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신명기 1, 시편 81, 82, 이사야 29, 요한삼서 1
묵상구절
51:25 <바벨론이 황무지가 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온 세계를 멸하는 멸망의 산아 보라 나는 네 원수라 나의 손을 네 위에 펴서 너를 바위에서 굴리고 너로 불 탄 산이 되게 할 것이니
51:26 사람이 네게서 집 모퉁잇돌이나 기촛돌을 취하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영원히 황무지가 될 것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51:27 땅에 깃발을 세우며 나라들 가운데에 나팔을 불어서 나라들을 동원시켜 그를 치며 아라랏과 민니와 아스그나스 나라를 불러 모아 그를 치며 사무관을 세우고 그를 치되 극성스런 메뚜기 같이 그 말들을 몰아오게 하라
51:28 뭇 백성 곧 메대 사람의 왕들과 그 도백들과 그 모든 태수와 그 관할하는 모든 땅을 준비시켜 그를 치게 하라
51:29 땅이 진동하며 소용돌이치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바벨론을 쳐서 그 땅으로 황폐하여 주민이 없게 할 계획이 섰음이라
51:30 바벨론의 용사는 싸움을 그치고 그들의 요새에 머무르나 기력이 쇠하여 여인 같이 되며 그들의 거처는 불타고 그 문빗장은 부러졌으며
51:31 보발꾼은 보발꾼을 맞으려고 달리며 전령은 전령을 맞으려고 달려가 바벨론의 왕에게 전하기를 그 성읍 사방이 함락되었으며
51:32 모든 나루는 빼앗겼으며 갈대밭이 불탔으며 군사들이 겁에 질렸더이다 하리라
매튜헨리/옥스퍼드
●바벨론에 대한 심판 (예레미야 51:1-58)
본문의 예언은 내용이 풍부할 뿐 아니라 그 세부적 내용에 있어서는 여기저기 분산되어 전체를 구성하고 있다. 같은 내용이 여러 곳에 흩어져 있으므로 본문을 단원으로 나눈다는 것은 곤란한 문제다. 그러므로 본문을 고찰함에 있어서 적당한 주제를 내걸고 그 주제 아래 관련된 절들을 모아 살펴보는 것이 적당한 방법이라 하겠다.
Ⅰ. 바벨론이 누린 위력과 그들의 교만.
하나님은 그들의 이러한 특징을 자신의 섭리를 이루시는데 사용하신다(7절). 그러므로 본문에 "바벨론" 을 가르켜 "금잔" 이라 하였다. 이는 바벨론이 부강하였고 번영하는 제국이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즉 포도주로 채워진 잔과 같이 바벨론이 온갖 좋은 것들을 갖고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외에도 바벨론을 "황금성" (사 14:4)(한글 개역과는 틀림:역주) 또는 "금 머리" (단 2:38)라고도 하였다. 그런데 바벨론이 금잔이기는 하나 그는 "여호와의 수중에 있는" 금잔이다. 그 잔을 채우시고 바벨론에게 축복을 내리신 것은 바로 하나님이었다. 또 하나님께서 온 세상으로 하여금 이 잔으로 포도주를 마시게 하여 그들을 미치게 하셨다. 어떤 나라는 바벨론이 베풀어주는 쾌락에 도취되어 미혹되어 있었고 또 어떤 나라들은 바벨론의 공갈에 질리고 그 힘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였다. 같은 의미에 있어서 신약 시대의 바벨론도 세상의 열왕들을 취하게 하였다고 계시록에 기록돼 있다(계 17:2; 18:3).
또한 바벨론은 하나님이 전쟁에 사용하시는 철퇴였다. 적어도 예레미야가 예언하던 시기와 그 후 얼마 동안 바벨론은 하나님이 쓰시는 철퇴였었다(20절). 바벨론 군대는 하나님이 쓰시는 병기요, 그의 손에 들려진 도구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용하시어 "열방과 나라들을" 또한 나라의 강대함을 나타내는 "말과 병거들을 박살을 내셨다" (21절). 또한 그 철퇴로 나라들의 구성원들인 "남자와 여자와 노년과 유년" 을 부수셨으며(22절) 나라들의 경제력의 원천이 되고 있는 "목자와 양떼와 농부와 멍엣소" 를 부수셨다(23절). 하나님이 열국을 치시는 진노의 도구로 그들을 들어 쓰셨을 때는 갈대아인들은 이러한 위력을 발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이 멸망할 차례가 되었다. 한동안 열국 앞에서 권력을 한 손에 쥐고 흔들던 그들도 결국은 적수를 만나 그들의 날이 다하고 만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결국 몽둥이까지 불 속에 던지울 때가 있는 법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이 다른 사람들을 심판하는 도구로 자기들을 쓰시고 있다고 하여 자기들은 그 심판을 면하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Ⅱ.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바벨론에 대한 원성과 바벨론에 대한 송사.
1. 바벨론의 멋대로 부리는 악행이 원성의 이유가 되고 있다(9절). 그러므로 본문에 "우리가 바벨론을 치료하려 하여도 낫지 아니한다" 고 하였다.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간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지시에 따라(10:11), 바벨론의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을 설득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은 허사였다. 여전히 바벨론 사람들은 그들의 새긴 신상을 섬겼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은 바벨론을 교훈하기를 중단하고 자기 고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였다. 어떤 이들은 본문의 말씀을 이스라엘의 한 말이 아니라 바벨론이 도움을 얻기 위하여 고용한 군대들의 말이라고 이해한다. 즉 고용된 군대들이 바벨론을 파멸에서 구하려고 최선을 다하였으나 무익하였으므로 그들이 각자의 고국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한 말이라고 본다. 즉 "그 화가 하늘에 미쳤으므로 그 화를 저지한다거나 피한다는 것은 헛 일이라" 고 그들은 보았던 것이다.
2. 바벨론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품은 철저한 악의가 불평의 대상이 되고 있다.
갈대아인들에게 혹사를 당한 것은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스라엘만이 이 사실에 대하여 불평한다. 또한 확신을 갖고 그들은 하나님에게 호소한다(34,35절). "바벨론 왕이 나를 먹으며 나를 멸합니다. 또한 그는 나를 멸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는 내게서 가치있는 모든 것을 취하여 감으로 나로 빈 그릇이 되게 하였고 용같이 나를 삼키며 작은 물고기들을 한 입에 삼켜버리는 고래처럼 나를 삼키나이다. 그마나 나의 좋은 음식 곧 모든 나의 위안거리로 그의 배 곧 그의 보고를 채우고 나를 쫓아내었습니다.
그가 나를 아무 쓸모도 없는 그릇처럼 내던졌사오니 이제 이 모든 행위에 대하여 그들에게 보수하소서" 라고 애소한다. 시온과 예루살렘이 계속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와 내 육체와 같은 자녀들에 대한 잔학이 그들에게 돌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를 찢고 내 백성의 피를 물 쏟듯이 흐르게 한 그들에게 행한 잔학이 돌아가게 하소서. 그 죄악을 그들에게 추궁하시고 그들의 손에서 그 대가를 받으옵소서" 라고 호소한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잘못을 저지른 자들에게 파멸의 날이 멀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Ⅲ. 이러한 호소에 대하여 하늘과 땅의 공의로운 재판관이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바벨론을 심판하신다.
하나님은 재판석에 앉으사 송사를 들으시고 송사에 응할 모든 준비를 갖추고 계신다(36절). 그러므로 본문에 "보라, 내가 네 송사를 들으리라. 그러니 네는 그것을 내게 맡기라. 적당한 시기가 되면 너의 호소를 들어 너를 위하여 보수하되 예루살렘이 흘린 모든 핏방울에 이자를 붙여 갚게 하리라" 고 하신다. 이스라엘과 유다는 하나님에게 잊혀진바 되고 무시당한 것으로 여겨졌으나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주목하고 계셨던 것이다(2절). "이스라엘과 유다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거역하므로 죄과가 땅에 가득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들은 거역하는 백성이었고 그들의 죄는 하나님의 마음을 심히 상케 하였다. 그들은 거룩한 하나님이요, 또한 자기들의 하나님이요, 자기들의 거룩하신 분이신 그분의 마음을 상하게 해드렸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들의 원수의 손에 넘기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또한 그들을 원수에게 내맡기시사 원수의 수중에서 그들이 행위에 대하여 너그러우셨다. 그래서 그들의 불의와 완악함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셨고" 그가 그들에게 버린 바 되셨지만 그들을 내쫓지는 않으셨다. 오히려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은 그들을 자기의 것으로 인정하사 돌보시었다. 아직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며, 만군의 여호와요, 능력의 하나님으로 이스라엘을 위하여 일하려 하신다.
하나님의 백성이 그의 율법을 어기므로 그의 진노의 손길 아래 있는 일이 있다고 하여도 그렇다고 그들이 계약에서 제외당하는 것은 아님을 기억하자.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가호와 사랑은 다시 넘치게 되는 것이다(시 89:30-33). 갈대아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대적하였다고 해서 그 대가를 치르는 일은 결코 없으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보수의 시기가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6절). 우리는 그 정해진 때가 빨리 닥쳐오기를 바라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때가 이르면 보수는 실현되고야 마는 것이다. 하나님은 바벨론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죄에 대하여 이제 보수하고자 하신다. 이스라엘이 당한 어려움은 곧 하나님이 당한 어려움으로 이스라엘을 위한 보복은 하나님이 행하신다.
그가 그들의 소송을 지지하신다. 하나님의 이 보수는 곧 "그의 성전에 대한 보수" 이기도 하다(11절, 50:28). 그러므로 본문에 "여호와는 보복의 하나님이시니 반드시 보응하시리로다" 라고 하였다(56절). 곧 그들이 행한 대로 갚으시겠다는 말씀이다. 계속해서 그는 "그들이 시온에서 모든 악을 행한 대로 바벨론 모든 거민들에게 갚으리라(24절)고 하신다. 그는 그들에게 보수하시되 바로 그의 백성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보수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그들의 송사가 여호와의 진노로 보수되는 것을 보고 만족할 것이다. 그들은 살아서 바벨론에게 임한 심판을 볼 뿐만 아니라 바벨론이 처벌을 받은 것을 시온에 대하여 바벨론이 행한 잘못 때문임을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사람마다 이 심판을 보며 "진실로 세상을 살육하여" 그 나라를 멸망시킴같이 바벨론도 살육을 당하여 파멸될 것이다. 바벨론인들은 이스라엘의 무장한 군인들만 죽인 것이 아니라 분별없이 전 국토를(거의 모두가 칼로 해를 입었다할 정도로) 유린하였다. 이같이 바벨론도 그 성뿐만 아니라 "온 땅 사람이 살육을 당하여 엎드러지리라" 고 하였다(49절). 갈대아인들이 유다인들을 심판하였듯이 이제 고레스가 갈대아인들을 심판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구경군들이 바벨론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행한 악 때문에 하나님께서 바벨론에게 보수하심을 분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온의 자녀들은 그 가운데서도 특별한 방법으로 개선하게 될 것이다(10절). 그러므로 본문에 "여호와께서 우리의 의를 드러내셨다" 고 하였다. 즉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에게 부당한 처사를 행한 자들을 대적하시며 우리를 치료하시겠다는 뜻의 말씀이다. 또한 그가 우리와 화해를 이루셨으며 우리가 그의 보시기에 아직도 의로운 민족임을 나타내시겠다는 뜻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여호와가 찬양된다. 그러므로 "오라, 시온에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일을 선포하자." 다른 사람들도 초빙하여 그들도 우리와 함께 찬양하게 하자라고 하다.
Ⅳ. 시온의 송사를 지지하시고 이 거만하고 유력한 적에 대한 보수에 착수하신 하나님의 위대함과 그의 주권이 선언된다(14절).
이 사실을 말씀하시고 서원하시되 자기의 이름으로 서원하신 분은 곧 "만군의 여호와" 이시다(그가 자기 이름으로 서원하시는 것은 자기보다 더 큰 자가 없기 때문이시다). 만군의 여호와가 가공하리만큼 무수한 적의 군대로 바벨론을 덮으실 것이다. 그는 메뚜기떼가 덮혀 있듯이 바벨론이 사람으로 덮히게 할 것이다. 무리로 말미암아 바벨론이 압도될 것이요, 속수무책이 되어 비명이나 겨우 지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파멸이 너무나 두려운 것이어서 모든 주민들은 낙담하여 쉽게 수많은 군대의 먹이가 되겠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바벨론과 같이 강력한 왕국을 파멸시키신 분은 누구이며 어디에 계시는가? 선지자는 그가 전에 하나님에 대하여 묘사했던 말을 빌어 하나님을 설명한다. 그리고 모든 망령된 자들을 압도하시는 그의 주권과 승리에 대하여 설명한다(10:12-16). 앞의 말씀은 바벨론의 우상 숭배자들과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각각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예배의 중요성을 확신시키기 위하여 기록된 것이었다. 본문에서는 말씀으로는 그가 "만물 위에 뛰어나신 하나님이심을" 확신하지 못하는 자들에게 심판을 내리심으로 이 사실을 알리신다는 뜻에서 반복되어 기록된 것이다. 하지만 바벨론을 멸하기로 결정하신 하나님은 또한 그의 백성에게는 착한 일을 이루실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라고 본문에 기록되고 있다.
1. 바로 세상을 지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15절).
그러므로 그에게 할 수 없는 일이란 없으시다. 그의 이름에 의해서만이 우리는 도움을 얻을 수 있고 그의 위에서만이 우리의 소망은 세워질 수 있다.
2. 그는 그가 지은 모든 피조물에 대한 지휘권을 갖고 계시기 때문이다(16절).
그는 창조의 활동을 계속하신다. 그는 "바람과 비를" 마음대로 부리시며 말씀만 하시면 "땅에서 오른 수증기가 하늘에 모여 많은 물로 변모된다" (구름이 하늘에 걸려 있다니 이 얼마나 묘한 일인가!). 또한 수증기가 땅에서 올라가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가! 그뿐만이 아니다. 불과 물이 상극인 것처럼 "번개와 비" 는 상극적인 요소로 생각된다. 그러나 그것들은 함께 조화를 이루어 만들어진다. 또한 바람은 제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바람이 어디로부터 오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것도 하나님의 보고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다. 즉 그에 의해서 다스림을 받지 않는 것은 없는 것이다.
3. 그의 말씀의 실현을 막는 우상은 다만 가짜일 뿐이요, 우상 숭배자들은 야만인일 뿐이기 때문이다(17,18절).
우상들은 거짓된 것이요, 헛된 것이며 "망령되이 만든 것" 이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진리에 직면하면(그 진리에 의해 측정되고 조회되면) "멸망할 것이다." 즉 그것들의 명성은 사라지고 그것들이 아무 것도 아니란 사실이 나타날 것이다. 또한 "그것들을 만든 자들" 도 그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이방의 신들을 결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19절). 그러므로 본문에 "야곱의 분깃은 이같이 아니하시니" 라고 하였다. 이 일을 말씀하시고 또 행하실 하나님은 "만물보다 먼저 계신 분이요, 만군의 여호와" 이시다. 그러므로 그는 하고자 하시면 하실 수 있으시다. 하나님과 그의 백성은 친척의 관계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들의 분깃이요, 그들은 또한 하나님의 분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분깃으로서 하나님을 신뢰하였다. 또한 그는 그들이 만족한 모습을 보고 기뻐하시며 그들을 "그의 유업의 상속자" 로서 세심히 돌보신다. 그러므로 그는 그들을 위해 좋은 것이라면 무엇이나 실천하신다. 전에 말씀했던 사실을 본문에서 다시 반복하는 것은 이 말씀의 확실성과 중요성을 동시에 확인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로 하여금 이 말씀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게 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그의 교회의 무서운 적들을 파멸할 "권력이 하나님에게 속해 있음을 그가 한 번 말씀하셨을지라도 우리는 그 말씀을 재삼 음미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한 번이 아니라 두 번까지 말씀하신다면 우리가 그 말씀을 알지 못하여 행하지 못하였다고 변명할 수는 없으리라.
Ⅴ. 바벨론을 멸하는데 쓰여지는 국가(도구)에 대한 말씀.
이제 하나님께서는 "메대 왕들의 마음을 격발하신다" (11절). 이들은 다리오와 고레스로서 신의 뜻에 의거하여 바벨론을 치러온다. 왜냐하면 "바벨론을 멸하기로 하신 것" 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이 일을 실행하는 것은 인간이지만 이 일을 계획하시고 도모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들은 다만 그의 목적을 이루며 그의 지시하신 대로 이행할 뿐이다. 하나님의 뜻은 영원히 설 것이며, 그 뜻에 따라 모든 인간들의 마음이 움직일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본문에서 하나님이 바벨론을 치시기 위하여 준비한 자들이 "파괴하는 바람" (1절)으로 묘사되고 있다(한글 개역과 내용이 일치하지 않음:역주).
바람이 지닌 맹위가 그 앞에 닥치는 것을 떨어뜨리듯이 그들이 파괴하리라는 뜻이다. 이 바람은 "하나님의 곳간에서 비롯된 것이다" (16절). 그런데 본문에는 이 바람이 "일어나 갈대아인들이 거하는 중심 지역을 강타하리라" 고 말씀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들 가운데 거하며 그들과 유대를 맺고 있는 이민족들 가운데를 강타하리라고 한다. 갈대아인들은 우상 앞에 절함으로 하나님께 거역하였다. 이제는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시어 파괴하는 자들을 그들에게 보내신다. 하나님이 대적하시면 누구도 하나님을 당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본문에 바벨론을 치는 자들이 바람을 일으키는 "키질하는 자" 에 비교되고 있다(2절). 왜냐하면 "키가 쭉정이를 몰아내듯이" 그들이 바벨론인들을 몰아낼 것이기 때문이다. 갈대아인들이 한때에는 하나님의 백성을 키질하는 자였었다(15:7). 그리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거하는 땅을 비게 하였었다. 이제는 그들이 같은 운명에 처하여 약탈을 당하고 흩어지게 된다.
Ⅵ. 바벨론 전 국토를 파괴하고 황폐하게 하라는 전권이 메대인들에게 주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본문에 갈대아인들의 "궁수를 향하여 활을 쏘며" (3절), "바벨론의 청년을 아끼지 말며 그들을 진멸하라" 고 하였다.
"이는 여호와께서 바벨론 거민에 대하여 말씀하신 대로 경영하시고 행하심이다" (12절). 메대인들에게는 그들의 성공이 확실시되므로 무한한 힘을 얻는다. 그들이 취하고 있는 길은 바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생각해 내신 것이므로 그들이 잘되리라는 것은 확실하였던 것이다. 그는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신다. 왜냐하면 그가 손수 그 일에 손을 대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저 인간은 준비만 갖추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27절과 28절에서 바벨론을 치는 일에 그들이 불리움을 받는 모습을 보게 된다. 거기 "기를 세우라" 고 하였다. 그리고 그 깃발 아래 이 전쟁을 위한 군대를 모집하라고 한다. "나팔을 불어서" 사람들로 깃발 아래 모이게 하고 그들의 용기를 북돋아 주라고 한다. 열국으로 하여금 신병을 모집하게 하라고 하신다.
이 열국 가운데서 고레스의 군대가 징집된 것이다. "아라랏과 민니" 와 아르메니아의 "아스그나스 나라" 혹은 브리기아와 비시니아 옆에 있는 아스가니아 나라로 고래스에게 충성할 병사를 담당한 만큼 보내게 하라고 한다. 장교를 임명하고 기병대를 정열하며 메뚜기처럼 무수한 말들을 끌어다 골짜기에서 뛰며 발길질하게 하라고 하신다. "메뚜기가" 하는 것처럼(욜 1:4) 특히 메뚜기 중에도 사나운 메뚜기 떼가 하는 것처럼 그들로 바벨론 땅을 황폐케 하라고 한다. 또한 열왕들과 족장들로 바벨론에게 항거할 준비를 갖추라고 한다. 바벨론을 치는 역사는 엄청난 것이었으므로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군대가 동원되고 있다.
Ⅶ. 갈대아인들의 무력(無力)함.
그들은 위협적으로 그들을 파괴하며 닥치는 군대에 맞서서 싸울 아무런 능력도 없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들어서 다른 민족들을 치실 때 그들은 용기백배하여 공격을 수행하였다. 그들은 놀라울 만한 결의를 가지고 정복하고 또 정복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의 때가 차서 그들의 힘과 용기가 없어지고 그들의 마음이 낙망할 때가 이르렀다. 용사들 중 아무도 나서서 침략을 저지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도 싸울 준비를 하라고 본문에 보면 불리움을 받고 있다. 그러나 나무라는 어조로, 비웃는 어조로 그들이 불리움을 받고 있다(11절). "화살을 갈라" 하였는데 이는 오랫동안 사용치 않아서 녹슬어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방패를 모두어라" (한글 개역에는 "방패를 잡으라" 로 되어 있음:역주)고 하였는데 이는 오랜 평화와 안정으로 방패가 여기저기 흩어져 딩굴고 있음을 뜻하는 말이다(12절).
또 "바벨론 성벽" 곧 성벽 여러 곳에 세워진 망대 위에 "기를 세우라" 하였는데 이는 바벨론의 서울을 수호하기 위하여 지방들의 도움을 요청하는 깃발을 뜻한다(한글 개역과 공동 번역에는 11,12절이 갈대아를 공격하는 메대의 전쟁 준비를 독려하는 뜻으로 기록되고 있으나 저자는 갈대아인의 전쟁 준비를 독려하는 말씀으로 흠정판을 보고 그렇게 해석하고 있다. 착오없기 바란다. R.S.V.도 우리말과 같은 뜻으로 번역하고 있다:역주). 갈대아인들에게 할 수 있는 대로 경비를 강화하라고 한다. 보초로 각자의 위치를 지키게 하며 적들을 맞이하기 위해 복병을 매복시키라고 한다. 이러한 기본적인 것들을 지시하는 것을 보아 그들이 평소에 얼마나 안일무사주의에 빠져 있었는가를 짐작케 된다.
그러므로 그들을 독촉하여 정신을 뒤찾게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그들이 이렇게 태만하여 있었으므로 개중에는 성이 점령당했을 때도 모르고 주색에 빠져 있는 자들도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준비를 해보았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그들을 싸움터로 소집하는 자가 누구이든지간에 그 부름에 즐겨 따르고자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고 한다. 온 "땅이 진동하며 슬픔이" (이 슬픔은 모든 사람에게 임한다) 그들을 사로잡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자기들을 치시는 하나님의 누구도 꺾을 수 없는 팔과 변개할 수 없는 뜻과 그의 선고를 경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황무케 하시는 것을 볼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 목적하신 바를 이루심을 볼 것이다. 그러므로 "바벨론의 용사는 싸움을 포기한다" (30절).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력을 쇠하게 하시므로 그들은 요새에 숨어서 내다보는 것조차 두려워서 못한다.
그들의 마음과 손에 힘이 온통 빠진다. 그리하여 그들은 "여인처럼" 소심하게 되며 따라서 적들은 아무 저항도 받지 않고 "바벨론의 주거지를 불사르며 성문의 빗장을 깨뜨린다." 56-58절의 말씀도 30절의 말씀과 같은 취지의 말씀이다. 노략자들이 바벨론에 닥칠 때 앞장서서 그들을 막는 바벨론의 용사들이 즉시 사로잡히고 그들의 병기는 위력을 잃는다. "그들의 활마다 꺾여져서" 방어력을 잃고 만다. 정치적인 모든 노력도 허사로 끝난다. 전략회의를 소집하나 공공안녕을 도모하기 위하여 불리움을 받아 회의에 참석한 방백들과 족장들은 취한 사람처럼 얼이 빠져 앉아 있는다. 그들은 우매와 낙담으로 말미암아 취한 사람과 같은 형색이다. 그들은 사리에 대한 분별력을 잃고 있다. 그들은 숙의하고 결단함에 있어서 갈팡질팡한다. 그들은 의견에 있어서 서로 좌충우돌하다가 주정뱅이처럼 기진해 자빠지고 만다.
결국 그들은 "영영히 자고" 그들이 마신 포도주 곧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는 그들을 치명적인 혼수상태에 빠뜨리는 아편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바벨론의 넓은 성벽" 도 그들의 의지가 되지 못한다(58절). 유브라데스를 건널 길을 찾으면서 적들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건널 길이 없구나 하였으나 그들은 건널수 없었고 성벽에 도달하여서는 그 벽이 넓으므로 도저히 함락시키지 못할 것으로 여겼으나 함락시킬 수 있었다. 벽으로 둘러싸인 성의 크기는 지름이 약 이백 리나 되었다. 어떤 이는 그 지름이 240리라고 하기도 한다. 또한 성벽은 높이가 200규빗이었고 성벽의 폭은 40규빗이었다. 이 정도의 폭이라면 마차 두 대가 성벽 위에서 마주 지나갈 정도의 폭이었던 것이다.
어떤 이들은 바벨론 성이 외성 내성으로 있으며 그 벽이 각각 삼 중으로 되어 있다고 하기도 한다. 또 성을 쌓을 때 회반죽으로 하지 않고 역청을 발라서 돌을 쌓아 올렸으므로(창 11:3) 견고하기가 이를데 없었다. 그러나 이 성벽이 "온전히 무너지겠고, 그 높은 문들과 망대는 불에 탈 것이라" 고 한다. 또한 성을 방어하기 위하여 동원된 백성들은 "불 속에서 헛되히 수고한" 결과가 되고 말 것이라고 한다. 그들이 기진할 때 까지 일해도 아무런 유익도 없을 것이라고 한다.
Ⅷ. 침략자들이 바벨론에 가하게 될 파괴에 대하여.
1. 파멸은 이미 결정된 것이었다.
운명은 결정되었고 따라서 변경될 수 없었다. 하나님이 바벨론을 그의 능력으로 치시고자 하셨다. 신의 능력은 저지할 수 없는 것이었다(8절). 그러므로 본문에 "바벨론이 졸지에 넘어져 파멸되니" 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바벨론이 넘어져 파멸하는 것이 확실하다는 것을 나타내 주고 있다. 그러므로 이미 바벨론이 넘어져 파멸된 것처럼 본문은 말하고 있다. 예레미야가 이 말씀을 예언할 때 그리고 그 후 오랫동안 바벨론은 최대의 융성을 누리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라, 나는 네 대적이라" 선언하시며 바벨론에 반대 입장을 취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이 대적하는 자는 오래 버틸 수 없는 법이다. "그가 그의 손을 바벨론 위에 펴신다." 그런데 그의 펴신 손의 무게를 감당하거나 그 손이 지닌 위력을 지탱할 피조물은 아무도 없다. "바벨론이 황무해지는 것" 그것이 그의 목적이었고 그러기에 그 일은 성취되고 말 것임을 알아야 한다(29절).
2. 바벨론이 파멸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에 부합되는 일이었다.
바벨론이 파멸당할 짓을 자행하였다. 그러므로 그것을 면할 도리가 없었다. 바벨론은 "멸망시키는 산" 이었다(25절). 바벨론은 산처럼 고자세였고 거만하여 높은 산에서 굴러 떨어지는 바위들이 지나가는 곳을 쑥밭으로 만들 듯이 "온 세계를 멸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바벨론이 그것을 견고하게 버팅겨 주었던 암반에서 떨어져 나가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바벨론이 쓰러질 것이요, 그러면 그 거만과 위력도 부서질 것이라고 한다. 바벨론은 지금까지 불을 내뿜는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산이었다. 그리하여 주변 국가들에게 두려움이 되었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것이 다 타버린 산이 될 것이다. 결국 바벨론이 스스로 소진되고 말 것이다. 그리하여 잿더미만 남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도 종말에 그와 같이 될 것임을 기억하자. 또 "바벨론은 타작 마당과 같다" 고 하였다(33절). 이 타작 마당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곡식단이 타작당하듯이 타작을 당해 왔었다. 그러나 이제는 바벨론이 타작당할 시기가 오고 있다고 한다. 바벨론의 방백들과 위인들과 모든 주민들의 타작마당에서 곡식단이 탈곡되듯이 자기의 나라에서 두들겨 맞을 것이라고 한다. 타작마당이 준비되었다. 바벨론은 죄로 말미암아 전쟁터가 될 처지에 있었고 바벨론의 백성은 추수 때의 곡식과 같이 파멸을 위하여 무르익어 있었다(계 14:5; 미 4:12).
3. 파멸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바벨론은 파멸에 대처할 방비가 잘 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바벨론은 수자원이 풍성한 나라였다(13절). 바벨론의 입지적 조건은 적이 침입하기 어려운 위치였다. 그 국토는 강으로 둘러싸여 있으므로 적이 침입하기에는 대단히 힘든 곳이었다. 이 사실에 근거하여 본문에 있는 바벨론이 그러한 것처럼 신약의 바벨론도 많은 나라들을 다스리기 위하여 "물 위에" 세워졌다고 하였다(계 17:15). 또한 바벨론은 "재물이 많은" 나라였다. 그렇지만 "너희 끝날이 이르렀다" 고 본문은 선언한다. 방어하기에 유리한 강들도 많은 재물을 바벨론을 구하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이로써 "그들의 탐욕" 이 끝이 날 것이요, 그들이 물자를 절약하여 써야 될 것이라고 한다. 이로써 그렇지 않았으면 끝이 없이 뻗어나갈 그들의 야망과 탐욕이 좌절될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바벨론을 멸하심으로 오만한 파도와 같은 그들을 향하여 "너희가 여기까지는 이를 수 있었으나 더 이상은 나가지 못하리라" 고 말씀하신다.
만일 인간이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은혜를 통하여 그들의 탐욕을 절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심판을 내리심으로 그 탐욕을 제지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바벨론은 스스로 안전하고 크다고 생각하며 매우 오만을 부리었다. 그러나 스스로 속고 있는 줄은 모르고 있었다(53절). 그러므로 본문에 "바벨론이 그 성벽을 산처럼 높이 쌓고 그 궁전을 하늘 위에 세우며 방비를 물샐틈 없이 한다고 해도 이 모든 것이 아무 소용도 없을 것이라" 고 한다(높이 쌓을수록 무너질 위험이 많은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이 약탈자들을 바벨론에 보내실 것인데 그들이 그 요새를 점령하고 바벨론의 콧대를 꺾을 것이라고 한다.
4. 파멸이 임하기 전에 시간적 여유는 있었다.
그들이 조금만 신경을 썼어도 그 파멸을 내다보고 경각심을 가질 여유는 있었다. 왜냐하면 고레스가 대대적으로 전쟁을 준비한다는 "소문이 한 해에 계속 떠돌았고" 그가 치고자 하는 곳은 다름아닌 바벨론이라는 "소문이 다른 한 해 동안 떠돌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고레스가 침략하기 전 아직 멀리 있을 때 사절을 보내어 평화조약의 체결을 요청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에는 그들은 너무나 거만하였고 또 안일에 빠져 있었다. 그들은 파멸을 당하려고 마음이 이미 완고하여져 있었다.
5. 점진적으로 임하기는 하나 그것이 임하면 파멸은 가공할 것이 되겠다고 한다. 그러므로 본문에 "바벨론이 졸지에 넘어지리" 라고 하였다(8절).
실로 생각지도 않은 때에 파멸이 임하여 순식간에 모든 것이 끝장이 났다. 이는 마치 신약 시대의 바벨론이 "일시간에" 망하리라고 한 말씀과 같은 것이었다(계 18:17). 적이 접근해오는 것을 주시하고 있어야 했던 바벨론 왕은 공격을 받고 있는 곳으로부터 자신이 멀리 떨어져 있었으므로 성이 점령당하였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므로 위기에 처한 곳에 있는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리고자 연이어 급사를 보내었다(31절). 게다가 "성의 한 쪽이 함락되었다" 는 소식은 급사에 의해 직접 전달되지 못하고 궁전에서 1마일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근위병에게 전달되어 그가 도보로 왕에게 이 소식을 전해야 했었다.
그러니 이 정복자들의 전진을 저지할 방어선이 구축되지 못하였고 그러기에 그들은 순식간에 성 전체를 점령하고 말았다. 늦게 도착한 근위병들이 전한 소식은 이러하였다. "적이 요로를 점령하였습니다. 요새가 강변의 전략요충지가 점령당했고 적은 강을 확보하였습니다. 적은 성에 공포를 안겨 주려는 의도에서 강변에 자라는 갈대에 불을 놓았고 이를 보고 모든 병사들은 놀라 무기를 버리고 무조건 항복하였읍니다" 라고 하였다. 욥에게 비보를 알리는 사자들이 숨돌릴 사이도 없이 달려왔듯이 이 때에도 사자들이 급보를 가지고 연이어 달려왔다. 그리고 이들이 전한 소식은 곧 적들이 궁중에 들이닥쳐 왕 자신을 시해함으로 사실로 실현되었다(단 5:30).
성이 점령되던 바로 그 시각에 그들이 베풀고 있었던 저주스러운 주연은 그들에게는 현실과는 맞지 않는 안정을 느끼게 하였고 적들에게는 대단한 유익이 되었다. 38,39절에 "다 사자같이 소리하며" 라고 한 말씀은 취흥이 도도한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술이 머리꼭대기까지 취한 그들의 상태를 나타내 주는 말씀인 것 같다. 그들 나름으로는 노래를 한다고 지른 소리가 취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어린 사자의 울부짖음" 으로 들리었다. 그러므로 성서에도 그렇게 나타내고 있다. 그들은 만취하여서 고레스와 그의 군대들이 쳐들어오는 소리를 커다란 만세 소리로 착각하였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취흥이 도도하여 열광하고 있는 무리들에게는 그들의 취중에 "그들의 연회로 화가 되게 하겠다" 고 하셨다(사 5:11). 그들은 술잔을 돌려가며 건배하였다.
하박국에 "여호와의 오른손의 잔이 너에게로 돌아올 것이라" (합 2:15, 16) 하였는데 바로 그들이 돌려가며 건배한 잔이 그러한 잔이었다. 곧 진노의 잔을 그들이 마시었다. 이 잔은 일시적으로는 "그들로 취하여 기뻐하게 하지만(이 잔은 그들이 자청하여 마신 것이라 하겠다) 그들로 영영히 잠들게 하는 잔이다." 그들이 쓰디쓴 잔을 마시며 맘껏 즐거워하지만 이 잔이야말로 그들로 결코 깨지 못할 잠이 들게 하는 잔이었던 것이다(57절). 왜냐하면 바로 그 밤에, 잔치 도중에 "벨사살이 살해당하였던 것이다."
6. 그 파멸은 모든 사람에게 임하였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철저히 멸하고자 하셨다.
하나님은 목적한 것을 시작하신 의도대로 꼭 이루고야 마신다. 고로 갈대아 전토에 걸쳐 살육은 넘치게 자행될 것이며 많은 무리가 "거리에서 찔림을 당할 것이라" 고 하였다. 그들은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양처럼 끌려가리라" 고 하신다(40절). 즉 바벨론인이 아무리 많아도 그들을 죽이는 것이 용이한 일이어서 적들이 그들을 마치 백정이 양을 죽이기보다 쉽게 죽이라는 말씀이다. 침입자들의 세력과 그들의 침입하는 모습이 본문에서 물이 범람하여 밀려들어오는 것으로 비교된다(42절). 그러므로 "바다가 바벨론에 넘침이여" 라 하였다. 즉 이 말씀은 한 번 전선이 무너지면 그것을 막을 도리가 없다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바벨론은 "무수한 파도에 휩싸이고 만" 형국이 된다. 즉 무수한 적병에 의하여 압도되었다. 그 때 바벨론의 "성읍들은 황폐하여" 살 수 없는 불모지의 사막이 되고 말았다(43절).
7. 이 파멸은 바벨론의 신들, 그 우상들과 신상들에게도 임할 것이라고 한다.
대단한 기세로 파멸이 바벨론의 우상들에게 덮칠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본문에 "전국에 혼란이 일어나고 칼에 맞은 자들이 쓰러지며 전국에 걸쳐 부상자들의 신음이 넘친다는 표시로 내가 바벨론의 조각한 신상들을 벌할 것이라" 고 한다(47,52절). 그들이 보호를 기대하던 신들이 멸한다는 것은 곧 그들 모두가 멸망한다는 것을 뜻한다. 침략자들 자신도 우상 신봉자들이었지만 모든 거짓 신들은 멸망하고 만다는 표시로 그들은 바벨론의 신상들과 신전들을 부술 것이라고 한다. 바벨론 사람들이 경배하는 주신(主神)은 벨 신이었다. 본문에서는 그 이름을 제시하여 파멸을 나타내고 있다(44절). 즉 "내가 벨을 벌하리라" 고 말씀되고 있다. 벨은 받아 먹기만하는 신이었다. 그 신상에 사람들은 풍성히 제물을 바쳤고 또 많은 전리품들도 그에게 바쳐지곤 했었다. 벨의 신전에는 사람들이 쉴사이 없이 몰려들곤 하였다. 그런데 이제 벨이 그렇게 탐욕스럽게 먹었던 것을 토해낼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그의 신전에 쌓인 모든 재물을 끌어내시겠다고 하신다(욥 20:15). 벨의 제단은 버림을 받을 것이요, 아무도 벨을 돌보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바벨론의 수호신이라고 생각되었던 우상이 넘어지며 그 거민에게 실망을 안겨 줄 것이라고 한다.
8. 이 파멸은 재기불능의 파멸이 되리라고 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바벨론의 창상을 인하여 유향을 구하나 헛되리라" 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치료함을 받지 않으려 했던 바벨론은 자연의 섭리에 의해서도 치료함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8절). 바벨론은 "황폐한 무더기가 될 것이요" (37절) 그리하여 그 오명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파멸한 바벨론은 혐오감을 풍겨 주며 불길한 생각을 지니게 할 것이므로 패망한 바벨론을 다시 일으키려고 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26절). 이를 가리켜 본문에 "사람이 네게서 집 모퉁이 돌이나 주춧돌을 취하지 아니할 것이요" 라고 하였다. 사람들은 바벨론과 아무런 관계도 맺으려 하지 않을 것이요, 바벨론에 속한 것은 무엇이든지 쳐다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이 말은 바벨론을 다시 왕국으로 일으킬 수 있다는 어떤 희망이나 계획을 세워볼 아무런 근거도 없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바벨론이 영원히 멸망되겠기 때문이다." 성 제롬(St. Jerome)은 자기가 살던 때에 바벨론의 정황을 이렇게 전해 준다. "바벨론의 무너진 벽은 볼 수 있었지만 예전의 번화로웠던 시가지는 야수들이 들끓는 숲이 되어 있었다" 라고.
IX. 하나님의 백성에게 바벨론을 떠나라는 명령이 본문에 수록되고 있다.
파멸의 순간이 다가올 때 성을 떠나서 농촌에 숨어 지내는 것이 지혜로운 처세이다(6절). 그러므로 본문에 "바벨론의 중심부에서 도망하여 벽촌으로 들어가라. 그러면 너희가 살고 바벨론의 패륜이 벌받는 속에서 함께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고 한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소문이 퍼지게 되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고라의 장막으로부터 멀리 도망갔듯이 하나님을 향해 거역하는 자들에게서 할 수 있는 대로 멀리 피하는 것이 좋다. 이 사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그의 제자들에게 주신 충고의 말씀과 일치한다. 말씀하시기를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 것이라(마 24:16)고 하시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바벨론 백성과 함께 취급되지 않도록 "바벨론 가운데서 도망하는" 것이 지혜로운 처사인 것이다. 바벨론 가운데 있다 해도 그들처럼 멸망당하는 일이야 없겠지만 공연히 공포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떨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45,46절). 그러므로 본문에 "너희 마음을 겁약하게 말며 이 땅에서 들리는 풍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고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고레스는 그들의 구원자가 될 것이며 바벨론의 패망은 그들에게는 해방을 가져올 사건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또 한편 말씀하시기를 "바벨론 성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 고 하셨던 것이다(29:7). 그러므로 바벨론의 멸망이 그들에게 구원이 되기는 하겠지만 한편 바벨론에게 주어진 경고는 그들에게도 겁을 줄 것이며 또 그들이 이 두려움을 억제할 만한 믿음이나 깊은 생각이 걸여될 수도 있겠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들에게 경고의 외침이 들리지 않을 곳으로 피하라는 충고가 본문에 주어지고 있다. 유혹을 당할 때 그것을 극복할 만한 자제력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사람들은 유혹에서 멀찍이 피하여 버리는 것이 지혜로운 일임을 기억하자. 파멸이 임박할 때 성을 떠나는 것은 물론 지혜로운 일이다. 그러나 파멸이 실현되었을 때는 농촌도 떠나는 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이와 같이 그들의 머리를 누르고 있는 부자유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는 것이 그들이 해야 할 일이었다. 이 사실이 50,51절에서 언급되고 있다. "너희의 압제자였던 갈대아인의 칼을 면한 너희 이스라엘 자손들이여 또한 갈대아인을 멸할 페르샤인들의 칼을 면한 너희여 이제 너희 구원의 해(年)가 되었도다. 그러니 서지 말고 행하라. 서둘러 다시 너희 조국으로 돌아가라. 설혹 바벨론에 편히 안주할 수 있게 된다 할지라도 이곳은 너희가 쉴 곳이 아니라, 너희의 쉴 곳은 가나안 땅이로다" 라고 한다.
1.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의 마음에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불러 일으키신다. 그리하여 이렇게 말씀하신다.
"전에 하나님이 너의 조상들에게 나타나실 때 그는 성전에서만 나타나시었다. 그러나 그곳이 훼파되었고 너희가 고토를 떠나 이 곳에 있게 되므로 그는 이곳까지 너희를 따라 오셨도다. 그러나 이제는 예루살렘에서 나타나셨던 여호와를 생각하라" 하신다. 우리가 어느 곳에 있는다 하여도, 설혹 가장 깊은 곳에 거하는, 가장 먼 곳에 거하는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해야만 한다. 또한 최대의 두려움에 직면해 있든지 큰 희망을 품은 때에 "여호와를 기억하는 것" 이 합당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하나님은 계속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예루살렘을 마음에 기억하라. 그곳이 지금은 훼파되었지만 그 티끌도 연휼히 여길지라(시 102:14). 또 너희 중에 그곳을 본 자들이 거의 없지만 시온을 기억하고 온 분들로부터 그곳에 관하여 너희에게 전하여 진 이야기를 믿도록 하여라. 예루살렘을 생각하고 또 그곳으로 가는 것이 최선의 길이니 그렇게 결단하라" 하신다. 우리의 거룩한 도성이 눈 앞에 안 보인다고 마음에서까지 그 모습을 몰아내서는 안된다. 하늘의 예루살렘에 대한 환상을 우리의 마음에 자주 기억하는 것 그것은 이 세상을 걸어가는 우리의 여행에 큰 유익을 준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2. 하나님은 귀향하는 포로들이 겪을 실망에 대하여 암시하신다(51절).
그들이 도중에 예루살렘에 대한 소식을 듣고 이렇게 부르짖는다. "우리가 수치를 당하였도다. 예루살렘이 그와 같이 되다니! 얘기만 들어도 얼굴이 뜨거워지는구나. 성소가 모욕을 당하고 이방인들에 의하여 파괴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마음이 민망하도다. 예루살렘을 생각하여도 마음에 기쁨이 없구나" 라고 한다. 이러한 말에 대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답변하신다(52절). "내가 바벨론의 신들을 이겼노라. 그러므로 이제 예루살렘의 수치가 영원히 굴러갈 것이라." 예루살렘이 회복되리라는 믿음 때문에 우리는 예루살렘이 멸망할 수치를 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X. 바벨론의 함락으로 야기될 여러 가지 감회가 본문에 수록되고 있다. 신약의 바벨론이 무너질 때의 우리의 심정 또한 그와 같으리라(계 18:9, 19).
1. 어떤 이들은 바벨론의 멸망을 슬퍼할 것이다. 그러므로 "바벨론에서 부르짖는 소리가 들린다" (54절).
그것은 대단한 곡성이다. 이 슬픔의 소리는 바벨론의 어마어마한 파멸로 인하여 생긴 것이다. 이는 여호와께서 무리의 "떠드는 소리" 곧 바벨론에서 들려지던 환락의 소리를 끊으셨기 때문이다(55절). 그들이 통곡하면서 하는 말이 본문에 기록되고 있다(41절). "슬프다. 세삭이 함락되었도다. 믿어지지 않는 일이로구나! 찬양을 받고 영광을 누리며 온 세상의 경이의 대상이 되었던 곳이 열국 가운데 놀림과 수치가 되었도다!" 누구에게나 칭송을 받던 곳이 금방 모든 사람의 경멸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2. 한편 바벨론의 몰락을 기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한다.
물론 이 기쁨은 같은 인간들의 곤경당함을 인한 것이 아니요, 바벨론 멸망이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의 나타남이요 또 포로로 된 하나님의 백성의 해방을 위한 활로를 열어 주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 비롯된 기쁨이었다. 본문에 이러한 분위기를 표현하여 "하늘과 땅과 그 중의 모든 것이 바벨론을 인하여 기뻐 노래하리니" 라고 하였다(48절). 하늘에 있는 교회와 땅 위에 있는 교회가 하나님에게 그의 공의로우심에 대한 영광을 돌리며 감사에 넘친 찬양으로 이를 널리 알릴 것이라고 한다. 바벨론의 멸망은 곧 시온에게는 찬양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