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7월 1일 금요일 묵상구절 신25:11-16 다른 법

하나지기 2022. 7. 1. 09:58

맥체인 성경읽기

여호수아 3, 시편 126, 127, 128, 이사야 63, 마태복음 11

묵상구절

25:11 두 사람이 서로 싸울 때에 한 사람의 아내가 그 치는 자의 손에서 그의 남편을 구하려 하여 가까이 가서 손을 벌려 그 사람의 음낭을 잡거든

25:12 너는 그 여인의 손을 찍어버릴 것이고 네 눈이 그를 불쌍히 여기지 말지니라

25:13 너는 네 주머니에 두 종류의 저울추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넣지 말 것이며

25:14 네 집에 두 종류의 되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두지 말 것이요

25:15 오직 온전하고 공정한 저울추를 두며 온전하고 공정한 되를 둘 것이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 날이 길리라

25:16 이런 일들을 행하는 모든 자, 악을 행하는 모든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하니라

매튜 헨리 / 옥스퍼드

💡 남자를 모독한 여인의 처벌 규례
다른 남자와 싸우다가 곤경에 처한 남편을 구하기 위해 그 남자의 음낭을 잡을 경우 그 여자의 손을 찍어 버리라는 것. 이는 여자의 행동이 아무리 남편을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여성으로서의 품위를 팽개쳐 버린 일이었을 뿐만 아니라 자손 번성을 커다란 축복으로 여기고 있던 당시 사회에서 종족 보존과 직접 관계된 남자의 생식기에 치명적인 손상을 끼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도량형에 관한 규례 공정한 상거래를 위해 공정한 추와 되를 사용하라는 것. 사실 부정한 추와 되를 사용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속여 부당하게 재물을 모으는 행위다른 사람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의 다름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본문의 규례를 주어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상거래에서 다른 사람을 속이지 못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Ⅱ. 정숙치 못한 여인의 징벌에 관한 율법이 있다(11, 12절).

바로 앞의 율법에 의해서 자기 남편의 형제가 자기와 결혼하지 않는데 대해 장로들에게 호소하고 그들 앞에서 그의 얼굴에 침 뱉어야 하는 여인에게는 상당한 뻔뻔스러움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신뢰심이 율법이 여성을 옹호해 준다는 과신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염치심이 없거나 근신하지 않는 여성을 벌하는 엄하고도 공정한 율법이 내려져 있다.

💡 아내가 본문에서처럼 남편과 싸우는 상대편 남자의 성기를 잡는다는 것은 그 남자의 생식 기능을 완전히 멸절시켜 버리려는 목적으로 힘껏 상대방 남자의 음낭을 잡는다는 것을 암시한다. 여인의 이러한 행동이 죄가 되는 것은 상대 남자의 후손이 끊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자의 행위는 언약의 약속을 끊어버리는 행위임과 동시에 재판관이 행해야 하는 공의의 심판마저 자신이 직접 행사해 버리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과 같다.

한편 이웃 남자를 성불구자로 만들 수 있는 일을 했을 때의 처리 규례를 다룬 사건이 (11,12절) 죽은 남편에 대한 혈통 보존을 다룬 계대 결혼 규례 (5-10절) 에 이어 나온 것은 계대 결혼 규례와 마찬가지로 혈통 보존과 관계된 규례이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1. 그에 대한 사례는 극히 추문에 속하는 것이 명백하다. 여자가 자기의 모든 덕성과 명예심을 완전히 마비당하지 않는 한, 그런 행동을 자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2. 그녀의 이유에는 다소 변명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그것은 너무 상대하기에 벅찬 자의 손에서 자기 남편을 구해 내려고 한 짓이었다. 격분해서 한 짓이었고 그것도 좋은 의도로 행한 것이었는데도, 그토록 가혹한 징벌을 받았으니 하물며 방자하고도 욕망 속에서 행해진 일에 있어서이랴!

3. 벌은 그 여인의 손을 찍어 버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치리하는 자는 하나님보다 더 자비로운 것처럼 자부해서는 아니되었다. "네 눈이 그를 불쌍히 보지 말지니라" 고 했다. 아마 우리 구주인 예수님께서도 이 율법을 암시하여 "우리로 범죄케 하거나" 우리에게 죄악의 원인이 되게 하는 "오른쪽 손은 찍어 버리라고" 우리에게 명하셨을 것이다. 영혼이 영원히 파멸당하는 것보다 육체에 최대의 고통이 가해진다 하더라도 그것이 나음이라(마 18:8). 정숙은 순결의 울타리인고로, 남자나 여자를 막론하고 마음 가짐을 온유하게 하고 계속해서 정숙(겸손)을 지켜야 마땅한 것이다.

💡 이처럼 신체의 일부를 잘라내는 것은 너무 가혹한 형벌이기 때문에 원래 히브리인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형벌이었다. 그러나 후손을 끊어버리게 만들 수도 있는 남자의 성기를 잡는 행동은 수많은 후손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언약에 정면 도전하는 것이며, 그 자체가 매우 가증한 행위이므로 하나님은 그와 같은 가혹한 형벌을 예외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 멸망될 아말렉(신명기 25:13-19)

Ⅰ. 저울 추와 되를 속이지 못하도록 금한 율법이 있다. 저들은 거짓 도량 형기를 사용 못할 뿐만 아니라 가지고 있어서도 아니 되었으니, 곧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있거나 집에 두고 있거나를 막론하고 금하였다(13, 14절).

왜 그런고 하니 만약 저들이 그것을 가지고 있게 되면, 그것을 사용하고 싶은 강렬한 유혹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저들은 물건을 살 때에 쓸 큰 저울 추와 큰 되, 그리고 팔 때에 쓸 작은 추와 작은 되를 가져서는 아니 되었으니, 두 쪽이 다 속이는 것이었고 어느 것도 아주 사악한 것이었던 까닭이다.

💡 본절은 물건을 사고 팔 때 서로 다른 추를 사용하여 부당한 이득을 취하지 말라는 경고이다. 본절의 이러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후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큰 돌과 작은 돌을 사용하여 무게를 속여 경제적으로 이득을 취하는 죄를 저질렀다. 암 8:5는 이러한 속임이 얼마나 만연해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우리가 아모스 8장 5절에서 읽는 바와 같이 에바는 작게 만들어 저들이 파는 곡식을 되는 데 쓰고, 세겔은 크게 만들어서 저들이 받을 돈을 다는 데 썼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는 십분 공정한 저울추를 둘지니라" (15절).

공정의 척도가 되는 것 그 자체가 우선 공정해야 하는 법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항구적 기만인 것이다. 이것은 이전에도 주의를 들은 바 있었던 것이다(레 19:35, 36). 이 율법은 두 가지의 아주 타당한 이유로 인하여 발효된 것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1. 정의와 공평(체데크) 은 하나님의 축복을 우리에게 내리게 할 것이다. 우리의 날이 길게 되면 번영을 누리는 길은, 우리의 모든 거래에 있어서 공평하고 공정하게 하는 것이다. "정직은 최상의 방책이다."

💡 '체데크'가 하나님의 의를 말할 때 가장 일반적으로 쓰이는 말임을 감안할 때(시 7:17; 9:8; 119:75; 사42:21), 이 단어가 상거래의 문맥에서도 쓰인 것은 하나님의 의가 결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삶의 현장을 다스리는 실제적인 기준임을 나타낸다. 특별히 의는 이처럼 이웃과의 관계에서 그 실제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엡4:24,25a).

 

2. 부정과 불의(아웰) 는 우리를 하나님의 저주에 놓이게 한다(16절).

💡 ‘아웰’은 앞절에 나온 ‘공정한’으로 번역된 ‘체데크’ 의 반대어로서 ‘불의'란 뜻의 명사이다. 사람과의 거래에서 일어나는 구체적인 불의는 약탈과(겔 33:15) 살인과 압박이다(미3:10). 즉 평등한 관계에서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힘 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자기에게 유리하게 잔인하게 다루는 모습이다. 이는 하나님의 의로운 성품과 정반대의 모습이며 하나님의 가증히 여김을 일으키는 것이다.

제15절에 언급되고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이 상거래에 있어서 정당했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가나안 땅에서 정의 사회를 구현한 가운데 장구하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규례를 어기고 가증하게 행동한 결과 그들의 사회는 불의가 가득하게 되어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이방의 포로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상거래를 활 때 부정직한 것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가증한 죄악인가를 알 수 있다. 정직하고 의로우신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그의 백성은 하나님의 성품에 맞게 모든 일에 있어 정직과 의로움을 나타내야만 하는 것이다.

 

불의 그 자체뿐만 아니라 불의하게 행하는 자도 "여호와께 가증스러운 것"이다. 불쌍할진저! 자기를 지으신 이, 곧 창조주께 미움을 받는 자여! 모든 기만의 술책들이 하나님께 얼마나 미움받는 것인가를 솔로몬은 누누이 증언하고 있다 (잠 11:1; 20:10, 23절). 그리고 바울 사도는 "이런 일로 형제를 해하지 말라. 그런 모든 일을 주께서 신원하여 주시느라" 고 했다(살전 4:6).

Ⅱ. 아말렉 사람들을 근절시키라는 율법. 이것은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대로 다시 아말렉에게 같은 셈을 치러야 한다는 "공정한 추" 요 "공정한 되"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