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칼럼

깨어있음의 본질

하나지기 2022. 3. 10. 19:37

1장 
무엇을 : 깨어 있음의 본질 

"깨어 있음이란…낱낱이 조심하면서 부지런하게 하나님이 지정하신 모든 수단과 방법을 사용해 우리의 마음과 행위, 그리고 사탄의 전략과 전술을 살펴 이 세상혜서 죄를 짓는 기회에 얽혀들지 않는 것이다." -존 오웬의 《0f Temptation》에서 

기독교적 삶은 여정이요 경주요 싸움이다. 우리는 순례자로서, 멸망의 성으로부터 천성을 향하여 이르는 길고 구불구불한 길을 걸어간다. 우리는 경주자로서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믿음의 경주를 마치기 위해 모든 방해 요인을 극복하면서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며 달려가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또한, 우리는 군인으로서 복음의 전신갑주를 입고, 우리의 형제요 대장이요 왕이신 예수님의 지혜와 힘을 의지함으로써 언제든지 싸움에 임할 채비를 갖춰야 한다.
 
이런 성경적인 비유는 수세기 동안 기독교적인 상상력을 형성해 왔다. 비유는 제각각 눈을 크게 뜨고 경계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고대 세계에서의 여행에는 항상 많은 위험이 뒤따랐다. 신자들은 천국의 시민이지만 세상에서는 순례자요, 온갖 위험과 시련과 유혹의 덫이 도사리고 있는 낯선 땅을 지나는 나그네이다. 우리 앞에 놓인 경주는 100미터 단거리 경주가 아닌 장애물이 많은 마라톤 경주와 같다.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은 적을 상대해야 한다. 경계는 선택사항이 아니다. 우리는 늘 깨어 경계해야 한다.
 
그렇다면 깨어 있음이란 무엇일까? 먼저 이에 대한 존 오웬의 분석을 토대로 이번 장을 시작하고, 그런 다음에는 1. 예를 들어, 리처드 십스는 '그리스도인의 경계' 라는 설교에서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이 세상에서 항상 경계하는 태도를 취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이 비유들을 사용했다.

성경의 용어들과 절실히 필요하지만 종종 무시되는 이 영적 훈련의 네 가지 요소를 차례로 살펴보기로 하자. 
 
▶ 깨어 있음의 정의 

깨어 있음이란 무엇인가? 존 오웬은 《Of Temptation》에서 이것을 이렇게 정의했다. 

“깨어 있음이란…낱낱이 조심하면서 부지런하게 하나님이 지정하신 모든 수단과 방법을 사용해 우리의 마음과 행위, 그리고 사탄의 전략과 전술을 살펴 이 세상에서 죄를 짓는 기회에 얽혀들지 않는 것이다”
 
이 정의는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볼 가치가 있다.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셜록 홈스는 왓슨에게 "당신은 보지만 주의 깊게 관찰하지는 않소." 라고 말했다. 따라서 신중해야 한다. 많은 의미가 압축된 이 청교도의 글을 이해하려면 사냥 모자를 꺼내 쓰고, 망원경의 먼지를 털고, 탐정처럼 행동해야 한다.
 
“살핌” : 깨어 있음은 조심함을 의미한다. 조심하려면 삶의 특정 측면에 관심을 집중시켜 그것을 주의 갚게 살펴야 한다. 조심함의 반의어는 부주의이다. 깨어 있음은 내적 생활에 대한 자유방임적인 자세와는 정반대다. 영혼과 태도를 살피지 않고, 생각과 말과 동기와 행위를 주의 깊게 점검하지 않는 것은 깨어 있음이 아니다.
 
“부지런함” : 깨어 있음은 단순한 조심함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조심함을 의미한다. 부지런함은 지속성을 뜻한다. 옷을 세탁하는 것처럼(예를 들어 수요일과 금요일에만) 우리 자신을 살피는 것은 깨어 있음이 아니다. 깨어 있음은 되는 대로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니다. 깨어 있는 신자는 휴일이 없다. 

“낱낱이 조심하면서 부지런하게” : 이것은 온전하고 포괄적인 조심함을 의미한다. 조심함은 선택적인 것이 아니다. 교회에서 대화를 나눌 때는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처신하면서, 주중에 언행이 부주의한 것은 깨어 있음이 아니다.
 
포괄적인 신중함은 모든 계명과 금지 명령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모든 상황 속에서 실천에 옮기는 것을 의미한다.
 
“사용해” : 깨어 있음은 수동적이지 않고 능동적이다. 이것은 노력, 분발, 행동, 거룩한 땀을 요구한다. 깨어 있음은 일종의 종합 무술, 곧 종합 격투기와 비슷하다.
 
"하나님이 지정하신 모든 원리와 수단을 이용해" : 깨어있음은 성경의 가르침을 인정하고, 거기에 복종한다. 하나님은 방법과 수단을 정해주셨다. 그분은 삶의 원리, 즉 사랑, 겸손, 정의, 거룩, 자비, 평화의 원리를 가르쳐주셨고, 삶의 수단, 즉 그런 원리를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셨다(신학자들은 이것을 종종 은혜의 수단으로 일컫는다. 은혜의 수단이란 묵상, 기도 예배 등을 가리킨다). 본서의 3장에서 이런 수단들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 깨어 있음과 그것들의 관계를 논의할 계획이다. 지금은 하나님이 정하신 모든 수단을 옳게 사용하는 것이 깨어 있음에 포함된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으로 족하다. 다시 말하지만, 이 문제와 관련해서도 몇 가지 마음에 드는 것만 골라서 실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의 마음과 행위" : 이 말을 시작으로 세 가지가 나열되고 있다. 우리는 이 세 가지를 신중하게 살펴야 한다. 우리의 마음과 행위를 살피는 것이 그 가운데 하나다. 이것은 자기 진단과 자기점검을 의미한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한 대로, 우리는 자신의 삶과 교리를 살펴야 한다(딤전 4:16). 

“사탄의 전략과 전술” : 우리는 영혼의 원수를 경계하고, 그의 모든 전략과 전술에 주의해야 한다. "근신하라 깨어라(watchful)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라는 베드로의 경고를 잊지 말라. 깨라는 것은 "조심하다", "경계하다" 라는 뜻을 갖는다. 

우리의 원수는 절대 반지를 쫓는 흑기사보다 더 냉혹하다. 그는 몽구스에 의해 궁지에 몰린 코브라보다 더 사납다. 그는 쉬는 법이 없다 . 우리가 원수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그가 우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죄를 짓는 기회” : 이것은 죄가 우리 삶에 들어올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줄 상황이나 기회를 경계하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막14:38) 고 말씀하셨고, 바울은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4)고 당부했다. 
 
“이 세상” : 여기에서 세상은 지구가 아닌 하나님을 거스르는 타락한 세상의 체제를 가리킨다. 세상은 사탄의 동맹군이다. 그는 "이 세상의 임금"(요 12:31)이요 "이 세상의 신"(고후 4:4)이다. 요한은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요일 5:19)라고 말했다. 아이작 와츠는 "이 악한 세상이 내가 하나님께로 나가도록 돕는 은혜의 친구일까?" 라고 물었다. 물론, 대답은 '아니오' 이다. 야고보사도는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약 4:4)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얽혀들지 않는 것” : 이 마지막 말은 목적절이다. 우리가 깨어 경계해야 할 이유는 얽혀들지 않기 위해서다. 얽혀든다는 것은 "장애물에 걸리다, 덫에 걸리다, 걸려 넘어지다." 라는 뜻이다. 얽힘은 자유의 반대다. 깨어 있음은 언뜻 생각하면 성가신 일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리처드 로저스는 "깨어 있음은 거기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너무 힘든 일처럼 생각될 수 있다." 라고 말했다. 그러나 "깨어 있음께 익숙하지 않으면 자주 넘어져 위험에 빠질 수밖에 없고…영혼에 많은 상처를 입고, 삶 속에서 많은 위로를 잃게 될 것이다." 
 
깨어 있음에 힘쓰면 세상과 세상의 덫, 죄와 죄의 속박하는 힘, 유혹과 거짓과 원수 마귀의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