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레위기 2, 3, 요한복음 21, 잠언 18, 골로새서 1
묵상구절
21:10 이스라엘 자손이 출발하여 오봇에 진을 쳤고
21:11 그들이 오봇에서 다시 출발하여 모압 맞은편, 곧 해 돋는 쪽 광야의 이예아바림에 진을 쳤으며,
21:12 그들이 거기서부터 다시 출발하여 세렛 골짜기에 진을 쳤다.
21:13 그들이 거기서부터 다시 출발하여 아모리 사람의 땅에서부터 떠나와서 광야에 이르는 아르논 건너편에 진을 쳤는데, 아르논은 모압과 아모리 사이에 있는 모압의 경계였다.
21:14 그러므로 '여호와의 전쟁기 '에 이렇게 기록되기를 "수바의 와헙과 아르논 골짜기들과
21:15 그 골짜기들의 비탈은 아르 마을로 뻗어 있고 모압의 경계에 닿았다." 라고 하였다.
21:16 그들이 거기서부터 브엘에 이르렀는데, 이곳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백성을 모아라. 내가 그들에게 물을 주겠다." 라고 말씀하셨던 우물이 있는 곳이다.
21:17 그때에 이스라엘이 이런 노래를 불렀다. "우물물아, 솟아나라. 너희는 이 물을 노래하여라.
21:18 지도자들이 파고 백성의 귀인들이 지팡이와 막대기로 판 우물을." 그들이 광야에서 떠나 맛다나에,
21:19 맛다나에서 떠나 나할리엘에, 나할리엘에서 떠나 바못에,
21:20 그리고 바못에서 떠나 모압 평원의 한 골짜기에 이르니, 황무지가 내려다보이는 비스가 산 봉우리가 가까이 있었다.
매튜헨리/옥스퍼드
● 전진하는 이스라엘 진영(민수기 21:10-20)
여기에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압 평지에 진영을 차릴 때까지 거듭한 몇 번의 진영 이동에 관한 기사가 있다. 이 모압 평지에서 나와서는 여호수아서의 첫 머리에서 읽을 수 있는 바와 같이 그들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었다. 중심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자연적인 운동은 더 빠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제 약속의 땅에 가까이 이르렸다. 그리하여 그들은 "진행하였다" 고 성경은 표현하고 있다(10절).
우리도 이처럼 천국을 향해 가는 우리의 여행길에서, 그 여행의 마지막 때에 이르러, 천국에 거의 가까이 갈 무렵에 더욱 활동적으로 주님의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오봇’ 이름
- 놎뱀 사건을 경험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다시금 가나안을 향한 행군을 계속하게 되었다. 즉 에돔으로의 통로가 막히게 되자 ‘홍해 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던 이스라엘 백성은 거의 아카바만이 있는 엘닷의 에시온게벨 가까이까지 이르렀다가 다시 모압 길로 북상하여(신2:8) 사해 남쪽에 위치한 오봇에 이르렀고 계속 이에아바림 (11절), 세렛 골짜기(12절), 아르논 건너편(13절), 브엘(16절), 맛다나, 나할리엘(19절), 바못(19절), 비스가산이 있는 모압 들(20절)까지 이르게 되었다.
- 이러한 여정의 첫번째 장소로 언급된 본절의 ‘오봇'은 ‘땅에 판 구멍들'이란 뜻을 지닌 지명으로 사해 남단으로부터 약 25km 떨어진 곳에 있는 '아인 엘 웨이바(Ain el-Weiba) '로 추정된다.
11절, 오봇에서 진행하여 해 돋는 편 광야, 이예아바림에 진을 침
- 이예아바림 : ‘폐허의 길'.
- 이 이름의 의미에서도 잘 나타나듯이 이곳 ‘이예아바림'은 모압 동편 변방 불모지로서 대부분 암석투성이 지역이었다(33:44). 이곳은 이처럼 불모지였고 사람이 살기 어려운 장소였기 때문에 모압과 에돔이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힘의 공백지였다. → 따라서 이스라엘 사람돌은 이곳을 아무런 분쟁없이 여행할 수 있었다.
12절, 세렛 골짜기에 진을 침
- 이스라엘은 이 ‘세렛 시내'를 건넘으로 비로소 본격적인 가나안 진입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신2:13,14)
이러한 이동에 관한 간단한 기사 가운데서 우리는 두 가지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살펴볼 수 있다.
1. 아르논 냇가에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축복하사 놀라운 성공을 거두게 하셨다(13-15절).
👀 아르논
- 북부 아라비아 산지에서부터 시작하여 사해 동쪽으로 흘러들어 가는 약 32km에 이르는 강이었으며, 모압과 아모리 사이에서 경계를 이루고 있었고, 후에는 르우벤 지파의 남쪽 경계가 되었다(신3:8,16; 수13:16). 당시 이스라엘은 이처럼 어떤 부족의 거주지를 관통한 것이 아니라 주로 사람들이 살지 않는 경계 지역을 따라 여행했으므로 충돌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 그들은 에돔 땅을 우회하였으며(왜냐하면 그 땅은 그들이 정복할 수도 더욱이 침범할 수 없는 땅이었기 때문이었다-신 2:4, 5), 드디어 모압의 경계에 이르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길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원수들은 그들의 길을 방해할 수는 있어도, 그들이 약속된 안식의 땅에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이스라엘은 행진해 가면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명령, 즉 모압 자손을 괴롭게 하지 말라(신 2:9)는 명령을 엄격히 준수하였다는 점에 주목하자. 왜냐하면 그 땅은 롯의 정당한 소유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르논 건너편에 진을 쳤다(13절). 그곳이 전에는 여기 26, 27절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모압 사람들에게 속했었지만, 지금은 경건한 백성인 아모리 사람들의 소유였다. 모압 사람들을 괴롭게 하지 말라고 하는 주의는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입다에 의해 다시금 주장된 바를 볼 수 있다. 그것은 암몬 사람들에게 항의하면서 그들에게 약속을 요구하면서 한 입다의 말이었다(삿 11:15 이하).
그들이 얻은 바는 지금 그들이 진을 치고 있는 아르논 강의 언덕이었다. 이 사실이 상세하게 명기된 바는 없지마는 아마 아말렉과의 싸움(출 17:14)의 역사부터 기록하기 시작한, "여호와의 전쟁기" 라는 책에 나타나 있을 것이다.
- 이 책은(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라" 란 말씀 때문에 시작되고, 그 후에 이스라엘이 싸운 모든 전쟁이 순서적으로 첨가되고, 거기에 아르논 골짜기에서의 활동도 첨부된 것이라고 본다. 곧 (우리 나라 개역 성경과 같이) 아르논 골짜기의 "수바의 와협" 이라는 지역과 그밖의 지역에서 활동 기록이었을 것이다. 또는(KJV에서와 같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실 때 "홍해에서 행해진 여호와의 전쟁" 과 그들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기 직전에 "아르는 시냇가에서" 행한 전쟁을 다시 "이야기 해 주라" 는 말씀이다.
- 여호와의 전쟁들에 관해 기록되어진 문서 또는 두루마리'라는 뜻. 그러나 이 책이 남아 있지 않을 뿐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의 책이었는지에 관헤서도 알 수가 없다. 다만 가나안 정복을 기원하며 백성둘이 부르던 민요 모음(Collection of Odes)이라고 추정할 따름이다. 이렇듯 전쟁의 승리를 기원하며 노래한 것에 ‘여호와의 전쟁기'라는 표현을 한 것은 전쟁의 주관자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출17:14,15).
👀 ‘여호와의 전쟁기'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기념할 때는, 그가 은혜 베푸신 바를 모두 열거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어떻게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이 홍해로부터 아르논 골짜기를 이르기까지 우리를 따라 왔는가를 기억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인생의 모든 과정, 아니 거의 모든 발걸음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바를 찾아볼 수 있다. 그때, 그 장소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바를 명확히 기억할 필요가 있다.
- 브엘에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축복하사 놀라운 일을 그들에게 베풀어 주셨다(16절).
브엘은 샘 또는 우물을 의미한다. 병을 의미하는 오봇에다 그들이 진을 쳤다고 한다(10절). 그 지명은 아마 그들이 거기서 그들의 물주머니에 물을 채워 넣었던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라 본다. 얼마 안 가서 물주머니의 물은 떨어지게 마련인데, 바로 이 때 하갈의 경우와 같이(창 21:15) 그들의 "가죽부대의 물이 다 떨어졌다" 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이 불평하거나 원망하였다는 말이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겨 그들이 불평을 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그들의 요구를 아시고 그것을 채워 주시는 분이심을 믿고 조용히 기다릴 수 있는 용기를 주시기 위해 그들을 샘물이 있는 곳으로 이끄신 것이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그것은 오봇에 진을 치는 것과 같다. 거기에는 우리의 위로가 단지 작고 빈약한 물주머니 속에 담겨져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늘에 가게 되면 우리는 브엘로 옮겨가는 것과 같다. 그곳은 생명의 샘이며, 생수가 흘러나오는 샘이다. 지금까지 그들이 물을 공급받은 경우는 모두 그들이 부당한 불평으로 물을 요구하고, 하나님은 정당한 분개 속에서 주셨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다르다.
(1) 하나님은 사랑으로 물을 주셨다(16절). 하나님은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물을 주리라" 고 하셨다. 그들로 하여금 놀라운 사건의 증인이 되며, 은혜를 함께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해 불러모으도록 하셨다. 그들이 기도하기 전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주셨으며, 앞질러 그들에게 축복을 내려 주셨다.
(2) 그들은 기쁨과 감사 가운데서 그 물을 받아 마셨다. 그리하여 그 고마움이 갑절이나 더했다(17절).
👀 ‘바로 그 때!, 바로 이 노래를 노래했다' — ‘그 때에' 나타난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가 참으로 위대했음을 강조하며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의 기쁨과 감사가 또한 얼마나 크게 울려퍼졌는지를 나타내고 있다.
홍해 도하 사건의 감격을 노래하는 부분에서도 이와 동일한 문구가 나타난다(출 15:1). 이처럼 어찌할 수 없는 기쁨과 감격을 노래할 때 이 표현이 사용되었는데 본문에서는 메마른 광야에서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스라엘이 땅을 봤을 때 그들은 생명의 근원이 되는 물을 얻게 되었고, 이러한 하나님의 권능을 이스라엘은 기쁨의 노래로 찬양하며 감사하였던 것이다(시 72:15).
그때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서로들 격려하기 위해 노래를 불렀다. "우물 물아 솟아나라!" 이처럼 그들은 우물 물이 솟아오르도록 기도하였다. 왜냐하면 약속된 자비는 기도를 통해서 이끌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물 이 솟아오르자 그들은 개가를 올렸으며, 환호를 질렀다. "기쁨으로 우리는 구원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야 한다" (사 12:3).
👀 본문을 좀더 시적으로 번역하면 ‘우물 물아 너는 뛰어올라 하나님을 찬양하고, 너희 이스라엘은 그에 화답하여 찬양하라'가 적절할 것이다. 즉 지금 성경 기자는 브엘에서의 사건을 노래로 표현하면서 우물 물이 높이 솟아나는 모앙어 마처 하나님의 권능을 찬양하는 것처럼 느끼고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화담의 찬앙을 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장면은 홍해에서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앙하고(출15:1) 미리암과 여인들이 이에 **‘화답하여(아나)’ 찬송했던(출15:20,21) 장면을 연상시켜 준다.
놋뱀이 우리를 살리기 위해 들려진 그리스도의 모습이었다면, 이 우물은 성령의 상징이다. 성령은 우리에게 위로를 주시는 분이시며, 그에게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온다(요 7:38). 우리의 영혼에서도 이러한 샘이 솟아 나오고 있는가? 우리는 이를 노래하여야 하며, 그 위로를 받아야 하며, 그리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이 은사를 받으라. 노래를 부르라. "샘이여 솟아라! 너 동산의 샘이여! 내 영혼을 축여다오" (아 4:15). 이 이야기와 관련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는 "마른 땅으로 샘이 되게 하시겠다" 는 약속의 실현을 간구하라(사 41:17, 18).
(3) 전에는 이러한 기적이 영원히 기념되도록 그 땅의 지명을 붙일 때, 백성들의 다툼과 불평을 나타내는 것이었는데, 이번에는 백성들의 찬양의 노래가 영구히 간직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찬양 속에는 어떻게 그 일이 이루어졌는지, 그 방법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18절).
"족장들이 우물을 팠다." 그리고 아마 70명의 장로들이 "율법을 주신 자(즉 하나님의 지시를 따르는 모세)의 지시에 따라서 그들의 지팡이로 팠다." (역주 : KJV의 본문이 우리 나라 개역 성경의 본문과 다르다.
홀이란 말이 "율법을 주신 자의 지시에 따라서" 란 말로 대체되어 있다) 말하자면 그들은 그들의 지팡이를 가지고 부드러운 모래땅에 구멍을 팠으며, 하나님께서 그들이 판 구멍에서 기적적으로 물이 솟아나게 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경건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오랜 후에도 메마른 땅인 "바카(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곳에 샘을 파면,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비를 내려서 그 웅덩이에 물이 가득 고이게 하여 주셨다(시 84:6).
[1]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물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그들이 그 물을 받기 위해서는 땅을 열며, 구멍을 내야만 했었다. 하나님의 은혜 받기를 기대할 때, 우리는 우리가 가진 힘을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그 능력의 위대함은 여전히 하나님의 것이다.
[2] 이스라엘의 귀인들은 앞장서서 이 일을 위해 그들의 손으로 일을 했으며, 그들의 지팡이를 사용하였다. 아마 그 지팡이는 그들의 명예와 권세의 표였을 터인데, 그들은 공적인 봉사를 위해 이를 사용하였으며, 그리하여 그들의 명예가 기록에 남겨졌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들의 하는 일이 이런 놀라운 기적의 도구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은 그들 자신들에게는 그들의 직책을 더욱 공고히 하여 주는 것이었으며, 백성들에게는 크신 위로를 줄 수 있는 것이 되었을 것이다.
이로써 그 후 얼마 안 가서 죽은 모세의 정신이 어느 정도 이스라엘의 귀인들에게 전달되었다고 보인다. 모세는 전에 바위를 치던 때와 같이 스스로가 땅을 내려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지시하여 주었다. 이것은 그들의 지팡이가 모세의 홀이 가지고 있던 영광에 참여하게 하고, 나가서 자기는 비록 그들을 떠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결코 떠나지 않고 그들을 계속해서 축복하신다는 것을 안심하고 기대할 수 있게 하여 주며, 그들이 율법을 주신 자의 지시에 따르는 한 하나님께서 그들과 언제나 함께 하여 주신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기 위한 것이었다. 위로는 오직 책임을 다하는 길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늘의 기쁨에 동참하려면 하나님의 지시를 조심스럽게 준행하여야 한다.
👀 20절, 바못에서 떠나 모압 평원의 한 골짜기에 이르니, 황무지가 내려다보이는 비스가 산 봉우리가 가까이 있었다.
- ‘모압 들' 동쪽으로는 아라비아 사막이 뻗어 있고, 서쪽으로는 요단 강과 사해가 만나는 지점까지이며, 남쪽으로는 아르논 지류가 있는 고원 지대를 일컫는다.
- 여기서 말하는 ‘골짜기'는 깊고 험한 골짜기가 아니라 이 스라엘 백성들이 진을 치기에 적당한 넓은 분지와 같은 지형을 암시한다. 19절에서 이스라엘은 ‘바못' 즉 산지에 머물다가 넓은 저지대로 내려온 것이다. 이제 점점 더 약속의 땅 가나안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비스가 산
- 사해의 북동쪽에 위치해 있는 아바림 산맥의 한 높은 봉우리. 이곳 정상에서 보면 약속의 땅인 가나안과 모압 평지 그리고 서쪽으로는 사해까지 볼 수 있다.
이스라엘온 에돔으로 통하는 길을 차단당한 후 놋뱀 사건을 겪으면서 가나안으로의 행군을 위해 먼 우회를 한 끝에 이곳 비스가산이 있는 모압 들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 본문은 가데스 재집결에서부터 모세의 신 뒤(4-9절) 가나안 행군을 계속하여 모압 신명기 설교가 있었던 모압 평지까지의 행군 중에 있었던 각종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제20-26장의 연속 부분.
이러한 본문은 하나님을 원망했다가 불뱀 재앙을 만났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뒤(4~9절) 가나안 행군을 계속하여 모압 들에 있는 비스가 산 정상이 가까운 곳에 이르렀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이 건너다 보이는 요단 동편 땅에 도착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숱한 역경 속에서 불순종과 반역, 그리고 회를 거듭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마침내 가나안 땅의 관문에 도착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패역함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약속을 번개치 않으시고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사랑과 섭리를 보면서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천국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소망과 확신을 갖게 됩니다.
한편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입성하기까지 약 6개월간 이곳에 머물면서 체제를 정비하고 주변 국가들을 정복하며 모세로부터 신명기 설교를 듣게 됩니다.
-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매일 아침마다 정리해주는 찬미자매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