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 성경읽기
사사기 15, 사도행전 19, 예레미야 28, 마가복음 14
묵상구절
11:16 <여호수아가 취한 지역> 여호수아가 이같이 그 온 땅 곧 산지와 온 네겝과 고센 온 땅과 평지와 아라바와 이스라엘 산지와 평지를 점령하였으니
11:17 곧 세일로 올라가는 할락 산에서부터 헤르몬 산 아래 레바논 골짜기의 바알갓까지라 그들의 왕들을 모두 잡아 쳐죽였으며
11:18 여호수아가 그 모든 왕들과 싸운 지가 오랫동안이라
11:19 기브온 주민 히위 족속 외에는 이스라엘 자손과 화친한 성읍이 하나도 없고 이스라엘 자손이 싸워서 다 점령하였으니
11:20 그들의 마음이 완악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러 온 것은 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이라 그들을 진멸하여 바치게 하여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하시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들을 멸하려 하심이었더라
11:21 그 때에 여호수아가 가서 산지와 헤브론과 드빌과 아납과 유다 온 산지와 이스라엘의 온 산지에서 아낙 사람들을 멸절하고 그가 또 그들의 성읍들을 진멸하여 바쳤으므로
11:22 이스라엘 자손의 땅에는 아낙 사람들이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고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에만 남았더라
11:23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온 땅을 점령하여 이스라엘 지파의 구분에 따라 기업으로 주매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매튜 헨리 / 옥스퍼드
▶ 스페셜포인트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차지하게 되는 것은 대략 다음의 세 단계를 거치게 된다.
- 1단계가 가나안 주요 거점의 장악이며,
- 2단계는 각 지파별 땅의 분배,
- 3단계는 땅을 분배받은 각 지파가 자기 지역 내의 가나안 세력을 완전히 소탕하고 그 땅에 성공적으로 정착하는 것이었다.
여호수아의 사명은 제 1단계와 제 2단계의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었으며, 가나안 북부 지역의 정복을 끝으로 하여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전쟁은 약 7년 간에 걸친 일단계가 마무리 된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이제 기업을 분배하는 일이 남았으나, 그 이전에 다시 한번 여호수아가 정복한 땅의 지경과 왕들의 명단을 언급함으로써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주셨던 약속의 말씀이 성취되었다는 것과 이스라엘의 승리를 강조하고 있다.
11:16-23절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족속들을 쳐서 가나안 본토의 거점을 장악하게 된 것 과 가나안 정복 전쟁의 제 1단계가 종결된 사실을 약술.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점은 여호수아에 의해 정복된 땅의 경계가 가나안의 일부 지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가나안 영토의 전영역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11:16,17). 물론 이것이 가나안 세력의 완전 소탕은 아니지만, 이스라엘이 제 1단계로서 차지해야 할 거점의 영역이 가나안 전역에 이를 정도로 완전하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이로써 가나안 세력들은 산발적으로 이스라엘에 대항할 수는 있었지만, 2차에 걸친 남부와 북부 세력의 동맹과 같이 이스라엘에 위협이 될 만큼 조직적인 저항은 불가능하게 되었음을 보여 준다. 지금까지 전면전의 양상을 띠던 전쟁은 산발적 국지전의 양상으로 전환되었으며, 소규모 소탕전은 각 지파별로 수행하는 것이 효과적이므로 정복 정착 전쟁의 다음 단계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것이다.
● 여호수아의 승리 재음미 (여호수아 11:15-23)
우리는 여기서 이 전체 사건의 결말을 보게 된다.
Ⅰ. 이 짧은 이야기 가운데 우리는 네 가지 사실이 되어진 것을 발견한다.
1.이스라엘 족속을 대적하는 가나안 사람들의 완강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신다는 것이 이토록 명백하게 나타났고 또한 일이 있을 때마다 가나안 족속들이 최악의 운명을 모면하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끝까지 버텼다고 평화에 관한 것들이 자기들의 이웃보다 더 좋다는 것을 깨달은 기브온 사람들, 단 한 곳 이외에는 화천을 맺으려고 한 성읍이 하나도 없었다(19절).
이것은 다른 성읍들도 헤어진 옷과 떨어진 구두가 아니라도 만일 그들이 스스로 겸손해지기만 했었다면 자기 자신들을 위하여 보다 좋은 조건을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해 준다. 그러나 "그들은 조금도 평화의 조건들을 원하지" 않았다. 우리는 여기서 이 엄청난 어리석음이 어디서부터 오게 되는지를 듣게 된다. "그들의 마음이 강퍅하게 된 것은 여호와께서 그러하게 하셨다" (20절). 바로의 마음이 처음에는 자신의 교만과 고집으로 완악해졌으나 후에는 하나님께서 그의 파멸을 위한 의의 심판을 마련하심으로 완악해졌던 것처럼 이들 가나안 족속들의 마음도 그렇게 되었었다.
그들의 다른 모든 어리석음을 형벌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우방으로 만들 수 있었을는지도 모르는 이스라엘을 적수로 삼는 이 일을 하도록 버려두셨다. 그들을 파멸시킨 것은 "이스라엘을 대적해서 싸우러 나와", 먼저 시비를 걸었기 때문이었고, 따라서 그들은 "은총을 받을 길이 없었다. "하나님의 정의를 격노시키고 또 그의 정의의 도구들을 자극시키는 자들은 그들이 행하는 바를 모른다. "우리가 하나님보다도 더 강한가?"
여기서 살펴보면 완악한 마음은 곧 죄인들의 파멸이다. 하나님의 경고에 우둔하고 강퍅하며 조심성이 없는 자들은 이미 멸망하도록 작정되어져 있다. 하나님께서 이미 "가서 그들의 마음을 살찌게 하라" 고 말씀하신 그들에게 무슨 소망이 있겠는가?
1. 이 전쟁을 수행하는 일에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의 불변(18절).
"여호수아는 오래도록 전쟁을 치뤘다."
어떤 이들은 이 땅을 정복하는데 소비된 기간을 5년으로 보기도 하고 7년으로 계산하는 이도 있다. 이토록 오랫동안 하나님은 전쟁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훈련시키시고 그가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매번의 새로운 승리 때마다 자기의 능력과 선하심의 실례를 거듭거듭 보여주셨다.
2. 최후적으로 아낙 족속을 정복함(21,22절).
이 정복은 그들이 전쟁에서 부닥쳐 패주할 때 된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으나 아낙 자손은 일단 요새 속으로 은신했었기 때문에 그냥두고 나머지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다 정박한 후에 마지막으로 그들을 찾아내어 멸절시킨 걸로 보는 것이 더 옳을 것 같다. 유다와 이스라엘의 산들은 이들 산에 사는 사람들의 거주지들이었다. 그러나 그 산들이 아무리 높아도 그 동굴들이 아무리 강해도 또한 그리로 가는 길이 아무리 험해도 또 이들이 아무리 용사들이라고 해도 여호수아의 칼에서 안전할 수는 없었다.
아낙 자손들을 멸절시킨 것이 특별히 언급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이들이 40년전 정탐꾼들에게 너무나 큰 공포의 대상이 되었었고 이들의 체구와 힘이 가나안을 정복하는 일에 도저히 당할 수 없는 난관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민 13:28, 33). 도저히 당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대적도 정복되어졌다. 아낙 자손들도 그들의 날이 멸망에 이를 때는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지 못하였다. 거인들도 전능자에게는 난쟁이로 보인다고 그러나 아낙 자손들과의 이 투쟁은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 기술에 있어 보다 노련해지고 하나님의 능력과 선하심에 대한 보다 많은 경험을 가지게 될 때까지 전쟁의 끝 부분쪽으로 보류되어졌었다. 하나님께서 때로는 자기 백성이 당하는 고난과 시험 중 가장 어려운 시련은 훗날로 미루신다. 그러므로 "갑옷을 입는 자가 갑옷을 벗는 자처럼 자랑하지 못한다. "무서운 아낙 자손, 곧 죽음 그것은 부닥쳐야 할 마지막 원수이다. 그러나 그것은 "멸망되어지도록" 작정되어 있다(고전 15:26).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3. 이 긴 전쟁의 종결과 문제.
가나안 사람들은 멸망당했다. 그러나 그것은(우리가 사사기에서 나중에 보게 되겠지만) 완전히 멸망된 것이 아니라 일부가 멸망되었다.
(1) 그들은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그 땅을 점령하는 일을 막을 수 없을 정도였다! 여호수아가 그 온 땅을 취하였으니!(16, 17절) 우리가 상상해 본다면 제비를 뽑아 땅이 분배되고 그래서 자기들이 살 땅을 알 수 있을 때까지 사람들은 이미 자기들이 점령한 나라들 가운데로 가족들을 데리고 흩어져 나갔을 것이라고 본다. 아니라면 최소한 길갈 본부 아주 가까이 살 곳 있었던 사람들만이라도 그렇게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2) 그들이 전쟁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민족을 성가시게 구는 것조차도 할 수 없었다(23절).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가나안 민족과의 화친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그것은 금지된 것이었다). 그들로부터의 평화를 누리게 됨으로 끝났다. 거기에는 안식 곧 전쟁으로부터의 안식이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서 남겨두신 것이었다. 전쟁이 끝날 때 그들은 모두 그 안식에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Ⅱ. 여기서 이때까지 된 일과 모세에게 말씀하셨던 것이 비교된다.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는 우리가 함께 살펴보고 생각해 본다면 서로서로 설명된다. 우리가 여기서 면밀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1. 하나님께서 가나안 정복에 관해서 모세에게 내린 모든 훈령을 적어도 여호수아가 살았을 동안은 백성들이 그대로 순종했다.
이것이 얼마나 엄숙하게 이야기되고 있는지 살펴보라(15절). "여호와께서 그의 종 모세에게" (바로 그의 손으로 율법을 받았다), "명하신 것을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명하셨다." 왜냐하면 모세는 그를 입법자로 세우신 그분에게 충실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기 일을 다하고 그리고 죽었다. "그러나 모세의 명령이 그가 무덤에 있을 때에도 지켜졌는가? 그렇다 지켜졌다. 여호수아가 그랬었다. 그는 모세를 대신해서 모세만큼이나 충성했었다. "여호와께서 무릇 모세에게 명하신 것을 하나도 행치 아니한 것이 없었더라" (히브리어 성경에는 "아무 것도 없애 버리지 않았다" 로 되어 있다). 자기들에게 맡겨진 일을 하지 않은 채 버려두는 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자기들이 행하여야 될 하나님의 명령을 말소시키거나 무효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이 훈계들을 실행함으로써 신명기 27장 26절의 표현처럼 그것을 "확증했다. "여호수아는 위대한 사령관이었다. 그러나 순종보다 더 칭찬할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 자기들의 뜻을 따라 다른 사람들을 다스리는 사람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뜻에 지배받아야 한다. 그 때에 그들의 능력은 참으로 그들의 명예가 될 것이다. 그 외에 다른 길은 없다. 여호수아가 여기서 칭찬받는 그 경건한 순종은 특별히 가나안 족속을 파멸시키고 "그들의 제단을 헐고 우상들을 불태우라" 는 명령에 관한 것이다(신 7:2-5; 출 23:24; 34:13). 여호수아는 만군의 하나님께 대한 열심으로 우상과 우상 숭배자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아말렉 족속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사울 왕의 불복종, 곧 그의 부분적인 복종은 그의 왕국을 잃게 했었다. 여호수아는 그의 사명을 수행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명령을 가장 주의 깊고 정확하게 지킨 걸로 설명되고 있다. 그는 모든 면에 있어서 모세가 그에게 명령한 대로했다. 그리고 이 모든 전쟁에서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일을 생각함으로써 보다 더 큰 기쁨과 만족을 누렸고 그를 부요하게 하고 잘 살게 하는 모든 노휙물과 승리보다도 이것을 더욱 가치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2. 이 정복과 관계해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내리신 모든 명령이 여호수아에게서 성취되었다(23절).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대로 땅을 취하고" 그것을 정복하고, 그 땅을 소유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 앞에서 열방들을 쫓아내고(출 33:2; 34:11) "그들을 엎드러지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다(신 9:3). 그런데 그것이 지금 이루어졌다. 그리고 약속의 말이 한 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 우리의 성공과 기쁨은 그것들이 약속(이것은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되는 것이다)에서부터 우리에게로 흘러나오는 것임을 보게 될 때 그것은 우리에게 갑절의 기쁨과 위안이 될 것이다. 또한 우리의 순종이 하나님의 훈계에 유의한 것일 때는 그것이 하나님께 열납된다. 우리가 우리의 의무를 양심껏 감당한다면 우리는 약속의 성취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