을 멸시하였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지 않으려 하며, 결국 대장을 세워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장막에서 원망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천박하게도 하나님이 그들을 여기까지 데리고 온 것은 가나안 사람들에게 약탈되게 하려는 목적이었다고 비난하였다(민 14:2, 3).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의 권능과 약속을 기억했을 때, 그들은 그들에게 말한 자들을 돌로 치려고 하는 순간에 여호와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민 14:10). 거룩한 가나안은 낙토이다. 약속은 우리가 거기에 들어간다고 했다. 그러나 약속을 멸시하면서 거절하는 자들이 많다. 오히려 이 세상의 부요함과 쾌락을 더 좋아하며 거룩한 가나안을 얻기 위한 고통과 위험을 싫어한다. 이것도 역시 하나님을 노하게 하는 것임으로 "그가 손을 드사" 위협적인 방법으로 "저희를 광야에 엎드리지게 하셨다." 아니! 맹세함으로, 그는 노하여 그의 안식에 그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맹세하였다(95:11; 민 14:28). 그리고 그는 저희 후손이 엎드러지며, 흩어질 것(26, 27절)이며, 열방에 흩어지게 하며, 폐적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모세는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도록 저희 후손을 위하여 자비를 구했다. 하나님의 은총을 경멸하며 특히 그 낙토를 멸시하는 자들은 그의 은총 상실하며 영원히 즐거운 땅에서 쫓겨날 것이다.

5.그들은 브올의 일에서 커다란 죄를 범했다. 그리고 이것은 그들이 가나안에 발을 내딛었을 때 새로운 세대가 지은 죄였다.

"그들은 바알브올과 연합하였다"(28절). 그리고 우상 숭배와 간음을, 육체적이며 영적인 매춘행위를 혼합하였다(민 25:1-3). 살아계신 하나님의 제단에 참여했던 자들이 이제는 "죽은 자(죽은 자의 모습 또는 죽은 자들이 추앙되고 신성시되었다. 모압의 우상임)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고" 저들의 죽은 친구들 대신에 악신들에게 제사했다. "이와같이 그들은 그 행위로 하나님을 격노케 하였다"(29절). 그리고 그를 멸시하고 그의 제도와 명령과 경고를 멸시하여 그를 격노케 하였다. 브올의 죄가 너무 커서 오랜 기간이 지난 후에도 "우리는 그 죄에서 정결함을 얻지 못하였다"(수 22:17)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그의 노를 이렇게 나타내신다.

(1) 그들 가운데 재앙을 보내심으로써, 순식간에 그 뻔뻔스러운 죄인들 중 2만 4천 명이나 죽게 하셨다.

(2) 비느하스를 일으켜 그의 권능을 통치자로 사용케 하심으로써, 죄인들을 처벌하며 죄의 만연을 억제하도록 했다. 그는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을 다했으며, 죄인의 두령이며 유행을 따르는 죄인이었던 시므리와 고스비에게 심판을 행했다. 그는 율법을 그들에게 적용하여 처벌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어서 "지양이 그쳤다"(30절). 이렇게 됨으로써 그 경우(민 25:4, 5)에 대한 공적인 심판의 다른 유사한 행위에 의해서 범죄가 국가적인 것이 되기를 그쳤으며 일반적인 반대 의사가 사라지게 되었다. 합당한 지도자가 하나님이 주신 의무를 수행했을 때, 하나님은 그의 손으로 재앙을 내리시는 일을 더 이상 계속하지 아니한다. 국가적인 정의는 국가의 심판을 막는다. 여기에서 비느하스는 유명하게 되고 영광의 특별한 표지가 그에게 나타났다. 왜냐하면 그가 행한 것이 "저에게 의로 정하셨으니, 대대로 무궁한"(31절)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 보상으로 제사장직이 그의 가계 한정되어 상속되게 되었다. "그는 제사를 드림으로써 속죄를 해야 되며, 용감하게 죄인들을 바침으로서 속죄를 가져왔다"(어떤이들은 그렇게 해석한다. 30절). 죄에 대항해서 열성적으로 되는 것은 성도들의 영광이다.

6.그들은 최후의 방랑 생활까지도 계속 불평했다. 40년째 되는 해에 다툼의 물가에서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다(32절). 이것은 민수기 20장 3-5절의 이야기를 말한다. 그리고 이 사태를 악화시키는 것은 "저희로 인하여 벌이 모세에게 미쳤다"는 사실이다. 비록 그가 땅에 속한 모든 사람 중 가장 겸손하였지만 당시에 그들의 불평이 너무 역정나고 분을 야기시키는 것이어서, 그들은 그를 격분케 하였다. 그는 이제 나이가 많아서 망령되이 방심하게 되었으며, "그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음이라"(33절). 그는 이제 이전의 경우와 같지 않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열을 내어 "너희 반역자들아 들으라, 우리는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가져오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이것은 모세의 약점이었으며, 우리의 훈계를 위해서 기록된 것이다. 즉 우리가 성이 났을 때는 우리의 입을 재갈로 지키는 것을 배우며(39:1-3), 너무 분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을 배울 수 있다. 영혼이 분개할 때는 많은 와 은총을 입은 자들도 망령되이 말하지 않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백성의 죄를 비난한 것이었다. "저희는 그 심령을 거역함을 인하여," 하나님 자신을 노하게 하였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분노는 물론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분노, 특히 온유하고 평온한 사람들에게 역정을 내게 하는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유로 저들의 잘못 지휘함을 따라서 모세와 아론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함으로써 저들의 죄에 대한 분노를 보여 주셨다.

(1) 하나님은 그의 가장 사랑하는 종들에게서라도 그렇게 참지 못하는 분냄에 대해서는 진노를 나타내셨다.

만일 그가 모세를 단 한 번의 망령된 말로 인하여 이렇게 혹독하게 대하셨다면, 뻔뻔하게 사악한 말을 마이 했던 그들은 어떤 벌을 받아야 할 것인가? "만일 이것이 푸른 나무에 행해진 것이라면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2) 하나님은 모세의 안내를 받는 축복을 그들에게서 빼앗고 그 당시에 그들이 가장 필요했던 모세의 통치를 박탈했다. 그리하여 그의 죽음은 모세 자신에 대한 벌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그들에 대한 벌이었다.

우리가 그들에게 불평하며 분노케 하여 그들의 영혼을 아프게 할 때 우리에게 축복이었던 이권을 하나님이 옮기는 것은 정당한 일이다.


●하나님의 긍휼(시편 106:34-48)

Ⅰ. 여기에서 설화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행한 결과로 결론을 맺고 있다.

그것은 광야에서 행한 부분이었으며, 거기에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내내 정의와 더불어 자비로써 대하신다.

1.그들은 하나님께 극도로 반역하였다. 그들을 가나안에 정착시키는 하나님의 기적과 자비는 그들을 애굽에서 건져낸 것과 가지로 깊고 지속적인 인상을 저희에게 주지 못했다. 왜냐하면 가나안에 막 정착했을 때까지도 그들은 부패하였으며, 하나님을 저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1) 그들의 배신(背信)의 단계를 보자.

[1] 그들은 하나님이 멸망시키라고 명하신 열방들을 남겨두었다(34절). 하나님이 그들에게 약속하신 좋은 땅에 들어갔을 때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근절하라고 명하신 사악한 거주민들에 대해서 동정을 가장하면서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너무 인자하심으로 어떤 경우에도 그보다 더 긍휼이 있는 인간을 두지 아니하셨다.

[2] 그들이 가나안의 열방들을 남겨 두었을 때 이런 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들이 그들과 어떤 위험스러운 관계도 맺지 않을 것을 스스로 서약하였다. 그러나 죄의 길은 사향길인 것이다. 태만은 범죄로 향하는 길을 만든다. 그들이 "이족들을 멸하기"를 소홀히 했을 때 우리가 듣는 그 다음 소식은 그들이 "열방과 섞여서" 있었다는 것이며 그들과 동맹을 맺고 친밀을 계약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들의 행위를 배우게 되었다"(35절). 부패한 것이 고쳐지거나 건전하게 되기 보다는 오히려 건전한 것이 더 쉽게 퇴폐케 된다.

[3] 그들은 저들과 섞여서 죄와는 상관없어 보이는 유흥과 오락을 배울 때에도, 결코 저희의 예배에는 가담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점차 그들은 그것도 역시 배우게 되었다(36절). 그들은 너희가 섬기는 것과 똑 같은 방법과 똑 같은 의식으로 "그 우상들을 섬겼다." 그리고 그들은 "저희에게 올무가 되었다." 그러한 죄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더욱 더 부채질하게 하였으며, 그들은 어떻게 자신들을 회복할 것인지를 알지 못했다.

[4] 그들은 우상적인 예배와 같은 것에서 저들과 연합하면서 그것은 자기들에게 아무런 해를 입히지 않았다고 생각했으며, 죽은 신들에게 자기들의 살아 있는 자녀의 희생을 야만적이고도 비인간적인 우상숭배의 방편으로 삼는 그것이 그런 죄는 짓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드디어 그렇게 되었다(37, 38절).

사탄은 노의 예배자들을 제압하고 피와 살육을 즐겼다. "저희는 그 자녀로써 사신에게 제사하였다." 악마에게, 저들의 우상에게 살인 그것도 가장 비열한 살인을 해서 바쳤다. 아무도 전율 없이는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무죄한 피를 흘렸고" 가장 무죄한 피를 흘렸다. 왜냐하면 그것은 유아(幼兒)의 피였다. 아니! 그것은 저희 "자녀의 피"였다. 불복종하는 자녀에게 작용하는 성령의 능력을 보고 그 악함을 보라! 우상 숭배와 미신의 시작은 제방에 물이 터지는 것과 같으며, 그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었기 때문이다"(롬 1:28)

(2) 그들의 죄는 부분적으로 저들 자신에게 벌이 되었다.

[1] 그들은 그로 인해 자기 나라를 손상시켰기 때문이다. "그 땅이 피에 더러웠도다"(38절). 저 낙토(樂土), 저 거룩한 땅은 그들에게 불유쾌한 것이 되었으며, 그 영광이 될 하나님은 은총과 임재의 표징을 받기에 부적당하게 되었다.

[2] 그들이 자기들 양심을 손상시켰기 때문이다(39절). "저희는 그 행위로 더러웠도다"(38절). 저 낙토(樂土), 저 거룩한 땅은 그들에게 불유쾌한 것이 되었으며, 그 영광이 될 하나님은 은총과 임재의 표징을 받기에 부적당하게 되었다.

2.하나님은 저들에게 그의 심판을 내리셨다. 그밖에 어떻게 기대될 수 있을 것인가? 왜냐하면 그의 이름은 질투하는 자요 그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1) 그는 그것으로 인하여 그들과 다투었다(40절).

그는 그들에게 화를 내셨다. 불을 내뿜는 "하나님의 진노를 그의 백성들에 대해서 타올랐다." 그는 그들에게서 그를 알지 못하는 이방 사람들보다 더욱 모욕적이며 배은망덕한 것을 보았다. 아니! 그는 그들 때문에 앓았다. "그는 자기 기업을 미워하셨다." 그것은 그가 기쁨을 취하고자 하신 것이었으나 그렇게 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변화는 그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있었다. 이것은 죄 중에서도 가장 악한 죄이며, 하나님께 구토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만일 그들이 문 밖에 있는 더러운 똥더미처럼 그에게 반역한다면, 하나님에게 가까이 가면 갈수록 그들은 더욱 구토의 대상이 된다.

(2) 그들의 적들은 그들을 쳤으며, 그들의 방어는 분쇄되고 곧 그들의 포로가 되었다(41,42절).

"그는 저희를 열방의 손에 붙이셨다." 여기에서 죄에 응답하는 심판이 어떠한가를 보라. 그들은 기꺼이 죄의 감염을 취했으므로 하나님은 정의롭게도 그들을 징계의 도구로 사용했다. 죄인들이 종종 그들이 고난당하게 하는 자들에 의해서 파멸되는 것을 본다. 유혹하는 자인 사탄은 괴롭히는 자가 될 것이다. 이방 사람들은 그들을 미워했다. 배신자는 하나님편에 있는 모든 사랑을 잃게 되고 사탄에게서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 그들을 미워하던 자들이 그들을 지배했을 때, 그들은 그들에게 예속되게 되었다. 그들이 저들을 탄압하고 혹독하게 지배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를 섬기는 것과 열국의 왕을 섬기는 것"(대하 12:8) 사이의 차이점을 알게 하셨다.

(3) 하나님이 그들을 여러 번 건지셨으나 저들은 죄를 계속 반복하였고(43절) 그래서 저희의 문제도 계속되었다.

이것은 최후의 심판의 날에 대해서 언급한 것이다. 그때에 하나님은 구원자를 일으키시며, 그들을 위해서 구원을 행하신다. 그러나 그들은 우상 숭배로 되돌아갔고 "저희의 꾀로 거역하며" 우상을 만듦으로써 탄압자에게서 구원 얻으려 했다. 그리하여 결국 그들은 "자기 죄악으로 인하여 낮아짐을 당하였다." 죄로 인하여 그 자신을 낮게 하며 회개에 의해서 겸해지지 않으려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 낮아지며 비천하게 된다.

(4) 드디어 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은총으로 보답하셨다(44-46절). 그들은 그들의 죄로 징계를 받았으나, 파멸되거나 던져지지 않았고, 단절되지도 않았다.

[1] 자비의 하나님이신 그는 저들의 애통함을 바라보셨다. "여호와께서 저희의 부르짖음을 들으실 때에 그 고통을 권고하시며" 저희의 원망을 감찰하시고 부드러운 긍휼로 "저희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출 3:7) 저희의 반역을 기억하지 아니하셨다. 그는 그들을 멸하리라고 말씀하셨고, 또 말씀하실 이유를 가지고 있지만, "그 많은 인자하심을 따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말씀을 바꾸셨다. 비록 하나님은 자기 마음을 바꿀 만큼 "후회하는 자"가 아니지만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자비하신 하나님이심으로 자기 길을 변경시키셨다.

[2] 진리의 하나님이신 그는 "저희를 위하여 그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가 하신 모든 말씀을 이루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악하였지만, 그는 그들을 멸하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그는 그 자신의 약속을 파기하시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3] 권능의 하나님이신 그는 그 손에 모든 마음을 지니시고 아무리 그가 기뻐하는 길일지라도 돌이키신다. "그는 저희로 사로잡은 모든 자에게서 긍휼히 여김을 받게 하셨다." 그리고 심지어는 그들을 미워하며 잔인하게 지배했던 자들에게서도 그렇게 하셨다. 그는 그들의 적의 분노의 나머지를 억제했으며 그것이 전혀 저들을 사르지 못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돌 같은 마음에 자비심을 넣어 주며, 그들을 긍휼히 여기게 하였다. 그것은 인간의 기술로 인해 최고의 웅변력으로 행해진 것 이상의 것이었다. 하나님은 사자를 양으로 바꾸실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의 편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때, 그의 적들도 그를 긍휼히 여기며 그와 화평케 된다."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실 때 인간들도 긍휼히 여긴다. 우리와 평화로우신 하나님은 모든 것을 평화롭게 하신다.

Ⅱ. 이 시편은 기도와 찬양으로 결론짓고 있다."

1.그의 백성을 완전하게 해달라는 기도이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의 포로된 상태에서 구출해 내셨을 때도 여전히 기도해야 할 이유가 있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돌리소서"(126:1, 4).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사 열방 중에서 모으소서"(47절). 우리는 사사시대에(나오미와 같이, 룻 1:1) 외국으로 끌려간 많은 자들이 다윗의 통치 초기에 돌아오지 않고, 사울 시대에 좌절된 것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흩어진 이스라엘 사람들을 모으기를 간구해야 할 최적의 시기인 것이다. "열방 중에서 모으시고, 우리로 주의 성호를 감사하게 하소서." 그들은 여호와의 궁정에서 감사해야 할 원인과 감사드려야 할 마음을 가질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 그리하여 "주의 영예를 찬양하게" 되었으며, "이방에서 여호와의 노래를 부르는 일"을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계속하게 되었다.

2.구원의 시작과 진행을 위한 찬양에 있다(48절).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양할지어다." 그는 영원까지 찬양받으시는 하나님이여 영원까지 그렇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그의 예배자에 의해서 그를 찬양하게 하라. 제사장들로 하여금 이것을 말하게 하고 모든 백성에게 이러한 모든 기도와 찬양과 고백에서 즐거운 화답의 표시로 "아멘, 할렐루야"를 말하게 하라. 이러한 예배 의식과 규정에 따라 우리는 이 시편이(적어도 그 마감절) 모든 백성으로 하여금 "아멘"하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할렐루야"로 찬양하게 하는 것을 발견한다. 이러한 두 가지 포괄적인 단어는 신앙적인 집회에서 사용하는 것이 매우 적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