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4월 1일 금요일 묵상구절 민21:21-35

하나지기 2022. 4. 4. 07:35

맥체인성경읽기

레위기 4, 시편 1, 2, 잠언 19, 골로새서 2

 

묵상구절

21:21 이스라엘이 아모리 왕 시혼에게 사신들을 보내어 말하기를

21:22 "우리가 당신의 땅을 지나가게 해 주십시오. 우리가 밭이나 포도원에 들어가지 않고 우물물도 마시지 않겠습니다. 당신의 영토를 다 지날 때까지 왕의 대로로만 가겠습니다." 하였으나,

21:23 시혼은 이스라엘이 자기 영토로 지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의 모든 백성을 모아 이스라엘을 치러 광야로 나와 야하스에 이르러 이스라엘과 싸웠다.

21:24 이스라엘이 오히려 칼날로 그들을 쳐서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까지 그 땅을 차지하였으나, 암몬 자손의 경계까지만 차지한 것은 암몬 자손의 경계가 견고하기 때문이었다.

21:25 이스라엘이 이 모든 성읍들을 빼앗고 아모리인들의 모든 성읍, 곧 헤스본과 그 주변의 모든 마을에 살았으니,

21:26 헤스본은 아모리인의 왕 시혼의 성읍이었으나 그가 모압의 이전 왕과 싸워서 아르논에 이르기까지 그의 모든 땅을 그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다.

21:27 그러므로 사람들이 이렇게 풍자하였다. "너희는 헤스본으로 와라. 시혼의 성을 세워, 견고하게 하여라.

21:28 헤스본에서 불이 나오고 시혼의 성읍에서 불꽃이 나와서 모압의 아르를 삼키며 아르논 산당들의 주인들을 멸하였다.

21:29 모압아, 네게 화가 미치고 그모스의 백성아, 네가 망하였다. 그가 자기 아들들을 도망자가 되게 하였고 자기 딸들을 아모리 왕 시혼의 포로가 되게 하였다.

21:30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넘어뜨려 헤스본이 디본에 이르기까지 망하였다. 메드바에 가까운 노바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진멸하였다."

21:31 이렇게 하여 이스라엘이 아모리 사람의 땅에 살게 되었다.

21:32 모세가 사람을 보내 야셀을 정탐하게 한 뒤 그곳의 마을들을 점령하고 거기에 살던 아모리 사람들을 몰아내었다.

21:33 그들이 방향을 돌려 바산 길로 올라가니, 바산 왕 옥이 자기의 모든 백성을 거느리고 그들을 맞아 싸우기 위해 에드레이로 나왔다.

21:34 그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를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그와 그의 모든 백성과 그의 땅을 네 손에 넘겼으니, 네가 헤스본에 살던 아모리 사람의 왕 시혼에게 한 것처럼 그에게도 그렇게 하여라." 하셨으므로

21:35 그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모든 백성을 살아남은 자가 없을 때까지 쳐 죽이고 그의 땅을 차지하였다.

  • (창15:21)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을 주겠다.”
  • (창48:22) 내가 네게 네 형제들보다 한 몫을 더 주겠으니, 이것은 내가 내 칼과 내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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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헨리/옥스퍼드

💡 본문은 불뱀 사건이 있었던 아라바 광야에서부터 비스가산까지의 여정을 보여 주고 있는 지난 단락(10-20절)에 이어 이스라엘이 모압 평지에 머무르고 있을 때 이스라엘을 대적한 아모리 족속과의 전쟁 기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즉 본문은 이스라엘의 진행을 방해하는 아모리 족속 헤스본 왕 시혼을 쳐서 격파하고 이어 또 다른 아모리 족속인 바산 왕족을 쳐서 격파한 사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두 아모리인의 왕국이 이스라엘에 의해 격파된 것은 창15:21과 48:22의 예언의 성취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혼이나 옥이 가나안 땅이 아닌 요단 동편에 거하였지만 그들이 아모리 족속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의 죄악을 간과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사설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손에 그들을 붙이신 것이다(신 2:24).

 

● 시혼 왕과 옥 왕 정복(민수기 21:21-35)

여기에는 시혼 왕과 옥 왕에 대한 이스라엘의 승리에 관한 기사가 있다. 이에 대해서 우리가 보다 명확하게 관찰해 보면, 이 기사가 여기에 크게 취급된 것은 그들이 틀림없이 관계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오랜 후에도 그 싸움의 승전을 후손들이 길이 기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승리는 거듭거듭 하나님의 영원한 자비의 표시로서 칭송되었다. 그들은 이렇게 노래하였다. "아모리인의 왕 시혼 왕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바산 왕 옥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 136:19, 20).

 

Ⅰ. 이스라엘은 아모리 왕 시혼에게 평화 사절단을 보냈다(21절). 그러나 그 대답은 똑같은 종류의 사신에 대한 에돔 왕의 대답(20:18, 20)보다 훨씬 거칠고 전투적인 것이었다

💡 모세의 메시지

  • 아모리 왕 시혼에게 모세가 사자를 통하여 보낸 데시지는 견에 이스라엘어 에돔 땅을 통과하기 위해 에돔 왕에게 부탁했던 내용과 비슷하다.

20:17의 표현과 본문의 표현의 차이점

  • 에돔 왕에게 보낸 메시지에는 ‘청컨대’ 란 뜻의 간청과 바람을 나타낼 때 쏘는 공손한 표현을 한 반면, 아모리 왕에게 보내는 본문의 메시지에는 이 표현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
  • ‘그들과 다투지 말라'란 여호와의 명에 따라 에돔을 무력으로 침공할 수 없었던(신2:5.6) 이스라엘은 진실된 마음으로 왕의 대로를 통과하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던 반면 오히려 아모리는 하나님께서 ‘싸워서 그 땅을 얻으라'(신 2:24)고 하셨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생략했다고 볼 수 었다. 아마도 모세는 ‘내가 헤스본 왕 아모리 사람 시혼과 그 땅을 네 손에 붙였은즉' 이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염두에 두고 미리 치밀한 전락을 세웠을 것.

한편 당시 이스라엘은 이미 비스가산 있는 모압 돌에 주둔해 있었다(20절). 따라서 이미 시혼이 다스리던 지역은 통과하였다고 볼 수 있다. 즉 이스라엘은 모압과 아모리의 경계 지역을 통해 이미 북상하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에서 모세가 ‘당신의 땅을 통과하게 하소서'라고 말한 것은

  1. 일면으로는 외교적 수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2.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전 후방을 견고히 하기 위하여 토벌대를 파견하여 전쟁을 할 때 시혼의 땅을 통과하겠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에돔 왕은 다만 그들의 땅을 통과하지 못한다고 이를 거절하였으며 자기들의 땅에서 이를 지키었는데 반해, 시혼은 그의 군사를 이끌고 그들 땅의 경계를 벗어나서 "이스라엘을 치러 광야로" 나왔던 것이다(23절).

 

💡 삿 11:20에 따르면 시혼은 ‘이스라엘을 믿지 못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는 200만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두려워 하여 자기 영토에 진입하지 못하게 사전에 차단하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언약을 성취해 가시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아모리 족속

  • 그러나 시혼이 이스라엘의 진임을 허락하지 않은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언약을 성취해 나가시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어 있는 조치때문이었다.
  • 아모리 족속의 죄악을 심판하시고 그들의 땅을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하신 언약을(창15:16, 20) 성취하시기 위해 그 왕의 마음을 완강케 하시고 강퍅하게 하셨기(신2:30) 때문에 그가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요단 동편의 아모리 족속이 이스라엘의 진입을 막은 것은 스스로 멸망의 길을 자초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스스로의 멸망을 재촉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입다도 시혼이 "이스라엘을 믿지 아니하여 그 지경을 지나지 못하게" 정책을 폄으로 스스로의 멸망을 가져오게 한 것이라고 시사한 바가 있다(삿 11:20). 그러나 그 정책이 자신을 속이는 결과가 되었다. 모세는 말하기를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시려고 그의 성품을 완강케 하셨음이라" 고 하였다(신 2:30).

하나님의 교회의 대적들은 때로 그들이 가장 현명하다고 생각하여 취한 충고 때문에 오히려 정신을 잃을 때가 많다. 시혼의 군사들만 패주한 것이 아니다. 그의 땅 전부가 드디어는 이스라엘의 소유가 되었다(24, 25절). 이스라엘의 점령은 정당한 것이었다.

 

💡 24절, ‘칼날로 그들을 쳐서 파했다’

  • ‘칼날’
    • 원어는 아모리인들을 실제로 싸움터에서 칼로 쳐죽였음을 선명하게 보여 주는 단어법을 사용하여 그 전쟁의 참혹했던 상황을 연상시켜 준다.
  • ‘쳐서 파했다’(나카) :
    • ‘나카' 동사가 구약 성경에서 신학적으로 중요성을 지니는 것은 종종 하나님이 ‘치시는' 주체가 된다는 사실이다. 즉 하나님이 인간의 죄를 징벌하시기 위해 ‘치심'을 묘사할 때 어 단어가 사용된 것이다.
    • 이러한 원어적인 의미로 살펴볼 때 외형적으로는 전쟁을 벌인 아모리인들을 이스라엘이 진멸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은 이스라엘의 배후에 계신 하나님께서 아모리인들의 죄악에 대해 응징하시기 위해 전쟁이라는 도구를 통하여 그들을 쳐서 죽이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애굽의 하수를 지팡이로 ‘(나카)' 사람은 모세였지만(출 7:20), 바로를 강퍅하게 하시고(출 7:3) 에굽 사람을 ‘치신(나카)' 분은 바로 여호와이셨던 것처럼(출 7:25; 12:13) 이스라엘의 칼날로 아모리인들을 치신 분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셨던 것이다.

본문을 통해 어떤 하나님을 알 수 있는가?

  • 죄를 용납지 아니하시고 벌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의 모습(시 89:14; 단 9:14)과
  • **전쟁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대하 20:15)**을 우리로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준다.
  1. 아모리 사람들에 대해서 이는 정당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침략자요, 이스라엘에 대해 싸움을 걸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만 가지고 그 땅이 이스라엘의 소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만국의 왕이시며, 온 세상의 주 여호와이신 하나님 자신이 그 땅을 이스라엘에 하사하셨던 것이다. 이 아모리 사람들의 땅을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며, 그 약속을 아모리 사람들의 죄악이 관영하게 될 때에 이루어진다고 하셨다(창 15:16). 입다도 이러한 하나님의 허락을 전면에 내세우고 소유권을 주장하였다(삿 11:23, 24). 하나님께서 주신 아모리 사람에 대한 승리는 그들에게 그 땅을 소유하게 하여 주셨고, 그들의 조상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은 그들이 그 땅을 소유할 수 있는 정당한 근거를 제시하여 주었다.

  1. 이 땅의 전 소유자였던 모압 사람들에 대해서도 정당한 것이었다.

만일 그들이 그 땅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하나님께서 "그들의 땅을 일부라도 이스라엘의 소유로 주시지 않았노라" (신 2:9)고 주장하리라는 것을 알았다면, 모세는 그들의 주장에 대해 반박할 정당한 답변을 여기에 마련하여 주었을 깃이며, 200년 후에 이 땅에 대한 이스라엘의 소유권에 말썽이 났을 때, 입다는 아모리 사람들을 반박하기 위해 그것을 이용하였을 것이다.

(1) 비록 이 땅이 모압 사람들의 땅이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해도, 아모리 사람들이 얼마 전에 이 땅을 그들에게서 빼앗아 가지고 완전히 자기들의 소유로 삼았었다는데(26절) 그 정당성이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땅을 모압 사람들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아모리 사람들에게 빼앗기기 전에 그 땅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부득불 이제는 그 땅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고 있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땅을 아모리 사람에게서 빼앗았을 때 그들은 그 땅을 모압 사람들에게 돌려 줄 의무가 없었다. 모압이란 이름이 사라지고 없어진 지 오래였다.

이 세상 소유물의 불안함을 보라. 우리가 비록 아무리 확실한 것이라고 생각하여도, 그 소유주가 얼마나 빨리 바뀌는가 보라! 또 우리의 것도 얼마나 쉽사리 빼앗기는가! "그것들은 날개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서 빼앗아 갈 수 없는 그런 곳에 안전하게 보호하여야 하는 것이 우리의 지혜이다.

또 하나님의 섭리의 지혜로우심과 그 완전한 예견을 보라. 모든 하나님의 섭리가 완전히 이루어지기 위해 그 준비가 오래 전에, 제 때에 마련되고 있었다. 이 땅은 아모리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스라엘 사람들의 것으로 계획되고 있었다. 그들은 그 땅을 이스라엘이 준비가 다 될 때까지만 간직하고 있다가 그들에게 넘겨주어야 된다는 것을 도저히 알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의 무궁하심을 다 깨닫지 못한다. 하나님은 일찍이 "열국의 기업을 주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민족들의 경계를 정하셨다" (신 32:8). 하나님은 그의 택한 백성들에게 주시고자 계획하신 땅을 어느 한 민 족에게 잠시 맡겨두셨던 것이다.

 

💡 헤스본: 원래 모압 영토였으나 시혼에게 탈취당해 아모리 왕국의 수도가 되었고(25-34절), 이스라엘 점령 후에는 르우벤 및 갓 지파에게 할당되었다가(32:37; 수 21:38-40), 왕정 후기에는 다시 모압인들에게 점령되었었다.

 

(2) 이러한 주장의 근거를 대기 위해 이스라엘은 그 땅에 관한 믿을 만한 기록을 인용하였는데, 여기서 한 시인의 노래를 볼 수 있다(27-30절). 이 노래는 문제점을 잘 증명하여 주고 있다. 그 증거의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1] 여기에 열거된 이러 저러한 땅들은 원래 모압 사람들의 소유였으나 전쟁으로 말미암아 아모리 사람의 왕 시혼을 정복하였다. 헤스본은 그의 도성이 되었으며, 그를 위하여 견고히 성을 쌓게 되었다(27절). 그리고 디본과 노바 땅까지 정복하였고, 이들을 아모리 왕국에 병합하였다(30절).

 

💡 이스라엘은 아모리 왕 시혼의 도성이었을 뿐 아니라 진영에서 가까웠던 헤스본을 공격하고 그를 영토의 남단에 위치한 디본까지 진격한 것. → 디본은 이후 갓 자손에 의해 재건되어(32:34) 영토 분배 때에는 르우벤 자손의 기업으로 주어짐(수13:9,17).

 

[2] 모압 사람들은 그 소유권을 전혀 다시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모압의 아드는 시혼의 공격을 받지 않음으로 여전히 모압의 수도로 남아 있기는 해도, 너무나 황폐하여 다시금 머리가 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28절).

 

💡 ‘불, 화염’은 아모리 왕 시혼이 모압을 쳐서 섬멸시킬 대 그 공격의 맹렬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헤스본과 시혼의 성을 중복시킨 것도 헤스본이 얼마나 강력한 성이었는지를 나타내기 위함이다.

 

모압 사람들은 파멸되었고, 그들의 신 그모스도 시혼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할 수 없다고, 그들을 포기하였다(29절). 이 모든 것을 보아서, 이 땅에 대한 모압 사람들의 주장은 영원히 불가능한 것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그모스의 백성' 이라는 말은 그모스를 주신으로 섬기며 그 신어 자신들을 지켜 줄 것이라고 믿는 모압 족속을 호칭하는 것이었다. 특히 모압인들이 섬기던 ‘그모스'는 모든 전쟁에서 그들에게 승리를 주는 ‘전쟁의 신'으로 숭배되었기에 본절에서 시인은 모압인들을 향하여 ‘그모스의 백성아'라고 부른 것이다. 이는 아모리인들게 패하여 포로가 된 모압인들과 그들의 숭배를 받던 ‘그모스'를 신랄하게 조롱하며 풍자하기 위한 것이었다.

 

여기에 아모리인의 시를 인용 삽입한 것은 그 이상의 이유가 있는데, 즉 악인의 승리는 잠시 잠깐이란 것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다.

 

💡 본시는 비유와 은유를 통하여 이방 우상들의 무용성과 그 신둘을 믿는 자들의 무력함을 특히 아모리 족속의 무력함을 노래하는 한편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강함을 드러내는 시. 이스라엘이 마치 화살을 쏘아 그 과녁(아모리)을 명중시키듯이 실수없이 신속하게 공격하여 아모리인들을 단번에 쓰러뜨렸음을 시적으로 묘사하여 말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권력의 주관자이심을 보여 주며 또한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푸셨다(31절).

 

모압 사람들을 정복하고 그들을 모욕하였던 그들이 이제는 그들 자신들이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의해 정복당하고 모욕당하게 되었다. 아마 이 땅을 모압 사람들에게서 빼앗았던 바로 그 왕 시혼이 이번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 땅을 잃게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비록 그것이 모압의 전왕에게서 빼앗은 것이라는 말이 있기는 해도(26절), 아모리 사람의 전왕이란 말은 없기 때문이다. 공의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악행으로 얻은 것이 쉽사리 잃게 되는 것을 자주 보 여 준다. 그들은 그것들을 얻음으로 자고하여지기 때문이다. 그들은 "높아져도 잠시 간에 없어진다" (욥 24:24).

 

💡 32절, 모세가 사람을 보내 야셀을 정탐하게 한 뒤 그곳의 마을들을 점령하고 거기에 살던 아모리 사람들을 몰아내었다.

  • 모세는 아모리인들의 남부 지역을 징벌한 후 다시 정탐꾼을 보내어 ‘야셀'을 정탐케 하였다. 이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머물고 있던 모압들의 남부 지역을 평정한 후 이어서 북부 지역까지 평정하기 위해서였다.
  • 본절에서 그곳에 살고 있었던 아모리 사람들과 ‘야셀'에 속한 모든 촌락들에 살던 아모리인들까지 모두 몰아내었다는 기록이 짧게 기록된 것으로 보아 큰 어려움 없이 이 지역 정복 전쟁을 마쳤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주둔지는 모압 들었으나 필요에 따라 전투 부대를 편성하여 정복 전쟁을 수행하였던 것이다.

Ⅱ. 바산 왕 옥은 이웃 나라의 운명을 보고 이스라엘과 화평을 누려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들과 싸우기로 작정하였는데 이는 스스로의 멸망을 자초하는 길이었다.

옥 역시 아모리 사람이었다. 따라서 아마 그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그의 이웃 나라보다 더 이스라엘과 잘 싸워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는 자기 자신의 능력과 체구를 크게 믿었던 것이다. 모세도 그에 대해서 상당한 경각심을 일깨움 받았던 일이 있다(신 3:11). 거기에는 보다 상세한 그에 관한 기사가 나와 있다.

 

💡 당시 이 지역에는 아모리인들의 복왕국이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으며, 그들은 시편 기자의 묘사처럼(시22:12, 13) 매우 포악하고 거칠었다. 이처럼 그들은' 이스라엘이 당해 내기 힘든 전투력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었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아모리 족속의 죄악을 징벌하기 위해(21 절) 암몬과의 충돌을 피하고 돌이켜 이곳 바산 길로 행진하였던 것이다.

바산 왕

  • ‘긴 목을 가진’이란 뜻의 이름으로 추측되는 바산 왕 옥. 신장이 장대하여 9규빗(4.1m), 넓이가 4규빗(1.8m)이나 되는 철침상을 사용했다(신3:11; 수13:12). 거인족이었던 르바임 족속의 마지막 왕.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였던 ‘에드레이’에서 완패하였다.
  1. 아모리 사람들이 싸움을 시작하였다(33절). "바산 왕 옥이 이스라엘을 대항하여 싸우려고 하였다" (33절).

그의 나라는 부유한 땅 이었다. 바산은 훌륭한 목재로 유명하였다(바산의 참나무가 이를 증명 하여 준다). 또 훌륭한 목축업으로 유명하였다. 바산의 소들이 이를 증명하여 준다. 그리고 그 나라의 수양과 염소는 매우 유명하였다 (신 32:14). 악인들은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자기들의 안전과 자기들의 소유를 지키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하지마는 아무 소용이 없다. 기한이 이르면 그것들은 모두 멸망할 수밖에 없게 된다.

  1.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들의 위협적인 힘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완전한 승리를 약속해 주셨다. "내가 그와 그의 백성과 그 땅을 네 손에 붙이셨느니라(34절). 그 일은 이미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땅이 모두 너희의 것이다. 가서 취하라." 아무리 거인이라도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는 한갖 벌레에 불과하다.

💡 시혼의 군대와 싸운 후 다시 옥의 군대와 대치한 상황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그들로 인하여 두려운 마음과 생각을 갖지 말고 담대하라고 말씀해 주신다. 이것은 전쟁의 주관자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하실 뿐 아니라 친히 바산의 군대와 더불어 싸우실 것에 대한 확실한 하나님의 약속이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은 바산 왕 옥과 그의 군대를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바산과의 전투에서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주시겠다고 확실한 약속을 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모리인들과의 싸움에서 그들을 쉽게 전멸시켰던 것과 같이(24-26절) 이제 바산을 쳐서 진멸시키는 것도 시간 문제일 뿐이었다.

오늘날 크고 두려운 죄악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하나님은 이와 같이 말씀하신다. 따라서 우리 역시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므로(딤후1:7) 우리는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세상을 이기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요 14:1-27).

이스라엘은 바산을 쳐서 완전히 이겼을 뿐 아니라, 동시에 바산 전체 60개 성읍에 대한 지배권과 소유권을 완전히 장악했다(신3:4). 따라서 이스라엘은 요단 동편에 거주한 아모리인들의 남왕국과 북왕국을 모두 장악하여 가나안 정복의 배후를 보다 강화시키게 되었으며, 이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요, 약속의 결과였다(34젉).

  1. 이스라엘은 단순한 정복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원수의 군대를 물리쳤을 뿐만 아니라, 원수들의 땅까지도 차지하였다. 그 땅은 나중에 요단강 이편에 먼저 자리잡은 두 지파 반의 유업의 일부가 되었다.

하나님은 모세가 아직 그들과 함께 살아 있는 동안에 이를 성공하게 하여 주셨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1)모세를 위로하기 위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모세는 영광스러운 일의 끝장을 보지 못하고 죽을 것이기 때문에, 그 시작만이라도 보여 주신 것이다).

  1. 또 하나는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정복에 임할 백성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기 위한 것이었다. 이 일은 그 당시로서 볼 때는 매우 작은 일같이 보였지마는 실상은 매우 커다란 일이었다.

 

-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매일 아침마다 정리해주는 찬미자매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