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 성경읽기
사무엘상 5, 6, 로마서 5, 예레미야 44, 시편 19
묵상구절
16:5 에브라임 자손이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지역은 이러하니라 그들의 기업의 경계는 동쪽으로 아다롯 앗달에서 윗 벧 호론에 이르고
16:6 또 서쪽으로 나아가 북쪽 믹므다에 이르고 동쪽으로 돌아 다아낫 실로에 이르러 야노아 동쪽을 지나고
16:7 야노아에서부터 아다롯과 나아라로 내려가 여리고를 만나서 요단으로 나아가고
16:8 또 답부아에서부터 서쪽으로 지나서 가나 시내에 이르나니 그 끝은 바다라 에브라임 자손의 지파가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기업이 이러하였고
16:9 그 외에 므낫세 자손의 기업 중에서 에브라임 자손을 위하여 구분한 모든 성읍과 그 마을들도 있었더라
16:10 그들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가나안 족속이 오늘까지 에브라임 가운데에 거주하며 노역하는 종이 되니라
매튜 헨리 / 옥스퍼드
👀 본문은 제 16, 17장까지 이어지는 요셉 자손에 대한 기업 분배 기사의 연속 부분입니다. 이러한 본문은 요셉 자손의 공동 정착지의 남쪽 경계를 언급하고 있는 지난 단락(1-4절)에 이어 요셉 자손 중 에브라임 지파가 할당받은 땅의 경계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에브라임 지파는 가나안 시내가 있는 지중해 연안에서 시작하여 복동쪽으로는 답부아, 아루마, 야노아를 잇는 지역과 남쪽으로는 가나 시내, 윗 벨 호론, 나아라를 잇는 지역, 그리고 동쪽으로는 야노아에서 아다롯을 지나 나아라를 잇는 지역을 기업으로 차지하였습니다.
한편, 여기서 에브라임은 요셉의 차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요셉의 장자였던 므낫세 지파보다 먼저 기업을 할당받은 사실은 주목할만합니다. 어것은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에 대한 야곱의 예언(창 48:1-22)의 성취였습니다. 즉 야곱은 임종시에 요셉의 아들들인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축복하면서 아우가 형보다 더 큰 자가 되며 뛰어나게 되리라고 예언하였던 바 그것이 그대로 성취되었던 것입니다. 사실 야곱의 예언은 에브라임 지파가 할당받은 지형의 중요도틀 떠나 역사적으로 볼 때에도 증명됩니다. 즉 에브라임 지파는 훗날 남북 분열 왕국 당시 10지파가 모여 형성한 이스라엘 왕국의 실질적인 주도권자가 되었던 것입니다(사 7:2-17).
하지만 에브라임 지파에 대한 하나님의 이와 같은 축복에도 불구하고 에브라임 지파는 하나님 앞에서 결정적인 잘못을 범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신20:16-18)을 거역하고 가나안 사람을 그들의 종으로 부렸던 점입니다(10절). 이러한 그들의 태도는 실로 편의주의적 발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가나안족을 다 멸절시키라 하신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더욱이 훗날 에브라임 지파를 중심으로 한 북왕국 이스라엘은 가나안족의 풍습에 물들어 저들의 우상을 섬기는 죄악까지 범하게 됨으로(왕상 12:29) 끝내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 일으켜 심판을 당하고 말았습니다(호 9:3-17; 12:7-14). 이와 같은 사실은 아무리 하나님의 크신 은총과 축복을 입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자는 결국 멸망받을 수밖에 없음을 교훈해 준다고 하겠습니다.
● 에브라임의 몫 (여호수아 16:5-10)
1. 에브라임 지파의 기업의 경계가 설정된다. 이 경계에 의해서 남쪽으로는 베냐민과 단 지파가 구분되었고(베냐민과 단 지파는 에브라임과 유다 사이에 위치하게 되었다) 북쪽으로는 므낫세 지파와 구분되었다.
동서로는 요단 강에서부터 대해까지 이르렀다. 여기에 나오는 방향에 따라 정확하게 경계선을 그어 보려고하는 학자들은 이 설명이 너무나 부족하고 복잡하게 되어 있어서 굉장히 당황하게 된다. 최근에 이 지역들을 여행한 사람들의 이야기로는 지금의 상황이 그때의 상황과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어려운 점을 해결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성읍들이 파괴되어 흔적도 없는 것이 많을 뿐만 아니라 개천들은 말라버렸고 강들은 그 흐름이 변경되기도 했다. "무너지는 산은 정녕 흩어지고 바위는 그 자리에서 옮겨진다" (욥 14:18).
만일 내가 에브라임의 경계의 그림에서 생기는 의심들을 해결할 수 있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이 일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 당시로는 그것이 충분히 이해되었으리라고 생각되며 따라서 고대의 땅의 경계를 알게 하고 후손들이 절대로 옮기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이 기록의 처음 의도는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본다.
2. 몇몇 따로 떨어진 성읍들이 언급되고 있는데 이 성읍들은 적어도 경계선이 바로 그어진다면 경계선 내에 위치하지 못하고 므낫세 지파의 기업 안에 위치하게 된다(9절). 따라서 이 구절은 이렇게 읽는 게 더 좋을 것이다. "므낫세 자손의 기업 가운데 에브라임 자손을 위해 따로 구분한 성읍들이 있었다" (9절).
👀 므낫세 지파의 성읍 가운데 일부를 완전히 따로 떼어서 에브라임 지파에게 속한 것으로 인정하여 주었음을 알 수 있다. 므낫세 지파의 요단 서편 기업은 그들의 인구에 비해 넓었다. 따라서 아무런 마찰없이 에브라임 지파에게 일부 성읍을 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는 같은 ‘요셉 자손'으로서 가나안 땅 분배 시에 한 지파로 취급되어 하나의 제비만을 뽑았는데(1절), 이는 곧 두 지파가 완전히 별개의 독립된 지파라기보다는 가까운 형제지간의 동맹체적인 관계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므낫세는 이것들을 양도해 줄 수가 있었고 에브라임은 이것들을 필요로 했음이 분명하다. 이 두 지파가 함께 섞여서 사는데 어떠한 불편도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이들은 요셉의 같은 아들이었으며 "형제같이 사랑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나타난 바에 따르면 지파들이 모압 평지에서 계수될 때 므낫세가 52,000 이었고 에브라임은 32,000 뿐이었다(민 26:34, 37). 그러나 그들이 가나안에 정착했을 즈음에는 손이 다시 엇갈려 놓여지게 되었고, 모세의 축복은 이것을 증명했다(신 33:17). "에브라임의 만만이요, 므낫세의 천천이리로다. "혈통과 왕국은 줄었다가 늘어나기도 하고 흥했다가 다시 망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이다.
3. 에브라임 족속들은 무관심해서든지 혹은 비겁해서든지 간에 혹은 그들이 힘껏 노력만 하면 그들에게 성공을 안겨 주셨을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앙의 부족에서든 간에, 혹은 가나안 족속들을 철저하게 몰아내고 그들과 어떤 화친도 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열심의 결핍에서든 간에 그들은 게셀에 거하는 "가나안인들을 온전히 쫓아내지" 못하였다는 오명을 쓰게 된다(10절).
비록 그들이 조공을 바치게 하는 법률로 만족했는지는 모르지만(칼빈의 생각처럼) 이것은 일을 더욱 악화시켰다. 그들은 이들의 노동력을 이용하려고 하는 탐욕에서 이들을 남겨 두었다가 이들에게 조공을 받는 거래를 통해서 우상 숭배에 감염되는 위험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에브라임 자손들이 이들에게 조공을 바치도록 할 때, 그들은 이들에게 우상을 버리게 했고 노아의 아들의 7계명을 지키도록 강요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본인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야기가 계속됨에 따라 우상 숭배를 금지하는데서 점점 이완되어 그들도 곧 이 속으로 빠져 버리게 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 본문에서 에브라임 지파의 거주 지역에 가나안 거민들이 잔존한 이유는
: 유다 지파처럼 가나안 거민들을 쫓아낼 군사적인 힘이나 능력이 에브라임 지파에게 없어서가 아니고 그들 자신이 가나안 거민들을 쫓아낼 의사가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에브라임 지파는 게셀의 가나안 사람들을 자신들의 안락을 위한 종으로 부리기 위해서 쫓아낼 험이 충분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쫓아내지 않은 것이다(16:10).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의 지휘 아래 전민족적으로 가나안 주요 거점에 대해서만 정복을 마친 상태였지 가나안 전지역에 대해서는 아직 정복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각 지파별로 땅을 분배하게 한 이유는 바로 각 지파별로 남은 가나안 족속들을 완전히 쳐부수어 쫓아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가나안의 족속둘을 진멸시키라는 것은 가나안에 입성하기 전부터 내려진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둘의 성읍에서는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 곧 햇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네가 진멸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하신 대로 하라” (신 20:16,17)
쫓아내다
하나님으로부터 기업을 받았다는 것은 그 기업이 저절로 주어진다는 의미가 아니고 기업으로 할당된 땅에서 온전한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차지하는 기업은 이방인과 결코 공존하는 땅이어서는 안되었다. 이에 따라 에브라임 지파는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기업 안에서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를 이루기 위해 이곳의 가나안 족속들을 완전히 쫓아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쫓아내지 아니하고 자신들의 안락과 편리를 위해 그들을 멸절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후일 왕정 시대에 에브라임 지파를 중심으로 한 북왕국 이스라엘은 우상 숭배에 깊이 빠졌고 이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었다(호12:7-14)
게셀 성읍의 가나안인들
에브라임 지파에게 넘어간 ‘게셀' 성읍의 가나안인들은 에브라임 지파가 쫓아내지 아니함으로 계속 거주하게 되었다. 한편 ‘가나안 사람’ 은 모세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명령대로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진멸해야 할 일곱 족속 중 한 족속이었다. 그러나 에브라임 지파는 이들을 진멸하되 ‘호흡이 있는 자는 하나도 살리지 말라' (신20:16,17)고 하신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이들을 살려 두었던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정면적으로 불순종하는 태도였다.
에브라임 가운데 거했다
어떤 주체가 다른 대상의 한가운데 유기체적으로 거한다는 사실은 곧 그 대상과 주체가 서로 동화되어 내적 속성을 공유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문에서 하나님의 백성인 에브라임 지파 가운데 가나안 족속이 거주했다는 사실은, 단지 삶의 공간을 공유했다는 의미만이 아니고 삶의 방식과 종교적 신앙까지 공유하였다는 의미이다. 이렇듯 가나안 족속들이 이스라엘 백성들 안에 함께 거한 결과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유일신 신앙에서 떠나 그들을 쫓아 이방의 우상을 숭배하게 되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분리되어서 살아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마28:19)는 대위임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서 오히려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대위임 명령과 함께 잊지 말아야 하는 또 한 가지의 중요한 사실은 결코 믿지 않는 자들과 함께 멍에를 메지 말라는 말씀이다(고후 6:14). 우리는 그들과 함께하여 복음과 우리들의 삶과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그들을 변화시켜 가되 그들의 비복음적인 문화나 이데올로기에 침식당하거나 그것들을 공유하며 살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훗날 에브라임 지파를 중심으로 한 북왕국 이스라엘이 가나안 우상 숭배 죄악에 물들어(왕상 12:25-33) 결국에는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킨 것(호 9:3-17; 12:7-14)을 볼 때, 혹시 우리들은 세상이 주는 쾌락과 잠시 동안의 거짓 평화를 위해 오히려 복음을 부끄러워하며 살고 있지는 않는가 두려워하며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기보다는 자신들의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더 관심을 가졌고 이는 가나안 족속을 모두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그들 임의대로 게셀의 가나안인들을 종으로 삼아 부리는 불순종으로 이어졌다. 사단은 우리를 유혹할 때에 환난이나 고통만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단은 세상적 기준으로 볼 때 좋고 아름다운 것, 탐낼 만한 것을 가지고 우리의 삶 속의 여러 가지 문제 가운데 교묘하게 침투해 들어와 유혹한다. 이는 그가 직접 하와를 유혹할 때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는 속임수로 선악과를 먹게 한 사실과(창 3:1-5) 예수님에게 세상에 대한 권세를 주겠다는 내용 등으로 유혹하였던 사실을 통해 볼 때 분명히 확인된다(마 4:1-11).
비록 여기에 언급되고 있지는 않지만 에브라임 지파의 기업 내에는 유명한 곳들이 많다. 이 기업 내에 사무엘의 고향 라마가 있고(신약에서는 아리마대라고 불리워지고 있는데 우리 주님의 장례를 보살펴준 요셉의 출신지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장막이 세워진 실로가 있다. 디르사도 여로보암과 그의 후계자들의 왕도였고 드보라가 이스라엘을 다스린 드보라의 종려 나무도 이 지파 내에 있다. 디르사의 왕궁이 불탄 후에 오므리에 의해서 건설된 사마리아도 이 지파 내에 있으며 이곳은 오랫동안 열 지파의 왕국의 왕도가 되었었다. 여기서 멀지 않는 곳에 세겜이 있고 에발 산과 그리심 산이 있으며 야곱의 우물이 가까이 있는 수가가 위치하고 있는데 거기서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과 담화하셨다.
우리는 사사기의 이야기에서 에브라임산이라는 말을 여러 번 읽게 되는데 에브라임이라고 불리우는 도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곳은 아마도 이 지파 내에 있었을 것으로 보며, 그리스도께서 잠깐 은둔하신 곳이기도 하다(요 11:54). 열 지파의 왕국도 종종 예언자들에게 있어서, 특별히 호세아에게 있어서는 에브라임이라고 불리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