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창세기 40, 마가복음 10, 욥기 6, 로마서 10
묵상구절
선민 심판의 불가피성의 이중 강조와 선지자의 선민 타락 시인
(관련 문단, 9:10-22; 사57:3-13)
5:1 <예루살렘의 허물과 반역>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5:2 그들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할지라도 실상은 거짓 맹세니라
5:3 여호와여 주의 눈이 진리를 찾지 아니하시나이까 주께서 그들을 치셨을지라도 그들이 아픈 줄을 알지 못하며 그들을 멸하셨을지라도 그들이 징계를 받지 아니하고 그들의 얼굴을 바위보다 굳게 하여 돌아오기를 싫어하므로
5:4 내가 말하기를 이 무리는 비천하고 어리석은 것뿐이라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하니
5:5 내가 지도자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말하리라 그들은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안다 하였더니 그들도 일제히 멍에를 꺾고 결박을 끊은지라
5:6 그러므로 수풀에서 나오는 사자가 그들을 죽이며 사막의 이리가 그들을 멸하며 표범이 성읍들을 엿본즉 그리로 나오는 자마다 찢기리니 이는 그들의 허물이 많고 반역이 심함이니이다
5:7 내가 어찌 너를 용서하겠느냐 네 자녀가 나를 버리고 신이 아닌 것들로 맹세하였으며 내가 그들을 배불리 먹인즉 그들이 간음하며 창기의 집에 허다히 모이며
5:8 그들은 두루 다니는 살진 수말 같이 각기 이웃의 아내를 따르며 소리지르는도다
5:9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이 일들에 대하여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런 나라에 보복하지 않겠느냐
매튜헨리/옥스퍼드
●그 시대의 보편적 부패 풍조(예레미야 5:1-9)
📖서론
Ⅰ 예루살렘에 정직한 자가 한 사람 또는 다만 몇 명이라도 있거든 내세워보라는 도전이 나오고 있다(1절).
예루살렘은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하던(창 6:12) 옛 세계처럼 부패하였다. 일부 인사들은 아마 예루살렘에는 아직도 선한 자들이 많이 있어서 그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몸소 막아서며 돌이키려 할 것이라는 희망으로 우쭐하였던 것 같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은 예루살렘이 거룩한 도성임을 자랑하며 이것이 그의 진노를 막아 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도시를 다 뒤져보라고 말씀하시면서, 그 공평을 행한 자 곧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행하셨던 일을 본분으로 삼는 자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고 시사하신다. 거리는 그들이 얼굴을 내밀고 서로 만나 예기하는 곳이었다. 넓은 거리는 그들이 시장을 개설하는 장소였다. "거리와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라. 너희가 공의를 행하는 자(흑자는 방백이라고 읽음) 곧 재판을 공평무사하게 실시하며 악고 독신(瀆神)에 대해 법을 집행하는 자를 찾을 수 있는지 알아 보라."
이와 같이 충실된 자가 끊어지고 정직한 자가 없을 때는 "재앙이로다. 나여!" 하고 소리칠 때요(미 7:1, 2) "여호와여 도우소서" 하고 부르짖을 때다(시 12:1). "참으로 양심적인 사람이나 적어도 진리를 구하는 사람이 간혹 있다손 치더라도 거리와 넓은 거리에서는 너희가 그를 만나지 못할 것이다." 그는 감히 공공연하게 나타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그가 학대와 멸망을 두려워해서이다.
성실이 거리에 엎드러졌으므로(사 59:14) 진실한 사람은 숨을 데를 찾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자를 찾으시면 하나님은 너무나 기쁘셔서 그들을 위해 그 도시를 사하려고 하신다. 소돔에 의인이 열 명만 있었더라도, 예루살렘에서 천 명 중 아니 만 사람 중 한 명의 의인만 나왔어도 그 도성을 살려 주셨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기꺼이 용서하려 하시며 자비를 보이시는 데 얼마나 신속하신지 살펴 보라. 그러나 본문에는 이런 말도 있다. "너희는 예루살렘에서 경건한 신앙과 하나님께 대한 관계를 계속 고백하고 있는 자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들은 예루살렘이 그들 때문에 파멸을 면하게 된다고 할만한 자들이냐?"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진실되지 못한 고백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2절). 그들은 여호와께서 살아 계신다고 말하며 오직 그의 이름으로만 맹세하려고 한다. 그러나 실상 그들은 거짓맹세를 한다.
- 그들은 하나님께 존경을 고백함에 있어 진지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거짓으로 대한다. 그들이 "입술로는 그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그에게서 멀리 떠나 있다" (사 29:13; 마 15:8).
- 그들은 하나님께만 호소를 드리면서도 그를 거짓말의 증인으로 만드는 일을 예사로 자행한다. 그들은 우상을 두고 맹세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그들은 거짓 맹세를 한다. 우상을 두고 하는 맹세가 유일하신 참 하나님께 대한 모독이듯이 헛맹세는 진실무망 하신 하나님을 모독하는 짓이다.
📖5:1 <예루살렘의 허물과 반역>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 사29:13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 마15: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5:2 그들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할지라도 실상은 거짓 맹세니라
- 신10: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에게 의지하고 그의 이름으로 맹세하라
-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할지라도 실상은 그것이 거짓 맹세였던 이유, 그렇게 거짓 맹세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들의 내면에 어떤 생각이 있었기에?)
Ⅱ. 선지자는 이 백성의 완고함과 방자함을 들어 하나님께 불평한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직접 목도하라고 호소하셨으나(1절) 여기서는 선지자가 하나님께서 친히 보시도록 호소한다(3절).
"주의 눈이 성실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주께서는 만인의 진면목을 보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들이 자기 얼굴을 반석보다 굳게 하는 것이 그들의 참 모습이 아닙니까?"
또는 이런 말로 해석할 수 있다.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에 진실함을 원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이 세대 사람들 가운데 어디서 중심에 진실한 것을 찾을 수 있나이까? 그들이 비록 여호와께서 살아계신다고 말하지만 결코 주를 존중하고 있지 않습니다. 주께서는 이런저런 고난으로 그들을 치셨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고난에 대해 아픈 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환난을 당해도 목석 같았습니다. 하물며 그 환난의 빌미가 되는 죄에 대해 아픔을 느끼겠습니까? 주께서는 이에서 그치지 않으시고 그들을 멸하셨으며 한층 더 엄히 징계하셨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징계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증계하시는 주의 의도에 순순히 응하고 따르기를 거부하였습니다." 그들은 징계에 의한 훈계를 받으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애써 신의 판결을 무시하려고 하였고 그 판결의 집행에 태연하려고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얼굴을 반석보다 굳게 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안색을 바꿀리가 없으며 수치심으로 얼굴이 붉어지거나 공포로 낯이 하얗게 질릴 리도 없다. 그들은 어떤 견제와 책망을 받더라도 움찔해서 자기들의 욕망의 추구를 그만 두는 법이 없다. 그들은 돌아오라고 외치는 소리를 몇 번이고 들었지만 돌아오기를 싫어하고 전장을 향하여 달리는 말같이, 옳든 그르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였던 때문이다(렘 8:6).
📖5:3 여호와여 주의 눈이 진리를 찾지 아니하시나이까 주께서 그들을 치셨을지라도 그들이 아픈 줄을 알지 못하며 그들을 멸하셨을지라도 그들이 징계를 받지 아니하고 그들의 얼굴을 바위보다 굳게 하여 돌아오기를 싫어하므로
Ⅲ. 부자와 빈자가 다 같이 시험을 당하고 마찬가지로 나쁜 평판을 받는다.
1. 가난한자들은 무지했고 따라서 악했다. 선지자는 돌아오기 싫어하는 자들을 많이 보았다. 그러므로 그들의 형편이 참작받도록 하기 위해 그는 기꺼이 그들을 위해 최선의 변명을 하려든다.
그 변명은 다음과 같다(4절).
"실로 이 백성은 비천하고(원뜻:가난하고) 우준한 것 뿐이다. 그들은 좋은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런 훈계를 받아도 어떻게 해 볼재간이 없다. 그들은 자기 생계를 위해 열심히 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읽고 쓸 시간도 없고 능력도 없으므로 여호와의 길도 자기 하나님의 법도 알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자기를 향해 걸어오도록 교훈으로써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섭리로써 그들에게 걸어 오신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 길과 방법을 이해하지 못한다. 다음을 주목하자.
(1) 온 백성의 무지는 많은 불경건과 불위를 야기시키는 통탄할 만한 근원이 된다. 하나님과 신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흑암 가운에 앉아 있으려고 하는 백성은 우준하고 짐승 같은 백성이다. 이런 백성에게서는 어두운 일(롬 13:12; 엡 5:11)밖에 달리 기대할게 없다.
(2) 이것은 흔히 가난한(비천한) 사람들 사이에서 잘 찾아볼 수 있는 죄악이다. 이 세상에는 악마의 가난한 자가 있는 반면에 하나님의 가난한 자도 있다. 하나님의 가난한 자는 자기의 가난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길을 알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책에서 배우지 않고도 그 길을 알 수 있다. 그들은 그 길로 행하기 위해 그리고 자기 의무를 행하기 위해 그 길을 알려고 한다. 그러나 악마의 가난한 자들은 무지를 즐긴다. 그러므로 이들의 무지는 용서를 얻지 못하며 변명이 되지 못할 것이다.
📖5:4 내가 말하기를 이 무리는 비천하고 어리석은 것뿐이라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하니
2. 부자들은 오만하고 무례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악하였다(5절).
" 내가 귀인들에게 가서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섭리에 보다 잘 응하는지 보리라. 나는 그들에게 말하리라. 나는 세련된 교양을 지닌 자들에게 조금이라도 감명을 주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궁정에서 설교하겠노라." 그러나 그 결과는 전부 허사일 뿐이다. 그들이 여호아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또는 심판)을 안다고는 하지만 너무 뻣뻣해서 그의 다스리심에 굽히지 않는다. 이들은 일제히 그 멍에를 꺾고 결박을 끊었다. 그들은 자기 주인의 뜻을 알면서도 자기들의 뜻대로 하려고 결심한다. 그들은 그 마음의 길로 행하려고 하며 그 눈에 기뻐하는 대로 행하고자 한다. 그들은 아무리 만유의 주, 지고무쌍하신 여호와라곤 하지만 자기들이 통제받기에는 너무 대단한 존재이며 징계받기에는 너무 큰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가 매신 것조차 끊어버리려고 한다(시 2:3). 가난한 자는 연약하고 부자는 고집이 세기 때문에 그 어느 쪽도 자기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
📖5:5 내가 지도자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말하리라 그들은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안다 하였더니 그들도 일제히 멍에를 꺾고 결박을 끊은지라
Ⅳ. 몇 가지 특정 범죄가 열거된다.
이 죄들 때문에 그들은 극히 악명 높게 되었고 이 죄들은 복수를 바라는 부르짖음이 하늘에 극히 크게 사무친 죄였다. "그들의 허물은 실로 많았으니" 그들은 반복해서 허물을 범했고 그들이 범하는 허물의 종류는 다양했다. 그들의 패역은 심했다. 그들은 범죄의 수를 자꾸 증가시켰고 그런 증가되는 범죄 가운데서 더욱 뻔뻔스러워져 갔다(6절).
그렇지만 그 중에서 특히 두 가지 죄를 용서받지 못할 범죄로 간주해야 마땅했다.
1. 그들의 영적 음행.
그들은 하나님께만 돌려야 할 영광을 우상에게 돌렸다. "네 자녀가 나를 버렸느니라. 그들은 나를 위해 태어났고, 내게 헌신된 자들이요, 내 밑에서 양육된 자들이니라. 그리고 그들의 신(神)이 아닌 것들로 맹세하였느니라. 마치 그것들이 전지(全知)하고 공정한 심판관들인 양 그것들에게 나가 호소하였느니라." 이것은 각종 종교적 의무의 실행은 오직 하나님께만 드려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러한 의무를 자기들의 우상들을 위해서 바쳤던 것이다. "그들은 그것들에게 맹세했다" (이렇게 해석될 수도 있다). 즉 자신들을 그 우상들과 연합시키고, 그것들과 계약을 맺은 것이다. 하나님을 버린 자들은 신이 아닌 것들을 향하여 나아가는 슬픈 변화를 일으킨다.
2. 그들의 실제적인 행음.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사악한 욕망에 버려 두었다. 하나님께 치욕을 돌리는 자들은 결국 자기 자신들과 자기 가정을 치욕되게 만든다. 그들은 죄책에 대한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지극히 수치럽게 "행음했다." 그들은 "창기들의 집에 무리가 되어 모이고도" 더러운 장소에서 아무런 부끄러움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의 욕정이 그토록 강하고 더러웠기 때문에, 아무런 제재도 불가능했고, 만족을 채우기에만 급급했기 때문에, 그들은 완전히 짐승이 되고 말았다(8절). 그들은 마치 살띤 말(馬)과 같이 "각기 이웃의 아내를 좇아 울부짖는다" (8절). 굴레 없는 욕망은 사람이 "마치 야수처럼" 만들어 버리기 때문에, 그 인간들은 지극히 괴물적이고 가증스러런 것이 된다.
또한 그들의 죄를 더욱 가증시키는 것은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악용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배불리 먹게 되자," 그들의 욕정도 그만큼 강렬하게 커져 버렸다. 빵의 풍요는 소돔의 욕정의 불을 지펴주는 연료였다. Sinecerere et Baccho friget Venus- 즉 호화스런 생활은 욕정의 불꽃을 살찌게 한다. 단식은 "죽음의 독기 가득한" 무절제한 악을 길들이는 데 도움이 되며, 육체를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된다.
📖5:6 그러므로 수풀에서 나오는 사자가 그들을 죽이며 사막의 이리가 그들을 멸하며 표범이 성읍들을 엿본즉 그리로 나오는 자마다 찢기리니 이는 그들의 허물이 많고 반역이 심함이니이다
5:7 내가 어찌 너를 용서하겠느냐 네 자녀가 나를 버리고 신이 아닌 것들로 맹세하였으며 내가 그들을 배불리 먹인즉 그들이 간음하며 창기의 집에 허다히 모이며
Ⅴ. 그 백성의 사약성과 그 땅에 만연된 방탕으로 하여 그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경고되어 있다.
1. 여기서는 구체적인 심판이 경고되어 있다(6절).
외국 군대가 침입하여, 그들을 다스리고, 온갖 것들을 황폐하게 하리라고 했다. 그들의 땅은 마치 야생 짐승들이 완전히 뒤덮고 만 그런 상태가 될 것이다.
(1) 이 원수는 "숲의 사자" 와 같이, 강하고, 난폭하고, 무적의 힘을 지니고 있다. 그 원수가 "그들을 살륙하리라."
(2) "저녁 늑대" 같다. 늑대는 배가 고픈 밤중에 기어나와서 먹이를 찾는데, 그 때는 매우 난폭하고 무자비하다. 게다가 사자와 늑대의 울음소리는 대단히 기분 나쁜 소리이다.
(3) 그 원수는 "표범" 같다. 표범은 대단히 날쌔고, 잔인하며, 조심성이 많아 결코 먹이를 놓치는 일이 없다.
이 원수의 군대가 "그들의 각 성읍을" 너무도 철저히 "경계할" 것이므로, 그 주민들은 슬픈 딜레마에 빠질 것이다. 즉 머물러 있자니 굶어 죽을 것이고, 나가자니 칼에 찔려 죽을 것이다. "나오는 자마다 찢기우리라" 는 것은 적군들이 도처에서 사람을 죽이라는 것을 시사해 준다.
이같은 모든 잔악 행위는 "그들의 패역함이 극히 심하기" 때문이다. 대 살륙을 가져오는 장본인은 바로 죄이다.
📖5:8 그들은 두루 다니는 살진 수말 같이 각기 이웃의 아내를 따르며 소리지르는도다
2. 이러한 심판의 공정을 알리는 호소가 있다(9절).
"내가 어찌 이 일들을 인하여 말하지 않겠는냐? 질투하는 자라는 이름을 가진 하나님이 이런 우상 숭배자들을 벌 주지 않고 내버려 두리라고 생각할 수 있겠느냐? 또 무한한 순결의 하나님이 이런 부정한 가증성들을 묵과할 수 있겠느냐?" 이런 것들은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하나님의 통치권의 체면이 유지될 수 없다. 또 그의 법이 멸시받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죄인들은 하나님의 삼판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기는 커녕, 하나님도 전적으로 자기들과 같은 존재인 줄로 생각하려는 유혹을 받을 것이다.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죽어야 마땅하다" (롬 1:32).
하나님이 죄인을 벌하실 때를 가리켜, "방문(우리 번역은 그대로 "벌함" 으로 되어 있음-역주)이라고, 즉 심문" 하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그는 선고를 내리기 전에 미리 사태를 검토하시기 때문이다.
죄인들은 하나님의 성결 때문에 벌이 있을 것임을 각오해야 한다. 죄란 하나님의 성결에 지극히 적대적인 것이다. 그리고 물론 하나님의 정의로우심 때문에 오는 벌도 각오해야 한다. 죄는 우리를 하나님의 정의에 맞지 않는 기분 나쁜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이 같은 나라에 내 어찌 보복하지 않겠느냐?" 하시는 말씀 속에 이런 뜻이 들어 있다.
복수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일 뿐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마음 자체이기도 하다. 그리고 하나님은 민족적 심판을 내림으로써 민족적 죄에 대한 보복을 가하신다. "이 같은 나라" 는 결코 영원토록 벌받지 않은 상태로 간과되지는 못할 것이다. "내가 어찌 너의 이런 짓을 용서하겠느냐?" (7절). 이러한 죄에 대해서 죄책을 느낀 자들이, 영원한 나라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자비를 입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므나세 왕도 비록 이 세상에서 많은 죄를 졌지만 자비를 얻었다). 그러나 "이런" 나라들은 이 세상에서만 보응이나 벌을 받을 수 있으므로, 이 같은 나라를 아무런 징계의 표지도 가하지 않은 채로 버려 두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합당치 못하다.
📖5:9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이 일들에 대하여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런 나라에 보복하지 않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