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신명기 1, 시편 81, 82, 이사야 29, 요한삼서 1
묵상구절
[1-3절: 구속받은 자들을 향한 여호와 찬양 욕구]
107: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07:2 여호와의 속량을 받은 자들은 이같이 말할지어다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그들을 속량하사
107:3 동서 남북 각 지방에서부터 모으셨도다
[4-9절: 사막에서 방황하는 자들을 건지시는 주의 인자와 기사 제시 및 찬양 촉구]
107:4 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107:5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
107:6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107:7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107:8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107:9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10-16절: 당신의 말씀을 거역한 자들을 사하시는 주의 인자와 기사 제시 및 찬양 촉구]
107:10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107:11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107:12 그러므로 그가 고통을 주어 그들의 마음을 겸손하게 하셨으니 그들이 엎드러져도 돕는 자가 없었도다
107:13 이에 그들이 그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107:14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들의 얽어 맨 줄을 끊으셨도다
107:15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107:16 그가 놋문을 깨뜨리시며 쇠빗장을 꺾으셨음이로다
[17-22절: 미련한 자의 범죄와 죄악을 사하시는 주의 인자와 기사 제시 및 찬양 촉구]
107:17 미련한 자들은 그들의 죄악의 길을 따르고 그들의 악을 범하기 때문에 고난을 받아
107:18 그들은 그들의 모든 음식물을 싫어하게 되어 사망의 문에 이르렀도다
107:19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되
107:20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107:21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107:22 감사제를 드리며 노래하여 그가 행하신 일을 선포할지로다
[23-32절: 위험에 처하여 심령이 녹고 혼돈된 자들을 건지시는 주의 인자와 기사 제시 및 찬양 촉구]
107:23 배들을 바다에 띄우며 큰 물에서 일을 하는 자는
107:24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들과 그의 기이한 일들을 깊은 바다에서 보나니
107:25 여호와께서 명령하신즉 광풍이 일어나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도다
107:26 그들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깊은 곳으로 내려가나니 그 위험 때문에 그들의 영혼이 녹는도다
107:27 그들이 이리저리 구르며 취한 자 같이 비틀거리니 그들의 모든 지각이 혼돈 속에 빠지는도다
107:28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107:29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
107:30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107:31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107:32 백성의 모임에서 그를 높이며 장로들의 자리에서 그를 찬송할지로다
[33-43절: 천하와 인생을 마음대로 다스리시는 주의 인자와 기사에 대한 근본적 깨달음의 촉구]
107:33 여호와께서는 강이 변하여 광야가 되게 하시며 샘이 변하여 마른 땅이 되게 하시며
107:34 그 주민의 악으로 말미암아 옥토가 변하여 염전이 되게 하시며
107:35 또 광야가 변하여 못이 되게 하시며 마른 땅이 변하여 샘물이 되게 하시고
107:36 주린 자들로 말미암아 거기에 살게 하사 그들이 거주할 성읍을 준비하게 하시고
107:37 밭에 파종하며 포도원을 재배하여 풍성한 소출을 거두게 하시며
107:38 또 복을 주사 그들이 크게 번성하게 하시고 그의 가축이 감소하지 아니하게 하실지라도
107:39 다시 압박과 재난과 우환을 통하여 그들의 수를 줄이시며 낮추시는도다
107:40 여호와께서 고관들에게는 능욕을 쏟아 부으시고 길 없는 황야에서 유리하게 하시나
107:41 궁핍한 자는 그의 고통으로부터 건져 주시고 그의 가족을 양 떼 같이 지켜 주시나니
107:42 정직한 자는 보고 기뻐하며 모든 사악한 자는 자기 입을 봉하리로다
107:43 지혜 있는 자들은 이러한 일들을 지켜 보고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깨달으리로다
매튜헨리/옥스퍼드
- 건지시고, 사하시고, 다스리시는 주의 인자와 기사 열거 및 찬양 촉구 -
(저자: 미상, 분류: 감사 예배시)
서론
💡 본시는 시편 전체 5권 중 제5권(107-150편)의 첫번째 시이다.
제5권은 시편 전체 5권 가운데 가장 많은 수인 44편의 시를 수록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시편 전체에서 29편인 감사 예배시 가운데 18편을 수록하고 있다는 특징도 가지고 있다. 이는 시편 제1권(1-41편)과 제2권(42-72권)에 비란시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과 대조를 이룬다. 이는 시편 전체를 마감하면서 성도의 삶이 감사와 찬양을 수반한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삶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실은 제5권에 ‘엘로힘'이란 신명이 7회 등장하는 반면 ‘여호와'란 신명 이 263희 등장하는 데서도 드러난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택하시고 그들과 언약을 맺으시며 그 언약을 성실하게 지키시는 분임을 부각시킬 때 주로 사용되는 신명인 ‘여호와'가 압도적으로 많이 등장한다는 사실은 이러한 하나님의 면모에 대하여 감사하고 찬양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 제5권의 전체적 분위기와 조화된다.
이러한 제5권의 첫번째 시인 본시도 ‘여호와' 란 신명을 사용하여 건지시고 사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향한 찬양을 촉구하는 내용인 바, 이는 제5권 전체의 서시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한편 본시는 시편 전체 150편 중에 표제가 없는 34편의 시 가운데 하나이다. 따라서 본시의 저자 및 저작 배경이나 연주 방식에 대하여 알 수 없다. 모두 44편의 시로 구성된 제5권 가운데 무려 28편이 저자 미상의 시인데, 이처럼 저자 미상인 시가 많다는 점도 제5권의 특징 중 하나이다.
그런데 본시가 저자 미상의 시이지만 저작 배경에 대하여는 어느 정도 규명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본시가 그 내용에 있어서 제 105, 106편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본다.
배경
제105편은 족장 시대부터 가나안 정복 시대까지 이스라엘의 초기 역사를 소재로 하며, 제106편은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나서 홍해를 건너 광야를 지나 가나안에 들어간 후에 다시 바벨론의 포로가 될 때까지의 역사를 소재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역사적 배경을 토대로 서술된 제 105,106편에 이어지는 본시는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포로가 되어 살다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후에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자비와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노래하는 역사시로서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추정은 본시 가운데 바벨론 포로기 이후틀 암시하는 내용들이 많이 나온다는 사실에서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예를 들어 포로 귀환을 암시하는 2,3절과 더불어 10절의 ‘흑암과 사망의 그늘' 이라는 표현은 포로기의 이스라엘을 연상시 킨다. 또한 16절의 ‘놋문을 깨뜨리시며'라는 표현은 ‘놋문'을 바벨론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고 여호와께서 바벨론을 망하게 하심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36절의 경우 바벨론에서 돌아와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도하심으로 정착하여 지내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처럼 본시는 곳곳에 포로기 이후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내용이 많다는 점에서 바벨론 포로에서의 귀환이라는 역사적 체험을 배경으로 택한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기사를 열거하고 찬양을 촉구하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본시에는 동일한 내용이 자주 반복되는 특징도 있다.
즉 6, 13, 19, 28절의 내용이 반복되며 8, 15, 21, 31절 내용이 반복된다. 이런 점에서 본시는 서로 주고받는 형식의 노래인 교창이었던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러한 교창 형식은 본절에서부터 암시된다.
본절은 고대 이스라엘에서 예배 예식 때 낭송하던 대표적인 송영이다. 아울러 이와 관련해 렘 33:11에서는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하는 소리"와 “여호와의 집에 감사제를 드러는 자들의 소리"를 병행하여 놓았다.
그리고 그 소리를 포로에서 돌아온 무리들이 외칠 것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볼 때 본절은 예레미야서에 기록된 예언이 성취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편 본절은 감사제에 드리는 송영구로 볼 수도 있다.
이러한 본시에는 이 구절과 동일하지는 않지만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라는 표현이 8, 15, 21,31절에서 동일한 표현으로 계속 반복됨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본시 전체의 후렴구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절인 43절에서도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깨달으리로다"라는 유사한 내용이 반복되면서 본시가 마무리 된다.
이처럼 동일하거나 유사한 내용의 반복은 본시의 주제를 형성한다.
즉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이 본시의 주요 주제이며 지속적으로 강조되는 바임을 알 수 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시편 107:1-9)
Ⅰ. 여기에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는 일반적인 부르심이 있다(1절).
이 시편을 노래하며 간구하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여호와께 감사하도록"하라. 그리고 찬양할 특별한 소재를 갖지 못한 사람들도 하나님의 일반적인 선하심으로부터 감사거리를 충만히 갖게 될 것이다. 본래 "그는 선하시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며," 결코 사라지지 아니한다는 사실에서이다.
Ⅱ. 이에 대하여 "여호와께 구속함을 받은 자"는 특별한 부르심을 받는데, 이것은 위대한 구속자에 심을 갖는 자들에게 영적으로 잘 적용될 것이다.
따라서 죄와 지옥으로부터 구원받은 자들에게 더욱 특별한 부르심이 주어진다. 모든 사람 중에서도 그들은 하나님이 선하시며 그의 자비가 영원하다는 것을 말해야 할 가장 큰 이유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들이며, 그리스도는 그들을 "사방에서 하나로 모으시기 위하여" 돌아가셨다(요 11:52; 마 24:31).
그러나 여기에서는 현세적인 구원을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을 때"(6절) 그 구원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누가 고난을 당하고 있는가? 기도하라." 누가 기도를 하고 있는가? 하나님은 반드시 들으시고 도우실 것이다. 고난이 극도에 달했을 때, 그 때는 부르짖을 때인 것이다. 기도를 읊조리는 자들 앞에 부르짖음이 크게 임할 그때는 구원할 하나님의 때인 것이다. 산에서 그를 보게 될 것이다.
1.그들은 적국에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구출을 수행하셨다. 그는 "권능이나 힘"(슥 4:6)에 의해서가 아니라 또한 "값이나 갚음"(사 45:13)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영혼에서 활동하는 "하나님의 영혼"에 의해서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저희를 구속하셨다"(2절)
2.그들이 집 없는 사람처럼 흩어졌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구름끼고 어두운 날에 흩어져 살던 그 모든 나라들로부터 그들을 모으셨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시 통합되었다(3절)(신 30:4; 겔 3:12 참조).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누구인지를 그리고 그들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를 아신다.
3.그들은 당황하였으며 여행할 길도 안식할 거주지도 없었다(4절).
"그들이 대적의 손에서 구속함을 받고 각 지방에서 모아졌을 때," 곧 메마르고 불모지인 사막을 거쳐 본국으로 돌아갈 때에 그들은 멸망당할 위험 속에 있었다. "저희가 광양 사막 길에서 방황했을 때" 거기에는 아무도 걷지 않았던 길 뿐이었고, 동료도 없었으며, "고독한 길"뿐이었다. 거기서는 자리잡고 휴양할 거주지도 편리함도 없었고 숙박할 곳과 거주할 성도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시고," 초막으로 인도하시고, 집으로 향하게 하셨다. 그리하여 "그들은 거할 성에 이르게 되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빈곤한 여행자, 특히 종종 방황하게 된다고 볼 수 있는 아라비아 사막에 처한 자들을 언급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근심 중에 많은 사람들이 놀랍게도 구제되고, 조난당한 자들이 거의 없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는 우리가 여행할 때에 우리의 도상에서 나가고 들어오라는 지시를 하는 하나님의 선한 섭리의 손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것은 (몇몇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와 같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헤매던 이스라엘의 자녀들의 방황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호위하신다"고 기록되었지만(신 32:10), 여기에서는 "그가 바른 길로 인도하신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여건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는 우리가 광야에 있는 것과 같으며, 아무런 "거할 성"도 갖지 못하며, 단지 낯선 자와 순례자같이 장막에서 거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롭고 선하신 섭리의 인도 아래 있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를 하나님의 섭리에 맡긴다면 우리는 "샘이 있는 도성까지 올바른 길로 인도될 것이다."
4.그들은 굶주림 때문에 멸망당하게 되었다(5절).
심지어는 "그 영혼이 속에서 피곤하였다." 그들은 여행의 피로로 기진맥진하게 되었으며, 원기의 결핍으로 쓰러지게 되었다. 계속적인 풍요를 누리고 매일 풍부한 것을 먹는 자들은 "주리고 목마르나" 보급이 끊어진 상태가 얼마나 비참한지를 모른다. 이것이 사막에서의 이스라엘이 때때로 당한 경우였으며, 또 아마도 다른 불쌍한 여행자들의 경우이기도 하겠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는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기 위한"(9절) 길을 찾으신다. 이스라엘의 결핍은 때맞게 충족되었으며, 멸망 직전에 있던 사람들이 놀랍게도 구출되었다.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이 날까지 오랫동안 우리의 생계를 돌보시며 음식으로 편하게 먹이시며, 영혼을 위하여 양식을 제공하신다. 그리고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신다." "의"의 하나님과 살아계신 하나님과 교제하기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은총과 영광으로 풍부하여 "그의 집의 선하신 것으로 넘치게 될 것이다."
자비를 받는 이 모든 자들은 감사를 돌리라는 부르심을 받는다(8절). "오 사람들아(그것은 특히 하나님이 은혜롭게 살리신 자들을 의미한다) 특히 그의 선하심을 인하여 여호와를 찬양하라." 그리고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라!"
(1) 하나님의 자비의 업적은 놀라운 업적이며, 약한 자를 고려하시는 놀라운 권능의 업적이며 하잘 것 없는 자들을 관심하시는 놀라운 은총의 업적이다. 그는 권능과 은총을 통하여 자비를 나타내신다.
(2) 하나님께로 자비를 받는 자들은 그에게 찬양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 기대로서 주어진다.
(3)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에 대해서는 물론 모든 인생들의 자녀에 대해서, 우리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까지도 미치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정해야 한다.
●갇힌 자에 대한 하나님의 선하심(시편 107:10-16)
우리는 갇힌 자와 포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주목하게 된다.
1.고난의 서술을 보자.
갇힌 자는 "흑암에 앉아 있다"(10절)고 했다.
고독하고 쓸쓸한 상태에 있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 어두운 감옥, 밀폐된 감옥에 앉았다고 했다. 그들은 "사망의 그늘에 앉아 있다." 그것은 커다란 곤고와 난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커다란 위험 중에 있는 것도 의미한다. 갇힌 자는 여러 번 죽기로 예정된다. 그들은 나오기를 단념하고 앉아 있으나, 최선을 다하려고 결심하고 있다. 그들은 요셉과 같이 "곤고와 쇠사슬에 매여 있다." 이와같이 감금은 괴로운 불행의 사건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유를 인해서 감사해야 한다.
2.이러한 고난의 원인을 보자.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기 때문이다"(11절).
고의적 죄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반역이다. 그것은 그의 진리를 반박하는 것이며 그의 법을 거스르는 것이다. "그들은 지존자의 뜻을 멸시하였다." 그들은 그 뜻을 필요로 하지 않았으며, 더 열심히 지키려 하지도 않았다. 그 뜻을 묻지 않는 자들은 도움을 받을수 없다. 양심의 훈계와 그들의 친구의 정당한 책망을 무시하며 예언을 경멸하는 자들은 결국 지존자의 뜻을 비난한다. 이로 인해서 그들은 난에 빠지며, 반역으로부터 징벌받아 새롭게 되는 것이다.
3.이러한 고난의 목표를 보자.
그것은 "저희 마음을 낮추는 것"(12절)이며 그들을 죄로 인해 겸손케 하며, 그들의 눈을 낮게 하며, 모든 높고, 교만하고, 높이 치솟은 생각을 버리게 하려는 것이다. 고난당하게 하는 섭리들은 겸손케 하는 섭리로써 이해되어야 한다. 우리의 심령이 교만하고 견고하다면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그의 은택을 잃을 뿐만 아니라 그와 반대로 걷게 된다. 스스로 높아진 자가 낮아지게 되면 그들을 도울 자는 아무도 없는가?
이것은 죄를 고백할 영혼에로 인도되며 그 심판을 받아들이며 겸손하게 자비와 은총을 구하게 되는 것이다.
4.이러한 고난의 상태에서의 의무를 보자.
그것은 기도하는 것이다. 비록 이전에는 그들이 여호와를 소홀히 했지만 "그 근심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다"(13절) 갇힌 자는 기도할 시간을 갖는다. 그들이 자유했을 때에도 시간을 갖지 못했다. 비록 전에는 그들이 그가 없이도 충분히 잘 지낼 수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그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이 고통 중에 있을 때 감정은 인간으로 하여 부르짖게 한다. 그러나 은총은 그들을 여호와께 부르짖도록 지시하며, 오직 그만이 그 곤고를 제어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
5.고난으로부터의 해방을 보자.
저희가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셨다"(13절). "그는 흑암에서 빛으로 인도해 내셨으며," 빛을 받아들이시며 행복하고 즐겁게 "그들을 사망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위로를 주셨다. 그리고 저희의 자유가 그들에게 사망으로부터 생명으로 옮겨지게 하였다914절). 그들이 차꼬에 채워지지 않았던가? "그는 그 얽은 줄을 끊으셨다.' 그들이 견고한 성에 투옥되지 않았던가? "그는 놋문을 깨뜨리시며" 성문을 견고하게 했던 "쇠 빗장을 꺾으셨다." 그는 밀지 않으시고 "꺾어 내셨다." 하나님이 구원을 행하려 하실 때는 거기에 놓여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이라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될 것이다. 놋문과 쇠 빗장도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가를 수 없으며(그는 감옥에서도 요셉과 함께 계셨다), 그들을 석방하기로 정한 때가 오면 더 이상 가두어 둘 수 없게 된다.
6.얽은 줄을 풀으신 하나님이 요청하는 응답을 보자.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그를 찬양할지로다." 그리고 그의 선하심을 경험하고 나눌 때마다 그 선하심을 인하여 그를 송축하며 땅은 그것으로 충만하며 "세상과 거기에 거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그를 찬송할지로다.
●고난을 당하는 자에 대한 인자(시편 107:17-22)
시편 기자가 이 대목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육체적인 병이 이 생의 불행한 재난 중의 하나이지만, 그것은 회복됨으로써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경험케 하는 하나의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 같은 사실을 관찰할 수 있다.
Ⅰ. 우리는 우리의 죄악의 연고로 병에 걸리게 되며, 그 때에는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는 것이다(17-19절).
1.병의 원인이 되는 것은 영혼의 죄이다.
사실상 질병은 우리 자신이 초래하는 것이다. "미련한 자는 저희 범죄와 죄악의 연고로 곤난을 당한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그들이 범한 죄를 그치며 죄에 대한 그들의 악한 경향을 치유받는다. 만일 우리가 죄를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아무런 병도 모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의 죄와 우리의 마음의 부정은 병을 불가피하게 한다. 죄인들은 미련한 자들이다. 그들은 스스로 잘못했으며 모두 다 그들의 관심 즉 그들의 영적인 관심뿐만 아니라 세속적인 심에 대해서 죄악을 행했다. 그들은 부절제함으로 그들의 건강을 손상시키며, 정욕에 탐닉함으로써 생명을 위험스럽게 한다. 이러한 그들의 길은 어리석음이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마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어리석음을 책망할 징계의 채찍이 필요하다.
2.육체의 약함은 병의 결과이다.
사람들이 병에 걸렸을 때는 "저희 혼이 각종 식물을 싫어한다"(18절). 식욕도 없고 음식을 소화할 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메스꺼워하게 된다. 저희의 위가 식물을 싫어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저희의 죄가 곧 저들에게 내린 벌이 된 것을 엿볼 수 있다. 썩어질 고기를 가장 사랑했던 자들도 병들게 되면 그들이 사랑하던 맛있는 음식들도 싫어하게 된다. 그들은 이제 많은 것을 취했으나 아무 것도 취할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은 과식과 술취함으로 마음을 포만상태에 이르게 했던 결과이다. 식욕이 떨어지게 되면 생명도 곧 끊어지게 된다. "저희가 사망의 문에 가깝도다." 그들은 자타가 볼 때 공히 파멸로 향하게 되는 죽음에 직면해 있게 된다.
3.그 때가 기도를 위한 적절한 시간이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었다"(19절). 병이 걸렸는가? 기도하게 하라. 또 그를 위해서 기도하라. 기도는 모든 고통을 위한 묘약이다.
Ⅱ. 우리가 병에서 회복되는 것은 하나님의 권능과 자비에 의해서 되는 것이다. 그 때에는 감사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인 것이다(욥 33:18, 28 과 비교해 보라).
1.병든 자들이 하나님을 부르면 그는 평화로써 그들에게 응답하신다. 그들은 그에게 부르짖었고 그는 "저희를 그 고통에서 구원하셨다"(19절). 그는 저희의 슬픔을 옮기시며 두려움을 막아 주신다.
(1) 그는 그것을 쉽게 행하신다.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셨다"(20절). 이것은 아마도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말씀을 하심으로써 행하신 기적적인 치유에 적용될 것이다. "깨끗게 되라. 완전케 되라"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이뤄졌다. 그것은 또한 은혜의 성령이 갱생에서 작용하는 영적인 치유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그는 그의 말씀을 보내시고 영들을 고치시고 그들을 믿게 하고 개종하게 하고 성화시키신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말씀에 의해서 하신다. 병으로부터 회복이라는 일반적 섭리에서 하나님은 말씀만 하시지만, 그대로 이뤄진다.
(2) 하나님은 그것을 실제로 행하신다. "저가 저희를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 그들은 멸망하거나 그렇게 될까 두려워하는 공포를 당하지 않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죽이고 다시 살게 하시는 데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으시며, 무덤으로 내려가게도 하시고 다시들어 올리시기도 하신다. 그는 인간을 거의 "파멸"로 몰아 넣으신 후에도 "돌아오라"고 말씀하신다.
2.병든 자들은 회복되고 나면 하나님께 찬양의 응답을 돌려야 한다(21,22절).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 그리고 특히 하나님께서 새로운 삶을 부여해 준 자들은 그 생명도 예배하는 데에 바쳐야 한다. 제단에 감사의 예물을 가져 올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마음을 가져와서, "감사제를 드릴지로다." 감사제가 가장 좋은 감사의 제단이며, 암소나 살찐 소보다 여호와를 기쁘게 할 것이다. 그의 영광을 위하여, 또 다른 사람들의 격려를 위하여 "노래하여 그 행사를 선포할지로다." "생명 있는 모든 자는 그를 찬양할지어다."
●선원들에 대한 인자(시편 107:23-32)
시편 기자는 여기에서 해상의 위험들로부터 구원받은 자들에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요청하고 있다. 비록 이스라엘 사람들은 상인들이 별로 없지만, 그들의 이웃인 두로와 시돈 사람들은 상인들로서 많은 활동을 했다. 아마도 이 부분의 시편은 그들을 위해서 특별히 할당된 것 같다.
Ⅰ. 하나님의 크신 권능은 바다에서도 언제나 많이 나타난다(23-24절).
그 권능은 "큰 물에서 영업하는 자"인 선원들과 상인들, 어부들과 승객들에게, 즉 "선척을 바다에 띄우는 자들에게" 나타난다. 그리고 확실히 아무도 위험을 당하지 않을 것이며 영업하는 자들(솔로몬의 즐거운 일들 가운데는 배에 관한 기록을 찾을 수 없음이 사실이다)과 합법적인 영업을 믿음 가운데서 계속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게 될 것이다. "이들은 여호와의 행사와 그 기사를 바다에서 본다." 그것은 더욱 놀라운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그 대부분 사람들이 땅에서 났고 땅에서 자라게 되었기 때문에 바다를 지나는 것이 그들에게는 새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깊음 그 자체가 하나의 기적이며 그 광대함과 염분이 있는 것과 조수의 간만도 그러하다. 바다 속에 살고 있는 피조물의 무진장한 다양성은 실로 놀랍다. 바다에 나아가 자들은 그들이 거기에서 관찰하는 모든 기사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무한한 완전성을 심사숙고하고 찬양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바다도 그의 것이며, 그가 만드셨고 관찰하시기 때문이다.
Ⅱ. 그것은 특히 육지에서 보다 더 무서운 바다에서의 광풍 속에서 나타난다.
1.여기에서 바다에서의 폭풍우가 얼마나 위험하며 무서운 것인가를 관찰해 보자.
하나님이 "그 말씀을 따르는 광풍"(148:8)을 "명하신즉 광풍이 일어나게 되었다." "바로 그 때에" 기사가 깊음 가운데 나타나는 것이다. 그는 왕이 명령으로 군대를 일으키는 것같이 바람을 일으키신다. 사탄은 "하늘의 권세의 왕"인 것처럼 가장한다. 그러나 사탄은 그런 체하는 자이다. 하늘의 권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달려 있는 것이지 사탄에게 속한 것이 아니다. 바람이 강풍이 될 때, 그것은 바다에서 "물결을 일으킨다"(25절). 그러면 배들은 파도의 끝에서 마치 정구공같이 올라간다. 그들은 마치 "하늘에 올라간 것"처럼 보이며, 또한 다시 "깊은 곳에 내려간 것처럼"(26절) 아래로 떨어진다. 그것을 전혀 보지 못한 문외한은 배가 강풍에 견뎌내며 그 강풍을 이겨 내리라고는 생각지 못할 것이며, 바다에 배가 다니게 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다음에 오는 바다 물결이 배를 삼키고 배는 다시 올라오지 못할 것이라고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물 위에서도 견뎌낼 수 있는 배를 만들도록 인간에게 분별력을 주신 하나님께서 그의 특별한 섭리로 그들을 보호하시며 그들은 그 결과를 찬양으로 응답한다. 이와 같이 배가 위험 중에 있을 때 바닷 사람의 "영혼이 그 위험을 인하여 녹는다." 강풍이 매우 높을 때는, 바다에 익숙한 자들일지라도 흔들리며 두려움을 감출 수 없게 되며, "이리저리 구르며" 올라갔다 내려오게 되는 것의 반복은 그들을 어지럽게 하며, 그들은 "비틀거리게 되며' 병들게 된다. 그것은 마치 "취한 자같이" 될 것이다. 모든 배의 승무원은 혼동에 빠지며 "지각이 혼돈하게 된다"(27절). 저희들의 보전을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전혀 알지 못하게 된다. 그들의 모든 지혜는 삼켜지게 되었으며, 그들은 절망하여 그들 자신을 포기하려고 한다(요 1:5등)
2.그러한 때가 기도하기에 얼마나 적합한 시기인가를 관찰해 보자.
바다에 나아가는 자들은 여기에 서술되어 있는 것과 같은 위험을 각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그 위험을 대비하여 준비할 수 있는 것은 기도에 의해서 하나님께 접근할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28절). 우리는 이러한 말을 기억한다. "기도하기를 배운 자만 바다에 나가라"고. 나는 이렇게 말한다. 바다에 나가려고 하는 자는 기도하기를 배우며, 기도에 익숙해질 것이라고, 그러면 그들은 그들이 위험 중에 있을 때 은혜의 보좌에 대해 더욱 큰 담대함을 가지고 나아가게 될 것이다. 이방 선원들까지도 광풍가운데 있을 때는 "각자 자기 신들에게 부르짖었다." 그러나 여호와 의지하는 자들은 어려운 때에 도움을 받을 것이며, 아무리 위험의 끝에 놓이더라도 믿음의 끝에 이르지는 않게 된다.
3.하나님께서도 바다에서 곤경에 처한 자들을 위하여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여 시시각각으로 나타나시는가를 보자. 그는 그들을 위험에서부터 "인도하여 내셨다."
(1) 바다는 고요하다. "그는 광풍을 평정히 하신다"(29절). 바람은 그치고, 부드럽고 고요한 바람 소리가 파도를 진정하게 하여 잠자케 하고, 바다의 표면은 다시 부드럽게 미소짖게 된다. 이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바람과 바다가 그에게 복종하는" 분이신 것이 입증된다.
(2) 바닷 사람들은 평온하게 되었다. "저희가 평온함을 인하여 기뻐하였다." 그 평함은 악의 공포로부터는 전혀 거리가 먼, 시끄러움으로부터의 평온함인 것이다. 광풍 이후의 잔잔함은 매우 바람직한 것이며, 감각적으로도 즐거운 일이다.
(3) 항해는 순풍을 맞아 성공적인 것이 되었다.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30절). 이와 같이 그는 저희가 항해에서 만나는 모든 광풍과 폭풍우를 통해서 안전하도록 그의 백성을 인도하여 내신다. 그리고 그들을 마침내 소원의 항구로 입항하게 하신다.
4.바다를 거쳐 안전한 길을 얻은 자들, 특히 바다에서 주목할 만한 위험을 당한 상태로부터 구출된 자들은 그것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하여 감사해야 한다.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골방에서, 가정 가운데서, 은밀하게 행하게 하라 그들로 하여금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그를 찬양하게 하라." 그들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대하여서도!(31절) 그들로 하여금 찬양을 공공연하게 행하도록 하라. "백성의 회에서 저를 높이며 장로들의 자리에서 저를 찬송할지로다"(32절). 그들로 하여금 거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그를 믿도록 격려하기 위해서 그들이 구원받은 사실의 기억을 바로 세우게 된다.
●하나님의 섭리의 경이로움(시편 107:33-43)
시편 기자는 고난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부여된 섭리의 구제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면서, 여기서는 섭리를 변혁하시는 영광을 그에게 돌리고 있다. 그리고 때때로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사에 놀라운 변화를 초래한다.
Ⅰ. 그는 이러한 변혁의 몇 가지 예를 보여 주고 있다.
1.풍족한 나라들이 폐하게 되며 폐한 나라들이 풍족하게 된다. 이 생의 많은 위안물은 우리가 살고 있는 토양에 달려 있다.
(1) 인간의 죄는 때때로 땅의 풍성한 것을 변하게 하며 쓸모 없는 것으로 화하게 한다(33, 34절). "강"으로 덮여져 있던 땅이 때로는 "광야가 되게 하며," 물의 충만한 원천이 되었던 것이 이제는 물줄기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마른 땅이"되며, 모래 땅으로 변하여, 가치 있는 것을 생산할 수 있는 견실함과 수분을 간직하지 못하게 된다. 많은 "옥토"가 바다로 변하며, "그 거민의 악을 인하여 옥토로 소금밭이 되게 하신다." 그것은 마치 소돔의 골짜기가 염해로 변하게 된 것과 같은 것이다. 만일 땅이 악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거민들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분명히 땅은 하나님께 열매를 가져 오지 않고 저희의 옥수수와 포도주로 바알 신을 섬기는 자들에 불모지로 변하게 된다.
(2) 하나님의 선하심은 때때로 땅의 폐를 고치시며 광야와 마른 땅을 "샘으로" 변하게 하신다(35절). 옥토로서는 온 땅의 영광이었던 가나안 땅도 이미 말한 것과 같이(신 29:23) 이 때에는 열매없고 소용없고 가치없는 땅이 된다고 말했다. 전에는 개간되지 못한 사막이었던 우리의 이 땅이 이제는 많은 좋은 것들로 가득차게 되었다. 더 풍부한 영광이 지체의 부족한 한 부분에 주어지게 되었다. 아메리카 대륙과 거기에 정착한 거류민들의 경지와 전에 유명했던 아시아와 유럽의 많은 나라들의 황폐를 비교한다면 이러한 사실들이 잘 이해될 것이다.
2.궁핍한 가정들이 올려지고 부요하게 되며, 반면에 번영의 가정들이 가난하게 되며 파멸을 이른다. 만일 우리가 세상을 폭 넓게 본다면
(1) 우리는 시작이 작았고 조상들이 비천하며 아무런 것도 만들지 못했던 자들의 진보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보게 된다(36-38절)."주린 자"들을 옥토에서 "거하게 하사," 거기에서 파종하며 정착지를 얻고 "거할 성을 예비한다." 그들과 그들의 후손을 위한 거처인 것이다. 섭리는 그들에 땅에 좋은 땅을 두며 그들은 거기에서 경작한다. 도성들은 융성하는 가정들에게 의해서 발생한다. 그러나 땅은 거주지로서 인간에게 도움을 준다. 그러므로 그들은"거할 성을 예비해야 한다." 편하게 거주하는 일도 땅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밭에 파종하며 포도원 재배해야 한다"(37절). 왜냐하면 왕도 땅의 도움으로 살아 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밭이 샘물로 적셔진다고 하더라도 씨를 뿌리지 않으면 "소산"을 취하지 못하며, 재배하지 않는다면 포도원을 갖지 못할 것이다. 인간의 노력이 하나님의 축복에 따라야 하며, 그렇다면 하나님의 축복은 인간의 노력에 주어질 것이다. 옥토의 소산은 인간의 근면을 필요로 한다. 대개의 경우 부지런한 손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말미암아 "크게 번성케 된다"(38절). 단 시간 내에 복을 주사, "저희로 크게 번성케 하시고, 그 가축이 감소치 않게 하신다." 땅과 모든 피조물이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창 1:22)은 태초에서와 같이 지금도 하나님의 축복에 의해서 나타난다.
우리는 땅의 번성에 대해서는 무로 가축의 번성에 대해서도 하나님에게 의존하게 된다. 가축은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는다면 여러방면으로 감소되고 인간은 그로 인해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2) 우리는 이와 같이 갑자기 번성했다가 갑자기 쇠퇴하여 무로 돌아가는 여러 경우를 보게 된다(39절).
반대되는 섭리로 말미암아 "저희로 감소하게 하여 비굴하게 하신다." 그리고 그들의 날은 처음과 같이 비굴하게 끝난다. 그리고 그들이 모아서 쌓아 올린 것을 흩어버리게 된다. 이 세상적인 부(富)는 불안정한 것이다. 부로 가득 채운 자들도 종종 자기들도 모르는 새에 부를 다시 싫게 된다. 그리하여 "거짓된 부자"라고 불리우며, "불의한 물질"이라고 불리워진다. 하나님은 여러 모로 인간을 가난하게 하실 수 있다. 그는 욥을 시험하여 그를 비천하게 하신 것과 같이 "압박과 곤란과 우환을 인하여도" 그렇게 행하실 수 있다.
3.세상에서 높고 위대한 자들이 능욕을 당하며, 비천하고 연약한 자들이 영광으로 나아가게 된다(40,41절).
(1) 우리는 방백들이 자리를 떠나게 되고 곤궁에 빠지는 것을 보아 왔다. 심지어 그는 우상화되었던 자들에게도 "능욕을 부으신다." 하나님은 자기 스스로 높아진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며, 저들은 그로 인해 당혹하게 될 것이다. 그는 "길 없는 황야에서" 유리케 하신다. 그는 그들이 자신들을 유지시키려는 생각과 그들의 능력을 좌절시키며 그들을 사납게 몰아 어찌할 바를 모르게 하며 취할 바도 알지 못한다. 우리는 이것을 전에 보았다(욥 12:24, 25).
(2) 낮은 자리에 있는 자들이 영광의 자리에 나아가게 된다(41절). "그는 궁핍한 자를 곤란에서 영광의 보좌에까지 높이 드신다"(삼상 2:8; 시 108:7, 8). 곤고한 자들과 무시당한 자들이 구원될 뿐만 아니라 그들의 곤고한 상태에서 벗어나 높은 자리에 이르며, 그들이 예속되어 섬겨던 자들에게 대해 지배권을 갖게 된다. 그들의 영광을 더하게 하는 것과 그들의 지위에서 그들을 강하게 하는 것은 그들의 자손들을 창대케 하는 것이다. "그는 그 가족을 양무리 같게 하시나니" 서로서로 창대케 되고, 유익하며, 사교적이며, 온유하고 평화롭게 된다. 그들에게 고기를 보내신 그는 그들에게 입을 보내셨다. "화살 통에 화살이 가득한 자는 복이 있다." 왜냐하면 그는 담대하게 "그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하기 때문이다"(127:5). 하나님은 가족들을 안주시키고 그들을 세우시는 데에서도 알려진다. 방백들을 부러워하고 가난한 자들을 멸시해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여러 방법의 변화로 양자의 조건을 바꾸실 수 있기 때문이다.
Ⅱ. 시편 기자는 이러한 진술을 좀 더 발전시킨다. 그 놀라운 표현이 이와 같이 사용되고 있다.
1.성도들의 위안을 위하여서이다.
그들은 이러한 섭리를 기쁨으로 여기고 있다(42절). 하나님의 속성을 영예롭게 하고 인간의 자녀에 대한 그의 지배권을 표현하면서 "정직한 자는 보고 기뻐하게 된다." 하나님이 어떻게 인간의 자녀를 지배하시는가를 보는 것은 인간의 자녀에 대해 커다란 위로가 된다. 도공(陶工)이 진흙을 가지고 만드는 것과 같이, 그들에 의해서 하나님은 자기의 목적을 이룬다. 불경건한 교만은 티끌과 같이 낮아지게 되며, "진실로 세상에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보는 것은 커다란 위로가 된다.
2.죄인들의 침묵을 위해서이다.
"모든 악은 자기 입을 봉하리로다." 그것은 무시노자의 어리석음과 하나님의 섭리를 부정하는 자들을 온전히 깨우치게 될 것이다. 실천적인 무신이 모든 죄의 밑바닥에 있는 것을 알게 되면, "결국 모든 죄의 입을 봉하게 한다." 죄인들은 자기들의 죄에 대해 어떻게 하나님이 형벌을 내리는가, 그리고 얼마나 공평히 대하시는가를 볼 때, 한 마디도 말할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의롭게 될 것이며, 그는 명백하시기 때문이다.
3.하나님의 선하심에 관한 모든 것을 충만케 하기 위해(43절)서이다.
"지혜 있는 자들은 이 일에 주의하고" 하나님의 섭리의 이러한 여러 가지의 실행을 주의하게 하고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깨달으리로다."
(1) 여기에 흠모할 만한 결말이 제시되어 있다. 즉 적절하게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깨달으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전적으로 확신하는 것과 그것을 실제적으로 체득하는 것, 그리고 거기에 따라 마땅하게 이끌리는 것은 우리에게 크게 유용한 것이 된다. 그렇게 되면 "그의 인자하심이 우리의 목전에 있게 된다"(26:3).
(2) 적절한 표현이 이 결말을 짓는 데에 서술되고 있다. 즉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합당한 관찰이다. 우리는 이 일들을 세우고 마음에 두며 마음 속에 간직해야 한다(눅 2:19).
(3) 여기에 참된 지혜의 보기로서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라는 추천이 있다. "지혜 있는 자들은" 이것에 의해서 그의 지혜를 입증하고, 그것을 증진하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주의 깊은 관찰은 선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데에 상당히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