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칼럼

개혁주의 정통 교리인 회심 준비교리 바로 알기(이동훈 목사님)

하나지기 2022. 10. 3. 13:01

개혁주의 정통 교리인 회심 준비교리 바로 알기 (1)

Q. 회심 준비교리(론)이 무엇인가요?
A. 준비교리(Doctrine of preparation)는 하나님께서 죄인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시는 보편적인 방식이 있다는 개념인데, 그 방법은 죄인들이 그들을 구원하시는 그리스도를 믿기 이전에 자신의 영적 필요에 대해 자각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Q. 회심 준비교리를 통해 인간에게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 건가요?
A.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에게 중생의 은혜를 주시기 전에 죄의 각성을 통하여 자신의 내면이 악으로 가득함을 보게 하시며, 죄에 짓눌려 마음이 가난해지도록 하시며, 애통을 일으키시고, 지독한 자기 교만과 자신의 모든 존재가 무너지도록 인도하십니다. 

Q. 회심 준비교리는 인간이 회심을 준비할 수 있는 것인가요?
A. 결코 아닙니다. 준비교리는 성령께서 죄인들을 죄의 각성으로 인도하는 원리인데, 인간이 준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하여 스스로 하나님을 찾거나 구원을 위하여 준비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준비한다면 이단의 가르침이 됩니다.

Q. 준비교리와 관련된 이단의 가르침이 무엇인가요?
A. 정통의 가르침인 청교도 준비교리(Doctrine of preparation)와 구분되는 준비주의(preparationism)입니다. 준비주의는 알미니안주의자들과 로마 가톨릭이 주장하는 원리로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의 은혜나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시킬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Q. 회심 준비교리가 회중파 청교도만의 교리인가요?
A. 아닙니다. 회중파 청교도 뿐만 아니라 장로파 청교도, 장로교회 신학자, 목회자도 가르치고 주장했던 교리입니다. 대표적인 장로교회 신학자 목회자는 다음과 같습니다. 예레미야 버로스, 사무엘 루더포드, 윌리엄 거스리, 토마스 보스톤, 헤르만 바빙크, 찰스 핫지 등입니다.


개혁주의 정통 교리인 회심 준비교리 바로 알기 (2)

다음은 회심 준비교리를 말했던 장로교 목사 및 신학자들의 말을 들어보자.

1. 예레미야 버로스(Jeremiah Burroughs, 대략 1600-1646년, 독립 교회파 장로회)
버로스는 어떤 사람들은 죄에 대한 자각과는 완전히 별개로 정신적인 짐 때문에 고통받았다는 것을 알았다. 경험적이지 못한 개혁파 사람들은 죄에 대한 자각을 오늘날의 정신병이나 우울증과 같은 단순한 “우울감”으로 일축시키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는 우울감과 죄에 대한 자각의 차이점을 여섯 가지로 정확히 기술함으로써 이에 답했다.

(1) 우울감은 큰 무지로 나타날 수 있지만 죄에 대한 자각은 하나님과 죄에 대한 새로운 계시로 인해 나타난다. 
(2) 우울감은 일반적으로 신체적 변화에 의해 점차적으로 나타나지만 죄에 대한 확신은 말씀을 통해 깨달아지는 어떤 것으로 인해 순식간에 나타날 수 있다. 
(3) 우울감은 혼란을 가져오지만 죄에 대한 자각은 왜 고통 받고 있는지에 대한 분명한 통찰력을 준다. 
(4) 우울감은 참기 어려운 외적 고통을 주지만 죄에 대한 확신은 하나님의 진노와 비교하면 자신이 겪고 있는 시련 또한 가볍게 보이도록 한다. 
(5) 우울감은 침울함과 게으름을 야기하지만 죄에 대한 자각은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하고 기도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마음을 흔든다. 
(6) 우울감은 때때로 약과 외적인 위로로 치유될 수 있지만 죄에 대한 자각은 복음을 통하여 성령에 의해 적용된 그리스도의 피로 회복되는 것을 필요로 한다.

죄의 짐은 “거의 견딜 수 없는 지경”일지라도 사람을 절망 가운데 빠뜨리지 않는다. 버로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지만 이제 주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주시기 위해 그 마음을 준비시키기 위해 사용하시는 방식으로 죄의 무게를 느끼는 자들은 죄의 무게를 느끼되 그들이 애쓰는 만큼 그 무게를 느낀다. 즉,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긍휼을 간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면서 그분의 명령을 행할 준비가 되어 활발히 요동치며 움직인다.” 이러한 자는 그리스도께서 그분께로 나아오도록 부르시고 쉼을 얻게 하시는 무거운 짐 진 죄인을 뜻한다.”

2. 사무엘 루터포드(Samuel Rutherford, 1600년 ~ 1661년 3월 29일, 스코틀랜드 장로교)
사무엘 루터포드는 자신의 요리 문답 “제23, 24장 구속의 적용되는 길과 회개에 관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문 280: 그렇다면 하나님의 효과적 부르심 전에는 준비할 게 아무것도 없습니까?
답: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율법의 무서움으로 내치시며 우리의 비참한 처지를 보게 하십니다(행 9:6; 2:37). 

문 285: 돌 같은 마음이 어떻게 제거됩니까?
답: 그리스도의 죽음의 공로 때문에 하나님께서 죄를 도말하시며, 그리스도를 죽인 우리들의 죄를 몹시 슬퍼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기에 우리의 죄를 미워하며 질색하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슬픔과 사랑이 죄의 몸을 못 박히게 하는 못이 되게 하심으로 제거하십니다(롬 6:6; 갈 5:24; 롬 6:4; 8:13; 요일 4:11; 고후 5:14).

문 288: 회개란 무엇입니까? 
답: 우리 안에서 성령이 이끄시는 죄에 대한 경건한 슬픔입니다. 그리고 악한 길을 버리는 것이고, 우리의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문 289: 우리 안에서 회개를 하나님이 어떻게 일으키십니까? 
답: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율법을 가지고 우리가 정죄 받아야 할 자임을 알게 하시고, 복음이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께 나아가 자비를 구하게 합니다.

뿐만아니라 그의 다른 책(Christ Dying and Drawing Sinners to Himself, 1803 edition, UK: Reformed Church Publiccations)에서 준비교리를 다음과 같이 올바로 정의하고 있다: “준비교리는 죄인들을 정죄하여 그들을 굴복시키는 것이며, 그들의 도덕적 행동으로 공로를 얻는 것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돌이켜 거듭나게 하는 조건도 아니다. 하지만 죄로부터 돌이켜 거듭나게 할 수 있도록 용이하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준비교리(Doctrine of preparation)는 율법의 기능으로써 자신의 죄를 깨닫고 정죄를 받아 자신에게는 어떠한 소망도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께만 소망이 있음을 알고 겸손한 마음으로 인도하는 원리이다. 이처럼 청교도들은 성령께서 우리를 준비 시키시는 도구가 율법임을 항상 말해왔다. 


개혁주의 정통 교리인 회심 준비교리 바로 알기 (3)

다음은 회심 준비교리를 말했던 장로교 목사 및 신학자들의 말을 들어보자.

3. 토머스 보스톤(Thomas Boston, 1676년 3월 17일-1732년 5월 20일, 스코틀랜드 장로교)
보스톤은 『은혜 언약(The Covenant of Grace)』에서 다음과 같이 준비교리에 대하여 밝히고 있다. 

“먼저 그들에게 역사하시는 종의 영이신 그분의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그들의 양심에 하나님의 명령과 저주 속에 있는 거룩한 율법을 새겨 넣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을 특별히 매십니다. 이를 통해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를 극악한 것으로 보신다는 사실과 그들의 죄에 대하여 그들에게 합당한 진노를 품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어 자신의 죄와 비참함에 대해서 확신하게 됩니다. 그들은 회한과 공포와 근심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그분의 의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는 절망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리스도와 그분의 의에 대한 절대적인 필요성을 절감하게 됩니다(행 2:37, 16:29, 30).”

이와 같이 보스톤은 회심 이전에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율법이라는 수단을 가지고 회심을 준비시키시는 역사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4.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 1854년 12월 13일~1921년 7월 29일)
네덜란드 신학자인 헤르만 바빙크는 『개혁교의학』제4권 “부르심”에서 준비교리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부르심은 단지 억제하는 은혜일 뿐만 아니라, ‘예비적 은혜’(gratia praeparans)이기도 하다. 그리스도는 심판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여’ 세상에 왔다(막 4;12; 눅 2:34; 8:10; 요 9:39; 15:22; 고후 2:16; 벧전 2:7,8). 율법과 복음을 통한 부르심의 목적은 또한 부르심이 제공하고 작용하는 모든 것을 통해 인류와 개별적 인간 안에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비적 은혜’가 존재한다. 하나님이 친히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자신의 은혜로운 사역을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준비한다. 하나님은 삭개오의 마음에 예수를 보고자 하는 욕구를 일으키고(눅 19:3),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군중들 가운데 마음의 찔림을 느끼게 하고(행 2:37), 바울이 땅에 엎드러지게 하며(행 9:4), 빌립보 감옥의 간수를 당황하게 하고(행 16:27), 이와 같이 자기 모든 자녀들이 중생하기 이전에 그리고 중생하는 시간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삶을 인도한다. 비록 이들이 아직 그들 편에서 속죄와 칭의를 소유하지 못하고, 아직 중생과 믿음을 갖지 못했을지라도,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대상이며, 하나님 자신이 자신의 은혜로 그들을 성령께 인도하는데, 오직 성령만이 거듭나게 하고 위로할 수 있는 분이다. 그래서 모든 것은 하나님의 정하신 뜻에 따라 후속적인 것들과 교회로 부르심과 연관 된다. 잉태의 출생, 가정과 세대, 민족과 땅, 양육과 교육, 지적 발달과 마음의 성장, 끔찍한 죄로부터의 보존, 무엇보다도 성령훼방죄로부터의 보존, 온갖 종류의 악과 불의에 대한 포기, 재앙과 심판들, 복과 유익들, 율법과 복음에 대한 설교, 심판에 대한 낙심과 두려움, 양심의 각성과 구원의 필요, 이 모든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중생을 위한 예비적 은혜이며 신자가 나중에 교회에서 차지할 자리를 위한 예비적 은혜다.”

그의 또 다른 저서 [개혁파 윤리학]에서는 “주권적인 기원과 관련해서는 개혁파 신학조차도 말씀을 듣는 것, 교회에 나가는 것, 죄에 대한 자각과 죄 용서에 대한 소망을 기르는 것 같은 회심을 위한 선행적인 준비 과정을 인정한다. 이것은 성령이 한 사람을 거듭나게 할 때까지 하나님의 섭리적 인도하심을 인정하는 것이다. ‘준비 과정’은 성령 하나님의 일반적인 사역의 일부이고, 거듭남은 구체적이고 불가항력적인 사역이다”라고 말한다.


개혁주의 정통 교리인 회심 준비교리 바로 알기 (4)

성경 구절을 통해 살펴 본 준비교리(Doctrine of preparation)

1. 심장을 찔러 쪼개는 것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 행 2:37

- 해 설
무리들이 '마음에 찔렸다'는 것은 양심의 가책과 더불어 이성적인 죄책감(罪責感)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제자들 속에 역사하신 성령은 예수의 예언대로(요 16:8-11)그들의 죄를 책망하는 일을 행하신 것이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유대인들의 마음은 마치 폭탄을 맞은 듯 크게 흔들렸다. 즉, 하나님은 그들에게 강한 회개의 마음을 불어넣어 주셨던 것이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또한 하나님의 회개의 영을 받은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대망하였던 메시야를 자신들의 손으로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모두들 걷잡을 수 없는 후회와 절망감에 사로잡혀 마치 그들의 마음이 창에 찔린 듯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 것이다. 

메튜 헨리 주석에서 “베드로는 이제 그들의 양심을 일깨웠고 골수까지 그들을 찔렀다. 그들이 이 모든 말씀을 들은 후 그 말씀은 "뼈까지 파고 드는 칼날이 있어" 그들이 그리스도를 찔렀던 것처럼 그들을 관통하였다. 죄인의 눈이 열릴 때 죄로 말미암아 그의 "마음이 찔림을 받아" 내적인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이것이야말로 "마음을 찢는 것이요"(요엘 2:13),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인 것이다(시 51:17). 진정으로 죄를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이를 부끄러워하며 그 결과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마음에 찔림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우리가 어찌할꼬”라는 고백은 행 16:30절에서 바울을 감시하던 간수가 바울을 향해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라고 했던 고백과 동일한 의미를 내포하는 표현이다. 단지 간수는 지진으로 옥문이 열리는 기적을 보고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았고,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유대인들은 회개하라는 선포를 통하여 자신들이 죄인임을 깨달았을 뿐이다. 그러나 이들의 공통적인 반응은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방식을 버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묻는 것이었다. 복음과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낮아져서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묻는 자세가 바로 구원의 첫걸음이다.

칼빈은 주석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첫째는 그들이 비탄의 감정으로 마음이 찔렸다는 것이요, 둘째는 그들이 베드로의 권고에 순종하였는데 이것이 회개의 시작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어서 율법의 기능 가운데 있는 자는 양심의 찔림과 통회하는 마음이 일어남에 대해 이렇게 덧붙인다. “우리의 죄과에 대하여 슬픔을 느끼고 또 우리의 나쁜 짓의 자각으로써 마음이 상하게 되는 일은 신앙심에 들어가는 입문인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생각없이 있는 동안에는 그들이 참된 가르침에 참으로 관심을 기울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까닭에 하나님의 말씀은 검에 비교되어 있는 것이다(히 4:12).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희생제물로 바쳐지기 위해서 우리의 육체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마음의 찔림에는 복종의 의지가 첨가되지 않으면 안 된다. 가인과 유다는 마음에 찔림을 받기는 했으나 그들은 절망으로 인하여 자신들을 하나님께 드리는 일에 방해받았다. 두려움으로 억압된 마음이란 하나님께로부터 도망치는 일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다. 통회하는 마음과 겸비한 심정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만한 희생이라고 우리가 들었을 때에 우리 마음에 떠오르는 것은 자발적인 마음의 찔림이다.”