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신명기 4, 시편 86, 87, 이사야 32, 요한계시록 2
묵상구절
109:1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내가 찬양하는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옵소서
109:2 그들이 악한 입과 거짓된 입을 열어 나를 치며 속이는 혀로 내게 말하며
109:3 또 미워하는 말로 나를 두르고 까닭 없이 나를 공격하였음이니이다
109:4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109:5 그들이 악으로 나의 선을 갚으며 미워함으로 나의 사랑을 갚았사오니
109:6 악인이 그를 다스리게 하시며 사탄이 그의 오른쪽에 서게 하소서
109:7 그가 심판을 받을 때에 죄인이 되어 나오게 하시며 그의 기도가 죄로 변하게 하시며
109:8 그의 연수를 짧게 하시며 그의 직분을 타인이 빼앗게 하시며
109:9 그의 자녀는 고아가 되고 그의 아내는 과부가 되며
109:10 그의 자녀들은 유리하며 구걸하고 그들의 황폐한 집을 떠나 빌어먹게 하소서
109:11 고리대금하는 자가 그의 소유를 다 빼앗게 하시며 그가 수고한 것을 낯선 사람이 탈취하게 하시며
109:12 그에게 인애를 베풀 자가 없게 하시며 그의 고아에게 은혜를 베풀 자도 없게 하시며
109:13 그의 자손이 끊어지게 하시며 후대에 그들의 이름이 지워지게 하소서
109:14 여호와는 그의 조상들의 죄악을 기억하시며 그의 어머니의 죄를 지워 버리지 마시고
109:15 그 죄악을 항상 여호와 앞에 있게 하사 그들의 기억을 땅에서 끊으소서
109:16 그가 인자를 베풀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와 마음이 상한 자를 핍박하여 죽이려 하였기 때문이니이다
109:17 그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더니 복이 그를 멀리 떠났으며
109:18 또 저주하기를 옷 입듯 하더니 저주가 물 같이 그의 몸 속으로 들어가며 기름 같이 그의 뼈 속으로 들어갔나이다
109:19 저주가 그에게는 입는 옷 같고 항상 띠는 띠와 같게 하소서
109:20 이는 나의 대적들이 곧 내 영혼을 대적하여 악담하는 자들이 여호와께 받는 보응이니이다
109:21 그러나 주 여호와여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를 선대하소서 주의 인자하심이 선하시오니 나를 건지소서
109:22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여 나의 중심이 상함이니이다
109:23 나는 석양 그림자 같이 지나가고 또 메뚜기 같이 불려 가오며
109:24 금식하므로 내 무릎이 흔들리고 내 육체는 수척하오며
109:25 나는 또 그들의 비방 거리라 그들이 나를 보면 머리를 흔드나이다
109:26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시며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구원하소서
109:27 이것이 주의 손이 하신 일인 줄을 그들이 알게 하소서 주 여호와께서 이를 행하셨나이다
109:28 그들은 내게 저주하여도 주는 내게 복을 주소서 그들은 일어날 때에 수치를 당할지라도 주의 종은 즐거워하리이다
109:29 나의 대적들이 욕을 옷 입듯 하게 하시며 자기 수치를 겉옷 같이 입게 하소서
109:30 내가 입으로 여호와께 크게 감사하며 많은 사람 중에서 찬송하리니
109:31 그가 궁핍한 자의 오른쪽에 서사 그의 영혼을 심판하려 하는 자들에게서 구원하실 것임이로다
매튜헨리
- 원수에게는 저주로, 나에게는 축복으로 보응하시기를 구하는 기도 -
(저자: 다윗, 분류: 저주시)
💡 본시는 제58, 109, 137편 등 시편 150편을 통틀어 단 세 편밖에 없는 저주시 중 하나입니다.
이러한 본시는 다윗의 시로 소개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을 배경으로 하여 지어졌는지는 명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저주시는 비탄시와 유사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주시와 비탄시는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구분이 됩니다.
- 비탄시의 경우
- 비탄시에도 악인과 원수에 대한 저주와 공의의 보응에 대한 간구가 나오지만 일반적으로 불의와 모순이 가득한 현실 속에서 의인이 악인들로부터 받는 고난에 대하여 탄식하고 슬픔을 토로하는 내용이 주조를 이룹니다.
- 이에 반하여 저주시의 경우에는
- 비탄시와 마찬가지로 모순된 현실에 대한 탄식이 나오지만 이에 대한 슬픔의 토로보다는 선과 악의 기준을 세우시고 이의 준행 여부에 따라 축복과 심판을 시행하시는 하나님의 절대 공의의 법칙에 근거하여 악을 행하는 자들의 하나님의 형벌이 내용이 주조를 이 죄를 지적하고 그에 따른 임하도록 그들을 저주하는 내용이 주조를 이룹니다.
1.이러한 저주시의 특성에 따라 본시에서는 다윗이 하나님에 의해 선택을 받고 기름부음을 받은 신본주의적 정통성을 지닌 왕으로서 그저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정권을 유지 혹은 탈취하려 했던 악인들의 행악과 배신을 통렬하게 고발함과 동시에 일련의 저주를 퍼붓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본 시가 다윗 자신의 사사로운 복수심에 토로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다윗이 자신을 배반 하고 괴롭힌 원수들을 저주 한 것은 사실이나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공의를 어겼기 때문입니다.
즉 다윗은 하나님의 공의가 이땅에 바로 실연 되기를 바라는 심정에서 원수들에게 저주가 임하기를 강구한 것입니다.
다윗의 기도의 정당성은
- 역사상 다윗의 원수들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으로 죽어간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본 시가 그 저술 배경과 어떤 식으로 연결 되는지는 확인 되지 않으나, 사울이 나 아이도벨과 시므이 등는 모두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였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 하였습니다.
2.뿐만 아니라 본시 8절은 신약시대에 사도들의 의해 예수를 배신한 가련 유다에게 적용 되었는데 이는 본시가 메시야 예언시로서의 가치까지 지니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3.또한 구약 선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하였을 때 구속사의 주역으로서 그들의 지위가 상실되고 그 지위가 영적 이스라엘인 신약의 성도에게 계승되었다는 점에서도 본시는 어느 특정 사람이나 시대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전시대에 적용되는 소중한 진리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적대자들에 대한 호소(시편 109:1-5)
선한 자들은 그 누가 대적해 오는 하나님이 그들 편이라는 사실 지극히 큰 위로가 된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그분에게 자신을 맡길 수 있을 것이다. 다윗도 여기에서 그같이 서술하고 있다.
Ⅰ. 그는 하나님의 심판에 맡긴다(1절).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옵소서, 나의 판단을 주 앞에서 나오게 하옵소서(17:2). 주께 간구한 호소에 대해서 심판을 지체하지 마옵소서." 하나님은 다윗의 적들이 다윗에 대해 행한 것을 보시면서도, 마치 그것을 묵인하며 침묵하시는 것으로 보였다. 다윗이 하나님께 드린 서두는 주목할 만하다. "나의 찬송의 하나님이여! 내가 영광을 돌리는 하나님, 나 자신의 어떤 지혜나 힘으로서가 아니라 나의 찬송의 모든 것이 되는 하나님, 내가 찬송했고 미래에도 찬양할 것이며 영원히 찬송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이시여" 그는 전에 하나님을 "인자하신 하나님"(59:10)이라고 불렀으나, 여기에는 그를 "나의 찬송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의 자비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우리의 찬송의 하나님"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이 그에 대하여 존재하며 그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
Ⅱ. 다윗은 그의 적들을 호소한다. 동시에 의로우신 하나님이 그들을 치기 위해 나타나시기에 합당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1.그들은 매우 짓고 악의에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악한" 자들이었으며 불의를 행하기를 기뻐한다(2절).
그들의 말은 "미워하는 말"(3절)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선한 사람에게 피할 수 없는 증오를 받게 된다. 그들은 그들의 입을 나를 삼키려고 벌렸으며, 가능한 한 나를 제하려고 "공격하였다."
2.그들은 유명한 거짓말쟁이들이다.
거짓말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증오하시는 일곱 가지 일 중에 두 번째 것이다. "그들은 말과 주장하는 일에서 속였으며, 동시에 내가 없는 곳에서 나에 대해 거짓된 혀로 말한다. 그들은 아첨과 모략하는 일에서 똑같이 거짓된 자들이다.
3.그들은 그들의 모의에 술수를 쓰며 끊임없이 애쓴다.
"그들은 사방에서 나를 부르고 내게 행하는 것만 보도록 한다."
4.그들은 불의했다. 그에 대한 그들의 고소와 그에 대한 진술은 모두 근거없는 말들이었다.
"그들은 무고히 나를 공격하였다. 나는 결코 그들을 성나게 한 일이 없다." 심지어는 최악의 경우일지라도 절대로 그런 일은 없었다.
5.그들은 무척 은혜를 모르는 자들이며, "악으로 그의 선을 갚았다"(5절).
그는 그들에게 많은 친절을 베풀었으며 모든 경우에 그들에게 사랑으로 갚았지만, 그는 자기에 대한 그들의 악의를 배제할 수 없었다. 오히려 역으로, 그들은 그를 분개시킬 수 없었기 때문에 더욱 격분했다. "나는 사랑하나 저희는 도리어 나를 대적한다"(4절). 그가 그들을 은혜롭게 참고 대하면 대할수록 그들은 더욱 더 그를 미워했다. 우리는 어떤 자가 그렇게 사악하게 될 수 있는지를 이상하게 여기게 된다. 그렇지만 그러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떤 자가 우리에게 사악한 일을 행하더라도 이상하게 여겨서는 아니 된다.
Ⅱ. 그는 그의 의무를 지키기를 결심하고 그 위로를 취한다. "그러나 나는 기도할 뿐이다"(4절).
"나는 기도한다"(원문에는 후자가 더 옳다). "나는 기도를 위해 있으며, 나는 기도의 사람이다. 나는 기도를 사랑하며 기도를 고귀하게 여기며 실천한다. 그리고 기도의 일을 행하며, 내가 기도할 때 참으로 내가 된다."
선한 사람은 기도에 힘쓰며 사도들처럼 "기도하는 것에 전무한다"(행 6:4). 다윗의 적들이 그를 거짓되게 고소하고 그를 거짓으로 내세웠을 때 그는 하나님께 맡겼으며 기도로써 그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위탁했다. 그들은 그의 사랑에 대한 적대자들이었지만 그는 계속해서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였다. 만일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학대하며 해친다고 해도 우리는 그들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버리거나 "저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서 결단코 범치 아니해야 한다"(삼상 12:23). 그들이 그의 종교 때문에 그를 미워하고 박해한다고 할지라도 그는 그것을 반드시 지켰다. 그들은 그의 예배를 인하여 그를 조롱했지만, 그들은 그것으로부터 그를 떠나게 하지 못했다. "나는 기도할 뿐이다."
여기 다윗은 "미워하는 말"과 거짓말로 둘러 쌓여 이유없이, 그의 사랑과 그의 "선한 일들"(요 10:32)에는 아랑곳 없이 적들이 그를 박해했던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그들을 위하여 기도했고 "기도할 뿐이었다." "아버지여 저희를 용서하여 주소서."
●예언자적 저주(시편 109:6-20)
다윗은 여기에서 그의 대적자들보다 더 악했던 하나의 특정한 사람을 대하고 있다. 그는 대적자들 중의 괴수이다. 그러나 악과 복수의 방법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거룩한 열성에서 그리고 그리스도의 대적자들을 보면서 죄에 대해서 다룬다. 특히 유다와 같은 자는 그리스도를 배반하였고 그의 죄는 그를 정죄했던 빌라도의 죄보다 더 컸다고 하겠다(요 19:11). 다윗은 그의 파멸을 빌고 예고하였으며, 그가 완전히 불행에 빠지기를 예견하여 공포하였다. 마치 우리 주님께서 그를 "지옥의 아들"이라고 부른 것과 같이.
칼빈(Calvin)은 당시 프란체스코 수사들과 다른 수사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참을 수 없는 신성 모독을 말해 주고 있다. 즉 어떤 사람이 자기 이웃 사람에게 앙심을 품고 있으면, 그는 수도사들 중 어떤 자들을 고용하여 자기가 미워하는 자를 매일같이 저주케 하고, 그는 이 성경 구절을 인용해서 저주를 한다는 것이다. 칼빈은 특히 자기 친아들과 의좋지 않은 한 프랑스 여인이 수도사를 시켜 자기 아들을 저주케 했던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이렇듯 성서에서 악마적인 감정을 뽑아 내며, 하나님의 제단에서 불을 훔쳐다가 불화의 불을 붙이며,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지옥불을 붙이라고 기도하는 따위는 생각할 수도 없는 불경건이다.
Ⅰ. 여기에 나타난 저주는 매우 두려운 것으로 되어 있다.
하나님이 "아멘"이라고 한 자들에게 대적하는 자들에게는 화가, 수많은 화가 미칠 것이다. "돌이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 하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교회와 그 백성에게 무자비한 적이 된다. 여기에 이러한 사악한 자에 대해서 예언하고 있다.
1. 그는 범죄자로서, 무서운 시련과 단죄와 저주를 받아 던져지고 선고를 받게 될 것이다.(6, 7절).
"악인이 저를 제어하게 하시사."
그가 다른 자들에게 행한 것같이 그에게 난폭하고 억압하게 하소서, 왜냐하면 하나님은 때때로 악인을 다른 사람에 대한 채찍으로 삼으시고, 약탈자를 약탈하게 하시면서 배반자로 배반당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대적으로 그 오른 편에 서게 하소서."
즉 그 대적은 "사탄을 의미한다. 사탄이 유다에게 들어가서 유다를 지배했고, 그를 죄로 향해 재촉했으며, 결국 파멸로 이끌었다. 그의 사악한 심정이 유다를 제어했고, 유다의 양심은 사탄에게 굴복하고 말았다. 사탄이 유다 자신의 양심을 정면으로 반대했다.
"사탄으로 그 오른편에 서게 하소서. 그리고 그를 속이기를 늦추지 마소서. 마치 그가 아합을 파멸로 이끌고 그를 송사하고 저해한 것과 같이 그는 확실히 "사탄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슥 3:1, 2)하고 말하는 자를 옹호하지 못하고서 던져질 것이다. 그가 인간의 피고석에서 심판받게 될 때 정의를 회피하던 그의 평소의 경향이 그로 하여금 어떤 도움도 줄 수 없게 하고 그가 그의 죄를 발견하도록 하여 "죄를 지고 나오게 하소서."
그가 하나님의 법정 앞에서 도망할 수 없으며 거기에서 심판과 보상의 날이 올 때 정죄받게 될 것이다. 저주받은 악인의 아우성이 용납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법정 모독으로 간주되는 것과 같이 "그 기도가 죄로 변케 하신다." 따라서 사악한 자의 기도가 죄로 된다. 왜냐하면 위선과 악독의 곰팡이가 슬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더 큰 날을 당하게 되었을 때는 이미 늦어 "여호와여, 우리에게 보이소서"라고 외쳐도 소용이 없다. 모든 것이 그에게 거역하며 심지어는 그의 기도까지도 그에게 손해를 더 증진시키기 때문이다. 그들이 더 큰 날을 당하게 되었을 때는 이미 늦어 "여호와여, 우리에게 보이소서"라고 외쳐도 소용이 없다. 모든 것이 그에게 거역하며 심지어는 그의 기도까지도 그에게 손해를 더 증진시키기 때문이다.
2.그는 정죄됨으로 말미암아 가장 유명한 악인으로서 판결된 것이다.
(1) 그는 정의의 검에 의해서 그의 생명을 잃게 되고, 그 연수가 도중에 끊어지게 될 것이다.
"그 연수를 단촉케 하시며," 짧게 하소서. 정죄받은 죄인은 짧은 기간 동안만 살게 된다(8절). 그렇게 잔인하고 거짓된 사람들은 도중에서 생명이 끊어지게 될 것이다.
(2) 그 결과로 그의 모든 직분이 다른 사람에게 양도될 것이며 그들은 승진과 채용을 기뻐하게 될 것이다.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신다." 이것은 베드로와 사도들의 회합에서 맛디아를 선택함으로써 유다의 직분을 채우게 한 것에 적용된다(행 1:20). 신뢰를 저버린 자들을 공평하게도 그들의 직분을 빼앗길 것이며, 그것은 신실한 자들에게 주어질 것이다.
(3) 그의 가족은 멸절되고, 거지가 되며, 그의 "아내는 과부가 되며 그의 불시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그 자녀는 고아가 될 것이다(9절).
사악한 자들은 그들의 사악한 행적으로 말미암아 돌보고 부양해야 할 그들의 아내와 자녀를 파멸로 인도한다. 그의 자녀가 아버지를 잃고서도 살아갈 능력을 가졌다면 여전위로 가운데 생활해 가겠지만, 그들은 "유리 구걸하게 된다." 그들은 거주할 집을 갖지 못하며 거할 곳도 찾지 못하고 음식을 어디서 구해야 할지를 모르는 채 두려움과 떨림으로 "그 황폐한 집을 떠나," 굴에서 나온 들짐승과 같이 "빌어먹게 된다"(10절). 왜냐하면 그들은 모든 사람이 자기들의 조상으로 말미암아 자기들을 증오하는 것이 당연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4) 악인의 소유가 몰수되는 것처럼 그의 소유가 파멸될 것이다(11절).
"고리 대금하는 자로 저의 소유를 다 취하게 하시며, 저가 수고한 것을 외인이 탈취하게 하소서. " 그는 그의 소유를 전혀 갖지 못한다(욥 5:4, 5)
(5) 그의 후손은 비참하게 될 것이다.
고아들은 비록 소유로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할지라도 때때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긍휼을 베푸는 시는 자들의 친절함에 의해서 보양된다. 그러나 이렇게 사악한 자는 결코 자비를 베푼 일이 없기 때문에 "그 고아를 연휼할 자도 없게 될 것이다"(12절). 악한 부모의 자녀는 종종 그들은 부모의 악행 때문에 더 나쁘게 대접받는다. 그리하여 동정심의 긍휼이 그들에게는 차단된다. 그렇게 되지 않아야 할 자녀들이 고난을 받게 되는 이유는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불운이라 해야 되지 않겠는가?
(6) 그의 이름이 도말되며 망각 속에서 잊혀지며 불명예로 남아 있게 된다.
"그 후사가 끊어지게 하시며" "그의 종말이 파멸에 이르게 하신다." 그리고 "후대에 저희 이름이 도말되게 하소서." 오직 경멸과 분개로써 기억하게 된다. 씻을 수 없는 불명예의 표적이 남아 있게 될 것이다(15절). 여기에서 수치스러운 죽음에로 향하는 것과 가족과 그 지위가 파멸되고 그들에게 야비하고 가증한 일이 나타나서 그들의 후손에게 빈곤과 수치와 불행을 상속시켜 주는 것을 보라! 불행하게 파괴시키는 장본인은 바로 죄이다. 박식한 하몬드 박사(Dr Hammond)는 이것을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음으로 말미암아 유대나라가 당하게 되는 최후의 분산과 황폐에 적용시킨다. 그들의 왕과 민족은 제거되고 그 나라는 황폐케 되었으며 그들의 후손은 도망하여 유리 방황하는 자들이 되었다.
Ⅱ. 이러한 저주들의 근거는 매우 혹독하게 들리지만 그들에게는 매우 정당한 것임을 말해 준다.
1.죄인들의 후손에 대한 복수의 저주들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그의 조상들의 죄, 즉 "그 열조의 죄악"과 "그 어미의 죄"가 여기에서 문제시된다(14, 15절).
이것에 대해서 하나님은 종종 후대의 자녀에까지 징벌하시며, 그렇다고 거기에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악함이 피를 따라 계속될 때는 저주도 또한 피를 따라 계속되어 마땅하다. 땅에 흘려진 무죄한 피, 즉 외로운 아벨의 피와 같은 모든 피는 박해 시대에서 생기는 것이며, 그리스도를 죽음에 이르게 함으로써 "그들의 열조의 죄악의 그릇을 넘치게 했다." 범죄가 그들 앞에 있는 한 복수도 그들을 뒤따를 것이다. 결국 그들은 "그의 피가 우리와 우리 자녀에게 있도다"고 말하는 것에 동의한다.
2.죄인 자신에 대한 복수의 저주들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여기에서 그 자신의 죄가 그에게 돌려졌다.
(1) 그는 잔인성을 사랑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그에게 피를 마시게 하였다(16절).
"그가 긍휼히 여길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마시게 자비를 나타내도록 권유하는 생각을 기억하지 않고서, 또한 그에게 제시된 동정의 대상을 기억하지 않고, 그가 보호하고 소생시켜야 할 가난한 자들을 박해하였고, 위로하고 고쳐 주어야 할 "마음이 상한 자를 핍박하여 죽이려 하였다." 여기에 실로 살기에 적합하지 못한 한 야만적인 인간이 있다.
(2) 그는 저주하기를 좋아했다. 그러므로 저주가 그의 머리 위에 떨어질 것이다(17-19절).
그의 잔인성이 미치는 자들에게 저주로써 공격했으나 그것은 무력하고 우스운 것이 되었다. 오히려 그 저주들은 그에게 되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는 축복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였다." 그는 다른 사람이 잘 되기를 원하거나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보는 일을 도무지 기뻐하지 아니했다. 그는 아무에게도 선한 말을 하거나 좋은 소원을 주지 않았으며, 더욱이 누구에게도 선한 표현을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복이 멀리 떠났다. 또 저주하기를 옷입듯 하였다." 그는 자기가 마음만 먹으면 자기 주변의 모든 사람을 놀라게 할 수 있을 것을 마치 의복의 장신구인 양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는 그것을 마치 갑주(甲胄)인 양 신뢰하였으며, 그가 두려워하는 자들의 모욕으로부터 그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충분히 지니고 있었다. 그는 저주하기를 즐겼는가? "하나님의 저주가 물같이 그 내부에 들어가며" 수종(水腫)과 같이 그를 부풀게 하였으며, "기름같이 그 뼈에 들어다. 저주의 말은 빠르고 힘이 있어 절과 골수 사이를 갈라 놓는다. 그것은 힘있게 그리고 유효하게 작용한다. 그것은 영혼을 붙잡는다. 그것은 맹렬한 것이어서, 해독제가 없다. 그것은 "입는 옷과 같이"(19절) 모든 면에서 그를 에워싸고 있다. 그의 저주가 그의 이웃에게 대한 자랑이었던 것만큼 하나님의 저주는 그에게 수치가 되리라. 그것은 그에게 "항상 띠는 띠와 같이" 부착되게, 그는 결코 그것은 제거할 수 없으리라. 그것이 그에게 진노하는 물과 같이 되어서 "복부를 부풀게 하며 사지를 썩게" 만든다.
이것은 유다의 완전한 파멸을 지적하며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유대인들에게 임하는 영적인 심판을 지시한다.
시편 기자는 무서운 "아멘"으로 그의 저주를 결론짓고 있는데, 그것은 "내가 그렇게 되기를 원하나이다"라는 말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나도 그것이 그렇게 될 것을 알고 있나이다"라는 말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는 대적 곧 내 영혼을 대적하여 악담하는 자가 여호와께 받는 보응이니이다"(20절). 그리고 이것은 주 예수의 모든 대적자들에 대한 보응이 될 것이다. 그의 통치를 받지 않으려 하는 그의 적들은 "그 앞에서 살육당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어느날 그의 백성을 괴롭히던 자들에게 고난을 보응할 것이다.
●겸손한 간구 (시편 109:21-31)
다윗은 그의 적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선언하고서 자랑하지 않고 매우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의 위로를 스스로 취하고 있다.
Ⅰ. 그는 하나님 앞에서 그의 적들이 그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서 이용했던 그가 처한 비참한 상황에 관해서 그의 탄식을 토로한다.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여" 긍휼의 대상이 되며 주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갈망하는 자입니다.
1.그는 마음이 괴로웠다(22절).
"나의 중심이 상하여" 영혼을 쇠약케 하며, 힘 없게 하는 외적인 문제로 상했을 뿐만 아니라 죄의식을 상하였다. "상한 영혼을 누가 담당할 수 있습니까? 누가 고칠 수 있습니까?"
2.그는 스스로 그의 종말이 가까이 다가 온 것을 인식했다.
"나의 가는 것은 이미 사라져 가는 석양 그림자 같도다." 인간의 생애는 기껏해야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때때로 그것은 "석양 그림자 같이" 다가 오는 밤의 표징이다.
3.그는 "메뚜기같이 휩쓸려가며," 불안하며 마음이 파도치며 동요하였다.
그의 외적인 상황이 어떤 평정을 주지 못했고 산위에 있는 메추라기처럼 사냥될 위기에 처해 있듯이 계속 요동하였다.
4.그의 몸은 약하여 거의 수척하게 되었다(24절).
"금식함을 인하여 내 무릎은 약해졌다." 강요된 금식을 인하여(음식의 결핍이 그를 괴롭혔거나 식욕의 결핍이 그를 병들게 했다), 또 자발적인 금식을 인하여 그는 심히 약해졌다. 그때에 그는 그의 영혼을 죄로 인해 또는 고난으로 인해, 그 자신 때문에 또는 다른 사람 때문에 징벌했다(35:13; 69:10). "내 육체는 수척하옵니다." 즉 그는 육체가 지녔던 강건함을 잃었고, 따라서 나는 살가죽과 뼈에 지나지 않는 해골이 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같이 육체가 살찌는 반면에 영혼이 쇠약하게 되는 것보다, 육체가 쇠잔하지만 반면에 영혼이 잘되고 강건하게 되는 것이 더 낫다.
5.그는 그의 대적자들에 의해서 조롱받고 비난을 받았다(25절). 그들이 조롱거리로 삼았던 그이 헌신과 그의 고뇌가 있었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러한 경우의 질책을 무수히 당했다.
이런 모든 점에서 볼 때, 다윗은 겸손하게 당하며 약해지고 조롱받았던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 그는 또한 종종 고난을 받고 폭풍우에 시달리며 위로받지 못한 교회의 모형이었다.
Ⅱ. 그는 자신을 위해 자비를 간구한다. 일반적인 말로 했다(21절).
"주 여호와여 나를 선대하소서! 내게 나타나시며 나를 위해 행하소서."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계신다면 그는 우리를 위해 행하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간구하며 생각하는 것보다 더 풍성하게 우리를 위해 행하실 것이다." 그는 해야 할 것을 하나님께 명령하지 않고 그의 지혜에 위탁한다. "여호와여, 주의 눈에 선히 여기서는 것을 내게 행하소서. 주께서 아시는 것을 내게 있게 하시며 진정으로 내게 행하소서. 비록 지금은 그것이 내게 해가 될지라도."
그는 더 특별한 말로 간구한다(26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시며 나를 구원하소서. 나의 문제에서 나를 도우시며 나의 괴로움으로부터 나를 구원하소서. 죄로부터 구원하시며, 나의 의무를 행할 수 있도록 나를 구원하소서, "저희는 저주하여도 주는 내게 복을 주소서"(28절)하고 그는 간구한다.
그는 그의 적들의 까닭없는 저주를 경멸한다.
"저희로 저주를 하게 하소서" 그는 시므이에 대해, "그가 저주하게 버려 두라"고 말했다. 그들은 오직 그들의 사악함을 드러낼 뿐이다. 그들은 "참새의 떠도는 것과 제비의 날아가는 것같이"(잠 26:2) 그를 더 이상 불행에 몰아 넣을 수 없다. 그는 그들의 저주에 균형을 맞추기에 충분한 하나님의 축복을 헤아린다. "주는 내게 복을 주소서." 그들이 저주할지라도 내게는 상관없나이다. "하나님이 저주치 않으신 자를 저희가 어찌 저주하며"(민 23:8) 그가 축복하신 자를 어찌 저주할 수 있을 것인가? 인간의 저주는 무력하다. 하나님의 축복은 전능한 것이다. 우리가 부당하게 저주하는 자들은 하나님이 축복, 즉 그의 특별한 축복을 믿음 가운데서 기다리며 간구할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가난한 자들을 그리스도를 신앙으로 고백한다고 하여 쫓아냈다고 했을 때에 그리스도는 "그를 만나셨다"(요 9:35). 사람들이 까닭없이 그들이 우리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악한 것을 말하며 우리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악한 것을 말하며 우리에게 할 수 있는 가장 나쁜 것을 소원할 때 우리는 이러한 간구에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높이 올려 위로를 취할 수 있다. "저희는 저주하여도 주는 내게 복을 주소서." "주의 종은 즐거워하리이다"고 그는 간구한다. 하나님의 축복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가를 아는 자들은 그것을 확신하게 되며 그들은 그것을 즐거워하게 될 것이다.
Ⅲ. 그는 그의 대적자들이 "부끄러움을 당하여"(28절) "수치를 겉옷같이 입게 되리라"(29절)고 기도한다.
그들은 그들의 자가당착에 빠져 뒤덮이고 스스로 떠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 앞에서 저희의 어리석음을 나타낼 것이며" 그들은 그들의 계획에서 좌절될 것이다. 그리하여 유대인들의 대적자들과 같이 "수치로 가득차게" 될 것이다(느 6:16).
아니, 그는 여기에서 그들이 회개하도록 간구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우리의 대적자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간구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다. 실로 죄인들은 스스로 수치를 당하지만, 스스로 수치를 당하며 저희의 혼돈으로 스스로를 옷입 듯하게 하는 진실한 참회자이다.
Ⅳ. 그는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이름의 명예를 주장한다.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를 대하소서"(21절). 특히 그가 그의 이름을 선포했던 그의 인자하심의 영광을 위하여 나를 선대하소서. "주의 인자하심이 선함을 인하여 나를 건지소서." 그것은 저가 기뻐하며 내가 의지해야 할 바이다.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나의 공적에 따라서가 아니라, "주의 인자하심 인하여" 나를 구원하소서.
그것이 바로 나의 구원의 근원이 되며 이유가 되며 척도가 된다. 마지막으로, 그는 시편을 기쁨으로, 신앙의 기쁨으로, 그의 현재의 투쟁이 승리로 끝난다는 것을 확신하는 기쁨으로 결론짓고 있다.
1.그는 하나님을 찬양하리라고 그에게 약속한다(30절).
"내가 여호와께 크게 찬양하리로다." 나의 마음으로 만이 아니라, "내가 입으로" 찬양할 것이다. '내가 그를 찬양하리로다." 남물래 혼자서 만이 아니라, "무리 중에서" 찬양할 것이다.
2.그는 하나님을 찬양할 이유를 갖게 될 것임을 스스로 약속한다(31절).
"저가 궁핍한 자의 우편에 서사" 그에게 가까이 하며 현실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그는 그의 후원자로서 그의 오른편에 설 것이며 그의 대적자들에 대해 그의 소원을 지지할 것이며 대적자들을 제하고 그를 보호하고 "그 영혼을 판단하려 하는 자에게서 구원하실 것임이로다." 하나님은 다윗이 고난 중에 있을 때 그의 보호자였으며 그의 "우편에서 계신" 주 예수와 함께 나타나신다. 그리하여 그는"요동치 않고"(시 16:8) 그 영혼을 판단하려고 하는 자에게서 구원하실 것이며 그것을 그의 손에 두실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고난당하는 모든 자는 저희의 영혼을 그가 지키시도록 위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