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여호수아 9, 시편 140, 141, 예레미야 3, 마태복음 17
묵상구절
16:44 <그 어머니에 그 딸> 속담을 말하는 자마다 네게 대하여 속담을 말하기를 어머니가 그러하면 딸도 그러하다 하리라
16:45 너는 그 남편과 자녀를 싫어한 어머니의 딸이요 너는 그 남편과 자녀를 싫어한 형의 동생이로다 네 어머니는 헷 사람이요 네 아버지는 아모리 사람이며
16:46 네 형은 그 딸들과 함께 네 왼쪽에 거주하는 사마리아요 네 아우는 그 딸들과 함께 네 오른쪽에 거주하는 소돔이라
16:47 네가 그들의 행위대로만 행하지 아니하며 그 가증한 대로만 행하지 아니하고 그것을 적게 여겨서 네 모든 행위가 그보다 더욱 부패하였도다
16:48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 아우 소돔 곧 그와 그의 딸들은 너와 네 딸들의 행위 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6:49 네 아우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그의 딸들에게 교만함과 음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 주지 아니하며
16:50 거만하여 가증한 일을 내 앞에서 행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보고 곧 그들을 없이 하였느니라
16:51 사마리아는 네 죄의 절반도 범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네가 그들보다 가증한 일을 심히 행하였으므로 네 모든 가증한 행위로 네 형과 아우를 의롭게 하였느니라
16:52 네가 네 형과 아우를 유리하게 판단하였은즉 너도 네 수치를 담당할지니라 네가 그들보다 더욱 가증한 죄를 범하므로 그들이 너보다 의롭게 되었나니 네가 네 형과 아우를 의롭게 하였은즉 너는 놀라며 네 수치를 담당할지니라
매튜헨리/옥스퍼드
●예루살렘의 죄악과 징벌(에스겔 16:44-59)
선지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예루살렘을 그 이전의 장소들과 비교하고 예루살렘이 이전의 어느 것보다 악했다는 것을 제시함으로써 예루살렘에게 그 가증한 것들을 보여 준다. 따라서 그는 예루살렘이 그들처럼 복구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파멸을 당하리라고 설명한다. 우리는 누구나 비교에 의해서 자신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아무게 만큼만 선하면 괜찮다는 식으로 생각하거나 모모한 자보다 악하지 않으면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게 보통이다. 이제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 예루살렘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제시하신다.
Ⅰ. 예루살렘은 그 어미 즉 저주받은 가나안인 만큼 악했다. 가나안인은 그보다 먼저 그 땅을 소유했던 자들이었다. "그 어미에 그딸" 이란 속담을 사용하는 자들은 그 속담을 예루살렘에 대해 적용할 것이다(44절). 예루살렘은 그 어미의 자식이다. 유대인은 마치 가나안인의 자식이라도 되는 듯 기질과 성향에 있어서 가나안인과 같다. 어미의 특성은 그녀가 그 남편과 자녀를 싫어하며 음녀의 표적을 다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딸의 특징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소시의 짝 버리며 자기 배에서 나온 자녀들에게 야만적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을 때 그들보다 앞서 있던 그땅 사람들의 가증한 대로 행치 말 것을 각별히 경고하셨다. 왜냐하면 그 땅의 악은 그 땅의 주민을 토해냈기 때문이다(레 18:27, 28). 우상 숭배의 기념물은 우상 숭배자들과 함께 그들에게 끊임없는 유혹이 되었다. 하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가나안 선주민의 행위를 습득하고 그들의 전철을 밞으며 가나안의 우상에게 탐닉하였다(시 106:38). 이와 같이 모방이란 점에서는 실로 그들의 어미가 헷 사람이요 그들의 아비가 아모리 사람이라고 말할만 했다(45절). 왜냐하면 그들은 아브라함과 사라를 닮았다기보다 가나안인을 더 닮았기 때문이다.
Ⅱ. 그들은 그 자매였던 소돔과 사마리아보다 더 악했다. 소돔과 사마리아는 역시 음녀였고 그 남편과 자녀를 싫어했으며 자기 열조의 신들에게 싫증을 냈다. 그들은 새 신의 소개에 열중했다. 그들은 새 신의 소개에 열중했다. 그들은 유행 따라 일어나는 새 신과 새 종교를 도입했고 변화에 몰두했다.
선지자는 그들을 회개의 수치 속으로 몰아넣거나 그들의 파멸로 하나님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예루살렘과 그 자매를 상세히 비교시킨다. 다음 사실을 관찰하자.
- 예루살렘의 자매는 누구인가? 그것은 사마리아와 소돔이었다(45절). 사마리아 형(언니)이라고 불리운다. 왜냐하면 사마리아는 훨씬 더 큰 성읍이었고 왕국이었던 때문이다. 사마리아는 더 부유하고 더 괄목할 만한 상대였으며 이스라엘과 더 밀접히 연합되어 있었다. 예루살렘이 북쪽으로 향해 본다면 사마리아는 부분적으로 그 왼쪽에 있다. 사마리아성과 그 어미성의 딸과 같던 도시와 촌락들은 영적 음행으로 말미암아 근자에 멸망되었다. 소돔과 그 딸 같던 인접 도시와 촌락들은 예루살렘 오른쪽에 위치한 동생이었다. 그들은 예루살렘보다 작았고 사마리아보다 작았으며 그 현세적 음란으로 인해 옛적에 파멸을 당했다(유 7).
- 예루살렘의 죄는 그 자매 특히 소돔의 죄와 방불하였다(49절). "네 아우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그 딸들에게 교만함과 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니라." 여기에는 "네 죄악도 이러하니라" 라는 의미가 암시되어 있다. 소돔의 극히 흉악한 죄였던 남색은 널리 알여진 악명 높은 죄였으므로 여기에 언급되지 않고 그다지 악하게 보이지 않던 죄가 나온다. 이 죄들은 보다 극악한 죄의 씨앗이자 문빗장으로서 소돔의 죄의 양을 채우기 시작하였고 결국에는 부자연스런 음란으로 채워진 것이다. 이들 죄악의 시초는 다음 네 가지다.
(1) 교만. 교만심은 스스로를 하나님과 다른 사람보다 높이며 대적하게 만든다. 교만은 천사를 악마로 변케 하고 여호와의 동산을 지상의 지옥으로 전락시킨 첫째 죄였다. 의로운 롯을 멸시하고 그의 견책을 받지 않으려 한 것이 소돔인의 교만이었다. 이 죄 때문에 그들의 멸망은 성숙했던 것이다.
(2) 탐식. 이것은 본문에서 식물의 풍족함이라고 표현되고 있다. 그들에게 풍족함이 있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큰 자비였으나 그들이 자기 풍족을 남용하며 탐식하고 과음과식하며 생명의 유지를 위해 주어진 것을 포식하도록 충족시킨 것은 그들의 큰 죄였다.
(3) 게으름(풍부한 게으름:원의). 그것은 수고에 대한 두려움과 안일의 사람이었다. 그들의 나라는 비옥했고 그들의 풍족은 손쉽게 왔다. 이것은 그들에게 나태의 유혹을 가져왔고 그들에게 정욕을 불사를 가증한 음행심을 일으켰다. 게으름은 많은 죄의 입구가 된다는 데 주목하자. 소돔 사람들은 게을렀고 악했으며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다(창 13:13). 고인 물에는 오물이 모이며 앉아 있는 새는 새잡이의 표적이 된다. 다윗은 저녁 때 침상에서 일어나다가 밧세바를 보았다. Quoeritur, AEengistus quare sit factus adulter? in promput causa est- 즉 엔기스투스를 간음자로 만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방종이다.
(4) 압제. "그는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 주지도 않았다." 여기에는 그가 빈궁한 자의 손을 오히려 약화시키며 그들의 팔을 꺾었다는 것이 암시되고 있다. 제물이 많고 따라서 권세와 여가를 아울러 가진 자들이 빈자의 구제를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매우 악했다. 식물이 풍족한 자들은 빈자의 궁핍을 위해 희사하며 시간을 선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풍족하다 하여 그렇게 빈둥거려서는 안 되지만 실정은 그렇지 않았다. 이러한 것들은 소돔인의 죄였고 예루살렘의 죄이기도 했다. 그들의 죄의 원인인 교만이 다시 언급된다(50절). 그들은 거만하여 가증한 일을 여호와 앞에서 행하였다. 그것은 죄의 두려운 결과였다. 인간은 불경건과 사악의 절정에 점차적으로 도달한다. Nema repente fit turpissimus-즉 단번에 사악의 절정에 도달하는 이는 없다. 교만이 한 사람에게서 세력을 가질 때 그는 모든 가증의 첩경에 선 셈이다.
- 예루살렘의 죄는 소돔과 사마리아의 죄를 훨씬 능가했다. 그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보다 극악했다. 이것은 그들 자신의 악 때문이거나 아니면 몇 가지 가증시키는 악 때문이다. "네가 그들의 행위대로 행하며 그들의 전철을 밟을 뿐만 아니라 악함에 있어서 그들을 훨씬 능가하기까지 하였다(47절). 너는 그들의 행위대로 행하는 것을 적게 여겼다. 너는 그들을 남몰래 범죄하는 어리석은 죄인이라고 비웃었다. 너는 보다 교활하고 대담하게 악을 범하려 하며 네 확신을 담대히 짓밟으려 하며 하나님과 종교를 공공연히 멸시하려고 했다. 범죄하려거든 큰 죄를 범하라는 것이 네 신조다. 그러므로 네 모든 행위는 그들보다 더욱 부패하였도다." 예루살렘은 소돔이나 사마리아보다 더 세련되었으므로 그 범죄도 기지와 기교와 사술이 월등히 뛰어났다.
예루살렘은 소돔이나 사마리아보다 더 많은 재물과 권세를 소유했고 그 통치는 더욱 전제적이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은 빈자를 압제하고 악한 세력을 행사할 기회가 소돔이나 사마리아보다 더 많았다. 예루살렘에는 성전과 법궤와 제사장과 다윗가의 왕들이 있었다. 예루살렘은 그토록 존귀하고 하나님께 친근한 성이었다. 그러므로 그 거룩한 성의 악은 예루살렘의 특권이나 은혜의 수단을 소유하지 못했던 소돔이나 사마리아의 악보다 하나님을 더 격동시켰다. "소돔은 네 행위같이 행치 않았느니라" (48절). 이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심판날에는 소돔이 너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마 11:24)고 부합한다. 열 지파의 왕국은 매우 악했다. 그러나 "사마리아는 네 죄의 절반도 범치 않았느니라. 네가 섬긴 우상의 절반도 섬기지 않았고 네가 살륙한 선지자의 절반도 죽이지 않았느니라." 예루살렘 거민이 소돔의 죄를 지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악했다. 남색조차 예외가 아니었다(왕상 14:24; 왕하 23:7).
사해는 소돔의 죄와 멸망을 상징하는 기념비였다. 바로 그 사해가 그들의 나라와 접경을 이루고 그 유황의 못이 바로 그들 코밑에 있었다. 하나님은 소돔과 그 딸들을 자기 보기에 좋으실 대로 없이 하셨고(50절) 그 한 가지 일로써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다. 그런데도 그들은 경고를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소돔보다 더욱 가증한 죄를 범하였다.
(1) 이로써 그들은 소돔과 사마리아를 의롭게 하셨다(51절). 그들은 거만을 떨면서 소돔과 사마리아를 판단하겠다고 나섰다. 그들이 자기 순전성을 지키던 옛날에는 그랬다(52절). 그러나 이제는 그들이 상대적으로 소돔과 사마리아를 의롭게 만들고 있다. "소돔과 사마리아는 너보다 의롭다. 즉 너보다 덜 악하다." 소돔과 사마리아는 너보다 의롭다. 즉 너보다 덜 악하다." 소돔과 사마리아가 악했지만 하나님의 성이라는 예루살렘이 더욱 악했으므로 소돔과 사마리아의 죄가 경감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물론 이것은 소돔을 의롭다고 호소할 근거는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예루살렘을 정죄한다. 심판 때에는 소돔과 사마리아가 일어나 예루살렘을 칠 것이다.
(2) 이 때문에 그들은 크게 부끄러워해야 마땅하다. "네가 네 자매를 논단하고 그들에게 수치를 부르짖었으니 너도 네 수치를 이제 담당할지니라. 이는 네가 범한 죄가 비록 그들의 죄와 같은 종류의 것이라 해도 네가 범한 것이기에 그들의 범죄보다 더욱 가증하기 때문이다(52절). 이것은 멸망의 예고나 회개에의 초대로 해석할 수 있다. "네 수치를 담당할지니라." "너는 놀라며 네 수치를 담당할지니라. 네게 돌아가 마땅한 수치를 네게 취하라." 죄인들이 충심으로 자기 죄를 부끄러워하기 시작한다면 죄를 버릴 가망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사로잡힐 것이며 거기서 죽을 것이다. 이는 그들이 행한 모든 일을 인하여 부끄럽게 하기 위해서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소돔과 사마리아에게 위로와 격려가 되었기 때문이다(54절).
우리는 범죄함으로써 남들와 범죄를 조장하고 마땅히 슬퍼해야 할 그들에게 위로가 된다. 우리는 다른 어느 것보다 죄악의 이런 면을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이 부끄러워해야 할 또 다른 이유는 번영하던 시절에 이웃을 너무나 멸시했다는 점이다. "네가 교만하던 때에 네 아우 소돔을 네 입으로 말하지도 않았다" (56절). 그들은 소돔이 예루살렘과 같이 운위될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예루살렘이 결국 소돔보다 악명 높은 수치 속에 있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교만한 자들은 아마 자기들이 무시하던 자와 동렬에 서게 될지도 모른다. 또는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다. "네가 소돔을 입으로 말하지도 않았다. 즉 소돔의 멸망에서 의도된 경고를 너는 중시하지도 않았다." 유대인들이 소돔의 불경건과 불의에 대해 하늘로써 나타난 하나님의 진노를 보다 자주 그리고 진지하게 서로 예기하고 자손들에게도 가르쳤더라면 그들은 그 일을 두려워하여 소돔의 전철을 밟지 않았을 것이다. 반대로 그들은 그 일을 아득한 옛 일로 생각하고 그들의 입으로 말하지 않았다. 전설에 따르면 그들은 이사야가 그들을 "소돔의 관원과 고모라의 백성" 이라고 부르자 그를 사형시켰던 것이다(사 1:10). 타인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을 주목하지 않은 자들은 스스로를 위해 심판을 예비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