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7월 3일 주일 묵상구절 신26:1-15 토지 소산

하나지기 2022. 7. 2. 09:21

맥체인 성경읽기

여호수아 5, 6:1~5, 시편 132, 133, 134, 이사야 65, 마태복음 13

묵상구절

26:1 <토지 소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실 땅에 네가 들어가서 거기에 거주할 때에

26: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에서 그 토지의 모든 소산의 맏물을 거둔 후에 그것을 가져다가 광주리에 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으로 그것을 가지고 가서

26:3 그 때의 제사장에게 나아가 그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아뢰나이다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렀나이다 할 것이요

26:4 제사장은 네 손에서 그 광주리를 받아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 앞에 놓을 것이며

26:5 너는 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아뢰기를 내 조상은 방랑하는 아람 사람으로서 애굽에 내려가 거기에서 소수로 거류하였더니 거기에서 크고 강하고 번성한 민족이 되었는데

26:6 애굽 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우리를 괴롭히며 우리에게 중노동을 시키므로

26:7 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보시고

26:8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26:9 이곳으로 인도하사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

26:10 여호와여 이제 내가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 소산의 맏물을 가져왔나이다 하고 너는 그것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두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경배할 것이며

26:1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으로 말미암아 너는 레위인과 너희 가운데에 거류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지니라

26:12 셋째 해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네 성읍 안에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26:13 그리 할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아뢰기를 내가 성물을 내 집에서 내어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기를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명령대로 하였사오니 내가 주의 명령을 범하지도 아니하였고 잊지도 아니하였나이다

26:14 내가 애곡하는 날에 이 성물을 먹지 아니하였고 부정한 몸으로 이를 떼어두지 아니하였고 죽은 자를 위하여 이를 쓰지 아니하였고 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였사오니

26:15 원하건대 주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서 보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며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복을 내리소서 할지니라

매튜 헨리 / 옥스퍼드

● 첫 소산의 예물 (신명기 26:1-11)

Ⅰ. 선한 일이 행해지도록 명하셨으니 그것은 해마다 하나님께 첫 소산물의 광주리를 드리는 일이었다(1,2절). 각 사람은 유월절 다음날에 (레 23:10) 온 나라를 위해 드렸던 "첫 이삭 단" 이외에도 추수가 끝나던 오순절에는 자기 자신을 위하여 첫 소산의 공주리를 가지고 가야 했다. 그래서 이 절기를 초실절이라 청했고(출 34:22) "자원해서 드리는 예물" 로 바쳐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신 16:10). 그러나 "만약 그 때에 첫 소산의 맏물을 가져오지 못 하였다면 그 절기와 겨울 사이의 때에 언제든지 가져와도 가하였다" 고 유대인들은 말하고 있다. 소산의 결실기에 사람이 밭이나 포도원에 나가면 그는 가장 빨리 익었다고 생각이 되는 것에다 표를 해서 첫 소산물로 제쳐 두었다가 밀이나 보리, 포도, 무화과, 석류, 올리브 열매, 대추 등 매 종류마다 얼마씩 같은 광주리 안에 담고 사이 사이에는 잎을 넣어 하나님께서 택하신 장소에서 하나님께 드려야 했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 율법에서 다음과 같은 것을 배울 수 있다.

1.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자연적 삶을 지탱해 주고 안락하게 해주는 모든 좋은 물건들의 시여자인 까닭에, 그 물건들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고 영화롭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2. 우리는 자신을 부인해야 한다. 우리 사람도 맨 먼저 결실한 것들을 아주 좋아한다. 지체있고 신중한 자들은 처음 익은 것을 바라는 것이다. "내 마음이 처음 익은 과실을 사모하였도다" (미 7:1).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첫 소산을 성별하여 하나님께 바치도록 명하셨을 때는, 저들이 자기들의 식욕이나 욕망을 만족시키기에 앞서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기를 더 좋아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신 것이었다.

3. 하나님께서 만물 중 가장 첫째가 되시고 최상이신 것과 같이 우리가 가진 것 중 맨 처음의 것과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의 청년 시절에, 그리고 자기 생애 중 가장 황금기인 시절에 하나님을 봉사하며 그 영광을 위해 성별해 봉헌하는 것은 하나님께 자기의 첫 소산물을 바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자들의 제사를 아주 기뻐하신다. "내가 네 청년 때의 우의(友誼)를 기억하리라" (렘 2:2).

Ⅱ. 저들이 그 선한 일을 행할 때에 저들의 입으로 암송해야 할 말을 일러 준다. 그 말은 그 의식의 뜻을 해석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온당한 예배가 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드리는 자는 광주리를 제사장에게 전달하기 전에 자신에 관한 고백을 시작해야 할 것이요, 제사장이 그 광주리를 자기들의 위대하신 지주(地主)이신 하나님께 선물로서 재단 앞에 내려 놓을 때까지 계속되어야 했다(3, 4절).

1.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주셨던 좋은 땅을 풍족히 누렸다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했다(3절). "내가 고하나이다. 내가 이제" 40년 동안의 방황 뒤에 "마침내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드디어 이르렀나이다" 고 해야 했던 것이다. 이것은 저들이 가나안에 처음으로 들어갔을 때인지라 이렇게 말하는 것이 가장 온당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마 그들이 그 곳에 정착한 후 오랜 시간이 경과하자 그 때에는 고백문의 형태가 바뀌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자기 약속들을 이루셨은 즉, 우리는 그의 신실하심에 고백해야 하고 영광 돌려야 하나니, 하나님은 그것을 우리에게서 원하신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이렇게 고백하는 것이 좋으리라. 솔로몬의 고백과 같이(왕상 8:56), "모든 그 선한 말씀이 하나도 이루지 않음이 없도다" 고. 그리고 우리의 쾌락이 그 약속의 샘으로부터 흘러나온 것임을 알 때는, 우리가 갑절로 기뻐하게 되리라.

2. 그 예물을 바치는 자는, 자기가 속한 민족의 염원은 매우 초라했음을 기억하고 또 고백해야 했다. 자기 민족이나 자기가 지금은 아무리 위대하다 할지라도 그 근원은 아주 미미했었다. 저들 교회의 모든 세대는 이 사실을 공공연한 고백으로 저들 회중의 마음 속에 간직하게 해야 했다. 이것은 저들로 자기들의 특권과 우월함을 자만하지 않게 하고, 저들이 그토록 비천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은총으로 저들을 택하사 지금은 그렇게 높여주신 하나님께 영원토록 감사드리게 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저들은 두 가지 사실을 고백해야 했다. 즉

(1) 저들의 조상의 비천함.

"내 조상은 유리하는 수리아인이었도다" (개역은 아람인)(5절). 여기에서는 야곱을 아람인이나 혹은 수리아인이라 칭했으니, 이는 저가 밧단 아람에서 20년을 살았고, 그 아내들이 그 지방 사람들이었으며, 베냐민을 제외한 그의 모든 자식이 다 거기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 고백하는 자는 야곱 자신을 칭한 것이 아니라 자기 지파의 조상이었던 야곱의 아들을 뜻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어떻든 간에, 아비와 아들들이 다 몇 번씩이나 죽을 뻔하였으니 가혹한 라반에 의해서나 잔혹한 에서 때문에, 그 땅에 든 기근으로 인해서였던 것이며, 마지막의 이 기근은 저들이 애굽으로 내려가게 되었던 원인이 되었다. "수리아 사람 라반이 네 조상을 죽이려 하였도다" (시리아 역). 또는 "그(네 조상)를 거의 죽일 뻔하였도다" (아랍역).

(2) 그 민족이 유아기에 처했던 비참한 상태.

저들은 애굽에서 나그네로 머무르고 있었고 저들은 거기서 노예로 남을 섬기고 있었으며(6절), 게다가 그것도 오랜 세월을 그렇게 보낸 것이다. 저들의 조상이 수리아인(아랍인과 같은 의미)으로 불리워졌듯이, 저들은 애굽 사람이라 불리워져야 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저들이 가나안 땅을 그다지 오랫동안 계속 소유하고 있지 못하였므로, 그 땅의 소유권을 요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애굽에서는 곤궁하고 멸시받으며 억압 당하는 민족이었다. 그러므로 비록 지금은 부유하고 큰 민족이 되었다 할지라도, 뻐기거나 너무 방심하거나 하나님을 망각하는 일을 저질러서는 안 되었다.

3. 예물 헌납자는 구체적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전적으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큰 자비심을 감사한 마음으로 고백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1)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다는 사실에 대하여(7, 8절). 본문에서는 그것이 긍휼히 여기시는 행위로 표현되고 있다 - "그가 우리의 고통을 감하셨다." 또 그것은 권능의 행위로도 표현되고 있다. "그가 강한 손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셨도다." 이것은 어떤 경우에도, 특히 이러한 감사의 예물을 드릴 때는 더욱 기억해야 할 바 위대한 구원을 말해 주는 것이다.

저들은 한 광주리의 첫 소산물을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고 불평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제는 저들이 잔학한 공사 감독들에게 벽돌을 바치지 않아도 되며,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덕이었기 때문이다.

(2) 저들은 가나안에 정착시키신 일에 대해. "그가 우리에게 이 땅을 주셨나이다" (9절). 바치는 자는 자기 자신의 몫에 대해 감사를 드릴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에게 주신 그 땅 전체에 대해서도 감사를 드려야 했다. 그 한 해의 수입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그 수익을 가져다 준 토지 그 자체에 대해서 감사해야 한다. 그 땅은 하나님께서 자비롭게도 자기 조상들에게 주셔서 그 후손들에게 물려준 땅이기 때문이다. 우리 각자가 누리는 낱낱의 기쁨은 거기에 참여하여 그것을 함께 누리고 있는 우리들이 마땅히 감사의 심정을 자아 내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우리는 현재의 고마움과 더불어,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과거의 자비와 우리가 기대하고 바라는 미래와 자비로 인하여 하나님께 찬양을 돌려야 한다.

4. 그는 하나님께 소산의 맏물 광주리를 바쳐야 했다. "당신께서 내게 주신 땅에 대한 조세로서, 그 토지 소산의 맏물을(땅 세로서) 내가 가져왔나이다" (10절).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든지, 우리가 "그에게 드리는" 것은, 오직 "그 자신께서 비롯된" 것임을 명심하자(대상 29:14). 하나님께로부터 그토록 많은 것을 받은 우리로서는 무엇으로 그 분께 갚아야 할지를 고심해서 연구하는 것이 어울리는 것이다. 그가 그 광주리를 하나님 앞에 놓으면, 하나님을 대신한 수납자로서 또 자기 직무에 대한 보수와 봉사에 대하여 급료로서 그 소산의 맏물을 제사장들이 가졌다(민 18:12).

Ⅲ. 바치는 자는 그 예식을 마치면 다음과 같은 명령을 받는다.

  1.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리라.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배 할지니라." 그가 바치는 첫 소산물은 뒤따라 나오는 이 찬미의 행동이 없으면 가납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감찰하시고 요구하시는 것겸손하고도 경외하며 또 감사하는 마음인 것이니, 우리가 광주리 안에 넣을 수 있는 모든 것도 이런 마음이 결어 되어 있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만약 사람이" 이것을 면하기 위해서나 이것을 대신하여 "자기 집의 모든 물질을 다 바친다해도 그것은 전적으로 멸시받는 것이 될 것이다."
  2. 자기와 가족들이 함께 그 즐거움을 누리자. "너는 모든 복을 인하여 기뻐할지니라" (11절).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법도를 준행함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당신의 섭리에 의하여 주어지는 선물들을 누림으로써 즐거워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복된 일을 내려주셨든지 간에, 우리는 모든 즐거움과 위로의 근원으로 흘러가는 그 흐름을 추적하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그것을 최고로 즐겁게 활용하는 것이 그분의 뜻인 것이다.

● 제 3년의 십일조(신명기 26:12-15)

제 3년에 십일조를 내는 것에 대하여는 전에 그 율법이 이미 나왔다(14:28, 29). 두 번째 십일조는 다른 두 해 동안 절기 축제에서 특별 비용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제 삼년에는 가난하고 불쌍한 자를 접대하는 데 잘 쓰여지도록 했었다. 이것은 제사장들의 목전에서 행해졌고, 백성들의 정직함을 크게 신뢰하였으며, 그들은 율법에 따라서 "레위인과 나그네와 고아에게" 그 십일조의 예물을 주어 먹게 하였기 때문에(12절), 저들이 "주 여호와 앞에" 나타난 후 그 바로 다음 절기에는 자기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실행하였으며 저들의 의무에 충실하였다는 사실을 경건히 (말하자면) 맹세로써 증언을 해야만 하였다.

Ⅰ. 저들은 이런 취지로 엄숙한 선언을 해야 했다(13,14절).

1. 어떤 물건(의 십일조)도 비축이 허용되지 않았다. "나는 나의 집으로 부터 그것들을 다 가지고 왔사오며, 거기에는 나 자신의 몫이외에는 아무 것도 이제는 남아 있지 않나이다."

2. 곤궁한 자들, 특히 곤궁한 사역자들과 궁핍한 나그네나 가난한 과부들은 계명에 따라서 저들의 몫을 받았었다. 당신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우리의 모든 소유물을 주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율법에 의하여 재물의 사용에 대해서도 지시하시는 것은 마땅한 일이며, 비록 우리가 요즘은 일반적으로 당시 사람들과 같이 그렇게 우리 수입을 특정한 목적에 극한하여 전용하고 있지는 않고 있으나, 일반적으로 우리가 가지는 있는 모든 재물은 자선의 연금으로 기부할 것을 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그때에만 나머지의 모든 재물이 우리에게 정결한 것이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재물 중에서 당신의 정당한 몫을 받으신 때, "그때에야" 우리는 우리의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는 법이다. 이것은 어겨서는 안될 계명이었고 잊어버려서 행치 못하였다는 변명으로 넘길 수 있는 계명도 아니었다(13절).

3. 이 십일조는 호리 만큼이라도 속된 일상적 일에 유용되어서는 아니 되었으니, 하물며 나쁜 용도에는 더구나 안 되었다. 이 말은 다른 두 해의 십일조와 관계있는 말인 것 같다. 다른 두해의 십일조는 소유자 자신이 먹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1) 그들은 자기들이 애곡을 하는 동안 십일조를 먹지 아니했다는 것을 고백해야 했다. 죽은 자를 위해 애곡하면, 저들이 부정해지기 때문이며, 혹은 어두움 속에서 온종일 탄식하는 자들처럼, 그 성물을 탐식하지도 아니했음을 고백해야 한다.

(2) 저들은 참람하게도 성물을 속된 일에 사용하지는 않았다고 고백해야 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저희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3) 그리고 저들은 죽은 자를 위해서나 저들의 살아 있지도 않은 잡신을 위해서나 혹은 저들의 죽은 친구들에게 행운을 비는 마음에서 성물을 바친 적이 없다는 것도 고백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제 삼 년의 말에 이 엄숙한 고백을 하도록 규정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그토록 정결히 보호하실 것을 요청하고 계신다는 것을 깨닫고 저들이 십일조를 성실히 다루게 하게 위함일 것이다. 우리가 헤아림을 받게 될 때 흠없는 얼굴로 하나님을 대하기 위해서는, 늘 우리의 양심을 정결케 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다.

유대인들의 말에 의하면, 저들의 정직함을 주장하는 이 고백은 낮은 음성으로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마치 자화자찬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었다. 이에 반하여 앞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고백은 그의 영광을 위해 큰 소리로 해야만 하였다고 한다. 이 고백을 감히 행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는 자기의 속건제를 드려야만 하였다(레 5:15).

Ⅱ. 저들은 이 엄숙한 고백에다가, 구체적인 저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을 위한 "엄숙한 기도" 를 추가해야만 하였다(15절). 그 이유는 각 개개인은 공동의 평화와 번영 속에서만 번영할 수 있고 평화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기서 배워야 할 것은, 기도 속에 공적 정신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는 것과, 각기 자기들의 이스라엘인 그 국토와 민족을 위해서 그리고 세계 교회를 축복해 줍시사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우리의 나라와 민족과 세계 교회는, 갈라디아서 6장 16절 말씀에서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이스라엘" 로서 기도시 유의하도록 지시받은 바의 것이다. 이 기도에서 우리가 가르침 받을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들이다.

  1. 우리는 하나님을 거룩한 처소에 계신 자로서 우러러 보아야 한다. 따라서 거룩함이 그의 거소가 되며, 그의 주위에 있는 자들에게서 거룩히 여기심을 받게 되리라는 것을 미루어 알 수 있다.
  2. 우리가 하나님의 은총과 그의 은혜스러운 감찰을 의지하는 것은 우리와 우리 민족들을 행복하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3. 이스라엘이 아무리 크고 존귀한 집단이라 하더라도, 그들을 하감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놀라우신 비하라고 생각해야 한다.
  4.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과 "그가 우리에게 주신 땅" 에 복을 내려 주시기를 하나님께 열망해야 한다. 왜냐하면 만약 하나님이, "비록 우리의 하나님이시지만 우리에게 당신의 복을 내리시지" 않으신다면, 땅이 어떻게 그 소산을 내며 또 낸다고 한들 우리가 그것에서 무슨 위안을 얻을 것인가?(시 6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